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우는 임윤아에게 5성급 호텔에 머무르라고 강요하지 않고 두 사람과 함께 외곽에 있는 별장으로 가서 별장을 사버렸다.2층짜리 별장이었는데 인테리어도 깔끔했고 정원도 딸려있었다. 돈만 내면 바로 살 수 있었다.아직 연경에 더 있어야 했기에 집을 맡거나 호텔에서 지내는 것도 불편할 것 같아 차라리 별장을 샀다. 어차피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까.유진우가 산 별장에 들어오자 임윤아도 마음이 한결 놓인 듯한 모습이었다. 연경의 집값이 지금 오르는 추세라고 하니 투자 겸 집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집에서 밥도 할 수 있어서 더 절약할 수도 있었다. 이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았다.모든 매매 절차를 마친 후 유진우는 두 사람과 함께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갔고 주변 환경도 둘러보았다.할 일을 다 마쳤을 때 벌써 하늘이 어둑해진 뒤였다. 유진우와 왕현 두 사람은 뱃가죽이 다 등에 붙을 지경이었다.다행히 임윤아가 미리 장을 봐서 두 사람에게 풍성한 저녁을 차려주었다. 국 하나에 반찬 다섯 가지였는데 채소반찬과 고기반찬 모두 있었고 맛과 향도 아주 일품이었다.임윤아의 요리 솜씨가 대단한 건 정말 인정이었다. 간단한 식자재만으로도 아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냈다. 적어도 요리 솜씨만큼은 유진우는 그녀를 따라가지 못했다.식사를 마친 후 임윤아는 두말없이 설거지했고 유진우와 왕현은 베란다에서 풍경을 감상하면서 얘기를 나누었다.따르릉...그때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렸다. 유진우가 전화를 받자마자 익숙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바로 유성신이었다.“진우 씨, 지금 당장 골든 클럽으로 와요. 할 얘기 있어요.”“할 얘기 있으면 지금 전화로 해요. 나 바빠서 갔다 왔다 할 시간이 없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이 일 엄청 중요한 일이에요. 안 오면 후회할 거라고요!”유성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얘기 안 하면 이만 끊을게요.”유진우는 그녀와 쓸데없는 얘기를 섞고 싶지 않았다. 예전부터 참 호감이 가지 않는 그런 여자였다.“잠깐
룸 안에 각양각색의 테이블이 열몇 개 놓여있었고 VIP 손님들이 띄엄띄엄 앉아있었다.그리고 매 손님 옆에 미녀 종업원이 따르고 있었는데 도박 이외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그야말로 아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VIP 룸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전부 신분이 귀하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라 한 판을 놀아도 돈이 수억 원이 나들었다. 더 통쾌한 손님이 오면 수십억, 수백억씩 들이붓기도 했다.일반인에게는 그야말로 발도 들일 수 없는 그런 세상이었다.VIP 룸으로 들어가자마자 유진우는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있는 낯익은 두 사람을 발견했는데 바로 유강청과 유성신이었다.유성신의 신분이라면 VIP 룸에 들어올 수 없었다. 아무래도 유진우를 만나려는 사람이 유강청인 듯했다.“어머, 진우 씨 왔어요? 얼른 와요. 와서 두어 판 같이 놀아요.”유강청이 적극적으로 일어나 유진우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환하게 웃고 있긴 했지만 눈빛은 싸늘했다.“도련님, 날 부른 일로 부른 거죠?”유진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급할 거 없어요. 두어 게임 하다가 이따가 얘기해요.”유강청은 웃으면서 옆에 있던 종업원에게 손가락을 튕겼다.“이분이 쓸 거 칩 10억 원어치 가져와. 내 이름에 달고.”“알겠습니다.”잠시 후 미녀 종업원이 크리스털 칩을 몇십 개 가져왔다.“진우 씨, 오늘 마음껏 놀아요. 이기면 진우 씨가 다 가져가고 지면 내가 낼게요.”유강청이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난 도박을 싫어하고 빙빙 돌리는 것도 싫어합니다. 할 얘기 있으면 바로 하세요.”유진우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이곳은 도박꾼들의 천국이었지만 유진우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진우 씨는 역시 시원시원한 사람이라니까.”유강청이 멋쩍게 웃었다.“사실 진우 씨한테 엄청난 분을 소개해주려고 불렀어요. 그럼 앞으로 백도 생기니까 남쪽 구역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다녀도 돼요.”“그래요? 그분이 누군데요?”유진우가 물었다.“골든 클럽의 사장 하희관입니다.”유강청이 자랑스럽게 말했다.“미안
“그래?”하희관의 시선이 유강청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움직였다가 결국 유진우에게 머물렀다. 그러고는 아래위로 꼼꼼히 살피면서 꿰뚫어 보듯 했다.“역시 젊고 유능한 인재군.”하희관이 웃으면서 말했다.“가만히 서 있지만 말고 얼른 앉아. 할 얘기 있어.”그러고는 소파에 털썩 앉더니 종업원이 건네는 와인 한잔을 받고 단숨에 들이켰다. 정말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다.“진우 씨, 이분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하 사장님이십니다. 이따가 잘해요. 기회 놓치지 말고.”유강청이 웃을 듯 말 듯하며 말했다.“그러니까 날 불러낸 목적이 이 사람 때문이라는 거예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젊은이, 내가 청강이더러 젊은이를 데려오라고 한 건 거래를 하고 싶어서야.”하희관이 시가를 한 모금 빨고 연기를 내뿜었다. 뿌연 연기가 유진우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가 거의 닿을 무렵 갑자기 사라졌다.“거래요?”유진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혹시 옥로고 레시피 때문에 그러는 겁니까?”“머리가 좋군. 난 머리가 좋은 사람과 얘기하길 좋아해.”하희관이 손가락을 튕기면서 말했다.“내가 원하는 거 알았으니까 가격 불러. 얼마 필요해? 부르는 대로 다 줄게.”“사장님, 옥로고 레시피를 사장님한테 팔 수 없어요.”유진우가 단칼에 거절했다.“왜? 내가 돈이 없을 것 같아?”하희관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진우 씨, 남쪽 구역 경제의 3분의 1이 하 사장님의 손에 있어요. 사장님은 진우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부자라고요.”유강청이 타이밍 맞게 나서서 거들었다.“젊은이, 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 많지 않아. 나랑 조건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적다고. 이건 젊은이가 벼락부자가 될 기회니까 잘 잡아.”하희관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눈빛에는 경고의 뜻이 담겨있었다.“돈 문제가 아니라 옥로고의 레시피를 이미 다른 사람한테 팔았어요.”유진우가 말했다.“뭐라고요? 팔았다고요?”유강청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순식간에 흥분했다.“누구한테 팔았어요? 왜 진작
그 소리에 하희관의 웃음이 점점 굳어졌고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젊은이, 난 남이 날 거절하는 거 제일 싫어해. 게다가 여러 번이나 거절했어.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실망하게 하지 마.”이건 협박이 담긴 말투였다.“진우 씨,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사람이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하 사장님께서 진우 씨를 중히 여기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죠. 계속 이렇게 고집을 부렸다간 화를 입게 될지도 몰라요.”유강청이 경고했다.“됐어. 쓸데없는 말 그만해.”하희관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옥로고 레시피를 오늘 꼭 내놓아야 할 거야. 고분고분 내놓으면 아무 일도 없고 돈도 챙길 수 있어.”“만약 내놓지 않겠다면요?”유진우가 되물었다.“내놓지 않겠다고? 흥.”하희관이 싸늘하게 웃더니 갑자기 손뼉을 쳤다.짝짝!손뼉 소리와 함께 VIP 룸 문이 갑자기 열렸다.곧이어 양복 차림에 우람한 체격의 싸움꾼들이 기세등등하게 들어왔다. 족히 사오십 명은 되었고 하나같이 흉악한 얼굴이었다.“인마, 여긴 내 구역이야. 내 한마디면 네 생사를 쥐고 흔들 수 있다고.”하희관이 천천히 일어서더니 내려다보면서 말했다.“오늘 레시피를 내놓지 않으면 이 방을 못 나가!”“사장님, 난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아요. 근데 사장님이 계속 이렇게 몰아붙인다면 골든 클럽을 부숴버리는 수가 있어요.”유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그의 말에 하희관은 잠깐 멈칫하다가 마치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듯 크게 웃었다.“X발, 저 자식 미친 거 아니야? 감히 하 사장님께 저런 식으로 말해?”“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룸에 있던 손님들은 도박까지 포기하고 상황을 구경했다.“흥! 제 주제도 모르는 것.”유강청은 차갑게 웃으면서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했고 유성신은 팔짱을 낀 채 고소해하며 지켜보았다.“인마, 너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지 알기나 알아?”하희관의 표정이 갑자기 차가워졌다.“널 이 자리에서 바로 총으로 쏴죽일 수도 있다고. 못 믿겠어?”그러더니 허리춤에서
“하 사장님, 다들 즐기러 골든 클럽에 왔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은도는 몸을 한들거리며 서서히 다가오더니 애교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등장하자마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비주얼과 몸매가 뛰어난 데다가 특유의 요염함까지 더해져 정말 여우가 사람이 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은도 씨, 난 아직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 게임 하고 싶으면 다른 테이블 만들어줄게.”하희관의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들었지만 총은 여전히 내려놓지 않았다.“사장님,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이분이 제 친구거든요. 그러니까 절 봐서라도 이번은 넘어가 주세요.”은도가 웃으면서 다가오더니 유진우의 팔짱을 자연스럽게 꼈다. 누가 봐도 친밀하고 다정하기 그지없었다.유진우는 이상했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는 건데 체면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친구?”하희관은 좌우를 번갈아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은도 씨 친구가 엄청 건방을 떨던데? 날 여러 번 거절한 것도 모자라 우리 골든 클럽까지 부숴버리겠다고 했어. 내 체면 따위는 아예 신경도 안 쓰더라고.”“네? 그래요?”은도는 고개를 들고 놀란 두 눈으로 유진우를 쳐다보았다.‘이 자식 간덩이가 제대로 부었구나. 감히 하 사장님한테 덤벼?’“사장님, 제 친구가 아직 젊어서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거니까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부디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은도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없던 일로 할 수는 있어. 하지만 레시피를 내놓아야 할 거야. 내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지도 몰라.”하희관이 싸늘하게 말했다.“레시피요?”은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 그냥 말다툼이 아니라 돈이나 이익이 오간 것 같은데.’“난 여전히 그 한마디예요. 레시피를 사장님한테 팔 수 없어요.”유진우는 단칼에 거절했다. 하희관이 총을 꺼내든 순간부터 협상의 여지는 없었다.“은도 씨, 들었어? 이 사람 아직도 주제를 모르고 있다니까!”하희관의
은도는 요염하게 웃으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은도 씨, 나랑 놀고 싶으면 나중에 천천히 놀아줄 수 있어.”하희관이 은도의 손목을 덥석 잡고 흉악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그 전에 이 자식부터 처리해야 하니까 옆에 얌전히 있어. 화나게 하지 말고. 안 그러면 결과가 아주 심각할 거야.”“아파요, 사장님.”은도가 눈살을 찌푸리고 힘껏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네 이년 날 꼬시려던 거 아니었어? 오늘 저녁에 기회를 줄게. 이 자식을 해결한 다음에 화끈하게 즐기게 해줄게.”하희관은 음흉하게 웃으면서 은도를 잡아당겨 품에 끌어안더니 도발 섞인 눈빛으로 유진우를 쳐다보았다.“인마! 너 이년이랑 보통 사이 아니지? 삐쩍 말라 힘도 없어서 얘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아. 내가 대신 예뻐해 줄게. 아주 좋아 죽을지도 몰라.”“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전 은씨 가문 사람이라고요.”은도의 표정이 확 변했다.“은씨 가문이면 뭐? 내가 너한테 강제로 뭔 짓을 해도 은씨 가문에서 날 어쩔 수 있을 것 같아?”하희관의 건방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당신!”은도는 두려움과 분노가 섞인 눈빛으로 쳐다봤다.하희관의 세력이 컸고 배후에 또 엄청난 거물이 있었다. 만약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다면 기껏해야 명성이 조금 나빠질 뿐이지 은씨 가문에서는 절대 그와 등을 돌리지 못할 것이다.“인마, 마지막으로 물을게. 레시피 내놓을 거야, 말 거야?”하희관은 한 손으로는 은도를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총을 겨누었다. 눈빛이 무척이나 날카로웠고 표정도 흉악하기 그지없었다.“일단 레시피는 절대 넘기지 않을 거야. 그리고 은도 씨도 풀어줘. 안 그러면 그 손을 확 부러뜨리는 수가 있어.”유진우는 더는 예의 따위 차리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장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유진우가 이토록 건방을 떨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총을 겨누고 있는데도 큰소리를 친다는 건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인가?“이 자식이 아주 죽으
“으악...”하희관은 숨이 가빠지면서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고 이마에도 핏줄이 다 튀어나왔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손발에 전혀 힘이 가해지지 않았다.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그는 줄곧 유진우가 순한 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맹호가 됐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힘도 세서 전혀 반항할 수도 없었다. 만약 유진우가 조금만 더 힘을 가한다면 목이 부러질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무엄하다!”“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당장 사장님을 풀어주지 못해?”침묵도 잠시 VIP 룸이 발칵 뒤집혔다. 양복 차림의 경호원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당장이라도 덮치려 했다.“유진우 씨, 미쳤어요? 감히 하 사장님을 건드려요? 죽으려고 작정했어요? 당장 그 손 내려놔요!”유강청이 소리를 질렀다.“진우 씨, 여긴 골든 클럽이에요. 하 사장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뼈도 못 추리는 수가 있다고요.”유성신이 다급한 말투로 말했다. 유진우를 부른 건 그녀이기에 하희관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근데 당신이 계속 죽자고 덤비잖아. 난 뭐 밸도 없는 줄 알아?”유진우는 하희관의 총을 빼앗은 다음 그의 미간을 겨누고 싸늘하게 말했다.“총을 겨누고 있으니까 기분이 어때?”“이... 이 자식아! 경고하는데 함부로 하지 마.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네 가족 모두 무사하지 못해!”하희관이 겨우 목소리를 쥐어짰다.“그래?”유진우는 총을 점점 밑으로 내리더니 하희관의 입에 넣어버렸다.“내가 네 협박 따위 무서워할 것 같아?”“쓰읍!”하희관의 두 눈이 급격하게 흔들렸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상대의 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이봐요, 진정해요. 하 사장님을 다치게 하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해요.”은도가 다급하게 나서서 말렸다.“은도 씨, 이 자식은 처음부터 날 놓아줄 생각이 없었어요. 차라리 이 기회에 먼저 손을 쓰는 게 나아요.”유진우의 손가락이
“됐어요. 오해는 이미 다 풀렸고 웃으면서 다 잊읍시다.”유강청이 큰 소리로 웃는 동시에 몰래 눈치를 주었다. 하희관은 바로 그의 뜻을 알아채고 재빨리 인파 속으로 물러서더니 대뜸 호통치기 시작했다.“인마, 감히 날 협박해? 아주 제 명을 재촉하는구나. 얘들아, 당장 저놈을 잡아!”하희관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바로 몰려들었다.“잠깐만요!”은도가 갑자기 유진우의 앞을 막아서면서 물었다.“하 사장님, 방금 손잡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왜 또 이러는 거죠?”“흥, 아까는 약속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하희관은 무척이나 당당했다.“그래도 체면이 있는 분인데 이렇게 한 입으로 두말하면 어떡해요? 남들이 웃을까 두렵지도 않아요?”은도가 눈살을 찌푸렸다.“웃는다고?”하희관이 흉악스럽게 웃었다.“여긴 내 구역이야. 저 자식을 해결하고 널 따먹은 다음 소식을 막아버리면 누가 알겠어?”“당신... 어떻게 이렇게 파렴치할 수 있어요?”은도가 분노를 터트렸다.“허허... 솔직하게 말해서 더 파렴치한 짓도 할 수 있어. 침대 위에서 다 알게 될 거야.”하희관이 음흉하게 웃었다.“하희관, 난 이미 너한테 기회를 줬어. 그런데도 계속 물러서지 않는다면 아마 후회하게 될 거야.”유진우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사실 그는 유강청과 하희관을 말을 믿은 게 아니라 그냥 떠본 것이었다.만약 두 사람이 진짜 화해할 생각이 있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후회?”하희관이 무섭게 몰아붙였다.“이 자식아, 아까는 내가 실수로 너한테 잡힌 거야. 아직도 네가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해?”“뒤집을 수 있을지 없을지, 그럼 한번 볼래?”뒷짐까지 지고 있는 유진우는 겁먹은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X발, 넌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얘들아, 가서 잡아!”하희관이 명령을 내렸다.“가서 죽여버려!”한 무리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형님, 저한테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