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D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클럽 파티룸에 정예나는 최하연을 위해 성대한 파티를 준비했다.분위기는 따뜻하고 활기찼으며 굉장히 압도적이었다.예나는 하연을 팔로 감싸며 무대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잔을 들었다.“자! 내 친구 하연이가 불행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난 걸 축하하면서 다들 건배!”“건배!”“축하해요!”하연은 손에 든 술을 마시고 예나의 손에 이끌려 사람들 속으로 끌려갔다.“하연아, 이 분은 천억 자산가 HB그룹의 아들이야.”“이분은 TS산업 사장님. 몸이 엄청 좋으셔.”하연은 와인잔을 들어 그들의 얼굴을 살펴보다 누군가와 부딪혔다.“눈은 장식이야? 발 밟혔잖아!”뒤에서 날카롭고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하연은 눈썹을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이 목소리는 그녀에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바로 한씨 가문의 뻔뻔한 시누이 한서영이었다.하연에게 큰소리 치는 모습에 예나는 그녀의 앞을 막고 섰다.“당신은 또 뭐야? 함부로 말하지 마!”새로 산 하이힐이 신경 쓰이던 서영은 고개를 들어 상대 중 한 명이 새언니였던 하연임을 깨닫고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어? 우리 오빠한테 버림받은 새언니잖아?”그녀는 이수애를 안심시키기 위해 민혜경과 함께 D국에 왔다.이 말을 들은 예나는 불같이 화가 났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싸우려 들었지만 하연이 그녀를 막았다.“괜찮아, 상대하지 마.”과거에는 서준 때문에 그의 집안 사람들을 사랑했고, 당연히 서영에게 시누이 대접을 제대로 해줬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 서영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서영과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하연의 눈에 서영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하연의 경멸의 눈빛이 서영을 지나 혜경에게 향했다.혜경은 헐렁한 디올 정장에 진주가 박힌 플랫 슈즈를 신고 누가 봐도 임산부 티가 났다.‘허!’‘여기서 뭐하는 거야? 애기는 생각 안 해?’혜경은 적대적인 눈으로 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서준 씨랑 최하연에 대해 이야기하러 친히 D국에 왔는데 당사자가 내 눈 앞에 있었네?’오늘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싸우는 한서영의 행동은 너무 볼품없어 보였고, 민혜경은 본능적으로 그녀와 거리를 두고 뒤로 물러섰다.최하연은 잔에 담긴 샴페인을 흔들고 다시 두 사람에게 걸어갔다. 그녀는 무시하는 눈빛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뭐야, 시누이가 곤경에 처했는데 예비 새언니로서 체면도 없이 도망가려는 거예요?”“지금 뭐하는 거야!”어디선가 고함이 터져 나왔다.사람들은 고함 소리가 나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했고, 검은 정장을 입은 한서준이 어둡고 서늘한 눈빛으로 강력한 아우라를 풍기며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는 한눈에 하연을 발견했다.그녀가 떠난 지 얼마 안 됐지만 한씨 저택에 있을 때의 초췌한 모습보다는 조금 더 통통해져 보기 좋아 보였다.빛의 한가운데 서서 눈처럼 고운 피부가 돋보이는 맞춤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딴 사람 같아 그의 시선을 끌어당겼다.서영은 오빠가 온 것을 보자마자 기세등등해지며 하연과 장예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오빠, 저 사람들이 날 괴롭혔어.”이미 화장이 다 지워진 서영의 모습과 쩔쩔매고 있는 민혜경을 본 서준이 매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이렇게 여럿이 한 명을 괴롭힌다고? 비겁하네.”“편할 대로 생각하세요.”하연은 그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고,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당신 동생... 오빠인 서준 씨가 더 잘 알겠죠.”그녀는 걸리는 게 없었다. 악역이 되어도 상관없었다.예나는 경멸하며 말을 꺼냈다.“빨리 동생을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주세요. 우리 장씨 가문은 한씨 가문을 초대한 적 없습니다!”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너 나 하지 않고 화를 내며 말했다.“뭐야! 저 여자가 말로 사람을 슬슬 긁더만!”“맞아! 쓸데없는 사람이라는 둥 못된 말을 스스럼없이 뱉던데, 우리가 그런 사람 편을 왜 들어야 돼?”“행동은 경찰서에 끌려갈 것처럼 하더니 사람들 몇 마디에 움찔하더라, 완전 웃겨.”서준은 눈살을 찌푸
한서준은 최하연의 이런 행동이 처음이라 검은 눈동자가 극도로 차가워졌다. 이혼 소송 이후 그녀의 행동은 통제할 수 없었고 고삐 풀린 야생마 같았다.“임산부를 때릴 정도로 악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 내가 너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하연은 눈을 살짝 치켜뜨며 태연하게 말했다.“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설명 같은 건 필요 없었다.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이제 다 떠들었어? 그럼 여기서 사라질 때도 되지 않았나?”“최하연, 말 조심해.”서준은 얼굴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차가워졌다.“뭐? 내가 아직도 굽신거리며 사과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하연은 웃으며 비꼬았다.“아직도 꿈에서 안 깼나 봐?”“서준 씨, 나 아파...”귓가를 파고드는 울먹이는 소리에 서준은 품에 안긴 혜경을 바라봤다.붉게 부어오른 얼굴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입술은 창백했다. 남아 있는 힘이 없어 보이는 그녀는 손으로 배를 감싸 안고 곧 기절할 것 같았다.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병원으로 가자.”그는 허리를 숙여 혜경을 안아 올렸고, 사람들은 곧바로 길을 터주었다.몇 발자국 걷다 멈춰선 그는 하연을 향해 말했다.“아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전부 책임을 물을 거니 그렇게 알아!”“뺨 한 대 맞았다고 애가 어떻게 되겠어? 종잇장도 아니고.”예나는 하연의 옆에 서서 이성을 잃고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생각이 있으면 안 가겠지. 누가 누굴 무서워하겠어? 우리가 고개 숙일 것 같아?”“저런 사람들 때문에 감정 낭비하지 마.”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연의 얼굴에는 점점 미소가 사라졌다.예나는 어깨 너머로 말했다.“하연아, 아직도 저 머저리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하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거야.”‘정말 3년 동안... 난 눈이 멀었나 봐.’‘저런 허접한 여우짓에 넘어가다니.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호텔로 돌아가는 길, 롤스로이스 차내는 조용했다.서준은 잠든 혜경을
휴대폰에는 평소처럼 차가운 말투로 메시지가 와 있었다.[오늘은 서영이 잘못이야. 내가 사과할 테니까 너도 서영이한테 사과해.]최하연은 화가나 모진 말을 뱉었다.“이게 사과라고 보낸 거야? 미친놈!”소리를 지른 그녀는 서준을 차단한 채 휴대폰을 옆으로 던졌다.정예나는 하연을 보며 은밀한 미소를 보냈다.“하연아, 모레 너네 하민 오빠랑 경매장에 갈 거야?”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가기로 했어.”“그럼 내가 옷을 골라줄 테니까 네 럭셔리한 드레스룸을 공유해 줘.”“좋아, 안에 있는 건 뭐든 골라 입어.”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나서 그녀는 드레스룸의 문을 열었다.예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우와.”“하연아, B시에 있는 우리 브랜드 숍보다 넓잖아!”3층으로 이루어진 드레스룸에는 여러 주요 명품 브랜드의 옷들과 악세서리로 가득했다.하연이 D국으로 돌아온 후 최하민은 드레스룸을 새로 꾸며놓으라고 지시했고, 이제 막 완성된 상태였다.“내 드레스룸도 나름 넓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예나는 화려한 드레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감탄을 금치 못했다.하연은 아무렇지 않게 드레스를 집어 그녀의 몸에 가져다 댔다.“괜찮네, 안 맞으면 다시 맞춰줄게.”‘그땐 어려서 몰랐는데, 상속받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그녀가 말하던 그때 집사인 장창석이 문을 두드렸다.두 명의 하녀가 그의 뒤를 따라 드레스를 가득 들고 나타났다.장창석은 정중하게 말했다.“막내 아가씨, 프라다에서 이번 시즌 수제 맞춤 드레스를 보내왔습니다. 시장에 선보이기 전에 먼저 고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네, 알겠어요. 거기 두시면 돼요.”하연은 예나를 끌어당기며 담대하게 말했다.“원하는 대로 골라 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보내달라고 할 게.”예나는 하연의 절친이었다.예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그녀의 얼굴을 잡고 볼에 뽀뽀세례를 했다.“하연아, 역시 너 밖에 없어.”드레스룸은 웃음 소리로 가득했다.롤스로이스를 타고 있던
오늘 최하연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그녀의 얼굴은 화사하고 아름다웠으며, 출시하지 않은 고급스러운 핸드메이드 맞춤 드레스는 그녀를 더욱 우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치명적인 그녀의 외모에 사람들은 하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서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서준의 눈은 복잡해 보였고, 온화하고 얌전한 모습에서 화려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바뀐 그녀의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으로 하연을 바라보며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정말 변했어.’서준의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한 대표는 정말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네요.”서준에게 다가간 하연은 붉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에 조롱의 빛이 가득 담겼다.“대표님은 어디 있어?”서준이 차갑게 물었다.하연은 비웃으며 말했다.“못 봤어? 나 혼자 와서 실망했나?”기분 나쁜 메시지를 받은 하연은 오빠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를 만나고 싶으면 오빠 의사부터 물어야지!’자신의 의도를 짐작한 것 같은 하연의 조롱에 서준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경매 주최자는 곧바로 웃으며 하연을 맞이했다.“아가씨, 이쪽으로 오세요.”하연은 서준을 무시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화려한 모습을 본 서영은 서준에게 귓속말했다.“오빠, 내 말이 맞지? 어떻게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었겠어?”서준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닥쳐.”화가 난 것 같은 오빠의 모습을 본 서영은 화가 났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혜경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서준에게 말했다.“들어가자.”30분 후, 경매가 시작됐다.지적이고 우아한 여자 경매사가 경매품을 소개했다.“얼음 종 에메랄드 팔찌, 시작가 4천만원부터 시작합니다!”빛을 받은 팔찌는 섬세하고 투명한 느낌을 줬다.하연은 곧 서준의 할머니인 강영숙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손을 들어 제시했다.“6천.”“자, 6천만원 나왔습니다.”뒷줄에 있던 혜경은
직원은 재빠른 행동으로 팔찌를 가져와 민혜경이 수표를 작성할 때까지 기다렸다.경매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자신의 회사를 보고했고, 수표를 빼돌릴 시 경매장으로부터 고소를 당할 수 있었다.혜경은 어쩔 수 없이 수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경매장 뒷좌석.나운석의 사슴 같은 눈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오늘 무슨 일이래? 호구도 잡고.”어머니 선물로 산 이 팔찌는 기껏해야 5천만원이었지만 보석상한테 사기당해 4천만원의 바가지를 썼고, 그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경매장에 가져간 것이다.오직 운석의 시선은 원한을 품고 가격을 제시하던 아름다운 여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누구나 예쁜 것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아름다움이 배가 된 하연에게는 어떻겠는가?운석의 관심은 모조리 하연에게 향했다.“왜 이렇게 낯이 익지? 누군지 알아요?”운석은 옆에 있는 HB그룹 사장에게 물었다.“최하연이라고 들었어요.”“최하연?”운석이 그녀의 이름을 곱씹자 문득 못난이 최씨 집안 막내 딸이 스쳐 지나갔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안 돼…….’‘그럴 리 없어!’그는 눈을 비비며 하연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재차 확인했고 확신했다.“동명이인 일 거야.”“이번 상품은 E국 앤틱 회중시계입니다, 시작가 9억부터 시작합니다!”하연은 그 회중시계가 최하민이 알려준 시계임을 눈치채고 손을 들어 입찰했다.“11억!”“12억!”……이번 경매는 혜경과 엉뚱한 쟁탈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하연은 13억에 회중시계를 손에 넣었다.혜경은 화가 나고 억울했지만, 하연이 또 그런 속임수를 쓸까 봐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그녀의 계좌에는 충분한 돈이 없었다.혜경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했다.“서준 씨, 안 본 사이에 하연 씨는 정말 딴 사람이 됐네.”“서준 씨랑 이혼할 때는 한 푼도 받지 않더니, 며칠 만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13억으로 회중시계를 사다니, 놀랄 정도로 손이 커졌네.”그녀는 서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하연 씨 DS그룹 대표 수석 비서로 이직했는
“내가 서준 씨한테 말해야 할 필요가 있나?”최하연은 여유롭게 일어나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한서준은 그들이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하연에게 물어볼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하연의 몸과 마음은 한때 자신의 것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남자의 것이라는 생각에 미간이 찌푸려지고 그 조차도 알 수 없는 소유욕이 마음 속에 솟아올랐다.“이혼한 진짜 이유가 뭐야?”서준은 우울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연은 붉은 입술로 헛웃음을 쳤다.“오랜 만에 만나서 이런 걸 묻는다고? 재밌어?”그녀는 서준의 어두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진짜 이유는 단 하나야, 난 참을 만큼 참았어!”“도대체 뭐가 불만인데!”“지난 3년 동안 넌 우리 집에서 먹고 자는 데 아무 문제없었어, 게다가 내 옆에서도 높은 직책을 맡았는데 지금 네가 사는 삶과 그때의 삶이 뭐가 다른데?”서준은 이혼 전날 밤 하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잠시 말문이 막혔다.“부부관계를 안 해서 그래?”그는 마음 속 상처 때문에 하연과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 일찍이 그녀는 잠결에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불렀고 자존심 때문에 그녀와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이 말을 들은 하연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도대체 머리에 뭐가 든 거야?”“그럼 지금 해줄게!”서준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하연 얼굴을 잡고 키스를 했다.짝!하연은 있는 힘껏 그를 밀었고 세차게 그의 뺨을 때렸다.뺨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서준은 혀를 깨물었다.그의 눈은 이글거렸고 눈 앞에 있던 하연은 점점 더 당황했다.하연은 너무 화가 나 눈물이 고였다.‘머저리 같은 놈, 내가 고작 그거 때문에 이혼한 것 같아?’‘내가 도대체 저런 사람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 참고 살았던 거야?’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했다.“3년 동안 보고 싶은 것만 봤으니 모르겠지. 눈 뜬 장님이랑 뭐가 달라!”하연은 서늘한 눈을 내리깔고 말을 덧붙였다.“아니지, 눈 먼 사람은 나야. 바보같이 당신이 나한테 감동하고 사랑에 빠질
최하연은 주먹을 꽉 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이 남자가 큰오빠가 말했던 내 결혼 상대이자 나씨 가문 바람둥이 나운석.’단순히 결혼 상대였다면 하연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이렇게 반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운석이 다섯 살때부터 그녀가 못생겼다며 소문을 내고 다녔고, 죽어도 그녀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해왔기 때문이다.운석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하연도 운석에게 관심이 없었다!그의 아버지인 나훈철이 하연의 스승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운석에게 지옥의 맛을 보여줬을 것이다!운석은 관심있는 여자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더구나 눈앞의 하연이 자신의 기억 속 최하연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물었다.“번호 좀 알려주실래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하연이 던진 손수건에 얼굴을 맞았고 그녀를 다시 잡으려 했지만 하연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화가 난 것처럼 걸음을 재촉하는 하연의 모습에 운석은 혼란스러웠다.“아니 저 분은 왜…….”그는 하연이 남기고 간 눈물 닦은 손수건을 주으며 말했다.“기분 상할 행동은 안 한 것 같은데…….”운석은 허탈한 얼굴로 한참동안 하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눈을 감더니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완전 내 스타일이야.”그 후 운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나 드디어 내 이상형을 만났어! 고귀한 자태를 뿜어내는 얼음 공주, 드디어 만났다고!”“진짜야! 이번엔 찐사랑이야!”안태현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내가 널 모를까 봐? 이것도 며칠이나 갈까~.”그의 말에 운석은 펄쩍 뛰며 말했다.“진짜라니까? 예전의 나로 돌아가도 그 여자를 만나면 순애보가 될 정도야!”옆에 있던 서준은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비웃었다.“차라리 복권 당첨 확률이 더 높겠다.”“그럼 나랑 내기해! 내가 한 달 안에 저 여자 꼬신다. 같이 찍은 사진 보고 부러워할 준비나 해.”……최씨 저택의 서재 안.하연은 앤티크한 나무 상자를 최하민에게 건네며 말했다.“
“시간 없어.” 하연은 단호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 소리가 들렸다. 하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메시지를 확인했고, 내용을 본 후 손에 힘이 들어갔다. 10분 후.하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멀리서 남준의 눈에 띄는 빨간색 스포츠카가 비상등을 켠 채 호텔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번화한 호텔 입구에서 유독 도드라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잠시 후, 차 문이 열리고 남준이 내렸다. 그는 오늘 블랙 패딩을 걸친 채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풍기며 여유롭게 하연을 바라보았다. “역시 올 줄 알았어.” 남자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고, 말투에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찬바람이 부는 겨울밤, 차가운 바람이 하연의 얼굴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하연은 몇 걸음 옮긴 뒤 걸음을 멈췄고, 남준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손을 들어 흩날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말해. 문자에 적힌 상혁 씨하고 관련해서 중요한 일이 뭔데?”남준은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형이 걱정돼?”“그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하연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남준은 그녀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가더니, 불과 반걸음 거리에 멈춰서 몸을 약간 숙였다. “너의 그 관심 나 한테도 좀 나눠 주면 안 돼?”그가 가까이 다가오며 내뱉은 말에 은은한 술 냄새가 풍겨왔다. 하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술 마셨어?”남준은 입가를 비틀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혹시 나 걱정하는 거야?”“착각하지 마.” 하연은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부남준,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여기서 시간 끌 여유 없어.”남준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어딘가 불만 섞인 어조로 말했다. “너 갈수록 성격이 우리 형이랑 닮아가네. 역시 잘 어울리는 커플이야.” 하연
하연은 밝게 웃으며 상혁이 건넨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갓 짠 오렌지 주스는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부 대표님이 직접 짠 오렌지 주스라 그런가, 확실히 맛이 다르네요. 정말 맛있어요.” 상혁은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레 손을 뻗어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 “맛있으면 자주 짜줄게.” 하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 감사히 잘 마실게요, 부 대표님!” “아니, 한참을 찾았는데 여기서 둘이서만 꽁냥거리고 있었네?” 문 앞에 기대어 서 있던 하성이 두 팔을 교차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혁, 너 요즘 이 녀석을 너무 애지중지하더라. 그러다 버릇 나빠지겠어.” “오빠!!” 하연은 볼이 부풀어올라 약간 투덜거렸지만, 옆에 있던 상혁은 태연하게 그녀를 감싸며 말했다. “애지중지하든 말든 내 마음이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하성은 두 손을 들며 장난스레 투항했다. “알았어, 알았어. 난 그냥 너희 둘이 잘 지내는 거 보니 마음이 놓여서 하는 소리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 계속 이렇게 잘 지내줘, 아주 보기 좋아!”그때 하연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부남준’이라는 이름이 뜨자 그녀는 잠시 긴장한 듯 눈빛이 흔들렸다. “오빠들, 먼저 얘기하고 있어요. 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하연이 자리를 비우고 복도로 나가자, 하성은 방금 전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상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요즘 너희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있더라. 동건 삼촌 쪽에서 뭔가 일이 있는 것 같던데?” 상혁은 하연이 마시다 남긴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시선을 복도 쪽에 고정한 채 무심하게 말했다. “첩이 ‘본처’의 자리를 노리는 거야. 흔한 일이잖아.” 하성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 “동건 삼촌이 그 여자를 꽤 오랫동안 봐줬던 모양이던데. 이제는 꽤 많은 걸 쌓아둔 듯하고, 한번 크게 판을 벌일
“뭐 하는 거야? 빨리 이 주스를 연회장으로 가져가!” 홀 매니저가 다가와 살짝 꾸짖었다. 여자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질투로 번들거리던 눈빛을 감추고는 얌전히 대답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다영은 태어나서 가사일 한 번 손댄 적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트레이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매니저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너 신입이야?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다영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가슴 속에서 송혜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고향 친척 중 하나가 DS그룹에서 일하고 있어. 오늘 밤엔 그 사람 신분을 쓰는 게 편할 거야.” 침착함을 되찾은 다영은 고개를 들어 냉정하게 대답했다. “저는 고객지원부의 진미입니다. 연회 인력이 부족해서 임시로 지원 나온 거예요.” 매니저는 그녀의 명찰을 한 번 흘깃 본 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트레이를 건네받았다. “신입이라면 전면에 나가면 실수하기 쉬워. 내실에서 돕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매니저가 떠난 뒤, 다영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다시 연회장을 바라봤을 때, 앞줄에 앉아 있던 하연과 상혁은 이미 모습을 감췄다. 2층 휴게실 안. 원신명은 한 손에 신선한 오렌지 한 봉지를, 다른 손에 포장을 뜯지 않은 녹즙기를 들고 들어왔다. “대표님, 주문하신 오렌지와 녹즙기입니다.” 원신명은 궁금한 듯 물었다. “대표님, 직접 오렌지 주스를 만드시는 건가요?” 상혁은 짧게 대답했다. “원 비서, 거기 두고 가면 돼.” 원신명은 얼른 다가가 도움을 자청했다. “대표님, 이런 건 제가 할게요.” “와이프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다는데, 남에게 맡길 수는 없지.” ‘와이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마치 그 단어를 그의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었던 것처럼 익숙했다. 원신명은 곧 깨달았다. ‘아, 대표님이 직접 최하연 씨를 위해 주스를 준비하시고 싶은 거구나!’ “원 비서, 연말인데도
최하성은 오늘 검정색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그의 차가운 분위기와 단정한 모습은 단번에 모든 직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최 대표님!”하성을 마주친 직원들은 공손하게 인사했다. 하성은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 시선을 주지 않고 빠르게 행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 저녁 만찬은 매우 풍성했다. 동서양의 요리가 조화를 이루며 대부분 직원들의 입맛과 식습관을 세심하게 고려한 모습이었다. 준비에 꽤 공을 들인 것이 분명했고, 결과적으로 반응도 좋았다. 연말 만찬이 시작되기 전, 하성은 DS그룹의 대표이사로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하성은 차분한 걸음으로 무대에 오르며, 그의 존재감은 단번에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가 화려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단 몇 마디 간결한 말로도,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 연말 행사는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하성이 등장하자마자 팬들과 네티즌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시청자 수가 십만 명을 돌파했다. [최하성 씨,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연예계에 최하성이 없으니 허전한 기분이에요. 최하성 씨, 돌아와 주세요!][다들 동감! 언제쯤 복귀할 수 있는 거죠?][복귀 요청 99%!!][...] 팬들의 댓글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하성의 인기는 생중계 플랫폼 순위에서도 단연코 1위를 차지했다. 무대 아래에서 생중계를 담당하던 진행자는 이 뜨거운 열기를 놓치지 않고 하성에게 다가갔다. “최 대표님, 생중계 채팅창에 팬들이 사장님의 새해 계획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하고 있어요. 오늘 이 특별한 밤에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성은 미소를 머금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 순간, 생중계 채팅창은 순식간에 폭발했다. 선물 아이콘이 화면을 뒤덮었고, 댓글은 끊임없이 새로 고침 되었다. “안녕하세요, 하성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와 DS그룹을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DL 그룹
“어머님, 정말로 부 회장님과 결혼하세요?” 이 얘기는 다영에게 있어 꽤 충격적이었다. 세간에서는 송혜선과 부동건의 관계를 두고 여러 말이 떠돌았고, 그중 가장 많이 들려온 것은 송혜선이 ‘첩’이라는 점이었다. 한때 정지철 부인도 이 사실을 꽤 꺼려했던 터라, 다영은 송혜선이 이렇게 대놓고 정식으로 자리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언제 결혼 승낙을 받으신 거예요?” 송혜선은 이미 불룩해진 배를 가볍게 쓸며, 깊은 눈빛 속에 숨겨진 야망을 드러냈다. “부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새해도 지나고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날 테니 우리 모자에게 반드시 정당한 신분을 보장해 주시겠다고 하셨어.” “그러니... 다영아, 우리 남준이를 믿어야 해. 지금은 잠시 밀려난 상황이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잖니?” 다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더욱 굳게 다졌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저는 언제나 남준 씨를 도울 거예요.” 송혜선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야지. 남준이도 절대 너를 저버리지 않을 거야.” 그러다 두 사람이 화제를 돌리며 덧붙였다. “지금 부 회장님이 부상혁을 중시하며 DL그룹의 운영을 맡긴 데는 이유가 있어. 결국은 부씨 가문의 장손이라는 명분 때문이지.” “하지만, 임신 초기에는 변수가 많아.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되겠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잖니?” “만약 그 아이가 사라지면, 부상혁 쪽의 지렛대도 없어진 셈이니 남준이한테 분명 유리한 상황이 될 거야. 그렇지 않겠니?” “...” 다영은 멍하니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님, 그게 무슨 뜻이에요?” 송혜선은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조그마한 흰색 약병을 다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약은 무색무취야. 일반인이 먹으면 아무 이상이 없지만, 임신한 사람이 먹으면 삼 일 안에 유산이 돼.” 다영의 손이 떨리며 본능적으로 병을 놓치듯 뺐다. “어머님,
“정다영 씨의 상상력은 참 풍부하시네요.” 상혁은 입꼬리를 비틀며 약간의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세상을 잘 모르는 아가씨다운 모습이라 참 순진하긴 한데, 이런 험한 세상에선 지나치게 순진한 건 별로 좋지 않아요.” 더는 말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상혁은 뒤돌아 떠났다. 다영은 마치 머릿속이 폭발이라도 한 듯, 귓가에서 찡하는 이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어요, 남준 씨는 그럴 리 없어요!” 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며 자신을 설득하려 애쓰며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이미 수없이 눌렀던 번호를 다급히 눌렀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건 여전히 차갑고 무미건조한 여성의 자동응답 소리뿐이었다. “안 돼!” 다영은 절망하며 비명을 지르고는 갑작스레 밖으로 뛰쳐나갔다. 깊은 겨울밤, 바람은 더욱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창밖의 거센 바람에 창문이 덜컹이며 울렸다. 병원의 VVIP 병실 안. 다영은 온몸을 떨며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는 텅 빈 듯했고, 난방이 틀어져 있어도 그녀를 감싼 차가운 공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다영아,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일이야?” 송혜선은 평소와 같은 말투로 물었고, 전혀 이상한 기색은 비추지 않았다. 실은 송혜선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정지철이 이제는 구속되고 정씨 가문이 더 이상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다영의 마음에는 여전히 남준의 존재가 얽매여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영에게서 더 많은 가치를 끌어낼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송혜선 또한 명확이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송혜선은 표정을 가다듬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 “자, 물 한 잔 마시고 몸 좀 녹여.” 다영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린 듯, 송혜선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님, 남준 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제발요!” 송혜선은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
며칠 사이, 정다영은 차갑게 닫힌 문을 수없이 마주했다. 한때 주변 사람들이 다영을 떠받들며 찬란한 별처럼 여겼지만, 이제 집안의 사건이 터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피하려고만 했다. 마치 다영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불행이 전염될 것처럼... 그렇게 다영은 세상의 차가운 이면과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연스레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바꾸었다. “송 여사와 남준이는 요즘 집에 없는 걸로 아는데, 정 다영 씨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상혁은 평범한 어조로 물었지만, 그 말은 다영을 잠시 멈칫하게 했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했다. “남준 씨가 곧 돌아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상혁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날이 추우니 안에서 기다려요.” 말을 마친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건 남자의 차가운 뒷모습뿐이었다. 다영은 상혁을 따라가며 급히 소리쳤다. “부 대표님, 잠깐만요...” 상혁이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할 말이라도?” 다영은 망설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며칠 동안 그녀가 이리저리 뛰어다닌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버지를 이 난관에서 구해내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아버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제 아버지와 관련된 일입니다.” 상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건 검찰 소관이에요. 전문 변호팀을 고용하면 사건의 진행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다영은 초조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부 대표님, 이건 분명 오해입니다. 제 아버지는 회사에 평생을 바친 분입니다. 아버지는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계약서를 조작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즉, 정지철은 딸을 희생하더라도 자신의 미래를 망칠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분명히 이번 일에는 뭔가 숨겨진 진실
최씨 가문 본가 후원에 있는 온실에서는 조용히 바둑알이 내려놓아는 소리가 들렸다. 상혁과 최동신은 마주 앉아 바둑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상혁아, 지금 이 바둑판은 승부가 거의 결정 난 것 같은데!” 바둑판 위에서 흑과 백이 치열하게 맞서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최동신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자네의 백돌이 반 집 차이로 우위를 점하고 있어. 대단해!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어.” 상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기백이 여전히 넘치시니 제가 아직 배울 점이 많습니다.” 최동신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탄식했다. “늙었지.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그는 곧 말을 돌려 흑돌을 손에 들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자네도 조심해야겠어.” 최동신은 그 말을 하며 흑돌을 바둑판 위에 툭 하고 내려놓았다. 그 돌이 놓인 자리로 인해 한순간 바둑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바둑판 위에 집중되었다. 상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손을 멈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위를 점하고 있던 상황이 단 한 수로 인해 역전이 된 것이다. “할아버지의 바둑 실력은 늘 감탄할 따름입니다. 제가 이 점을 간과하고 놓치고 있었네요.” 상혁은 차분하게 패배를 인정하며 판세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최동신은 손에 들고 있던 바둑알을 다시 주우며 훈계하듯 말했다. “그렇지. 이길 수 있는 상황도 한 수의 실수로 모두 망쳐버릴 수 있는 법이다.” 상혁은 최동신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최동신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들리는 말에 DL그룹의 실질적인 권한은 이제 자네가 잡았고, 자네 동생은 동남아 지사로 발령이 났다고 들었네.” “겉으로 보기엔 좋은 상황 같아 보이지만, 상혁이, 네가 한 수라도 실수하는 날엔 모든 걸 망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충고 이상의 뜻을 담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남준은 무심코 말을 뱉었다. 그의 음성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 남준은 방 안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연말 이후로 예정되어 있지 않았나? 어떻게 앞당겨진 거지?” 연지는 침착하게 보고했다. “들리는 말로는 이번 사건이 중대한 만큼 생각보다 빠르게 처리되면서 연말 전에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상혁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정규인의 입을 열어 내 약점을 찾아내려는 것이겠지.”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부상혁도 모르는 게 있지. 정규인의 입은 결코 열리지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야.” 연지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상무님, 그 말은 혹시...” 그러나 그녀의 말은 남준의 강렬한 눈빛으로 끊겼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연지는 남준의 의도를 즉각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정규인의 사건은 법원에서 열렸고, 법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찰들이 구치소에서 정규인을 호송해 나오자, 멀리서 그의 초췌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정규인의 기운 없는 모습에서 예전의 당당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법정 방청석을 둘러보다가, 맨 끝자락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다. 순간, 정규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갑작스럽게 방청석을 향해 달려들며 미친 듯이 외쳤다. “여기 왜 왔어! 당장 나가! 나가란 말이야!” 경찰들이 급히 정규인을 제지하려 했으나, 그의 필사적인 몸부림에 저지당했다. “진정해!” 경찰은 엄중히 경고했지만, 그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결국, 경찰봉이 그의 등을 강하게 내려쳤다. 퍽! 정규인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고, 그의 몸은 앞으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방청석의 허징인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