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너 미쳤어!”사실이 들키자, 단소홍은 얼굴이 확 변하며 화를 냈다.“유진우! 난 문왕부 사람인데 그런데도 나한테 무례하게 굴어? 살기 싫어진 모양이구나?”“됐어. 우리가 안 지가 하루 이틀이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만 연기해”유진우는 태연하게 말했다.“헛소리!”단소홍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넌 정말 사람을 우습게 보는구나. 이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야. 지금 내 위치에 너 같은 건 평생 닿지도 못할 거야! 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잘난 척도 적당히 해.”유진우는 비웃으며 말했다.“높은 자리에 기어올랐다고 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내가 제멋대로 행동하면 어때서? 네가 문왕부랑 맞서기라도 하려고?”단소홍은 다시 금패를 꺼내 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유진우! 이게 뭔지 똑바로 봐!”“문왕부의 영패?”유진우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거, 네가 훔친 거 아니야?”이 말에 단소홍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실 문왕부의 이 금패는 그녀가 이청아 방에서 몰래 훔쳐 온 것이었다. 원래는 이걸로 위세 좀 부리려고 했는데 뜬금없이 유진우 같은 얼간이를 만나는 바람에 진짜 난처해지고 말았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인정할 수 없어 꿋꿋하게 소리쳤다.“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 영패는 내 거야!”“그래? 그럼, 어디 한번 물어보자. 넌 문 어르신과 어떤 관계야? 그분이 왜 너에게 영패를 준 거지?”유진우가 계속해서 물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어르신이 뭘 하든 너 같은 병신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잖아?”단소홍은 속으로는 불안해하며 강한 척 소리쳤다.“저기, 말을 조심해. 다시 아저씨한테 함부로 말하다가는 주둥이 확 찢어버릴라.”황은아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눈빛 속에 감춰진 살기는 전혀 숨길 수 없었다.단소홍은 그녀의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지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하지
“누가 내 구역에서 감히 소동을 피우는 거죠?”은도는 냉랭한 표정으로 들어섰고, 그녀의 카리스마에 살벌하던 경호원들마저 저도 모르게 길을 비켰다.“당신은 누구길래 내 일에 간섭하죠?”단소홍은 팔짱을 끼고 거만한 자세로 물었다.눈앞의 여인이 자신보다 더 아름답고 품격이 높은 것을 깨닫자, 단소홍은 다소 질투를 느꼈다.“전 은 씨 제약의 이사장입니다. 여기 모든 일은 제 관할이에요.”은도가 담담하게 답했다.“이사장이군요? 그럼 잘됐네요.”단소홍은 유진우와 황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지금 당장 이 사람들을 쫓아내고, 거래를 못 하게 해주세요!”“쫓아내라고요?”은도는 유진우를 한 번 보고 다시 말했다.“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유 선생님은 제 사업 파트너이자 은 씨 제약의 주주거든요.”“뭐? 이 녀석이 은 씨 제약의 주주라고?!”단소홍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최근 옥로고가 유명해지면서 많은 세력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도 이청아의 지시를 받고 은 씨 제약과 거래를 하러 온 것이었다.양측이 장기적으로 협력하면 분명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유진우가 먼저 차지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어떻게? 지금 나를 쫓아내려고?”유진우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흥! 주주가 뭐 대단해서 문왕부보다 더 대단하겠어?”단소홍은 다시 영패를 꺼내 은도에게 보여줬다.“잘 보세요! 난 문왕부의 영패를 가지고 있어요. 명령하건대 당장 유진우와의 협력 관계를 끝내세요!”“끝낼 수 없어요. 옥로고는 원래 유 선생님이 개발한 제품이거든요.”은도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어?”단소홍이 놀라며 멈칫했다.‘옥로고가 유진우가 개발한 거라고? 그럴 리가 있나?’“단소홍, 더 이상 헛된 노력 하지 말고 그 영패를 집어넣고 바로 나가. 우리는 너와 거래하지 않아.”유진우는 바로 축객령을 내렸다.“감히 나를 쫓아내? 난 문왕부의 사람이라고! 너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인지 알아?!”단소홍이 소리쳤다.몇 번이나 수모를
찰싹!맑진 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방금까지 소리 지르던 단소홍은 그 자리에서 쓰러진 채 혼란스러워하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엥?”주변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넋 나간 듯 쳐다보았고, 누군가는 믿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유진우가 이렇게 대담하게 문왕부의 사람을 때리다니.가장 중요한 것은 단소홍은 문왕부의 금령을 가지고 있어 그 지위도 높다는 것이었다.그러니 그녀를 때린 것은 문 어르신의 얼굴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였다.이 녀석은 미친 거 아니야?!“너... 너 정말 나를 때렸어?”단소홍은 얼굴을 감싸며 충격과 놀라움, 그리고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문왕부의 세력에 합류한 후, 그녀는 순식간에 승승장구했고, 모든 사람에게 추앙받는 대상이 되었다.평소에는 누구든 그녀를 따라야 했고, 그녀를 떠받들어야 했고, 심지어 한 마디의 거친 말도 감히 할 수 없었다.하지만 눈앞의 이 녀석은, 대중 앞에서 그녀의 뺨을 때렸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이건 법 무서운 줄도 모르는 간땡이가 부은 놈이다!“널 때린 게 뭐가 문제야? 네가 무리를 지어 소란을 피우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니까 때린 거잖아. 그러니 맞을 만했지.”유진우가 냉정하게 말했다.“유진우! 난 문왕부 사람이라고!”단소홍이 소리쳤다.찰싹!유진우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또 한 대 때렸다. 단소홍의 코에서 바로 피가 쏟아졌다.“문왕부에 너 같은 사람이 있다니, 정말 가문의 불행이야!”“개자식! 감히 나를 때려? 너 죽었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단소홍은 노발대발하며 휴대폰을 꺼내 사람들을 부를 준비를 했다.“단소홍, 내가 만약 너라면 전화하지 않을 거야.”유진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뭐야? 이제야 두려우냐? 왜 진작 그러지 않았어?”단소홍은 얼굴에 흉악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유진우! 네가 땅에 무릎 꿇고 사정해도 나는 널 쉽게 용서하지 않을 거야! 죽을 준비나 해!”“두렵다고? 뭐가? 네가 권력을 빌려서
문제는 아까 그렇게 큰소리를 쳤는데, 이 시점에서 물러서는 건 스스로 얼굴에 먹칠하는 격이었다. 그럼, 앞으로 사회에서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그녀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단소홍 씨,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나요? 이런 소소한 일은 저희한테 맡기면 됩니다.”목소리와 함께, 화려한 옷을 입은 두 명의 젊은 여자가 나란히 들어왔다.왼쪽에 있는 여자는 붉은 옷을 입고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안세리였다.오른쪽에 있는 여자는 하얀 옷을 입고 차가운 표정으로, 역시 도도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바로 전에 몇 번 본 적 있는 봉연주였다.남성 서울에서 그들은 처음에는 유치원에서 충돌했고, 후에 남궁 장군 저택의 마장에서 또 만나서 분위기가 상당히 불편했다.그런데 며칠이 안 돼 다시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봉연주 씨?”단소홍은 그들을 보자마자 얼굴에 기쁨이 스쳤다.자신의 지원군이 온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단소홍 씨, 소개해 드릴게요. 제 옆에 있는 이분은 안씨 가문의 천금이자 제 절친 안세리예요.”봉연주는 손짓하며 안세리를 가리켰다.“안세리 씨군요. 반가워요.”단소홍은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그녀는 안세리와 같은 부잣집 딸들만이 자기와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단소홍 씨, 반가워요.”안세리도 미소 지으며 예의 바르게 대답한 뒤 덧붙였다.“단소홍 씨, 어려운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저희가 도와드릴까요?”“무례한 놈을 만나서 사람을 부르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두 분이 와주셨네요.”단소홍은 태연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둘이 있으면 그도 감히 더 설치진 못할 거예요!”봉연주는 시선을 돌려 냉랭하게 유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지? 그때 서울은 네 구역이었으니 내가 복수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 내 구역이니까 우리 본격적으로 계산을 해야 하지 않겠어?”“어? 어떻게 할 건데?”유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
봉연주가 명령을 내리자마자, 갑자기 문밖에서 두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한 무리는 봉씨 가문의 호위들이었고, 다른 한 무리는 안씨 가문의 호위들이었다.이들은 모두 정예로 뽑힌 인물들이었으며, 그 수는 단소홍이 데리고 온 경호원들보다 훨씬 많았다.그들은 등장하자마자, 은 씨 제약의 보안 인원들을 순식간에 포위했다.상황은 다시 한번 역전되었다.이 광경을 본 구경꾼들은 한발 물러나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불똥이 튈까 두려웠던 것이다.두 명문가와 왕족의 사람들이 모인 이런 거대한 세력을 감히 건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호위병을 이렇게 많이 데리고 온 걸 보니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네.”유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포위된 상황에서도 그는 전혀 두려움 없이 태연했다.“유진우, 우리가 예전에 친했던 걸 봐서 얘기하는 건데, 네가 여기서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충성하겠다고 하면, 내가 연주한테 사정해 볼게. 널 한 번만 봐주라고.”이때 안세리가 입을 열었다.유진우가 자존심을 세울수록, 그녀는 그를 짓밟아 모욕하고 싶었다.한낱 사회의 밑바닥 인생이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안세리, 그만 좀 떠들어. 듣기만 해도 역겨워.”유진우는 가차없이 까밝혔다.“내 생각이 맞는다면, 오늘 이 상황도 네가 다 계획한 거지? 뒤에서 이간질하고 앞에서는 착한 척. 항상 이렇게 연극을 하느라 지치지도 않냐?”“유진우! 난 지금 기회를 주고 있는데, 그걸 몰라보면 후회할 거야!”안세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됐어, 네 그 가식적인 얼굴 좀 치워. 나에겐 필요 없으니까.”유진우는 차갑게 말했다.“그리고 너희 안씨 가문이 나한테 진 빚, 사흘 안에 갚아. 그렇지 않으면 크게 후회하게 될 거야!”“진짜 죽고 싶은 모양이네! 감히 날 무시해!”안세리의 얼굴이 싸늘해지더니 주위를 둘러봤다.“다들 뭐해? 연주가 말한 거 못 들었어? 당장 뺨을 쳐!”“알겠습니다!”앞줄에 있던 호위들이 사납게 유진우에게 덮쳐들었다.하지만 몇 사람이 손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이 독은 보통 독이 아니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안세리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홀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그들 호위만 쓰러지고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걸까? 설마 이 독이 적과 아군을 가려낸다는 말인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아닌가?’“유진우! 네가 한 짓이지?!”단소홍이 금방 반응했다.“헛소리 마, 난 아무 짓도 안 했어.”유진우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직도 변명해? 네가 몰래 손 쓴 게 분명하잖아, 이 악독한 놈!”단소홍이 호통쳤다.“유진우! 해독제 당장 내놔! 그렇지 않으면, 사람 죽으면 너도 같이 골로 갈 줄 알아!”봉연주가 매섭게 말했다.오늘 데려온 사람들은 모두 봉씨 가문의 고급 호위들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실력과 충성을 갖춘 정예들로, 봉씨 가문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키운 자들이었다.한두 명이 죽는 건 그래도 괜찮겠지만, 만약 전부가 여기서 이유도 없이 죽어버린다면, 돌아가서 분명히 추궁을 당할 것이고, 심지어 가법으로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내가 말했잖아, 나랑 상관없다고.”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설령 내가 독을 썼다 한들, 왜 내가 해독제를 내놔야 해? 잊지 마, 소란 피운 건 너희였어.”“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너 지금 당장 해독제를 내놓지 않으면, 넌 봉씨 가문 전체의 적이 될 거야!”“상관없어. 이미 관계가 틀어진 마당에, 끝까지 가보자고.”유진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너--!”봉연주는 말문이 막혔다.유진우가 이렇게 끈질기고, 봉씨 가문의 위협을 전혀 개의치 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건 그야말로 완전히 체념한 듯한 태도였다.“유진우, 해독제를 내놓기만 하면,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갈게.”안세리가 나서서 말했다.“너희는 넘어간다지만, 난 안 넘어가.”유진우가 주도권을 쥐고 말했다.“너희 셋, 지금 당장 나한테 사과하고,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해.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옆집 동생처럼 밝게 웃고 있는 황은아를 보며 안세리 일행은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렀다.그녀는 분명 천진난만한 모습을 갖고 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음침하고 독살스러웠기 때문이다.그녀들에게 독을 먹이고는 조금만 참으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미친 거지.“너 누구야? 감히 우리한테 독을 쓰다니, 진짜 간이 크구나!”봉연주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너희가 어떻게 할 거냐는 거지.”황은아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너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어. 내 독에 죽든가, 아니면 아저씨에게 사과하고 손해를 배상하든가.”“우리더러 사과하라고? 어림없어!”봉연주가 단호하게 말했다.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의 고통이 급격히 심해졌고, 그녀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네가 누구든 상관없어, 당장 해독제를 내놔. 그렇지 않으면 넌 큰일을 당하게 될 거야!”안세리는 여전히 협박을 시도했다.“큰일?”황은아는 미소 지으며 쪼그려 앉아 안세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너 안 씨 맞지? 만약에... 내가 네 가족 모두를 독살한다면, 넌 나를 어떻게 큰일 나게 할 건데?”“네가 감히!”안세리의 동공이 축소되며 놀람과 분노가 뒤섞였다.‘눈앞의 이 여자는 미친 게 아닐까? 어떻게 안씨 가문 전체를 위협할 수 있지?’더 무서운 건, 그녀는 상대가 진짜로 그렇게 할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는 것이다.“내가 감히 할지 안 할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지.”황은아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네가 죽으면, 네 가족들도 전부 따라가서 너와 함께 묻힐 거야. 그럼, 너도 외롭지 않겠지? 어때, 나 너무 친절하지?”“너... 정말 미쳤구나!”안세리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차가운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너희에게 남은 시간은 5분이야.”황은아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이며 미소 지었다.“5분 후면 독이 퍼져 죽을 거야. 그때면 후회해 봤자 소용없어.”“미친년! 난 문왕부의 사람이야! 날 죽인다
“해독제... 해독제 좀 줘!”“잘못했어. 사과할게. 빨리 해독제 줘!”죽음의 고통에 시달리던 봉연주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항복했다.황은아는 조용히 쪼그려 앉아 턱을 괸 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머리가 너무 아파! 나도 더는 못 버티겠어! 사과할게, 배상할게. 빨리 해독해 줘!”단소홍도 결국 무너졌다.목숨에 비하면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겁을 먹은 게 어디 한두 번인가.황은아는 여전히 안세리를 보면서, 움직임이 없었다.“세리야! 얼른... 얼른 사과해!”“이 여자는 진짜 미쳤어! 너 사과 안 하면 우리 다 여기서 죽게 돼!”봉연주는 조바심에 울부짖었다.“계속 가만히 있으면 네 친구들 다 죽어.”황은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세리! 뭐 해? 빨리 사과하라고! 너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우리까지 끌어들이지 말고!”봉연주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뭘 잘난 척하는 거야? 어차피 다 같은 처지인데,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좋아! 사과할게! 빨리 해독해 줘!”안세리가 이를 악물며 외쳤다.“이제야 말 잘 듣네.”황은아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옅은 청색 가루가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천천히 내려와, 비처럼 모든 사람을 덮었다.가루가 코와 입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은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에서 점차 벗어났지만, 여전히 몸에 힘이 빠져 기운을 모으기 어려웠다.“자, 이제 너희들 차례야.”황은아는 손을 털며 미소 지은 채 옆에 서 있었다.“미안해, 우리가 잘못했어. 여기서 소란 피워서 죄송하고, 모든 손해를 배상할게.”안세리는 쏘아보듯 유진우를 노려보며 사과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원한이 서려 있었다.하층민이 감히 그녀에게 대중 앞에서 사과하게 하다니, 이 굴욕은 반드시 백배로 갚을 것이다.봉연주와 단소홍은 몇 번 숨을 고른 후, 마지못해 사과했다.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돌아가면 다시 복수할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니까.“됐어,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넘어가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