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충격을 받았을 거다 판단된 하연은 그제야 태훈에게 그만하라는 눈치를 주더니 침착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아직 반년이나 남았는데 다들 그렇게 급해 마세요. 기한이 되면 모든 게 일단락될 거고, 승자가 누구인지도 자연스레 알리겠죠.”호현욱도 그 말에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최 사장님 말이 맞아요. 모든 게 아직 정해진 게 아니니 우리 최 사장님 좋은 소식을 기다리자고요.”이사진은 하연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호현욱이 이렇게 말하자 하나둘 맞장구쳤다.“그럼 최 사장님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최 사장님이 우리를 실망하게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하지만 정말 지면 결과에 승복하고 빨리 자리에서 물러나셔야 합니다.”“...”하연은 주위를 빙 둘러봤다. 요즘 이사회 분위기가 안 좋고 이사진 대부분이 호현욱을 필두로 하고 있다는 걸 하연도 알고 있다.때문에 이사회를 잘 정리하려면 맨 먼저 호현욱부터 잘라내야 한다.회의가 끝나고 하연이 회의실을 나서자 사람들은 모두 호현욱을 둘러쌌다.“호 이사님, 최 사장이 자신만만해 보이는데, 우리 이러다 지는 거 아닙니까?”“그러게 말이에요. 지금 다들 호 이사님을 따르는데, 만약 이사님이 물러나면 앞으로 우리도 처지도 곤란해집니다.”“뭐가 됐든, 절대 저 계집한테 져서 체면 깎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사람들은 모두 한마디씩 의견을 얘기했다.애초에 하연이 DS 그룹에 들어온 순간부터 대부분 이사진은 호현욱의 편에 섰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하연이 너무 어려 관리 경험이 없다는 거였다.하지만 고작 반년 사이에 이런 실적을 냈으니, 판도가 바뀌어 하연이 이길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그리고 만약 정말 하연이 이긴다면, 호현욱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을 테고.“호 이사님, 방법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정 안 되면 특별한 수단이라도 써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최씨 집안 사람들을 이사회에서 쫓아내기만 하면 DS 그룹은 이사
“요즘 협상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 서류 나한테 가져와.”태훈은 여전히 태연하게 행동하는 하연을 보자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네, 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그리고 얼마 뒤, 서류 한 뭉치를 안고 다시 돌아왔다.이윽고 최근에 협상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만 골라 하연에게 건넸다.“사장님, 이 몇 개 프로젝트가 괜찮으니 한번 확인해 보세요.”“어, 거기 둬.”하연은 서류를 건네받고 내친김에 확인해 보더니 얼마 뒤 손가락으로 프로젝트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인수합병 건이 협상할 여지가 있어 보이네...”태훈도 사실 이 프로젝트를 눈여겨봤었다.“이건 프로젝트팀 피드백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공장들 모두 섬에 있어 협력하기로 하시면 현지 조사는 섬에 가서 하셔야 할 겁니다.”하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섬이 어딘데?”“서해안에서 약 300킬로미터 떨어진 오하우섬입니다. 현지 조사도 배를 타고 해야 하고 왕복 2, 3일 정도 걸립니다.”“프로젝트팀에 준비하라고 일러둬. 때가 되면 현지 조사도 나갈 거야.”“네, 사장님.”“...”그 시각, DS 그룹 대문 앞에 몰려 있는 무리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대철 형님, 들어갈까요?”“쓸데없는 소리. 안 들어갈 거면 여기까지 왜 왔겠어?”대철은 으리으리한 건물을 보자 왠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가 이런 건물 하나 딱 있으면 진짜 굉장했을 텐데.”“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보스한테 말씀드려 우리 사무실도 한자리 내달라고 할까요?”대철은 인정사정없이 민석의 머리를 내리쳤다.“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한테 그런 대우가 가당키나 해?”그 말에 민석은 머리를 감싸 쥐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대철 형님, 농담이잖아요.”하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철의 다른 부하 윤규가 DS 그룹에서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대철 형님, 안내 데스크 직원이 그러는데 보스를 만나려면 예약이 필요하다는데요.”그 순간 대철은 버럭 화를 내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쓸모없는 것! 우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내지른 소리에 깜짝 놀란 하연은 사무실로 들어오는 대철 일행을 의아한 듯 바라봤다.“곽대철 씨, 이게 무슨 상황이죠?”대철은 제 배를 툭툭 치며 소파에 앉았다.“제가 애들 데리고 보스 보러 왔어요.”“...”“아무 일 없이 올 사람들이 아닐 텐데. 말해요, 무슨 일이에요?”하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대철은 이내 하연의 옆에 바싹 붙어 아부하는 얼굴로 대답했다.“역시 보스. 똑똑하십니다. 사실 제가 요즘 바둑을 연구하다가 새로운 방법을 터득해 한번 겨뤄보자고 찾아왔습니다.”하연은 그 말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고작 이것 때문에 왔다고요?”대철은 고개를 끄덕였다.지난번에 하연과의 대결에서 완전히 패하고 난 뒤, 대철은 하연을 이기겠다는 일념 하나로 집에서 숱한 연습을 해 왔다. 그러다 이렇게 다시 겨루려고 찾아온 거고.“보스,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하연을 간절히 바라보는 대철의 표정만 보면 아무도 그가 조폭 두목이라는 걸 짐작하지 못할 거다. 그저 바둑에 미친 사람이라고 보면 모를까.하지만 하연은 그런 대철을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시간 없어요. 프로젝트 때문에 섬에 현장 조사 가야 해서.”그 말에 실망한 대철은 어깨가 축 처져 버렸다.그 표정을 본 하연은 얼른 말을 보충했다.“오하우섬에 갔다 올 거라 사흘 정도면 돌아와요. 얼마 안 걸리니까 그동안 혼자 더 연구해 봐요.”“보스, 왠지 악의가 느껴지는데요.”대철의 화가 난 듯한 말투에 하연은 싱긋 웃으며 격려했다.“다음번에 더 정진한 모습 기대할게요.”“...”그 말을 끝으로 하연이 다시 일에 매진하자 대철도 더 이상 방해할 수 없어 인사만 하고 부하들을 데리고 떠났다.그러다 사무실을 빠져나간 뒤, 그제야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잠깐, 아까 어디 간다고 했지?”“오하우섬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대철 형님, 거긴 우리가 얼마 전에 외국 사람한테 판 섬 아닙니까? 보스는 왜 거길 간대요?”대철은 의아한 듯 하연의 사무실 쪽을 바라보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이내 관심을 보였다.“자네한테 언제부터 보스가 있었다고 그래?”“비밀이야.”대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그 대화가 끝나자 옆에 있던 민석이 다급한 듯 말을 잘랐다.“대철 형님, 보스가 위험합니다.”그 말에 대철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소리야? 보스가 위험하다니?”“우리 쪽 애들이 오하우섬을 조사해 봤는데, 그 섬은 외부 신호를 모두 차단했답니다. 그리고 오하우섬을 사들인 사람이 인신매매범이래요.”“뭐?”대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얼른 핸드폰 가져와.”말을 마친 대철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하연에게 전화했다.한편, 회사 일을 마친 하연은 엘리베이터를 나오자마자 이상한 그림자가 주차장을 언뜻거리는 걸 느꼈다.이에 잔뜩 경계한 채 차 쪽으로 걸어갔더니, 다음 순간 익숙한 롤스로이스 팬텀이 깜빡이를 켠 채 서 있다가 문이 열리며 상혁이 차에서 내렸다.“하연아.”하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상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상혁 오빠, 여긴 어쩐 일이에요?”하연에게 다가간 상혁은 하연의 피곤한 얼굴을 보자 얼른 손을 꼭 잡았다.그때 하연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상혁 오빠, 저 전화 좀 받을게요.”전화 건너편에서 뭐라고 말했는지 하연의 눈이 점점 어두워졌고, 전화를 끊자마자 상혁 역시 이상함을 느껴 걱정스레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아니에요, 걱정할 거 없어요.”하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상혁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하연아,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 우리 사이에 숨기지 말고.”상혁의 진지한 눈을 본 순간 하연은 입을 오므리고 있다가 다시 열었다.“우선 차에 가서 말할게요.”상혁은 하연의 손을 잡은 채 차에 올랐다.그리고 차에 타자마자 하연은 F국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털어 놓았고, 상혁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보아하니 너를 겨냥한 것 같아.”하연은 입꼬리만 말아 올린 채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권대호가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했
태훈은 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사장님, 이 배는 15분 뒤에 출발한답니다. 하지만 현재 표 3장밖에 구입하지 못해 나머지 경호원들은 다음 배를 타야 할 것 같습니다.”“다음 배는 얼마나 걸리는데?”“1시간 뒤에 있습니다.”하연은 태훈의 손에 든 차표를 받아 들었다.“괜찮아, 우리가 먼저 가면 돼. 현지 조사일 뿐이니 별문제 없을 거야.”“하지만 큰 도련님이 그러셨는데, 사장님이 가시는 곳마다 무조건 경호원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고 했습니다.”태훈은 솔직히 걱정됐다. 어찌 됐든 목적지는 섬인데, 만약 하연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안 되니까.잠깐 망설이는 사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상혁이 하연을 향해 걸어왔고, 하연은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상혁 오빠, 여기요.”상혁을 이런 데서 만나자 태훈은 좀 의외였지만 한편으로 감탄했다.“두 분 사이 정말 좋으시네요.”그와 동시에 잔뜩 졸이고 있던 마음도 어느 정도 편해졌다.상혁도 있으니 하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다.세 사람은 곧장 배에 올라탔다. 거의 배탈 일이 없었던 하연은 내내 몸이 불편했지만 다행히 1시간 뒤에 배는 목적지인 오하우섬에 도착했다.하지만 배에 꽉 차 있던 승객들 중, 오하우섬에서 내리는 사람은 고작 셋뿐이었다.세 사람은 부목 끝까지 걸어가 겨우 섬에 도착했다.“이상하다? 왜 신호가 안 잡히지?”하지만 섬에 도착한 태훈이 핸드폰을 마구 흔들어 댔지만 신호가 한 칸도 잡히지 않았다.하연과 상혁은 그 사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상혁의 눈빛을 받으며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섬에 들어섰다.상대 회사 측 대표는 아니나 다를까 진작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최 사장님, 여깁니다.”태훈은 다급하게 다가가 상대와 인사를 하고 명함을 교환했다.“저희는 DS 그룹에서 귀사 공장을 조사하러 왔습니다.”상대는 태훈을 흘긋 보다가 이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연을 보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
하연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울부짖는 놈들을 내려다보며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직접 갈 테니 몸에 손댈 필요 없어.”놈들은 어안이 벙벙해 넋을 잃었다.대호의 명령대로 하연을 묶어 가야 하는데 지금은 털끝 하나 다치지 못하고 있으니.상혁의 실력을 느낀 놈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기어 일어나 묶고 가는 건 포기했다.“그럼 따라와.”하지만 오만한 태도로 말하는 건 여전했다.이윽고 먼저 앞에서 걸으며 하연에게 길을 안내했다.그때 커다란 손이 하연을 꼭 잡아 주었고, 그 온기를 느끼자 하연은 고개를 돌려 상혁을 바라봤다.그리고 그 순간, 분명 위험한 상황인데도 왠지 모르게 안심됐다.상혁과 하연은 손을 꼭 잡고 나란히 놈을 뒤따랐다.섬의 날씨는 매우 나빴다. 먹구름이 가득 껴 해를 가린 탓에 스산한 기우마저 느껴졌다.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하연은 왠지 갔던 길을 빙빙 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옆에 있던 상혁도 내내 관찰하더니 뭔가 눈치챈 듯 하연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이놈들 지금 진을 치고 있어. 팔괘진.”하연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런 걸 하는 사람이 있다니.“이 진법은 어렵지 않아. 하지만 실수로 잘못 들어서면 2, 3일 동안 나갈 수 없어.”하연은 눈빛이 어두워졌다. ‘권대호가 이런 것도 알고 있다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까다로운 상대네.’“서둘러. 어물쩍거리지 말고.”맨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놈 하나가 화가 난 듯 눈을 부라리며 소리지자 하연과 상혁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얼른 뒤따랐다.그러던 끝에 진법을 지나 웬 낡고 허름한 집에 도착했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놈이 돌기둥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철문이 천천히 열리며 좁고 어두운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바싹 따라붙어. 떨어지지 말고.”일행은 등불을 따라 몇십 미터 걸었다.그러다 한참 뒤, 익숙한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들려왔다.“최하연 씨, 오랜만이네요.”하연은 소리가 난 곳으로 걸어갔다.그랬더니 웬 낯선 얼굴이 눈에 들
“권대호, 경고하는데 순순히 가서 네놈 죄를 자수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네가 납치한 부녀와 아이들 당장 풀어줘. 안 그러면 천 번을 죽어도 그 죄를 다 갚지 못할 테니까.”그 말에 대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자수? 내가 평생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웃겼어.”이윽고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표정이 싹 바뀌더니 하연의 턱을 잡았다.“최씨 가문에서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 이제 더는 F국에서 지낼 수 없게 됐어. 이 목숨도 하마터면 잃을 뻔했다고. 너희들이 내 살길을 끊으려 하는데, 나라고 너희를 살려둘 이유가...”대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상혁이 대호의 팔을 세게 내리쳤다.순간 저릿한 통증이 밀려오자 대호는 그 고통에 힘이 빠져 손을 풀었다.곧이어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팔에서 전해지는 저릿한 통증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자 대호는 싸늘한 눈빛으로 상혁을 바라봤다.“나한테 뭔 짓 했어?”상혁은 어두운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아무 짓도 안 했어. 네놈 팔 신경을 건드렸을 뿐이야. 하지만 걱정 마, 별문제는 없어. 몇 분 동안 저릿한 느낌이 있는 것 말고는.”그 말에 대호는 화가 난 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상대가 고작 한 대 쳤을 뿐인데 힘이 빠지면서 팔이 이토록 아프기는 처음이었다.“당신 누구야?”대호는 이를 악물며 상혁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상혁은 그런 대호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네놈은 알 자격 없어.”그 말에 대호는 완전히 폭발했다.“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 내가 오늘 너희 둘 껍질을 발라 버릴 수도 있어.”대호의 눈빛은 음침하고 무서웠으며, 말조차 사람을 오금 저리게 했다.“J국 쪽에 마침 신선한 장기가 필요하다던데, 너희들 것까지 보태면 좋은 가격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그 말을 듣는 순간 하연의 낯빛은 어두워졌다.“인신매매만 하는 게 아니었네...”주먹을 꽉 쥔 하연은 억울하게 희생한 피해자를 생각하자 화가 나 버럭 소리쳤다.
말을 마친 대호는 펜치를 내려놓고 날카로운 칼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이게 뭔 줄 알아?”끝이 뾰족한 칼을 보자 하연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대호가 바로 말을 이었다.“이건 장기 털 때 사용하는 거야...”“읍.”그 말을 듣자 하연은 끝내 참지 못하고 구역질해 댔다.그걸 본 대호는 더 광기 서린 웃음을 터뜨렸다.“최하연, 이건 에피타이저에 불과한데 벌써 괴로워하면 어떡해? 오늘 네 제삿날이니 이따 저승사자 만나면 날 탓하지 마.”대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손짓했고, 그걸 본 부하들은 이내 하연에게 달려들었다.그때, 상혁이 하연 앞에 막아서며 팔을 움직였다.음산한 상혁의 눈빛은 마치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잡아 삼킬 둣 섬뜩하고 무서웠다.그 눈빛에 놈들은 흠칫 놀라 그 자리에 서서 좀처럼 움직이질 못했다.“쓸모없는 것들! 멍하니 서서 뭐 해? 당장 덤비지 않고.”대호의 소리는 놈들은 내심 겁이 나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달려들었다.하지만 상혁이 눈 깜짝할 새에 놈의 가슴을 차버렸고, 다음 순간 놈 하나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대호도 이토록 무서운 기세를 내뿜고 발길질 한 번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사람은 처음 보는지라 잔뜩 경계했다.“당신 누구야?”“알 거 없어.”그때 하연이 앞으로 나서며 싸늘하게 말했다.“권대호, 정말 우리가 아무 준비도 없이 달랑 셋만 왔을 것 같아?”그 말에 대호는 피식 웃으며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 우리 최하연 아가씨가 평소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닌다는 걸. 그 경호원들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 하나같이 실력이 대단하다면서? 그런데 아쉬워서 어쩌나? 오늘 여기 오지도 못할 텐데.”대호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러니 마음 놓고 있어. 오늘 너 구하러 올 사람은 없을 테니까. 네 옆에 있는 그 남자도 마찬가지야.”“아, 그래? 내기 하나 할까? 난 네가 오늘 죽을 것 같은데?”“목숨 걸자는 건가? 재밌네. 그런데 여기가 누구 구역인지 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