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벌써 끝났어?”링 밑에 맥없이 축 늘어진 뚱보를 보며 무관 내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그들은 유진우에게 아무런 승산이 없을 거로 생각했었지만 이런 대반전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는 것이다. 이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X발, 저 자식이 이겼어? 대체 무슨 상황이야?”상상도 못 한 상황에 오민수 등 일행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유진우가 유강을 이긴 뚱보를 이겼다니, 그렇다면 유진우가 더 강하다는 뜻이 아닌가?“말... 말도 안 돼! 저 자식이 비겁한 수단을 쓴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쉽게 이길 수 있겠어?”단소홍은 연신 머리를 내저으며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둘째 형님이 왜 닿자마자 픽 쓰러졌지?”전세권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떴다.뚱보의 방어력은 칼과 총알이 꿰뚫을 수 없을 만큼 아주 단단했다. 이 현장에 첫째 형님과 노스 레그스 왕 말고는 그의 방어벽을 뚫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런데 저 자식은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걸까?“만만한 놈은 아니네. 둘째 후배의 허점을 이리 쉽게 알아낸 걸 보면.”실눈을 뜨던 왕현도 경악하긴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유진우가 쉽게 이길 수 있었던 건 둘째 후배의 약점을 찾은 후 공격했기에 이 같은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어쩐지 자신만만하게 올라오더라니, 진작 준비하고 있었구나.”도랑코 영감이 싸늘하게 말했다. 단지 실력만으로 상대를 이기면 나름 강하다고 여겼겠지만 이런 교묘한 수단과 잔꾀로 이기는 건 약자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하하하... 이겼어요, 이겼어요. 형부 정말 대박이에요!”놀라움도 잠시 조아영이 기쁨에 겨워 폴짝 뛰었다.“뭐가 대단하다고 그래? 황 선생님과 유강 씨가 뚱보의 힘을 소모했기에 이 정도지, 안 그러면 쟤 실력
“이 자식이 죽으려고!”대단히 노한 도랑코 영감은 더는 봐주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르더니 연신 발차기를 날리며 유진우를 덮쳤다.이번 공격은 한 신체 부위를 목표로 한 게 아니라 전신 공격이었다. 상대가 도망갈 수 없게, 미처 피할 수도 없는 그런 공격 말이다.“이번에는 어떻게 피하나 두고 보자!”도랑코 영감이 살벌하게 웃었다. 다리 그림자가 점점 많아졌고 범위도 넓어졌다. 하지만 유진우는 꼼짝도 하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었다.“승부는 이미 결정됐어.”왕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자리를 뜨려 했다.유진우의 몸놀림이 놀랍긴 했지만 노스 레그스 왕 같은 이런 엄청난 고수와 비교하면 그래도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몸놀림이 아무리 좋아봤자 상대의 전신 공격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절대적인 실력 앞에 그 어떤 수법도 다 헛수고였다.“쾅!”링 위에서 갑자기 엄청난 굉음이 들려오더니 하늘을 가득 뒤덮었던 다리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도랑코 영감의 한 다리가 유진우의 귓가에 멈췄다. 그런데 그가 봐준 게 아니라 유진우가 그의 종아리를 한 손으로 덥석 잡은 바람에 꼼짝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내가 언제 피한다고 했어?”유진우는 도랑코 영감의 다리를 잡고 섬뜩하게 웃었다.“막았어?”자리를 뜨려던 왕현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노스 레그스 왕이 전력을 다한 킥은 설령 그라도 감히 손으로는 막지 못한다. 그런데 유진우가 이리 쉽게 잡았다고?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노스 레그스 왕이 일부러 힘을 적게 쓴 걸까, 아니면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본 걸까?“말... 말도 안 돼. 내 다리를 잡다니!”도랑코 영감도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금 전 그는 힘을 백 프로 다 발휘했다. 비록 자신의 필살기보다는 약했지만 이 세상의 무사를 상대하기에는 그야말로 충분했다.그런데 이렇게도 강한 킥을 유진우가 잡다니, 그것도 한 손으로!정말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당신 다리가 그리 강해? 내가 보기엔 힘이
유진우는 뒷짐을 진 채 위풍당당하게 링 위에 우뚝 서 있었다.지금 이 순간 그는 더는 자신의 발톱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강한 눈빛이 닿을 때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단 한 번의 공격으로 노스 레그스 왕을 무너뜨린 실력자라면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 했다.“조씨 가문에 저런 숨겨진 고수가 있는 줄은 또 몰랐네.”실눈을 뜨고 쳐다보는 왕현의 얼굴이 더욱 진지해졌다. 조금 전 유진우가 보여준 실력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유진우를 존경하게 되었다. 설령 왕현이라도 맨손으로는 노스 레그스 왕을 쉽게 제압하진 못했을 것이다.“어쩌면 단 일격에 무너지냐.”유진우는 옷소매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덤덤하게 말했다.“다음.”그의 말에 현무문의 제자들은 서로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했다. 노스 레그스 왕마저 이겨버린 실력자를 누가 상대할 수 있겠는가?“큰형님, 인제 어떡하죠? 저 자식 완전히 미쳐 날뛰는데요?”전세권이 내키지 않는 듯 이를 꽉 깨물었다.“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서야겠구나.”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왕현의 눈빛이 살아 있었다.스승의 명을 받들고 온 그는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을 생각이었지,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레벨의 격투는 그저 애들 싸움일 뿐 아무런 도전성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그런데 유진우가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 놀라움은 물론이고 저도 모르게 흥분하기도 했다.그는 명성과 이익이 아니라 단지 검도의 최고 수준을 쫓기 위해 매번 강자를 만날 때마다 전의를 불태운 것이었다.“큰형님, 저 자식 절대 만만치 않아요. 정말 이길 수 있겠어요?”전세권이 떠보듯 물었다.“맨손으로는 저 사람의 상대가 아니지만 검을 쓴다면 자신 있어!”왕현이 덤덤하게 말했다.“알겠어요. 큰형님, 절대 봐줘서는 안 돼요. 저 자식은 화근이라 빨리 없애버리는 게 나아요!”전세권이 섬뜩하게 웃었다.왕현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검도 천재이다. 아직 30살도 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언
“뭐지?”왕현도 움찔하긴 마찬가지였다. 유진우가 손가락으로 검을 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유진우의 실력과 자신감은 왕현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물론 왕현도 겁먹지 않았고 오히려 전의가 불타올랐다. 상대가 강할수록 그는 더 흥분했다.“이리 와!”왕현이 한 손을 흔들자 장검은 마치 한 마리의 유연한 뱀처럼 유진우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응?”유진우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비록 같은 레벨의 실력으로 상대해주고는 있지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걸 보니 왕현도 만만치 않은 사람인 건 확실했다.“조심해요! 이제부터 환영 검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게요!”왕현은 한 마디 충고한 후 바로 다시 검을 빼 들었다. 검 하나가 순식간에 수백 개, 수천 개의 검으로 변했다. 반경 3m 내에 온통 검으로 뒤덮였고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환영 검법이라니! 왕현이 이젠 제대로 싸우는구나!”“환영 검법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던데. 저 자식 무조건 져!”“죽여요, 죽여! 저 자식 죽여버려요!”링 아래가 떠들썩해졌다. 누군가는 놀라고, 누군가는 걱정이 가득했고 또 누군가는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뭇시선이 집중된 그때 유진우는 날아오는 검에 완전히 뒤덮였다. 그런데 두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링 위에 반짝이는 검의 환영만 가득했다.사람들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설령 허점을 찾을 수 없더라도 그들은 재미난 구경을 놓칠세라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오늘 저녁 유진우는 자신의 위세를 제대로 뽐냈다.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전 오너 측의 고수들과 맞서고 있었다.언더 랭킹 10위 안에 든 고수를 연속 두 명 상대했으니 마지막에 패배한다고 해도 영광스러운 패배일 것이다.3분 후.“쨍그랑...”금속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뒤덮었던 검의 환영이 갑자기 사라졌고 누군가가 큰 타격을 받은 듯 뒤로 튕겨 나가다가 링 끝에 부딪히고 나서야 겨우
방금 그가 환영 검법을 선보였을 때 유진우는 아주 여유만만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가 최선을 다해서 검법을 썼더라도 상대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유진우가 단 한 손으로 제압했다는 것이다.이 정도로도 실력 차이를 보아내지 못했다면 멍청이랑 뭐가 다르겠는가?“환영 검법이 최고봉에 이른 건 맞아요. 하지만 아쉽게도 세 곳에 허점이 있었죠.”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 상대가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패배를 인정한 걸 봐서 체면은 깎지 않았다. 아니면 진작 링 아래로 내던졌을 것이다.“어느 세 곳이죠?”왕현이 눈살을 찌푸렸다.“세 번째, 아홉 번째, 스물여섯 번째.”유진우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충고했다.“이 세 곳의 허점이 아주 깊숙이 숨겨져 있어 상대가 일반 무사일 경우 허점을 알아내지 못하겠지만 진짜 고수의 눈에는 보인단 말이죠. 게다가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어요.”“말도 안 돼요. 제가 이 검법을 수련하기 위해 숱한 단련을 거쳤어요. 치명적인 허점이 있을 리가 없어요.”왕현은 그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숱한 단련을 거친 건 사실이겠지만 허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만약 제 예측이 맞는다면 당신한테 이 검법을 가르쳐준 자가 일부러 그 세 기술을 숨기고 가르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세 기술이 아주 위험해요. 나쁜 마음을 품은 게 아니라면 절대 빼먹고 가르치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당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우의 목소리는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낮았다. 왕현은 그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헛소리하지 말아요! 스승님께서 저를 친아들처럼 아끼시는데 저를 해치려 했다는 게 말이 돼요?”“제가 드릴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예요. 믿든 말든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요.”유진우는 어깨를 들먹이며 더는 얘기하지 않았다. 왕현이 그래도 뛰어난 인재라 두어 마디 귀띔해 주었다. 그가 믿을 건지 안 믿을 건지, 살지 죽을지는 유진우에게 있어서 별로 중요하지 않
격투가 끝난 후 유진우는 조선미 일행과 함께 밖에서 야식을 먹었다.의원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한밤중이 다 되었지만 의원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가 들어가자마자 아름답고 익숙한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청아였다.이청아는 임윤아와 함께 키득키득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예전에는 차갑기만 하던 그녀가 오늘따라 더욱 온화하고 다정해 보였다.“유 선생님, 오셨어요?”유진우를 보자마자 임윤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그럼 두 분이 얘기 나누세요. 전 가서 야식 좀 만들어올게요.”“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 이미 밖에서 먹었어.”유진우가 다정하게 웃으며 시선을 이청아에게 돌렸다.“여긴 어쩐 일로 왔어?”“당연히 고맙다는 인사 하려고 왔지.”이청아는 웬일로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어제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어. 여호준이 그런 위선자일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어.”“고맙긴.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어도 구했을 거야.”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왜?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이청아의 말투가 한결 다정해졌다.“우리 엄마가 흥분한 바람에 당신을 오해할 뻔했어.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그녀의 사과는 유진우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절대 고개 숙이는 법이 없는 이청아가 오늘 사과를 하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사과는 너무 늦었다.“괜찮아, 오해한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뭐.”유진우는 어깨를 들먹이며 개의치 않아 했다.“진우 씨가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하고 고생도 많이 했다는 거 알아.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할게.”이청아가 진지하게 말했다.“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유진우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이청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용기 내어 말했다.“나랑 집에 가자, 응?”짧디짧은 한마디였지만 유진우는 제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고 표정도 복잡해졌다.만약 이 얘기를 조금 더 빨리했더라면 유진우는 아마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렇게 할 일이 없나?’유진우는 잡생각을 버리려고 머리를 냅다 흔들었다. 그러고는 씻은 후 평소처럼 대문을 활짝 열었다.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는 동시에 온몸이 피투성이인 누군가가 갑자기 의원 안으로 픽 쓰러졌다. 흰옷은 이미 피범벅이 되었고 등에 끊어진 검이 꽂혀있었는데 이미 정신을 잃은 지 오래된 것 같았다.유진우가 그의 얼굴을 확인해 보니 다름 아닌 왕현이었다!“내가 어젯밤에 다치게 한 것 같지는 않은데?”유진우가 턱을 어루만졌다. 비록 언더 랭킹 6위가 엄청난 고수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작은 강능에서는 실력이 손꼽히는 존재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 지경으로 얻어맞았을까?“당신 그래도 운이 좋아.”유진우는 가볍게 한마디 툭 던지고는 왕현을 부축하여 의원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의원 문 앞에 쓰러져있는데 어찌 못 본 척할 수가 있겠는가.외상은 많았지만 그리 심각하진 않아 간단히 약을 바르고 싸매면 되었다. 하지만 경맥과 단전이 심하게 다친 걸 보면 왕현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 작정인 것 같았다.다행히 왕현의 몸이 단단하여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다. 그의 의술로 보름 정도 치료받으면 완치가 가능했다.유진우는 먼저 왕현에게 침을 놓은 후 약을 먹였다. 꽤 긴 시간이 흘러서야 정신을 잃었던 왕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깼어요? 좀 어때요?”유진우가 물었다.“당신이 절 살린 거예요?”왕현이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어젯밤 크게 다치고 나서 흐릿한 정신으로 길을 걷다가 길가에 있는 의원을 발견했다. 그런데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제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여기 다른 사람 있어요?”유진우는 어이가 없었다.“고마워요.”왕현이 몸을 일으켜 인사하려 했다.“됐어요, 심하게 다쳤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요.”유진우는 재빨리 그를 말렸다.‘목숨이 위태로운 와중에 인사는 무슨.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당신 실력도 꽤 괜찮은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맞은 거예요?”유진우의 질문에 왕현은 이를 꽉
두 눈이 시뻘게진 왕현을 보고 있자니 유진우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자기 스승에게 이용당한 것도 모자라 약혼녀까지 빼앗겼다니, 이보다 더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다른 건 몰라도 약혼녀를 빼앗아간 복수는 제대로 해야 했다. 인간이라면 절대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겉으로는 번지르르한 현무문의 오너가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일단 치료부터 받아요. 다 나아야 잃어버린 걸 다시 찾아오죠.”유진우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제 몸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왕현이 절망에 빠진 얼굴로 씁쓸하게 말했다.“단전과 경맥이 손상되면서 내공을 완전히 잃어서 복수할 힘조차 없어요. 지금의 전 그저 쓸모없는 놈에 불과해요.”왕현이 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피부를 파고들어 시뻘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그라고 어찌 복수할 생각이 없고 받은 만큼 그대로 돌려줄 생각이 없겠는가? 하지만 이젠 그럴 기회가 없다.“누가 당신이 쓸모없대요? 당신이 다친 곳, 내가 치료해줄 수 있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뭐... 뭐라고요?”화들짝 놀란 왕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제가 당신의 단전을 치료해줄 수 있다고요.”유진우가 다시 한번 말했다.“확실해요?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죠?”왕현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놀라움과 동시에 기대 가득한 눈빛이었다.“당신의 단전이 손상되긴 했지만 완전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라서 치료 가능해요. 그리고 경맥 같은 건 더 쉬워요. 제가 알려주는 방법대로 잘 치료한다면 열흘 정도 되면 다시 최고봉이었던 때로 돌아갈 겁니다.”유진우가 자신만만하게 장담했다. 그의 말에 크게 기뻐한 왕현은 그대로 털썩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유진우에게 냅다 절을 세 번 했다.“절 치료해 주신다면 앞으로 저의 목숨은 진우 씨 거예요! 저한테 칼산을 오르고 불바다에 뛰어들라고 해도 절대 토 달지 않고 따르겠습니다!”왕현이 진지하게 말했다.검밖에 모르는 무사의 세상에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