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대호는 펜치를 내려놓고 날카로운 칼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이게 뭔 줄 알아?”끝이 뾰족한 칼을 보자 하연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대호가 바로 말을 이었다.“이건 장기 털 때 사용하는 거야...”“읍.”그 말을 듣자 하연은 끝내 참지 못하고 구역질해 댔다.그걸 본 대호는 더 광기 서린 웃음을 터뜨렸다.“최하연, 이건 에피타이저에 불과한데 벌써 괴로워하면 어떡해? 오늘 네 제삿날이니 이따 저승사자 만나면 날 탓하지 마.”대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손짓했고, 그걸 본 부하들은 이내 하연에게 달려들었다.그때, 상혁이 하연 앞에 막아서며 팔을 움직였다.음산한 상혁의 눈빛은 마치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잡아 삼킬 둣 섬뜩하고 무서웠다.그 눈빛에 놈들은 흠칫 놀라 그 자리에 서서 좀처럼 움직이질 못했다.“쓸모없는 것들! 멍하니 서서 뭐 해? 당장 덤비지 않고.”대호의 소리는 놈들은 내심 겁이 나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달려들었다.하지만 상혁이 눈 깜짝할 새에 놈의 가슴을 차버렸고, 다음 순간 놈 하나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대호도 이토록 무서운 기세를 내뿜고 발길질 한 번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사람은 처음 보는지라 잔뜩 경계했다.“당신 누구야?”“알 거 없어.”그때 하연이 앞으로 나서며 싸늘하게 말했다.“권대호, 정말 우리가 아무 준비도 없이 달랑 셋만 왔을 것 같아?”그 말에 대호는 피식 웃으며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 우리 최하연 아가씨가 평소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닌다는 걸. 그 경호원들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 하나같이 실력이 대단하다면서? 그런데 아쉬워서 어쩌나? 오늘 여기 오지도 못할 텐데.”대호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러니 마음 놓고 있어. 오늘 너 구하러 올 사람은 없을 테니까. 네 옆에 있는 그 남자도 마찬가지야.”“아, 그래? 내기 하나 할까? 난 네가 오늘 죽을 것 같은데?”“목숨 걸자는 건가? 재밌네. 그런데 여기가 누구 구역인지 잊
온도조차 느껴지지 않는 하연의 말에 대호는 몸을 흠칫 떨었다.“최, 최하연 씨, 우리 말로 해요. 칼 휘두르는 건 좀 아니지...”하지만 하연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대호의 옷을 칼로 찢어 살에 칼날을 댔다.“무슨 얘기? 네 놈한테 당한 피해자들한테 말할 기회는 줬고?”“대호 형님 당장 풀어줘. 그러면 너희들 살려는 줄게.”그때 대호의 부하 하나가 하연을 향해 소리쳤고, 그 말에 하연은 냉소를 머금은 채 대호에게 말했다.“저놈들 다 물러나게 해. 안 그러면 내가 어떻게 나올지 나도 모르겠으니까.”하연이 농담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낀 대호는 얼른 엄숙한 표정으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물러나!”그 말에 놈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대호와 가까이 서 있던 하연은 모공까지 보이는 대호의 얼굴을 보더니 눈을 가늘게 접었다.“지난번 봤을 때가 변장한 거고, 이번이 진짜 모습이네. 맞지?”하연이 자기 비밀을 이토록 쉽게 간파할 줄 몰랐던 대호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했다.“그렇다면 뭐? 오늘 나를 잡아 죽인다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가?”“너무 순진하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목숨 내놓고 이 일 하는 거라 뒤에 어떤 게 어떤 게 숨어 있는지 보통 사람들은 몰라.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은 건드리면 안 돼, 나중에 가서 내가 경고하지 않았다고 울지나 말고.”대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하연을 협박하고 있었다.그 경고를 하연도 모를 리는 없다.하지만 이 일은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다.놈들을 완전히 처단하지 못한다 해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놈들이 더 많은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B시에서 나를 잡는다고 무슨 소용 있어? 이 나라 법이 나한테도 적용될 것 같아? 결국 나를 다시 F국으로 보내야 한다고. 그사이 내가 도망가지 못할 것 같아?”하연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 F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고 상혁은 무의식적으로 하연을 감싸안으며 바닥에 넘어졌다.“범인 잘 잡고 있어. 도망치게 하면 안 돼.”순간 몇몇 경찰들이 대호 곁으로 달려갔지만 대호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물 흐르듯 익숙한 동작으로 수갑을 풀고 불길과 함께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다.폭발음은 일정한 간격으로 몇 번 울리다가 한참 뒤에야 멎었다. 그리고 연기가 자욱한 현장을 본 순간, 하연은 뭔가 알아차린 듯 물었다.“권대호는 어디 갔지?”사람들도 그제야 수갑을 차고 있던 대호가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다.“큰일 났어. 그놈 도망쳤어.”눈앞에서 범인을 놓친 경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이, 상혁은 무전기를 꺼내 차갑게 명령했다.“모든 입구 다 막아서 무조건 잡아.”“네, 도련님.”상혁은 얼른 하연을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여기 모든 입구에 이미 사람 심어 뒀어. 경찰 외에 우리 부씨 가문 사람들도 있어.”그 말을 듣고도 하연은 안심할 수 없었다.“권대호, 이 교활한 자식. 감히 눈앞에서 도망치다니.”“걱정하지 마. 얼마 도망 못 갈거야.절대 빠져나갈 수 없어.”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부씨 집안의 경호원한테서 연락이 왔다.“도련님, 잡았습니다. 역시 도련님 예상대로 놈이 바다에 뛰어들더군요. 다행히 바닷속에도 수색대를 풀어 두어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그 말에 하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조금 전 상황을 생각하니 다시 열이 나 버럭 소리쳤다.“권대호 이 교활하고 간사한 놈. 하지만 아무리 교활해도 뭐 어쩔 거야? 결국 죽게 될 목숨인데. 이래서 항상 뒤를 조심해야 한다는 거야.”얼마 뒤, 하연과 상혁이 해안에 도착해 보니 대호는 온몸이 축축한 채 경찰 두 명에게 압송되고 있었다.하연을 발견한 대호는 자신만만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어진 채 낮게 중얼거렸다.“이번엔 내 실패를 인정하지.”“실패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네가 한 짓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대호는 피식 웃으며 하연을 바라봤다.“최하
상혁은 하연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됐어, 이제 우리도 돌아가자.”B시에 도착하자마자 하연은 하민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최하연, 너 점점 겁이 없어지네. 어떻게 권대호처럼 극악무도한 놈을 혼자서 상대할 수 있어? 이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몰라서 그래?”“오빠, 저 무사하잖아요. 그리고, 상혁 오빠도 있는데 뭘 걱정해요. 권대호가 잡혔으니까 오빠도 이제 걱정하지 마요.”그건 하민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하지만 이렇게 큰일이 있었는데 오빠인 저한테 도움도 안 청한다는 사실에 왠지 질투가 났다.“다음은 없어.”“알았어요.”하연은 연신 약속했다.몇 마디 더 당부한 하민이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최동신이 관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어때? 하연이 괜찮대?”하민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요. 부상혁도 같이 있어 큰 위험은 없었던 것 같아요.”상혁을 언급하자 최동신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하연이 이 녀석, 사람 보는 눈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구나. 그런데 혼약이 있던 나씨 집안이 좀 아쉽긴 한데.”최동신이 이렇게 아쉬워하는 건 그동안 나씨 집안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이다. 만약 두 집안의 혼사까지 이루어 지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텐데, 결혼은 중요한 일이기에 억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할아버지, 하연이 안목 믿어 봐요. 이번에는 우리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하연이만 뭐라 하지 말고, 너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 얼른 손주며느리 데려와 봐.”본인 얘기로 주제가 넘어가자 하민은 대충 얼버무리며 속임수를 썼다.“할아버지, 회사에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저 나가 봐야 해요.”이윽고 최동신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집을 나가버렸다. 최동신은 도망치듯 떠나는 손주의 뒷모습을 보며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자식, 어쩜 연애 얘기만 나오면 저렇게 어리숙하게 굴어? 하유, 됐어. 애들이 알아서 잘하겠지.”...그 뒤로 며칠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새로 지나갔지만, 하
“사장님, 우리...”태훈은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태준의 태도만 봐도 하연과 서준을 접촉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었다.하지만 하연은 피할 수 없는 건 언젠가 마주쳐야 한다는 걸 알았기에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가 우아하게 자리에 앉았다.“한 대표님이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주인이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네요.”서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HT 그룹은 지금껏 이 분야에 손 댄 적 없었어. 너와 협력할 생각에 처음 시도한 거니까.”하연은 싱긋 웃으며 물었다.“지금 HT 그룹이 우리 DS 그룹과 손잡고 싶다는 말인가요?”“그런 셈이지. 세부 사항은 이걸 보면서 조율해 봐.”서준은 여유롭게 비서 손에서 서류 하나를 받으며 말했다.그 말에 하연은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아, 혹시 뭐 궁금한 점이라도 있나요?”“이익 분배가 조금 불합리하다고 생각돼서 말이야.”그 말을 들은 태훈이 무의식적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속으로 한서준이 협력할 마음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한 대표님, HT 그룹도 이 업계에서는 햇병아리나 다름없는데 이 정도 이익 배분은 아주 합리하다고 생각되는데요? 혹시 아예 협력할 의사가 없는 건 아닌가요?”태훈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공격적으로 쏘아붙였지만 서준의 시선을 하연에게 돌리며 말했다.“참 똑 부러지는 비서를 뒀네. 이익은 우리 HT 그룹이 너무 많이 차지한 것 같아 불합리하다고 한 거야. 5대 5가 아니라 7대 3으로 하자고, DS 그룹이 7, 우리가 3.”태훈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준을 빤히 바라봤다. 그럴만한 게, 이건 협력이 아니라 돈을 DS 그룹에 가져다 바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2할이나 되는 이익은 시가로 따져도 몇백억이니 말이다.“최하윤 사장님 생각은 어떤가요?”하연은 점점 한서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한 대표님, 이건 사업이 아니라 자선사업인 것 같은데요?”서준은 느긋하게 대답했다.“돈 더 벌게 하려는 것뿐이야. 돌아가서 이사회
“최하연, 잠깐만.”하연은 걸음을 멈추고 귀찮은 듯 물었다.“또 무슨 볼일 있나요?”“최하연, 나...”하지만 서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서준아,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반가운 얼굴로 서준에게 말을 걸던 이수애는 하연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표정이 굳었다.“아들, 너 설마 얘랑 아직도 만나? 엄마가 화병 나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이어지는 이수애의 잔소리에 서준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이건 내 일이니까 참견하지 마세요.”이윽고 하연의 팔을 잡으며 밖으로 끌었다.“우리 가자.”하지만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뒤로 뺐다.“한 대표님, 자중하세요.”이윽고 이수애를 보며 거리감 느껴지는 말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한 대표님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하연의 도도한 태도를 보자 이수애는 전에 하연에게 못되게 굴어 최씨 가문과 인연이 닿을 기회를 잃었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잘못이니 돌이킬 수도 없었다.다행히 아들이 훌륭한 덕에 아직도 좋아하는 여자가 널리고 널려 최하연이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이렇게 생각한 이수애는 얼른 자기와 함께 식사하러 온 여자를 끌어 서준 앞으로 밀었다.“서준아, 이 아가씨가 바로 내가 저번에 말했던 임모연 씨야. 명문가 출신인 데다 유명한 디자이너래, 너랑 천생연분이야!”이수애는 모연이라는 여자를 소개하면서 턱을 한껏 치켜올렸다. 그 교만한 태도는 마치 하연에게 자기 아들은 아무렇게나 찾아도 너보다 몇백 배 나은 여자를 찾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듯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세요.”서준은 하연이 오해할까 봐 다급히 부인했다.하지만 하연은 여전히 태연한 모습으로 언짢은 기색 하나 없이 뒤돌아 떠나 버렸다.그런데 그때,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모연이 갑자기 하연을 불러 세웠다.“최하연 씨 맞죠? 소문 많이 들었는데, 오늘 보니 역시 명불허전이네요.”모연은 하연에게 걸어가더니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만나서 반가워요. 임모연이
“어머니, 또 무슨 헛소리예요?”서준은 다급히 이수애를 막아 나섰다. 본인의 어머니 하연에 대한 악의가 이토록 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예전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게 또 실감 났다.그에 반해 하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한 대표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그 말을 하고 떠난 하연을 서준은 따라 나가고 싶었지만 이수애가 갑자 그를 잡아끌었다.“아이고, 아들. 나 안 되겠어. 가슴이 갑자기 답답해서 숨이 안 쉬어져...”“어머님, 괜찮으세요?”모연이 다급히 묻자 상황을 본 서준도 얼른 다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래요?”그랬더니 다음 순간, 이수애는 서준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아들, 엄마 말 들어. 절대 최하연 저 계집 건드리지 마. 모연 씨 좀 봐 봐. 얼마나 좋아. 진짜 너와 어울리는 사람은 모연 씨 같은 분이라고.”순간 눈치챈 서준은 눈살을 팍 구기더니 입꼬리를 비틀며 차가운 미소를 지짓더니 이수애를 밀어내며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어머니 진짜 연기 잘하시네요. 전에는 왜 그걸 몰랐을까??”“아들, 왜 그렇게 말해? 서준아...”이수애가 아무리 불러도 서준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하연이 떠나간 방향으로 쫓아갔다.하지만 여전히 한발 늦었다. 서준이 쫓아 나갔을 때 하연의 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차 안에서 하연은 방금 받은 명함을 손에 쥐고 임모연이라는 세 글자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분명 아까 인사할 때도 모연은 다정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곧이어 하연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했다.그리고 얼마 뒤, 전화 건너편에서 여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그래? 나 보고 싶었어?”하연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 지었다.“어때? 요즘 바빠?”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여은은 곧바로 하소연했다.“바빠! 아주 요즘 소처럼 일해! 왜? 무슨 일 있어?”이에 하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너한테 사람 하나 알아보려고.”“어떤 대단한 사람이길래
하연은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네가 안 믿을 수도 있지만, 그 여자 오늘 이수애랑 식사하더라. 사이 꽤 좋아 보였어.”“헐, 네 전 시어머니? 설마 한서준과 결혼시키려는 건 아니겠지?”하연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이 대화를 계속하지 않았다.“고마워. 나중에 내가 밥 살게.”“그래. 난 계속 일하러 간다.”전화를 끊은 하연은 명함을 따로 챙겼다. 물론 모연과 교점이 없지만 왠지 또 만날 것 같다는 예감이 어렴풋이 들었으니까.하연의 그런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불과 며칠 만에 예나의 전화를 받게 되었으니까.“하연아, 큰일 났어.”“왜 그래? 천천히 얘기해.”“얼른 인터넷 찾아봐. 누가 실명으로 우리 브랜드숍 대부분 드레스가 표절이라는 제보를 했어. 지금 인터넷 검색어 난리도 아니야.”너무 황당하다는 생각에 하연은 얼른 인터넷을 확인했다.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브랜드숍 이름이 검색어 맨 위에 떡하니 있었고 제목들 뒤에는 모두 표절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띄게 붙어 있었다.워낙 브랜드숍 장사가 잘되고, 팬들도 많은 데다, 단골도 많은지라 실명으로 제보되고 나니 검색어 순위는 좀처럼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헐, 이 브랜드숍 드레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였는데, 표절이라니.][한 벌뿐만 아니라 대부분이래요. 게다가 똑같은 디자이너 작품을 베꼈다고 함. 정말 너무 뻔뻔해.][디자이너가 돼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니는 거지? 어쩜 이렇게 양심 없는 짓을 할 수 있어?][오리지널은 영원하고 표절한 사람은 영원히 벌받아야 함. 이 브랜드숍 얼마 못 가 문 닫는다고 봄.]...기사 아래에 쏟아지는 욕설을 보자 하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하연아, 누가 우리 숍에 와서 문 닫으라고, 쇼핑몰에서 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쳐.”“우선 조급해하지 말고 먼저 문 닫아.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다급히 대답한 하연은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태훈이 급히 물었다.“대표님, 무슨 일입니까? 어디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