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자식 고집이 왜 이렇게 세?’이청아가 좋게 좋게 설득하고 도와주기까지 하겠다고 했지만 상대는 그녀의 호의를 전혀 받지 않았다.“흥, 제 발로 불구덩이에 뛰어들겠다는데 뭐 어쩌겠어. 청아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둬.”장경화는 팔짱을 끼고 이따가 재미난 구경이나 하려 했다.“언니는 다 좋은데 마음이 너무 착해서 문제야. 저 사람들이 우리 룸을 빼앗았는데도 도와주고 싶어? 그럴 필요까진 없어, 언니.”단소홍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그래, 청아야. 어떤 사람은 쓴맛을 좀 봐야 제 주제를 알아.”장홍매가 하찮다는 표정을 지었다.“됐어요. 당신들 일이니 알아서 해요.”이청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옆으로 물러섰다. 어찌 된 영문인지 유진우가 거절하니까 되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아무런 조짐도 없이 말이다.‘나 왜 이러지? 그냥 몇 번 만난 사람을 왜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거야?’“인마! 청아 씨가 너한테 준 기회를 스스로 차버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군. 이따가 내 구원병이 오면 그땐 후회해도 늦었어.”나승엽은 차갑게 웃으면서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했다. 이청아가 직접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한 건 엄청난 영광이자 은혜였다. 남들은 받고 싶어도 못 받는 걸 유진우는 단칼에 거절해버렸다. 정말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격이었다.“흥, 조금만 더 나대봐. 이따가 아주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게.”유혜지는 뒤에 서서 씩씩거리며 살벌한 눈빛으로 째려보았다.더는 그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유진우는 조선미 등 일행과 함께 천자 3호룸으로 들어가 착석했다. 그러고는 차를 마시면서 천향루를 부수는 강린파 제자들을 지켜보았다.“마음껏 부숴버려. 나중에 열배 백배 배상해야 할 거야!”나승엽은 어두운 얼굴로 소리치면서 마음속의 분노를 가까스로 참았다.“누가 감히 천향루에서 소란을 피워?”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우람한 체격의 한 무리 사나이들이 살기등등하게 쳐들어왔다.맨 앞에 화려한 옷차림의 젊은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왼쪽에 서 있
“꽃이요?”선우장훈의 말에 나승엽은 어안이 벙벙했다.‘유진우가 잘생기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남자인데 꽃과 무슨 상관이야? 형님한테 다른 취향이 있었나?’그 생각에 나승엽은 갑자기 가슴이 움찔했다.“아주 좋아. 여기서 예쁜 두 꽃을 다 보다니, 오늘 운이 좋네.”선우장훈은 아래턱을 어루만지면서 음흉한 눈빛으로 조선미와 조홍연을 번갈아 보았다.한 사람은 요염했고 다른 한 사람은 도도한 스타일이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두 절세미녀가 가만히 앉아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예술 작품이 따로 없었다. 마치 쓰다듬어주면서 사랑을 주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눈앞의 아름답고 완벽한 예술 작품에 비교하면 그가 예전에 놀았던 모델과 연예인은 정말 너무도 평범했고 이젠 쳐다보고도 싶지 않았다.이런 절세미녀를 평소 한 명만 봐도 운이 좋은 건데 오늘 동시에 둘이나 만나서 선우장훈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제대로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형님, 저 둘을 말하는 겁니까?”나승엽은 그의 시선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바로 알아챘다.“아니면 누구겠어?”선우장훈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러고는 넥타이를 정리하고 멋진 웃음을 지으면서 성큼성큼 다가갔다.“두 분 이름이 어떻게 돼요?”“유진우입니다. 무슨 일이시죠?”유진우가 앞에 나서면서 선우장훈의 음흉한 시선을 가려버렸다.“넌 뭔데 끼어들어? 너한테 물었어?”선우장훈이 두 눈을 부릅뜨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어디서 튀어나온 놈이기에 내 앞을 막아? 내가 누구고 우리 형이 누군지 알아?”‘X발, 미녀를 감상 중이었는데 웬 놈이 튀어나와서는. 재수 없게.’“당신이 누구든, 당신 형이 누구든 상관없으니까 그 더러운 생각 거두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가만 안 둬.”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요놈 봐라? 너 뭔데 이딴 식으로 나한테 말해?”선우장훈이 선글라스를 벗고 두 눈을 부릅떴다.“형님, 천향루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놈이 바로 이놈이에요.”나승엽이 선우장훈의 귓가에 대고 낮은
“인마,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게.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저 예쁜 두 여자를 나한테 넘기면 용서해줄 수 있어. 하지만 따르지 않으면 아주 처참하게 죽을 거야!”선우장훈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협박했다.‘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무슨 자격으로 저런 미녀를 데리고 있어? 나처럼 권력 있는 사람이야말로 데리고 놀 자격이 있지.’“나도 한 번만 기회를 줄게. 지금 당장 안 꺼지면 네 다리를 확 부러뜨리는 수가 있어.”유진우가 냉랭하게 말했다.“이게 죽으려고!”선우장훈이 발끈하더니 다짜고짜 주먹을 들고 유진우의 얼굴을 가격하려 했다. 선우 가문의 자제인 그는 어릴 적에 무술을 제대로 배우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기는 대충 배웠다. 다름이 아니라 단지 여자 앞에서 허세를 부리기 위해서.“제 주제도 모르는 놈.”유진우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선우장훈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그 바람에 선우장훈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고 머리가 어지러워 일어나지도 못했다.“뭐야?”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사람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유진우가 선우장훈을 때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선우장훈이 누구인가? 선우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자 호풍장군 선우희재의 친남동생이었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엄청난 권력을 지닌 존재였다.그런 거물에게 손찌검을 하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너... 지금 날 때렸어?”선우장훈이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코를 어루만졌다. 피범벅인 손을 보자마자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너 인제 죽었어!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 너뿐만이 아니라 저 두 년도 내 노리개로 만들어버릴 것이야!”퍽!유진우는 선우장훈의 복부를 가차 없이 발로 걷어찼다. 선우장훈이 처참한 비명을 지르더니 시뻘건 피를 토하면서 마치 폭탄처럼 날아갔다. 벽에 세게 부딪히고 나서야 멈춰 선 선우장훈이 연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다들 가만히 서서 뭐 해? 저 자식 죽여버려!”선우장훈이 흉악한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말하면서 또 시뻘건 피를 토해냈다.“X발, 감히 우리
송재림의 리드로 선우 가문 부하들은 반격하기 시작했고 이젠 강린파 제자들이 힘을 못 쓰고 물러나기 시작했다.송재림의 실력은 이상하리만큼 강했다. 악당파의 몇몇 선천무사마저도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마치 탱크처럼 밀고 들어오는 송재림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그래, 잘한다! 싹 다 죽여버려!”그 모습에 선우장훈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미친 듯이 포효했다. 송재림이 옆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오늘 하마터면 이 자리에서 죽을 뻔했다.“승엽 오빠, 저 사람 누구야? 누군데 저렇게 강해?”화들짝 놀란 유혜지가 참다못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송재림이라는 사림인데 연경에서 금방 훈련받고 와서 실력이 엄청 강하대. 천하회의 엘리트 제자라고 들었어.”나승엽이 존경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천하회? 연경에서 제일 강하다는 그 파벌?”유혜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용국에 3대 세력이 있었는데 바로 천하회와 주술교, 그리고 역외 검종이었다. 그들 모두 엄청난 존재들이었고 심지어 국가 기관과도 직접 연락했으며 일정한 권한까지 있었다.“맞아!”나승엽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송재림은 천하회의 제자일 뿐만 아니라 강남 무도 연맹의 맹주 송만규의 친조카야. 저게 다 송만규 맹주님한테서 전수받은 거야.”“뭐? 송 맹주님의 친조카라고?”유혜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녀가 무인은 아니었지만 송만규의 명성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강남 무도 연맹의 맹주이자 5대 마스터의 리더였고 강남 전체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다. 그런 거물에게서 전수받았기에 송재림의 실력이 이토록 대단하지.“허허... 유진우 저 자식 오늘 매운맛 좀 보겠네요.”단소홍은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매우 고소해했다.“흥! 쟤는 죽어도 싸. 여자한테나 빌붙는 기생오라비 주제에 저렇게 나대다니.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꼴이지, 뭐.”장경화는 팔짱을 낀 채 구경했다.“맞아요! 선우 가문의 둘째 도련님을 건드렸으니 대가를 치러야죠.”장홍매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이청아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지
고작 30대 초반밖에 안 된 송재림은 벌써 본투비 대원만 레벨에 도달했다. 이 정도 천부적인 실력이라면 강남이 아니라 연경 전체의 젊은 세대 중에서도 거의 따라올 자가 없었다.“영감도 나쁘지 않아.”송재림은 저릿해진 팔을 움직이면서 흉악스럽게 웃었다.“전국 팔도에 내 주먹을 당해내는 사람이 거의 없거든.”“젊은 나이에 실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쉽게도 아직 멀었어.”장 어르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만약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고통의 맛을 보진 않겠지만 계속 덤비면 더는 봐주지 않아.”“하하... 영감탱이야, 진짜로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송재림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주먹을 꽉 쥐고 차갑게 웃었다.“방금은 그냥 몸만 푼 거야. 진심으로 싸운다면 당신 따위 바로 해결할 수 있어.”“흥! 건방진 놈!”장 어르신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제 주제를 모르니까 이참에 제대로 가르쳐야겠군!”그가 발을 내딛자 마치 활처럼 튕겨 나가더니 송재림의 가슴팍을 가격하려 했다.“폭명권!”송재림은 피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면서 주먹을 뻗었다.치익!양측의 거리가 고작 50cm 정도 남았을 무렵 송재림의 옷소매에서 갑자기 대량의 하얀 가루가 뿜어져 나왔다. 화들짝 놀란 장 어르신이 눈을 감고 피하려 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온 얼굴에 맞고 말았다.그 순간 비틀거리면서 뒷걸음질 친 장 어르신은 머리가 무거워지는 걸 느꼈고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하얀 가루가 그저 횟가루인 줄 알고 눈만 감았는데 알고 보니 마취약이었다. 게다가 진기로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마취약이었다.“내 주먹맛 좀 봐!”장 어르신이 맥을 못 추는 틈을 타서 송재림은 그의 복부를 힘껏 가격했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장 어르신은 수 미터 정도 밀려났고 진기마저 흩어졌다. 게다가 코와 입에서도 피가 멈추지 않았고 비틀거리면서 제대로 서지조차 못했다.“비... 비겁한 놈 같으니라고!”장 어르신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더니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
“날 죽이겠다고?”송재림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듯 크게 웃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도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마음껏 조롱했다.“저 자식 미친 거 아니야? 감히 송재림 씨한테 저딴 식으로 말해?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가 봐.”유혜지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흥!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송재림 씨한테 도발해? 아주 명을 재촉하는구나.”나승엽이 싸늘하게 웃었다.송재림이 누구인가? 천하회의 엘리트이자 송만규 맹주에게 직접 전수받은 사람이었다. 이런 거물이 기생오라비 하나 죽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송재림 씨는 혼자서도 거뜬히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그런 사람을 어떻게 막아? 유진우 저 자식은 기회가 있을 때 도망가지 않고 되레 죽음을 자초하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어.”단소홍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했다.“흥, 주먹 좀 쓸 줄 안다고 저렇게 건방을 떨어? 저런 놈은 죽어도 싸!”장경화는 팔짱을 낀 채 고소해했다.“젊은 사람이 제 주제도 모르고 날뛰네. 이따가 얻어터지고 나면 상대의 실력을 알겠지.”장홍매도 나서서 유진우를 비웃었다.조금 전 송재림의 대대적인 학살을 아무도 당해내지 못한 걸 그들은 똑똑히 목격했다. 하여 유진우가 덤비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송재림! 저 자식이 널 업신여기는데 가만히 있을 거야? 그냥 죽여버려!”뒤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선우장훈의 눈빛이 매우 살벌했다. 조금 전 유진우에게 걷어차여 아직도 피를 토하고 있었다. 마음속의 원한이 그야말로 극에 달했다.“인마,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알기나 해?”크게 웃던 송재림의 표정이 갑자기 서늘해졌다.“난 천하회 제자야. 저 영감마저도 내 상대가 아닌데 네가 뭔데 끼어들어?”“난 아무것도 아니지만 널 죽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야.”유진우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날 죽이겠다고? 흥, 너 아주 눈에 뵈는 게 없구나.”송재림이 실눈을 뜨고 말했다.“못
“X발, 저 기생오라비가 이렇게나 강했어? 송재림 씨마저 상대가 아니야?”나승엽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천하회의 제자가 이름도 없는 놈한테 졌다는 게 말이 돼?”유혜지는 어안이 벙벙했다.“쓸모없는 놈! 보기에는 강한 것 같더니 어쩜 저것도 못 버티냐.”장경화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유진우 저 자식 비열한 수단을 쓴 건 아니겠죠?”단소홍은 의심에 찬 눈빛으로 장홍매와 눈빛을 주고받았다.조금 전 송재림은 그야말로 기세가 넘쳤고 아무도 당해내지 못했다. 유진우가 무조건 참패를 당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결과일 줄은 전혀 몰랐다.유진우가 강한 걸까? 아니면 송재림이 겉만 번지르르할 뿐일까?“어때? 인제 항복해?”유진우는 한쪽 다리로 송재림의 어깨를 짓밟은 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너... 너 대체 누구야?”송재림이 이를 꽉 깨물고 일어서려 애를 썼지만 유진우의 무게가 천근처럼 느껴져 꿈쩍도 할 수가 없어 결국 얌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내가 누군지 상관하지 말고 항복하는지만 대답해.”유진우가 한쪽 다리에 힘을 점점 가하자 뚜두둑 소리가 들려오더니 무릎과 닿은 바닥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피범벅인 무릎이 차마 눈 뜨고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지고 말았다.“항복하긴 개뿔!”송재림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내가 누군지 알아?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뼈도 못 추리는 수가 있어.”“그래?”유진우가 싸늘하게 웃더니 갑자기 발에 힘을 가했다.쿵!송재림의 무릎이 더 밑으로 내려갔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 머리에는 땀이 흥건했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으며 피도 계속 토해냈다.“멈춰!”그때 보다 못한 나승엽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이 자식아, 경고하는데 송재림 씨를 당장 풀어줘. 안 그러면 큰 화를 입게 될 거야!”“그래! 송재림 씨는 천하회 제자야. 함부로 했다간 천하회의 적이 된다고.”유혜지도 나서서 아우성쳤다.“천하회?”그 소리에 유진우는 눈썹을
“으악...”송재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죽는 순간까지도 유진우가 진짜로 자신을 죽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도발하는 게 아닌데... 하지만 인제 와서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의 동공이 점점 풀리면서 의식을 잃어갔다. 유진우는 마치 죽은 개를 버리듯 송재림의 시신을 휙 던져버렸다.쿵!시신이 벽에 부딪힌 다음에 바닥에 떨어졌는데 주변에 흙먼지가 가득 날렸다.그 순간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송재림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는데도 유진우에게 죽임을 당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송재림은 천하회의 제자이자 무도 연맹 맹주 송만규의 조카이다. 그런 사람을 어찌 감히 죽인단 말인가?“죽... 죽었어? 저 자식이 송재림을 죽였어?”넋이 나간 선우장훈은 눈앞의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송재림의 신분이 그와 거의 비슷했고 심지어 앞날은 그보다도 더 창창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송재림을 죽였다. 죽고 싶어서 안달 난 건가?“미쳤어, 미쳤어. 저 자식 완전히 미쳤어.”“송재림을 죽이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구나.”“저 자식 천하회뿐만이 아니라 송 맹주님까지 건드렸어. 앞으로 어딜 가든 도망 신세가 되겠네.”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미친놈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유진우를 보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송재림을 죽이고 천하회와 송만규를 건드린단 말인가?“유진우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어떻게 저렇게 다짜고짜 사람을 죽일 수가 있어?”단소홍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정말 미친놈이구나. 다행인 건 얼마 못 살고 곧 죽을 거야.”장경화가 싸늘하게 웃었다. 송재림이 죽든 말든 그녀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송재림을 죽였다는 건 제 무덤을 스스로 판 격이기에 언젠가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그 광경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유
“사철수 씨, 아직도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예요? 사진이라도 찍어줘요? 빨리 보물 지도를 찾아내세요.”불만으로 꼴 독 찼던 유태범은 못마땅한 얼굴로 사철수에게 화풀이했다.“알겠어요. 서두를게요.”유태범의 말에 사철수는 즉시 합금으로 되어 있는 대문 앞으로 다가가 채원진의 부러진 손을 들어 중간 부분에 있는 감응 위치를 살짝 눌렀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터운 대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자, 금속으로 만든 금고가 드러났다.금고는 약 33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운데에는 골드바가 사람의 키보다 더 높게 쌓여 있었다.골드바 외에도 그 주변에는 다양하면서도 진기한 보물들이 빽빽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싸고 귀중한 물건들이었다.“이곳은 채원진의 개인 금고예요. 채원진은 마음에 드는 모든 물건을 전부 이곳에 수집했어요.”사철수가 설명했다.“보물들이 어마어마하네요.”유천우는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나가면 성을 하나 사고도 남겠네요.”“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호룡각의 다른 세 보물 창고에 비하면 눈앞에 있는 것들은 새 발의 피죠.”사철수가 설명했다.“정말이에요?”유천우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당신 말대로라면 호룡각의 보물을 전부 모으면 산더미가 되겠는데요?”“제가 직접 본건 아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아왔으니, 산더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사철수는 진지하게 말했다.“좋아요. 아주 좋아요! 빨리 모든 보물을 긁어모으고 싶네요.”유천우는 정신이 번쩍 들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보물 지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유태범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어요.”사철수는 맨 안쪽 선반으로 가서 위에 놓여있는 정교한 박달나무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유진우에게 건넸다.유진우가 열어보니 안에는 양피지 3장이 들어있었다. 모든 양피지에는 상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지도 중앙에는 보물 창고의 위치가 금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보물 지도가 진짜라면, 지도에 그려져 있는
“보물 지도는 어디 있나요?”유진우가 추궁했다.“채원진의 지하 밀실에 있어요. 내가 직접 세자 전하를 모시지요.”사철수가 말했다.“지하 밀실?”유천우는 실눈을 뜨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죠? 나중에 나를 악랄하다고 탓하기 싫으면 그런 생각은 빨리 접는 게 좋을 거예요.”밀실 같은 건물에는 함정과 암기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천우는 사철수가 다른 속셈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저는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사철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앞서서 안내하세요.”유진우가 두 근위병에게 눈치를 주자 근위병 두 명이 와서 사철수를 일으켜 세웠다.“잠깐만요. 밀실에 있는 보물 상자를 열려면 채원진의 손이 필요해요.”사철수가 갑자기 말했다.“그건 쉽죠.”유천우는 즉시 칼을 빼 들어 채원진의 오른손을 잘라 사철수에게 건네며 말했다.“자. 선물이에요.”사철수는 징그러웠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채원진의 손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유진우와 몇몇 사람은 사철수를 따라 기지로 들어갔고 마침내 지휘실 입구까지 도착했다.사철수는 문을 열고 벽 쪽으로 다가간 다음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하나를 떼어냈다.그림 뒤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알아차리기 어려운 하나의 버튼이 있었다.사철수가 손을 내밀어 버튼을 누르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갑자기 양쪽으로 열리더니 안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드러났다.사철수가 유진우를 포함한 몇 명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뒤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닫히더니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반 시간 남짓 지나자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유진우와 몇 명 사람들의 눈에는 넓고 호화로운 지하 밀실이 들어왔다.말이 밀실이지 사실 호화 저택에 가까웠다. 안에는 없는 것 없이 다양한 생활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많은 물과 식량도 수집되어 있었는데 수십 년 동안 혼자 생활하기에는 충분한 수량이었다.“핵 방지
“유진우?”무릎을 꿇은 채 냉정한 표정을 한 유진우를 바라보는 사철수의 얼굴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 놀라움과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더욱 컸다.흑용군이 매복되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사철수는 이미 호룡각의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호룡각의 기지는 파괴되었고 채원진은 목숨을 잃었으며 사철수는 유진우한테 체포되었다. 하지만 사철수는 어쩌면 이게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비록 사철수가 호룡각의 사람이긴 했지만, 서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서경은 이미 사철수한테는 고향 같은 곳이었고 주변에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사철수가 저질렀던 많은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던 거라 마음이 늘 불편했었다.오늘,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모두 사철수의 업보였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였다.“아저씨,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채원진이 패했으니, 당신도 패한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제 와서 더 할말이 남았나요?”유진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도적이 되는 법이지요. 세자 전하께서 죽이시든 벌을 주든 저는 다 괜찮습니다. 다만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사철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했다.“당신이 지금 나한테 그런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유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세자 전하, 죄인인 저는 죽어도 마땅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와 딸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용서해 주십시오.”사철수는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유진우에게 절을 올렸다.“당신 말대로 그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못난 남편과 아비 때문에 그들도 죄인이 된 겁니다. 설마 당신은 어리석게도 그렇게 큰 죄를 지어 놓고 가족은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거로 생각한 겁니까?”유진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세자 전하, 공을 세우는 거로 저의 죄를 보상하면 안 될까요? 세자 전하께서 소가 되라면 소가 될 것이고 말이 되라면 말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때 조무진이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조무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완전 무장을 한 군부가 보였는데 족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검은 갑옷을 입고 긴 칼을 허리에 찬 병사들은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했다.얼핏 보면 마치 강철로 되어 있는 호수 같았는데 멀리서부터 강한 압박감을 주는 이 부대는 바로 서경의 최강 정예 부대 흑용군이었다.“보아하니 사철수는 이미 체포된 것 같네요.”이청성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흥용군의 리더는 바로 유천우였다.당시 유천우는 명령에 따라 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호룡각의 정예 부대를 미리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 뒤 절대적인 병력 우세로 오천여 명의 적을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로 체포했다.쿵 쿵 쿵!수만 명의 흑용군이 가까워질수록 그 압박감은 점점 더 강해졌다. 성벽 위에 있던 백호군들도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소문에 의하면 흑용군은 용국의 최강 군부로서 창시 이래 백전백승을 이뤘고 여러 차례 뛰어난 공을 세웠으며 어떠한 군부도 흑용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없다고 했다.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소문은 거짓이 아닌듯했다. 흑용군의 강렬함과 살벌함은 충분히 다른 군부를 경시할 만했다.“형! 임무를 완성했어요. 호룡각의 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잡아들였어요.”유천우가 먼저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잘했어.”유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은 어떻게 됐어요? 채원진은 죽었어요?”유천우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말했다.“머리가 잘렸는데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조무진은 발로 채원진의 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말했다.채원진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땅바닥에서 굴러 유천우의 발밑에 멈추었다.“뭐야! 이렇게 못생겼다고? 어쩐지 맨날 가면을 쓰고 다니더라니.”유천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고 서경을 해친 놈을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채원진은 이미 죽었고 밑에 있던 정예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니, 호룡각은 이제 완전히 멸망한 셈이에요.
채원진은 죽고 호룡각 기지는 함락되었다. 이로써 호룡각은 조직 전체가 완전히 멸망했고 남은 사람이라고는 흩어져 있는 병사들뿐이라 크게 위험이 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유진우는 방심하지 않고 호룡각이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전부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만약 그들이 자진해서 항복한다면 죽음을 면할 수 있지만 끝까지 저항한다면 남은길은 죽음뿐이었다.“형, 드디어 이 재앙 같았던 놈을 처리했네. 축하해!”조무진은 앞으로 걸어가 채원진의 시신을 발로 차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지었다.“다 네 덕분이야. 네가 20만 명의 백호군을 데리고 채원진의 퇴로를 끊어놓지 않았다면 채원진은 또 다른 기회를 찾아 연명했을지도 몰라.”유진우가 말했다. 그는 채원진을 죽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 결국 채원진은 죽었고 그는 승리했다.“난 별로 한 게 없어. 고마워할 거면 공주마마께 고마워해야지.”조무진은 고개를 돌려 뒤에 서있는 이청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공주마마께서 형을 돕는다고 엄청 바쁘셨어.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촉하느라 발등에 불이 붙을 뻔했다니까.”“조무진 씨!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이청성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공주마마께서 학식과 도리가 깊고 외모와 지혜가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었어요.”조무진은 아첨하며 웃음을 지었다.“흥!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요.”이청성은 조무진을 흘겨보며 말했다.“공주마마, 감사합니다.”유진우는 공수하며 말했다.“뭘 그렇게 예의를 갖춰요?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도와줬을 뿐이에요.”이청성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채원진은 우리 공공의 적이잖아요. 유진우 씨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보면 백성을 위해 나쁜 놈을 제거 한 거죠.”“공주마마의 대의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유진우가 웃으며 말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 비록 채원진이 죽었다고 하
반면 채원진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십여 미터나 날아가 끊임없이 피를 토했다. 팔 전체가 파열되었고 용담적염창도 튕겨 나갔으며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누워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도련님, 괜찮으십니까?”홍복홍은 재빨리 달려가 떨고 있는 유진우를 부축했다.“괜찮아요.”유진우는 몸에 기혈이 들끓고 팔이 저리고 검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았다.비록 채원진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방금 전력으로 내뿜은 일격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결국 유진우도 피를 토하고 말았다.채원진의 몸에 있는 멸신독이 퍼지지 않았다면 오늘 그를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왜? 이럴 수 없어. 절대 이럴 수는 없어...”땅에 엎드려 맥 빠진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채원진의 두 손은 긴 손가락 자국을 남긴 채 땅바닥에 푹 꺼져 있었다.안 그래도 흉측하던 얼굴이 더욱 흉측해 보였다.“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유진우는 창궁검을 손에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채원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한 세대의 효웅이었던 채원진은 마치 죽음을 앞둔 늙은 개처럼 낭패와 처참함 그리고 빨리 죽기 위해 발악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유진우! 이 비열한 새끼야! 네가 이런 모함을 꾸미지 않았다면 내가 패할 가능성은 절대 없었고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을 거야. 인정 못 해. 죽어도 인정 못 해!”채원진은 미친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그의 상대는 용국의 지존인 서경 왕 유만수처럼 천하를 뒤흔든 거물이었는데, 젖비린내 나는 아이들 몇 명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채원진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비열?”유진우는 콧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이런 단어가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어이없구나. 사람을 시켜서 내 아버지를 암살하고 이간질로 삼촌을 유혹하여 반역을 도모해 서경을 혼란에 빠뜨리고. 네가 했던 일 중에 어느 하나 비열하지 않은 일이 없어. 죽을 때가 되니 이제 와서 도리를 따지는 거야? 쪽팔리지도 않아? 그리고 네가 인정하든 못하든 난
“채원진, 나라와 백성을 해친 네 죄가 극악무도하니 인제 그만 포기하고 꼼짝 말거라. 반항한다면 사살할 것이다.”이청성은 손에 황권을 상징하는 금색 영패를 쥔 채 차가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청성이 이번에 유진우를 따라 서경에 온 이유는 바로 호룡각에 남아있는 잔당을 대처하기 위해서였고 여러 가지 경우를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두었다.병력을 이동하라는 칙령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이성민이 직접 내린 거였고 그 덕분에 20만 명의 백호군을 움직여 이번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왜?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지?”이청성을 본 채원진은 절망하는 얼굴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그의 입과 코에서는 검붉은 피가 더욱 많이 흘러내렸다.“채원진, 넌 이제 끝났어. 판을 뒤집을 가능성은 절대 없으니 그만 포기해. 오늘이 지나면 호룡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어둠 속에 숨어 살던 추악한 놈들은 자기가 했던 행동에 책임지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유진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야! 난 아직 패한 거 아니야! 절대 그럴 수 없어!”채원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내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제 겨우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너희 같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 때문에 무너질 거 같아?”오랜 세월을 참고 견뎌 호룡각의 각주가 된 채원진은 이제 곧 막강한 권세를 누릴 줄 알았는데, 겨우 며칠도 안 돼 큰 타격을 입고 궁지까지 내몰리고 말았다.채원진은 단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어린 녀석들을 감당하지 못해 실패하고 죽는다는 게 달통 되지 않았다.“채원진, 아직도 모르겠어?”조무진은 담담하게 말했다.“용맥이 잘려서 사라질 때부터 호룡각 말살은 시작된 거야. 그때 너희들은 이미 대세와 기운을 잃었어. 만약 너희들이 어둠 속에 숨어서 연명한다면 몇 년 더 살 수는 있겠지만 그런 탐욕은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니까 서경왕부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지.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부터 넌 이미
“무슨 헛소리야! 호룡각의 사람이 아니면, 서경왕부의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야?”채원진은 눈이 시뻘게져 소리쳤다.“맞아. 내 사람들이야.”유진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네가 부대를 이끌고 우리를 매복시키려 할 때 내 병마들은 그 허점을 틈타 이미 너의 기지를 점령했어. 그러니까 이제 이곳은 내 소유야.”“유장혁! 그런 헛소리를 내가 믿을 거 같아?”채원진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아무리 내가 많은 정예병들을 데리고 나갔다고 하지만, 기지 내에 적어도 3만 명의 병마가 있었고 각종 방어 조치까지 더해져 10만 명 이상의 병력이 없다면 감히 공격도 못해. 서경의 흑용군은 모두 내 감시하에 있었는데 만약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했다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잖아.”“누가 그래? 내가 흑용군을 호출했다고?”유진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걸 나라고 생각 못 할 것 같아? 너의 잔당들을 토벌하기 위해 이번에 특별히 지원군들을 불렀지.”어젯밤, 유천우한테 최대한 빠른 속도로 서신을 전하게 한 이유가 바로 구원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구원병이 제때 도착해 유진우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수 있었다.“지원병? 무슨 지원병?”채원진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서경과 가장 가까운 부대는 서남 지역에 있는 백호군이고, 백호군의 사령관은 전쟁의 신 조무진이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무진은 나와 아주 친한 사이라 도움을 좀 받았지.”유진우의 담담한 대답에 채원진은 못 믿겠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백호군? 조무진? 그럴 리가 없어. 헛소리 하지 마!”“못 믿겠으면 뒤돌아봐.”유진우는 설명 대신 채원진의 뒤를 보며 턱을 치켜들었다.뭔가를 느낀 듯한 채원진이 뒤를 돌아보니 성벽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은색 갑옷을 입은 준수한 외모의 한 젊은 남자가 정예 장병들과 함께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젊은 남자는 다름 아닌 전쟁의 신 조무진이었다.“채원진, 어때? 이제 현실이 좀 받아들여져
“거의 거의 다 왔어. 곧 도착이야.”채원진은 정혈을 끌어 연소시키며 겨우 도망쳤다. 도중에 끊임없이 피를 토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한바탕 전력 질주 끝에 드디어 채원진의 눈에는 기지 앞의 높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성벽만 넘으면 그는 안전할 수 있었다.채원진은 기지 안에 많은 영단 묘약이 있으니, 그의 독을 치료할 약이 기필코 있을 거로 생각하며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성문을 열어라! 어서 빨리 성문을 열어!”성벽 지하까지 돌진한 채원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얼굴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여전히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슝 슝 슝.채원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에서 갑자기 팔뚝 굵기의 쇠뇌가 몇 대 발사되었는데 10만여 근의 힘을 숨기고 있는 쇠뇌의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놀란 채원진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팡 팡 팡.몇 대의 쇠뇌는 채원진의 눈앞에 떨어지며 엄청난 위력과 함께 뒤쪽 끝을 조금 남긴 채 반이 넘게 땅바닥 깊이 박혀 들어가며 굉음을 냈다.“야! 너희들 미쳤어? 나 호룡각의 객주야!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채원진이 성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은 오히려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무기를 들어 채원진에게 겨누었다.각종 중화력 무기도 가동되었고 수많은 포구와 총구가 동시에 성벽 아래에 있는 채원진을 겨누었다.누군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채원진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었다.“눈은 멋으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나도 못 알아봐? 당장 성문을 열어! 안 그러면 전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화가 치밀어 오른 채원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되려 집 문 앞에서 막힐 줄이야.‘이 녀석들, 도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채원진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원진, 너한테 남은 건 죽음뿐이야.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면 고통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