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헤어지고 싶다는데 들어줘야지!”“변호사한테 전화해서 언제 가정법원에 갈지 약속을 잡아.”한서준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그의 가슴에 쌓인 분노는 어디에도 표출할 곳이 없었다.그러나 구동후는 눈치 없이 전화를 끊지 않고 말을 건넸다.[대표님, 상대 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언제든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준은 통화 중이던 휴대폰을 바닥에 세차게 내려쳤다.머리를 쓸어 넘긴 그는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최하연…… 진짜 지독하다 지독해!”……DS그룹 B시 지사.하연은 회의실 문을 열고 섬세하고 우아한 OL정장을 입은 여러 임원들과 정예나 앞에 나타났다.이번에 하연과 화해한 예나는 F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절친과 함께 경력을 쌓고 자신의 디자이너 브랜드 숍을 열고 싶어했다.하연은 자신과 예나를 소개했다.“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이번에 D국 본사에서 파견되어 대표직을 맡게 된 최하연입니다. 제 옆에 있는 이 분은 정예나 부사장입니다. 다같이 앞으로의 업무에 성실히 임하고 B시 지사의 실적을 올리기 바라겠습니다.”B시 지사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D국 본사에서 파견된 임원들로 하연보다 1년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오랫동안 공석이었던 사장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다짐을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낙하산이 이 자리를 꿰찰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몇몇은 하연이 DS그룹 수석 비서였다는 사실만 알았지 그녀의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최 대표님, 환영합니다!”“잘 부탁드립니다!”하지만 본부의 결정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만을 토해내지 못함에 못마땅했다.“대표님은 예전에 한서준 대표의 비서였지 않습니까? 지금은 DS그룹의 대표직에 오르셨는데 본사에서 이전 상사에게 회사 비밀을 유출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십니까?”이 말을 들은 예나는 하연을 변호할 준비가 되었지만 하연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막았다.그 말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임원들 중 가장 뛰어난 성과를 거둔 개발팀 본부장
쇼핑거리 가운데 통유리로 된 5층 건물이 우뚝 서 있다.오늘은 정예나가 디자이너 브랜드 숍을 다시 여는 날이었다.3년 동안 하지 못했던 졸업 작품을 이제 다시 시작했다.위치는 3년 전보다 더 좋고 넓어졌다.내부는 독특하게 꾸며진 화려한 조명과 엄선된 명품 브랜드 의류와 악세서리로 가득 찼다. 통유리로 된 심플한 외관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당시 두 사람의 독특한 디자인과 독창적인 코디는 B시 귀족층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젊은 여성들의 관심을 끌었다.공식적으로 가게를 오픈하기 전부터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섰는데, 모두 대기표를 뽑은 후 기다리는 명문가 출신 여성들이었다.회사에 있던 최하연도 예나의 부름에 달려 나와 손님들을 맞이했다.오전은 쉴 틈이 없었고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줄어들었다.하연과 예나는 지친 내색이 가득했다.예나는 하연의 팔을 껴안으며 말했다.“하연아, 이러고 있으니까 꼭 3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지 않아?”“그러게, 3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야.”하연은 예나의 얼굴을 만지며 미소 지었다.“하연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나도.”예나는 하연이 쉴 수 있도록 혼자서 위층으로 올라가 상황을 살폈다.홀로 소파에 앉아 있던 하연은 우연히 지나가던 한서영과 민혜경의 모습을 봤다.고급스러운 이번 시즌 드레스를 입고 있던 서영은 카메라를 들고 매장에서 연신 셀카를 찍고 있었고 그 중 잘 나온 사진 9장을 편집한 후 글을 올렸다.[참으려 했는데 유명한 디자이너 브랜드 숍이 보이길래 또 질러버렸다…….]SNS에 글을 올린 그녀는 흥분된 마음에 혜경을 끌고 돌아다녔다.서영은 3억원 상당의 고급스러운 이번 시즌 제품을 꺼내 들고 간절한 눈빛으로 혜경을 바라봤다.“새언니, 이거 나한테 잘 어울리지?”그녀의 말은 너무나도 투명했다. ‘당신은 내 새언니이고 돈도 많으니 나를 위해 이걸 사달라’는 뜻이었다.혜경도 당연히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지만 요즘은 돈에 쪼들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며칠 전 5
“암표상으로부터 구매한 초대권은 그 자리에서 무효화됩니다.”최하연은 눈꼬리를 치켜뜨며 조롱 섞인 표정을 지었다.“그런 사람은 사장도 손님 대접 못해드려요.”“물론 오늘 두 사람이 여기서 100억을 쓴다면 말이 달라지지만요.”그녀는 눈을 깜빡였다.ST그룹의 딸인 민혜경이 가진 돈은 얼마 없었다. 하물며 지난 번에 57억을 썼기에 하연은 현재 혜경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고 확신했다.하지만 혜경이 과감히 나서는 건 정예나의 매출에도 도움이 됐다.한마디로 일타쌍피였다.하지만 눈치 없는 한서영은 혜경을 재촉했다.“새언니가 여기에 있는 걸 다 사서 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혜경은 서영이 무슨 말을 해도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마 돈이 없으세요?”“돈도 없고 암표를 사서 구경하시는 거면 경비원을 불러야 할 것 같네요.”하연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매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명문가 사모님들 사이에서도 이 일은 큰 이슈거리가 되었다. 곧 몇몇 사람들이 이 일을 단체 메시지 방에 올렸고 이윽고 많은 사람들의 글들이 올라왔다.순식간에 혜경과 서영은 비웃음거리가 되었다.둘의 얼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최하연 씨! 사람이 그러면 안 돼요!”혜경은 눈을 질끈 감았다. 화가 난 얼굴이 새하얘진 것도 오래였다.그녀는 위협적인 말투로 말했다.하연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고, 눈빛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빛났다.“그래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게 난데.”그러자 검은 안경을 쓴 경비원이 나타나 혜경과 서영에게 정중하게 손짓했다.“따라오시죠.”수많은 야유 속에 두 사람은 황급히 도망쳤다.가게에서 나가자마자 혜경은 큰 굴욕감에 쇼핑할 기분이 아니었고 서영에게 말한 뒤 홀로 운전사의 차에 올라탔다. 홀로 남은 서영은 화를 내며 발을 쿵쾅거리며 떠났다.그녀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 휴대폰을 꺼내 한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준은 술집에서 안태현 등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가 서영의
3일 후, 가정법원. 양측의 변호사가 미리 약속을 정해둔 시간에 하연과 서준이 각각 나타났다.이혼서류를 가져갔을 때 하연은 자기 부분을 기입하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서준은 시간을 질질 끌면서 좀처럼 빈칸을 잘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하연은 서준의 이런 모습을 곁눈질로 흘겨보고, 차갑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한대표님, 제가 시간이 빠듯해서요.”하연의 재촉에 서준은 안색이 어두워졌다가, 곧장 서류의 빈 칸을 채워 가기 시작했다.양식을 작성한 후 두 사람은 창구의 직원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잠깐만요.”서준은 이혼서류가 곧 접수될 것을 보고 갑자기 한마디 내뱉었다.서류를 다루던 법원 직원이 즉시 손을 멈추었다. 오늘 아침 첫 번째 고객이 뜻밖에도 HT그룹의 대표와 그의 비서일 줄은 몰랐다!‘한서준과 그 아내가 사실혼 관계에서 발전해 혼인신고를 하러 온 줄 알았는데 이혼이라니, 상상초월이군!’서준은 하연을 바라보면서 지난 날 두 사람이 부부 사이였을 때의 고압적이고 거들먹거리는 차갑고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정말 잘 생각한 거 맞지?” ‘만약 이 여자가 지금처럼 입단속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이혼을 제기하고 가버리면, D국에서 혜경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더 쓰게 하고 곤란하게 만든다면…….’그는 이런 일들을 모두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하연이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은데.’“나 지금 어느 때보다 정신이 멀쩡하고 이미 충분히 고려했어.”하연은 눈썹 끝을 구부리며 붉은 입술은 제멋대로인 산만함을 잔뜩 풍기고 있었다.“왜? 내가 아직도 당신이랑 장난치고 있는 거 같아?”하연의 태도가 이렇게 단호한 것을 보고 서준은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 딱히 뭐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끝없이 추락하는 감정의 끝에 하연이 있었다.하연이 떠난 이후 최근 며칠 사이, 서준은 두 사람 사이에 허심탄회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서준의 말투가 분명히 좀 더 부드러워졌다.“너에게 좀 더 차분하
혜경은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눈앞의 서준이 자신에게 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만약 서준 씨가 지금 나에게 청혼해 준다면 바로 받아들일 텐데.’ 하지만, 화제의 중심에 있는 서준은 상황을 질질 끌려는 듯, 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하지 않았다. 서준의 얼굴색은 대단히 어두웠으며 눈썹 사이의 억압적인 빛 또한 아주 뚜렷했다. 서준은 입을 다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서준의 머릿속에서는 미련 없이 떠나버린 하연의 그림자가 끊임없이 되감기 되어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는 듯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서영이 나서서 말했다. “오빠, 뭐라고 말 좀 해 봐! 오빠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분위기가 너무 어색하잖아!” “그래, 서준아. 우리 집에 액운을 가져오던 사람이 떠났으니,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은 바로 너란다. 그런데 어쩐지 너는 영 흥이 나지 않아 보이는구나.”이수애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혜경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이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 거야. 그저, 서준이 네가 빨리 혜경이를 받아들이면 좋겠구나. 엄마는 손주를 만나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단다!”혜경의 작은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어머니, 서준 씨도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서준이 앞의 세 사람을 힐끗 쳐다보고는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의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저와 최하연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할머니께 알려서는 안됩니다.”서준의 말을 들은 혜경은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이게 무슨 소리야? 나랑 결혼할 생각이 없는 거야? 그럼…… 내 뱃속의 아이는?’ 혜경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서준 씨, 그럼 나랑 이 뱃속에 아기는 어쩌겠다는 거야?” 손을 뻗어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던 혜경이 끝내 눈물을 흘렸다.혜경이 입고 있던 옷이 눈물로 젖어들었다. 깊은숨을 들이마신 서준이 솟아오르는 심란함을 겨우 누른 채 혜경을 향해 말했다. “나중에 다 설명해 줄게.”“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올라가 보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수화기 너머 여은의 어투는 세련되고 깔끔했다.[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난 항상 네 편이니까.] “고마워.”하연이 여은과의 전화를 끊자, 예나가 다가와 물었다. “자기야,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 여우도 정말 짜증 나 죽겠어!” “내일 저녁에 큰오빠랑 같이 B시 경제인 협회가 주최하는 연회에 참석할 예정이야. 그 연회에 B시의 모든 명문가가 참석할 테니, 거기서 그 여우가 숨을 곳이 없게 만들어 줘야겠어!” 예나가 하연을 위해 소리를 높여 말했다.“자기야, 바로 그거야!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와!” …… 연회 당일 밤.홀의 내부는 아름다운 장식들로 가득했으며, 불빛도 눈부시게 현란했다. 귀빈들과 술잔이 한데 뒤섞여 매우 떠들썩했다.하연이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홀로 들어섰다. 하연이 입은 고가의 수공예 다이아몬드 드레스는 하연의 영롱하고 우아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사람들은 하연의 고급스러움과 존귀함에 매료되어 눈을 뗄 수 없는 듯했다. 하연의 매무새는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웠으나 표정은 칼날과 같이 날카로워서 모든 사람들의 기세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하연을 본 명문가 아가씨들이 하연의 가십 기사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손에 샴페인을 든 한서영의 주위로 아가씨들이 모여들었다. 그 아가씨들의 얼굴은 호기심과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서영아, 실시간 검색어 봤어, 정말 최하연이 네 새언니였어?”“그러게, 내가 본 기사 사진이랑 똑같은데? 정말 아름다우시다!” “흥! 저 여자가 네 새언니가 될 자격이나 있었어?” 한서영이 참지 못하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우리 오빠랑 저 여자는 이미 끝났거든?” 이때, 이 모습을 본 하영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띤 채, 한서영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저 여자, 디자이너 브랜드숍의 사장일 뿐이었어. 그런 주제에 감히 우리 오빠와 혜경 언니 사이에 끼어들어, 기어코 오빠의 세컨드가 되겠다며 뻔뻔스럽게 우리 집에 시집까지 왔던 거야. 아무리 애써도 쫓
서준은 하연의 대답에 목이 메는 듯했다. 그동안 서준은 철저히 이수애와 한서영의 편에 서서 하연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었다. ‘이것도 이 여자가 이혼을 고집하는 이유 중에 하나일까?’ 이렇게 생각하자, 서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책감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최하연 씨에게 사과해.”서준이 어두운 얼굴로 서영에게 말했다.서영은 얼굴을 찌푸린 채 입을 열지 않았다.“결혼 기간 3년 내내 온갖 수모를 당하고도 참았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해결하려는 겁니까?” 하연의 곁으로 다가온 하민이 말했다. 하민은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하민의 얼굴빛이 아주 냉엄하여 사람을 압박해오는 듯했다. 하민은 자신의 여동생인 하연이 한씨 가문에서 이토록 모진 대우를 받아왔다고 생각하니, 한씨 가문의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하민이 차가운 눈빛으로 민혜경을 훑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이미 실시간 검색어에서 우리 그룹의 고위층 임원을 음해하는 발언을 한 장본인이 누군지 다 알아봤습니다.”하민의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본 혜경이 자신도 모르게 치마를 움켜쥐었다. ‘아니야, 난 줄 모를 거야.’ 그 사진들은 모두 익명으로 보낸 것으로, 기사의 작성자는 혜경의 신분을 알지 못할 것이었다. “그 기사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DS그룹의 고위층 임원을 음해하여 인터넷에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경찰 측에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니, 민혜경 씨가 조사에 협조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하민의 말을 들은 혜경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혜경은 숨이 막혀오는 듯하여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서준의 시선에 끊임없이 고개를 내저었다.혜경이 눈물이 맺힌 간곡한 눈빛으로 말했다. “서준 씨, 믿어줘. 난 아니야.”뒤에서 혜경을 감싼 서준의 눈빛이 무섭도록 차가웠다. “최 대표님,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오해하신 게 틀림없어요! 이
“서준아, 이 재수 없는 물건한테 대체 뭘 바라는 거니!”이수애가 앞으로 나아가 서준의 팔을 붙잡았다. 이수애는 자신의 아들인 서준이 최하연에게 이토록 부드러운 말투로 굽신거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여태까지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하던 얘가, 왜 이렇게 상황이 이렇게 변해버린 거지?’ 이수애가 얼굴을 찌푸리며 하연의 앞으로 다가와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너한테 더러운 물 좀 끼얹는 게 뭐 어때서? 네까짓 게 무슨 명예가 있니? 예전의 넌, 우리 가문 사람들이 삿대질을 하며 널 욕해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어!” 이수애는 최선을 다하여 발악을 하고 있었으나, 온 신경은 서준의 표정으로 향해 있었다. 서준의 안색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수애는 그제야 자신이 스스로 지난 3년간, 하연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폭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민이 참다못해 하연을 흘겨보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네가 3년간 성심성의껏 모셨다던 시어머니와 시누이야? 네가 꼬박 3년을 바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네 눈으로 똑똑히 봐!” 하민은 궁지에 몰린 자신의 여동생이 다시 한번 잘못된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침울해지는 듯했다. “선택권은 다 너에게 있는 거야. 하지만, 최씨 가문의 체면을 구긴 것에 대해서는 오직 너에게만 책임을 물을 거야!”하연이 말했다. “큰오빠, 걱정 마.”하연이 이수애를 향해 차디찬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분명히 하죠. 따님이 제 일을 그르친 것이 맞다면, 배상하셔야 할 겁니다.”이수애가 조금도 꺼리지 않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배상을 하라고? 네 가게 따위가 가치가 있어 봤자지. 우리 한씨 가문이 그 정도 돈도 배상 못할 것 같아?”“600억, 배상할 수 있으시겠어요?” 하연이 천천히,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600억……?’하연이 제시한 어마어마한 배상 금액에 큰 충격을 받은 이수애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뭐?! 네 작디작은 브랜드숍이 그 정도의 값어치라는 게 말이나 되니? 내가 바보인 줄 알
하연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국내든 해외든, 저도 차를 좋아하지 않아요. 너무 쓰잖아요.” 상혁은 시선을 이현에게 옮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서는 제가 주인이라, 한 상무님께 차를 대접하는 건 좀 그렇죠.”그는 슬기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라는 신호를 보내며 말했다. “제가 먼저 한 상무님께 한 잔 올립니다.”독한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만, 상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하연은 손에 힘을 주어 옷자락을 꽉 쥐었고, 마음속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그렇다면 저도 주인 중 한 사람인 셈이니, 비록 처음 만난 건 아니지만, 한 상무님과 최 사장님이 함께 있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니까 저도 한잔 해야겠군요.” 슬기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가 상혁 옆에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랜 부부처럼 자연스러웠다. 이현은 슬기의 말을 듣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며 또 잔을 받아들이고, 결국 두 잔을 기꺼이 마셨다. 그러나 슬기는 계속해서 말했다. “최 사장님은 차도 술도 안 마시나요?” “하연이는 안 마십니다.” 이현은 하연을 보호하듯 그녀를 뒤로 숨기며 말했다. “제가 대신 마시죠.” 결국 그는 총 네 잔을 마셨다. 하연은 분명 보았다. 상혁이 무심히 탁자에 올려놓은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부풀어 올랐고, 그건 상혁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것은 그가 곧 자신의 감정에 따라 충동적으로 행동할 전조였다. “훌륭한 주량이군요. 이렇게 된 이상, 한 상무님과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취하도록 달려보겠네요.” 상혁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술병을 집어 들고 병뚜껑을 따며 말했다. “몇 년 전에는 한 상무님과 직접 대면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기회를 잡았으니, 이것도 인연이겠죠.” 이현은 상혁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것은 오랜 세월 쌓인 불만과 질투였다. 단순히 이현의 신분이 아닌, 하연의 마음을 흔들었던 ‘한명준’의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하연을 어릴 때부터 지켜온 상
슬기는 몇 가지 요리를 더 주문하고는 웃으며 고개를 들어 말했다. “또 만났네요, 최 사장님.” 하연은 너무나 어색해서 순간 뒤로 물러서고 싶었다. ‘이 두 사람이 저녁을 같이 먹고 있어?!’ 상혁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술을 따라 잔을 들어 올리며 이현에게 권했다. “한 상무님, 한잔하시죠.” 이현은 여유로운 태도로 하연에게 말했다. “부 대표님께서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는데, 시간도 아직 여유롭고, 함께 하시죠.” 하연은 도망칠 길이 없었다. “지난번 만남은 소울 칵테일에서였죠. 그때 이후로 참 오랜만이네요. 그 가게 주인이 이제 한 회사의 상무님으로 변신하셨다니.” 상혁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이현에게 술잔을 건넸다. “그때 부 대표님의 배려 덕분에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현은 잔을 들어 올리며 상혁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술잔, 그때의 감사함을 표하는 겁니다.” “잠깐!! 술을 마시면 안 돼요!!” 하연은 상혁이 잔을 드는 순간 본능적으로 외쳤다.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하연에게 쏠렸다. “제 말은...” 하연은 사람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해명했다. “비서가 일찍 퇴근했다고 하니까... 직접 운전해야 하니 술은 피하는 게 좋겠어요.”이현은 하연의 이 말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은근히 기뻐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부대표님께서도 저를 너무 어렵게 하시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상혁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차가운 기운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최 사장님께서 한 상무님을 정말 많이 신경 쓰시나 봐요. 오늘 뉴스도 봤는데, 두 분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며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참 낭만적이고,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더라고요.”슬기는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더했다.“이 잔은 제가 최 사장님께 바칩니다.”하연은 슬기를 무시하고 오직 상혁만을 바라봤다. 상혁
상혁의 눈 속에 ‘짙게 깔린 먹구름’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몸을 뒤로 기대면서 슬기가 내민 후추가 들어가 있는 국을 건드리지 않았다. 의사가 당부했듯이, 그의 위장은 매운 음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특히 후추 같은 자극적인 음식은 더더욱 피해야 했다.이미 30분이 지나갔지만, 옆 방에서는 아직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상혁은 셔츠의 단추를 하나 더 풀었다.옆 방에서는, 양국성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방 안에는 하연과 이현, 두 사람만이 남았는데,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하연은 자리에 앉아 말을 들은 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저도 이미 한명준 씨에 대해 조사했어요. 전에 한명준 씨가 팀 내에서 누군가의 모함을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조금 전 말한 그 내용은 잘 알고 있었어요.”이현도 놀라지 않은 채 말했다. “하연 씨, 여전히 저를 신경 쓰고 있잖아요.”그의 직설적인 말에 하연은 당황했다. “전 그저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이에요. 한명준 씨와 전혀 상관없었어요.”“B시에서 재판이 열리던 날, 저는 한서준을 만나러 갔어요. 그때의 상황에 관해 묻자, 한서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어요. 하연 씨는 그날, 학교에서 저를 만나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 B시까지 찾아왔고, 마침 저와 비슷하게 생긴 한서준을 보고 저라고 착각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수년 동안 한서준에게 저라고 믿으며 굽신거리며 살아왔다는 거였어요.”이 이야기를 할 때, 한서준은 분노에 찬 눈으로 피가 맺히듯 붉어진 눈을 하고 난간을 붙들고 고함을 질렀다.“이 말을 듣고 네가 만족했냐? 기뻤냐?”이현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몇 년 동안, 하연 씨 마음속에 정말 저에 대한 사랑은 없었던 거예요?”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하연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서준을 사랑하지 않았고, 한서준에게 느낀 감정은 단지, 그를 옛날의 한명준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서빙하는 직원은 방 안의 이상한 분위기를 모
하연이 예상했던 답과 똑같았다.하연은 입술을 꾹 누르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그러니까, 하연 씨는 진작부터 제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거죠? 그 사실을 뒤늦게 안 게 아니고요.”“저는 왕씨 가문의 삶이 싫어해요.” “그런데 이제는 왕씨 가문으로 돌아갔잖아요.” 하연은 몸을 옆으로 돌려 정확하게 지적했다.이현은 자리에 앉아 술기운에 머리가 띵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 밖을 보았다. 남녀 한 쌍이 지나가는 게 보였고, 남자의 시선이 잠시 이현에게 떨어졌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그 남자는 바로 부상혁이었다.이현은 시선을 거두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제가 한명준으로 돌아가려면 왕씨 가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하연 씨, 지금 저에게 원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지만, 괜찮아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연 앞에 서서 아슬아슬한 거리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부씨 가문의 부남준이 권력을 잡으려는 걸 들었어요. 누가 끝까지 웃을지 아직 몰라요. 하연 씨도 신중하게 선택했으면 좋겠어요.”“부 대표님, 이쪽입니다.” 반대편에서 주슬기가 웃으며 손짓했다.그 순간,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혁이 본 것은 바로 하연과 ‘한명준’의 다정한 모습이었다.하연은 즉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창가 쪽으로 가서 가방을 집어 들었다. “한 상무님, 제가 먼저 가야 할 것 같아요. 한 상무님은 정말 마음이 있다면 양 국장님에게 말씀을 좀 잘 드리세요. 한 상무님의 능력이라면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제가 그때 일부러 우리 약속했던 장소에 안 나온 게 아니에요. 누군가의 모함을 당한 거였어요.” 이현은 하연의 퇴장을 막으려는 듯 무겁게 말을 꺼냈다.하연의 등이 순간 경직되었다.“뭐라고요?” ...아무리 고급스러운 여자라도,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은 참을 수 없었다.슬기는 수사 해당화 아래에서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제가
전용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천천히 열리자마자 주슬기가 눈에 들어왔다.“부 대표님.” 슬기는 공손하게 인사하며 미소를 띠고 다가갔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들러봤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운이 좋네요.”상혁은 코트를 들고 약간 무심한 태도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나요?”“원래는 없었는데요... 지금은 저녁 식사나 함께할까 해서요. 몇 가지 상의할 일이 있거든요.” 슬기는 재빠르게 대답하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상혁은 본능적으로 거절하려다가 잠시 생각한 뒤, 뜻밖에도 승낙했다.“좋아요, 장소는 제가 정하죠.”슬기는 의아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네, 좋아요.”곧 원신민이 급하게 와서 상혁의 지시를 받았다. “오늘 당장 시내에서 가장 큰 식당에 방을 예약해.”그곳의 방은 최소한 3일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기에, 원신민은 바쁘게 움직였다. 슬기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의할 게 큰일은 아닌데, 이렇게 정식으로 예약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상혁은 태연하게 말했다. “업무 관련된 일이라면 허술하게 할 수 없죠.”상혁은 대수롭지 않게 밖으로 나갔고, 그가 탄 엘리베이터와는 다른 엘리베이터가 마침 내려오고 있었다.“부 대표님의 비서가 낯이 익어요. 어디서 본 적 있죠?” 슬기가 호기심을 보였다.이 업계에서, 특히 이사급의 비서라면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원신민은 과거에 이씨 가문의 장남을 도와주면서 정계와 조직폭력배 쪽 모두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방을 예약하는 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그 식당의 매니저가 직접 나와 원신민을 맞이했다. “원 비서님, 이렇게 갑자기 방문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방을 예약하신다고요? 1층과 2층은 이미 만석이지만, 최상층에 있는 방은 아직 비어있습니다. 그곳을 부 대표님께 해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원신민은 상혁이 슬기와의 식사에 그렇게 화려한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손으로 테
이현의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양국성도 조금 의외였다.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은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양국성은 이현의 제안에 맞장구를 치며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오늘은 제가 한턱 낼게요.”사실 이현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고, 양국성도 ‘한명준’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게다가 이번에 오기 전, 정태산에게도 은밀히 말을 들은 터라, 양국성은 자신의 권한 내에서 최대한 ‘한명준’을 도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현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양국성도 이미 자신을 설득하기 시작했으니 하연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차 안에서, 정태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분명히 가기 싫어하셨잖아요.” 하연이 대답했다. “한명준이 이 사업을 맡게 된 건 예측했지만, 남산을 선택할 줄은 몰랐어. 만약 내가 그때 남산 땅을 받아들였더라면, 이 사람이 어디를 선택했을지 궁금해.” 하연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이건 혹시 속내를 감추기 위한 선전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연이도 이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이현은 손을 뒤로 살짝 뻗어 그녀를 가볍게 받쳐주었다. “이모가 이번 사업을 저한테 맡기면서, 사업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는 거예요. 이제 저도 더 이상 가게만 운영하던 ‘손이현’이 아니에요.” 하연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다시 상기시킬 필요는 없어요.” 이현은 깊은 눈빛으로 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연 씨가 기억하는 손이현은 더 이상 없어요. 이제부터 돌아온 건 과거의 한명준만 있어요.” 그제야 하연이 그를 흘깃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과거의 한명준은 의기양양하고 당당한 청년이었죠. 지금 당신의 모습이 그 당당한 청년과 닮은 게 뭐가 있어요?” 그녀가 기분이 나쁘면 말이
하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원 비서한테 우유로 바꾸라고 했어용!” 상혁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하연은 능숙하게 일어섰다. “나도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야 해요. 커피는 더 이상 마시면 안 돼요. 저녁에 또 올게요.” 상혁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면 이미 퇴근했을 텐데.” “그럴 리가 있나요? 나 원 비서한테 물어봤는데... 당신은 요즘 새벽까지 매일 야근한다면서?” 하연이 문가에 서서 농담처럼 말했다. “부 대표님, 총책임자가 하는 일 정말 쉽지 않죠?” 상혁은 얼굴을 돌리며 미소를 숨겼다. “내일 당장 원신민 해고해야겠군.” ‘원 비서 감히 이렇게 빨리 날 배신했더니...’하연은 오늘도 신에너지와 관련된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B시에서 온 조사팀과의 회의였다. 제대로 된 홍보팀이 없는 상황이라, 하연은 CS그룹의 몇몇 직원을 빌려와 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저녁 만찬에서 성공적으로 계약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장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낮잠은 잘 주무셨나요? 방은 만족하셨는지요? 만약 문제가 있었다면 제가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하연 웃으며 인사하며 방으로 들어섰다. 양국성은 친근하게 하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최 사장님께서 세심하게 신경 써주신 덕분에 일이 아주 순조로웠어요. 그리고 정태산 지사님께서도 최 사장님께 안부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한 마지막 말은 하연에게 작게 속삭였다. 하연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기색이 스쳤고, 정태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사님께 제 안부 전해주시고, 부상혁 대표님께서도 잘 지낸다고 말씀드려주세요.” “부상혁 대표님이요?” 양국성이 놀라며 물었다. “아, 최 사장님께서 오해하신 것 같네요. 그날 제가 보고하러 갔을 때 한 검사장님도 계셨거든요. 그분이 최 사장님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한창명? 의외의 인물이었
하연은 말한 대로 다음 날 아침, 집에서 일하는 요리사에게 부탁해 위장에 좋은 닭죽을 끓였다. 요리사는 하연이가 이렇게 식단에 신경 쓰는 걸 처음 본 듯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이걸 회사에 가져가실 건가요?” 하연은 조금 머쓱해하며 말했다. “내가 먹는 게 아니에요.” 요리사는 놀란 듯 물었다. “아가씨, 남에게 주는 거면, 직접 요리해 보시는 게 어때요? 남자가 감동할 거예요.” 하연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알아요. 근데,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그녀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손에 들린 수프 냄비를 들고 바로 DL그룹으로 향했다.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하연은 원신민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게 해줘요.” 원신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 사장님, 부 대표님은 아직 회의 중이신데요.” “언제 끝나요?” “아마도 두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하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다 됐잖아요. 이렇게 직원들까지 압박하는 거 아니에요?” 원신민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회사 일이니까요.” 하연 한참을 생각하다가 손짓하며 말했다. “내가 너희 대표님은 밥을 먹게 할 방법이 있는데, 들어볼래요?” 원신민은 귀를 기울였다.5분 후, 비서가 회의실로 들어와서 말했다. “대표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혁은 불쾌해하며 말했다. “바로 말해.” “대표님 책상 위에 있는 백란화에 뱀이 말려들었습니다...” 회의실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몇몇이 외쳤다. “그런 건 부하 직원들이 처리하면 되지 않나? 굳이 부 대표님께서 나설 일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상혁의 안색은 오히려 좋지 않았다. 부동건은 난초를 매우 사랑했고, 그 백란화는 상혁이 부동건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었다. 백란화를 돌보는 일은 상혁이 DL그룹을 물려받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져 오던 상혁은 잠시 쉬기로 결심하며
하연은 잠깐 당황했지만 곧바로 상혁의 귀에 속삭이듯 다가가며 말했다. “아직도 반응이 있네, 부 대표님은 아무나 거절하지 않는 건가요? 오늘 만약 다른 여자가 여기 앉아 있었다면...” 그녀의 농담과 향기가 귀를 간지럽히자, 상혁은 잠시 고개를 돌려 미묘하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다른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럼 나만?” 하연의 말에 상혁은 약간 무너지는 듯했지만 이내 그녀를 밀어내며 대꾸했다. “나의 의미는, 너도 아니야.” 하연의 얼굴에 순간 실망이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내밀며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상혁은 잠시 침묵하며 그가 느끼던 생리적 반응이 가라앉길 기다린 후 차분히 말했다. “내려.” “당신은 의사한테 가는데, 내가 왜 내려야 해요?” “다시 붕대 싸매.” 상혁은 이 말을 던지며 차에서 내렸다. 하연도 그제야 그 의미를 깨닫고는 피식 웃으며 따라나섰다.F국에 돌아온 후 상혁의 위장병이 계속 재발하고 있었다. 불규칙한 생활과 식사가 병을 악화시켰고, 의사는 그의 상태를 보고 좋지 않은 얼굴을 했다. “부 대표님, 몸이 재산입니다. 이렇게 무리하다가는 일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망가집니다.” 하연은 밖에서 간호사가 다시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 그 말을 들었다. 상혁은 숨을 고르며 가볍게 대답했다. “제 몸 상태는 제가 잘 알아요. 약만 먹으면 돼요.”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잔소리를 했다. “위장은 쉬게 해야 하는데, 아플 때 약을 먹는 건 이미 늦은 겁니다. 평소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혹시 비서도 없으십니까?” 상혁도 많은 비서가 있긴 했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비서가 가져다준 음식은 몇 시간 동안 방치되곤 했다. 오늘도 병원에 온 것은 원신민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의사가 잔소리를 멈추자, 상혁은 미세하게 당황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사는 밖을 힐끗 보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밖에 계신 아가씨는 대표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