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고 상혁은 무의식적으로 하연을 감싸안으며 바닥에 넘어졌다.“범인 잘 잡고 있어. 도망치게 하면 안 돼.”순간 몇몇 경찰들이 대호 곁으로 달려갔지만 대호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물 흐르듯 익숙한 동작으로 수갑을 풀고 불길과 함께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다.폭발음은 일정한 간격으로 몇 번 울리다가 한참 뒤에야 멎었다. 그리고 연기가 자욱한 현장을 본 순간, 하연은 뭔가 알아차린 듯 물었다.“권대호는 어디 갔지?”사람들도 그제야 수갑을 차고 있던 대호가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다.“큰일 났어. 그놈 도망쳤어.”눈앞에서 범인을 놓친 경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이, 상혁은 무전기를 꺼내 차갑게 명령했다.“모든 입구 다 막아서 무조건 잡아.”“네, 도련님.”상혁은 얼른 하연을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여기 모든 입구에 이미 사람 심어 뒀어. 경찰 외에 우리 부씨 가문 사람들도 있어.”그 말을 듣고도 하연은 안심할 수 없었다.“권대호, 이 교활한 자식. 감히 눈앞에서 도망치다니.”“걱정하지 마. 얼마 도망 못 갈거야.절대 빠져나갈 수 없어.”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부씨 집안의 경호원한테서 연락이 왔다.“도련님, 잡았습니다. 역시 도련님 예상대로 놈이 바다에 뛰어들더군요. 다행히 바닷속에도 수색대를 풀어 두어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그 말에 하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조금 전 상황을 생각하니 다시 열이 나 버럭 소리쳤다.“권대호 이 교활하고 간사한 놈. 하지만 아무리 교활해도 뭐 어쩔 거야? 결국 죽게 될 목숨인데. 이래서 항상 뒤를 조심해야 한다는 거야.”얼마 뒤, 하연과 상혁이 해안에 도착해 보니 대호는 온몸이 축축한 채 경찰 두 명에게 압송되고 있었다.하연을 발견한 대호는 자신만만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어진 채 낮게 중얼거렸다.“이번엔 내 실패를 인정하지.”“실패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네가 한 짓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대호는 피식 웃으며 하연을 바라봤다.“최하
상혁은 하연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됐어, 이제 우리도 돌아가자.”B시에 도착하자마자 하연은 하민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최하연, 너 점점 겁이 없어지네. 어떻게 권대호처럼 극악무도한 놈을 혼자서 상대할 수 있어? 이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몰라서 그래?”“오빠, 저 무사하잖아요. 그리고, 상혁 오빠도 있는데 뭘 걱정해요. 권대호가 잡혔으니까 오빠도 이제 걱정하지 마요.”그건 하민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하지만 이렇게 큰일이 있었는데 오빠인 저한테 도움도 안 청한다는 사실에 왠지 질투가 났다.“다음은 없어.”“알았어요.”하연은 연신 약속했다.몇 마디 더 당부한 하민이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최동신이 관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어때? 하연이 괜찮대?”하민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요. 부상혁도 같이 있어 큰 위험은 없었던 것 같아요.”상혁을 언급하자 최동신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하연이 이 녀석, 사람 보는 눈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구나. 그런데 혼약이 있던 나씨 집안이 좀 아쉽긴 한데.”최동신이 이렇게 아쉬워하는 건 그동안 나씨 집안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이다. 만약 두 집안의 혼사까지 이루어 지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텐데, 결혼은 중요한 일이기에 억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할아버지, 하연이 안목 믿어 봐요. 이번에는 우리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하연이만 뭐라 하지 말고, 너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 얼른 손주며느리 데려와 봐.”본인 얘기로 주제가 넘어가자 하민은 대충 얼버무리며 속임수를 썼다.“할아버지, 회사에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저 나가 봐야 해요.”이윽고 최동신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집을 나가버렸다. 최동신은 도망치듯 떠나는 손주의 뒷모습을 보며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자식, 어쩜 연애 얘기만 나오면 저렇게 어리숙하게 굴어? 하유, 됐어. 애들이 알아서 잘하겠지.”...그 뒤로 며칠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새로 지나갔지만, 하
“사장님, 우리...”태훈은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태준의 태도만 봐도 하연과 서준을 접촉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었다.하지만 하연은 피할 수 없는 건 언젠가 마주쳐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가 우아하게 자리에 앉았다.“한 대표님이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주인이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네요.”서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HT 그룹은 지금껏 이 분야에 손 댄 적 없었어. 너와 협력할 생각에 처음 시도한 거니까.”하연은 싱긋 웃으며 물었다.“지금 HT 그룹이 우리 DS 그룹과 손잡고 싶다는 말인가요?”“그런 셈이지. 세부 사항은 이걸 보면서 조율해 봐.”서준은 여유롭게 비서 손에서 서류 하나를 받으며 말했다.그 말에 하연은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아, 혹시 뭐 궁금한 점이라도 있나요?”“이익 분배가 조금 불합리하다고 생각돼서 말이야.”그 말을 들은 태훈이 무의식적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속으로 한서준이 협력할 마음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한 대표님, HT 그룹도 이 업계에서는 햇병아리나 다름없는데 이 정도 이익 배분은 아주 합리하다고 생각되는데요? 혹시 아예 협력할 의사가 없는 건 아닌가요?”태훈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공격적으로 쏘아붙였지만 서준의 시선을 하연에게 돌리며 말했다.“참 똑 부러지는 비서를 뒀네. 이익은 우리 HT 그룹이 너무 많이 차지한 것 같아 불합리하다고 한 거야. 5대 5가 아니라 7대 3으로 하자고, DS 그룹이 7, 우리가 3.”태훈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준을 빤히 바라봤다. 그럴만한 게, 이건 협력이 아니라 돈을 DS 그룹에 가져다 바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2할이나 되는 이익은 시가로 따져도 몇백억이니 말이다.“최하윤 사장님 생각은 어떤가요?”하연은 점점 한서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한 대표님, 이건 사업이 아니라 자선사업인 것 같은데요?”서준은 느긋하게 대답했다.“돈 더 벌게 하려는 것뿐이야. 돌아가서 이사회
“최하연, 잠깐만.”하연은 걸음을 멈추고 귀찮은 듯 물었다.“또 무슨 볼일 있나요?”“최하연, 나...”하지만 서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서준아,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반가운 얼굴로 서준에게 말을 걸던 이수애는 하연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표정이 굳었다.“아들, 너 설마 얘랑 아직도 만나? 엄마가 화병 나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이어지는 이수애의 잔소리에 서준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이건 내 일이니까 참견하지 마세요.”이윽고 하연의 팔을 잡으며 밖으로 끌었다.“우리 가자.”하지만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뒤로 뺐다.“한 대표님, 자중하세요.”이윽고 이수애를 보며 거리감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한 대표님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하연의 도도한 태도를 보자 이수애는 전에 하연에게 못되게 굴어 최씨 가문과 인연이 닿을 기회를 잃었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잘못이니 돌이킬 수도 없었다.다행히 아들이 훌륭한 덕에 아직도 좋아하는 여자가 널리고 널려 최하연이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이렇게 생각한 이수애는 얼른 자기와 함께 식사하러 온 여자를 끌어 서준 앞으로 밀었다.“서준아, 이 아가씨가 바로 내가 저번에 말했던 임모연 씨야. 명문가 출신인 데다 유명한 디자이너래, 너랑 천생연분이야!”이수애는 모연이라는 여자를 소개하면서 턱을 한껏 치켜올렸다. 그 교만한 태도는 마치 하연에게 자기 아들은 아무렇게나 찾아도 너보다 몇백 배 나은 여자를 찾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듯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세요.”서준은 하연이 오해할까 봐 다급히 부인했다.하지만 하연은 여전히 태연한 모습으로 언짢은 기색 하나 없이 뒤돌아 떠나 버렸다.그런데 그때,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모연이 갑자기 하연을 불러 세웠다.“최하연 씨 맞죠? 소문 많이 들었는데, 오늘 보니 역시 명불허전이네요.”모연은 하연에게 걸어가더니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만나서 반가워요. 임모연이
“어머니, 또 무슨 헛소리예요?”서준은 다급히 이수애를 막아 나섰다. 본인의 어머니 하연에 대한 악의가 이토록 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예전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게 또 실감 났다.그에 반해 하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한 대표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그 말을 하고 떠난 하연을 서준은 따라 나가고 싶었지만 이수애가 갑자 그를 잡아끌었다.“아이고, 아들. 나 안 되겠어. 가슴이 갑자기 답답해서 숨이 안 쉬어져...”“어머님, 괜찮으세요?”모연이 다급히 묻자 상황을 본 서준도 얼른 다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래요?”그랬더니 다음 순간, 이수애는 서준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아들, 엄마 말 들어. 절대 최하연 저 계집 건드리지 마. 모연 씨 좀 봐 봐. 얼마나 좋아. 진짜 너와 어울리는 사람은 모연 씨 같은 분이라고.”순간 눈치챈 서준은 눈살을 팍 구기더니 입꼬리를 비틀며 차가운 미소를 지짓더니 이수애를 밀어내며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어머니 진짜 연기 잘하시네요. 전에는 왜 그걸 몰랐을까??”“아들, 왜 그렇게 말해? 서준아...”이수애가 아무리 불러도 서준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하연이 떠나간 방향으로 쫓아갔다.하지만 여전히 한발 늦었다. 서준이 쫓아 나갔을 때 하연의 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차 안에서 하연은 방금 받은 명함을 손에 쥐고 임모연이라는 세 글자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분명 아까 인사할 때도 모연은 다정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곧이어 하연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했다.그리고 얼마 뒤, 전화 건너편에서 여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그래? 나 보고 싶었어?”하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 지었다.“어때? 요즘 바빠?”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여은은 곧바로 하소연했다.“바빠! 아주 요즘 소처럼 일해! 왜? 무슨 일 있어?”이에 하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너한테 사람 하나 알아보려고.”“어떤 대단한 사람이길래
하연은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네가 안 믿을 수도 있지만, 그 여자 오늘 이수애랑 식사하더라. 사이 꽤 좋아 보였어.”“헐, 네 전 시어머니? 설마 한서준과 결혼시키려는 건 아니겠지?”하연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이 대화를 계속하지 않았다.“고마워. 나중에 내가 밥 살게.”“그래. 난 계속 일하러 간다.”전화를 끊은 하연은 명함을 따로 챙겼다. 물론 모연과 교점이 없지만 왠지 또 만날 것 같다는 예감이 어렴풋이 들었으니까.하연의 그런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불과 며칠 만에 예나의 전화를 받게 되었으니까.“하연아, 큰일 났어.”“왜 그래? 천천히 얘기해.”“얼른 인터넷 찾아봐. 누가 실명으로 우리 브랜드숍 대부분 드레스가 표절이라는 제보를 했어. 지금 인터넷 검색어 난리도 아니야.”너무 황당하다는 생각에 하연은 얼른 인터넷을 확인했다.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브랜드숍 이름이 검색어 맨 위에 떡하니 있었고 제목들 뒤에는 모두 표절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띄게 붙어 있었다.워낙 브랜드숍 장사가 잘되고, 팬들도 많은 데다, 단골도 많은지라 실명으로 제보되고 나니 검색어 순위는 좀처럼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헐, 이 브랜드숍 드레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였는데, 표절이라니.][한 벌뿐만 아니라 대부분이래요. 게다가 똑같은 디자이너 작품을 베꼈다고 함. 정말 너무 뻔뻔해.][디자이너가 돼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는 거지? 어쩜 이렇게 양심 없는 짓을 할 수 있어?][오리지널은 영원하고 표절한 사람은 영원히 벌받아야 함. 이 브랜드숍 얼마 못 가 문 닫는다고 봄.]...기사 아래에 쏟아지는 욕설을 보자 하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하연아, 누가 우리 숍에 와서 문 닫으라고, 쇼핑몰에서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쳐.”“우선 조급해하지 말고 먼저 문 닫아.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다급히 대답한 하연은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태훈이 급히 물었다.“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어디 가세요?
“하연아, 이것 봐. 이게 너를 실명 제보한 사람의 트위터 계정이야...”하연은 핸드폰을 받아 들고 트위터에 있는 내용을 확인했다.하연의 브랜드숍을 표절했다고 제보한 사람은 본인의 실명을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 원고와 하연의 숍에서 잘나가는 실제 드레스 몇 벌을 대조하며 하연이 표절했다고 주장했다.화면에 뜬 원고를 본 순간 하연은 믿을 수 없었다.브랜드숍에서 인기 있는 드레스는 모두 하연이 직접 디자인한 것이지 절대로 표절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두 벌은 하연의 졸업 작품이다.“이럴 리 없어... 이건 말도 안 돼.”하연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을 때, 상혁이 부하가 알아낸 소식을 알려주었다.“알아냈어. 표절당했다는 디자이너가 Jion래. 요즘 핫한 디자이너인 데다 국제 디자인 업계에서 발언권도 있는 사람이래. 게다가 방금 인스타에 저작권을 주장했어.”“Jion?”하연은 웃음이 났다.“임모연이 내가 본인 걸 베꼈다고 했다고요? 정말 어이없네.”상혁은 하연에게 iPad를 건넸다. 화면 속에는 모연의 인스타 계정이었는데, 맨 위로 설정한 게시물이 바로 이번 표절 사건에 관한 내용이었다.“하연아, 아직 조급해하지 마. 이 일은 분명 뭔가 수상쩍어, 우리 쪽 사람들 말로는 이번 실검도 누가 돈 들여 조작한 거래, 연속 3일 동안 검색어 1위에서 내려가지 않게 하라고. 내가 우선 모든 실검을 내렸지만 진실은 우리가 끝까지 알아내야 해. 안 그러면...”상혁은 뒷말을 잇지 않았지만 하연은 그 결과를 당연히 알고 있다.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표절은 금기 사항이니까.하연이 만약 자기 결백을 증명하지 못하면 브랜드숍은 영원히 문 닫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하연의 평판도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이번 일 무조건 밝혀내야 해요.”그때 상혁이 가장 중요한 걸 짚어냈다.“문제는 이 작품이 분명 네 작품인데, 상대가 왜 오히려 너를 도둑으로 몰까? 아마 그 키는 상대가 갖고 있을 거야.”하연은 상혁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마치 약속이라도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모연은 천천히 걸어오며 마치 반갑기라도 한 듯 부드럽고도 우호적인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이번에 하연은 절대 모연의 이런 겉모습에 쉽게 속을 리 없다.“임모연 씨, 저한테 뭐 설명할 거 없나요?”그 말에 모연은 피식 소리 내 웃더니 억울하다는 듯 두 손을 편 채 어깨를 으쓱거렸다.“설명? 무슨 설명이요? 여기까지 온 건 나랑 배상에 대해 논의하러 온 게 아니에요? 제 작품을 그렇게나 많이 표절했으면서 그동안 그거로 수입이 꽤 짭짤했겠어요.”“전에 가게 매출 괜찮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 배상은 문제없죠? 아니면 배상으로 끝나지 않고 법률적 절차를 밟고 싶나? 그렇다면 뭐 끝까지 싸워 드리죠.”“...”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마치 진짜인 것처럼 줄줄 말하는 모연을 하연은 싸늘하게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전 표절한 적 없어요.”하연이 짤막한 한마디로 제 태도를 표명하자 모연은 씩 웃었다.“그 말을 누가 믿어요? 사실이 눈앞에 있는데, 아직도 발뺌할 생각인가요?”“진실이 무엇인지는 잘 알 텐데? 그런데 좀 궁금하네요, 그 원고는 대체 어디서 났어요?”모연은 깊은숨을 내쉬었다.“최하연 씨, 표절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뭐 하러 쓸데없는 변명을 해요? 원고는 당연히 제가 그린 거죠. 그것도 최하연 씨보다 훨씬 전에.”“그럴 리 없어요.”“최하연 씨는 참 포기를 모르네요? 끝까지 가보자는 거예요? 뭐, 괜찮아요. 증거는 언제든 내놓을 수 있으니까.”모연은 말이 끝나자마자 부하를 시켜 본인이 디자인한 원고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확인해 본 결과, 그 디자인은 하연의 디자인과 싱크로율이 90퍼센트에 달했다.게다가 디자인 마감일은 모두 7년 전으로 되어 있고, 종이 역시 시간이 꽤 오래 지난 것처럼 보였다.“잘 봤죠? 최하연 씨?”하연은 너무 믿을 수 없어 그대로 굳어버렸다.‘이, 이럴 수가?’그때 모연이 말을 이었다.“최하연 씨, 이 얘기는 이만하고 배상 건에 대해서 예기합시다. 그래도 합의 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