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의 빨간 차가 어느새 경호원들에게 잡힌 모양이었다.차창을 내리자 경호원 한 명이 다가와 보고했다.“아가씨, 범인은 이미 잡혔습니다.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차 문을 열고 내린 하연은 단번에 운전석에 앉아서 떨고 있는 연희를 발견했다.하연을 발견한 연희는 찔리기라도 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최... 최하연.”하연은 콧방귀를 뀌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연희의 뺨을 후려갈겼다.“송연희,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센 충격에 하연은 고개가 돌아갔지만 그렇다고 반박할 배짱은 없었다.그저 충동적으로 하연을 차로 쳐 죽일 생각만 했지 최씨 집안 경호원이 이토록 강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고작 3킬로미터도 가지 못해 잡히다니.“최하연, 아까 널 쳐 죽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야.”하연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너 따귀가 감히? 송연희, 너 이거 살인미수야. 이것만 해도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해줄 수 있어.”여기까지 말한 하연은 잠깐 멈추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내가 3일 내로 미래 테크놀로지 파산시키고, 5일 내로 인수해 줄게.”말을 마친 하연이 돌아서자 연희는 그제야 애원하기 시작했다.“최하연, 복수하려면 나한테 해, 미래 테크놀로지 건드리지 마...”하지만 연희가 아무리 소리치고 애원해도 하연은 듣는 체도 하지 않고 차에 올라 훌쩍 떠나버렸다.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미래 테크놀로지는 위기에 직면했다. 전자 제품 문제로 소비자들의 대량 반품 운동이 벌어졌고, 곧이어 주식도 곤두박질치며 은행 대출마저 끊겨 단 3일 만에 파산을 맞게 되었다.태훈이 이 소식을 전하러 왔을 때, 하연은 최씨 저택 정원의 그네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마침 하연의 몸에 쏟아져 내린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최 사장님, 미래 테크놀로지는 이미 파산되었습니다.”하연은 아무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가볍게 대답했다.“인수 계획서는 작성했어?”“네, 작성했습니다.”“그럼 인수해. DS 그룹도 마침 전자제품 쪽 산업이
운석은 선유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농담조로 말했다.“그래?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은데?”그 말에 화가 난 선유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운석은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선유를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 동작에 선유는 끝내 폭발했다.“서른 넘는 아저씨가!”“지금 누구더러 서른 넘는다는 거야? 말 제대로 해줄래?”운석도 화가 난 듯 반박했다.겨우 복수한 선유는 혀를 내밀며 약 올리는 표정을 짓고는 얼른 하연을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잔뜩 화난 운석이 뒤쫓았다.“조그만 게 어디서! 눈 똑똑히 뜨고 봐. 내가 어딜 봐서 서른이 넘어?”한 치의 양보도 없이 티격태격 싸우는 두 사람을 보자 하연은 왠지 두 사람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왠지 어울리기까지 했다.그렇게 한참 넋 놓고 있던 그때.“하연아!”조진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의외 인물의 등장에 하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진숙 이모, 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때 조진숙과 함께 나타난 하민철이 먼저 나서서 소개했다.“내가 하연 씨 이모랑 오랜 친구예요.”조진숙도 얼른 말을 이었다.“맞아. 네 민철 아저씨한테서 들었는데 이번에 네 덕분에 선유가 무사할 수 있었다며? 너 아니었으면 정말 큰 일이라도 났을 거야.”“그러니까. 내 딸이지만 선유가 워낙 고집이 센데, 하연 양은 무척 따르더라고. 앞으로 종종 우리 딸 부탁해요.”“그럴게요.”그 뒤로 몇 마디 수다를 떤 뒤, 조진숙이 하연을 잡아당겨 낮은 소리로 물었다.“너 요즘 상혁이랑 어때? 왜 같이 오지 않았어?”하연은 난감한 듯 황급히 설명했다.“이번에 F국에 급하게 들어오느라 상혁 오빠한테는 미처 말하지 못했어요.”조진숙인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도 그럴 게, 젊은 남녀가 이미 한참 동안 붙어 있었는데 아무런 불꽃도 튀지 않으니.물론 하연을 진작 며느리로 점 찍어 뒀다지만 그것도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맞아야지, 만약 이렇게 좋은 며느리를 누가 채가기라도 하면 큰 낭패였다.‘안돼, 방법을 생각해야 해.
[최하연: 특별하고 생각지도 못한 거 뭐 없을까?][최하연: 좋기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거. 좀 추천해 봐.][최하연: ...]메시지를 여러 개 보낸 하연은 계속 기다려도 답장이 없자 얼른 시간을 확인했다.그제야 지금 새벽 2시라는 걸 확인한 하연은 얼른 전화를 내려놨다.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하연은 겨우 답장을 받았다.[서여은: 뭔데 우리 예쁜이가 이렇게 조급해할까?][서여은: 어디 보자. 설마 한서준 때문에 이러는 거야?]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가흔이 그 말에 놀라는 이모티콘을 보내더니 얼른 말을 보탰다.[신가흔: 최하연, 너희 합치기로 했어?][정예나: 아니야! 절대 그럴 리 없어! 한서준 생일 이번 달 아니거든. 오히려 부씨 성을 가진 그분이면 모를까.][신가흔: 오호라! 진도 나갔어?]...하연은 열렬히 토론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다가 얼른 끼어들었다.[최하연: 얘들아, 얼른 아이디어 좀 내주라.][정예나: 네가 뭘 주든 상혁 씨는 좋아할걸. 그런데 네가 직접 만든 거면 더 의미 있긴 하지.][서여은: 나도 찬성. 그런데 뭘 만들 건데? 케익?]하연은 눈을 깜빡이며 고민했다.‘케익? 괜찮은 것 같은데?’결정을 내린 하연은 다급히 핸드폰으로 재료를 구매했고, 반 시간도 안 되는 사이, 주방은 재료들로 가득 찼다.이윽고 핸드폰으로 케익 만드는 방법을 검색해 한 절차씩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동안 실습한 결과, 하연은 다음 날 겨우 케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눈앞에 놓인 정교하고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케익을 보며 하연은 한숨을 푹 쉬었다.“겨우 완성했네.”이윽고 방법대로 케익 박스에 곱게 포장해 문을 나섰다.월요일이라 그런지 FL 그룹 회사는 유독 바삐 돌아갔다. 하연이 도착하자 안내 데스크 직원 신지영은 하연을 한 눈에 알아보고 먼저 인사했다.“최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그에 미소로 화답한 하연은 곧장 VIP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으로 향했다.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순간 하연
하연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에는 분노가 일렁였다. 이윽고 주저하지 않고 뒤돌아 사무실을 나갔다.화난 듯 떠나가는 하연의 뒷모습을 보며 서희는 으쓱한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이윽고 느릿느릿 옷을 정리하고 나서야 대표 사무실에서 천천히 나왔다.그때 지영이 쪼르르 달려와 아부하는 표정으로 물었다.“매니저님, 저 오늘 어땠어요? 괜찮았나요?”서희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칭찬을 투척했다.“정보가 꽤 정확하네. 잘했어. 앞으로 계속 노력해.”“감사합니다, 매니저님.”서희는 아주 대범하게 제 사무실로 돌아와 고급 화장품 세트를 챙겨 지영에게 건네 주었다.“받아.”지영은 그걸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마치 난감하다는 듯 한 번 거절했다.“매니저님, 저 이런 거 못 받아요.”“괜찮아. 작은 선물이니까. 안 받으면 나 무시하는 거야.”“에이, 그럴 리가요.”지영은 기다렸다는 듯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화장품 세트를 받아 챙기더니 최근 들은 소식을 서희한테 알려주었다.“매니저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까 봤는데 최 사장님 이미 회사 떠났어요.”서희는 그 대답에 아주 만족했다.사실 서희도 하연이 왜 이혼했었는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하연이 제삼자와 배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고 있다.그리고 오늘 아침 본 이런 상황은 어떤 여자라도 석연치 않아 할 게 뻔하다.서희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심지어 옆에 있던 지영마저 그 모습에 몸을 흠칫 떨었다.“매니저님, 다른 시키실 일 없으면 전 이만 가볼게요.”“그래. 오늘 일...”“걱정하지 마세요. 제 입 무거워요. 절대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게요.”서희는 그제야 만족한 듯 지영을 보내 주었다.하지만 그 시각 하연이 FL 그룹 사옥을 나온 뒤 바로 떠나지 않았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하연은 입을 오므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솔직히 아까 그 모습은 하연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침대에는 그저 임서희 한 명뿐이었다.‘물어
‘네’라고 낮게 대답한 하연은 그 순간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그로부터 2분도 안 지나 하연은 저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상혁을 발견하였다.심지어 가까이했을 때, 상혁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발견했다.“상혁 오빠,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상혁은 서먹서먹한 하연의 말투에 얼른 하연의 손을 잡고 회사로 걸어갔다.“나한테 왜 그렇게 내외하고 그래? 오고 싶으면 언제든 와. 네가 찾아오는 건 방해가 아니니까.”하연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예쁜 미소를 지었다.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느껴지자 이제야 마음마저 따뜻해졌다.두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1층 로비를 가로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하연은 쑥스럽기는커녕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그렇게 엘리베이터에 도착하자 하연은 그제야 상황을 설명했다.“진숙 이모가 오늘 오빠 생일이라고 해서 왔어요.”상혁은 옆으로 돌아 하연을 바라봤다.“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미리 말하면? 사무실에서 봤던 그 장면 볼 일 없었나?’하연의 기분은 순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하연의 감정 변화를 느낀 상혁은 다급히 물었다.“왜 그래?”“아, 아무것도 아니에요.”하연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물었다.“상혁 오빠, 오빠랑 오빠 전 비서 무슨 사이예요?”“전 비서?”상혁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혹시 임 비서 말하는 거야?”하연은 고개를 끄덕이자 상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상사와 부하 관계지.”“아.”하연은 알겠다는 듯 대답했지만 영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그러자 상혁이 더 의아해했다.“왜 갑자기 그걸 묻는데?”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다.밖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분주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하연은 그걸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먼저 나갔다. 하연이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알 리 없는 상혁은 어리둥절해서 다급히 뒤따랐다.“최 사장님, 안녕하세요.”“부 대표님, 안녕하세요.
하연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표정만으로도 그 답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그 순간 상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무실 전화로 내선 번호를 눌렀다.“마케팅팀 임 매니저더러 내 사무실로 오리고 해요.”“네, 대표님”“그리고, 경비원 몇 명도 함께 불러줘요.”“네.”하연은 곧장 소파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로부터 약 5분 뒤, 서희가 헐레벌떡 달려와 사무실 문을 열었다.“대표님,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나요?”말을 마치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는 하연을 발견한 서희는 한순간 넋을 잃었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했다.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상혁은 놓칠 리 없었다.조진숙도 예전에 서희가 불여우라 겉모습처럼 순진하지 않을 거라고 예기했던 적 있다. 그래서 대표실에서 강제로 마케팅팀으로 부서를 옮겼던 거고.상혁은 그때만 해도 자기 어머니가 서희한테 편견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보니 괜히 한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임 매니저,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대표님, 그게 무슨 뜻이죠?”서희는 천연덕스럽게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그 표정을 본 순간 상혁의 눈빛은 이내 어두워졌다. 상혁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분위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상혁 곁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비서 일을 해온 서희가 그걸 모를 리는 없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티를 낼 수 없었기에 서희는 애써 침착한 척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마 서희가 정말 억울하다고 믿었을 거다.“임 매니저는 오늘 당장 인사팀에서 퇴사 처리해요. 월급은 한 달 치 더 지급할게요.”그 말에 서희는 더 이상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다.“대표님, 왜 그러세요? 이러시는 이유를 모르겠어요.”상혁은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서희를 내쫓았다.그러자 서희가 하연을 삿대질하며 버럭 소리쳤다.“대표님, 혹시 저 여자가 뭐라고 했어요? 저 여자 말 믿으세요?”이 상황을 보자 하연은 겨우 마음이 놓였다. 이로써 서희와 상혁이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게 증명됐으니까.
하연은 고개를 살짝 들어 상혁과 눈을 마주쳤다. 상혁의 맑은 눈동자에서 하연은 자기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상혁 오빠, 생일 축하해요.”상혁은 하연이 예뻐 죽겠다는 듯 싱긋 웃으며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고마워.”다급히 일어서서 테이블 쪽으로 달려간 하연은 아까의 우울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보물이라도 바치는 듯 케익을 들어 상혁에게 내밀었다.“상혁 오빠. 이건 제가 직접 만든 케익이에요. 꼭 다 먹어야 해요.”“그래.”상혁이 웃는 얼굴로 하연을 보며 대답했다.그러자 하연은 얼른 케익 상자를 열어 촛불을 꽂은 뒤 라이터로 초에 불을 붙이고 가볍게 노래하기 시작했다.“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오빠, 소원 빌어요.”상혁은 하연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꼭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이윽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하연은 어느새 상혁의 앞에 다가왔다.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촛불을 껐고, 하연이 곧이어 나이프를 상혁에게 건네며 말했다.“오빠, 첫 번째 조각은 생일 주인공이 베는 거랬어요.”지금껏 상혁의 생일만 되면 수많은 친구가 모여 생일을 축하해 줬는데, 그때마다 하연은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다.하지만 오늘 이 생일은 분명 소박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하연이 함께 한다는 거였다.“그래, 케익 벨게.”두 사람이 케익을 다 먹기 바쁘게 상혁의 개인용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아들, 생일 축하해.”전화를 받아 보니 건너편에서 조진숙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조진숙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마워요.”“올해에는 하연이 곁에 있으니 나랑 네 아버지는 끼어들지 않을게. 저녁에 레스토랑 예약해 뒀으니 위치 보낼게. 꼭 하연이랑 같이 가.”조진숙은 싱글벙글해서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상혁의 핸드폰에는 주소 하나가 날아왔다.어머니를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던 상혁은 하연을 정식으로 초
서준은 차에 앉아 창문을 통해 하연을 바라볼 뿐 가까이 접근하지도 못했다.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담소를 나누며 식사하던 하연과 상혁이 계산까지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올 때까지 서준은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했다. 심지어 두 사람이 시선 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준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런 서준을 다시 현실로 끌어 낸 건 다름 아닌 전화벨 소리였다. 이수애는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잔뜩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서준아, 너 어디 있어? 나은 씨가 너 한참 기다렸대. 너...”서준은 이수애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윽고 핸드폰을 아예 꺼버리고는 그걸 차창 밖으로 내다 버리고 그곳을 훌쩍 떠나 버렸다.한편, 안태현이 개인 파티룸에서 한창 즐기고 있을 때, 문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벌컥 열렸다.“어떤 자식이 눈치도 없이...”순간 화가 치밀어 욕지거리를 내뱉던 태현은 서준을 보자마자 하려던 말을 이내 삼키며 앞으로 다가갔다.“한서준,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대? 네가 여길 다 오고?”사실 서준은 한참 동안 파티룸에 드나들지 않았었다. 특히 하연과 이혼한 뒤에는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발길을 뚝 끊었다.서준은 태현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그 순간 서준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걸 느낀 태현은 얼른 룸안에 있던 사람들을 내보내고는 입을 열었다.“어디 보자. 너 이러는 거 혹시 네 엑스 와이프 때문이야?”“그렇게 티나?”차갑게 묻는 서준의 말에 태현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너 진짜 완전히 빠졌네? 최하연 씨 이제 너한테 눈길도 안 주는데, 왜 이렇게 본인을 혹사해?”태현의 말에 서준은 아까 전 레스토랑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하연이 상혁을 보는 눈빛은 너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나랑 최하연 가능성 있을까?”“아니.”태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하지만 말하고 나서 상대에게 너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했는지 이내 말을 보탰다.“뭐, 아예 없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