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는 평소처럼 차가운 말투로 메시지가 와 있었다.[오늘은 서영이 잘못이야. 내가 사과할 테니까 너도 서영이한테 사과해.]최하연은 화가나 모진 말을 뱉었다.“이게 사과라고 보낸 거야? 미친놈!”소리를 지른 그녀는 서준을 차단한 채 휴대폰을 옆으로 던졌다.정예나는 하연을 보며 은밀한 미소를 보냈다.“하연아, 모레 너네 하민 오빠랑 경매장에 갈 거야?”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가기로 했어.”“그럼 내가 옷을 골라줄 테니까 네 럭셔리한 드레스룸을 공유해 줘.”“좋아, 안에 있는 건 뭐든 골라 입어.”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나서 그녀는 드레스룸의 문을 열었다.예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우와.”“하연아, B시에 있는 우리 브랜드 숍보다 넓잖아!”3층으로 이루어진 드레스룸에는 여러 주요 명품 브랜드의 옷들과 악세서리로 가득했다.하연이 D국으로 돌아온 후 최하민은 드레스룸을 새로 꾸며놓으라고 지시했고, 이제 막 완성된 상태였다.“내 드레스룸도 나름 넓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예나는 화려한 드레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감탄을 금치 못했다.하연은 아무렇지 않게 드레스를 집어 그녀의 몸에 가져다 댔다.“괜찮네, 안 맞으면 다시 맞춰줄게.”‘그땐 어려서 몰랐는데, 상속받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그녀가 말하던 그때 집사인 장창석이 문을 두드렸다.두 명의 하녀가 그의 뒤를 따라 드레스를 가득 들고 나타났다.장창석은 정중하게 말했다.“막내 아가씨, 프라다에서 이번 시즌 수제 맞춤 드레스를 보내왔습니다. 시장에 선보이기 전에 먼저 고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네, 알겠어요. 거기 두시면 돼요.”하연은 예나를 끌어당기며 담대하게 말했다.“원하는 대로 골라 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보내달라고 할 게.”예나는 하연의 절친이었다.예나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그녀의 얼굴을 잡고 볼에 뽀뽀세례를 했다.“하연아, 역시 너 밖에 없어.”드레스룸은 웃음 소리로 가득했다.롤스로이스를 타고 있던
오늘 최하연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그녀의 얼굴은 화사하고 아름다웠으며, 출시하지 않은 고급스러운 핸드메이드 맞춤 드레스는 그녀를 더욱 우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치명적인 그녀의 외모에 사람들은 하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서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서준의 눈은 복잡해 보였고, 온화하고 얌전한 모습에서 화려하고 도도한 모습으로 바뀐 그녀의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으로 하연을 바라보며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정말 변했어.’서준의 기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한 대표는 정말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네요.”서준에게 다가간 하연은 붉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에 조롱의 빛이 가득 담겼다.“대표님은 어디 있어?”서준이 차갑게 물었다.하연은 비웃으며 말했다.“못 봤어? 나 혼자 와서 실망했나?”기분 나쁜 메시지를 받은 하연은 오빠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를 만나고 싶으면 오빠 의사부터 물어야지!’자신의 의도를 짐작한 것 같은 하연의 조롱에 서준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경매 주최자는 곧바로 웃으며 하연을 맞이했다.“아가씨, 이쪽으로 오세요.”하연은 서준을 무시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화려한 모습을 본 서영은 서준에게 귓속말했다.“오빠, 내 말이 맞지? 어떻게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었겠어?”서준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라 말했다.“닥쳐.”화가 난 것 같은 오빠의 모습을 본 서영은 화가 났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혜경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서준에게 말했다.“들어가자.”30분 후, 경매가 시작됐다.지적이고 우아한 여자 경매사가 경매품을 소개했다.“얼음 종 에메랄드 팔찌, 시작가 4천만원부터 시작합니다!”빛을 받은 팔찌는 섬세하고 투명한 느낌을 줬다.하연은 곧 서준의 할머니인 강영숙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손을 들어 제시했다.“6천.”“자, 6천만원 나왔습니다.”뒷줄에 있던 혜경은
직원은 재빠른 행동으로 팔찌를 가져와 민혜경이 수표를 작성할 때까지 기다렸다.경매에 참가한 사람은 모두 자신의 회사를 보고했고, 수표를 빼돌릴 시 경매장으로부터 고소를 당할 수 있었다.혜경은 어쩔 수 없이 수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경매장 뒷좌석.나운석의 사슴 같은 눈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오늘 무슨 일이래? 호구도 잡고.”어머니 선물로 산 이 팔찌는 기껏해야 5천만원이었지만 보석상한테 사기당해 4천만원의 바가지를 썼고, 그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경매장에 가져간 것이다.오직 운석의 시선은 원한을 품고 가격을 제시하던 아름다운 여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누구나 예쁜 것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아름다움이 배가 된 하연에게는 어떻겠는가?운석의 관심은 모조리 하연에게 향했다.“왜 이렇게 낯이 익지? 누군지 알아요?”운석은 옆에 있는 HB그룹 사장에게 물었다.“최하연이라고 들었어요.”“최하연?”운석이 그녀의 이름을 곱씹자 문득 못난이 최씨 집안 막내 딸이 스쳐 지나갔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안 돼…….’‘그럴 리 없어!’그는 눈을 비비며 하연의 아름다운 옆모습을 재차 확인했고 확신했다.“동명이인 일 거야.”“이번 상품은 E국 앤틱 회중시계입니다, 시작가 9억부터 시작합니다!”하연은 그 회중시계가 최하민이 알려준 시계임을 눈치채고 손을 들어 입찰했다.“11억!”“12억!”……이번 경매는 혜경과 엉뚱한 쟁탈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하연은 13억에 회중시계를 손에 넣었다.혜경은 화가 나고 억울했지만, 하연이 또 그런 속임수를 쓸까 봐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그녀의 계좌에는 충분한 돈이 없었다.혜경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했다.“서준 씨, 안 본 사이에 하연 씨는 정말 딴 사람이 됐네.”“서준 씨랑 이혼할 때는 한 푼도 받지 않더니, 며칠 만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13억으로 회중시계를 사다니, 놀랄 정도로 손이 커졌네.”그녀는 서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하연 씨 DS그룹 대표 수석 비서로 이직했는
“내가 서준 씨한테 말해야 할 필요가 있나?”최하연은 여유롭게 일어나 시큰둥한 표정으로 답했다.한서준은 그들이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하연에게 물어볼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하연의 몸과 마음은 한때 자신의 것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남자의 것이라는 생각에 미간이 찌푸려지고 그 조차도 알 수 없는 소유욕이 마음 속에 솟아올랐다.“이혼한 진짜 이유가 뭐야?”서준은 우울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연은 붉은 입술로 헛웃음을 쳤다.“오랜 만에 만나서 이런 걸 묻는다고? 재밌어?”그녀는 서준의 어두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진짜 이유는 단 하나야, 난 참을 만큼 참았어!”“도대체 뭐가 불만인데!”“지난 3년 동안 넌 우리 집에서 먹고 자는 데 아무 문제없었어, 게다가 내 옆에서도 높은 직책을 맡았는데 지금 네가 사는 삶과 그때의 삶이 뭐가 다른데?”서준은 이혼 전날 밤 하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잠시 말문이 막혔다.“부부관계를 안 해서 그래?”그는 마음 속 상처 때문에 하연과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 일찍이 그녀는 잠결에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불렀고 자존심 때문에 그녀와 부부관계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이 말을 들은 하연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도대체 머리에 뭐가 든 거야?”“그럼 지금 해줄게!”서준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하연 얼굴을 잡고 키스를 했다.짝!하연은 있는 힘껏 그를 밀었고 세차게 그의 뺨을 때렸다.뺨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고 서준은 혀를 깨물었다.그의 눈은 이글거렸고 눈 앞에 있던 하연은 점점 더 당황했다.하연은 너무 화가 나 눈물이 고였다.‘머저리 같은 놈, 내가 고작 그거 때문에 이혼한 것 같아?’‘내가 도대체 저런 사람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 참고 살았던 거야?’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했다.“3년 동안 보고 싶은 것만 봤으니 모르겠지. 눈 뜬 장님이랑 뭐가 달라!”하연은 서늘한 눈을 내리깔고 말을 덧붙였다.“아니지, 눈 먼 사람은 나야. 바보같이 당신이 나한테 감동하고 사랑에 빠질
최하연은 주먹을 꽉 쥐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이 남자가 큰오빠가 말했던 내 결혼 상대이자 나씨 가문 바람둥이 나운석.’단순히 결혼 상대였다면 하연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가 이렇게 반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운석이 다섯 살때부터 그녀가 못생겼다며 소문을 내고 다녔고, 죽어도 그녀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해왔기 때문이다.운석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하연도 운석에게 관심이 없었다!그의 아버지인 나훈철이 하연의 스승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운석에게 지옥의 맛을 보여줬을 것이다!운석은 관심있는 여자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더구나 눈앞의 하연이 자신의 기억 속 최하연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물었다.“번호 좀 알려주실래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하연이 던진 손수건에 얼굴을 맞았고 그녀를 다시 잡으려 했지만 하연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화가 난 것처럼 걸음을 재촉하는 하연의 모습에 운석은 혼란스러웠다.“아니 저 분은 왜…….”그는 하연이 남기고 간 눈물 닦은 손수건을 주으며 말했다.“기분 상할 행동은 안 한 것 같은데…….”운석은 허탈한 얼굴로 한참동안 하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눈을 감더니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완전 내 스타일이야.”그 후 운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나 드디어 내 이상형을 만났어! 고귀한 자태를 뿜어내는 얼음 공주, 드디어 만났다고!”“진짜야! 이번엔 찐사랑이야!”안태현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내가 널 모를까 봐? 이것도 며칠이나 갈까~.”그의 말에 운석은 펄쩍 뛰며 말했다.“진짜라니까? 예전의 나로 돌아가도 그 여자를 만나면 순애보가 될 정도야!”옆에 있던 서준은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비웃었다.“차라리 복권 당첨 확률이 더 높겠다.”“그럼 나랑 내기해! 내가 한 달 안에 저 여자 꼬신다. 같이 찍은 사진 보고 부러워할 준비나 해.”……최씨 저택의 서재 안.하연은 앤티크한 나무 상자를 최하민에게 건네며 말했다.“
곧 최하민도 거실에 나왔다.그는 나훈철을 반갑게 맞이한 후 한서준 앞에 섰다.두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비슷했지만 서준은 부탁하러 온 입장이기에 조금은 약했다.“최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반갑습니다, 한 대표님.”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었을 때 서준은 하민에게서 느껴지는 적대감에 적잖이 당황했다.계량한복을 입고 있는 나훈철은 인자한 미소를 띠고 눈가에 주름이 겹쳐져 눈빛에서는 사업가 특유의 노련미가 묻어져 있었다.그는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하민아, 이번 박람회 건으로 서준이랑 같이 이야기하러 왔단다. DS그룹에서 HT그룹을 거부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오해가 있었던 건 아니니?”하민의 서늘한 눈은 서준을 향했다.“오해는 없습니다. 그저 DS그룹은 HT그룹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HT그룹은 이번 박람회 참가를 위해 자금을 늘릴 수 있습니다. 최 대표님이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서준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만으로 이곳에 왔다. 이번 박람회에 참가하기만 하면 HT그룹이 지불한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올 수 있었다.하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커피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안 됩니다.”상대방이 자신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말도 섞기 싫어하는 모습을 본 서준은 분노가 차올랐다.“최 대표님, 인정사정이 없으시네요, 너무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없이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하지만 이때 나훈철이 중재자로서 이야기했다.“오늘은 내가 중재자로 왔으니 두 사람은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게. 그래도 명색이 그룹 대표들인데 앉아서 좋게 대화하지 그래?”서준은 그의 말에 분노를 누그러뜨렸다.‘그래, 싸우려 들면 되려던 것도 안 될 거야.’그는 차갑고 어두운 눈으로 말했다.“최 대표님께서 만족하실 만한 조건을 말씀해 주시면 저희 HT그룹에서 검토 후 이행하겠습니다.”“한 대표께서 HT그룹 연구팀의 핵심 기술을 DS그룹과 공유한다면 얘기
“하연이가 B시로 가는 구나.”이 소식을 들은 나훈철은 눈을 반짝이며 흥분했다.“하연이가 돌아오면 우리 두 가문이 이전에 얘기했던 정락결혼도 날짜를 정해봐야 하지 않겠니?”최하민은 담담히 대답했고, 나훈철만큼 적극적이지 않았다.“그건 당사자가 알아서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거니까요.”나훈철은 하민의 뜻을 이해했다.자기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그는 늦둥이로 나운석을 낳아 오냐오냐 키운 탓에 버릇이 없었다.NW그룹의 대표 자리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즐겨왔고 최씨 가문에서 바라는 사위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최씨 가문의 유일한 딸인 최하연은 모두의 사랑을 받고 애지중지 키웠기에 최씨 가문은 당연히 딸을 이런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기 싫을 것이다.‘하연이를 본 적이 있었는데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 며느리감으로 제격이었어.’‘아무래도…… 이번에는 운석이한테 정신을 차리고 B시에 가서 기회를 잡으라고 상기시켜야겠어. 부모로서 이정도는 도와줘야지.’빨리 돌아가 운석에게 이 일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나훈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고, 하민은 그를 배웅했다.다시 거실로 돌아갔을 때, 하연이 서재에서 나왔다.“오빠, 나보고 B시 지점 대표 자리를 맡으라는 거야?”하민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네가 B시에 대해 잘 알고 있잖아. 전략적으로 배치를 한 거야. 여기에 있을지 B시로 갈지는 네 결정에 달려 있어.”하연의 눈은 자신감으로 빛났다.“오빠, 그럼 B시 지점으로 갈게.”하민은 하연에게 하나를 상기시켰다.“B시에 가기로 결정한 이상 DS그룹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해. 낙하산이라는 말 듣지 않게 열심히 해.”이번 D국에서 패배의 맛을 본 서준은 B시로 돌아간 후 DS그룹에 자비를 베풀지 않고 계속해서 경쟁할 것이다.하연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여동생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었다.하연은
“그렇게 헤어지고 싶다는데 들어줘야지!”“변호사한테 전화해서 언제 가정법원에 갈지 약속을 잡아.”한서준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그의 가슴에 쌓인 분노는 어디에도 표출할 곳이 없었다.그러나 구동후는 눈치 없이 전화를 끊지 않고 말을 건넸다.[대표님, 상대 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언제든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준은 통화 중이던 휴대폰을 바닥에 세차게 내려쳤다.머리를 쓸어 넘긴 그는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최하연…… 진짜 지독하다 지독해!”……DS그룹 B시 지사.하연은 회의실 문을 열고 섬세하고 우아한 OL정장을 입은 여러 임원들과 정예나 앞에 나타났다.이번에 하연과 화해한 예나는 F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절친과 함께 경력을 쌓고 자신의 디자이너 브랜드 숍을 열고 싶어했다.하연은 자신과 예나를 소개했다.“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이번에 D국 본사에서 파견되어 대표직을 맡게 된 최하연입니다. 제 옆에 있는 이 분은 정예나 부사장입니다. 다같이 앞으로의 업무에 성실히 임하고 B시 지사의 실적을 올리기 바라겠습니다.”B시 지사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D국 본사에서 파견된 임원들로 하연보다 1년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오랫동안 공석이었던 사장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다짐을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낙하산이 이 자리를 꿰찰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몇몇은 하연이 DS그룹 수석 비서였다는 사실만 알았지 그녀의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최 대표님, 환영합니다!”“잘 부탁드립니다!”하지만 본부의 결정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만을 토해내지 못함에 못마땅했다.“대표님은 예전에 한서준 대표의 비서였지 않습니까? 지금은 DS그룹의 대표직에 오르셨는데 본사에서 이전 상사에게 회사 비밀을 유출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십니까?”이 말을 들은 예나는 하연을 변호할 준비가 되었지만 하연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막았다.그 말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임원들 중 가장 뛰어난 성과를 거둔 개발팀 본부장
하연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국내든 해외든, 저도 차를 좋아하지 않아요. 너무 쓰잖아요.” 상혁은 시선을 이현에게 옮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는 제가 주인이라, 한 상무님께 차를 대접하는 건 좀 그렇죠.”그는 슬기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제가 먼저 한 상무님께 한 잔 올립니다.”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만, 상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하연은 손에 힘을 주어 옷자락을 꽉 쥐었고, 마음속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그렇다면 저도 주인 중 한 사람인 셈이니, 비록 처음 만난 건 아니지만, 한 상무님과 최 사장님이 함께 있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니까 저도 한잔 해야겠군요.” 슬기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가 상혁 옆에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랜 부부처럼 자연스러웠다. 이현은 슬기의 말을 듣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며 또 잔을 받아들이고, 결국 두 잔을 기꺼이 마셨다. 그러나 슬기는 계속해서 말했다. “최 사장님은 차도 술도 안 마시나요?” “하연이는 안 마십니다.” 이현은 하연을 보호하듯 그녀를 뒤로 숨기며 말했다. “제가 대신 마시죠.” 결국 그는 총 네 잔을 마셨다. 하연은 분명 보았다. 상혁이 무심히 탁자에 올려놓은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부풀어 올랐고, 그건 상혁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것은 그가 곧 자신의 감정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할 전조였다. “훌륭한 주량이군요. 이렇게 된 이상, 한 상무님과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취하도록 달려보겠네요.” 상혁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술병을 집어 들고 병뚜껑을 따며 말했다. “몇 년 전에는 한 상무님과 직접 대면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기회를 잡았으니, 이것도 인연이겠죠.” 이현은 상혁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것은 오랜 세월 쌓인 불만과 질투였다. 단순히 이현의 신분이 아닌, 하연의 마음을 흔들었던 ‘한명준’의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하연을 어릴 때부터 지켜온 상
슬기는 몇 가지 요리를 더 주문하고는 웃으며 고개를 들어 말했다. “또 만났네요, 최 사장님.” 하연은 너무나 어색해서 순간 뒤로 물러서고 싶었다. ‘이 두 사람이 저녁을 같이 먹고 있어?!’ 상혁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술을 따라 잔을 들어 올리며 이현에게 권했다. “한 상무님, 한잔하시죠.” 이현은 여유로운 태도로 하연에게 말했다. “부 대표님께서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는데, 시간도 아직 여유롭고, 함께 하시죠.” 하연은 도망칠 길이 없었다. “지난번 만남은 소울 칵테일에서였죠. 그때 이후로 참 오랜만이네요. 그 가게 주인이 이제 한 회사의 상무님으로 변신하셨다니.” 상혁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이현에게 술잔을 건넸다. “그때 부 대표님의 배려 덕분에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현은 잔을 들어 올리며 상혁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술잔, 그때의 감사함을 표하는 겁니다.” “잠깐!! 술을 마시면 안 돼요!!” 하연은 상혁이 잔을 드는 순간 본능적으로 외쳤다.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하연에게 쏠렸다. “제 말은...” 하연은 사람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해명했다. “비서가 일찍 퇴근했다고 하니까... 직접 운전해야 하니 술은 피하는 게 좋겠어요.”이현은 하연의 이 말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은근히 기뻐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부대표님께서도 저를 너무 어렵게 하시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상혁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차가운 기운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최 사장님께서 한 상무님을 정말 많이 신경 쓰시나 봐요. 오늘 뉴스도 봤는데, 두 분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참 낭만적이고,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더라고요.”슬기는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더했다.“이 잔은 제가 최 사장님께 바칩니다.”하연은 슬기를 무시하고 오직 상혁만을 바라봤다. 상혁
상혁의 눈 속에 ‘짙게 깔린 먹구름’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몸을 뒤로 기대면서 슬기가 내민 후추가 들어가 있는 국을 건드리지 않았다. 의사가 당부했듯이, 그의 위장은 매운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특히 후추 같은 자극적인 음식은 더더욱 피해야 했다.이미 30분이 지나갔지만, 옆 방에서는 아직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상혁은 셔츠의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옆 방에서는, 양국성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방 안에는 하연과 이현, 두 사람만이 남았는데,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하연은 자리에 앉아 말을 들은 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저도 이미 한명준 씨에 대해 조사했어요. 전에 한명준 씨가 팀 내에서 누군가의 모함을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조금 전 말한 그 내용은 잘 알고 있었어요.”이현도 놀라지 않은 채 말했다. “하연 씨, 여전히 저를 신경 쓰고 있잖아요.”그의 직설적인 말에 하연은 당황했다. “전 그저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한명준 씨와 전혀 상관없었어요.”“B시에서 재판이 열리던 날, 저는 한서준을 만나러 갔어요. 그때의 상황에 관해 묻자, 한서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어요. 하연 씨는 그날, 학교에서 저를 만나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 B시까지 찾아왔고, 마침 저와 비슷하게 생긴 한서준을 보고 저라고 착각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수년 동안 한서준에게 저라고 믿으며 굽신거리며 살아왔다는 거였어요.”이 이야기를 할 때, 한서준은 분노에 찬 눈으로 피가 맺히듯 붉어진 눈을 하고 난간을 붙들고 고함을 질렀다.“이 말을 듣고 네가 만족했냐? 기뻤냐?”이현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몇 년 동안, 하연 씨 마음속에 정말 저에 대한 사랑은 없었던 거예요?”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하연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서준을 사랑하지 않았고, 한서준에게 느낀 감정은 단지, 그를 옛날의 한명준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서빙하는 직원은 방 안의 이상한 분위기를 모
하연이 예상했던 답과 똑같았다.하연은 입술을 꾹 누르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그러니까, 하연 씨는 진작부터 제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거죠? 그 사실을 뒤늦게 안 게 아니고요.”“저는 왕씨 가문의 삶이 싫어해요.” “그런데 이제는 왕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요.” 하연은 몸을 옆으로 돌려 정확하게 지적했다.이현은 자리에 앉아 술기운에 머리가 띵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 밖을 보았다. 남녀 한 쌍이 지나가는 게 보였고, 남자의 시선이 잠시 이현에게 떨어졌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그 남자는 바로 부상혁이었다.이현은 시선을 거두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제가 한명준으로 돌아가려면 왕씨 가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하연 씨, 지금 저에게 원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지만, 괜찮아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연 앞에 서서 아슬아슬한 거리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부씨 가문의 부남준이 권력을 잡으려는 걸 들었어요. 누가 끝까지 웃을지 아직 몰라요. 하연 씨도 신중하게 선택했으면 좋겠어요.”“부 대표님, 이쪽입니다.” 반대편에서 주슬기가 웃으며 손짓했다.그 순간,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혁이 본 것은 바로 하연과 ‘한명준’의 다정한 모습이었다.하연은 즉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창가 쪽으로 가서 가방을 집어 들었다. “한 상무님, 제가 먼저 가야 할 것 같아요. 한 상무님은 정말 마음이 있다면 양 국장님에게 말씀을 좀 잘 드리세요. 한 상무님의 능력이라면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제가 그때 일부러 우리 약속했던 장소에 안 나온 게 아니에요. 누군가의 모함을 당한 거였어요.” 이현은 하연의 퇴장을 막으려는 듯 무겁게 말을 꺼냈다.하연의 등이 순간 경직되었다.“뭐라고요?” ...아무리 고급스러운 여자라도,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참을 수 없었다.슬기는 수사 해당화 아래에서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제가
전용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천천히 열리자마자 주슬기가 눈에 들어왔다.“부 대표님.” 슬기는 공손하게 인사하며 미소를 띠고 다가갔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들러봤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운이 좋네요.”상혁은 코트를 들고 약간 무심한 태도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나요?”“원래는 없었는데요... 지금은 저녁 식사나 함께할까 해서요. 몇 가지 상의할 일이 있거든요.” 슬기는 재빠르게 대답하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상혁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다가 잠시 생각한 뒤, 뜻밖에도 승낙했다.“좋아요, 장소는 제가 정하죠.”슬기는 의아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네, 좋아요.”곧 원신민이 급하게 와서 상혁의 지시를 받았다. “오늘 당장 시내에서 가장 큰 식당에 방을 예약해.”그곳의 방은 최소한 3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기에, 원신민은 바쁘게 움직였다. 슬기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의할 게 큰일은 아닌데, 이렇게 정식으로 예약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상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업무 관련된 일이라면 허술하게 할 수 없죠.”상혁은 대수롭지 않게 밖으로 나갔고, 그가 탄 엘리베이터와는 다른 엘리베이터가 마침 내려오고 있었다.“부 대표님의 비서가 낯이 익어요. 어디서 본 적 있죠?” 슬기가 호기심을 보였다.이 업계에서, 특히 이사급의 비서라면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원신민은 과거에 이씨 가문의 장남을 도와주면서 정계와 조직폭력배 쪽 모두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방을 예약하는 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그 식당의 매니저가 직접 나와 원신민을 맞이했다. “원 비서님,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방을 예약하신다고요? 1층과 2층은 이미 만석이지만, 최상층에 있는 방은 아직 비어있습니다. 그곳을 부 대표님께 해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원신민은 상혁이 슬기와의 식사에 그렇게 화려한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손으로 테
이현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양국성도 조금 의외였다.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은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양국성은 이현의 제안에 맞장구를 치며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제가 한턱 낼게요.”사실 이현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고, 양국성도 ‘한명준’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게다가 이번에 오기 전, 정태산에게도 은밀히 말을 들은 터라, 양국성은 자신의 권한 내에서 최대한 ‘한명준’을 도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양국성도 이미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했으니 하연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차 안에서, 정태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분명히 가기 싫어하셨잖아요.” 하연이 대답했다. “한명준이 이 사업을 맡게 된 건 예측했지만, 남산을 선택할 줄은 몰랐어. 만약 내가 그때 남산 땅을 받아들였더라면, 이 사람이 어디를 선택했을지 궁금해.” 하연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이건 혹시 속내를 감추기 위한 선전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연이도 이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이현은 손을 뒤로 살짝 뻗어 그녀를 가볍게 받쳐주었다. “이모가 이번 사업을 저한테 맡기면서, 사업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거예요. 이제 저도 더 이상 가게만 운영하던 ‘손이현’이 아니에요.” 하연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다시 상기시킬 필요는 없어요.” 이현은 깊은 눈빛으로 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연 씨가 기억하는 손이현은 더 이상 없어요. 이제부터 돌아온 건 과거의 한명준만 있어요.” 그제야 하연이 그를 흘깃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과거의 한명준은 의기양양하고 당당한 청년이었죠. 지금 당신의 모습이 그 당당한 청년과 닮은 게 뭐가 있어요?” 그녀가 기분이 나쁘면 말이
하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원 비서한테 우유로 바꾸라고 했어용!” 상혁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하연은 능숙하게 일어섰다. “나도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야 해요. 커피는 더 이상 마시면 안 돼요. 저녁에 또 올게요.” 상혁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면 이미 퇴근했을 텐데.” “그럴 리가 있나요? 나 원 비서한테 물어봤는데... 당신은 요즘 새벽까지 매일 야근한다면서?” 하연이 문가에 서서 농담처럼 말했다. “부 대표님, 총책임자가 하는 일 정말 쉽지 않죠?” 상혁은 얼굴을 돌리며 미소를 숨겼다. “내일 당장 원신민 해고해야겠군.” ‘원 비서 감히 이렇게 빨리 날 배신했더니...’하연은 오늘도 신에너지와 관련된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B시에서 온 조사팀과의 회의였다. 제대로 된 홍보팀이 없는 상황이라, 하연은 CS그룹의 몇몇 직원을 빌려와 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저녁 만찬에서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장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낮잠은 잘 주무셨나요? 방은 만족하셨는지요?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제가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하연 웃으며 인사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양국성은 친근하게 하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최 사장님께서 세심하게 신경 써주신 덕분에 일이 아주 순조로웠어요. 그리고 정태산 지사님께서도 최 사장님께 안부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한 마지막 말은 하연에게 작게 속삭였다. 하연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기색이 스쳤고, 정태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사님께 제 안부 전해주시고, 부상혁 대표님께서도 잘 지낸다고 말씀드려주세요.” “부상혁 대표님이요?” 양국성이 놀라며 물었다. “아, 최 사장님께서 오해하신 것 같네요. 그날 제가 보고하러 갔을 때 한 검사장님도 계셨거든요. 그분이 최 사장님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한창명? 의외의 인물이었
하연은 말한 대로 다음 날 아침, 집에서 일하는 요리사에게 부탁해 위장에 좋은 닭죽을 끓였다. 요리사는 하연이가 이렇게 식단에 신경 쓰는 걸 처음 본 듯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이걸 회사에 가져가실 건가요?” 하연은 조금 머쓱해하며 말했다. “내가 먹는 게 아니에요.” 요리사는 놀란 듯 물었다. “아가씨, 남에게 주는 거면, 직접 요리해 보시는 게 어때요? 남자가 감동할 거예요.” 하연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알아요. 근데,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그녀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손에 들린 수프 냄비를 들고 바로 DL그룹으로 향했다.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하연은 원신민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게 해줘요.” 원신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 사장님, 부 대표님은 아직 회의 중이신데요.” “언제 끝나요?” “아마도 두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하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다 됐잖아요. 이렇게 직원들까지 압박하는 거 아니에요?” 원신민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회사 일이니까요.” 하연 한참을 생각하다가 손짓하며 말했다. “내가 너희 대표님은 밥을 먹게 할 방법이 있는데, 들어볼래요?” 원신민은 귀를 기울였다.5분 후, 비서가 회의실로 들어와서 말했다. “대표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혁은 불쾌해하며 말했다. “바로 말해.” “대표님 책상 위에 있는 백란화에 뱀이 말려들었습니다...” 회의실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몇몇이 외쳤다. “그런 건 부하 직원들이 처리하면 되지 않나? 굳이 부 대표님께서 나설 일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상혁의 안색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부동건은 난초를 매우 사랑했고, 그 백란화는 상혁이 부동건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다. 백란화를 돌보는 일은 상혁이 DL그룹을 물려받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져 오던 상혁은 잠시 쉬기로 결심하며
하연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바로 상혁의 귀에 속삭이듯 다가가며 말했다. “아직도 반응이 있네, 부 대표님은 아무나 거절하지 않는 건가요? 오늘 만약 다른 여자가 여기 앉아 있었다면...” 그녀의 농담과 향기가 귀를 간지럽히자, 상혁은 잠시 고개를 돌려 미묘하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다른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럼 나만?” 하연의 말에 상혁은 약간 무너지는 듯했지만 이내 그녀를 밀어내며 대꾸했다. “나의 의미는, 너도 아니야.” 하연의 얼굴에 순간 실망이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내밀며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상혁은 잠시 침묵하며 그가 느끼던 생리적 반응이 가라앉길 기다린 후 차분히 말했다. “내려.” “당신은 의사한테 가는데, 내가 왜 내려야 해요?” “다시 붕대 싸매.” 상혁은 이 말을 던지며 차에서 내렸다. 하연도 그제야 그 의미를 깨닫고는 피식 웃으며 따라나섰다.F국에 돌아온 후 상혁의 위장병이 계속 재발하고 있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식사가 병을 악화시켰고, 의사는 그의 상태를 보고 좋지 않은 얼굴을 했다. “부 대표님, 몸이 재산입니다.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망가집니다.” 하연은 밖에서 간호사가 다시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 그 말을 들었다. 상혁은 숨을 고르며 가볍게 대답했다. “제 몸 상태는 제가 잘 알아요. 약만 먹으면 돼요.”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잔소리를 했다. “위장은 쉬게 해야 하는데, 아플 때 약을 먹는 건 이미 늦은 겁니다. 평소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혹시 비서도 없으십니까?” 상혁도 많은 비서가 있긴 했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비서가 가져다준 음식은 몇 시간 동안 방치되곤 했다. 오늘도 병원에 온 것은 원신민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의사가 잔소리를 멈추자, 상혁은 미세하게 당황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사는 밖을 힐끗 보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밖에 계신 아가씨는 대표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