하연은 그제야 하성의 의도를 파악했다.“그러니까 여정 씨를 우리 DS 엔터에 합류시키겠다는 거예요?”“응. 맞아.”“아...”하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사실 이제 막 설립된 신생 그룹이 안여정처럼 이미 데뷔하고 인기까지 얻은 연예인과 계약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도 그럴 게,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원래 인기로 돈 벌어 먹고사는 직업이니까...때문에 여정이 DS 그룹에 기꺼이 합류한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혹시 저 안 반겨 주시나요?”여정이 농담조로 말했다.“아니요. 그럴 리가요. 여정 씨가 우리 엔터에 합류하면 저희야 영광이죠.”“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여정은 눈을 들어 하성을 흘긋거렸다. 그 눈빛은 하연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다.때문에 하연은 단번에 여정의 속내를 알아버렸다.‘목적이 따로 있었군.’하연이 뭐라 말하려던 그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이에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바로 확인했다. 하지만 액정에 뜬 전화번호를 본 순간 기대에 찬 눈빛은 다시 실망감으로 뒤덮였다.약 몇 초 지난 뒤에야 하연은 수신 버튼을 눌렀다.“하연아, 지금 회사야?”전화 건너편에서 가흔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신 디자이너님이 웬일로 나한테 다 전화를 했을까?”하연은 말하면서 하성과 여정을 흘긋거렸다.“너희 회사에서 DS 엔터를 설립했다며? 연예인들 많이 끌어들였을 테니 스폰서가 필요하지 않아?”“뭐야? 평소에 연락도 잘 안되더니 우리 회사 일에 빠삭하네?”“VERE가 마침 최근에 협찬을 고려해 보고 있거든. 여은과 얘기하다가 마침 네 소식 들어서 전화해 봤어. 우리 만나서 얘기할까?”“응, 좋지. 나 회사에 있어. 정 실장더러 너 데리러 가라고 할게.”“필요 없어. 다 큰 어른이 길 하나 못 찾을까 봐? 나 주차장에 차만 세워놓고 바로 올라갈게.”전화를 끊은 하연은 하성을 흘긋거렸다.“오빠, 가흔이 여기로 온대요.”가은의 이름을 듣고도 하성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그럼 너희끼리 얘기 나눠.
“너 대체 무슨 생각 하는 거야?”“오빠, 혹시 여정 씨한테 다른 마음은 없어?”하성은 그제야 하연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채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최하연, 너 이제 오빠 사생활도 다 캐네?”하성이 제 질문을 교묘하게 피하자 하연은 조급한 듯 따져 물었다.“오빠 설마 여정 씨 좋아하는 거예요?”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하성이 손가락으로 하연의 이마를 튕겼다.“너도 참,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여정은 그냥 후배야. 그 이상은 절대 아니야.”“그러면서 성 빼고 불렀잖아. 오빠가 거짓말하는지 알 게 뭐야.”하연은 아픈 듯 제 이마를 감싸 쥐며 투덜댔다.“최하연! 내가 어떻게 말해야 믿을 건데?”“저야 당근 오빠 믿죠. 하지만 여정 씨는 아닐걸요.”여정이 제 오빠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 이미 똑똑히 봤으니까. 그 눈빛은 분명 좋아하는 사람을 보는 눈빛이다.“오빠...”“그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하연은 눈알을 데구루루 글리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끝내 마음속에 묻고 있던 말을 꺼냈다.“오빠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그 말을 꺼낸 순간 공기 속에 침묵이 흘렀고, 하성의 얼굴에도 부자연스러운 기색이 스쳐 잠깐 스쳐 지났다. 하지만 하성은 이내 그 감정을 숨긴 채 덤덤하게 대답했다.“없어.”너무나도 단호한 두 글자였다.하연은 그 순간 속으로 가흔을 대신해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제삼자로서 하연과 친구들 모두 가흔의 마음을 지켜봐 왔다.하지만 하필 당사자인 하성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니...“하연아, 다른 일 없으면 난 갈게.”“네. 가요.”그 말을 끝으로 하성은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다 마침 가흔과 맞닥뜨리고 말았다.하성은 눈을 가늘게 접으며 걸음을 멈추더니 가흔을 빤히 바라봤다.그때 가흔이 먼저 하성에게 인사했다.“오빠도 여기 있었네요?”“하연이 찾으러 왔어?”“네.”가흔은 대답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가방끈을 꽉 움켜쥐었다.“그럼 전 들어가 볼게요.”이윽고 짤막한 한마디를 남긴
여정은 그 말에 화내는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관대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선배님 일 봐요. 저 혼자서 둘러봐도 되니까.”여정이 그렇게 말하자 하성은 오히려 미안했는지 먼저 제안했다.“내 매니저 붙여줄 테니까 필요한 건 뭐든 말해.”“네, 선배님.”하성이 떠나자 여정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는 싹 사라졌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눈을 번뜩였다....사무실 안.하연은 가흔을 보자 다급하게 일어섰다.“네가 갑자기 오다니 너무 놀라운데?”“길가다 들른 거야.”가흔은 싱긋 웃으며 가방을 내려놓더니 이내 눈을 내리깔며 물었다.“하성 오빠가 여기 왜 있어?”“아, 오빠도 너처럼 나한테 힘 보탠다고 DS 엔터랑 계약했어.”“하성 오빠가 DS 엔터랑 계약했다고?”가흔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응, 우리 엔터의 첫 번째 연예인이야.”하연은 가흔이 하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말을 보탰다.“VERE 주얼리가 우리 회사에 협찬한다면 모델 할 사람은 하성 오빠뿐이겠네...”“아.”가흔의 짤막한 대답에 하연은 앞으로 다가가 가흔의 손을 잡았다.“가흔아, 난 사실 네가 우리 오빠한테 네 마음 고백하는 것도 좋다고 봐.”가흔은 눈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입을 삐죽거렸다.“아니야. 가끔 드러내지 말아야 할 감정이란 것도 있어. 차라리 지금처럼 이렇게 남는 것도 좋아.”“하지만 말 안 하면 오빠가 영원히 모를 텐데.”“모르는 게 차라리 나아.”가흔은 눈을 들어 하연을 바라봤다.“사실 두 사람 대화 밖에서 들었어.”“오빠 말 믿지 마. 오빠는 그냥 아닌 척하는 거야. 그게 진심이 아닐지도 몰라.”하연은 하성에 대해 잘 알기에 지난 몇 년 동안 자기 오빠가 가흔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고 확신했다.“됐어. 감정은 강요할 수 없어. 하늘의 뜻에 맡겨야지.”약간 허탈하기도 하면서도 개의치 않다는 듯 말하는 가흔의 모습에 하연은 걱정이 앞섰다. 가흔의 말대로 감정은 강요할 수 없지
“좋아. 그렇다면 바로 계약서 작성할 테니까 문제없으면 계약하자.”“응.”“VERE에서 곧 새로운 시리즈를 런칭할 예정인데 이번 시리즈의 모든 작품 모델은 DS 소속 아티스트한테 모델을 맡길게.”하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그렇다면 우리 셋째 오빠랑... 안여정 씨한테 맡겨 줘.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 중에 인기 있는 사람은 아직 이 두 명뿐이니.”가흔은 시선을 거두며 무심코 대답했다.“그래, 이번 시즌 두 사람의 주얼리 모델은 우리 브랜드에 맡겨줘.”“내가 나중에 매니저랑 따로 상의해서 알려줄게.”“그래.”일 얘기를 마친 뒤, 하연은 직접 가흔을 회사 로비까지 데려다줬다. 하지만 하필이면 여정과 마주쳤다.여정은 가흔을 위아래로 살피더니 먼저 하연에게 인사했다.“사장님, 안녕하세요.”하연은 결국 두 사람을 서로 소개해 줬다.“여정 씨, 이분은 VERE 주얼리 신가흔 대표예요. 앞으로 여정 씨한테 VERE 주얼리 협찬해줄 거예요.”가흔이 VERE 주얼리 대표라는 말에 여정의 눈은 반짝 빛났다.VERE 주얼리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주얼리 브랜드이니 그럴 만도 했다.VERE 주얼리는 독특하고 세련된 오리지널 디자인만 추구하기에 젊은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 있다.여정의 눈에 드리웠던 경멸은 어느새 사라졌다. 심지어 먼저 나서서 가흔에게 인사했다.“신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는 DS 소속 연예인 안여정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가흔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를 차리는 동시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여정과 말을 섞지 않고 하연에게 말을 걸었다.“하연아, 나 먼저 갈게. 세부 사항은 나중에 따로 예기해.”“그래.”가흔을 배웅하고 나니 여정이 궁금한 듯 불쑥 나타나 말했다.“사장님, 신 대표님과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어릴 때부터 친구라 각별해요.”여정은 그 말에 흠칫 놀랐다.가흔이 하연과 사이가 이렇게 좋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어쩐지 하성 선배가 특별하게 대한다 했어. 가운데 최 사장님이 끼
하연은 제 앞에 서 있는 상혁을 위아래로 훑어봤다.그러다가 상혁이 멀쩡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삐죽거렸다.“지난 이틀 동안 어디 갔어요? 연락도 안 되고. 난 또 오빠가...”하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혁은 손을 뻗어 하연을 품에 끌어안았다.익숙한 포옹에 하연은 순간 안심되었다. 이렇게 상혁의 품에 안겨 있으니 입가에서 맴돌던 말도 다시 삼켜버렸다.그때 상혁이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하연의 귓가에 속삭였다.“미안해, 많이 걱정했어?”사실 BN 그룹 본사 일 때문에 상혁은 그동안 F국에서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연락도 못 했다.하지만 하연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귀국했고,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 한시라도 빨리 하연을 보기 위해서.그때 하연이 입을 삐죽거리며 삐진 듯 말했다.“왜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해요? 내가 얼마나...”“응, 알아. 다음에는 절대 이러지 않을게.”눈을 들어 상혁을 훑어보던 하연은 피곤함이 역력한 상혁의 얼굴을 보자 순간 마음이 아팠다.“오빠, 혹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여기로 달려왔어요?”“응, 네가 걱정할까 봐. 그리고 화낼까 봐 직접 사과하러 왔지.”“그럼... 아직 휴식도 못 했겠네요?”상혁은 하연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네 얼굴 보니까 피곤함이 싹 사라졌어.”“이거 놔요. 여기 회사예요.”하연은 다급히 상혁을 밀어냈다. 하지만 어깨에 손이 닿는 순간 상혁은 무의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그걸 바로 눈치챈 하연은 걱정스럽게 물었다.“혹시 다쳤어요?”하연은 걱정 가득한 말투로 물어보며 당장이라도 상혁의 어깨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자 상혁은 하연의 손을 덥석 잡았다.“걱정할 거 없어, 나 괜찮아.”하연은 상혁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방금 분명 살짝 밀었는데 눈살을 찌푸릴 정도라면 상처가 심할 게 뻔했다.“어디 보여줘 봐요.”하연은 손을 뻗으며 완강한 태도로 말했다. 아까 어깨를 만지면서 붕대가 감겨 있는 걸 봤기에 하연은 제 생각을 더
말이 끝나기 바쁘게 상혁은 하연을 제 품에 와락 껴안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래.”상혁과 그렇게 꼭 붙어 있으니 하연은 요란하게 북을 치는 제 심장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그 순간 하연은 도망치듯 상혁의 품에서 빠져나오려 했다.“구급상자는 어디 있어요? 상처 치료해 줄게요.”“괜찮아. 의사가 처리했어.”“오빠 상처 터진 것 같아서 그래요.”하연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돌아 구급상자를 찾기 시작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여기저기 찾아 헤매는 하연을 상혁은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보다가 얼른 일어나 반대편 캐비닛으로 걸어갔다.“이 안에 있어.”하연은 머쓱해서 얼른 앞으로 가 구급상자를 받아 들었다.“앉아요. 약 갈아줄게요.”상혁은 고분고분 자리에 앉아서는 깊은 눈동자로 하연을 빤히 쳐다봤다.하연은 얼른 구급상자를 열어 도구를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상혁의 상처를 치료해 주기 시작했다. 하연의 동작은 매우 가벼웠고 동작 하나하나 매우 조심했다. 그러다 붕대를 떼어내자 하연은 붕대 아래 상처를 똑똑히 확인했다.딱 봐도 날카로운 칼날에 질린 듯한 상처였다.하연은 일순 눈살을 찌푸렸다.‘이건 절대 보통 상처가 아니야.’“오빠, 대체 어쩌다가 다친 거예요?”상혁은 하연이 걱정하는 게 싫어 덤덤하게 말했다.“별일 아니야, 작은 사고가 있었어. 괜찮아.”끝까지 말하지 않는 상혁을 하연은 더 이상 다그쳐 묻지 않았다.“앞으로 조심해요. 또 이렇게 다치지 말고.”그러고는 면봉에 요오드를 묻혀 상처를 조심스럽게 처리하기 시작했다.상처에 새로운 붕대를 감은 뒤 하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제야 너무 긴장한 탓에 자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는 걸 발견했다.“약 제때에 갈아야 빨리 낳을 수 있어요.”“그래, 알았어.”말을 마친 하연은 구급상자를 처리하기 시작했고 그사이 상혁은 어디론가 전화했다.“5분 뒤에 내 개인 별장으로 와.”“상혁 오빠, 누구랑 전화했어요?”옆에 있던 하연은 의아한 듯 물었다.그러자 상혁
상혁은 곧바로 피터에게 말했다.“내 일정은 앞으로 숨김없이 하연한테 공유해. 사실대로 알려줘.”그 말이 떨어진 순간 피터의 눈에 놀라움이 스쳐 지났다. 상혁은 신분과 배경도 있고 그동안 비즈니스를 하면서 적도 많이 생겨 안전을 위해 일정은 늘 비밀로 했었다.게다가 상혁을 따라 일한 수년 동안 피터는 늘 뒤에서 정체를 드러낸 적 없었다. 그런데 오늘 상혁이 저를 눈앞의 여자에게 소개해 줬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이로써 상혁이 하연을 백 퍼센트 믿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네, 대표님.”상혁의 명령에 피터는 늘 의심을 품지 않기에 상혁이 하연을 백 퍼센트 믿는다니 그 역시 하연을 백 퍼센트 믿기로 했다.“그래, 가 봐.”“네, 대표님.”피터가 떠난 뒤 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았다.“하연아, 그동안 내가 특별히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었어.”하연도 이제는 어느 정도 눈치챘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그러고는 눈을 들어 상혁을 바라봤다.“알았어요. 다만 앞으로 절대 다치지 마요.”“그래.”상혁은 하연의 볼을 빤히 바라봤다. 그 순간 공기 속에 야릇한 분위기가 흘렀고, 그걸 인지한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치며 도망쳤다.“오빠, 저 이제 집에 갈게요.”하지만 일어서기도 전에 상혁이 하연의 팔을 잡아당겼다.“늦어서 위험해.”“네?”상혁의 말에 뭔가 생각난 듯 하연은 얼굴을 붉혔다.“그건... 안 되지 않나요?”상혁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싱긋 웃었지만 함부로 선을 넘으려 하지는 않았다. 이제야 하연이 조금씩 저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급할 필요 없으니.“네가 안방 써, 내가 객실에서 잘게. 오늘 하루만 여기서 지내. 늦은 시간에 너 집에 돌려보낸 걸 어머니가 알면 또 뭐라 하셔.”조진숙을 방패막이로 꺼내자 하연은 마지못해 동의했다.“그래요, 그럼 저 먼저 올라가서 쉴게요. 잘 자요.”하연은 뒤돌자마자 총총걸음으로 도망쳤다. 마치 뒤에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헐레벌떡 위층에 올라온 하연은 안방 문을 쾅 닫아
“뭘 그렇게 봐?”상혁의 목소리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하연을 현실로 잡아끌었다. 하지만 시선만은 여전히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가 결국 그 물건을 가리키며 물었다.“오빠한테 어떻게 목마 모양 도자기 장식품이 있어요?”하연의 시선을 따라 확인한 상혁은 싱긋 웃었다.“왜? 너도 있어?”“네. 이거 제 거랑 똑같아요. 아쉽게도 제 건 진작 깨졌지만...”하연은 시선을 거루며 서글픔 어조로 말했다.그 순간 상혁의 눈에 이상한 빛이 스쳐 지났지만 이내 숨겼다.“아쉽네. 일찍 자.”상혁은 말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새 잠옷과 목욕 타월을 하연에게 건넸다.“알았어요, 오빠도 일찍 쉬어요. 잘 자요.”상혁은 더 이상 방에 머물지 않고 객실로 향했고, 하연은 상혁한테서 받은 잠옷과 목욕 타월을 들고 싱긋 미소 지었다.그 시각, 한씨 저택.서준이 일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는 벌써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기사는 차를 차고에 멈춰 세우더니 술에 취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서준에게 귀띔했다.“대표님, 댁에 도착했어요.”“네, 기사님도 얼른 들어가 보세요.”서준이 차에서 내렸을 때 커다란 정원은 아주 조용했다. 고개를 들어 눈앞의 별장을 확인한 서준은 저도 모르게 과거를 회상했다.고작 반년이 흘렀는데 별장은 너무 썰렁해졌다. 하연과 이혼한 뒤 서준은 사실 이 별장에 한 번도 발을 들인 적이 없다.서영과 이수애를 A국으로 쫓아낸 바람에 이 커다란 집에 이제는 서준과 강영숙 둘뿐이다.서준이 성큼성큼 대문 안으로 걸어 들어오자 최향숙이 나와 서준을 반겼다.“대표님, 어서 오세요.”그러면서 서준의 손에서 외투를 받아 현관에 걸어 두었다.“저녁에 어르신께서 대표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함께 식사하겠다면서.”그 말에 서준은 걸음을 우뚝 멈췄다.“할머니는 주무시나요?”“진작 잠자리에 드셨어요.”최향숙이 뭔가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무는 모습에 서준이 물었다.“또 무슨 일 있어요?”“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네요. 요즘 어르신 기분이 안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