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왕부는 세력이 크지만 천자 앞에서는 함부로 날뛰지는 못했다.게다가 이 일 자체가 금기 사항이기에 왕부가 직접 나설 리가 없었다.“네. 잘 알겠어요. 직접 나서주셔서 감사합니다.”유진우는 몸을 일으켜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이의진이 제공한 소식은 유진우에게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큰 힘을 보태준 것뿐만 아니라 유진우의 편이 또 한 명 늘어났다.“다 한 식구인데 당연히 도와야지.”이의진은 서둘러 유진우를 일으켜 세우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복수하는 건 좋지만 세상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어요. 가끔은 나빴던 일은 잊고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잘 살피는 게 더 중요해.”“그 말 꼭 잊지 않고 명심할게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형, 앞으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말만 하세요, 제가 언제든지 깔끔하게 처리할게요.”유천우는 가슴을 툭툭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유진우가 이의진을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두 사람의 사이가 한층 가까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너는 네 일이나 잘해서 아주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려.”“형도 참. 저도 이제는 어른인데 계속 어린이로 보지 마요. 저도 이젠 혼자 잘 해낼 수 있어요.”“됐으니까 내 앞에서 그만 뽐내. 네가 어떤지 내가 모를 것 같아?”“어머. 지금 저를 얕잡아 보는 거예요? 저도 언제가 성장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해 줄 거예요. 때가 되면 다 저한테 굽신거려야 할걸요?”유천우는 고개를 치켜뜨고 득의양양해 있었다.“그래. 하지만 난 지금 네가 충분히 자랑스러워.”유진우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눈길을 이의진한테 돌렸다.“아주머니, 오시느라 피곤했을 텐데 좀 쉬시죠. 제가 사람들을 시켜 방을 이미 준비해 놓았습니다.”“진우가 그렇게 말하니 피곤이 갑자기 밀려오네요. 그럼 나는 먼저 방에 가서 쉴 테니까 볼일 봐.”이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는 유천우와 함께 자
저녁 무렵.사람들을 다 보낸 후, 유진우는 강린파의 각 당주를 불러 회의실에서 고위층 회의를 열었다.“오늘 하루 힘들었을 텐데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유진우는 센터에 앉아 모두 자리에 착석하도록 손짓한 후 입을 열었다.“급하게 여러분을 자리에 모은 건 두 가지 일에 대해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첫째, 장 아저씨를 강린파의 2인자로 임명하여 강림파의 크고 작은 일을 관리하도록 할 계획입니다.”그의 말에 당주들은 하나 둘 씩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강린파의 2인자가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려요.”장 아저씨는 실력이 뛰어나고 지위도 높은 데다 강린파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 일을 더 깔끔하게 잘하고 유진우가 가장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그런 장 아저씨가 2인자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누구도 이 결정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았다.“도련님께서 이렇게 저를 믿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제 온 힘을 다해 2인자의 자리에 걸맞게 잘하겠습니다.”장 아저씨는 가슴 앞에 손을 맞대고 엄숙한 표정으로 그의 포부를 밝혔다.유진우는 장 아저씨의 목숨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새로운 인생의 페이지를 열어주었으니 은인이 따로 없었다.그것도 모자라 그를 2인자로 만들었으니 더욱 이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다.“좋아요. 이제 두 번째 일을 말할게요.”유진우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계속 얘기를 이어 나갔다.“며칠 후, 제가 서울을 잠깐 떠날 계획입니다. 처리할 일이 있어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니 한동안 제 업무는 장 아저씨가 봐주실 겁니다.”“뭐요? 서울을 떠난다고요?”장 아저씨는 넋을 잃은 표정으로 물었다.“도련님, 저한테 시킬 있으면 바로 말해주세요. 제가 가서 처리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직접 가는 거예요?”“이 일은 누구도 저를 도울 수 없어요. 제가 직접 해야 해요.”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로스의 소식을 안 뒤로 유진우는 한시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유진우는 조선미를 도와 조군수의 장례를 잘 치러주고
유진우의 말 한마디에 회의실이 떠들썩해졌다.당주 모두가 신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장 아저씨가 단영약을 받는 것을 보고 다들 부럽지 않다면 가짜일 것이다.게다가 이런 최고급 단약을 보기도 힘들었기에 유진우의 약속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세상을 얻은 것만 같았다.유진우한테 장 아저씨뿐만 아니라 강린파의 모두가 그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였다.그렇기에 모두에게 공평하게 베푸는 게 당연했다.유진우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는 모습이 그들의 마음을 녹였다.“도련님, 감사합니다.”“앞으로 도련님을 위해 어떤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당주는 하나둘씩 무릎을 꿇고 고마움을 표시했다.“다 한 가족인데 이럴 필요 없어요.”유진우는 손을 들어 당주들을 일어나도록 손짓했다.“다른 건 섣불리 약속하지 못하지만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같이 나눌 수 있게 하겠습니다.”별것 없는 말이었지만 당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이런 재능 있고 실력 있고 빽이 좋은 명주와 함께 일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그들은 유진우의 명령을 따르면 강린파가 언젠가 반드시 천하를 뒤흔들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도련님, 선미 아가씨께서 깨셨습니다.”이때 강린파의 한 여제자가 회의실로 불쑥 들어왔다.“깼어요?”유진우는 바로 얼굴색이 바뀌더니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도련님, 선미 아가씨가 이미 영령전에 가셔서 방에 안 계십니다.”여제자는 다급히 방으로 걸어가는 유진우를 불러 세웠다.“그래서 선미 씨가 다 알게 된 건가요?”“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여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만 물러가 봐요. 더 지키지 않아도 돼요.”유진우는 한숨을 내쉬고는 영령전으로 걸어갔다.조군수의 시신이 영령전에 있었기에 조선미가 시신을 본 후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몰랐다.유진우가 영령전에 들어서자 조선미가 관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그 자리에 굳어서 움직임도 없었다.조선미는 통곡하며 울지도 않아 영령전에는 정적이 돌았다.“선미 씨?”유진우는 영령전이 생각보다 너무
그 뒤로 삼일 후 조군수의 장례식은 무사히 잘 치러졌고 소각된 유골은 조씨 가문의 사당에 모셔져 향초를 피워뒀다.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조씨 가문에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큰 규모를 자랑하던 재벌가는 결국 뿔뿔이 흩어졌다.장례식이 끝난 후, 오랫동안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던 조 어르신은 가족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가족회의를 열었다.가족회의는 조 씨네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조 어르신은 센터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조 어르신 양 옆에는 조씨 가문의 중요한 인물들이 착석했다.조군수와 조군해도 죽은 마당에 조순표도 종적을 감췄다.세 명의 아들이 모두 죽지 않으면 실종된 데다가 각종 요소의 영향으로 현재 조씨 가문을 이끌 사람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가문 사람들의 인심이 흩어져 조씨 가문은 전례 없는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이 조씨 가문에 최근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떠난 사람들은 이미 떠났고 저희 산 사람들이라도 얼른 마음을 추스르고 힘내야 해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저희는 지금 생사의 기로에 서 있어요.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조씨 가문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겁니다.”조 어르신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어르신, 지금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가문에 피해가 만만치 않은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현재 가문을 이끌 사람도 없고 사건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서 기사회생하기가 너무 어려워요.”“맞아요. 요즘 배신자들이 돈을 가지고 도망가는 바람에 가문의 재산을 많이 빼앗겼어요. 그 외에도 많은 외부 세력이 이 틈을 타 우리를 흔들어 놓으니 우리 조씨 가문은 이미 구제 불능이 되어버렸어요.”“그래요. 제가 보기에 차라리 나머지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각자 알아서 사는 게 좋은 선택인 것 같아요.”여러 사람들이 입을 놀리며 의논하기 시작했다.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의욕도 없고 투지를 잃은 상태였다. 심지어
“어르신의 말씀이 맞아요. 선미 아가씨가 족장이 되는 것을 적극 응원해요. 비연단의 성공은 조씨 가문의 희망이에요.”이때 한 조씨 가문의 주요 인물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특별한 시기인 만큼 특별 조치를 해야죠. 선미 아가씨보다 족장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도 찬성이에요.”“선미 아가씨는 지혜롭고 총명해서 분명 조씨 가문을 다시 정상의 자리로 이끌어 줄 거예요. 저는 두 손 들어 완전 찬성이에요.”“어르신 말씀 중 틀린 말 하나도 없어요. 저희도 모두 찬성이에요.”순간 거의 모든 조씨 가문이 조 어르신의 제안에 찬성 의견을 내보였고 의문을 품고 있던 몇 명의 사람들도 꼬리를 내렸다.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조선미는 그대로 족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선미야, 모두가 열정적으로 네가 족장이 되는 것을 찬성하고 있는데 네 생각은 어때?”조 어르신은 들뜬 목소리로 조선미의 의견을 물었다.“할아버지, 저 아직 결정 못 내렸어요.”조선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조군수가 죽은 후로 조선미는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선미야, 지금 이런 때에 너에게 족장 자리를 내어줘서 곤란한 건 알겠지만 우리도 얼른 기운을 차려야 해.”조 어르신은 진지하게 조언했다.“능력이 출중할수록 책임감이 더 커지는 거야. 네 아버지도 조씨 가문이 이대로 산산조각 나기를 바라지 않을 거야. 이제 네가 중대한 임무를 맡을 대가 되었어.”“저는...”조선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입만 벙긋댔다.“능력이 출중할수록 책임감이 더 커진다니 무슨 헛소리야!”이때, 위엄있는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사람들은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한복을 입은 흰머리의 노인이 손을 등에 지고 회의실로 걸어 들어왔다.노인의 뒤로는 재벌가들이 뒤따라 들어왔다.“흥! 너희 조씨 가문이 망하든 말든 그건 너희 일이고 내 외손녀를 곤란하게 만든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노인은 기세가 등등하고 엄청난 위세를 뿜어냈다.그의 무례한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불만
그 순간, 모든 조씨 가문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조 어르신의 한 마디가 마치 천둥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꽂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이 고귀한 자태의 화려한 옷을 입은 노인이, 바로 높은 지위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용국의 국공이라는 것을! 공, 후, 백, 자, 남. 용국의 오등 작위 중에서 공작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며, 최상위의 존재이다. 그의 지위는 심지어 용국의 일품 중신들 위에 군림할 정도였다. 이는 진정한 권력의 정점에 선 거물이었다! 선우 가문은 백작 작위 하나로 강남 탑쓰리 중 최고 자리에 올랐다. 만약 공작이었다면,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당당한 국공께서 어떻게 조씨 가문에 직접 오셨을까? 도대체 누가 이런 최상의 존재를 초청할 수 있었을까? "너희들 멍하니 뭐 하고 있느냐? 어서 진국공께 예를 올려라!" 조 어르신은 뒤돌아 소리쳤고, 몸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눈앞의 이 노인은 다름 아닌 조선미의 외할아버지, 용국의 유명한 진국공, 진학량이었다! "진... 진국공님께 인사드립니다!" 조씨 가문의 사람들은 마치 꿈에서 깬 듯, 모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표했다. 모두 두려움에 떨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공과 같은 권력를 가진 인물은 손가락 하나로도 조씨 가문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국공께서 오셨는데, 저희가 멀리서 맞이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조 어르신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흥! 내 외손녀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너희 같은 하찮은 곳에 오겠느냐?" 진학량은 냉정한 얼굴로 전혀 사의를 표하지 않았다. 처음 딸이 조씨 가문에 시집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그는 계속 반대했다. 조씨 가문은 작은 집안이라, 국공의 딸과 어울릴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딸은 결코 붙잡아 둘 수 없는 법, 이른바 사랑을 위해 그녀는 조군수와 함께 도망쳤다. 그는 화가 나서 곧바로 부녀 관계를 끊어버렸다. 외손녀가 태어나고 나
“제가 떠나면, 조씨 가문은 어떻게 되나요?” 조선미는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버지가 막 세상을 떠났고, 조씨 가문은 지금 붕괴 직전에 있다. 그녀가 이렇게 떠나버린다면 마음에 큰 죄책감을 안게 될 것이다.“조씨 가문은 조씨 가문이고, 너는 너다. 왜 굳이 스스로에게 짐을 지우려 하느냐? 외할아버지는 그저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것만을 바란다.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진학량이 말했다. “하지만…” 조선미는 난처해했다. 그녀는 조씨 가문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기에, 쉽게 놓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됐어, 됐어. 네가 이렇게 고민하는 걸 보니, 이번 한 번은 예외로 조씨 가문을 도와주마.” 진학량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나와 함께 연경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만 하면, 1년 안에 조씨 가문을 전성기로 되돌리고, 3년 안에 조씨 가문이 한 단계 더 도약하여 선우 가문을 대신해 강남의 탑쓰리의 정점에 서게 해주마, 어때?”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씨 가문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모두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했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년 만에 전성기로 회복하고, 3년 만에 선우 가문을 대신해 절정의 명문가가 된다니.이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였다! 천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였다! 물론,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들은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국공이 한 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는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거물로,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인물이니 절대로 빈말은 아닐 것이다. 한 번 입 밖에 낸 것은 반드시 지킬 것이다. 조씨 가문을 도와 상위에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돼지를 하늘로 날게 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외할아버지, 정말 조씨 가문을 도와주실 건가요?” 조선미가 시험하듯 물었다. “네 체면을 봐서 도와주는 게 뭐가 어렵겠느냐?” 진학량은 태연하게 말했다. “물론, 네가 나와 함께 가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전제다.” “하지만…” 조선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여
폭우 산장, 접객실에서."조선미 아가씨, 죄송합니다만, 늦으셨습니다. 도련님은 이미 서울을 떠났습니다." 장 아저씨가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떠났다고요? 어디로요? 언제 떠났죠?" 조선미는 약간 이상하게 여겼다."도련님은 오늘 아침 일찍 떠나셨습니다. 연경에 볼일이 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상황은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아, 맞다..." 뭔가 떠오른 듯, 장 아저씨가 갑자기 편지를 꺼내 두 손으로 건넸다. "조선미 아가씨, 이건 도련님께서 남기신 편지입니다. 떠나기 전에 만약 당신이 오면 이걸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편지를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편지?"조선미는 편지를 받아 열어보았다. 편지에는 빼곡하게 몇 백 자에 걸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당분간 돌아올 수 없으니 몸조심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걱정할까 봐 직접 말하지 못하고 편지로 남긴 것이었다."이 사람, 참 빨리도 도망갔네."편지를 다 읽고 나니, 오히려 조선미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번에 그녀가 찾아온 것은 유진우에게 함께 연경으로 가서 발전하자고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녀가 말도 꺼내기 전에 상대방은 이미 떠나 있었다. 비록 조금 뜻밖이었지만, 두 사람은 결국 같은 목적지를 향하게 된 셈이었다."그럼 연경에서 다시 만나자."조선미는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잘 간직한 후, 폭우 산장을 떠났다. 유진우의 행방을 알게 된 이상, 그녀는 더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언젠가는 두 사람이 다시 연경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오후 시각, 연경 기차역 남부역.유진우는 짐가방을 들고 인파 속에서 천천히 나왔다. 10년 전과 비교해, 지금의 연경은 확실히 더 번화해졌다.여덟 거리와 아홉 골목마다 사람과 차들로 붐비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축제처럼 활기차고 북적거린다.길목에 다다랐을 때, 유진우는 주위를 둘러보며 방향을 정하려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택시 한 대가 옆에 멈췄다. 대머리 아저씨가 창문 너머로 반쯤 머리를 내밀며 열정적으로 인사를 건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