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은 억지로 웃음을 터뜨렸다.“친한 척하지 마세요!”조무진은 조금도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용씨 가문은 아주 겁을 상실한 것 같던데요? 어디 내 앞에서도 건방지게 굴어보시던가요!”조무진의 말을 들은 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은 안색이 좀 어두워졌다.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수모를 당했으니, 그의 성격대로라면 벌써 화를 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화가 치밀어 올라도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조무진을 건드릴 수 없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방금까지 위풍당당하던 그 모습은 어디 갔나요? 내 친구를 괴롭히다니, 당신들은 정말 겁을 상실한 게 틀림없어요!”조무진은 두 사람에게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아랫사람에게 훈수를 두는 것 같았다. 반면,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지켜보던 구경꾼들도 깜짝 놀라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삿대질까지 당하며 욕을 먹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대꾸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으니,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빨리 제 친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하세요!”조무진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그건...”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렸고 안색이 더없이 어두워졌다.용씨 가문의 직계 자제인 그들이 어떻게 남에게 엎드려 절까지 하며 사죄를 한단 말인가? 만약 소문이라도 난다면, 용씨 가문은 더이상 위신이 서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일 아니겠는가?“조무진! 당신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용호걸은 좀 화가 났다.“퍽!”조무진은 손바닥을 치켜들더니 다짜고짜 용호걸의 뺨을 한 대 때렸다.“뭐라고? 너무해? 인마, 그래서 어쩔 건데?”“당신...”용호걸은 입을 벌리다가 미처 말을 뱉지도 못하고 또 뺨 한 대를 세게 맞았다.“오늘 너의 사과를 듣지 못하면, 난 네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조무진이 강력하게 말했다.이때 용호걸은 눈에
소문에 의하면 용씨 가문에는 ‘흑풍쌍살’ 이라고 불리는 두 명의 마스터 경지 고수가 있었는데, 평소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두 사람은 뜻밖에도 오늘 용수현을 따라 이곳에 왔다.막상 손을 쓰려니 전혀 이득을 보지 못할 것으로 보이자, 조무진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어떻게 복수해야 할지 궁리했다.“흥... 전쟁의 신이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아요? 우리 용씨 가문을 상대로 감히 뭘 할 수 있겠어요?”용호걸은 마음속에 잠시 접어뒀던 오만함을 다시 꺼냈다.‘큰아버지가 여기 계시는 한, 아무리 조무진이라 해도 별수 없을 거야.’“역시 형님은 위풍당당하십니다.”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도 고개를 들고 가슴을 폈고 처음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조씨 가문이 만만한 세력인 것은 아니었지만 용씨 가문도 결코 무른 감이 아니었다.용수현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 용씨 가문의 자제들은 다시 기세를 되찾았다.“진우 형, 용씨 가문이 내 체면을 봐주지 않을 것 같은데, 한 번 제대로 붙어볼까?”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유진우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만약 유진우가 머리 한 번만 끄덕인다면 가차 없이 용씨 가문으로 돌진하여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어차피 유진우가 그의 뒷배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용씨 가문 가주님도 오셨으니 그만두자.”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용씨 가문이 두려워서 그만두려는 것이 아니라, 조무진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려고 했다.“그래, 형의 말에 따를게.”조무진은 어깨를 으쓱했다.“용씨 가문 가주님, 조카 녀석을 잘 가르쳐야겠어요. 다음에는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을 겁니다.”유진우는 차갑게 말하고 돌아서서 떠날 준비를 했다.“거기 서!”용수현이 유진우를 불러세웠다.“내가 가도 된다고 했나? 내 조카에게 손찌검하고, 우리 용씨 가문의 체면을 이렇게 짓밟고, 인제 와서 등 돌려 떠나려고 해? 정말 우리 용씨 가문을 만만하게 보는구나!”“맞아! 공공연히 내 혼례를 망치고 손찌검까지 했으니, 오늘 너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등 굽은 중년 남자의 등장에 용수현과 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은 두피가 저렸고 소름이 돋았다.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용국의 지존이자, 천자도 예의를 갖춰 대하는 대단한 존재인 위왕, 유만수였다. 유만수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그들 모두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었다.“뭐야?”굽은 등의 중년 남자, 유만수를 본 유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안색이 어두워졌고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렸다.“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기겠는걸.”조무진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이내 한쪽으로 물러서며 깨 고소해하는 표정을 지었다.만인의 주목을 받으며 굽은 등의 중년 남자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위풍이나 기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보통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중년 남자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물러섰다. 그 중년 남자는 유진우 앞에 멈춰 섰다.“오랫동안 못 봤는데, 네놈이 이렇게 컸을 줄이야.”유만수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유진우를 보며 절로 씩 웃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드러난 이를 보니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당신이 아직도 죽지 않았을 줄은 몰랐네요.”유진우는 눈빛에 칼을 품은듯했고 말투가 유난히 차가웠다. 그 말을 들은 용수현 등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이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뭐길래 이런 망언을 퍼붓는 것이야? 감히 위왕께 이런 말을 하다니?’“허허... 착하게 산 사람보다 죄악을 많이 지은 사람일수록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 난 거지.”유만수는 오히려 호탕하게 웃어넘겼고 전혀 화난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그래요? 하지만 당신의 꼬락서니는 전혀 장수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걸요.”유진우가 예의도 없이 차갑게 툭 던졌다.“이놈아! 너처럼 아비를 저주하는 아들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이냐?”유만수가 또다시 호탕하게 웃으며 받아쳤다.“당신이 저랑 무슨 상관있다고 그래요? 쇼 좀 하지 마세요.”유진우가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네가
이 시각, 이씨 가문 별장 내에서 장경화는 한창 요란법석을 떨며 짐을 싸느라 여념이 없었고 순식간에 캐리어 두 개를 꽉 채워 끌고 나오며 말했다.“청아야! 서두르지 않고 뭐 하니... 돈이 될만한 명품 가방, 목걸이 등 보석들은 전부 찾아내! 더이상 강능에 머물 수는 없어, 서둘러 정리하고 당분간 해외로 떠나있자! 항공권은 이미 끊어뒀고 통장에 들어있던 여윳돈도 몇억 되니까 당분간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장경화는 초조한 얼굴로 재촉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용씨 가문과의 혼사를 엎어버린 것은 용씨 가문은 물론, 강북 이씨 가문까지 건드린 경우였다. 그 때문에 작은 강능뿐만 아니라, 용국 전체에 발 디딜 곳이 없게 되었다.“청아야! 뭐 하고 있어? 얼른 짐 싸라고 했잖아!”이청아가 자기 말대로 움직이지 않자, 장경화는 화가 치밀어올랐다.“엄마,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굳이 도망가듯 짐을 쌀 필요 없단 말이에요.”이청아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내가 답답한 딸내미 때문에 속 터져 못살아! 아직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거야?”장경화는 허벅지를 내리치며 안타까워했다.“용씨 가문이잖아! 중주의 재벌가, 권력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 이렇게 모두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용씨 가문의 체면을 깎아내렸으니 용씨 가문은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저도 알아요. 하지만 진우 씨가 알아서 해결할 거라고 했으니, 기다려 볼래요.”이청아가 말했다.“너 제정신이야? 그 멍청한 녀석의 말만 믿고 기다리겠다고?”장경화가 뒷목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유진우가 뭔데, 무슨 재주로 용씨 가문을 상대한단 말이야? 게다가 그 녀석이 너의 혼사를 망친 것만 아니면 우리 이씨 가문이 이런 사태에 휘말릴 일은 없었을 거야! 그놈은 재수탱이야!”예정대로라면 이씨 가문은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우 때문에 그들은 하늘이 내린 기회를 잃게 되었다. 그 때문에 유진우는 장경화
“데리고 나가!”이서우가 가볍게 손짓하며 강압적으로 이청아를 끌어내라고 했다.“누가 감히 움직여!”별안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근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진우가 왕현을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들어왔다.“함부로 경거망동한다면 가만두지 않겠어!”“진우 씨?”지금까지 굳어있던 이청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까지 마음졸이던 이청아는 그제야 걱정을 내려놓았고 유진우가 무사히 돌아올 거란 약속을 지켰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너... 어떻게 아직 살아있는 거야?!”이서우는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 유진우는 이미 포위됐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대단한 실력자라고 해도 용씨 가문의 포위망을 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그러게 말이야? 방금 그 말은 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까? 어쨌든 나는 네 어머니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인데, 어떻게 조금의 고마움도 없을 수 있지?”유진우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흥! 딴소리하지 마! 어떻게 도망쳐 나왔는지는 몰라도 용씨 가문의 눈에 찍힌 이상, 당신들은 모두 살아남을 수 없을 거야!”이서우가 눈에 불을 켜고 말했다.“용씨 가문이 뭔 대수라고? 이렇게 멀쩡하게 나온 건 나도 해결책이 있었기 때문이야.”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해결책? 웃기고 있네... 어떻게 해결했는데? 의사 나부랭이 주제에 용씨 가문과 맞서기라도 했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이서우가 차갑게 웃었다.“모든 사람을 네 기준에서 보려고 하지 좀 마. 난 용씨 가문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용호걸이 직접 찾아와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유진우가 강력하게 말했다.“무릎 꿇고 사과하게 해?”이서우는 흠칫하더니 껄껄 웃기 시작했다.“유진우, 제정신이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용씨 가문 도련님의 사과를 받아낸다는 거야?”“흥! 능력도 없는 놈이 입만 살아서! 내 딸이 너 같은 녀석을 좋아하는 게 이해가 안 될 따
“이청아 씨, 부디 용서해 주세요!”용호걸이 무릎을 꿇은 후, 한 무리의 용씨 가문 사람들이 우르르하고 동시에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어...”예상치 못한 장면에 이청아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이서우도 마찬가지였고 울부짖던 장경화마저도 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서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용씨 가문이 책임을 물으러 온 게 아니란 말인가? 먼저 무릎을 꿇고 사과하다니? 재벌가 자제이자 중주의 실세라고 불리는 용호걸이 왜 갑자기 이처럼 비굴한 신세가 된 걸까?’“이청아 씨!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 큰 잘못을 범했네요.부디 저를 용서해 주세요!”이청아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미친 듯이 자기 얼굴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이내 붉게 부어오른 그의 얼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30분 전 결혼식장에서 유진우의 정체를 알게 된 그는 그대로 놀라 주저앉았고 자신의 처지를 한순간에 깨닫게 되었다.심지어 큰아버지인 용수현은 이 일에 용씨 가문이 연루되지 않게 하려고 그를 집에서 내쫓았고 철저히 선을 그었다.하지만 뜻밖에도 유진우는 그를 풀어주었다. 물론 이청아에게 가서 직접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그 결과에 용호걸은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고, 즉시 이씨 가문의 별장으로 달려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목숨만 건질 수 있다면, 존엄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다.“뭐 하세요?”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한 용호걸을 보며 이청아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잔뜩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생사를 내세워 협박까지 해대던 용씨 가문 큰 도련님이 순식간에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을 줄은 상상조차 못 해볼 일이었다. 이런 상황은 그녀로서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내가 노안이라 잘못 본 거 아니겠지?”장경화는 계속해서 눈을 비비며, 좀처럼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용호걸은 권세를 손에 쥔 재벌가 도련님이잖아?’“도련님, 이게 무슨
이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도련님께서 더는 저희를 귀찮게 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신다면 저희가 어찌 감히 도련님께 죄를 묻겠습니까?”“맞아요! 도련님, 빨리 일어나세요... 피를 이렇게 많이 흘렸으니, 제가 밴드라도 찾아드릴게요.”장경화는 급히 침실로 뛰어 들어가 약상자를 뒤졌다.‘밴드?’용호걸은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장난하나? 손가락 두 개가 잘려 나갔는데, 밴드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도련님, 우선 병원이라도 가보시죠? 피가 쉽게 멈출 것 같진 않아 보이네요.”이청아가 떠보는 듯 물었다.“이청아 씨, 그러면 저를 용서하신 건가요?”용호걸이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네, 앞으로 저를 귀찮게 하지 않으신다고 약속만 해주시면 됩니다.”이청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죠! 지금 바로 꺼질게요. 그리고 다시는 당신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용호걸은 너무 기쁜 나머지 싱글벙글 웃으며 이청아와 유진우를 향해 절을 하고 황급히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쳤다.“저기요! 도련님! 밴드 갖고 가세요!”장경화는 한참 동안 찾은 밴드를 들고 끊임없이 흔들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머리 한 번 돌리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이청아! 딱 기다려라. 오늘 일은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으니까!”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이서우도 서둘러 자리를 떴다.오늘 일어난 일은 정말 기이하다고 할 정도였다. 용씨 가문의 도련님이 이청아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조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청아야, 용호걸이 자극받아서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지?”사람들이 떠난 후, 장경화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한마디 물었다. 그녀가 보기에 용호걸이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쉽게 그녀들에게 잘못을 인정할 리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자기 손가락까지 잘라가면서 성의를 표시하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행
“어?”유만수를 보자마자 유진우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한없이 냉담해졌다.“여길 어디라고 들어와요, 나가요!”“오해하지 마, 내 며느리 보러 온 거니까 너랑은 상관없어.”유만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왔다.“뭐야, 아는 분이야?”이청아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고 두 눈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네가 청아인가 보구나? 듣던 대로 미인이네!”유만수가 웃으며 말했다.“아차, 내 소개를 먼저 할게. 나는 유진우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야, 네 시아버지다.”“아버님?”이청아는 흠칫 놀랐고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진우에게 큰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외모는 아주 출중한 편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중년 남자는 유진우의 아버지라고 하기엔 두 사람에게서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들었다.“왜? 안 닮은 것 같아?”유만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엄마를 꼭 빼닮았었어. 그것도 다행이지 뭐, 나를 닮았다면 청아처럼 예쁜 아내를 얻지 못했을 거야.”“아버님, 제발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님도 여전히 위엄이 있으십니다.”이청아는 본의 아니게 자기 생각이 읽힌 것 같아 민망해졌다.“유만수! 당신이 만나려고 했던 사람도 이미 만났으니, 이젠 나가주세요. 여기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아요!”유진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진우 씨! 왜 그래? 아버님께 무슨 말버릇이야!”이청아는 유진우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유만수를 보며 민망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살갑게 말했다.“아버님, 진우 씨가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평소답지 않게 날이 서 있네요,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자리에 앉으세요, 제가 차 한 잔 대접해 드릴게요.”“그래...”유만수는 싱글벙글했다.“흥! 우리 집에 빌붙을 인간이 또 한 명 늘었나 보다!”장경화는 유만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나서 표정이 거만해졌다. 그녀는 상대방의 옷차림만 보고 바로 부잣집은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역시 그 아들에 그 아버지네, 쓸모없는 인
“예.”왕 아저씨는 짧게 대답하더니 강렬했던 기세를 순식간에 거두고 조용히 이청성의 뒤로 물러섰다.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인 채 다시 보잘것없는 집사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방금 전의 위압적인 모습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이 노인이 엄청난 실력의 대 마스터라는 걸 믿지 못할 것이다.“이청성 아가씨!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목숨을 건질 희망이 생기자 처절하게 빌던 그들은 얼굴을 환희로 물들이며 다시금 머리를 조아려 감사를 표했다.“너무 일찍 기뻐하지는 마. 너희를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곱게 풀어줄 생각은 없어. 죽음은 면했지만 벌은 피할 수 없을 거야.”이청성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아저씨, 이들의 혈도를 봉하고 몸을 묶어서 진무사에 넘겨요.”“뭐? 진무사?”그 순간 모든 이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진무사는 용국의 공식 기관으로서 강호의 무사와 각 세력들을 통제하는 곳이었다. 모든 파벌과 무도 연맹은 진무사의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했다.진무사는 악명 높은 무사들을 가차 없이 체포해 가두곤 한다.그들에게 진무사는 공포 그 자체였다.“이청성 아가씨!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진무사에 넘기지 말아 주십시오!”“진무사에 잡혀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고요!”사람들은 울며불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진무사에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기 어렵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나마 죄가 가벼운 자들은 형벌만 받으면 되지만 만약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다면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겪으며 생을 마감해야 했다.“묶어라.”왕 아저씨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곧장 몸을 날려 각자의 기경팔맥을 봉했다. 그리고 경호팀 팀원들에게 명령해 두 파벌의 생존자들을 모두 결박하도록 했다.“이청성 아가씨, 잠깐만요!”양강인이 다급하게 외쳤다.“우리를 진무사에 넘긴다고 해서 아가씨께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만약 저희를 살려주신다면 앞으로 아가씨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명령만 내리시면 군말 없이 따르겠습니다!”
왕 아저씨는 공격을 가한 후에도 늠름하게 서 있었다. 마치 하늘의 신이 강림한 듯한 기세로 압도적인 위엄과 위력을 내뿜고 있었다.그의 앞에 지름 삼사십 미터에 달하는 깊은 손바닥 모양의 구덩이가 갑자기 생겼다.구덩이 안은 처참했다. 사지가 절단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온전한 시신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인간 지옥이었다.이것이 바로 왕 아저씨의 공격이었다.손바닥 그림자가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땅에는 깊은 구덩이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서 있던 수많은 무도 고수들도 순식간에 짓눌려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형체도 없이 살점으로 변해버렸다.운 좋게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도 강렬한 장풍에 휩쓸려 몇 미터나 날아갔다. 그들은 땅에 나뒹굴며 비명을 질렀다.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엔 눈앞의 광경에 그만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손바닥 모양의 깊은 구덩이 속에 펼쳐진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땀이 흐르게 만드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원앙문과 금도문의 장로와 집사들은 거의 다 전멸하고 말았다.“내... 내가 잘못 본 건가?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전부 죽었어... 다 죽었다고... 두 파벌의 수십 명 고수가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이게 사람이냐? 악마나 다름없잖아!”“원앙문과 금도문은 이제... 끝장났어!”열댓 명의 생존자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였다.왕 아저씨의 공격은 그들의 모든 반항심을 짓눌러버렸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공포뿐이었다.“대 마스터? 저 노인이 대 마스터라고?”양강인은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의 입술도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왕 아저씨의 손바닥은 그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내리꽂혔다. 평범한 마스터가 낼 수 있는 위력이 절대 아니었다.그것은 세상의 정상에 군림하는 대 마스터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다.유진우 하나만으로도 상대
“아?”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잔뜩 긴장했다.모두 다 얼마 전 원앙문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타이밍에 나선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했다.“겁낼 거 없어! 우리에겐 인질이 있다고, 저놈은 함부로 나서지 못해!”양강인은 그렇게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웠다.금도문의 두 장로는 인질로 붙잡힌 이청성을 한 번 바라보고는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유진우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짧은 망설임 끝에 결국 이를 악물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이제 와서 돌아서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유진우를 제압하지 못하면 보물은커녕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할 판이었다.무슨 수를 쓰든 승부를 걸어야 했다.유진우의 기경팔맥만 봉하면 그는 한낱 폐인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될 터이니 더는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진우 씨,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바로 움직이세요.”그때, 이청성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녀는 유진우가 자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길 바라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라면 그녀는 얼마든지 벗어날 방법이 있었다.“닥쳐! 이년아, 입 다물지 않으면 네 얼굴을 찢어버릴 줄 알아!”장은경이 날카롭게 외쳤다.“은경 씨, 지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은경 씨한테 붙잡혀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저는 그냥 은경 씨와 장난삼아 놀아준 것뿐이에요. 지금쯤 슬슬 지루해질 참이네요.”이청성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말을 마친 그녀는 한 손으로 인을 맺으며 낮은 목소리로 짧게 외쳤다.“숨을 은!”짧은 외침을 끝으로 이청성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허공 속으로 증발해 버린 듯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뭐야, 어떻게 된 거야? 어디로 간 거지?”“이상하네! 분명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눈 깜빡할 새에 사라졌어!”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장은경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커다랗게 부릅떴다.그녀의 칼은 여전히 허공에 있었고 품에 안고 있던 인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저기 봐! 저
“멈춰! 함부로 움직이면 이 여자를 당장 죽여버릴 테다!”날카로운 외침이 뒤에서 울려 퍼졌다.유진우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원앙문과 금도문의 고수들이 이청성을 붙잡은 채 여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그 가운데 장은경은 이청성의 목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고 있었고 눈빛은 사나운 맹수처럼 거칠고 매서웠다.유진우는 천천히 미간을 좁히며 눈살을 찌푸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짙은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오늘 밤 원앙문과 금도문이 갑작스럽게 습격을 감행한 이유를 이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십중팔구 장은경과 관련된 일이었다.정말 더러운 본성을 숨기지 못하는 여자였다.예전에 환해맹에게 포위당했을 때 이청성이 나서서 그녀를 구하지 않았다면 장은경은 이미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그런데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이제 와서 은혜를 원수로 갚고 이청성의 목에 칼을 들이대니 어처구니가 없었다.‘젠장!’“멍하니 서서 뭐 해? 당장 칼 내려놔!”장은경은 조심스레 뒤로 물러서며 칼끝을 이청성의 목덜미에 바짝 밀착시켰다.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유진우는 이청성을 향해 각별한 마음을 품고 있으며 결국 그녀를 외면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쾅!”유진우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창궁검을 그대로 땅에 내던졌다.이런 놈들을 상대하는 데는 검이 있든 없든 별반 다를 게 없었다.“검을 이쪽으로 차! 힘 조절 잘하고!”장은경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끝으로 검의 손잡이를 찼다.창궁검은 지면을 따라 미끄러지듯 수십 미터를 날아가 장은경의 발 앞에 멈춰 섰다.이 광경을 본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방금 전 유진우가 휘두른 몇 차례의 공격은 실로 공포 그 자체였다. 두 파벌의 오너조차 제대로 막아내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가 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면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전부가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었다.그의 검을 거둬낸 지금, 사람들은 마음속 불안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좋아, 좋아! 역시 내 제자야.
게다가 설령 한빙신침을 잡았다 하더라도, 그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는 여전히 뼛속까지 스며들고 있었다.유진우의 손가락과 팔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얼어붙기 시작했다.얼어붙은 부위에서는 진기조차 끌어올릴 수 없었다.과장이 아니라 만약 이 신침이 몸에 박혔다면, 그 즉시 얼음 조각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깊은 수련을 쌓았다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그는 도미숙과 그 무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수법만큼은 상당히 놀라웠다.먼저 십향연골산, 그다음에는 한빙신침, 각종 살수가 끊임없이 이어졌었다.만약 경계가 억제되지 않았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과연, 어떤 적도 방심해선 안 된다. 한순간의 실수로 죽게 될 수도 있으니까.“와르르~!”유진우가 몸을 털자, 그의 팔을 감싸고 있던 얼음이 산산이 부서지며 땅에 떨어졌다.“이...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도미숙은 깜짝 놀라며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방금 그 상황은 확실한 필살의 기회였다.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는데...그런데 유진우는 멀쩡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빙신침을 손가락으로 잡아내기까지 했다.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몰래 기습 공격하는 걸 좋아하나 보지? 그렇다면 그대로 돌려주지!”유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작은 울림소리와 함께 그의 손끝에 있던 한빙신침은 바람을 가르며 더 빠른 속도로 도미숙을 향해 날아갔다.도미숙이 몰래 쏠 때는 조용했지만 유진우가 반격할 때는 바람과 천둥소리가 함께 울렸다.그것이 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것이 파괴되며 아무것도 막아낼 수 없었다.도미숙은 비명을 지르며 급히 두 자루의 단도를 가슴 앞에 교차해 들었다.“펑!”강렬한 폭발음이 울렸다.한빙신침은 두 자루의 단도를 가볍게 뚫고 도미숙의 가슴에 강하게 부딪혔다.그 순간, 도미숙은 마치 기차에 부딪힌 듯 순식간에 십여 미터를 날아가며 입과 코에서 피를 토하고 얼굴은 창백해져 사색이 되었다
두 명의 고수가 유진우의 검 한 방에 베이며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었다.그들의 떨어진 머리를 보며 도미숙은 눈꺼풀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 그녀는 줄곧 유진우가 강한 척 허세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고 방금 전의 강한 말들도 단순한 허풍일 뿐이라 여겼다.그러나 지금에서야 그녀는 유진우의 강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오로지 한 검에 두 명의 반보 종사급 고수를 목 베어 죽이는 것은 분명히 십향연골산에 중독된 것이 아니다.‘설마, 저 자식이 정말 백독불침의 체질이란 말인가?’“제기랄! 만약 아까 내가 나섰으면 죽을 뻔했군!”양강인은 침을 꿀꺽 삼키며 유진우를 바라보며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그는 지금까지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스물 남짓한 나이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닌 자라니.서남 무림 제일인이라는 강도현조차 혼자서는 유진우에게서 손톱만큼의 이득도 보지 못할 것이다.“네... 네가 어떻게...”도미숙은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고 몸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유진우가 방금 휘두른 두 검은 너무나도 무서웠다.첫 번째 검은 금도문 오너인 양강인을 중상으로 만들었고두 번째 검은 반보 종사급 고수 두 명을 단숨에 베어버렸다.단 두 번의 검만으로 전세 역전하고 그녀를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지금,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영리하구나. 정작 본인은 나서지 않고, 두 명의 부하들만 죽게 만들었으니, 정말 훌륭한 오너야.”유진우는 한 손에 검을 들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죽어라!”도미숙은 대적을 만난 듯 소매를 휘두르며 먼저 선공을 날렸다.“슈우우우...”수많은 암기가 폭풍우처럼 유진우를 향해 쏟아졌다.이 암기들 속에는 한빙신침 한 개가 섞여 있었다.한빙신침은 원앙문의 조상이 남긴 보물, 그 파괴력이 굉장할 뿐만 아니라 명중하면 즉시 얼음처럼 몸을 마비시키는 특성이 있었다.아무리 무림 종사라 할지라도 한빙신침에 맞으면 즉시 경맥이 얼어붙고 몸이 굳어버린다.다만 한빙신침의 수량이 너
“내가 못 할거라고 생각해?”도미숙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양 오너! 저 자식은 지금 허세를 부리는 거야.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나를 도와주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어!”“...”양강인은 눈가를 떨며,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이미 크게 다치고 피를 토했는데 나보고 또 앞장서라니. 정말 날 멍청이로 보나?게다가 저 자식은 여전히 힘이 넘쳐 보이는데 어떻게 기진맥진해 보인다고?만약 또다시 저 엄청난 검을 휘두른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양 오너! 당신은 금도문의 오너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는데, 설마 저 자식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겠지?”양강인이 반응이 없자 도미숙은 일부러 자극 주는 말을 던졌다.누군가 대신해 나서서 싸워준다면, 자신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도 오너, 저는 이미 중상을 입어 더 이상 싸울 수 없으니, 옆에서 당신을 도울 수밖에 없습니다.”양강인은 몇 번 기침을 하고 약한 척하며 말했다.“당신은 저 자식이 이미 기력이 다했다고 확신한다면, 당신들 원앙문의 실력으로 충분히 그를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더 이상 나서지 않겠습니다.”‘젠장! 싸우려면 네가 싸워! 나를 대신 죽이려 하지 마라!’“양 오너, 혹시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도미숙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믿지 않는 게 아니라, 몸이 따라주질 않습니다.”양강인은 가슴을 움켜쥐고 또다시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그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좋아! 양 오너가 나서지 않겠다면,, 우리가 직접 나서겠습니다!”도미숙은 불만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곁에 있는 두 명의 원앙문 고수에게 명령을 내렸다.“너희 둘이 함께 정면으로 공격해라! 나는 뒤에서 기회를 노리겠다!”“네?”그 말을 들은 두 명의 원앙문 고수는 얼굴이 굳어지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금도문 오너인 양강인도 저 자식에게 중상을 입었는데, 하물며 그들이야?만약 유진우가 정말로 독에 중독되
“뭐야?!”양강인이 한 줄기 검광에 의해 날아가는 모습을 본 나머지 몇 명의 고수들은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리고 입이 떡 벌어졌다.양강인은 금도문의 오너이자 서남 지역의 다섯 대 마스터 중 한 명으로, 실력이 매우 강하다.그런 존재가 단 하나의 검광도 막아내지 못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저 녀석의 실력은 대체 어느 정도인가?’“으악~!”땅에 내동댕이쳐진 양강인은 몸을 떨더니 또다시 한 움큼의 피를 토하고 얼굴은 황금빛 종이처럼 창백해져서는 한동안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어... 어떻게 된 거지? 너... 넌 분명 십향연골산에 중독됐을 텐데?!”양강인은 떨리는 손으로 유진우를 가리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분명히 유진우가 십향연골산으로 제조된 연기에 중독된 걸 봤었고, 지금쯤이면 약효가 완전히 퍼졌을 거라 생각했다.정상적으로라면 지금쯤의 유진우는 이미 강노지말의 상태라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어야 한다.그러나 방금 그가 휘두른 검은 약해진 기색도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천지를 뒤흔들 만큼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었다.정말 말도 안 되는일이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어째서 유진우는 십향연골산에 중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가?“누가 너한테 내가 십향연골산에 중독됐다고 했지?”유진우는 한 손에 검을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본래 깊은 내공을 지니고 있는 그는 십향연골산 같은 독약 따위에는 쉽게 영향을 받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도 백독불침의 체질 덕분에 완전히 해독할 수 있었다.이 세상에서 십대기독 외에는 그 어떤 독도 그를 위협할 수 없었다.“네가... 네가 중독되지 않았다고?”양강인은 경악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도미숙에게 시선을 고정했다.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설마 방금 도미숙이 실수라도 한 것인가?’“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도미숙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나는 분명히 봤어! 십향연골산이 네 몸에 들어간 걸 똑똑히
상황이 달라졌다. 여태 시간을 끌었던 만큼 약효가 완전히 발휘되기에 충분했다.눈앞의 이 소년은 이제 그녀의 도마 위의 고기와 다를 바 없었다.“그렇게 자신 있으면, 어디 한번 직접 해보지 그래?”유진우는 천천히 검을 들고는 검 끝을 도미숙의 미간에 겨눴다.“흥! 헛소리하지 마! 네까짓 게 과연 무슨 큰일을 벌일 수 있겠어!”도미숙은 땅에 발을 강하게 짚으며 한순간에 잔상을 남기며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그녀가 두 손을 뒤집자, 두 자루의 곡선형 원앙도가 바로 튕겨 나가며 날카로운 암살 무기가 되어 유진우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아마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두 원앙도의 손잡이에는 특수 제작된 철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도 오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도미숙이 움직이자, 양강인도 지지 않겠다는 듯 이내 뛰어올라 칼을 높이 치켜들고,마치 산을 쪼개듯 강력한 일격으로 유진우의 머리를 향해 세게 내리쳤다.두 사람이 앞뒤로 공격하며 들어오는 모든 기술이 치명적이었고 그리고 공격 타이밍 또한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앞뒤를 모두 막기엔 역부족이었다.“분수도 모르고 설치는군!”유진우가 손목을 가볍게 흔들자, 창궁검이 순간 가로질렀다.“슈욱!”반달 모양의 검은 검광이 순간적으로 반사되었다.검은 검광은 바람을 타고 거대해지며 순식간에 10미터 크기로 확산하였다.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사신의 죽음의 낫처럼 도미숙과 양강인을 동시에 덮쳤다.“쨍! 쨍!”도미숙의 원앙도가 가장 먼저 공격을 받았고 이윽고 검광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그것은 마치 칼로 두부를 자르듯 손쉽게 갈라졌다.“이게 뭐지?!”도미숙의 얼굴색이 급격히 변했고, 더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극도의 위기감에 본능적으로 몸을 공중에서 비틀었다.그 순간, 공포스러운 검은 검광이 그녀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비록 직접 닿지는 않았지만, 검광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만으로도 그녀는 마치 얼음 굴에 빠진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확신했다.만약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