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그에게 모욕을 줬을 뿐만 아니라 용씨 가문 전체의 체면을 깎은 거나 다름이 없었다.“이청아! 여기서 도망치는 순간 넌 바로 이씨 가문의 죄인이 될 거야.”조국화 모녀가 분노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통쳤다.“딸, 절대 충동적으로 어리석은 결정을 해선 안 돼. 이대로 저놈이랑 가면 우리 집안 다 망해!”당황한 장경화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용씨 가문을 건드리면 부귀영화만 잃는 게 아니라 가족 전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엄마, 저...”이청아가 말끝을 흐렸다.“내가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마.”유진우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이 결혼 절대 못 해! 불만 있는 사람은 나한테 마음껏 덤벼!”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장이 떠들썩해졌다.“와! 저 남자 너무 멋있잖아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이 세상과 적이 되는 것도 두렵지 않은가 봐요.”“날 저렇게 사랑해 주는 남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멋있긴 한데 그 대신 치러야 할 대가도 엄청나잖아요.”“용씨 가문과 이씨 가문을 건드렸으니 저 사람 아마 내일을 넘기지 못할걸요?”무대 위의 유진우를 보며 하객들은 의견이 분분했다.놀라움과 칭찬, 그리고 경멸과 하찮음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청아 씨, 그만 가자.”유진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떠나려 했다.“저 두 사람을 잡아!”용호걸의 명령에 수많은 경호원들이 사방에서 우르르 몰려와 두 사람을 포위했다.“가려고요? 나한테 물어나 봤어요?”용호걸이 굳은 얼굴로 천천히 다가왔다.“청아 씨,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게요. 순순히 나랑 결혼한다면 오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 안 그러면 가만 안 둘 겁니다!”“나도 기회를 줄게요. 지금 당장 강능에서 꺼지지 않으면 후회할 겁니다.”유진우가 싸늘하게 되받아쳤다.“제 주제도 모르는 놈! 당장 가서 저놈의 팔다리를 부러뜨려라!”화가 난 용호걸이 명을 내렸다.“네!”경호원들이 삼단봉을 꺼내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그때 누
왕현의 등장으로 기세는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었다.용씨 가문 고수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용호걸이 인질로 잡혀있어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형님, 여긴 저한테 맡기고 먼저 가십시오.”왕현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기운산 결투 이후 그는 본투비 레벨을 돌파하였기에 실력이 백 배 가까이 늘었다.“가라고?”용호걸이 코웃음을 치며 건방지게 말했다.“어디로 가게? 도망가봤자 결국에는 우리 용씨 가문에 쫓기는 신세가 될 거야.”그의 말에 떠나려던 유진우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싸늘하게 말했다.“지금 날 협박해?”“하하... 협박하면 뭐?”용호걸은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어디서 이런 조력자를 데려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신 혼자서 날 상대하려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닌가?”“그래서 당신이 강하다고 생각해?”유진우가 되물었다.“당신 하나쯤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지.”용호걸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당신뿐만 아니라 이청아와 이청아 가족들도 용씨 가문의 보복을 받을 거야. 당신들... 영원히 불안에 떨며 살게 될 거야!”그의 말에 이청아의 낯빛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가 가장 걱정하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그녀가 모든 걸 내팽개치고 이대로 도망친다면 가문 전체가 위험에 빠질 것이고 그 결과는 그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웠다.“어때? 이제 좀 무서워?”유진우가 아무 말이 없자 용호걸은 더욱 의기양양했다.“유진우!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내 앞에 무릎 꿇고 빌어. 그러고 나서 당신 여자를 직접 내 침대까지 데리고 와. 그러면 내가 당신 목숨 정도는 살려줄지도 모르니까.”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찰싹하고 따귀를 맞은 용호걸의 얼굴에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났다.“뭐야?”용호걸은 따끔거리는 얼굴을 움켜쥔 채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며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이렇게나 많은 사람 앞에서 용호걸의 따귀를 때리다니, 저 자식 제정신이야?’“이 자식아! 감히 날
“하지만...”“얼른 가. 당신이 여기 있으면 내가 더 신경 써야 해서 집중이 안 돼.”이청아가 뭐라 얘기하려던 그때 유진우가 가로챈 바람에 결국 하는 수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다른 선택이 없었고 그냥 이대로 쭉 가는 수밖에 없었다. 유진우만 무사히 돌아온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그와 떠날 생각이었다.이청아가 무사히 떠난 후 유진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겼다.“안 가고 뭐 해요? 여기서 죽길 기다려요?”“얼른 가자.”이서우와 조국화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이청아가 파혼한 바람에 용씨 가문과 이씨 가문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계속 이 자리에 있으면 불똥이 괜히 그들에게 튈 수도 있었다.“재수 없는 놈! 너 때문에 우리 이씨 가문이 망하게 생겼어!”장경화는 너무도 화가 나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부랴부랴 도망쳤다.결혼이 깨지면서 팔자를 바꾸려는 장경화의 꿈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 때문에 용씨 가문을 건드려서 앞으로는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다.“젊은이, 배짱 하나는 인정이야, 아주.”그때 용호걸의 넷째 삼촌이자 용씨 가문의 넷째 어르신이 갑자기 일어나 덤덤하게 말했다.“지금까지 우리 용씨 가문에 이런 치욕을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 젊은이는 처음이야, 물론 마지막이 될 거고. 솔직히 말해서 젊은이의 용기는 인정이야. 하지만 오늘이 젊은이의 제삿날이 될 거야!”그러고는 손을 휘둘렀다.“터벅터벅...”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수많은 무장 경호원들이 사방에서 우르르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유진우를 물샐틈없이 포위했다.“저 녀석 오늘 죽었어. 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이 진짜로 움직였어!”“대놓고 결혼식을 망친 것도 모자라 용씨 가문에 치욕을 주었으니 죽어 마땅하지!”“허세를 부릴 땐 좋아도 결국에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니까! 쌤통이야, 아주.”포위된 유진우를 보며 하객들은 의견이 분분했다.“호걸이를 풀어주면 젊은이의
엘리트 고수들이 예식장에 몰려들자 하객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을 쩍 벌렸다. 유진우에게 이렇게나 큰 힘이 있을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단지 전화 한 통에 수백 명의 사람을 불러 모았고 게다가 영역도 아주 넓었다. 그들 중에는 어둠의 세력, 상업계 거물, 정부 당국의 무장 세력뿐만 아니라 강능의 시장마저 직접 나서서 힘을 실어주었다.다시 말해 유진우의 한마디면 강능의 모든 세력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파워는 실로 무서울 정도로 대단했다.어쩐지 유진우가 나댄다 했더니, 진작 준비를 마치고 있었던 것이었다.지금 용씨 가문이 상대해야 하는 건 한 사람이 아니라 강능 전체였다.“저 자식 대체 정체가 뭐야? 뭔데 저 많은 세력을 다 움직여?”하객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얼굴이었다.그 시각 줄곧 건방을 떨던 용씨 가문 사람들도 근심 어린 표정을 드러냈다. 비록 이 세력들이 용씨 가문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힐 수는 있었다. 어쨌거나 용씨 가문의 세력은 중주에 있으니까.멀리 있는 샘물로는 당장 갈증을 풀 수 없듯이 지금 사람을 동원하기엔 너무 늦었다.“생각보다 힘이 좀 있구나. 내가 널 과소평가했어.”놀라움도 잠시 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은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하지만 고작 이 사람들로 우리 용씨 가문을 상대할 생각이었다면 큰 오산이야.”용씨 가문은 중주의 재벌로서 그 권력이 하늘을 찔렀다.세력이든 인맥이든 강능의 쥐뿔만 한 세력들이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백 년 넘게 이어온 가문인 것만큼 당연히 탄탄한 기반이 받쳐주고 있었다.“유진우! 당신 쪽 사람이 더 많다는 건 인정해. 그런데 뭐가 달라질까? 고작 이런 쓸모없는 자들로 날 어쩔 수 있을 것 같아? 꿈 깨!”용호걸이 연신 코웃음을 쳤다.그는 강능의 세력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한마디면 상대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중주 재벌의 권력이니까!“저 사람들로 안 되면 그럼 난?”그때 누군가의
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은 억지로 웃음을 터뜨렸다.“친한 척하지 마세요!”조무진은 조금도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용씨 가문은 아주 겁을 상실한 것 같던데요? 어디 내 앞에서도 건방지게 굴어보시던가요!”조무진의 말을 들은 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은 안색이 좀 어두워졌다.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수모를 당했으니, 그의 성격대로라면 벌써 화를 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화가 치밀어 올라도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조무진을 건드릴 수 없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방금까지 위풍당당하던 그 모습은 어디 갔나요? 내 친구를 괴롭히다니, 당신들은 정말 겁을 상실한 게 틀림없어요!”조무진은 두 사람에게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아랫사람에게 훈수를 두는 것 같았다. 반면,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지켜보던 구경꾼들도 깜짝 놀라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삿대질까지 당하며 욕을 먹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대꾸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으니,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빨리 제 친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하세요!”조무진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그건...”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렸고 안색이 더없이 어두워졌다.용씨 가문의 직계 자제인 그들이 어떻게 남에게 엎드려 절까지 하며 사죄를 한단 말인가? 만약 소문이라도 난다면, 용씨 가문은 더이상 위신이 서지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일 아니겠는가?“조무진! 당신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용호걸은 좀 화가 났다.“퍽!”조무진은 손바닥을 치켜들더니 다짜고짜 용호걸의 뺨을 한 대 때렸다.“뭐라고? 너무해? 인마, 그래서 어쩔 건데?”“당신...”용호걸은 입을 벌리다가 미처 말을 뱉지도 못하고 또 뺨 한 대를 세게 맞았다.“오늘 너의 사과를 듣지 못하면, 난 네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조무진이 강력하게 말했다.이때 용호걸은 눈에
소문에 의하면 용씨 가문에는 ‘흑풍쌍살’ 이라고 불리는 두 명의 마스터 경지 고수가 있었는데, 평소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두 사람은 뜻밖에도 오늘 용수현을 따라 이곳에 왔다.막상 손을 쓰려니 전혀 이득을 보지 못할 것으로 보이자, 조무진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어떻게 복수해야 할지 궁리했다.“흥... 전쟁의 신이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아요? 우리 용씨 가문을 상대로 감히 뭘 할 수 있겠어요?”용호걸은 마음속에 잠시 접어뒀던 오만함을 다시 꺼냈다.‘큰아버지가 여기 계시는 한, 아무리 조무진이라 해도 별수 없을 거야.’“역시 형님은 위풍당당하십니다.”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도 고개를 들고 가슴을 폈고 처음의 자신감을 되찾았다. 조씨 가문이 만만한 세력인 것은 아니었지만 용씨 가문도 결코 무른 감이 아니었다.용수현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 용씨 가문의 자제들은 다시 기세를 되찾았다.“진우 형, 용씨 가문이 내 체면을 봐주지 않을 것 같은데, 한 번 제대로 붙어볼까?”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유진우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만약 유진우가 머리 한 번만 끄덕인다면 가차 없이 용씨 가문으로 돌진하여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어차피 유진우가 그의 뒷배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용씨 가문 가주님도 오셨으니 그만두자.”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용씨 가문이 두려워서 그만두려는 것이 아니라, 조무진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려고 했다.“그래, 형의 말에 따를게.”조무진은 어깨를 으쓱했다.“용씨 가문 가주님, 조카 녀석을 잘 가르쳐야겠어요. 다음에는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을 겁니다.”유진우는 차갑게 말하고 돌아서서 떠날 준비를 했다.“거기 서!”용수현이 유진우를 불러세웠다.“내가 가도 된다고 했나? 내 조카에게 손찌검하고, 우리 용씨 가문의 체면을 이렇게 짓밟고, 인제 와서 등 돌려 떠나려고 해? 정말 우리 용씨 가문을 만만하게 보는구나!”“맞아! 공공연히 내 혼례를 망치고 손찌검까지 했으니, 오늘 너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등 굽은 중년 남자의 등장에 용수현과 용씨 가문 넷째 어르신은 두피가 저렸고 소름이 돋았다.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용국의 지존이자, 천자도 예의를 갖춰 대하는 대단한 존재인 위왕, 유만수였다. 유만수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그들 모두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었다.“뭐야?”굽은 등의 중년 남자, 유만수를 본 유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안색이 어두워졌고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렸다.“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기겠는걸.”조무진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이내 한쪽으로 물러서며 깨 고소해하는 표정을 지었다.만인의 주목을 받으며 굽은 등의 중년 남자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위풍이나 기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보통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중년 남자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물러섰다. 그 중년 남자는 유진우 앞에 멈춰 섰다.“오랫동안 못 봤는데, 네놈이 이렇게 컸을 줄이야.”유만수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유진우를 보며 절로 씩 웃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드러난 이를 보니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당신이 아직도 죽지 않았을 줄은 몰랐네요.”유진우는 눈빛에 칼을 품은듯했고 말투가 유난히 차가웠다. 그 말을 들은 용수현 등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이 녀석은 대체 정체가 뭐길래 이런 망언을 퍼붓는 것이야? 감히 위왕께 이런 말을 하다니?’“허허... 착하게 산 사람보다 죄악을 많이 지은 사람일수록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 난 거지.”유만수는 오히려 호탕하게 웃어넘겼고 전혀 화난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그래요? 하지만 당신의 꼬락서니는 전혀 장수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걸요.”유진우가 예의도 없이 차갑게 툭 던졌다.“이놈아! 너처럼 아비를 저주하는 아들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이냐?”유만수가 또다시 호탕하게 웃으며 받아쳤다.“당신이 저랑 무슨 상관있다고 그래요? 쇼 좀 하지 마세요.”유진우가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네가
이 시각, 이씨 가문 별장 내에서 장경화는 한창 요란법석을 떨며 짐을 싸느라 여념이 없었고 순식간에 캐리어 두 개를 꽉 채워 끌고 나오며 말했다.“청아야! 서두르지 않고 뭐 하니... 돈이 될만한 명품 가방, 목걸이 등 보석들은 전부 찾아내! 더이상 강능에 머물 수는 없어, 서둘러 정리하고 당분간 해외로 떠나있자! 항공권은 이미 끊어뒀고 통장에 들어있던 여윳돈도 몇억 되니까 당분간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장경화는 초조한 얼굴로 재촉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와중에 용씨 가문과의 혼사를 엎어버린 것은 용씨 가문은 물론, 강북 이씨 가문까지 건드린 경우였다. 그 때문에 작은 강능뿐만 아니라, 용국 전체에 발 디딜 곳이 없게 되었다.“청아야! 뭐 하고 있어? 얼른 짐 싸라고 했잖아!”이청아가 자기 말대로 움직이지 않자, 장경화는 화가 치밀어올랐다.“엄마,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굳이 도망가듯 짐을 쌀 필요 없단 말이에요.”이청아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내가 답답한 딸내미 때문에 속 터져 못살아! 아직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거야?”장경화는 허벅지를 내리치며 안타까워했다.“용씨 가문이잖아! 중주의 재벌가, 권력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서운 존재! 이렇게 모두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용씨 가문의 체면을 깎아내렸으니 용씨 가문은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저도 알아요. 하지만 진우 씨가 알아서 해결할 거라고 했으니, 기다려 볼래요.”이청아가 말했다.“너 제정신이야? 그 멍청한 녀석의 말만 믿고 기다리겠다고?”장경화가 뒷목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유진우가 뭔데, 무슨 재주로 용씨 가문을 상대한단 말이야? 게다가 그 녀석이 너의 혼사를 망친 것만 아니면 우리 이씨 가문이 이런 사태에 휘말릴 일은 없었을 거야! 그놈은 재수탱이야!”예정대로라면 이씨 가문은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우 때문에 그들은 하늘이 내린 기회를 잃게 되었다. 그 때문에 유진우는 장경화
문을 닫은 유진우는 이제 막 침상에 올라 명상하려던 참이었다. 유진우는 자신의 방 안에 낯선 여인이 들어와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베일 달린 모자를 쓴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는 맑고 생기가 넘쳤다.몸 전체에 풍기는 고귀하고도 우아한 기운은 그 자체로도 사람의 시선을 빼앗을 만큼 압도적이었다.그 여인은 다름 아닌 이청성이었다.“어? 언제 들어온 거예요?”유진우는 잠시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전까지 장은경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정신이 없던 그는 이청성의 존재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진우 씨, 저 밤에 혼자 있으려니 외롭고 무서워서 그런데 조금만 같이 있어 줄 수 있을까요?”이청성은 방금 전 장은경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하던 말을 흉내 내며 장난을 쳤다.“청성 씨, 그래도 한 나라의 공주인데 좀 정상적으로 굴 수는 없어요?”유진우는 눈을 흘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하하하... 진우 씨,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네요. 미인이 먼저 안기려 들다니 말이에요.”이청성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더니 말했다.“저였으면 그냥 그 흐름대로 받아줬을 거예요. 저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오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 있나? 괜히 이상한 취향이 있다고 오해받는 것보단 낫잖아요.”“하하... 제가 그렇게 쉬운 남잔 줄 알아요?”유진우는 마지못해 웃으며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그러면서 차를 두 잔 따르더니 첫 잔을 이청성에게 건넸다.“그래서요, 밤늦게 무슨 일로 찾아온 거예요?”“별건 아니고요, 그냥 조심하라고 알려주러 왔어요. 우리, 누군가에게 찍힌 것 같아요.”이청성은 따뜻한 찻잔을 들고 조심스럽게 불어 식히며 말했다.“왕 아저씨가 순찰 돌다가 우리가 묵는 여관 근처에서 수상한 자들이 어슬렁거리는 걸 봤대요. 누가 봐도 이상한 수작 부릴 게 분명해 보였대요.”“그래요?”유진우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 한 귀퉁이를 살짝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과연 몇몇 그림자가 여관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감시
장은경은 말을 하며 천천히 다가오더니 가냘픈 손으로 자연스럽게 유진우의 단단한 가슴팍을 어루만졌다.그녀의 촉촉한 눈동자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매혹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그 시선은 마치 사람의 영혼까지 삼켜버릴 듯이 치명적이었다.평범한 무사라면 그녀와 눈을 마주친 순간 금세 정신을 빼앗기고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이것이 바로 원앙문의 간판 매혹술, 홍안취였다.원앙문이 서남 지역에서 오래 세력을 유지하며 점점 더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 홍안취라는 매혹술의 공이 컸다.얼굴이 아름다울수록 이 매혹술을 깊이 수련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남자에게 끼치는 유혹의 힘도 강해졌다.장은경은 어릴 적부터 홍안취를 익혀온 터라 벌써 십수 년의 세월 동안 그 기술을 연마해 완성의 경지에 이르렀다.게다가 그녀는 외모와 몸매 모두 뛰어나 그녀의 유혹을 버텨낼 수 있는 남자는 드물었다.금도문의 서지석도 이 매혹술에 빠져 그녀에게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자신만만했다. 유진우가 조금이라도 흔들리고 욕망의 틈을 보이기만 하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마음의 방어선을 무너뜨려 그를 손에 넣겠다고 결심했다.“저기요, 적당히 하세요. 할 만큼 했으면 얼른 돌아가 쉬세요. 저도 자야 하니까요.”장은경이 요염하게 몸을 흔들며 농염한 눈빛으로 다가갔지만 유진우는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차갑게 응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히려 불쾌함이 어렸다.“뭐라고요?”장은경의 미소가 한 순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멍하니 서 있었다.자신의 매혹술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한 사내라도 그녀가 유혹하면 반드시 흔들리는 법이었다.하지만 유진우는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고 욕망의 기색은커녕 오히려 불쾌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이런 경우는 그녀에게 처음이었다.“진우 씨, 저 오늘 밤 혼자라서 너무 외롭고 무서워요. 진우 씨가 저 좀 위로해 주면 안 돼요?”장은경은 연약하고 애처로운 모습으로 태도를 바꿨다.방금
어둠은 빠르게 내려앉았다.여관에서 이청성의 경호팀 팀원들은 저녁을 먹은 뒤 일찌감치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단 두 조의 인원만 남겨 교대로 순찰과 경계를 서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죽음의 사막에서 지내는 동안 그들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이제야 비로소 그곳을 벗어났으니 오늘 밤만큼은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한편, 2층의 한 객실 안에서는 유진우가 따뜻한 물로 기분 좋은 샤워를 마친 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 앉아 두 눈을 감고 고생한 몸을 풀기 시작했다.이번 임무는 그야말로 완벽했다.보물이라 불리는 것들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그는 그저 영액 한 병만 가지고 돌아왔다.이런 걸 마시는 건 처음이라 그저 간단하게 맛이나 보자는 생각이었다.유진우 정도의 실력이면 사실 영액으로 얻을 수 있는 상승효과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게다가 그의 손에는 무림의 최고 보물이라 불리는 천영 구슬이 있었다. 그 덕에 수련 속도는 비약적일 것이다.그러니 영액 같은 건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그리고 사실상 영액을 과하게 마시면 몸에 상당한 부담이 쌓이게 되고 한편으로는 체력과 잠재력을 미리 소모하는 셈이었다.물론 영액은 단기간 내에 실력을 끌어올리고 경계를 돌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그러나 그렇게 급하게 돌파한 경지는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아 매우 불안정하고 한편으론 쉽게 흐트러져 정신이 붕괴되는 위험이 따르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 경지를 돌파한 무사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단점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영액의 효능은 엄청났다.단지 수련의 경지를 올리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열광했다.대부분의 무사들에게 한 단계 높은 경지는 평생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과도 같다는 건 잔인한 현실이었다.그런 그들에게 영액으로 경지를 돌파하고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건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똑똑...유진우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을 때 문득 문을
“뭐라고? 영액이라고?”그 말을 들은 원앙문의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영액은 무사에게 있어 수련의 보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충분한 양의 영액만 있다면 평범한 무사도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꿈으로만 바라던 마스터의 경지를 돌파할 수 있게 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영액은 너무나도 희귀하고 귀한 보물이었다. 대개 자연의 천연적인 약재 속에 소량 존재하며 이를 추출하고 정제해 얻는 데는 큰 정성과 시간이 소요된다.한 방울의 영액은 천금의 가치를 지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병 하나의 영액만으로도 피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만약 장은경이 가져온 물주머니가 죄다 영액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네, 맞습니다. 이 물주머니 안에 든 건 영액이에요. 게다가 이 한 주머니가 끝이 아닙니다. 무려 여덟 자루나 가져왔어요.”장은경의 말은 다시 한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여... 여덟 자루의 영액이라고?”도미숙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손마저 덜덜 떨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얼이 빠진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그 순간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만약 정말 그 물주머니가 전부 영액으로 가득 찼다면 원앙문에는 지금껏 없었던 하늘이 내린 기회가 찾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렇게 많은 영액이 있다면 원앙문은 단번에 일류 파벌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좋다! 정말 잘 됐다!”“이 영액만 있다면 우리 원앙문도 일떠설 수 있어!”“은경아! 넌 정말 우리 원앙문의 복덩어리야!”“지금 당장 선언하마. 오늘부터 넌 원앙문의 차기 오너로 임명된다. 장로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야!”도미숙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벅찬 감정으로 직접 장은경을 차기 오너의 자리에 앉혔다.이에 대해 장로들이나 호법들 모두 의견이 없었다.장은경은 원앙문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제자였고 언젠가는 오너 자리를 물려받을 인물이었다. 이번 공로로 인해
“후배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어요!”장은경의 눈가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그녀는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했다.“그러니까 환해맹이 보물을 노리고 너희를 매복했다고?”이야기를 들은 도미숙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맞아요! 그들은 미쳐버린 거나 다름없어요. 탐욕에 눈이 멀어 머릿수에만 의존한 채 우리 후배들을 모두 잔혹하게 죽였어요.”말을 마친 순간 장은경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썩을 놈의 자식들! 감히 우리 원앙문 제자들을 죽이다니... 반드시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도미숙은 이를 악물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그녀가 수련을 위해 밖으로 보낸 제자들은 모두 원앙문의 정예병들이었고 그들이 거의 전멸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찢어놓았다.“이번에 지석 씨와 그쪽의 사람들이 나서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미 저승길에 올랐을 거예요...”장은경은 흐느끼며 말했다.“서지석, 내 제자를 구해줘서 고맙네. 우리 원앙문은 금도문에게 큰 빚을 졌어.”도미숙은 고개를 숙이며 깊은 감사를 표했다.“오너님, 괜찮습니다. 금도문과 원앙문은 원래부터 가까운 사이였고 저와 은경 씨는 약혼한 사이입니다. 그녀가 위험에 처했는데 돕는 건 당연하지요.”서지석은 손을 모아 공손히 예를 갖췄다.“훌륭하군! 자네를 선택하기 잘했어!”도미숙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말했다.“아, 맞다. 오늘 아침 자네 사부께서 사람들을 데리고 막 이곳에 도착했어. 지금 마을 끝 쪽에 머무르고 계시니 어서 가보게나.”“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서지석은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한 뒤 곧바로 몇 사람을 이끌고 마을 끝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그들은 귀중한 보물을 많이 지니고 있었고 파벌의 고수들과 합류해야만 비로소 완전히 안전해질 수 있었다.“은경아, 너희가 죽음의 사막에 들어갔다 온 지도 꽤 됐는데 수확은 있었느냐?”이때, 백발의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흥,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도도한 척은.”멀어져 가는 유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이수는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툴툴거렸다.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먼저 품에 안기겠다는데 남자라면 누구든 거절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진이수의 눈에 비친 유진우는 그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일 뿐이었다.겉으론 고상한 체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이런 불만은 속으로만 품을 뿐 현실적으론 힘의 격차가 너무 컸기에 함부로 나설 엄두는 내지 못했다.그렇게 몇 마디 중얼거린 그는 블랙스콜피온 팀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이번 죽음의 사막 원정에서 그의 팀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보물도 꽤 많이 거둬들였다.이 보물들을 잘 처분하면 평생 호화롭게 살아도 남을 만큼의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터였다.“선배님, 괜한 정을 나누어 줬군요. 진우 씨는 애초에 선배님을 눈에 두지도 않았어요.”한 금도문의 제자가 비웃으며 말했다.장은경은 외모 하나는 출중했지만 사람 됨됨이가 좋지 못했다. 마음이 사악하고 꿍꿍이가 많은 사람 그 자체였다.저런 사람과 엮였다간 어느 순간 자신이 팔려나갈지도 모를 일이었다.“흥.”장은경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고운 얼굴에 한기가 내려앉았다.지금껏 수없이 써온 미인계는 늘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유독 유진우 앞에선 번번이 실패했다.이 사실이 그녀를 분노케 했고 동시에 쉽게 물러서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생겼다.자기한테 넘어오지 않는 남자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은경 씨, 제가 보기엔 진우 씨 이미 마음을 둔 사람이 있는 듯해요. 그리고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그는 유룡종도 눈에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 같은 파벌은 기회조차도 없을 겁니다.”서지석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그는 5년 전 장은경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 뒤로 줄곧 그녀를 마음에 품어왔다. 마침내 체면을 무릅쓰고 사부님에게 간청해 원앙문에 혼인을 청했으며 상당한 대가를 치른 끝에 겨우 혼약을 맺을 수 있었다.그런 그였기에 장은경이 유진우를 마음
그리고 마침 이청성의 집사 왕 아저씨가 마침 많은 보급품을 실어 도착했다.간단히 휴식을 취한 후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그렇게 꼬박 사흘을 걸은 끝에 셋째 날 오후가 되던 때 그들은 죽음의 사막에서 벗어나 예전에 잠시 머물렀던 마을에 도착했다.사흘 내내 모두가 바짝 긴장한 채 지냈다. 길 위에서 무슨 위험을 마주할까 마음을 놓지 못해 밤에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이제야 겨우 발을 들인 마을에서 그들은 드디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벌써 날이 저물고 있군요. 오늘 밤은 여기서 쉬어가죠. 급히 떠나야 하는 분은 편히 가보셔도 됩니다. 그럼 오늘 저는 이만.”마을 입구에서 이청성이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자신의 경호팀과 함께 전에 투숙했던 여관으로 향했다.임무는 이미 끝났고 임시로 결성된 이 팀 역시 해산할 때가 됐다.누구 하나 손해를 본 사람 없이 각자 모두 원하는 보물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다시 각자의 길로 돌아갈 시간이었다.“진우 씨,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막 떠나려던 유진우를 장은경이 불러 세웠다.장은경은 왠지 머뭇거리며 수줍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박에 눈치챌 수 있는 분위기였다.“피곤하군요.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하시죠.” 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유진우는 그녀에게 호감이 없었다.“그렇다면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장은경은 상냥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진우 씨는 타고난 재능에 실력도 출중하세요. 저희 원앙문은 바로 진우 씨 같은 인재를 필요로 해요. 혹시 저희 파벌에 들어올 생각은 없으신가요? 진우 씨께서 고개만 끄덕이신다면 진우 씨는 저희 파벌에서 가장 귀하게 모셔질 분이 될 거라고 제가 보장할게요. 혜택과 대우는 원하시는 대로 맞춰드릴 수 있어요!”“죄송하지만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네요.”유진우는 단칼에 거절했다.그러고는 몸을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잠깐만요!”장은경은 다급해진 듯 그의 앞을 막아섰고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
“오너님에게 체면을 세워주자고, 절반 남기고 나머지만 가져가자.”이청성이 단호하게 말하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보물을 담을 자는 보물을, 영액을 담을 자는 영액을 챙겼다. 겉으로는 절반을 남긴다 했지만 사실은 누구랄 것 없이 조금씩 몰래 더 숨겼다.강도현은 이미 그 꼼수를 눈치챘지만 그냥 못 본 척 눈을 감았다.유진우가 드러낸 힘은 이미 모든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그 누구도 감히 무리수를 둘 수 없었다.정면으로 맞섰다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몰락할 수도 있었다.게다가 이 수중궁전 근처엔 보물을 눈독 들이는 세력들이 아직 많이 숨어 있었다.만에 하나 큰 싸움을 하고 상처만 입은 채 보물을 남에게 뺏기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이야말로 남 좋은 일을 대신 해준 셈이었다.그렇게 이청성을 비롯한 일행은 크고 작은 꾸러미를 잔뜩 챙겨 주저 없이 수중궁전을 빠져나왔다.유룡종과 비설파의 고수들은 여전히 날 선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지만 아무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강도현이 목숨 걸고 나서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유진우를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렇게 쉽게 빠져나올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많은 보물을 챙기고 말이야. 정말 불행 중 다행인 것 같아!”궁전을 벗어난 후에도 서지석은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듯 두려움이 남아 있는 얼굴로 굳어있었다.아무래도 방금까지 그들이 상대했던 이는 유룡종과 비설파의 정예 고수들이었고 그 중엔 서남 제일의 고수인 강도현까지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그런 거대한 세력은 그야말로 일대를 쓸어버릴 만한 힘이었다.금도문의 모든 병력이 총동원되어도 정면 승부는 최대한 피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그랬기에 애초에 서지석은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목숨이라도 건지면 다행이라 여겼을 뿐이었다.하지만 결과는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었다.그들은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빠져나왔고 영액과 보물도 대부분 지켜냈다. 이건 그야말로 뜻밖의 횡재였다.“우리가 이렇게 순조롭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진우 씨 덕분
이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온 세상이 떠들썩해지지 않겠는가?“좋아요! 나이스!”장은경은 환호성을 질렀다. 기쁨에 들뜬 눈동자가 반짝이며 빛났다.얼굴도 잘생기고 젊은 나이에 실력까지 뛰어난 데다 미래까지 창창한 인재라니, 이런 청년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야 했다. 설령 서지석과의 약혼을 파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유진우의 눈에 들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었다.“젠장! 또 저 자식이 잘난 척할 기회를 내줘버렸어!”진이수의 얼굴은 어둡게 굳어버렸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유진우의 위력이 커질수록 진이수의 존재감은 점점 작아질 게 분명했다.진이수는 이제 거의 반 포기 상태였다.이제는 그저 유진우가 자신에게 괜한 시비를 걸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세 수를 받아보겠다고 했는데 고작 한 번도 버티지 못했군요. 보아하니 비설파의 오너라는 자도 별 볼 일 없군요.”유진우는 조소가 서린 말투로 담담하게 말했다.그러자 비설파의 고수들은 목덜미까지 붉히며 분노로 치를 떨었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오너조차 유진우한테 패한 마당에 그들 따위가 나서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이제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강도현뿐이었다.서남 제일 고수라 불리는 강도현이라면 유진우를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 “오너님! 저놈은 너무나도 오만방자합니다. 제발 그에게 본때를 보여주십시오. 우리 비설파의 자존심을 지켜주셔야 합니다!”“그래요, 오너님! 방금 저자는 기습 공격으로 겨우 이긴 겁니다. 오너님께서 나서신다면 틀림없이 쉽게 이기실 수 있을 겁니다!”“오너님! 본때를 제대로 보여주십시오!”비설파의 제자들이 앞다투어 강도현에게 부탁했다.모두의 간절한 시선을 받은 강도현은 난처함을 느꼈다.그는 유진우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만에 하나 패하기라도 하면 평생 쌓아온 명성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마찬가지로 서남 제일 고수라는 칭호도 물거품이 될 터였다.문제는 이렇게 수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