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어. 다시는 어리석은 짓 하지 말고. 나중에 기회 되면 다시 만나.”유진우는 간단하게 이별을 고한 후 몸을 돌렸다. 하늘의 뜻이 이러하다면 두 사람의 인연도 여기서 끝인 거겠지.“엄마, 방금 저 사람 이상해요. 제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멀어져가는 유진우의 뒷모습을 보며 이청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머릿속에는 아무런 인상도 없었다.“없어, 없어. 보험이나 파는 인간을 신경 써서 뭐 해? 자, 누워서 푹 쉬어.”장경화는 너무도 기뻐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래요, 언니. 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니까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 절대 하지 말아요.”단소홍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이청아가 유진우를 잊은 게 그들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그래.”이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찜찜하긴 했지만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유진우는 마음이 무척이나 복잡했다. 이 결과가 두 사람에게는 그래도 나름 다행인 엔딩이긴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어쩌면 아직 이청아에게 옛정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옛정은 시간이 흐르면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해 질 무렵 유진우가 운전하여 풍우 산장에 도착했을 때 마침 급히 서두르는 장 어르신을 만났다.“보스, 마침 잘 오셨어요. 인여궁의 여자들이 또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어요.”장 어르신은 유진우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왔다.“무슨 일인데요?”유진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방금 우리 애들이 인여궁 사람들과 충돌이 생겨 싸웠는데 우리 애들 다리가 전부 부러졌어요. 그 여자들 정말 미친 것 같아요.”장 어르신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감히 내 구역에서 손찌검을? 가요. 어찌 된 건지 가서 봅시다.”유진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장 어르신과 함께 보건실로 달려갔다.백수정을 치료해 준 후 이틀 정도 쉬게 할 생각이었지만 반나절도 채 안 되어 또 소란이 일어났다. 이 여자들은 정말 골칫거리들이었
“뭐야?”차연주를 본 유진우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당신 왜 여기 있어요? 쫓겨난 거 아니었어요?”“홍청하도 다시 돌아왔는데 나라고 못 돌아올 것 같아? 어때? 많이 놀랐어?”차연주는 팔짱을 끼고 그를 비웃었다. 상대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녀 사부의 한마디면 모든 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제대로 설명 좀 하셔야겠는데요?”유진우는 풍자 할멈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젊은이가 궁주님의 다친 곳을 치료해 준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리가 보상으로 1조 원이나 줬잖아. 그걸로도 만족할 줄 알아야지.”풍자 할멈이 덤덤하게 말했다. 태도가 어찌나 태연자약한지 부끄러운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돈은 돈이고 일은 일인데 조건을 약속했으면 그대로 지켜야죠. 명문 파벌인 인여궁이 한 입으로 두말해서야 하겠어요?”유진우가 냉랭하게 말했다.“한 입으로 두말한다고? 우리 인여궁의 일을 네까짓 게 뭔데 끼어들어?”차연주도 지지 않고 무섭게 몰아붙였다.“맞아!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데 당신과 무슨 상관이야?”다른 제자들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 기세가 어찌나 사나운지 유진우를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당신네 인여궁 사람들이 이 꼴일 줄은 정말 몰랐네요. 약속을 어기고 이랬다저랬다 하다니,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군요.”유진우가 대놓고 조롱했다.“젊은이, 말조심해!”풍자 할멈은 슬슬 화가 치밀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을 당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됐어요. 더는 당신들과 쓸데없는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아요. 체면이 깎이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사람을 때린 건 오늘 제대로 설명해야 할 겁니다!”유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좋은 마음으로 목숨을 구해줬지만 배은망덕한 인여궁 제자들은 강린파 제자들의 다리를 분질러버렸다. 절대 이대로 가만둬서는 안 되었다.“설명? 흥, 네까짓 게 뭔데 설명하라 마라야?”그때 백수정이 보건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전보다 얼굴 혈색이 좋아지고 윤기가 흘렀으며 기력이 넘
“잠깐만요!”그때 홍청하가 갑자기 달려 나와 두 사람 가운데 섰다.“오해가 있으면 앉아서 천천히 말로 풀어야죠. 절대 치고받고 싸워서는 안 돼요.”“비켜! 여긴 네가 끼어들데 아니야!”백수정의 눈빛이 날카롭기 그지없었다.“사부님, 진우 씨가 오늘 사부님의 목숨을 구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 되죠.”홍청하도 다급해졌다.“닥쳐! 네까짓 게 뭐라고 입을 나불거려?”백수정은 화가 치밀었다. 제자가 정곡을 찌른 바람에 살짝 수치스러웠다.“궁주님, 청하 씨의 체면을 봐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겠습니다.”유진우가 서늘하게 말했다.“차연주의 한쪽 다리를 부러뜨린다면 오늘 일은 없었던 걸로 할게요.”“헛소리 집어치워! 네가 부러뜨리라고 하면 부러뜨려야 해? 네가 뭔데?”차연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인마, 약 잘못 처먹었어? 내가 왜 네 말대로 따를 거라고 생각해?”백수정은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했다.“왜냐고요?”유진우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또박또박 말했다.“내 손에 진짜 인여경이 있거든요. 이 이유면 충분한가요?”“인여경?”그의 말이 현장이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하나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탐욕이 눈에 훤했다.인여경은 인여궁의 보물이다. 인여경에 적힌 무술을 터득한다면 벼락출세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인마, 그게 사실이야?”백수정이 잠깐 멈칫했다. 그녀의 얼굴에 기대와 의심이 한데 섞여 있었다.예전에 얻은 인여경은 반쪽짜리라 수련했다가 주화입마에 빠져 겨우 목숨을 건졌다. 지금 그녀는 나머지 인여경이 아주 급히 필요했다. 인여경을 완전하게 터득해야만 마스터 경지에 다다를 수 있으니까.“내가 있다고 하면 무조건 있는 겁니다. 궁주님이 차연주의 다리만 부러뜨린다면 보여줄지 말지 고려해 볼게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사부님, 저건 다 헛소리예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차연주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부가 갑자기 충동적으로 자신의 다리를 분질러버릴까 두려웠다.“말로만 하는 건 소용 없어. 일단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차연주에게 쏠렸다.인여경은 인여궁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리고 유진우가 내건 조건은 차연주의 다리를 분질러버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부가 직접 해야 한다고 했다.“진...”홍청하가 나서서 사정하기도 전에 유진우가 손을 들어 가로채고는 백수정을 빤히 노려보았다.“궁주님, 어떡할 겁니까?”“연주는 내 큰 제자야. 사부인 내가 어찌 제자를 해할 수 있겠어?”백수정이 또박또박 말했다.“그럼 인여경에 관심이 없다는 말인가요?”유진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관심이야 당연히 있지. 하지만 네 말대로 할 수는 없어.”백수정은 아래턱을 쳐들고 당당하게 말했다.“쉽게 말하면 인여경도 손에 넣을 것이고 제자도 지키겠다는 말이야. 그래서 지금 명령하는데 인여경을 당장 나에게 넘겨. 그러면 예전의 무례함은 용서해 줄게. 내놓지 않는다면 절대 가만 안 둬.”그녀의 말에 유진우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조금 전까지 유진우의 말을 따르겠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말을 바꾸었다. 게다가 어찌나 당당한지 거의 협박하는 식이었다. 정말 파렴치함의 끝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당신의 파렴치함을 내가 과소평가했네요. 온갖 나쁜 짓은 다 하고 다니면서 이미지는 지키려고요?”유진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피식 웃었다. 뻔뻔스러운 사람을 많이 봐왔지만 이 정도로 뻔뻔스러운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무엄하다! 감히 궁주님을 모욕해? 간덩이가 아주 제대로 부었구나.”“궁주님께 불경죄를 저질러? 죽고 싶어서 안달 났구나?”인여궁 제자들이 분노하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이는 검까지 뽑아 들고 공격할 준비를 했다.“인마,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기나 해?”백수정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인여경이 유진우의 손에 있어서 참은 거지, 없었으면 당장 죽였을 것이다.“당신들 체면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입도 함부로 놀리잖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든 신경이나 쓰겠어?”유진우는 그녀들을 마음껏 비웃었고 더는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홍청하가 재빨리 달려 나와 말렸다.“사부님! 다친 곳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에 더는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은혜도 모르는 년!”화가 치밀어 오른 백수정은 냅다 홍청하의 따귀를 후려갈기며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반쪽짜리 인여경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주화입마에 빠질 일도 없고 다칠 일도 없잖아!”“제...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홍청하는 얼굴을 움켜쥐고 연신 고개를 저었다.“아직도 변명할 셈이야?”백수정이 무섭게 호통쳤다.“그럼 저 자식에게 어떻게 인여경이 있을 수 있어? 네가 몰래 준 거 아니야? 감히 우릴 배신하고 외부인과 결탁해?”“전 그런 적이 없어요.”홍청하는 연신 부정했다.“홍청하, 사부님께는 반쪽을 드리고 진짜 보물은 저 남자에게 줬어? 이 개돼지만도 못한 년아!”“난 줄곧 네가 충성심이 가득한 애라고 생각했었어. 양심도 없는 년, 감히 인여궁을 배신해?”“착한 척 좀 그만해. 역겨우니까!”이젠 인여궁의 모든 제자들이 나서서 그녀를 욕했다. 그들은 홍청하가 유진우와 결탁하여 진짜 인여경을 훔쳤기에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오해예요... 전부 오해란 말이에요.”홍청하는 설명하려 했지만 그녀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뭇사람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영감님, 그만 머뭇거리고 얼른 저년의 다리를 분질러버려요.”유진우는 싸늘한 얼굴로 차연주를 가리켰다.“알겠습니다.”장 어르신은 곧바로 차연주에게 다가가 무릎을 발로 걷어찼다.뚜두둑!차연주의 무릎이 반대 방향으로 꺾이면서 그대로 부러지고 말았다.“으악!”차연주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서 이리저리 굴렀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멈춰! 감히 내 제자를 다치게 해? 절대 가만 안 둬!”백수정은 두 눈을 부릅뜨고 언성을 높였다.“당신들이 한 짓을 그대로 갚아줬을 뿐이야. 내 부하의 다리를 분질렀으니 당연히 저년의 다리도 분질러야지.”유진우는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영감님, 나머지 한쪽
“인마, 너희 둘이 한패가 되어 못된 짓을 했다는 거 다 알아. 청하가 무사하길 바란다면 당장 연주를 풀어줘!”백수정이 검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협박했다. 다치지 않았더라면 그녀도 인질을 잡고 협박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왜... 대체 왜...”홍청하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마치 혼이라도 빠져나간 것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녀의 모습에 유진우는 얼굴을 찌푸렸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알았으니까 청하 씨를 풀어줘. 그럼 당신 제자도 풀어줄게.”그러고는 손을 흔들어 장 어르신에게 물러서라고 했다.“얼른 연주를 데려가.”백수정이 눈짓을 보내자 인여궁 제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다리가 부러진 차연주를 부축하여 문을 나섰다.풍자 할멈은 혹시라도 장 어르신이 다른 움직임을 보이진 않을까 걱정되어 곁을 지키면서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노려보았다.“이놈아, 명령하는데 당장 인여경을 나에게 넘겨!”차연주를 데려간 후에도 백수정은 검을 거두지 않고 조건을 걸었다.“난 이미 한 발짝 양보했어. 그러니까 당신도 적당히 해.”유진우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이년이 점점 기어오르네?’“흥! 인여경은 우리 인여궁의 보물이야. 당신이 주인에게 돌려줘야지.”백수정이 또박또박 말했다.“당신이 이런 태도로 나오는데 내가 줄 것 같아?”유진우가 되물었다.“인여경은 여자만이 수련할 수 있는 건데 네가 가져서 뭐 하려고? 나에게 돌려준다면 불경죄는 용서해 줄게.”백수정은 여전히 기고만장했다.“당신네 인여궁 사람들은 정말 왜 다 이 모양 이 꼴이야?”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으며 차갑게 말했다.“솔직하게 얘기할게. 인여경이 나에게 필요는 없지만 태워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당신에게는 못 줘!”“너!”그의 말에 백수정이 살벌하게 협박했다.“이 자식아, 잘 생각해. 인여경을 내놓지 않으면 청하를 죽여버릴 거야.”그러면서 들고 있던 검을 더 들어 올렸다.홍청하 목의 상처가 점점 벌어지면서 시뻘건 피가 검을 따라 주르
유진우는 홍청하를 진심으로 걱정했다.“됐어요. 얼른 가서 준비해요. 오늘 저녁에 연회를 열 생각이에요. 청하 씨에게 강린파 제자들도 소개해 주고요.”유진우는 홍청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두 여자 도우미를 불러 홍청하를 부축하여 처소로 돌아가라고 했다.“보스, 청하 씨에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닌가요?”장 어르신이 감탄했다.“청하 씨 오빠에게 목숨을 빚졌으니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와야죠.”유진우의 눈빛이 어딘가 허전해 보였다.“청하 씨가 보스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네요.”장 어르신의 얼굴에 부러움이 스쳤다.홍청하를 살려주고 고통의 구렁에서 벗어나게 한 것도 모자라 인여경까지 선물했고 또 당주 자리에도 앉혔다.이런 대우는 아무나 받지 못하는 대우였다. 장 어르신은 자신이 만약 여자였더라면 몸도 기꺼이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어느덧 어둠이 짙게 깔렸다.풍우 산장의 연회장에 강린파 고위층들이 한데 모여 술을 마시면서 즐거움을 나누고 있었다.5대 파의 당주들도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악당파의 장 어르신, 염룡파의 홍청하, 맹호당의 유군철, 곰파의 석웅걸, 망파의 변대성. 이 5인은 유진우의 유능한 부하들이었다.장 어르신은 무술 실력이 더할 나위 없이 강하고 홍청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뛰어났다. 유군철은 머리가 영특하고 석웅걸은 의리가 넘치며 변대성은 임기응변에 능했다. 각자 자기만의 장점이 있었다.“홍 당주님, 강린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자, 제가 먼저 한잔 올리겠습니다.”“홍 당주님의 인품은 제가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염룡파가 더욱 찬란하게 발전하길 바랄게요.”“홍 당주님, 전 말주변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 진심은 이 한잔에 담도록 하겠습니다.”4대 당주들이 하나둘 일어나 홍청하에게 술을 따랐다. 그들은 5대 파 중에서 염룡파가 유진우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여인이 염룡파 당주가 돼도 절대 무시할 수가 없었다.“고맙습니다.”홍청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한잔
둥근 상 맞은편의 홍청하를 보며 유진우는 멍해졌고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약을 탄 사람이 홍청하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당신이었어요? 당신이 어떻게...”장 어르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라움과 경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눈빛 속에 분노가 가장 짙었다. 유진우가 그렇게 잘해줬던 홍청하가 배신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홍청하는 죄책감에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심지어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대체 왜 그런 거예요?”유진우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힘겹게 물었다.홍길수의 여동생이라는 이유로 홍청하를 자기 친여동생으로 생각했고 무슨 일이든 그녀 편에 서서 도와주었다. 그리고 고통의 구렁에서 벗어나게 했고 심지어 인여궁에도 여러 번 양보했지만 돌아오는 건 배신일 줄은 정말 몰랐다.“인여궁은 나의 집이고 이 사람들은 내 가족이에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요. 진심으로 미안해요...”홍청하는 끊임없이 고개를 내저으며 사과했다. 유진우에게 너무도 미안했지만 사부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었고 인여궁과 맞서 싸울 용기가 없었다.“인여궁이 당신에게 이런 짓까지 했는데 대체 왜 아직도 체념 못 하고 목숨까지 바치는데요? 대체 왜?”유진우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인여궁에서 쫓겨나고 개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하면서도 왜 계속 충성하려는지 유진우는 도무지 이해되질 알았다.“난...”홍청하는 순간 말문이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침묵을 택했다.“인마, 인제 와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그때 백수정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청하는 내 제자고 인여궁 사람이야. 그러니 당연히 내 편을 들지. 누굴 탓하려면 어리석은 자신이나 탓해.”“그래! 전투에서는 적을 기만하는 전술을 쓰기도 하잖아. 누가 너더러 여자를 그리 쉽게 믿으라 했어? 쌤통이야 아주!”인여궁 제자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한마디 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듯 하나같이 우쭐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