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 간결한 이 두 글자에 장경화는 겁에 질려버렸다.평소 한없이 자상하고 늘 웃기만 하던 유진우가 화를 내니 이토록 무서울 줄이야.그 눈빛은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기세였다.“사람 살려요! 구해주세요!”정신을 차린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곧이어 청성 그룹의 경호원들이 와르르 몰려왔다.“사모님, 무슨 일이시죠?”그중 경호 대장이 장경화를 알아보고는 곧장 그녀를 편들었다.“유성빈, 당장 저 녀석 끌어내! 감히, 감히 내 아들을 때렸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장경화가 강경하게 말했다.“이 자식이! 감히 우리 그룹 문 앞에서 소란을 피워? 죽고 싶어 환장했어?!”경호 대장이 손을 휘두르자 뭇사람들이 청성 그룹 앞에 몰려들었다.이건 대표님 어머님께 잘 보일 절호의 기회였다.표현만 잘하면 승진하고 연봉을 올리며 아름다운 미인과 결혼해 인생의 절정에 오를 천재일우의 기회였다.“뭘 보고 있어? 당장 제압하란 말이야!”경호 대장이 나서려 할 때 갑자기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감히 누가 손대려고?!”이때 실버 롱드레스로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낸 아름다운 여자가 경호원을 몇 명 데리고 이곳으로 걸어왔다.강렬한 불꽃과도 같은 새빨간 립스틱에서 요염한 풍채가 한껏 드러났고 살짝 눈웃음 지으니 고혹한 자태에 저도 몰래 스며들 것 같았다.그녀는 요정처럼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와, 너무 예뻐!”한 무리 경호원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눈앞의 그녀는 절세의 미인이 따로 없었다!“유진우 씨, 괜찮으시죠?”그 여인은 주변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도 마다한 채 곧게 유진우 앞으로 다가왔다.“네? 누구시죠?”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의 눈가에 어렸던 표독한 기운도 점차 사라졌다.“안녕하세요, 저는 조선미라고 해요. 안 회장님의 소개로 왔어요.”그 여자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순간 한 무리 경호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조선미? 설마 그 조씨 일가의 따님 조선미를 말하는 거야?
“엄마, 일단 현이 데리고 병원부터 가요.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몇 초 동안 고민한 후 이청아가 끝내 마음을 정했다.“청아야, 현이가 당한 굴욕 반드시 갚아야 해. 절대 그놈 봐주지 마!”장경화가 표독스럽게 말했다.“걱정 말아요. 내가 알아서 해요.”이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두 경호원에게 장경화와 이현을 병원으로 실어 가라고 분부했다.“장 비서는 이번 일 어떻게 생각해?”이청아는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대표님, 보다시피 유진우 씨가 먼저 이현 씨를 때렸어요. 방금 경호원들도 다 봤다잖아요.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장 비서가 대답했다.“다만 우리 엄마의 입방정이...”이청아는 말을 잇지 않았다.엄마의 표독스러움과 동생의 막무가내가 어느 지경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어쨌거나 사람을 때린 건 잘못이에요!”장 비서가 진지하게 말했다.“정말 무슨 오해가 있더라도 대화로 풀어야 하잖아요? 게다가 이현 씨는 대표님 친동생인데 이 지경으로 때렸다는 것은 대표님이 전혀 안중에 없다는 뜻이에요. 이 점만으로 유진우 씨가 얼마나 저질스러운 사람인지 충분히 증명되지 않나요?”이청아는 미간을 구기고 의심의 골이 점점 더 깊어졌다.‘그래, 엄마와 현이가 아무리 표독스럽고 막무가내여도 손을 대는 건 잘못이야. 게다가 이렇게 심하게 때리다니. 전에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졌어, 내가. 인제 보니 이혼은 더할 나위 없이 현명한 선택이야.’“대표님, 이번 일은 이대로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끝까지 추궁해야 해요! 감히 사람을 때리다니, 유진우 씨는 무조건 대가를 치러야 해요!”장 비서가 차갑게 말했다.안 그래도 심란했던 이청아는 이 말을 듣자 화가 울컥 치밀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유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도로를 질주하는 실버 벤틀리 안에서.유진우는 휴대폰에 뜬 발신자 표시를 보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다만 결국 수신 버튼을 눌렀다.“유진우, 나한테 해명할 거 없어?”이청아가 다짜고
“어떻게 알았어요?”조아영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벌게진 얼굴로 물었다.창피함도 있지만 그녀를 더 놀라게 한 건 상대가 이토록 정확하게 증상을 집어냈다는 것이었다.편두통에 생리 불규칙까지, 게다가 배탈이 난 것도 바로 알아채다니.‘너무 신기해! 설마 헛짚은 건 아니겠지?’“한의학은 자고로 견문을 중시해요.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병명을 충분히 보아낼 수 있어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어때, 아영아, 이젠 믿을 만해?”조선미가 가볍게 웃었다.그녀도 속으로 한숨을 돌리며 상대가 정말 실력 있는 의사란 걸 믿게 됐다.“쳇! 그냥 한번 얻어걸렸을 뿐이야. 뭐 대단한 거 있다고!”조아영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진우 씨, 얘가 말만 못되게 굴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조선미가 미안한 듯 유진우에게 사과했다.“괜찮아요. 일단 병부터 보죠.”유진우도 썩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그는 어르신 앞에 다가가 자세히 훑어보더니 대충 짐작이 갔다.어르신은 중독되었는데 일반 독성이 아니었다.다행히 제때 발견하여 구급했으니 망정이지 두 날만 더 미뤘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선미 씨, 은침 한 세트 사 오실래요?”유진우가 말했다.“네, 바로 사 올게요.”조선미가 손을 흔들자 경호원 한 명이 발 빠르게 나갔다.5분도 채 안 돼 경호원이 은침 한 세트를 들고 왔다.“고마워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곤 어르신의 옷부터 벗겼다.그는 둘째 손가락을 내밀어 어르신의 복부를 두드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은침을 꺼내 한 개씩 그 위에 찔렀다.그는 가벼우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침을 놨다.잔잔한 수면을 가볍게 찌르듯 행동이 너무 날렵하여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참 대단한 침법이네요!”이 광경을 본 조선미가 속으로 감탄했다.그는 비록 의술을 잘 모르지만 국내의 몇몇 유명한 신의를 알고 있는데 그런 분들도 침술만큼은 유진우의 노련하고 정확한 손놀림을 따라오지 못한다.이는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고된 노력
“이런 폐인 따위가!”조선미는 울화가 치밀어 장 교수의 멱살을 잡고 으름장을 놓았다.“그러게 내가 침을 빼지 말랬잖아. 기어코 빼더니 끝내 이 사달을 내! 너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아니요, 이건 저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저도 최선을 다했다고요.”장 교수가 고개를 내저으며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아참, 그 돌팔이 때문이에요. 그 돌팔이가 함부로 침을 놔서 어르신을 해쳤어요!”“찰싹!”조선미는 장 교수의 뺨을 한 대 갈겼다.“X발, 개 같은 놈! 본인이 멍청한 것도 모르고 남 탓하려고 해? 경고하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너 절대 가만 안 둬! 껍질을 다 발라버릴 거야!”장 교수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조씨 일가의 실력으로 그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무슨 일이죠?”바로 이때 유진우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다만 그는 안색이 어둡고 입과 코에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어르신을 보더니 미간을 확 찌푸렸다.“침을 빼지 말라고 했잖아요! 왜 말을 안 듣는 건데!”유진우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진우 씨, 아까는...”조선미가 해명하기도 전에 장 교수가 불쑥 앞으로 다가오더니 유진우의 멱살을 잡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너였어? 야 이 자식아, 그렇게 침을 놓으면 어떡해! 네가 함부로 치료한 탓에 어르신이 위태로워진 거야, 알아? 네가 어떻게 책임질지 제대로 지켜볼 거야!”드디어 죄를 뒤집어쓸 자가 나타났으니 장영호는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보아하니 당신이 침을 뺐겠네?”유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래, 나다. 어쩔래?”“아니야, 아무것도. 그저 당신같이 능력 없고 책임을 회피할 줄밖에 모르는 뻔뻔스러운 인간들이 대체 어떻게 의사가 됐는지 몹시 궁금했거든!”“너...”“그 입 닥쳐!”조선미가 장 교수를 밀치고는 재빨리 유진우를 병상 옆으로 끌고 갔다.“진우 씨, 지금 상황이 위급해요. 어서 할아버지부터 구해주세요!”“선미 씨, 이 녀석은 돌팔이라 아무 실력 없어요.
“깼어, 정말 깼다고?!”갑자기 깨어난 조 어르신을 보며 모두가 다시 충격에 빠졌다.그들은 기기의 각종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된 걸 확인하자 입이 쩍 벌어졌다.전문 의료진도 속수무책이었던 난치병을 젊은 의사가 치료하다니, 이는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우와! 할아버지 드디어 깨셨네요!”어르신의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조아영은 기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줄곧 조마조마해하던 조선미도 드디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진우 씨, 이 은혜를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네요. 앞으로 진우 씨를 저희 가문의 손님으로 극진히 모시겠습니다!”그녀는 정중하게 허리 숙여 경례를 올렸다.“아닙니다, 선미 씨. 뭐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유진우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그의 겸손한 말투가 장 교수에겐 가시처럼 콕콕 박혔다.그들이 갖은 심혈을 기울여도 치료하지 못한 병을 상대는 정작 별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한다!이보다 수치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이봐요, 거기! 지네는 어떻게 된 일이죠? 우리 할아버지 몸속에 왜 그딴 게 들어있냐고요?”조아영이 불쑥 물었다.“이건 보통 지네가 아니라 인공 재배한 독충이에요.”유진우가 문득 어르신께 물었다.“어르신 혹시 최근에 외지에 다녀오시지 않았나요? 혹은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다던가요.”“맞아요. 며칠 전에 서울에 있는 연회에 참가했다가 술도 조금 마셨어요.”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제 예상이 맞는다면 누군가가 어르신께 독충을 탄 것 같아요.”유진우의 말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독충을 탔다고요?”어르신도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다른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어찌 됐든 그의 말이 충격적인 것은 사실이니까.“헛소리 그만 지껄여! 독충을 타다니? 제발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내가 볼 때 어르신은 지네 알을 잘못 드신 게 틀림없어!”장 교수가 입을 나불거렸다.“장 교수라고 했나? 한 가지만 물을게. 일반적인 지네 알이 인간의 체내에서 생존할 수 있어? 무식한 건 죄
그 시각, 도로를 달리는 실버색 벤틀리 안에서.“진우 씨, 할아버지를 구해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저희 가문의 청룡 카드를 드립니다. 달갑게 받아주세요.”조선미가 금테를 두른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이 카드를 소지하고 있으면 진우 씨는 앞으로 우리 가문의 귀빈이 되실 겁니다. 조신 그룹 산하의 모든 산업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어요.”“선미 씨, 제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에요.”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그냥 저의 소소한 마음이에요. 안 회장이 말씀하신 용심초는 내일 바로 분부해서 댁으로 가져다드릴 겁니다.”조선미가 웃으며 말했다.“선미 씨, 역시 통쾌하시네요. 그럼 넙죽 잘 받겠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청룡 카드를 건네받았다.조선미가 선뜻 내민 물건은 절대 초라한 물건이 아닐 것이다.“끼익!”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기사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길옆에 세웠다.“죄송해요, 대표님. 그 사람들이 저를 협박했어요!”기사는 뜬금없이 이 한마디만 남긴 채 부랴부랴 도망쳤다.그와 동시에 검은색 대포차 두 대가 갑자기 나타나 앞뒤로 벤틀리를 막아버렸다.이어서 차 문이 열리고 얼굴을 가린 채 손에 몽둥이를 든 십여 명의 사람이 기세등등하게 뛰어왔다.맨 앞장선 사람은 대머리에 뚱뚱한 남자였다.“조선미 씨, 저희 사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함께 가시죠.”대머리 남자가 칼을 들고 한쪽 발로 차 덮개를 디디며 말했다."간이 단단히 부은 모양이네. 지금 감히 내 차를 막은 거야?"조선미는 당황해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었다.“경호원들이 전부 옆에 있으면 저희도 감히 나서지 못하겠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전부 병원에서 조 어르신을 경호하고 있네요. 옆엔 고작 앳된 남자만 한 명 데리고 있으니 이런 절호의 기회를 우리가 놓칠 리가 있겠어요?”대머리 남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생각보다 머리는 좀 쓰네. 내 기사를 매수할 줄도 알고 말이야. 하지만 나 진짜 너무 궁금
“네?”유진우는 표정이 확 얼어붙었다.조선미가 뜬금없이 이런 말을 할 줄이야.그녀의 아름다움은 이청아의 차갑고 도도한 아름다움과는 또 달랐다.농염하고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그런 아름다움이었다.웃을 때 혼을 쏙 빼놓을 것 같은 눈매가 유난히 매력적이었다.간단히 말하자면 타고난 여우상이라 유혹을 뿌리칠 남자가 얼마 없다.“꺄르륵... 장난 좀 친 거예요. 뭘 이렇게 식겁해요?”조선미가 자지러지게 웃자 가슴팍의 새하얀 속살이 끊임없이 흔들리며 시선을 강탈했다.유진우는 입꼬리가 씩 올라가 재빨리 눈길을 피했다.이 여자는 너무 유혹적이라 볼수록 머리가 아찔거렸다.“진우 씨, 그건 그렇고 아마 또 한 가지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조선미가 웃음기를 거두고 말했다.“무슨 일인데요?”유진우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알다시피 내 경호원들은 병실을 지키고 있어요. 주변에 경호해 줄 사람도 없고 또 마침 날 노리는 자들이 생겨 위험한 처지에 이르렀네요. 그래서 말인데, 진우 씨가 날 24시간 보호해 줄 수 있을까요?”조선미가 그에게 부탁했다.“보호요?”유진우는 미간을 들썩거렸다.“선미 씨가 안전한 곳을 찾아 숨어있는 게 더 나을 텐데요?”“아직 모르시나 본데 저희 가문에서 오늘 밤 매우 중요한 자선 파티를 열어요. 주최인으로서 제가 빠질 수 없어요. 만에 하나 중도에 소란이라도 피우면 연약한 제가 감당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용심초를 봐서라도 제가 봉변을 당하는 걸 원치 않겠죠?”조선미가 요염하게 눈을 깜빡이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그건...”유진우는 2초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머리를 끄덕였다.“좋아요.”살짝 번거롭긴 하지만 용심초를 위해서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용심초에 그 어떤 변고도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녀의 부탁을 들어 준 것이다.“고마워요, 진우 씨.”조선미가 입꼬리를 씩 올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보호는 핑계고 주요하게 유진우가 몹시 궁금해졌다....황혼 무렵 봉황루.강능에서 유명한 중식당 봉황루
“아... 이 대표님이시구나. 뭐 하실 말씀이라도?”이청아를 본 유진우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차갑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그냥 지나가다가 보이길래 인사나 한 번 하려고 왔어.”이청아는 본래 설명하려고 했던 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유진우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엄마의 말을 그녀는 전혀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일 줄이야. 두 사람은 이미 이혼한 사이였으나 한때 남편이었던 사람이 이렇게나 빨리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영문 모를 불편함이 몰려왔다.“진우 씨, 친구분이세요?”조선미가 넌지시 물었다.여자의 민감한 직감으로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상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적의를 말이다.“전처예요.”유진우가 대답했다.“네?”순간 조선미가 눈썹을 치켜들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조선미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그녀가 친절히 손을 내밀었다. 그 살짝 올라간 아래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네. 안녕하세요.”이청아가 예의를 차리며 대답했다.그녀는 자신감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그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선미가 자신을 압도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이 여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몸매, 얼굴, 분위기 어느 곳 하나 빠지는 곳이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인 절세미인이었다!남자라면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끌리게 될 것이다.“유진우, 나 예전엔 왜 이 친구분을 본 적이 없었지?”이청아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네가 예전에 나한테 관심이 있기라도 했어?”유진우가 담담히 물었다.그 말에 이청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유진우가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받아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유진우, 난 그냥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몇 초간 침묵한 뒤 이청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무슨 얘기?”유진우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여기에선 말하기가 좀 그래. 날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