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요? 무슨 카드죠?”설연홍이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주술교라고 알고 있지?”블랙지존이 물었다.“그럼요. 주술교는 천하제일의 사파이고 세력이 아주 막강하잖아요. 중주의 천하회와 역외 검종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이고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존재죠.”설연홍이 흥미진진하게 말했다.주술교는 아주 미스터리한 종파이다. 제자가 그리 많진 않지만 저마다 주술에 능했고 또한 무도 조예도 깊었다.괴이한 수단으로 소리소문없이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주술교는 자연스레 천하제일 사파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사실 나도 예전에는 주술교 소속이었어.”블랙지존이 감탄하며 말했다.“비록 최고의 천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난사람이었고 앞날도 창창했어. 그런데 후에 잘못을 저지른 탓에 아쉽게도 주술교에서 쫓겨났지.”“사부님은 주술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세요?”설연홍이 떠보듯 물었다.“돌아가고는 싶지.”블랙지존이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 주술교는 그야말로 자나 깨나 바라는 성지야. 거기엔 신기한 기술들이 아주 많고 고수도 넘쳐나. 주술교에 들어가서 수련한다면 놀라운 속도로 실력을 향상할 수 있어.”“사부님의 뜻은 이미 방법이 있다는 말씀인가요?”설연홍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역시 넌 참 똑똑하단 말이지.”블랙지존이 씩 웃었다.“주술교로 돌아가는 방법은 황동해와 연관이 있어. 황동해의 아내가 누군지 알아?”“누군데요?”설연홍은 흠칫하며 물었다.“주술교의 성녀 연화정이야.”블랙지존이 또박또박 말했다.“성녀 연화정요?”설연홍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리면서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주술교 성녀는 교주의 후계자이자 주술교 내에서 만인이 우러러보는 존재다. 교주는 대부분 시간 두문불출하면서 수련에 임하기에 세속의 잡다한 일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하여 크고 작은 일은 모두 성녀가 직접 관리한다.“잠깐만요.”그때 설연홍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말했다.“사부님, 주술교 성녀는 이미
“으악...”블랙지존은 순간 넋을 잃었다.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가슴팍에 꽂힌 비수와 미소 짓고 있는 설연홍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 충격과 경악, 그리고 의문이 가득했다.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비수가 가슴팍에 꽂힌 후에도 블랙지존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왜... 대체 왜?”블랙지존은 이 상황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직접 그를 죽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중상을 입어서 실력이 대폭 줄어든 데다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오늘이야말로 사부님을 죽일 가장 좋은 기회죠.”설연홍이 웃으며 말했다.“아 참, 칼에 십향연근제를 발랐어요. 지금의 사부님은 그저 죽기만을 기다리는 양일 뿐이에요.”“내가 너에게 못 해준 것도 없는데 왜 날 배신해? 내가 잘못한 거라도 있어?”블랙지존이 몸을 부르르 떨었고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사부님은 저에게 못 해준 게 없어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잘해주셨죠. 하지만 그래도 죽어야 해요.”설연홍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왜? 대체 왜?”블랙지존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설연홍의 손을 덥석 잡더니 시뻘게진 두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난 널 딸이라 생각하고 키웠어. 그 어떤 제자도 너처럼 대우를 받지 못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설연홍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냉랭하게 말했다.“왜냐고요? 그럼 그 이유를 말해줄게요.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살해했잖아요.”그 말에 블랙지존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빛에 경악이 담겨 있었다.“왜 아무 말이 없어요?”설연홍이 싸늘하게 말했다.“15년 전 섣달그믐날 밤에 당신은 한 무리 사람들을 데리고 설씨 가문에 쳐들어와서는 학살을 벌였어요. 우리 아버지는 당신 손에 죽었고 어머니는 능욕을 당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죠. 난 내 가족들이 짐승만도 못한 당신들 손에 죽는 걸 직접 봤어요. 그 끔찍한 장면을 난 지금까지 한순간도 잊지 않았고 잊히지도 않아요. 15년 동안 당신을 죽일 기회만을 노리면서 꾹꾹 참아왔어요. 하지만 당신 실력이 뛰어나고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해 넌 고작 6살이었고 게다가 잠들어 있었어.”블랙지존은 미친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내가 자는 척하지 않았더라면 죽였을 거잖아요.”설연홍이 말했다.“너!”블랙지존은 말을 잇지 못했다. 뛰어난 명성을 지닌 그가 여섯 살짜리 꼬마에게 당했을 줄은 정말 몰랐다.“이젠 진실을 다 알았으니 그만 죽어줘야겠어요.”설연홍이 다시 한번 미소를 지어 보였다.“잠깐! 넌 날 죽여선 안 돼.”블랙지존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네 몸속에 독충이 있다는 거 잊지 마.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제자를 들일 때마다 그는 제자에게 독충을 먹였다. 하나는 통제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배신을 막기 위해서였다. 눈앞의 이 상황이 가장 좋은 예다.“독충? 이걸 말하는 거예요?”설연홍은 피식 코웃음을 치더니 투명한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안에 빨간 지네 한 마리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너... 이거 어떻게 뺐어?”블랙지존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의 독충은 본체와 연결되어 있어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주술교의 장로가 직접 나서면 모를까...“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어떤 명의님께 부탁하여 독충을 미리 제거했죠. 아직 할 얘기 더 남았어요?”설연홍은 손에 힘을 주어 지네가 담긴 유리병을 깨뜨렸다.“연홍아, 이 사부를 한 번만 살려줘. 그러면 내가 평생 수련했던 모든 걸 너에게 가르쳐줄게.”당황한 블랙지존은 애걸복걸 빌기 시작했다. 지금의 그는 십향연근제의 약효로 진기를 쓸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필요 없어요. 내가 성녀를 찾아서 주술교에 들어가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얻을 수 있어요.”설연홍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연홍아, 지금 날 죽인다고 해도 네 부모님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해. 오랜 원수를 갚으려다가 새 원수가 생기겠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얼른 칼을 버려. 이 사부를 살려준다면 네 영혼도 구원받을 거야.”블랙지존은 생각나는 말이란 말은 다 내뱉으며 살기 위
눈이 점점 더 펑펑 쏟아졌고 밤도 깊어져 갔다.그 시각 조씨 가문 회의실.조군수 일행은 문 앞에 공손하게 서서 기다리면서 가끔 회의실 안의 상황을 힐끔거렸다.회의실에서 황동해와 유진우가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30분 전 황동해는 다른 사람을 물리고 유진우만 남겼는데 지금까지 안에서 나오질 않고 있다.“진우 씨, 일의 자초지종은 대충 이러합니다. 제가 이름을 숨기고 살았던 건 은아가 다치지 않게 원수를 피하기 위해서예요.”황동해는 마치 속마음을 나누듯 오랫동안 꾹꾹 참아왔던 말을 전부 다 털어놓았다.“은아의 어머니가 주술교의 성녀님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유진우도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주술교는 천하제일의 사파이다. 고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강자도 수없이 배출했다. 주술교에서 성녀는 만인이 우러러보는 존재다.유진우는 예전부터 황은아의 몸속에 왜 보호 봉인이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황은아의 어머니가 주술교 성녀라는 소리를 듣고 나니 모든 의문점이 한꺼번에 해결되었다.“성녀라는 자리가 듣기에는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기본적인 자유도 없어요. 전 은아가 자기 어머니의 길을 걷는 걸 원치 않아요.”황동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나저나 이 비밀을 왜 저에게 얘기해주시는 거죠?”유진우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주술교 성녀라는 신분은 절대 일반적인 신분이 아니기에 웬만한 사람은 알 자격도 없다.“예전에는 비밀이었지만 이젠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어요.”황동해가 고개를 내저었다.“제가 손을 쓴 그 순간부터 정체가 드러났고 주술교 쪽에서도 곧 움직임이 있을 겁니다.”곳곳에 주술교의 제자들이 분포되어 있다. 전에 도망갔던 블랙지존도 주술교 제자 중 한 명이었다.“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뭡니까?”유진우가 물었다.“오랜 시간 도망쳤으니 이젠 마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어떤 일은 언젠가는 마무리 지어야 하잖아요.”황동해의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역력했다.“제가 지금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건 은아예요. 무리한 부탁
두 사람이 하도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었기에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한 건 당연했다.“별 얘기 안 했어요. 아저씨가 저더러 은아를 잘 챙겨달라고 하더라고요.”유진우가 대답했다.“고작 그 얘기밖에 안 했다고?”조군해는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안 그러면요?”유진우가 어깨를 들먹였다. 한 사람의 안위가 달린 문제이기에 황은아가 성녀의 딸이라는 사실을 쉽게 발설해서는 안 되었다.“됐어요. 다른 일은 잠시 제쳐두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블랙지존을 잡는 거예요. 블랙지존이 살아있는 한 조씨 가문은 편히 지내지 못해요.”조군수가 화제를 돌렸다.“둘째가 애들 데리고 쫓아가긴 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조군해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블랙지존이 중상을 입긴 했지만 무도 마스터라 상대를 제압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족장님...”그때 조씨 가문 집사가 갑자기 회의실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는데 손에는 네모난 선물 박스를 들고 있었다.“무슨 일이야?”조군수가 고개를 돌렸다.“방금 어떤 사람이 선물을 보내왔는데 유진우 씨에게 드리라고 했습니다.”집사가 말했다.“저요?”유진우가 의아해했다.“뭔데요?”“그건 저도 몰라요. 그냥 깜짝 선물이라고만 했어요.”집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깜짝 선물? 뭔지 열어봐야겠어요.”유진우는 웃으며 선물 박스를 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람들의 낯빛이 급변했다. 선물 박스에 담겨 있는 건 다름 아닌 피로 흥건한 사람 머리였는데 바로 블랙지존이었다....그 시각 선우 저택.선우희재가 홀로 서재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데 구석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물방울 가면을 쓴 한 여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무슨 일이야?”선우희재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시선은 여전히 바둑판에 향해 있었다.“주인님, 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블랙지존이 죽었답니다. 그리고 조씨 가문의 보물 지도도 손에 넣지 못했고요.”가면을 쓴 여자가 낮은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뭐?”선우희재가 눈살
이씨 그룹 회장 사무실.커다란 통유리 앞에서 흩날리는 눈꽃을 내다보고 있는 이청아의 눈빛이 어딘가 허전해 보였다.오늘 밤 수많은 집의 등불이 환하게 밝아있지만 그녀는 쓸쓸하게 혼자 사무실에 있었다.어제 어머니는 남동생의 유골과 함께 돌아갔고 그녀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서울에 남았다. 한편으로는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가족들에게 이현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어쨌거나 진범이 잡히기 전까지 유진우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다.따르릉...한창 정신이 딴 데 팔린 그때 전화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이청아가 휴대 전화를 꺼내 확인해 보니 이씨 가문의 족장 이세훈의 전화였다.“여보세요? 큰할아버지, 무슨 일로 전화주셨어요?”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청아야, 너 올해 집에 가지 않고 계속 회사에 남아서 야근하고 있다고 네 할아버지가 그러던데?”이세훈이 걱정스럽게 물었다.“회사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여기 남는 게 더 편해서요.”이청아가 웃으며 말했다.“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적당히 쉬어가면서 해. 안 그러면 몸이 망가져.”“명심할게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아 참, 너와 중요하게 상의할 일이 있어서 전화했어.”“말씀하세요, 큰할아버지.”“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 뜻대로 움직이기 어려워. 그래서 말인데, 그만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씨 가문의 족장 자리를 너에게 맡기려고 해.”이세훈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네? 저더러 족장 직을 맡으라고요?”화들짝 놀란 이청아는 거절하기에 바빴다.“큰할아버지, 그건 절대 안 돼요. 어린 제가 어찌 족장 자리에 앉을 수 있겠어요?”“너의 능력과 재능을 난 다 지켜봤어. 족장이 되어서 이씨 가문을 통제할 자격이 충분히 있어.”이세훈이 진지하게 말했다.“전 조씨 가문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많은 사람들의 신망을 얻는 건 어려워요. 그리고 훌륭한 자제들도 많은데 아무리 줄을 서도 제 차례는 안
“하하... 약속했으니 됐어.”이세훈은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었다.“내일 아침에 가족회의를 열어서 네가 이씨 가문의 새로운 족장이라고 발표할 거야.”전화를 끊은 후에도 이청아는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기쁜 일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이청아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씨 가문의 족장이 되었고 지위가 수직으로 상승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그녀가 뛰어난 능력을 지닌 건 사실이지만 아직 가문 전체를 관리할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일어설 기회인 건 분명했다. 기회가 생겼으니 당연히 놓쳐선 안 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한번 해봐야지....이튿날 이른 아침, 펑펑 내리던 함박눈이 멈췄고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유진우가 염룡파에 돌아오자마자 홍길수가 흥분한 얼굴로 맞이했다.“보스, 기쁜 일이 있어요.”“뭔데? 와이프가 애를 낳았어?”유진우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그것보다 더 기쁜 일이에요.”“혹시 쌍둥이야?”“보스, 상상의 나래를 좀 펼치면 안 돼요?”“상상의 나래? 음... 알겠다. 네 와이프 배 속의 아이가 네 아이가 아니구나?”“참 나...”홍길수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점점 더 막장이 되어가는데?”“보스, 그냥 알려줄게요. 이현을 죽인 진범을 드디어 찾았어요.”홍길수는 더는 뜸 들이지 않았다. 더 끌었다간 와이프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라도 난 줄 알겠다.“진범? 어디 있어?”유진우의 눈빛이 굳어지더니 바로 진지해졌다.“제가 심하게 쥐어팬 바람에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배후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이미 자백했어요.”홍길수가 말했다.“누군데?”유진우가 캐물었다.“이씨 그룹의 부회장 박호철이었어요.”홍길수가 진지하게 대답했다.“박호철?”참으로 의외의 인물이었다.“그 사람이라고?”“진범의 진술에 따르면 박호철은 이청아 회장님을 끌어내리려 했지만 보스가 두려워서 직접 나서진 못하고 이간질 작전을 쓴 것 같아요. 보스와 청아 회
화려한 불빛이 반짝이는 어느 한 클럽의 VIP 룸.사장인 박호철은 안경을 쓴 한 민머리 남자를 정성스럽게 대접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예쁘장한 아가씨들이 교태를 부리면서 아양을 떨고 있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대접은 없을 것이다.“강 집사님, 이렇게 친히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저의 마음이니 부디 받아주세요.”박호철은 수표 한 장을 꺼내 민머리 남자의 테이블 앞에 내려놓았다. 민머리 강 집사는 수표를 힐끗 보고는 더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하여 옆에 있는 아가씨와 러브샷 하며 즐겼다.“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선물을 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그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린 박호철은 옆에서 선물 박스를 꺼내 두 손으로 그에게 건넸다. 박스를 열어보니 금으로 만든 소가 놓여있었는데 딱 봐도 몇 킬로그램은 돼 보였다. 적어도 이삼억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하하... 부회장, 뭘 이런 것까지 준비했어? 우리 사이에 이런 귀한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가 있나?”금을 보자마자 강 집사의 안색이 환해졌고 골든 소와 수표를 자연스럽게 받았다.“강 집사님께서 저 먼 중주에서부터 힘들게 오셨는데 이 정도 선물은 당연히 드려야죠.”박호철은 웃는 낯으로 대했지만 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다.‘여우 같은 영감탱이, 욕심이 점점 더 과해진다니까.’하지만 부탁해야 하는 처지에서는 손해를 보고도 뭐라고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강 집사님, 이번에 오시면서 그것도 가져오셨죠?”박호철이 떠보듯 물었다.“걱정하지 마. 한두 번도 아니고 당연히 잊지 않았지.”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자색 약병을 꺼내 박호철에게 건넸다. 박호철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면서 손을 내밀어 받으려는데 강 집사가 뒤로 빼며 귀띔했다.“부회장, 이거 엄청 귀한 거야. 일 년에 이 한 병밖에 없다고. 그 집 할머니가 이 영약으로 목숨을 부지한댔지?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돼. 내 말 명심해.”“네네, 이 약을 제 목숨보다도 중히 여기는걸요?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게요.”박호철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우와 이청성은 원래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포니테일 여자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화살을 두 사람에게 겨누자 잠시 반응이 없었다.“그래! 저 사람들은 열몇 가지 음식이 있고 전부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아 보이잖아. 근데 우리 상에 올라온 건 전부 쓰레기야!”“당장 우리 음식도 바꿔줘! 그렇지 않으면 정말 화낼 거야!”많은 사람들이 소란을 피웠고 말하면서 식탁 위의 음식을 바닥에 힘껏 내던져 온통 엉망진창이 되었다.“죄송합니다. 저희 작은 가게 능력으로는 정말 저렇게 유명한 음식으로 바꿀 수가 없어요.”종업원이 울상을 지으며 난감해했다.“바꿀 수 없다고? 그 말은 우리가 저런 음식을 먹을 돈이 없다는 거야?”매부리코 남자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지금 사람을 차별 대우하겠다는 거야? 우리가 누군지 알아? 우리가 바로 강호에서 유명한 비설파 제자들이야. 만약 우리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이 가게는 오늘로 끝이야!”포니테일 여자가 흉악하게 소리쳤다.“오해, 모두 오해입니다.”종원은 화들짝 놀라며 설명했다.“저 유명한 음식들은 전부 손님이 직접 데려온 요리사가 요리한 겁니다. 저희는 그저 주방만 제공했을 뿐이에요.”“뭐? 요리사를 데리고 왔다고? 지금 장난쳐? 누가 요리사를 데리고 다녀?”포니테일 여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죽음의 사막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보물을 찾으러 오는데 요리사를 곁에 두는 것이 말도 안 되었다.“정말입니다. 제가 직접 봤어요. 제가 어찌 감히 여러분을 속이겠어요.”종업원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그 말을 들은 비설파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결국 유진우와 이청성에게 시선을 돌렸다.“이봐, 그 음식들 정말 그쪽 사람들이 만든 거야?”포니테일 여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맞아요.”이청성은 고개를 끄덕였다.“밖에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직접 요리사를 데리고 왔어요.”“그래?”포니테일 여자는 식탁 위의 요리를 자세히 보고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새우 볶음, 쏘가리구
“에취!”여관에서 막 옷을 갈아입던 유진우는 갑자기 재채기하고 속으로 ‘도대체 누가 나를 생각하는 거지?'라고 중얼거렸다.유진우는 코를 비비고 방을 나와 여관 식당에 도착했다.이 여관은 초등학교를 개조했기 때문에 식당의 면적도 작지 않았는데 대략 이삼백 제곱미터였다.백여 명이 식사하기에 넉넉했다.“여기요!”유진우가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이청성이 손을 들어 흔드는 것을 보았다.앞으로 다가가 보니 테이블 위에 이미 십여 가지 맛있는 음식이 놓여 있었다.“이 음식들은 전부 우리 주방장이 만든 거예요. 안전하고 맛도 있으니 안심하고 드세요.”이청성이 설명하자 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조심성이 많으시네요.”그는 사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집 밖에 나오면 조심하는 게 맞죠. 이곳은 죽음의 사막 경계지역으로 아주 혼잡해요. 경각심을 늦추면 언제 죽을지 몰라요.”이청성은 젓가락을 집어 들고 천천히 씹으며 우아하게 먹었다.두 사람이 밥을 먹고 있을 때, 청의를 입고 보검을 든 젊은 남녀들이 갑자기 들어왔다.이 사람들은 분위기가 강하고 눈빛이 날카로우며 압박감이 넘쳤다. 옷차림을 보니 강호의 문파 제자일 것이다.그중 선두주자는 마른 체구의 매부리코 남자로,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인상이 다소 험상궂어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대선배님, 이곳은 너무 낡았어요. 그리고 더러운 물건도 많은데 어떻게 여기서 식사를 하겠어요?”포니테일을 한 여자가 사방을 둘러보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어쩔 수 없어. 이번에는 상황이 열악하니 대충 때워.”매부리코 남자가 좋은 말로 달랬다.“그래요. 온 김에 대충 먹죠 뭐. 배고파 죽겠어요.”포니테일 여자는 그나마 깨끗한 자리를 찾아 앉더니 외쳤다.“종업원! 여기에서 가장 좋은 요리로 당장 준비해!”“네!”종업원이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그리고 요리사에게 몇 가지 귀한 요리를 준비해서 먼저 내놓으라고 당부했다.그러나 포니테일 여자가 음식을 집어 한 입 먹자마자 곧바로 토했다.“퉤! 이
“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달라요.”팀원들의 비웃음에 진이수는 부인하지 않았다.서로 생사를 함께한 형제자매들이라 못할 말이 없었다.“청성 아가씨는 정말 특별해요. 비록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분명 절세미인인 느낌이 들어요.”체격이 우람진 한 대머리 남자가 늠름하게 말했다.“황소야, 청성 아가씨는 대장님이 마음에 두신 여자야. 분수에 넘치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그냥 한 말인데 왜 내가 감히 대장님 여자를 뺏는 것처럼 말해?”대머리 남자가 멋쩍게 웃었다.“대장님, 모처럼 설레는 여자를 만났으니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마시고 용감하게 행동하세요. 대장님의 남성적인 매력이라면 충분할 거예요!”단발머리 여자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왠지 한발 늦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진이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가씨 옆에 수행 경호원이 있는데 두 사람 같은 차에 타고 온 걸 보면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아. 난 아마 기회가 없을 거야.”전에 유진우를 겨냥한 건 질투심 때문이었다.게다가 이청성이 유진우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면 두 사람은 분명 평범한 친구 사이가 아닐 것이다.“대장님, 방법만 정확하면 넘어오지 않는 여자는 없어요.”단발머리 여자가 실눈을 뜨며 말했다.“그래?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진이수는 순간 흥미가 돋았다.“아주 간단해요. 아가씨 옆에 있는 그 경호원이 죽기만 하면 대장님에게 기회가 생기지 않겠어요?”단말 머리 여자가 놀라운 말을 하자 진이수는 안색이 굳어져서 좌우를 둘러보며 아무도 엿듣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은하야, 함부로 말하지 마. 행동에는 규칙이 있는 법이야. 우리는 탐험대이지 용병이 아니야.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치는 일은 일단 소문이 나면 앞으로 누가 우리를 찾겠어?”“저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면 누가 알겠어요?”은하는 웃을 듯 말 듯 말했다.오랜 세월 강호를 누비며 서로 속고 속이며 생사를 걸고 싸웠으니
진이수의 갑작스러운 적대적 태도에 유진우는 잠시 당황하며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초면이고 아무런 악연도 없는 상황인데 왜 이렇게 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까?’ “진 대장님, 우리가 전에 만난 적 있나요?” 유진우는 가볍게 물으며 손을 천천히 내렸다. “만난 적 없는데요.” 진이수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유진우가 되물었다. “저는 그저 청성 씨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예요” 진이수는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 “죽음의 사막은 위험이 도사리는 곳으로서 들어간 사람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이 거의 없어요. 강한 실력과 전문적인 지식, 경험이 없다면 일반적인 사람은 하루도 살아남지 못해요. 청성 씨가 저를 고용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청성 씨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죠. 그런데 당신은 전문적인 경호원이 아닌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당신의 능력이 의심되네요. 사막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청성 씨가 오히려 당신에게 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돼요.” 진이수의 말은 매우 직설적이고 거칠었다. “진 대장님, 청성 씨가 저를 데려온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의 역할은 단지 길을 안내하는 것뿐이에요. 위험을 피하고 그것만 잘하면 됩니다. 그 이상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저를 평가할 권리는 없습니다. 제가 할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유진우는 차분하게 답했다. 그는 성격이 온화한 편이지만 이처럼 자신을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돈을 받는 일도 적당히 해야죠. 이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그렇게 대충할 수 없어요.” 진이수는 여전히 진지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은 이청성을 향했다. “청성 씨, 이 일과 관련된 뛰어난 경호원을 몇 명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저를 믿으신다면 그들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물론 비용이 더 들겠지만요.” “진 대장님, 그 마음은 고맙지만 저는 유진우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가 있기 때문에 제 안전은 문제가 없을 거예요.” 이청성은
차량은 일정한 속도로 순조롭게 달렸다. 결국, 그들은 다음 날 오전에 죽음의 사막의 가장자리 지역에 도착했다. 사막의 가장자리에는 크지 않은 마을이 하나 있었다. 약 500-600가구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마을에는 여관, 주유소, 마트 등이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필요한 물건들은 다 갖추어져 있었다. 탐험대들에게 이 마을은 중요한 보급소로 위험한 순간에 생명의 은인이 되기도 한다. 사막에 들어가기 전이나 사막을 빠져나오는 이들은 모두 이 마을에 잠시 머물며 정보를 얻고 물자도 보충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막으로 물자를 운반하기 어려운 탓에 마을의 물가가 외부보다 몇 배나 비쌌다는 것이다. 이청성의 차량 행렬은 마을에 들어가 ‘희망의 집’이라는 이름의 여관 앞에 멈췄다. 이 여관은 원래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방이 아주 많아 100명 넘게 수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청성 씨, 도착했습니다.” 차량이 멈추고 한 명의 용병 옷을 입은 남자가 이청성의 차 창문을 두드렸다. 그 남자는 30대 중반의 키 큰 남자였고 황색 군복을 입고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강한 인상의 얼굴을 지닌 그 남자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느낌을 주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진이수, 탐험대의 대장이며 죽음의 사막에 두 번 들어가 성공적으로 살아 돌아온 경험이 있는 유능한 인물이었다. 이청성은 그에게 큰돈을 주고 가이드를 맡겼다. 이번 탐험도 그가 이끌게 되었다. “진 대장님, 이곳이 바로 사막의 마을인가요?” 이청성은 차 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부분의 건물은 낮고 허름해 보였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오랜 세월 닳고 닳아 마을은 전반적으로 허술하고 거칠게 보였다. 하지만 ‘희망의 집’이라는 여관은 예외였다.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자주 청소하는 듯했다. “맞습니다. 반경 100리 내에 이 마을 하나뿐입니다. 죽음의 사막에 가까워서 ‘사막의 마을’이라 불리죠.” 진이수는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이
왕부에 돌아온 유진우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두 통의 편지를 썼다. 하나는 유만수의 서재에 두었고 다른 하나는 유천우의 침실에 놓았다. 이 두 통의 편지는 사실 떠나기 전에 그들에게 남기는 작별 인사였다. 유진우는 감정적인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했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 떠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일 때가 있었다. 황혼이 내려앉을 무렵, 유진우는 이청성의 차에 몸을 싣고 서남의 사막으로 향했다. 서남에서 가장 거대한 사막은 ‘죽음의 사막'이라고 불린다. 이 사막은 환경이 극도로 험하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잘못 들어가면 거의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물론 죽음의 사막은 위험하지만 그 안에는 보물도 숨겨져 있고 금광도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수많은 탐험대가 생명을 걸고 사막에 들어가 운을 시험하려 한다. 운이 좋으면 보물을 발견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목숨을 잃고 만다. 과장하지 않고 말하자면 매년 수백 명이 보물을 찾아 사막에 들어가다가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도 죽음의 사막에는 끝없이 많은 탐험대가 몰려든다. ‘사람은 재물을 위해 죽고 새는 먹이를 위해 죽는다'는 말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일확천금을 꿈꾸며 사막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청성은 당연히 죽음의 사막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 신비로운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죽음의 사막에서 탐험했던 경험이 있는 전문 탐험대에게 큰돈을 지급해 길잡이를 맡겼다. 자신의 호위대와 합쳐 총 100명 이상의 인원과 30대가 넘는 차량이 함께 떠났다. 그중 절반 이상은 물자를 실은 차량이었다. 음식, 물, 나침반, 통신 장비, 응급처치 키트, 자외선 차단복, 구조 도구 등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청성은 부족함 없이 모든 물품을 준비했다. 밤이 깊어졌다. 차량 행렬은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었다. 유진우는 자리에 기대어 창밖으로 달빛을 바라보며 얼굴에 어떤 감정도 드러내
점심을 먹고 난 후, 유진우는 갑자기 이청성의 전화를 받았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상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날 장소는 성서의 옛 저택으로 정했다. 성서에 있는 그 오래된 집은 유진우가 이미 구매해 놓은 곳으로 주로 밀사 훈련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전에 소현무에게 피해를 보았던 여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서경의 밀사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의 큰 뜻은 다시는 자신들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깊은 뜻에 유진우는 존경을 표했으며 그들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손도운의 훈련을 거친 그 여자들은 이제 입문 단계에 있지만 진짜 임무를 수행하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의 연습이 필요했다. 유진우는 그들이 평생 임무를 수행할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의미였다. 밀사들은 잠재적인 위협이 있을 때만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그들은 거의 죽을 각오로 임무를 수행한다. 30분 후, 유진우는 성서의 오래된 집에 도착해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청성이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청성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면사포와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매만 봐도 여전히 매우 유혹적이었다. 특히 그녀에게서 풍기는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기운은 마치 타고난 매력처럼 사람들을 쉽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주었다. “왔어요?” 이청성은 직접 유진우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공주마마, 갑자기 절 찾으시다니, 무슨 일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유진우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이렇게 친해졌는데 공주마마라 부르는 게 좀 어색하지 않나요? 다른 호칭을 쓰는 건 어때요?” 이청성은 미소를 머금은 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뭐라 부르면 되나요? 아가씨? 아니면 여사님?” 유진우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에이, 그런 거 말고 그냥 청성 씨라고 불러도 되잖아요. 왜 그렇게 격식을 차려요?” 이청성은
원인은 간단했다. 유진우는 배신자를 극도로 혐오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적인 자들은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했다. 반란을 일으킨 다섯 명을 처형한 후, 그들을 따랐던 고급 장교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처분이 내려졌다. 강등될 자는 강등되고 포섭할 자는 포섭하며 감옥에 가야 할 자들은 감옥에 보냈다. 구체적인 처분은 자발적인 배신이었는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 유진우는 반란을 수습하는 동시에 홍복홍에게 유만군의 한 부대를 이끌고 보물 지도의 위치를 따라 호룡각의 보물 창고를 찾아가도록 지시했다. 모든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호룡각에도 고수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대 마스터인 홍복홍 앞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손쉽게 호룡각의 잔당을 소탕하고 보물 창고에 있던 모든 재물을 회수해 왔다. 사철수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보물 창고 안에는 재물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경 왕부에서 동원한 수백 대의 대형 트럭과 수만 명의 인력을 총동원해야만 창고를 완전히 비울 수 있었다. 그 모든 재물의 양과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가늠조차 하기 어려웠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이 보물만으로 서경의 향후 20년 군자금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창고 하나만으로 이 정도라면 남은 세 개의 보물 창고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나라를 사고도 남을 부가 될 것이었다. 보물을 가져온 뒤 가장 먼저 진행된 것은 바로 공로를 논하고 상을 주는 일이었다. 남방의 세 명의 제후인 회음 제후 은성종, 평양 제후 장범규, 선평 제후 주한휘는 모두 큰 공을 세운 자들이었기에 마땅한 보상을 받았다. 그들의 휘하에 있던 장군과 병사들도 저마다 공훈에 따라 상을 받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어느덧 사흘이 지나 있었다. 3일 후, 정오. 유진우가 식사하던 중 홍복홍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나무 상자가 들려 있었다. “세자 전하, 아뢸 일이 있습니다.” 홍복홍은 몸을 숙이며 최대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
“됐어, 시간도 늦었으니 일찍 방에 들어가서 쉬어.”유만수는 피곤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유만수가 유진우한테 왕위를 계승해 줄 생각을 했던 건 한편으로는 유진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책감 때문에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주고 싶어서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진우는 야망도 없고 많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그러니 유만수도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얼마 남지 않은 삶이니 이젠 두 아들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 외에 일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유진우는 뭔가를 말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우는 아직 왕이 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확실히 아니었다.다른 사람들한테는 서경의 왕은 최고의 권세를 대표하고 무궁무진한 부귀영화를 대표하며 세계 정상에 서는 위풍을 대표하겠지만, 유진우한테 서경의 왕은 너무 무거운 자리였다.그 자리는 오르기만 하면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 많고 더 이상 자기 자신보다 전체 서경, 더 나아가 천하의 백성을 생각해야 한다.유진우는 자신은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 이렇게 무거운 책임을 질 자신이 없었다. 유진우는 이번만큼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칠 동안 유진우는 왕부에서 시간을 보냈다.반역을 평정하는 이번 일은 호룡각을 소탕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처리해야 할 사소한 일이 많았다.유만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유진우가 그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했다.먼저 유태범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문제였다. 유진우는 유태범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첫째, 병권을 반납하고 서경에 머물며 매일 개를 산책시키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한가로운 귀족으로서 부귀한 삶을 누린다. 단, 어떤 세력도 있어서는 안 되며 수중의 호위대도 백 명을 넘지 말아야 한다.둘째, 어느 정도의 금전을 가지고 서경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발전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왕부는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