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희재가 검을 휘두르자 그 속도와 힘에 걸맞은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그의 검이 스친 자리는 귀를 째는듯한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 공기마저 갈라진 듯 했다.실로 믿기 어려운 힘이다.“이 속도에 이런 힘이라니. 역시 무도 마스터이십니다.”“이 검 앞에서 살아남을 놈은 없을 거다. 이거라면 유진우도 막아내지 못하겠지.”“희재가 그놈을 단칼에 해치울 거란 예감이 드는군.”선우희재의 엄청난 검을 본 선우 가문의 측근들은 이미 승리를 거머쥐기라도 한 듯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늘 수심에 차 있던 선우진성도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늘 자신의 손자가 걱정이었다. 어쩌면 정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 보니 안될 것도 없어 보였다.심지어 여느 무도 마스터보다 훨씬 강하니 말이다.이 정도면 최고의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꿇어라!”선우희재의 외침에 칼날은 더욱 날카롭게 유진우의 가슴팍을 겨냥했다.“흥.”하지만 유진우는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향해 날아오는 검을 똑똑히 주시하더니 손가락을 뻗어 칼날을 낚아챘다.챙!검을 휘두르던 선우희재는 순간 멈칫했다. 모든 걸 깨부수며 기세 좋게 나아가던 그의 검이 한순간에 바위 앞 달걀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그는 어떠한 반항도 할 수 없었다.“뭐야?”눈을 부라리며 사태를 파악하던 선우희재는 순식간에 안색이 뒤바뀌고 말았다.그의 온 힘을 다한 공격이 고작 유진우의 두 손가락에 의해 막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유진우의 여유로운 눈빛과 기세는 선우희재를 단단히 옥죄어 꼼짝 못 하게 만들고 있었다.“막... 막았다고? 그럴 리가!”“막은 정도가 아니라 빈손으로 저 무시무시한 검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렸어. 무서운 놈이로군.”“무도 마스터가 전력을 다해 한 공격인데 손가락으로 단숨에 제압하다니. 저놈은 괴물이야!”눈앞의 광경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모두 유진우와 선우희재 이 둘의 싸움은 양대산맥의 치열한 결전이 될 거
한순간에 기세가 확 오른 선우희재는 실력이 바로 두 배로 늘었다.“어? 목숨 좀 걸겠다?”유진우는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며 의외라는 듯 제스쳐를 취했다.선우희재가 단기간에 실력을 크게 향상할 수 있는 일종의 비약을 먹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대가는 당연히 잠재력과 생명력을 잃는 것이다.생사의 갈림길에 들어서지 않는 한 선뜻 복용하지 않는다.“광혈단이다. 선우희재가 먹은 건 광혈단이야.”그때 군중 속에서 갑자기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뭐? 광혈단? 그거 금지약물 아닌가?”“광혈단은 신체의 잠재력을 자극해 복용자의 실력을 배가시키지만 부작용이 심해 목숨을 반쯤 잃을 뿐 아니라 발광할 수도 있어.”“뭐? 그렇다면 선우희재는 지금 목숨을 걸었단 말이야? 광혈단까지 먹다니!”기세가 크게 변한 선우희재를 보고 뭇사람들은 손가락질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놀람과 동시에 그에 대한 기대도 조금 커졌다.“목숨을 걸고 승부를 걸다니 희재야, 이건 솥을 부수고 배를 가라앉히는 격이다.”선우진성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광혈단의 지원으로 희재의 실력이 두 배로 늘면 반드시 유진우를 이길 수 있을 거야.”“맞아! 유진우가 아무리 재주가 있다 해도 광혈단을 복용한 희재를 막을 수는 없어!”선우 가문의 종친들이 다시금 자신감과 희망을 되찾았다.광혈단은 금지약물이지만 확실히 파도를 일으키는 효능이 있다.그러나 유일한 폐단은 선우희재가 목숨을 반이나 잃어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그 대가는 가족 전체의 안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유진우, 네가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넌 오늘 질 수밖에 없어.”선우희재는 붉은 두 눈을 하고 머리카락은 뿌리가 곧게 곤두서고 옷은 바람이 없어도 절로 날리고 있었으며 온몸에서는 미친 냄새가 진동했다.“그래? 그럼 어디 보자. 네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그러나 유진우는 여전히 안색 한번 바꾸지 않고 손을 들어 제스쳐를 취하고는 얼마든지 덤벼들 태세를 취했다.“유진우, 날 광혈단까지 먹게 만들다니. 넌 졌지만 여전히 영광
“뭐?!”중상을 입고 쓰러진 선우희재를 본 선우 가문의 친족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은 광혈단의 도움으로 역전승해서 대세를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다.하지만 선우희재는 단 한방에 지고 말았다. 이렇게 비참하게 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주먹 한 방에 검은 부서지고 사람은 다쳤다.완전 압도적인 실력 차이였다.“망했다! 망했어…이제 완전히 망했어!”선우진성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으며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졌다. 기타 친족들도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고 낙담했다. 그들은 선우희재를 과대평가하였고 유진우를 과소평가했다.두 사람은 전혀 같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천재는 유진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필사적으로 덤벼도 계란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이 정도의 실력으로 조무진도 이길 수 없으면서 뭘 믿고 나와 싸우겠다는 거지?”유진우는 하찮게 여기는 표정을 지었다.“진우 형, 말씀이 지나치십니다.”원래 웃으면서 싸움을 지켜봤던 조무진은 무뚝뚝하게 굳은 얼굴로 불만을 토했다.“형이 싸우는 데 왜 가만있는 저를 건드리세요? 제 체면도 생각하셔야죠. 그리고 저는요, 하루 종일 때리고 죽이는 것밖에 모르는 무인 따위와 달라요. 머리로 먹고사니까 무력치가 좀 낮아도 이기는 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거든요. 그리고…”“닥쳐!” 조무진이 쉬지 않고 계속 재잘거리는 것을 본 조홍연은 자기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제지했고 내친 김에 검까지 뽑았다.“잔소리 계속하면 혀를 잘라버릴 거야!”“…” 조무진은 입꼬리를 실쭉거리다가 더 이상 찍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그는 그나마 유진우와는 도리를 따질 수 있으나 자기 여동생과는 전혀 도리를 따질 수가 없었다.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두들겨 맞는데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저 폭력배는 정말 하나도 안 변했네.”유천우는 나지막한 소리로 구시렁거렸다.“응?”조홍연은 귀를 쫑긋거리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길을 보내자, 유천우는 놀라
선우희재는 또래들 사이에서 군계일학 같은 존재였다.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수년 동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결실을 그는 힘 하나 안들이고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었다.그는 줄곧 자신은 하늘이 선택한 자이고 황제로 될 운명을 가졌으며 중생 위에 군림한 지존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도리를 이제야 깨달았다.그가 자랑스러워했던 천부와 결실은 유진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난 그냥 우물 안 개구리였어.”심한 타격을 받은 선우희재는 처량하게 웃었다.이때 그의 도심이 완전히 무너졌고 투지가 모두 사라졌다. 오직 심한 절망감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한평생 이겨왔지만 유독 이번에 한 번만 졌다. 하지만 이 한 번의 경험이 그의 인생을 망가뜨렸다.“졌으니 보물지도를 내놔.”유진우는 앞으로 나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선우희재는 아무 말 없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두 눈이 점점 초점을 잃었다.그는 말라 죽은 나무처럼 아무런 생기도 없어졌다.“죽었어?”유진우는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그가 휘두른 주먹은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아서 선우희재의 내공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상대의 몸에서 생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영혼이 없는 시체로 보였다.“이런 타격도 못 이겨 내다니. 훌륭한 천부만 낭비했네.”이에 유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우희재는 확실히 보기 드문 천재였고 앞날이 창창할 자였다.하지만 아쉽게도 한평생 순탄하게만 살아와서 그 어떠한 어려움도 겪어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갑자기 큰 타격을 받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유진우는 내려앉아서 선우희재의 시체를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한 두루마리의 양피지를 찾아냈다.펼쳐 보니 아니나 다를까 보물 지도였다. 조씨 가문은 세 장의 보물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는 이미 두 장을 얻어냈다. 이제 한 장만 더 얻으면 완전한 보물지도를 맞출 수 있고 어마어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유진우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풍우 산장으로 돌아갔다.조선미와 조아영은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고 유진우는 억지로 두 사람을 깨우지는 않았다. 조군수와 조군해는 모두 죽었으니 조씨 가문 전체는 사분오열되었다. 조선미에게 있어서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일시에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지금 유진우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선미를 대신해서 조군해의 장례식을 준비하여 그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뿐이다.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누구도 그 고통을 공감할 수 없다. 이는 조선미가 스스로 넘어야 할 고비이다. “조씨 가문의 관련 산업들은 당분간 함부로 손대지 마. 이번에 조씨 가문이 막대한 손실을 입어서 잘 정돈해야 할 것이야.”“딴마음을 품는 자들은 모두 억류하고 선미가 깨어나면 다시 처리하도록 해.”“그리고 조군해의 장례는 가장 높은 격식으로 준비해. 조금이라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가봐…”회의실 내에서 유진우는 연속 명령을 내렸고 강린파의 제자들은 잇달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이때 유천우는 위왕 왕비와 함께 갑자기 회의실에 들어왔다.위왕 왕비의 이름은 이의진이고 용국의 장공주로서 수년 전에 위왕 유만수와 혼인을 했었다. 그때 유만수에게 이미 아내가 있었는데 바로 유진우의 어머니였다.하지만 장공주인 이의진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기꺼이 첩으로 들어와서 강제로 이 혼사를 성사했다. 서경으로 시집온 후 이의진은 자신의 분수를 지키면서 남편을 섬기고 자식을 가르쳤다. 그녀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어질고 현숙한 여인이었고 또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미명이 널려 알려졌다.온 서경에서 이의진이라고 하면 누구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유진우는 눈앞의 보살처럼 어진 장공주는 사실상 꿍꿍이가 많은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장공주 전하.”유진우는 바로 일어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공손히 맞이했다.그는 이 여인을 좋아하지 않지만 미워하지도 않았다.“장혁아, 한집안 식구끼리 이렇게 예를 차릴 필요가 없다.
“정말? 그럼 10년 전의 자금성의 난은?”유진우는 불쑥 이런 말을 내뱉었다.“네?”이에 유천우는 얼굴이 굳어졌고 순간 입을 다물었으며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10년 전에 일어난 자금성의 난은 서경왕부의 금기이자 용국의 금기이었다. 그 후부터 이 역사는 밀폐되었고 누구도 감히 제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내서 그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장혁아, 모두 지나간 과거가 아니냐? 10년 전의 일은 이미 완전히 마무리됐으니 다시는 꺼내서는 안 돼.”이의진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마무리됐다고요?”유진우는 천천히 시선을 들면서 말하였다. “저의 어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죽었고 저의 근위병들도 한을 품고 죽었는데 어떻게 마무리됐다고 할 수 있죠?”“언니가 돌아가셔서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진범은 이미 처형되었고 죽어야 할 사람은 모두 죽었네. 네 마음속의 집착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어.”이의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피맺힌 원한을 어떻게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 그 죽은 사람들은 그냥 희생양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배후의 범인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죠.” 유진우는 냉랭한 표정으로 말하였다.당시 자금성의 난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하마터면 병변을 일으킬 뻔했다. 백성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희생양 몇 명을 내놓고 참수를 했다. 진정한 범인은 여태까지 잡지 못했다.“장혁, 그때 네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알겠지만 계속 과거를 되찾으려고 하면 영원히 악몽에 갇혀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단다. 내려놓고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 거라. 더 나은 삶을 살아야지.”이의진은 거듭 당부하였다. “모두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제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세요?”유진우는 약간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하였다. “당신들은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어요? 당신들은 자신의 육친이 몰살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곁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피바다에 쓰러지는 것이 어떤 느낌
“저를 도와주신다고요?”이의진의 말을 들은 유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멍해졌고 의심쩍었다.“장공주 전하의 신분으로 이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10년 전의 자금성의 난은 황권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게다가 이의진은 황족이라는 신분만으로 믿을 수가 없었다.“왜? 내가 도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면 내가 못 믿는 거냐?”이의진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공주 전하께 폐를 끼칠까 봐 그런 겁니다.”유진우는 애매모호하게 대답하였다. “장혁아, 네가 꺼리는 건 이해하지만 난 진심으로 널 도와주고 싶단다.”이의진은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지금의 난 장공주가 아니라 위왕 왕비이고 네 작은 어머니야. 우리의 이해관계는 일치하다고 볼 수 있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라고 믿어.”이에 유진우는 되물었다. “알아요. 하지만 어떻게 도와주실 건지 궁금하네요.” “왕부는 10년 전의 일을 계속 암암리에 조사하고 있고 많은 정보를 수집했어. 아직 배후의 진범을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단서를 조금 찾았어.”이의진은 말하면서 갑자기 편지봉투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가 오랫동안 조사한 결과, 그때 자금성의 난이 일어났을 때 너와 술광 외에 또 다른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 그자는 진범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야.”“생존자요? 누구죠?”유진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사철수!” 이의진은 이 세 글자를 내뱉었다.“뭐라고요? 철수 삼촌이 아직 살아 있어요? 정말이요?” 유진우는 벌떡 일어섰다. 사철수는 그의 근위병 대장으로서 강한 실력의 소유자였다.그때 그들이 매복 공격을 당한 후 사철수는 대오를 거느리고 돌격하였는데 피투성이가 되도록 필사적으로 싸웠다. 사철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데리고 겹겹이 쌓인 포위망을 뚫어 나갔고 추격병이 도착할 때 홀로 남아서 그가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여주는 모습을 유진우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눈을 뻔히 뜨고 사철수가
서경왕부는 세력이 크지만 천자 앞에서는 함부로 날뛰지는 못했다.게다가 이 일 자체가 금기 사항이기에 왕부가 직접 나설 리가 없었다.“네. 잘 알겠어요. 직접 나서주셔서 감사합니다.”유진우는 몸을 일으켜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이의진이 제공한 소식은 유진우에게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큰 힘을 보태준 것뿐만 아니라 유진우의 편이 또 한 명 늘어났다.“다 한 식구인데 당연히 도와야지.”이의진은 서둘러 유진우를 일으켜 세우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복수하는 건 좋지만 세상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어요. 가끔은 나빴던 일은 잊고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잘 살피는 게 더 중요해.”“그 말 꼭 잊지 않고 명심할게요.”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형, 앞으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말만 하세요, 제가 언제든지 깔끔하게 처리할게요.”유천우는 가슴을 툭툭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유진우가 이의진을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두 사람의 사이가 한층 가까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너는 네 일이나 잘해서 아주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려.”“형도 참. 저도 이제는 어른인데 계속 어린이로 보지 마요. 저도 이젠 혼자 잘 해낼 수 있어요.”“됐으니까 내 앞에서 그만 뽐내. 네가 어떤지 내가 모를 것 같아?”“어머. 지금 저를 얕잡아 보는 거예요? 저도 언제가 성장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해 줄 거예요. 때가 되면 다 저한테 굽신거려야 할걸요?”유천우는 고개를 치켜뜨고 득의양양해 있었다.“그래. 하지만 난 지금 네가 충분히 자랑스러워.”유진우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눈길을 이의진한테 돌렸다.“아주머니, 오시느라 피곤했을 텐데 좀 쉬시죠. 제가 사람들을 시켜 방을 이미 준비해 놓았습니다.”“진우가 그렇게 말하니 피곤이 갑자기 밀려오네요. 그럼 나는 먼저 방에 가서 쉴 테니까 볼일 봐.”이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고는 유천우와 함께 자
“아니에요?”유장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용호산은 여태껏 무림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무관심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해.”서태양이 말했다.인재를 선발해 위상을 높이려고 진무사가 나섰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하지만 용호산은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그럼 무슨 의도인데요?”유장미가 되물었다.“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궁금하거든?”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서태양은 어깨를 으쓱했다.“보혁 씨는 내막에 훤하니까 화두를 꺼낸 거겠죠?”유이슬이 시선을 돌렸다.“내막까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소식이 몇 가지 있긴 해요.”염보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가 알기로는 용호산 뒷산의 금지구역에 최근 신비로운 보물이 나타났는데 향후 100년 동안 무림인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다고 해요.”“무슨 보물이 그렇게 대단해요?”유장미가 깜짝 놀랐다.유이슬과 서태양도 예상치 못한 듯 충격을 금치 못했다.무림인들의 흥망성쇠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만약 제 추측이 맞는다면 용원의 기와 관련된 보물일 거예요.”염보혁이 목소리를 낮추었다.순간, 유진우는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용원의 기? 그게 뭔데요?”유장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용맥의 정수이기도 하죠.”유이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 호룡각이 와해하면서 지하 용맥이 다섯 개의 용원의 기로 변해 세상에 뿔뿔이 흩어졌어. 소문에 의하면 용원의 기를 얻는 자는 천하무적이 되어 승승장구한다고 해.”호룡각이 무너지고 용맥이 파괴된 일이 워낙 큰 이슈였기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진짜요?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 있어요?”유장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고서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용원의 기를 얻은 자들은 세상을 주름잡는 수장이거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었어.”유이슬이 한마디 보탰다.“맞아요.”염보혁이 대
유진우는 옆에 있는 염보혁을 흘깃 쳐다보았고, 속으로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쿨럭!”염보혁은 사레가 들린 나머지 연신 기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이슬 씨, 지금 절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르겠네요.”“당연히 칭찬하는 거죠. 그런 얼굴을 보고도 어떤 남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어요?”유이슬이 정색하며 말했다.“네?”염보혁은 말문이 막혔다.설령 사실일지언정 어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할 수 있지?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정 믿기 어려우면 태양한테 물어봐요.”유이슬이 문득 말했다.한편, 서태양은 염보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시선을 돌렸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싶었다.“제가요?”서태양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선배, 장난하지 마세요. 저랑 무슨 상관이죠?”“뭔가 냄새가 나는데요?”유장미가 눈썹을 까딱하더니 눈알을 굴리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설마 보혁 씨한테 진짜 반한 건 아니죠?”“이... 계집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서태양이 펄쩍 뛰면서 얼굴이 벌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남자끼리 엮일 리가 없잖아.”“침착해요. 단지 농담했을 뿐이에요.”유장미가 키득거리며 말했다.“게다가 남남 커플이 진짜 사랑이죠. 어차피 안 될 건 없잖아요. 만약 사귈 생각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복해줄게요. 하하하!”“입만 열면 헛소리 하네.”서태양은 짐짓 화가 난 듯 혼내려는 액션을 취했다.유장미는 잽싸게 유이슬의 등 뒤로 숨어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산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당사자인 염보혁은 말문을 잃었다.더욱이 유장미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그를 흘끔거리는 서태양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몰래 훔쳐보는 탓에 괜히 기분이 세했다.“진우 씨, 이슬 씨, 다들 용호산은 처음이죠? 제가 구경 좀 시켜드릴까요? 주변에 뭐 있는지 소개해줄게요.”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염
술이 몇 잔 오가자 서서히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슬 씨, 방금 검종의 제자라고 하시던데 무림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용호산에 오른 건가요?”염보혁이 넌지시 물었다.“그런 셈이죠.”유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성격이 무심한 편이라 말주변이 딱히 없었다.“사실 저희는 스승님의 명을 받고 찾아왔어요.”상대적으로 외향적인 유장미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노천사가 용호산에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거든요. 검종 뿐만 아니라 천하회, 주술교를 포함한 파벌에서 최정예 제자들을 파견해 출전할 예정이에요.”“그럼 검종에서는 세 분이 참석하는 건가요?”염보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요.”유장미가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단지 구경하러 왔을 뿐,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는 따로 있어요.”그녀와 서태양은 선천 후기에 속했고, 유이슬은 실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반보 마스터에 불과했다.어찌 됐든 천교에 비하면 열세에 처하는지라 검종을 대표해서 출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따로 있다니? 설마 홍군림이에요?”염보혁의 눈썹이 까닥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유장미가 생긋 웃었다.“워낙 제멋대로에 신출귀몰하는 사람이라 이번 무림대회에 참가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홍 선배가 진짜 출전한다면 우승은 우리 검종이 차지할 거예요.”홍군림은 천교 랭킹의 1위에 올랐을뿐더러 어린 나이에 경천 랭킹에 진입한 검종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만 성격이 까칠하고 독불장군이라 종주를 제외하고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장미야, 그건 네 생각이고.”이때 유이슬이 입을 열었다.“홍 선배가 실력이 뛰어나고 검종의 천재로서 일반 무사들이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사실이지만 너도 알다시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능력자가 한 명 더 있잖아.”“누구요?”유장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유장혁.”유이슬이 무덤덤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홍 선배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요?”유장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막상막하야. 천교
“네?”염보혁의 한 마디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특히 잘 보이기 급급했던 서태양은 굳은 얼굴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허공에 손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럴 수가?방금 목숨 걸고 구하려던 사람이 남자였다니?“남자...? 농담이죠?”붉은 옷 소녀가 염보혁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인이 대체 어디를 봐서 남자란 말인가?푸른 옷 여인은 입만 벙긋했을 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흡혈파 망나니들이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집적거렸다니?취향 한번 독특했다.“아니요. 진짜 남자예요.”염보혁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밖에 나가면 여자로 오해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아무리 봐도...”붉은 옷 소녀가 말을 아꼈다.“외모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염보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해탈한 듯 말했다.“아쉽네요.”붉은 옷 소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본인이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선배? 왜 그래요? 괜찮아요?”그녀는 아직도 넋을 잃은 서태양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어깨를 툭 쳤다.“응? 아, 괜찮아.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야.”서태양은 꿈에서 깨어난 듯 금세 정신을 차렸다.다만 눈빛만큼은 남자한테서 떠나지 않았다.이렇게 요염한 얼굴이 사내란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그야말로 재능 낭비이지 않은가?“저는 염보혁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염보혁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이슬이에요.”푸른 옷 여인이 대답했다.“저는 유장미라고 해요.”붉은 옷 소녀가 활짝 웃었다.비록 남자이지만 미모에 저절로 눈이 갔다.“서태양입니다.”서태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시죠?”염보혁은 손을 내밀더니 소개를 이어갔다.“이쪽은 유진우 씨, 그리고 두 분은 호위무사인...”“춘화와 추월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수염 난 사내의 몸에 피투성이 상처가 생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연신 검에 찔린 탓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비록 수염 난 사내가 힘은 더 셌지만 기교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여자의 화려한 검술은 감탄을 자아냈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악!”수염 난 사내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사지가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은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온몸은 피가 흥건했고 상처로 가득했다. 비록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형님!”패배한 우두머리를 보자 흡혈파 제자들이 충격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항상 위풍당당하고 기세등등했던 수장이 이런 몰골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젠장! 감히 우리 형님을 다치게 해? 죽고 싶어 환장했어?”“저년을 없애버려!”흡혈파 제자들이 고래고래 외치며 검을 빼 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여자를 덮쳤다.“무용지물이야.”푸른 옷 여인은 콧방귀를 뀌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얼마 안 되어 흡혈파 제자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채 선혈이 낭자했다.“역시 대단하세요!”눈앞의 광경에 붉은 옷 소녀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망나니 따위가 감히 검종에게 대들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서태양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뭐... 뭐라고? 너희들이 검종 제자였어?”흡혈파 제자들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검종은 무림인들의 세계에서 3대 문파 중 하나로 천하회와 주술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비록 제자들이 많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다.특히 검종의 홍군림은 어린 나이에 천교 랭킹 1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경천 랭킹에 진입하여 세계 10위의 강자가 되었다.경천 랭킹 10위권에 검종 제자가 무려 2명이나 있는데 압도적인 실력으로 3대 파벌의 수장 자리를 거머쥐었다.여기서 검종의 제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이제야
“윽!”서태양은 이를 악물고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온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이내 양손으로 검을 쥐고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짓누른 흡혈검을 떼어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힘이 점점 더 가해졌고 무릎이 닿은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작 이런 실력으로 감히 우리 흡혈파한테 덤비다니? 제 주제도 모르고 말이야.”수염 난 사내가 냉소를 지었다.“형님! 멋져요.”“역시 대단하세요.”부하들이 질세라 감탄했다.북쪽에서 흡혈파라고 하면 꽤 이름 있는 큰 파벌인지라 애송이 같은 놈이 도발할 만한 게 아니었다.“감히 내 앞에서 영웅 행세해? 넌 오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린 거야. 교훈 삼아 사지를 부러뜨려줄게!”수염 난 사내가 비열한 미소를 짓더니 흡혈검을 들어 올려 서태양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챙!검이 닿기 직전 청색 보검이 불쑥 나타나 허공에서 공격을 막아냈다.“응?”수염 난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푸른 옷 여인이 보검을 들고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선배?”서태양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그제야 한숨 돌렸다.조금만 늦었더라도 오른손을 잃어버렸을 텐데 그나마 선배가 제때 도움을 줘서 천만다행이었다.“괜히 참견하지 마.”수염 난 사내가 음흉하게 웃었다.“우리 후배한테 손을 대는 순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여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맞아! 너희들 같은 망나니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이때, 붉은 옷 소녀가 검을 빼 들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언니, 제가 도와줄게요.”“아니야. 넌 태양이랑 지켜보고 있어. 이런 놈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푸른 옷 여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지?”수염 난 사내가 히죽 웃었다.“그런 왜소한 몸으로 오빠의 검을 어찌 막으려고? 차라리 무기는 내려놓고 침대에서 겨뤄보는 건 어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곧이어 음흉한 시선으로 여자를 훑으며 멋대로 평가하
서태양이 움직이자 수염 난 사내의 뒤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두 명이 튀어나왔다.두 사람은 무기로 길쭉한 검을 들고 있었다.몸체는 강한 피비린내와 함께 은은한 살기가 감돌았다. 이는 칼날이 오랫동안 선혈에 노출된 결과였다.무림인들의 세계에서는 흡혈검이라고 불렀다.다만 아쉽게도 그들이 지닌 검은 아직 미성숙 단계였고 기세가 한창 부족했다.챙! 챙!서태양이 먼저 검을 빼 들고 혼자서 두 명의 사내와 대결을 벌였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웠지만 힘만 강했을 뿐 행동이 굼뜬 편이었다.공격할 때마다 동작이 다소 어설펐다.반면, 서태양은 누가 봐도 고수의 가르침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스피드, 힘, 기술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어느 하나 뒤처진 데 없었다.세 사람이 공격을 주고받는 순간 실력 차이가 현저했고, 서태양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내를 쓰러뜨렸다.그리고 응징할 겸 각자의 다리에 검을 관통했다.“흥! 고작 이런 실력으로 우쭐거려? 제 주제도 모르고.”서태양은 장검을 비스듬히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좋아! 잘했어!”승리를 거머쥔 서태양을 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비록 나서서 싸울 용기는 없었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했다.“그래도 실력은 꽤 있나 보네? 어쩐지 참견하더라니.”수염 난 사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고 음침한 목소리로 협박했다.“하지만 오늘 임자를 만났지. 흡혈파를 마주친 이상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흡혈파는 무슨, 들어보지도 못했구먼.”서태양의 표정은 기고만장했다.“하! 괜찮아. 네 피를 전부 흡수하고 나면 우리가 왜 흡혈파라고 불리는지 알 거야.”수염 난 사내가 이죽거리더니 두말없이 공격을 개시했다.그가 발을 내딛자마자 맹렬한 기세가 솟구쳤고, 손에 든 흡혈검은 핏빛을 뿜어내며 곧장 서태양을 덮쳤다.앞서 상대했던 부하들과 달리 수염 난 사내의 흡혈검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얼굴은 쉽게 화를 부르는 법이다.염보혁은 남자였지만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요염한 얼굴을 지녔다.길을 나서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었고 지금처럼 깡패 무리와 마주할 때면 번번이 시비에 휘말리기 일쑤였다.유진우는 모른 척하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어이, 이쁜이. 저런 나약한 놈이랑 술 마셔서 뭐 하겠어? 차라리 우리랑 한잔하지, 아주 즐겁게 해줄 테니 말이야!”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사내가 염보혁의 턱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이 손 치우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후회하게 될 테니까.”염보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어여쁜 외모 탓에 남녀를 불문하고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처럼 대놓고 희롱하는 경우는 드물었다.“오, 이쁜이가 화를 내네?”수염 난 사내는 턱을 문지르며 비웃었다.“솔직히 말해서 화난 얼굴이 더 매력적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감탄스럽군.”그의 말에 뒤따르던 무리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유진우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제법 능숙하게 수작을 부렸다.염보혁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셋을 센다. 그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내가 직접 손봐주지.”염보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본다고? 하하하!”수염 난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이거 제법 앙칼진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위층으로 올라가서 천천히 우리를 손 봐줘, 어때?”“맞아, 맞아! 방도 넉넉하니 차례대로 너랑 놀아줄 수 있다고!”그의 동료들도 시시덕거리며 말을 보탰다.“셋.”염보혁은 더 이상 말을 섞을 필요도 없다는 듯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이쁜이, 괜히 버티지 말고 그냥 올라가자. 내가 아주 다정하게 대해줄 테니 말이야.”수염 난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려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낄낄댔다.“둘.”염보혁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유지했다.“싫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안아 올라가는 수밖에.”그가 손을
유진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혁 씨가 이렇게까지 많은 걸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생각엔 장일청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용호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염보혁이 이렇게나 많이 알고 있다니, 이건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진우 씨께서 과찬해 주시는군요. 저는 그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듣는 걸 좋아해서 호기심에 이런저런 소문을 알아본 것뿐입니다. 사실 별다른 능력은 없어요.”염보혁은 겸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하지만 만약 진우 씨께서 무림대회에 참가하신다면 전 온 힘을 다해 진우 씨가 우승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보혁 씨,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군요.”유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그저 세상 구경이나 해볼 겸 참가하는 것뿐입니다. 우승 같은 건 감히 꿈도 꾸지 않아요. 애초에 제 실력으로 어떻게 그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진우 씨는 너무 겸손하시군요. 저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합니다.”염보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우 씨는 외모도 준수하고 기품 또한 비범하시죠. 멀리서 봐도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습니다. 비록 진우 씨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진우 씨는 절대 범상한 인물이 아닙니다!”“보혁 씨께서 저를 이렇게까지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평범한 출신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췄을 뿐입니다. 아마 실망할 겁니다.”“하하, 괜찮습니다. 커다란 황금 잉어가 어찌 작은 연못에서만 머물겠습니까? 바람과 구름을 만나면 반드시 용이 되어 날아오를 것입니다. 지금 진우 씨의 명성이 미미할지라도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하늘 높이 날아오를 날이 올 거라고!”염보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눈빛은 절대적인 믿음을 담고 있는 듯했다.유진우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이 사람, 도대체 뭐지? 분명 오늘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