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D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클럽 파티룸에 정예나는 최하연을 위해 성대한 파티를 준비했다.분위기는 따뜻하고 활기찼으며 굉장히 압도적이었다.예나는 하연을 팔로 감싸며 무대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잔을 들었다.“자! 내 친구 하연이가 불행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난 걸 축하하면서 다들 건배!”“건배!”“축하해요!”하연은 손에 든 술을 마시고 예나의 손에 이끌려 사람들 속으로 끌려갔다.“하연아, 이 분은 천억 자산가 HB그룹의 아들이야.”“이분은 TS산업 사장님. 몸이 엄청 좋으셔.”하연은 와인잔을 들어 그들의 얼굴을 살펴보다 누군가와 부딪혔다.“눈은 장식이야? 발 밟혔잖아!”뒤에서 날카롭고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하연은 눈썹을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이 목소리는 그녀에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로 한씨 가문의 뻔뻔한 시누이 한서영이었다.하연에게 큰소리 치는 모습에 예나는 그녀의 앞을 막고 섰다.“당신은 또 뭐야? 함부로 말하지 마!”새로 산 하이힐이 신경 쓰이던 서영은 고개를 들어 상대 중 한 명이 새언니였던 하연임을 깨닫고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어? 우리 오빠한테 버림받은 새언니잖아?”그녀는 이수애를 안심시키기 위해 민혜경과 함께 D국에 왔다.이 말을 들은 예나는 불같이 화가 났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싸우려 들었지만 하연이 그녀를 막았다.“괜찮아, 상대하지 마.”과거에는 서준 때문에 그의 집안 사람들을 사랑했고, 당연히 서영에게 시누이 대접을 제대로 해줬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 서영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서영과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하연의 눈에 서영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하연의 경멸의 눈빛이 서영을 지나 혜경에게 향했다.혜경은 헐렁한 디올 정장에 진주가 박힌 플랫 슈즈를 신고 누가 봐도 임산부 티가 났다.‘허!’‘여기서 뭐하는 거야? 애기는 생각 안 해?’혜경은 적대적인 눈으로 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서준 씨랑 최하연에 대해 이야기하러 친히 D국에 왔는데 당사자가 내 눈 앞에 있었네?’오늘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싸우는 한서영의 행동은 너무 볼품없어 보였고, 민혜경은 본능적으로 그녀와 거리를 두고 뒤로 물러섰다.최하연은 잔에 담긴 샴페인을 흔들고 다시 두 사람에게 걸어갔다. 그녀는 무시하는 눈빛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뭐야, 시누이가 곤경에 처했는데 예비 새언니로서 체면도 없이 도망가려는 거예요?”“지금 뭐하는 거야!”어디선가 고함이 터져 나왔다.사람들은 고함 소리가 나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했고, 검은 정장을 입은 한서준이 어둡고 서늘한 눈빛으로 강력한 아우라를 풍기며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는 한눈에 하연을 발견했다.그녀가 떠난 지 얼마 안 됐지만 한씨 저택에 있을 때의 초췌한 모습보다는 조금 더 통통해져 보기 좋아 보였다.빛의 한가운데 서서 눈처럼 고운 피부가 돋보이는 맞춤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딴 사람 같아 그의 시선을 끌어당겼다.서영은 오빠가 온 것을 보자마자 기세등등해지며 하연과 장예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오빠, 저 사람들이 날 괴롭혔어.”이미 화장이 다 지워진 서영의 모습과 쩔쩔매고 있는 민혜경을 본 서준이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이렇게 여럿이 한 명을 괴롭힌다고? 비겁하네.”“편할 대로 생각하세요.”하연은 그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고,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당신 동생... 오빠인 서준 씨가 더 잘 알겠죠.”그녀는 걸리는 게 없었다. 악역이 되어도 상관없었다.예나는 경멸하며 말을 꺼냈다.“빨리 동생을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주세요. 우리 장씨 가문은 한씨 가문을 초대한 적 없습니다!”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너 나 하지 않고 화를 내며 말했다.“뭐야! 저 여자가 말로 사람을 슬슬 긁더만!”“맞아! 쓸데없는 사람이라는 둥 못된 말을 스스럼없이 뱉던데, 우리가 그런 사람 편을 왜 들어야 돼?”“행동은 경찰서에 끌려갈 것처럼 하더니 사람들 몇 마디에 움찔하더라, 완전 웃겨.”서준은 눈살을 찌푸
한서준은 최하연의 이런 행동이 처음이라 검은 눈동자가 극도로 차가워졌다. 이혼 소송 이후 그녀의 행동은 통제할 수 없었고 고삐 풀린 야생마 같았다.“임산부를 때릴 정도로 악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 내가 너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하연은 눈을 살짝 치켜뜨며 태연하게 말했다.“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설명 같은 건 필요 없었다.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이제 다 떠들었어? 그럼 여기서 사라질 때도 되지 않았나?”“최하연, 말 조심해.”서준은 얼굴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차가워졌다.“뭐? 내가 아직도 굽신거리며 사과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하연은 웃으며 비꼬았다.“아직도 꿈에서 안 깼나 봐?”“서준 씨, 나 아파...”귓가를 파고드는 울먹이는 소리에 서준은 품에 안긴 혜경을 바라봤다.붉게 부어오른 얼굴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입술은 창백했다. 남아 있는 힘이 없어 보이는 그녀는 손으로 배를 감싸 안고 곧 기절할 것 같았다.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병원으로 가자.”그는 허리를 숙여 혜경을 안아 올렸고, 사람들은 곧바로 길을 터주었다.몇 발자국 걷다 멈춰선 그는 하연을 향해 말했다.“아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전부 책임을 물을 거니 그렇게 알아!”“뺨 한 대 맞았다고 애가 어떻게 되겠어? 종잇장도 아니고.”예나는 하연의 옆에 서서 이성을 잃고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생각이 있으면 안 가겠지. 누가 누굴 무서워하겠어? 우리가 고개 숙일 것 같아?”“저런 사람들 때문에 감정 낭비하지 마.”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연의 얼굴에는 점점 미소가 사라졌다.예나는 어깨 너머로 말했다.“하연아, 아직도 저 머저리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하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거야.”‘정말 3년 동안... 난 눈이 멀었나 봐.’‘저런 허접한 여우짓에 넘어가다니.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호텔로 돌아가는 길, 롤스로이스 차내는 조용했다.서준은 잠든 혜경을
휴대폰에는 평소처럼 차가운 말투로 메시지가 와 있었다.[오늘은 서영이 잘못이야. 내가 사과할 테니까 너도 서영이한테 사과해.]최하연은 화가나 모진 말을 뱉었다.“이게 사과라고 보낸 거야? 미친놈!”소리를 지른 그녀는 서준을 차단한 채 휴대폰을 옆으로 던졌다.정예나는 하연을 보며 은밀한 미소를 보냈다.“하연아, 모레 너네 하민 오빠랑 경매장에 갈 거야?”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가기로 했어.”“그럼 내가 옷을 골라줄 테니까 네 럭셔리한 드레스룸을 공유해 줘.”“좋아, 안에 있는 건 뭐든 골라 입어.”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나서 그녀는 드레스룸의 문을 열었다.예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우와.”“하연아, B시에 있는 우리 브랜드 숍보다 넓잖아!”3층으로 이루어진 드레스룸에는 여러 주요 명품 브랜드의 옷들과 악세서리로 가득했다.하연이 D국으로 돌아온 후 최하민은 드레스룸을 새로 꾸며놓으라고 지시했고, 이제 막 완성된 상태였다.“내 드레스룸도 나름 넓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예나는 화려한 드레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감탄을 금치 못했다.하연은 아무렇지 않게 드레스를 집어 그녀의 몸에 가져다 댔다.“괜찮네, 안 맞으면 다시 맞춰줄게.”‘그땐 어려서 몰랐는데, 상속받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그녀가 말하던 그때 집사인 장창석이 문을 두드렸다.두 명의 하녀가 그의 뒤를 따라 드레스를 가득 들고 나타났다.장창석은 정중하게 말했다.“막내 아가씨, 프라다에서 이번 시즌 수제 맞춤 드레스를 보내왔습니다. 시장에 선보이기 전에 먼저 고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네, 알겠어요. 거기 두시면 돼요.”하연은 예나를 끌어당기며 담대하게 말했다.“원하는 대로 골라 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보내달라고 할 게.”예나는 하연의 절친이었다.예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그녀의 얼굴을 잡고 볼에 뽀뽀세례를 했다.“하연아, 역시 너 밖에 없어.”드레스룸은 웃음 소리로 가득했다.롤스로이스를 타고 있던
오늘 최하연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그녀의 얼굴은 화사하고 아름다웠으며, 출시하지 않은 고급스러운 핸드메이드 맞춤 드레스는 그녀를 더욱 우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치명적인 그녀의 외모에 사람들은 하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서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서준의 눈은 복잡해 보였고, 온화하고 얌전한 모습에서 화려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바뀐 그녀의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으로 하연을 바라보며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정말 변했어.’서준의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한 대표는 정말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네요.”서준에게 다가간 하연은 붉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에 조롱의 빛이 가득 담겼다.“대표님은 어디 있어?”서준이 차갑게 물었다.하연은 비웃으며 말했다.“못 봤어? 나 혼자 와서 실망했나?”기분 나쁜 메시지를 받은 하연은 오빠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를 만나고 싶으면 오빠 의사부터 물어야지!’자신의 의도를 짐작한 것 같은 하연의 조롱에 서준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경매 주최자는 곧바로 웃으며 하연을 맞이했다.“아가씨, 이쪽으로 오세요.”하연은 서준을 무시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화려한 모습을 본 서영은 서준에게 귓속말했다.“오빠, 내 말이 맞지? 어떻게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었겠어?”서준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닥쳐.”화가 난 것 같은 오빠의 모습을 본 서영은 화가 났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혜경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서준에게 말했다.“들어가자.”30분 후, 경매가 시작됐다.지적이고 우아한 여자 경매사가 경매품을 소개했다.“얼음 종 에메랄드 팔찌, 시작가 4천만원부터 시작합니다!”빛을 받은 팔찌는 섬세하고 투명한 느낌을 줬다.하연은 곧 서준의 할머니인 강영숙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손을 들어 제시했다.“6천.”“자, 6천만원 나왔습니다.”뒷줄에 있던 혜경은
직원은 재빠른 행동으로 팔찌를 가져와 민혜경이 수표를 작성할 때까지 기다렸다.경매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자신의 회사를 보고했고, 수표를 빼돌릴 시 경매장으로부터 고소를 당할 수 있었다.혜경은 어쩔 수 없이 수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경매장 뒷좌석.나운석의 사슴 같은 눈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오늘 무슨 일이래? 호구도 잡고.”어머니 선물로 산 이 팔찌는 기껏해야 5천만원이었지만 보석상한테 사기당해 4천만원의 바가지를 썼고, 그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경매장에 가져간 것이다.오직 운석의 시선은 원한을 품고 가격을 제시하던 아름다운 여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누구나 예쁜 것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아름다움이 배가 된 하연에게는 어떻겠는가?운석의 관심은 모조리 하연에게 향했다.“왜 이렇게 낯이 익지? 누군지 알아요?”운석은 옆에 있는 HB그룹 사장에게 물었다.“최하연이라고 들었어요.”“최하연?”운석이 그녀의 이름을 곱씹자 문득 못난이 최씨 집안 막내 딸이 스쳐 지나갔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안 돼…….’‘그럴 리 없어!’그는 눈을 비비며 하연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재차 확인했고 확신했다.“동명이인 일 거야.”“이번 상품은 E국 앤틱 회중시계입니다, 시작가 9억부터 시작합니다!”하연은 그 회중시계가 최하민이 알려준 시계임을 눈치채고 손을 들어 입찰했다.“11억!”“12억!”……이번 경매는 혜경과 엉뚱한 쟁탈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하연은 13억에 회중시계를 손에 넣었다.혜경은 화가 나고 억울했지만, 하연이 또 그런 속임수를 쓸까 봐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그녀의 계좌에는 충분한 돈이 없었다.혜경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했다.“서준 씨, 안 본 사이에 하연 씨는 정말 딴 사람이 됐네.”“서준 씨랑 이혼할 때는 한 푼도 받지 않더니, 며칠 만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13억으로 회중시계를 사다니, 놀랄 정도로 손이 커졌네.”그녀는 서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하연 씨 DS그룹 대표 수석 비서로 이직했는
“내가 서준 씨한테 말해야 할 필요가 있나?”최하연은 여유롭게 일어나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한서준은 그들이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하연에게 물어볼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하연의 몸과 마음은 한때 자신의 것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남자의 것이라는 생각에 미간이 찌푸려지고 그 조차도 알 수 없는 소유욕이 마음 속에 솟아올랐다.“이혼한 진짜 이유가 뭐야?”서준은 우울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연은 붉은 입술로 헛웃음을 쳤다.“오랜 만에 만나서 이런 걸 묻는다고? 재밌어?”그녀는 서준의 어두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진짜 이유는 단 하나야, 난 참을 만큼 참았어!”“도대체 뭐가 불만인데!”“지난 3년 동안 넌 우리 집에서 먹고 자는 데 아무 문제없었어, 게다가 내 옆에서도 높은 직책을 맡았는데 지금 네가 사는 삶과 그때의 삶이 뭐가 다른데?”서준은 이혼 전날 밤 하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잠시 말문이 막혔다.“부부관계를 안 해서 그래?”그는 마음 속 상처 때문에 하연과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 일찍이 그녀는 잠결에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불렀고 자존심 때문에 그녀와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이 말을 들은 하연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도대체 머리에 뭐가 든 거야?”“그럼 지금 해줄게!”서준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하연 얼굴을 잡고 키스를 했다.짝!하연은 있는 힘껏 그를 밀었고 세차게 그의 뺨을 때렸다.뺨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서준은 혀를 깨물었다.그의 눈은 이글거렸고 눈 앞에 있던 하연은 점점 더 당황했다.하연은 너무 화가 나 눈물이 고였다.‘머저리 같은 놈, 내가 고작 그거 때문에 이혼한 것 같아?’‘내가 도대체 저런 사람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 참고 살았던 거야?’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했다.“3년 동안 보고 싶은 것만 봤으니 모르겠지. 눈 뜬 장님이랑 뭐가 달라!”하연은 서늘한 눈을 내리깔고 말을 덧붙였다.“아니지, 눈 먼 사람은 나야. 바보같이 당신이 나한테 감동하고 사랑에 빠질
최하연은 주먹을 꽉 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이 남자가 큰오빠가 말했던 내 결혼 상대이자 나씨 가문 바람둥이 나운석.’단순히 결혼 상대였다면 하연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이렇게 반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운석이 다섯 살때부터 그녀가 못생겼다며 소문을 내고 다녔고, 죽어도 그녀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해왔기 때문이다.운석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하연도 운석에게 관심이 없었다!그의 아버지인 나훈철이 하연의 스승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운석에게 지옥의 맛을 보여줬을 것이다!운석은 관심있는 여자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더구나 눈앞의 하연이 자신의 기억 속 최하연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물었다.“번호 좀 알려주실래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하연이 던진 손수건에 얼굴을 맞았고 그녀를 다시 잡으려 했지만 하연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화가 난 것처럼 걸음을 재촉하는 하연의 모습에 운석은 혼란스러웠다.“아니 저 분은 왜…….”그는 하연이 남기고 간 눈물 닦은 손수건을 주으며 말했다.“기분 상할 행동은 안 한 것 같은데…….”운석은 허탈한 얼굴로 한참동안 하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눈을 감더니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완전 내 스타일이야.”그 후 운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나 드디어 내 이상형을 만났어! 고귀한 자태를 뿜어내는 얼음 공주, 드디어 만났다고!”“진짜야! 이번엔 찐사랑이야!”안태현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내가 널 모를까 봐? 이것도 며칠이나 갈까~.”그의 말에 운석은 펄쩍 뛰며 말했다.“진짜라니까? 예전의 나로 돌아가도 그 여자를 만나면 순애보가 될 정도야!”옆에 있던 서준은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비웃었다.“차라리 복권 당첨 확률이 더 높겠다.”“그럼 나랑 내기해! 내가 한 달 안에 저 여자 꼬신다. 같이 찍은 사진 보고 부러워할 준비나 해.”……최씨 저택의 서재 안.하연은 앤티크한 나무 상자를 최하민에게 건네며 말했다.“
송혜선의 마음속 질투심은 폭풍우처럼 휘몰아쳤다. 송혜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부동건이 이토록 기뻐하는 상황에서, 만약 하연의 뱃속에서 정말로 부씨 가문의 장손이 태어난다면, 자신과 부남준의 위치는 크게 흔들릴 것임을. 그녀는 부드럽게 설득하려 했다. “회장님, 보양식 같은 건 하연이 쪽에서도 충분히 알아서 준비를 했을 거예요. 우리까지 굳이 하연이 보양식을 신경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부동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그의 목소리는 차가워졌다. “당신 말은 내가 괜히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거야?” 송혜선은 급히 손사래를 치며 해명했다.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회장님,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동건은 이미 인내심을 잃은 듯 보였다. “그만해! 이 집에서 당신이 나를 가르칠 위치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거야? 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줬더니 본인의 위치를 잊은 모양이군.” 부동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몸조리나 잘하고 있어. 다른 일들은 당신이 신경 쓸 필요 없어.” 말을 끝낸 그는 소매를 휘날리며 방을 나갔고, 송혜선에게 조금의 체면도 남겨주지 않았다. 부동건이 나가자, 조봉규가 시중드는 가정부를 물리고 송혜선의 뒤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때에 왜 괜히 회장님 심기를 건드리는 거야.” 송혜선은 가라앉지 않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 “최하연이 임신했어.” 조봉규의 손이 순간 멈췄다가,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하연이랑 부상혁이 오래전부터 함께 있었잖아.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굳이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고.” 송혜선은 냉소적인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당신 정말 몰라. 이 아이는 부씨 가문 3대의 첫 번째 아이야.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는데 저 노인네가 벌써 그렇게 기뻐하는 걸 보면, 진짜 장손이라도 태어나면 어깨가
아름의 얼굴이 붉어졌고 조금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건 자연스럽게 있다 보면 천천히 순리대로 생기는 거죠...” 하민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 천천히 순리대로.” ... 조진숙은 하연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밤새 기쁨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손에 잔뜩 임산부에게 좋은 보양식을 들고 찾아왔다.“하연아, 이건 다 몸에 좋은 거야. 집에 있는 이모님한테 부탁해서 꼭 챙겨 먹어. 입덧이 심하면 여기 신선초나 도라지를 좀 먹어봐. 입덧을 가라앉히는 데 좋아서 훨씬 편해질 거야.”조진숙은 일일이 꼼꼼하게 챙겨주며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되든, 지금 임신 초기에는 네 몸이 제일 중요하단다.” 조진숙은 하연의 손을 꼭 잡으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임신 초기 3개월은 아직 불안정하니 충분히 쉬어야 해. 일은 밑에 사람들에게 맡겨도 괜찮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하연은 조진숙의 어깨에 기대며 친근하게 미소 지었다. “알겠어요! 걱정 마세요!” “난 그냥 지금이 너무 행복할 뿐이야. 곧 설이고 올해는 너희 둘 다 내 곁에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 같구나.” 조진숙의 눈가가 촉촉해졌지만 곧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감정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약혼식 준비는 거의 다 끝났어. 약혼식이 끝나면 바로 결혼식 준비를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에 대해 하연은 서두르지 않았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도 돼요.” 하지만 조진숙은 단호했다. 부모로서 자녀들의 일을 간섭하지 않고 둘을 존중하고 응원하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 세상의 편견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명문가 출신의 여자들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조진숙은 하연이 이런 세상의 편견이나 험담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 딸.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까 결혼식은 꼭 성대하고 아름답게 치를 거다.” 조진숙은
하연은 세면대에 몸을 숙이고 거의 속이 텅 빌 정도로 구토를 쏟아냈다. 상혁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손으로 하연의 등을 토닥이며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하연아, 좀 괜찮아졌어?” 물을 마시고 난 후 하연의 속이 간신히 진정되었다. “괜찮아요.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하민은 여전히 걱정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뭘 잘못 먹은 건가? 의사는 왜 이렇게 늦는 거야? 빨리 좀 오라고 해!” 곧바로 따라온 아름은 하연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하연의 상태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연 씨, 혹시 이런 증상 얼마나 됐어요?” 하연은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한 이틀 전부터였던 것 같아요.” 아름은 하연의 손을 잡고 조용히 귀에 대고 물었다. “그럼 혹시... 그날이 언제였어요?” “그날?” 하연은 한참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은 듯 대답했다. “이번 달엔 안 온 것 같아요.” 그녀는 평소 생리 주기가 정확했지만 이번 달은 이미 반달이나 늦어진 상태였다. 하연은 뭔가 어렴풋이 깨달은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난달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은 아름은 마음속에서 이미 거의 확신을 얻었다. “그럼 잘 생각해 봐요. 구토 말고도 다른 증상이 있었는지? 몸이 평소보다 나른하거나 잠이 많이 온다든가? 이런 증상이요.” 이 말에 하연은 순간 멍하니 얼어붙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한편, 상혁은 하연과 아름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더 초조해졌다. “하연이가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그는 진심으로 걱정하며 물었다. 아름은 미소를 띠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눈에는 환한 빛이 가득했다. “하연이는 괜찮아요. 오히려 축하해야 할 일이죠.” “축하? 대체 무슨 말이야?” 하민은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아름은 손으로 하민의 어깨를
“나 오래 잤어요?” 하연은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는 잠깐 눈만 붙이려 했는데, 깊이 잠들어 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수많은 일을 처리하는 최 사장님께서 잠시 쉬는 건 당연한 일이죠.” 상혁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연은 그제야 문득 떠올랐다. “큰일 났네!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데...”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책상으로 가보니 모든 서류가 정리된 채 깔끔하게 놓여 있었다. 심지어 노트북에 있던 최신 보고서까지 이미 검토와 승인까지 완료된 상태였다. “당신이 다 처리했어요?” 상혁의 업무 능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지만, 이번에는 효율이 지나치게 빨랐다.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어...” 하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혁은 그녀의 노트북을 닫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최 사장님, 그럼 이제 퇴근해도 될까요?” 하연은 기분이 매우 좋아져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우리 마트 가서 샤브샤브 재료 사러 가요.”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사뒀어.” 하연은 상혁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고 상혁을 바라보는 눈에서는 수많은 별빛이 반짝이듯 반짝 반짝거렸다. 그리고는 주저하지 않고 그를 끌어안았다. “부 대표님이 준비까지 다 해 주셨으니, 이제 우리 바로 집으로 가면 되겠네요.” 오늘 밤 최씨 가문의 본가는 유난히 분주했다. 하연과 상혁이 막 도착했고, 곧이어 최하민과 예아름도 함께 들어섰다.오늘 하민과 아름은 평소와 다르게 더 행복한 기운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거실 한가운데에서 하민은 한 손으로 아름의 손을 꽉 잡고, 다른 손으로는 품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꺼냈다. 하민은 단정하고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저희 혼인신고 했습니다.” 최동신은 미소를 머금고 매우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하지만 실은 이미 이 일을 미리 알고 있었다. “축하한다. 앞으로는 더 행복하게 살 거라! 너희가 이렇게 가
[그래, 퇴근하고 바로 데리러 갈게.]상혁은 단번에 승낙했다. 영상 속의 하연은 하품을 하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 며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몸이 너무 피곤해요. 아마도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상혁은 그녀의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왔다. [일은 잠시 내려놓고, 조금 쉬어. 네 몸이 먼저야.] 하연은 눈꺼풀이 감길 듯 무거워지자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 상혁은 전화를 끊으면서도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원신민이 그제야 다가섰다. “대표님, 부남준 상무님이 동남아로 떠나셨습니다.” 그 말에 상혁의 표정이 서서히 가라앉았고, 순식간에 그의 얼굴은 냉담한 기운으로 변했다. 방금 전까지 따뜻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각진 얼굴에는 감정이라곤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고, 상혁의 태도는 차분하면서도 극도로 냉철했다. 상혁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움직임 하나는 빠르네.” 원신민은 느껴지는 압박감 속에서도 조심스럽게 보고를 이어갔다. “듣기로는 이건 회장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부상혁은 빈정거리는 듯한 어조로 대꾸했다. “우리 송 여사님께서 꽤 열심히 그분 귓가에 대고 속삭였나 보네.” 그의 말에는 냉소가 가득했다. “아마 회장님께서 부남준 상무님을 동남아로 보내 경험을 쌓게 하시려는 것 같아요. 거기서 정규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면, 회사로의 복귀 가능성도 훨씬 높아질 거고요.”원신민은 계속해서 분석을 이어갔다.“동남아가 최근 몇 년간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른 곳이잖아요. 아마 그곳에서 입지를 다지고 성과를 낸다면 누가 봐도 다시 재기하기에는 정말 알짜배기인 자리인 거죠.”상혁은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며 말을 덧붙였다.“정규인의 자리는 동남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 중 하나야. 하지만 정규인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신임과 인맥을 남준이가 단기간에 무너뜨리긴 쉽지 않을 거야. 만약 성공한
송혜선은 자연스럽게 부동건의 품에 앉아 두 팔을 부동건의 목에 걸었다. 부동건을 깊이 바라보는 송혜선의 눈에는 다정함이 가득했다. “아직 상혁이랑 남준이가 있잖아요. 설령 힘들어지더라도, 제 뱃속에 있는 이 아이가 나중에도 회장님일을 도울 수도 있잖아요.” 부동건은 애정 어린 손길로 그녀의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딸이었으면 좋겠어. 당신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성격을 가진 아이로. 오빠 둘이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 주니, 세상 물정 모르는 고운 아가씨로 살아도 괜찮잖아.” 부동건의 말에는 분명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 성공적인 사업, 다정한 아내, 그리고 완벽한 자녀 구성... 그는 모든 것을 바랐다. 하지만 말을 하며 부동건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조진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때 그와 함께 미래를 이야기하던 조진숙의 모습이 문득 스쳤다. 젊은 시절의 조진숙은 첫 아이를 낳고 모든 애정을 상혁에게 쏟아부었다. 그녀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린 상혁이 하나면 충분해요. 이 아이에게 모든 사랑과 힘을 쏟아 주고, 이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책임져 줍시다.” 부동건은 조진숙의 뜻에 따라 이렇게 대답했었다. “그래, 상혁이만 있으면 돼.” 그 약속은 그 당시엔 진심이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진심이었지만, 진심이라는 것은 참으로 변화무쌍한 법이다.그 후 송혜선이 나타났고, 부동건은 실수를 저질렀으며, 부남준이 태어났다.모든 것이 원래의 궤도에서 어긋나기 시작했고, 그 시절 부동건이 조진숙에게 했던 약속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한없이 어리석고 덧없어 보였다.부동건의 얼굴에 잠시 복잡한 감정이 스쳤지만, 곧 말끝을 바꿨다. “아이만 무사히 태어날 수만 있다면, 아들이든 딸이든 나는 다 좋아.” 마침 그때, 그의 손바닥에 가벼운 태동이 느껴지면서 감동한 듯 중얼거렸다. “이 작은 녀석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는 모양이네!” 그 따뜻한 순간이 부동건의 마음에 남아 있던 어둠을 조금은 씻어 주
황연지가 떠난 후, 정지철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부남준을 바라보았다. 정지철도 현재 상황이 부남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즉, 작은 실수라도 있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상황이었다. 정지철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정규인 쪽에 문제가 생긴 이상, 그쪽 사람들이 변심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잖아. 지금 당장 동남아 쪽은 누군가 가서 수습해야 해. 남준아, 네가 직접 가보는 게 어떻겠니?”이 제안은 남준이 이미 생각하고 있던 바였다. “그쪽 사람들을 잘 다독이고, 그 지역 사업까지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정규인이 돌아오지 않아도 큰 틀에서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정지철은 남준의 말을 받으며 덧붙였다. “정규인이 그곳에서 오래 자리 잡으면서 적도 꽤 많아졌을 거야. 듣자 하니, 정규인의 부하 중에 오대식이라는 자와 과거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어쩌면 그 인물이 돌파구가 될지도 모를 거야.”그 말을 마치자 두 사람은 잠시 눈빛을 주고받았고, 서로 말없이 합의를 이뤘다.“아버님께서 어느 정도 계획을 미리 준비를 해두신 것 같군요.” 남준은 정지철의 계획에 신뢰를 표했지만, 여전히 고민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제가 직위 해제된 상태라 공개적으로 그곳에 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눈빛을 깊게 드리우며 복잡한 상황을 곰곰이 생각했다. “게다가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사회 쪽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더 큰 손실입니다.” 이사회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변수가 생긴다면, 남준이 그간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될 수 있었다. 정지철은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이사회는 걱정하지 마. 이미 절반 이상의 이사들을 내 손 안에 두고 있으니, 자네가 자리에 없어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내가 확실히 지킬 테니까.”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자네가 동남아로 가는 데 필요한 준비는 내가 모두 해놓을 테니, 그 부분도 신경 쓰지 말게.”남준은 정지
“부 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규인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이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원신민이 조심스레 들어오며 말했다. “대표님, 경찰서에서 오신 분들이 정 사장님과 관련된 사항을 확인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정규인의 얼굴에서 혈색이 사라졌다. “뭐라고요?” 원신민은 대답하지 않고 반 발짝 물러섰다. 그 순간,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들은 정규인에게 문서를 내밀며 공식적으로 말했다. “정규인 씨, 당신은 직무상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가주시죠.”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정규인은 다급하게 해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법을 어긴 적 없는 성실한 시민입니다.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겁니다!” 그가 아무리 애써 변명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차가운 수갑이 정규인의 손목에 채워졌고, 그는 경찰들에게 연행되었다. 정규인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금세 퍼져나갔다. 이 소식을 접한 부남준은 완전히 얼이 빠진 상태였다. “횡령된 자금은 다 채웠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의 부하가 급히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변호사를 붙였고, 정 사장님에게 뚜렷한 증거가 없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남준은 머리가 복잡 해지며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방 안을 서성거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규인은 남준의 여러 비밀을 알고 있었다. 만약 정규인이 구속된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발설한다면, 남준의 앞날도 암울해질 게 분명했다. “안 돼, 이렇게 손 놓고 기다릴 수 없어.” 남준은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듯 질문했다. “정규인의 아내는? 아직 여기에 있나?” “예, 아직 있습니다.” “사람을 붙여서 정규인의 아내와 아이를 잘 감시해. 도망가지 못하게 해.” 남준
“주 대표님, 꽤 자신만만 하신가 봐요?” 하연은 서슴없이 받아쳤다. 말 속에는 상혁을 향한 단단한 신뢰가 느껴졌다. “다만, 그 자신감이 조금 엉뚱한 데 쓰인 것 같네요.” 하연의 기세는 상대를 압도했다. 슬기는 이내 두 손을 들며 항복하듯 말했다.“최 사장님, 그렇게 사람을 몰아붙이는 건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이미 인정했어. 내가 졌다는 걸...’‘어쩌면 처음부터 나에게 이길 가능성은 없었을지도 몰라.’‘단지 내 마음속의 미련과 집착이 나를 흔들었을 뿐이야.’‘그 집념이 오히려 나를 가로막아, 내 위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지...’“그래도, 최 사장님이 이렇게 긴장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나쁘진 않네요.”슬기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적어도 내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지. 이 사랑의 경쟁에서, 부상혁은 혼자 애쓰고 있던 게 아니었어. 역시 이 남자의 인생에서 단 한 명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부상혁이 마침내 최하연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쩌면 나는 만족해야 할지도 몰라.’‘왜냐하면 내가 바랐던 건 단 한 가지였으니까... 바로 부상혁이 행복해지는 것.’슬기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길가에 세웠다. 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 하연을 바라보며 진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저는 진심으로 최하연 사장님과 부상혁 대표님이 앞으로 행복하게 함께하시길 바랍니다.”창밖으로 다시 눈송이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찬바람 속에서 눈발은 바람을 따라 춤을 추었다. 그렇게 추운 날씨에도, 어떤 이들의 얼굴에는 봄바람이 가득했다. 정규인은 직원 몇 명을 데리고 허락도 없이 당당하게 DL그룹에 들어섰다. 그는 거침없는 태도로 상혁의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부 대표님!!!” 정규인의 목소리는 지나칠 정도로 자신감이 묻어났고, 심지어 문을 두드릴 생각도 없이 그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상혁은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으며 얼굴은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있었고, 기품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