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잘난 척하긴!”고현영이 그를 째려보며 아니꼽게 말했다.“이따가 보면 알겠죠. 누가 더 강한지.”“유진우가 송호의 상대가 아니라고 해도 오래간만에 보는 천재인데 존중해줘야죠.”아까 말했던 그 사람이 또 입을 열었다.“맞아요. 송호가 도전장을 내민 걸 보면 유진우의 실력이 꽤 만만치 않다는 걸 뜻하겠죠. 안 그러면 일을 이렇게 크게 벌일 필요도 없고요.”“유진우가 인제 고작 20대 초반이래요. 그런데 벌써 천재 무사라는 소리를 듣는 걸 보면 아주 보기 드문 인재인 건 맞는 것 같아요.”“유진우가 송호한테 지더라도 그건 영광스러운 패배입니다.”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보탰다. 그들은 송호가 이길 거라고 믿었지만 유진우의 실력과 천부적인 재능도 부정하진 않았다.“듣건대 유진우는 지금까지 아무 파벌도 없이 스스로 전부 깨우쳤대요. 우리 양정문에 들어온다면 앞날이 참 창창할 텐데.”“하하... 백여 명밖에 안 되는 양정문 규모로 가능하겠어요? 그냥 포기해요. 괜히 인재의 앞날을 망치지 말고.”“맞아요! 파벌 규모로 보나 발전 가능성으로 보나 우리 청산파가 훨씬 낫죠. 우리가 초대한다면 유진우는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저기요... 다들 철장문은 안중에도 없는 거예요?”그때 고현영이 언짢은 얼굴로 말했다.“파벌의 유구한 역사라면 우리 철장문과 비교할 만한 파벌이 없죠. 유진우가 진짜로 파벌을 선택했다면 당연히 우리 철장문을 선택하겠죠.”그 소리에 유진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저 여자는 참 자신감이 넘친단 말이지. 아직 누군지 보지도 못했으면서 승리를 확신하고 말이야.’그리고 무엇보다 고창석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다들 의견이 분분하던 그때 한 무리의 현무문 제자들이 갑자기 다가왔다. 그들 중 맨 앞에 선 사람이 전세권과 진경준이었다.“어머, 큰형님 아니십니까?”전세권은 왕현을 단번에 알아보고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큰형님, 몸이 다 망가졌는데도 세간의 일에 끼어들려고 왔어요?”“내가 뭘 하든 너희들
“선배님!”“세권 오빠!”전세권이 휙 날아간 걸 본 순간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두려움에 떨었다. 단전이 망가진 왕현에게 아직 이런 실력이 남아있을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감... 감히 날 때렸어요?”전세권은 가슴팍을 고통스럽게 움켜쥐고 분노를 터뜨렸다.‘파벌에서 쫓겨난 쓸모없는 놈이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나대?’“때리면 뭐? 죽인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충분히 자비를 베푼 거야!”왕현이 앞으로 다가가 민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민아야, 겁먹지 마. 내가 있는 한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해. 내가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널 꼭 지킬 거야.”“선... 선배... 지금 뭐 하는 거예요!”민아는 굳은 얼굴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민아야, 그동안 네가 많이 힘들었다는 거 알아. 이제부터는 잘해줄게. 우리 둘이 그냥 도망치자, 응? 강남을 떠나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는 거야. 어때?”왕현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전원중을 이길 수는 없어도 그의 여자와 함께 도망칠 수는 있었다. 최대한 위험을 멀리해야 했다.“선배, 미쳤어요? 전 이젠 세권 오빠의 사람이라고요!”민아가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어쩔 수 없어서 이러는 거 알아. 너 전세권 안 좋아하잖아. 네가 고개만 끄덕인다면 바로 떠날 수 있어!”왕현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싫어요... 전 안 가요!”민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너 무슨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는 거지? 걱정하지 마. 너한테 무슨 일이 있든 내가 최선을 다해 해결해 줄게!”왕현이 진지하게 말했다.“이거 놔요!”민아는 왕현의 손을 홱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선배, 아직도 모르겠어요? 전 선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제발 정신 좀 차려요!”그녀의 말에 왕현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뭐... 뭐라고?”“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저도 더는 숨기지 않을게요.”민아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싸늘하게 말했다.“그때는 선배의 높은 신분 때문에 선배랑 결혼하겠다고 한
“쨍!”장검이 왕현의 목을 찌르려던 그때 누군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칼끝을 덥석 잡았다.“뭐야?”고개를 든 전세권은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움찔했다.“당신이 어떻게 여기에...”조금 전 모든 신경을 왕현에게 쏟은 바람에 그의 뒤에 누가 서 있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보다 더 강한 사람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사랑할 가치도 없는 여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요?”유진우는 전세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왕현만 뚫어지게 보았다.“계속 죽겠다고 고집을 부리겠다면 그렇게 해요. 당신 같은 쓸모없는 사람을 살린 적이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아직 자존심이 남아있다면, 남자라면 당장 일어나요! 천하제일의 검객이 되겠다면서요? 지금 이 꼴로 그럴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요? 정신 차려요!”그러더니 손을 내밀어 왕현의 따귀를 후려갈겼다.“짝!”왕현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 빛도 없이 멍하던 두 눈이 드디어 정신이 조금 든 것 같았다.그는 전세권의 흉악스러운 얼굴과 혐오 가득한 눈빛의 민아를 번갈아 보고는 자신을 비웃었다.“형님 말씀이 옳아요. 절 사랑하지 않는 여자 때문에 목숨까지 바쳐서야 하겠어요? 고마워요, 형님!”왕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마치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 얼굴에 드리워졌던 침울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단전 부위의 내공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점점 다음 레벨로 돌파할 기미가 보였다.“뭐지?”유진우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는 왕현이 곧 본투비 레벨로 돌파할 거라는 예감이 확 들었다.“무슨 일이야?”그때 몇몇이 그쪽으로 다가왔다. 맨 앞에 서 있는 남자는 깔끔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였다.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일 것 같은 이미지였지만 눈빛에 서늘함이 담겨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현무문의 오너 전원중이었다.“아버지! 마침 잘 오셨어요!”전세권의 두 눈이 반짝이더니 대뜸 고자질하기 시작했다.“아까 여기서 왕현을 만났거든요. 그런데 그 자식이 질투 때문에 절 때
“나를 꺾어?”그 말을 들은 전원중은 기가 막힌 나머지 어리둥절해하다가 껄껄 웃었다.나머지 현무문의 제자들도 모두 크게 웃으며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보는 듯, 비웃음 섞인 눈빛을 보냈다.과거의 왕현은 현무문 제자 중 원탑으로서 확실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부인 전원중과 비교하면 그 실력은 한참 모자랐다.“인마! 너 지금 네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는 알아?”전원중은 어안이 벙벙해서 입을 헤벌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이 배신자는 이래 봬도 한때 내가 직접 가르쳤던 제자였다. 한창 전성기라 할지라도 내 상대가 되지 않는 놈을, 하물며 지금 단전까지 망가지고 평생의 수행을 잃은 병신이 된 후에 나를 상대로 맞서 싸우라고 한 것이야? 감히 내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는 말이다!”“맞아! 하찮다 못해 쓸모없는 놈일 뿐인데, 어디 감히 우리 아버지의 격투 상대로 내세우는 것이냐?”전세권이 잔뜩 흥분해서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진경준 등 일행들은 잇달아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왕현 씨를 격투장으로 내보내든 말든, 당신들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전 오너님, 서둘러 격투장으로 들어가시죠? 두려운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유진우가 도발했다.“웃기는 소리,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전원중이 서늘하게 웃었다.“이 배신자가 죽음을 자초하는 이상, 오늘은 내가 직접 나서서 단죄할 것이다!”말을 마치자, 전원중은 곧장 격투장으로 들어갔다. 격투기 경기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는 먼저 올라가 몸을 풀고 대결을 앞당겨 당장 시작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진우 형님, 저의 이 수행은 모두 저 사람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저는 저 사람을 이길 수 없을 겁니다.”왕현이 진지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길 수 있다고 했으니, 왕현 씨는 이길 수 있을 겁니다.”유진우가 담담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왕현 씨의 사부였던 전원중은 그 당시 검술을 가르칠 때 세 가지 술법을 숨겨두고 여섯 가지 검술에서 고작 세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께서 증인이 되어주십시오. 이 배신자는 제 문하에서 쫓겨난 후, 줄곧 악심을 품고 있다가 인제 와서 저에게 도전장을 내미네요. 아직 본경기가 시작되지 않았으니, 제가 여러분의 흥을 돋우겠습니다.”전원중이 입을 열자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이목이 쏠렸다. 오늘 그는 과거 자기 제자였던 왕현을 벌하는 것으로 자신의 위신을 다시 세우려 했다.“저기요! 친구분께서 왜 격투장으로 향하시는 거죠?”그때 고현영과 고창석 일행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하나같이 의아하고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사적인 원한을 해결하려나 봅니다.”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사적인 원한이요?”고현영이 잔뜩 놀란 얼굴로 말을 이었다.“격투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저 사람이 현무문의 전 오너예요! 송호 선배처럼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손꼽히는 고수이고 저희 할아버지와 같은 레벨의 존재예요!”“네? 그래서요?”유진우는 전혀 개의치 않은 듯해 보였다.“당신 친구의 그 하찮은 실력으로 어떻게 전 오너와 싸울 수 있겠어요? 격투장으로 들어간 것은 굴욕을 자초한 것에 불과할 거예요!”고현영은 고개를 저었다.“맞는 말입니다.”옆에 있던 고창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서 친구를 격투장에서 나오게끔 권하라고 언질하고 싶네요. 그렇지 않으면 저 친구는 크게 다칠 겁니다. 나라고 해도 전 오너의 상대가 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저 친구의 실력으로...”“저도 말릴 수 없어요. 오늘 두 사람은 반드시 승부를 겨루게 될 것이고 저들의 생사는 각각 천명에 맡겨야 할 거예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이 늙은이의 충고를 듣지 않으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나중에 가서 전 오너의 대단함을 깨닫고 후회하지나 말아요.”고창석은 두 손을 등에 업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이에 대해 유진우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무대 위에서, 전원중은 왕현을 빤히 쳐다보며 입가
“못 본 사이에 검이 느려진 것 같군요.”왕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아니! 말도 안 돼! 어떻게 네가 나를 찌를 정도의 실력을 키웠단 말이냐? 이건 분명히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전원중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희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부상을 무릅쓰고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 수 남겨둘 것 없이 거의 전력을 다했다. 그의 검술은 너무나 빠르고 정확하여 막아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아홉 번째 공격에서 그는 검술을 바꾸더니 왕현의 목을 노리고 세게 찔렀다. 그의 검술엔 살의가 가득했지만 왕현은 피하지 않고 똑같이 검을 꺼내 더 빠른 속력으로, 더욱 교묘한 각도로 전원중의 복부를 찔렀다.“헉, 안돼...”전원중은 깜짝 놀랐고 연거푸 세 걸음 뒤로 물러서며 눈을 부릅떴다. 만약 그가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앞으로 공격해 나갔다면, 이 검은 그의 복부를 정확하게 관통했을 것이다.‘이럴 수가? 이 녀석은 어디서 이런 이상한 검술을 배웠을까?’전원중은 피가 흐르는 복부를 감싸고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는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어째서 며칠밖에 안 되는 사이에 왕현은 내상을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크게 향상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이젠 당신이 제 공격을 받을 차례입니다!”왕현은 숨을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장검을 다시 한번 휘두르며 돌진했다. 전원중은 충격을 억누르고 급히 검을 들어 막아섰다. 전원중은 처음의 호기로운 기세가 이미 꺾였고, 게다가 상처까지 입었다. 지금 그는 주도권을 잃고 얻어맞는 처지에 이르렀다. 오히려 왕현은 싸울수록 용맹해졌고 검의 기운도 점점 강해져 전원중을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기회가 찾아왔어!”검의 기운이 폭발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전원중은 갑자기 온몸에서 기운이 솟구쳤다. 그는 온 힘을 다하여 최후의 발악을 하며 검을 앞으로 뻗으며 역전을 노렸다. 그런데 검이 막 솟아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오히려 그의 목구멍이 왕현의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왕현은 전원중을 발로 차고나서 몸을 돌렸다.“그래야지...”전원중은 연신 비굴한 웃음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왕현이 몸을 돌린 바로 그 순간, 그는 눈빛이 차갑게 돌변하더니 갑자기 땅 위에 있던 검을 집어 들고 뒤를 보인 왕현을 향해 잽싸게 찔렀다.“왕현 씨, 조심해요!”이때, 유진우가 소리 질렀다. 위급한 상황에서 왕현은 재빨리 옆으로 비켜섰다. 장검은 비록 그의 급소를 찌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허리에 길게 상처를 냈다. 순간 선혈이 줄줄 흘렀다.기습이 성공하지 못하자 전원중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황급히 검을 내던지며 말을 더듬었다.“현아, 이 스승이 또 끝까지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정말 잘못했어! 잠시 나도 모르게 발버둥을 쳤을 뿐이니, 나 같은 쓰레기와 시비를 가리려 하지 말거라!”“전원중! 당신은 정말 인간 말종이네요...”왕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장검을 뽑아 들고 힘껏 내리꽂았다.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지켜야 할 제자로서의 의리가 남아있지 않았다.“멈춰라!”그때 갑자기 분노로 가득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위풍당당한 그림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전원중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남자는 30대 초반으로 돼 보이는 젊은이였다.그의 숨결은 무척이나 강했고 눈빛은 날카롭고 패기가 넘쳤다. 마치 큰 산처럼 웅장하게 등장했고, 그의 등장으로 모든 사람이 숨을 죽였다. 이 사람은 바로 죽음의 칼잡이, 송호였다!“멈추라고 했다!”왕현이 휘두르던 검의 기세가 그치지 않자, 송호는 대뜸 화를 냈다. 그가 두 손바닥을 내밀어 힘찬 기운을 내밀자, 손바닥 모양의 그림자가 바로 왕현의 가슴을 덮쳤다.“컥!”왕현은 피를 한 모금 내뿜으며 그 자리에서 몇 미터 뒤로 날아갔다. 왕현은 결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어머! 송호잖아!”“역시 건당의 수석다워! 스카이 랭킹 고수답게 단 한 방으로 상대방을 중상 입혔어!”“전 오너를 물리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면 오
“대박! 이 녀석 누구야? 대중 앞에서 감히 송호를 도발하다니? 죽으려고 환장했네?!”“용기는 칭찬할 만하지만, 무모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유진우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 중요한 상황에서 감히 나서려는 사람이 있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이봐요! 왜 올라가요? 미친 거 아니에요? 빨리 내려와요!”눈앞이 아찔해진 고현영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녀가 보기에 유진우는 그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 같았다.“지금 뭐 하는 거야? 상대는 스카이 랭킹 급 고수 송호인데, 이 시점에 격투장으로 올라간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겠는가?”고창석은 혼잣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유진우를 향해 곧 죽을 사람을 보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면서 속으로 자신마저도 송호의 적수가 못 되는데, 하물며 무명의 젊은 녀석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풉! 곧 죽을 줄도 모르고 설쳐대더니, 이젠 감히 송호 선배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내가 보기에 너는 사는 것이 지겨운 게 분명해!”전세권 일행은 기세등등해져서 웃기 시작했다. 오늘 송호의 손을 빌리면 서열을 정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눈엣가시였던 유진우도 해결할 수 있었다.“임마! 너 누구인데 겁도 없이 감히 나를 막아서는 거야?”격투장 위에서 송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매우 불친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가 죽이려는 사람이라면 감히 아무도 구하려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송호 선배! 이 녀석이 바로 유진우입니다! 빨리 죽이세요!”전세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뭐? 유진우?!”이 말이 나오자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그들은 처음에 유진우를 그저 한 치 앞날도 내다볼 줄 모르고 잘난 체하는 젊은이라고만 생각했다. 어쩐지 일을 키운다더라니, 알고 보니 오늘의 주인공이었고, 요즘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천재 무사, 유진우였던 것이었다.“설마? 저 사람이 유진우라고?!”고현영은 어리둥절해졌고 이 상황을 믿을 수
“유장혁?”그 소리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때 유씨 가문의 천재는 이름을 널리 떨쳤었다. 그런데 10년 전 자금성의 난이 터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그의 이름을 갑자기 들으니 놀랄 만도 했다.“도련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세자 전하의 생사도 불투명한 데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 분한테 서경왕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요?”조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까지 펼쳐 보였다.“그러게요, 도련님. 제발 현실을 잘 알고 말씀하세요. 세자 전하께 기댈 바엔 차라리 대장군님께 기대는 게 더 낫죠.”고원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천우가 자기 자신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실종된 지 10년이나 된 사람을 얘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얘기는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도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가서 형이 왕위를 이어받아도 문제없죠.”유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하는 말이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자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서경왕의 자리를 계속 비워둘 작정인가요?”조군영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형님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조 장군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유천우가 말했다.“살아있다면 지금 어디 계시는 거죠? 왜 나타나지 않는 겁니까?”조군영은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형님한테 소식을 전했으니 꼭 올 겁니다.”유천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설마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죠?”조군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위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 서경 전체가 크게 흔들릴 거예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요. 지금 당장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도 나서서 유천우를 설득했다.“형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지금 명령을 거역하겠단 겁니까?”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친 삼베옷을 입고 상복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는 위엄이 넘쳤고 온몸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빈 조군영과 고원마저도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유만수의 작은 아들 유천우였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천우는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여 예전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도 많이 저질렀었고 서경의 사고뭉치라 불리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2년 동안 유천우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더는 빈둥빈둥 놀지 않고 군에 들어가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처음에 사람들은 유천우가 군대에서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도련님이 군대의 혹독한 훈련을 버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런데 뜻밖에도 유천우는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공까지 세웠다.짧은 2년 사이에 병사에서 흑용군의 부장으로 성장했다. 든든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유천우가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 군사 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천우야, 드디어 온 거야?”아들을 보자마자 이의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저도 모르게 밀려왔다.“어머니, 소식 다 들었어요.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유천우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군영과 고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몰아붙이는 겁니까?”“그게...”조군영은 고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대국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현재 서경왕부에 리더가 없어서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많은 문제가 생길 거예요.”“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은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대국?”유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
“서경 대원수의 직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투표를 거칠 뿐만 아니라 폐하께 보고하여 최종적으로는 폐하의 결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의진의 눈빛이 경계로 가득했다.유태범이 왔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형제 간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군영과 고원의 몇 마디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깨달았다.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유태범은 흑용군에서 유만수 다음가는 위망을 가지고 있었다.표기대장군으로서 그는 많은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반의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유태범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범이 지금 이미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왕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력을 탈취하려 하다니, 그녀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만수의 죽음이 이 자들과 호룡각 잔당들이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만약 유태범이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다.“마마, 급할 때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폐하의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빨리 국면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조군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맞습니다!”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수가 밖에 있으면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소인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폐하에게 보고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내부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승복할 수 있어요.”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투표라니요? 이게 투표할 일입니까? 전 서경을 둘러봐도 대장군님보다 원수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조군영이 말했다.“그렇습니다, 왕비마마! 공적으로 보나, 위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고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세 번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비록 똑같이 연기였지만 조군영보다는 훨씬 진실되어 보였다.“표기대장군 도착하셨습니다!”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울렸다.곧이어 금빛 갑옷을 입고 기상이 비범한 중년 남자가 급하게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이 바로 일품 표기대장군 유태범이었다!유태범은 표기대장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만수의 사촌 동생이기도 했다.유태범은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하고 천부적 재능이 있어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만약 유만수가 없었다면 분명 유씨 가문의 가장 빛나는 천재였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만수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유태범을 보자 조군영과 고원은 즉시 가식적인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그들 둘은 모두 유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진정한 측근 장수들이었다.마치 유만수와 석태혁의 관계처럼 영광도 함께 하고 손실도 함께했다.“형님!”유태범은 두 심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당에 들어서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떨리며 얼굴에는 비통함과 분노의 빛이 어려 있었다.“어찌 이럴 수가? 우리 형님이 어찌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한 짓입니까?!”유태범이 붉은 눈으로 연달아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호룡각의 잔당들입니다. 그들이 자객을 부내에 잠입시켜 어젯밤 어르신을 암살했습니다.” 이의진의 얼굴이 흐리멍덩했다.“호룡각?”유태범이 이를 갈며 분노에 차 있다가 즉시 고함쳤다. “누구 없느냐! 즉시 군대를 집결시켜 전 성을 수색하라.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잠깐만요!”이의진이 갑자기 나서서 제지했다.“태범 씨, 매우 비통한 것을 알지만 지금은 아직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습니다.”“형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무
이 말이 나오자 조군영과 고원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두 사람이 오늘 온 것은 본래 기세를 과시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이의진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입을 열자마자 반역이라는 죄명을 들이대다니.이런 죄가 뒤집어씌워진다면 그들은 아마 왕부의 대문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마마, 농담 마십시오. 반역은 사형감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런 일은 감히 못 하지요!” 고원이 연달아 해명했다.“맞습니다. 저희는 왕께 항상 충성을 다해왔는데 어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조군영도 따라서 부인했다.비록 두 사람 모두 그런 야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명백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반역할 생각이 없다면 어째서 갑옷을 입고 부내에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규칙도 모르십니까?” 이의진이 조금도 봐주지 않고 꾸짖었다.그저 이품 장군일 뿐인데 군권이 조금 있다고 감히 왕부 안에서 눈깔을 찌푸리고 있다니.유만수가 살아있을 때 이 둘은 감히 이러지 못했다.“아이고! 제 정신 좀 보세요, 왕부의 규칙을 잊었네요. 마마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군영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어서 갑옷을 벗고 차고 있던 칼을 내려 왕부의 경비에게 건넸다.“저희가 급히 오느라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으니 개의치마시지요.” 고원이 웃으며 말했고 즉시 갑옷과 칼을 벗었다.이 광경을 보고 이의진의 안색이 비로소 조금 누그러졌지만 어조는 여전히 차가웠다.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왕께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저희 둘이 특별히 문안드리러 왔습니다.”고원이 가식적으로 말했다.“소식통이 꽤나 빠르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늦었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두 사람이 의아한 척했다.이의진은 설명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몸을 돌려 영당으로 향했다.왕부 밖은 비록 동정이 없었지만 왕부 안에는 이미 흰 만장이 가득
“알겠습니다. 제가 경비병 신분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변장을 하셔야 합니다.” 손도운이 결국 타협했다.비록 위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정오 무렵, 서경 왕부 안.비록 유만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봉쇄되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관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어떤 이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조문을 왔고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목적을 품고 있었다.“보국대장군 도착!”“운미대장군 도착!”왕부 문 앞에서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곧이어 갑옷을 입은 체격이 우람한 중년 남자 둘이 각각 친병들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왔다.이 친병들은 모두 허리에 장도를 차고 있었고 보기에도 험상궂었다.온 이들은 바로 이품 관직인 보국대장군 조군영과 운미대장군 고원이었다.“두 분, 왕부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반드시 갑옷과 무기를 해제하셔야 합니다.”한 왕부 친위가 조군영과 고원을 막아서며 동시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흥! 난 밖에 나올 때 갑옷을 벗지 않아. 꺼져!” 조군영이 노하여 꾸짖었다.“조 장군, 이건 왕부의 규칙입니다. 따라주시기 바랍니다.”왕부 친위가 말했다.“규칙? 나한테 감히 규칙을 운운한 건가?”조군영이 왕부 친위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규칙을 들먹이며 나를 압박하느냐? 죽고 싶나?”“조 장군, 소인도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뿐입니다.” 왕부 친위는 동요하지 않았다.“헛소리 작작 하고 비켜.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조군영이 갑자기 칼을 뽑아 왕부 친위의 목에 겨누었고 그의 모습은 매우 포악하고 극도로 횡포했다.“제 머리를 베신다 해도 규칙은 지켜야 합니다.” 왕부 친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 개자식! 관짝을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리겠구나!”조군영은 마침내 화를 내며 칼을 거세게 들어 왕부 친위의 팔을 향해 내리쳤다.“멈추세요!”이때 한 소리의 여성의 호통이 울렸다.삼베 흰옷을 입은 이의진이 석태혁 일행을 데
이 순간 유진우의 눈이 피를 뿜을 듯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살기가 솟구쳤다.비록 예전에 아버지와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그동안 품었던 그 작은 분노마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단지 호룡각의 일을 완전히 해결한 후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에 효도를 제대로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둘이 만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암살당해 돌아가셨다. 이 충격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창공!” 유진우가 갑자기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손을 뻗어 창공보검을 불러들이고는 밖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호룡각의 잔당들을 모조리 섬멸해야만 했다!“전하! 제발 진정하십시오!” 유진우가 이성을 잃을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손도운이 급히 그를 막아서며 침착하게 조언했다. “호룡각은 준비를 하고 온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이렇게 무모하게 뛰쳐나가신다면 복수는커녕 오히려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리실 수 있습니다!”“비키세요!” 유진우의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창공검의 칼날을 손도운의 목에 바로 겨누었다. 예리한 기운이 피부를 스치며 상처를 내자 피가 천천히 배어 나왔다.“전하! 저를 죽이시더라도 전 전하를 막아야만 합니다. 제가 어찌 전하께서 죽으러 가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전하께 더 이상의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손도운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유진우 앞을 가로막은 채 죽음도 불사하는 자세를 취했다.유진우는 이를 악물었고 그의 손에 든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몇 초간의 대치 끝에 그는 깊은 숨을 내쉬고 마침내 검을 내렸다.손도운의 말이 맞았다. 그는 지금 냉정해져야만 했다. 유만수가 죽었으니 왕부가 분명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고 이때
다른 처녀들도 모두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진심 어린 간청을 했다.이 광경을 본 유진우는 넋이 나갔다.노란 옷 처녀의 말은 그의 귀를 때리는 듯했다.지옥 같은 일을 겪고도 이 아이들이 자신이 아닌 천하의 모든 약자들을 생각하다니... 상상도 못 했다.이런 원대한 뜻과 깨달음은 그조차도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이청성이 말했듯, 이들은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빛을 향하는 처녀들이었다.귀하고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누가 여자가 남자만 못하다 했는가?진정한 대의 앞에서 이 여자들이야말로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었다.이런 의로운 용사들이 있는데 어찌 서경이 부흥하지 않을까? 어찌 천하가 평안하지 않을까?“오빠, 결정해요. 받아주지 않으면 저 애들은 살아갈 희망조차 잃을 거예요.” 이청성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어요?” 유진우가 엄숙하게 물었다.“절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모든 소녀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좋아요! 허락하죠!”유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부터 특별 훈련을 시작할 거예요. 견뎌낼 수 있다면 여러분들의 원대한 뜻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하지만 견디지 못한다면 편한 곳에서 평안히 살도록 해요.”“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노란 옷의 소녀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소녀들도 따라 외쳤다.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청성을 바라보았다. “당분간 네가 돌봐. 내일 저애들의 거처를 정하도록 해.”“알겠어요.”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으며 소녀들을 데리고 떠났다.일행이 막 나가자 손도운이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그의 표정이 매우 당황스러워 보였고 큰일이라도 난 듯했다.“전하! 큰일 났습니다!”유진우를 보자마자 손도운은 ‘쿵’하고 무릎을 꿇고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왕부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왕께서 자객의 암살로 돌아가셨습니다!”“뭐라고요?”이 말을 듣자 유진우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잠시 후 정신을 차린 유
“오빠, 급한 건 알지만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아가씨들은 지금 오빠만 믿고 있고 목숨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어요. 받아들이면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예를 들어, 오빠가 외로울 때...”“농담하지 말고 요점이나 말해요!” 유진우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솔직히 말할게요.”이청성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장혁 씨, 사실 이 처녀들은 보기 드문 인재예요. 제가 이미 선별했는데 모두 영리하고 의지가 강해요. 조금만 가르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예요.”“무슨 뜻이에요?” 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밀사의 중요성은 잘 아실 거예요. 특히 여자 밀사는 어떤 면에서 타고난 장점이 있죠. 이 처녀들을 밀사로 키우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청성이 말했다.“말은 쉽지, 밀사 하나 키우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전 지금 제 몸 하나도 챙기기 힘든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요?” 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그는 이 처녀들이 평온하게 살기를 바랐지, 이용당하거나 장기말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밀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충성심인데 그들은 이미 그걸 가지고 있어요. 장혁 씨가 그들을 구해줬고 장혁 씨의 빛이 그들의 어두운 세상을 비춰줬죠. 저애들은 장혁 씨를 신처럼 여기고 있어요.”“시간과 노력은 걱정하지 마요. 장혁 씨가 직접 가르칠 필요 없이 좋은 스승만 찾아주면 돼요. 장혁 씨 곁의 손도운이라면 아주 적합할 것 같은데요.” 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었다.“그건 청성 씨 생각이고 저 애들한테는 물어봤어요?” 유진우가 물었다.“당연히 물어봤죠. 모두 하겠대요. 필요하다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요.” 이청성이 말했다.“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럴 필요까지야...” 유진우가 눈썹을 찌푸렸다.“장혁 씨, 어둠 속에 있어도 빛을 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요?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세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발 저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