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 대학에서 모연의 집까지 가는 데는 차로 2시간가량 걸렸는데, 도로가 조금 덜컹거렸다.가는 길에 진환은 모연의 가정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그걸 요약하자면 모연은 가정 형편이 넉넉한 집의 외동딸이라는 거다. 이건 그야말로 중요한 정보였다.한참 뒤, 도착해 보니 임씨 저택은 유럽풍이 물씬 느껴지는 별장이었다.별장 인테리어는 빈티지했고, 별장 앞 정원의 화초는 섬세하게 가꿔져 있었다.“형, 여기야.”진환은 말하면서 먼저 차에서 내렸다.“가자, 들어가 보자.”말하면서 제 손을 잡는 상혁의 행동 덕에 하연은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이윽고 짤막하게 대답하며 상혁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문 앞에 도착한 세 사람은 열심히 별장을 관찰했다. 그러다 한참 뒤, 진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형, 원래 대로라면 저택이 오랫동안 비어 있어야 하는데 잘 가꿔진 걸 보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야.”진환은 말을 마치자마자 앞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약 5, 60대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천천히 나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임씨 저택 가정부 최향숙이다. 최향숙은 세 사람을 보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누구 찾으러 오셨나요?”하연은 얼른 앞으로 나서서 웃는 얼굴로 물었다.“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임모연의 저택 맞나요?”최향숙은 하연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누구시죠?”하연이 대답하려 할 대, 옆에 있던 상혁이 끼어들었다.“저희는 임모연의 친구인데 뭐 좀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하연이 고개를 돌려 상혁을 보자 상혁은 이내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냈다.그때 최향숙이 약간 의심스러웠는지 다시 물었다.“아가씨 친구분이라고요?”“네.”최향숙은 여전히 의아했는지 뭐라 말하려고 입을 뻐끔거렸지만, 진환이 제 핸드폰을 쑥 내밀며 끼어들었다.“자, 봐 봐요. 임모연 시가 보낸 문자예요. 우리한테 디자인 원고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거든요.”최향숙은 핸드폰 액정에 든 모연의 카톡 계정을 확인하더니 그제야 환한 미소를
하연은 그 말에서 요점을 포착하고는 무심코 묻는 것처럼 슬쩍 떠보았다.“오랫동안 일하셨다면 이 집안 어르신이나 마찬가지겠네요?”“네, 아가씨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일했으니 20년 가까이 되네요.”그 대답에 하연은 상혁과 눈빛을 교환했다.“그럼 모연 씨가 자라는 과정을 지켜봤겠네요?”최향숙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뭔가 그리운 듯 과거를 회상했다.“우리 아가씨는 어릴 때 얼마나 얌전했는지 몰라요. 사장님과 사모님 말씀은 뭐든 들었다니까요...”“게다가 어릴 때부터 공부는 또 얼마나 잘했는지, 사장님 내외가 항상 자랑스러워하셨어요. 두 분이 아직 살아계시면 아가씨는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였을 텐데...”회상을 멈춘 최향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장님 내외는 교통사고로 5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가씨는 그나마 생존하셨는데 병원에서 꼬박 2년 동안 치료를 받으며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해 성격이 참 많이 변했어요...”“그 말씀은, 모연이 교통사고 후 2년 동안 병원에 있었고, 계속 이모님이 간병하셨다는 뜻인가요?”“그 사고가 아가씨한테 너무 큰 상처라 부득이하게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최향숙은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젓더니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아가씨가 원고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면서요?”하연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네, 부탁 좀 드릴게요.”그 말에 최향숙 역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하지만 아가씨가 원고라면 너무 많은데, 어떤 걸 원하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우선 찾아볼게요...”“제가 도와드릴게요.”하연이 일어서서 약 두 걸음 걸었을 때 최향숙이 무슨 이유인지 하연을 막았다.“아니에요. 아가씨가 특별히 부탁했거든요. 본인이 집에 없을 때 누구도 화실에 들이지 말라고. 그러니 아가씨의 규칙을 어기지 맙시다. 제가 가져다드릴게요.”하연은 가던 걸음을 뚝 그치고 싱긋 웃었다.“그럼 부탁할게요.”최향숙이 떠난 뒤, 세 사람은 거실에 앉아 기다렸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향
“교통사고가 난 뒤 예전 기억이 떠오를까 봐 여기에 좀처럼 오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예전 작품밖에 없는데, 왜요? 아가씨께서 말한 작품이 없나요?”“아니요...”하연은 무의식중에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저도 어떤 건지 잘 몰라서 사진 찍어 물어볼게요.”“그래요, 그럼 사진 찍어서 물어보세요. 그 참에 언제 돌아오는지도 물어봐 주세요. 돌아오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최향숙은 별 의심 없이 대답했다.심지어 말투에는 일말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최향숙을 보니 하연은 왠지 어릴 때부터 부모가 곁에 없어 집에 있는 이모님이 항상 챙겨주던 게 생각났다.“이모님은 임모연이 크는 걸 지켜봤으니 감정이 남다르겠네요.”“아가씨는 아가씨이고 저는 그저 하인이죠.”최향숙이 한마디로 본인의 입장을 밝히자 하연은 더 이상 묻지 않고 핸드폰으로 재빨리 사진을 찍어 저장했다.“이모님, 사실 저희가 모연이 친구이긴 하지만 잘 모르거든요. 이제 곧 모연이 생일이라 선물을 준비하고 싶은데 이모님이라면 모연이 취향을 잘 알겠죠? 혹시 말해주실 수 있나요?”모연의 취향을 언급하자 최향숙은 대화거리라도 찾은 듯 말이 많아졌다.“아가씨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좋아 보는 사람마다 예뻐했어요. 사모님과 사장님도 무척 아꼈고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재주가 남달라 사모님이 5살 때부터 아가씨께 선생님을 붙여 줬는데...”최향숙은 쉴 새 없이 모연의 사소한 것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최향숙과 모연의 사이가 아주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한참 얘기하던 최향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하... 만약 사장님 내외가 아직 살아계신다면 아가씨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분이셨을 텐데.”그 얘기를 꺼내자 분위기는 왠지 무거워졌다.그때 하연이 입술을 오므리고 계속 질문했다.“혹시 5년 전 임 사장님네 식구가 당한 교통사고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최향숙은 고개를 저었다.“이 일은 경찰에서도 조사했는데 사고사로 판명 났어요. 다른 특별한 건 없었어요. 우리는
“진환 형, 나더러 알아보라던 교통사고 단서가 잡혔어요...”진환은 입꼬리를 올리며 싱긋 미소 지었다.“그럼 그 사건 담당했던 형사는 찾았어?”“찾았어요. 지금 경찰서에 있는데 오실래요?”진환은 하연과 상혁을 번갈아 보더니 한 차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그래,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진환은 이내 하연을 향해 말했다.“형수님, 결과가 어찌 됐든 우선 가보는 게 어때요? 가 보면 아마 모든 걸 알 수 있을 거예요.”그 말을 들으니 하연은 왠지 모르게 조마조마했다. 너무 갑작스레 느껴진 긴장감이라 이상한 느낌마저 들었다.다행히 그런 긴장감은 경찰서 문 앞에 도착하자 이내 가라앉았다.상혁은 그런 하연의 기분을 느꼈는지 낮은 소리로 말했다.“괜찮아, 결과가 어떻든 내가 함께 이겨내 줄게.”“고마워요, 상혁 오빠.”앞에 앉은 진환은 처음 보는 상혁의 다정한 모습에 참지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형수님이 정말 매력 있나 보네. 아니야, 이건 틀림없이 마력이야!’“상혁 오빠, 혹시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어떡해요?”하연은 왠지 자신감이 없었다.그 모습을 본 상혁은 하연을 다정하게 위로했다.“아닐 거야. 진실은 항상 깊은 곳에 파묻혀 지금 우리가 본 게 다 거짓일 수도 있어.”그때 경찰서 문이 마침 열리더니 수사국장 황천호가 헐레벌떡 달려 나와 진환한테 공손히 인사했다.“바쁘신 분이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진환은 유명한 정계 가문의 자식이라 시장도 지환 앞에서는 예의를 갖춰야 한다.진환은 예의 있게 황천호와 인사하고는 얼른 상혁과 하연에게 소개했다.“형, 형수, 이 사람이 황 국장님이셔.”황천호도 똑똑한 사람인지라 진환이 형이라 부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단한 인물일 거라고 짐작해 공손한 태도로 인사했다.“진환 도련님의 친구 분이라면 저한테도 귀빈이나 마찬가집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부상혁입니다.”간단한 한마디에 황천호는 순간 의아했다. 그동안 G국에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이름을 들은 적은 없었으니까.
“황 국장님도 제 신분을 아실 텐데... 조금 사정을 봐줄 수는 없나요?”황천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눈살을 찌푸렸다.“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진환은 황천호가 이토록 제 체면을 봐주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해 뭐라도 더 말하려 했지만 상혁이 나서서 막았다.상혁은 덤덤한 표정으로 느긋하게 말했다.“우선 사건 담장 형사한테 물어보자.”진환은 그 말에 순간 화를 가라앉혔다.“알았어, 형.”방금 전과 너무 다른 태도를 보이는 진환을 보자 황천호는 상혁의 신분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자연스레 상혁을 대하는 태도가 더 공손해졌다.“안으로 드시지요.”세 사람은 함께 경찰서 안으로 걸어 들어가 웬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랬더니 경위 계급 제복을 입고 있는 형사 한 명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여기는 우리 강력계 형사 오성훈 경위입니다.”황천호는 먼저 나서서 쌍방에게 서로를 소개했다.“오 경위, 이분이 바로 진환 도련님이야. 이번 사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드려.”성훈은 말없이 인사하고는 세 사람과 함께 테이블 앞에 둘러앉았다.그러자 황천호는 네 사람에게 공간을 내어 주기 위하여 대충 둘러내고 자리를 피했다.황천호가 떠난 뒤 성훈이 먼저 물었다.“황 국장님 말씀 들었습니다. 5년 전 교통사고 건에 대해 알아보려 하신다고요?”“오 경위님, 이 사건은 우리한테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숨김없이 아는 건 다 말씀해 주세요.”성훈은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이 사건은 그때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저도 기억에 남습니다. 세 분이 오시기 전에 사건 기록도 확인해 봤고요...”“이건 아주 큰 교통사고였는데, 두 대의 차가 충돌한 뒤 연료가 새어 나와 폭발까지 나며 화재로 번졌습니다. 그때 현장에 있던 3명은 화재로 돌아가시고, 두 명은 중상을 입었죠.”“이 사고가 엄중하다는 이유도 사실 나중에 번진 화재 때문에 생존자 두 분마저 큰 화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임모연 씨도 그 때문에 얼굴과 등 대부분이 화상을 입었고요.”“...”여기
하연은 이내 눈을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그때 생존자가 두 명이었다면 임모연 외에 다른 사람도 있었다는 말인가요?”“네, B시에서 살던 20대 정도의 젊은 남성분이셨어요...”“B시요?”하연의 심장은 순간 반 박자 느려졌다. 이렇게 듣고 보니 왠지 이 일이 자기와 은연중에 연관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혹시 그 생존자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성훈은 싱긋 웃으며 하연의 요구를 거절했다.“죄송합니다. 그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그 대답에 하연은 왠지 실망감이 들었다.그도 그럴 게, 나머지 한 명이 B시에서 온 남자라면 모연과는 큰 연관이 없으니까.그때, 상혁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대뜸 질문했다.“세 명이 사망했다고 했는데 임모연의 부모 외에 나머지 한 분의 정보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성훈은 그 정보에 대해 숨기지 않았다.“그분도 B시에서 온 젊은 여성이었는데 마침 그 남자분과 연인 사이였어요. 그분 역시 얼굴의 3분의 2 정도가 큰 화상을 입었어요...”“그 여성분이 세상을 뜨고 나서 남자분이 슬퍼하며 몇 번이나 치료를 포기해 의사 선생님들도 겨우 그분을 살려냈거든요...”“...”하연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대담한 생각이 들었다.‘교통사고에 화상, 그리고 젊은 여자라니...’‘설마 이게 다 우연의 일치라고?’하연과 상혁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이건 마치 안개 낀 미스터리처럼 두 사람이 안개를 걷어내고 천천히 풀어헤치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혹시 그 여성분에 대한 정보는 있나요?”하연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성훈이 대답했다.“외국 국적이라 우리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건 대사관에서 확인해 보셔야 해요. 하지만 몇 년 전 일이라 단서를 알아내기 어려울 겁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하연의 눈에 실망감이 드리웠다.“혹시 더 궁금하신 점은 없으십니까?”상혁은 하연의 앞에 다가가 맑은 눈으로 하연을 바라봤다.“너무 낙심하지 마. 적어도 조금씩 의문이 풀리고 있잖아.”하연은 상혁을 보며
경찰서에서 나온 하연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상혁은 그런 하연의 곁에 바싹 붙어 물 한 병을 건네주었다.“물 좀 마시고 쉬어.”하연은 고개를 저었다.“상혁 오빠, 저 잠깐 혼자 있고 싶어요.”이윽고 혼자 길을 따라 한참 동안 걸었다. 상혁은 그런 하연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그때 다시 돌아온 진환이 상혁의 앞에 다가가 물었다.“형, 왜 형수 따라 안 가? 외국 땅에서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떡하려고?”“잠깐 혼자 있게 내버려둬. 우리는 뒤에서 따라가면 돼.”상혁이 말을 마치자마자 성큼성큼 하연의 뒤를 따르자 진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곧바로 상혁을 뒤따랐다.“형, 벌써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그동안 형수랑 진전은 있었어?”진환은 멀리 있는 하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형, 절대 망설이지 마. 망설이다가 형수 또 도망가면 어떡해...”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혁이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오는 바람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한참 고민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형, 나도 좋은 마음에 귀띔하는 거잖아. 사실 가끔은 숨길 필요 없어. 형수한테 솔직히 말해.”진화이 볼 때 하연은 상혁에게 완전히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저 일부러 본인의 감정을 외면하고 있을 뿐,“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이 정도 시간은 충분히 기다릴 수 있어.”이 말을 하는 순간 상혁의 눈빛도 부드러워졌다. 심지어 시선을 하연에게 고정한 채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마지막에 함께하는 사람이 하연이라면 조금 늦더라도 상관없어.”진환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환도 사실 하연의 앞에 있을 때만 상혁의 부드러운 모습을 보곤 한다.하지만 감정이라는 건 언제나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컴퓨터 가져왔어?”“차 안에.”“좀 쓰자.”진환은 곧바로 손을 휘휘 저었고, 그걸 본 기사가 차를 몰고 오자 두 사람은 얼른 차에 올랐다.“나 대신 하연이 안전한지 지켜봐 줘.”진환은 알겠다
하연은 어리둥절했다.‘저 사람 누구지?’하연은 왠지 자꾸만 상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특히 남자 몸에서 나는 특유의 은은한 샌달우드 향은 분명 어딘가에서 맡아본 적 있는 것 같았다.‘방금 그 말 대체 무슨 뜻이지?’‘설마 임모연이 보낸 사람인가? 하지만 그렇다기에 상대는 아무런 악의도 없어 보였다.주위를 둘러보던 하연의 머릿속에는 점점 많은 의문이 들어찼다.“형수, 왜 그래요?”진환은 헐레벌떡 달려온 탓에 아직도 헐떡거리고 있었다. 방금 하연이 갑자기 인파 속으로 달려가는 걸 본 진환은 너무 놀라 다급히 차에서 내려 하연을 뒤쫓았다.그러자 하연이 진환의 팔을 꽉 잡으며 물었다.“혹시 어떤 남자 못 봤어요?”그 말에 진환이 오히려 어리둥절했다.“무슨 남자요? 혹시 아까 누가 형수 괴롭혔어요? 말만 해요, 내가 당장 그놈을 잡아 결판낼 테니까...”진환은 당장이라도 쫓아가 싸울 기세로 말했다.그러자 하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방금 이상하게 생긴 남자를 봐서요. 꼭...”하연은 한참 생각했지만 상대의 생김새를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진환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자 하연이 잘못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형수, 한창 걸었는데 힘들지 않아요? 차에서 좀 휴식해요.”하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있다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약 두 걸음 정도 걸었을 때 갑자기 방금 전에 본 남자의 냄새는 전에 F국 주차장에서 저를 구해줬던 그 남자한테서 나는 냄새와 같다는 걸 알아챘다.심지어 체형과 몸매, 그리고 독특한 분위기마저 그때 그 사람과 겹쳐 보였다.‘분명 그 남자야!’하연은 속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이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하연아, 나 뭐 좀 알아냈어.”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하연은 상혁의 말에 눈을 들어 물었다.“뭔데요?”“자, 봐 봐.”상혁은 손에 든 컴퓨터를 하연에게 건넸다.이윽고 화면에 뜬 사진 몇 장에 하연의 눈은 반짝 빛났다.“애가 방금 확인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