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그 순간 여자 부지배인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두 발이 허공에 떠 있었고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죽음의 공포가 서서히 그녀를 덮쳤다.지금까지 줄곧 아무 말 없던 백발의 여자가 한 손으로 그녀를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엄청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상대가 조금만 힘을 가한다면 목이 그대로 부러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죽일 필요까진 없고 뺨 두어 대 정도로 혼 좀 내면 돼.”유진우가 입을 열었다.“알겠어요.”짝, 짝!조홍연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부지배인의 따귀를 후려갈겼다. 그 바람에 부지배인은 머리가 어지러워 비틀거렸고 이가 부러진 건 물론이고 코와 입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다 때린 다음에는 쓰레기 버리듯 밖에 내다 버렸다.“콜록콜록...”부지배인의 얼굴이 벌겋게 퉁퉁 부어올랐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기침을 한참 동안 하다가 겨우 진정했다.“당신들... 정말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절대 가만 안 둬!”부지배인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하면서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계단 입구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과 부딪혀 곤두박질치고 말았다.“누구야? 눈 어디에 두고...”부지배인은 일어나면서 욕설을 퍼부으려다가 상대를 확인한 순간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며 알랑거렸다.“청아 씨, 사모님 오셨어요?”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가 얘기했던 귀한 손님들이었다. 이청아를 선두로 옆에 장경화, 단소홍, 장홍매 일행이 함께했다.“뭐야? 눈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야? 우리 들어오는 거 못 봤어? 금방 산 명품 신발이 너 때문에 더러워졌잖아. 재수 없어!”신발에 찍힌 발자국을 보며 장경화는 냅다 욕설부터 퍼부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바로 닦아드릴게요.”부지배인은 굽신거리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옷소매로 장경화의 신발을 깨끗하게 닦았다. 어찌나 비굴한지 조금 전 유진우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됐어, 그만해. 저리 썩 꺼져!”장경화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우가 천천히 일어나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장경화 일행을 발견한 순간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어쩜 밥 먹으러 왔다가 딱 마주치냐.’“또 더 있어?”문 앞의 이청아를 보며 조선미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아직 조홍연도 떼어내지 못했는데 이청아까지 나타났어? 하늘이시여, 지금 저한테 일부러 이러시는 거죠?”“유진우? 너였어?”자세히 살피던 장경화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너 왜 여기 있어? 우릴 일부러 따라온 건 아니지?”“그럴 리가요. 우린 그저 식사하러 왔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식사? 흥,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누가 알아?”장경화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집안이 잘 나가는 거 알고 우연을 가장해서 만난 다음에 우리한테 빌붙으려는 수작이지? 너 같은 사람 너무 많이 봤어.”“맞아요!”단소홍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기고만장한 태도로 말했다.“유진우, 경고하는데 우리 이젠 네가 함부로 넘볼 수 있는 그런 신분이 아니야.”“당신들이 무슨 신분이든 나랑 상관없어요. 다른 일 없으면 우리 식사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나가 주세요.”유진우는 대놓고 그들을 내쫓았다.“퉤! 이 룸은 사모님께서 예약하신 룸이야. 당신들이 악의적으로 차지한 거라고!”유혜지가 날카롭게 호통쳤다.“들었어? 여긴 우리가 예약한 룸이야. 나가도 너희들이 나가야지.”장경화가 오만한 얼굴로 말했다.“명령하는데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당장 꺼져!”단소홍이 두 눈을 부릅떴다.“이 방은 우리가 먼저 예약했기 때문에 악의적으로 차지했다느니 뭐니 그런 소리 집어치워요. 그리고 당신들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건데요?”유진우가 싸늘하게 물었다. 어차피 인연을 끊은 마당에 체면을 봐줄 필요도 없었다.“건방진 놈!”장경화가 두 눈을 부릅뜨고 호통쳤다.“유진우,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이딴 식으로 나한테 말해? 내 한마디면 너희들 싹 다 감방에 처넣을 수 있어.”문 어르신이
조선미와 이청아는 서로 대치하면서 아주 치열한 눈싸움을 벌였다. 저마다 아리따운 얼굴을 하고서는 엄청난 승부욕을 드러냈다.“선미 씨랑 말싸움하고 싶지 않아요. 잘잘못은 뭇사람이 결정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약한 방을 차지했으니 나가지 않겠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수밖에 없어요.”이청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주 차분한 말투였지만 카리스마가 넘쳤다.“신고요? 마음대로 해요.”조선미는 전혀 겁먹은 기색이라곤 없이 씩 웃어 보였다.“청아야, 이 사람들 정말 뻔뻔스럽기 짝이 없어. 체면이고 뭐고 봐줄 필요 없이 그냥 싹 다 내쫓아버려!”장경화가 씩씩거리며 말했다.“맞아요! 분명히 우리가 예약했는데 이 사람들이 뭔데 차지해요?”단소홍도 나서서 고함을 질렀다.그때 천향루의 경비원이 천천히 모여들기 시작하자 장경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만히 서서 뭐 해? 당장 저 사람들을 내쫓아!”“못 들었어? 싹 다 내쫓으라고.”유혜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싸우자고? 기꺼이 받아주지.”유진우는 두어 걸음 나서면서 조선미의 앞을 막아섰다. 조홍연도 두말없이 칼을 뽑아 들었다. 유진우의 한마디면 눈앞의 사람들을 가차 없이 전부 죽여버릴 수도 있었다.“잠깐!”이청아는 손을 들어 경비원들을 제지하더니 유진우를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아직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소란 피우지 말고 나가요. 안 그러면 당신들 결과 책임 못 져요.”“소란?”유진우는 고개를 저으면서 코웃음을 쳤다.“회장님,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나 본데 우리가 소란 피우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우릴 방해하는 거라고요.”“우리가 예약한 룸을 차지하고서는 어디서 큰소리예요?”이청아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전에 유진우에 대한 인상이 꽤 좋았고 심지어 스카우트 제안까지 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 모습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다.“정확히 말하는데 이 방은 우리가 먼저 예약했고 빼앗으려 한 건 당신들이에요. 그리고 당신들한테 양보하지 않으니까 협박까지 했고요. 대체 막무가내인 쪽이 어느 쪽일까
“저...”유혜지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계속 변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청아가 제대로 화가 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쓸모없는 년!”그때 옆에 있던 장경화가 참다못해 유혜지의 뺨을 후려갈기더니 욕설을 퍼부었다.“방 하나 예약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해? 너 때문에 창피해 죽겠어!”“사모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유혜지는 따끔거리는 볼을 움켜쥔 채 화를 내기는커녕 굽신거리며 사과했다. 그 모습은 정말 비굴하기 짝이 없었다.“죄송하다고 하면 다야? 룸은 어떻게 해결할 건데? 이따가 귀한 손님 만나야 하는데.”장경화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시키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뿐더러 유진우 앞에서 망신까지 당하게 했다.“사모님, 지자 1호룸은 어떤가요? 거기 환경도 괜찮은데.”유혜지가 떠보듯 물었다.짝!장경화는 또다시 따귀를 날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머리가 어떻게 됐어? 우리 신분이라면 천자호에서 식사해야지, 지자호가 우리랑 어울린다고 생각해?”“맞아요! 하나는 하늘이고 하나는 땅인데 비교가 돼요?”단소홍이 팔짱을 끼고 불만을 드러냈다.“유진우 저놈마저 천자호에 들어왔는데 우리더러 지자호에 가라고요? 우리 신분이 저놈보다도 못하다는 거예요?”“그게 아니라... 저...”유혜지는 얼굴을 움켜쥐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이 이 정도로 커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이청아 일행에게 잘 보일 계획이었으나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귀인의 심기를 건드린 건 물론이고 따귀까지 얻어맞았다. 이게 다 유진우의 탓이라는 생각에 유혜지의 눈빛에 원망이 점점 짙어졌다.“됐어요. 지자호로 가야죠, 뭐. 지자호로 바꿔줘요.”이청아는 매우 언짢았지만 더 따지기 귀찮았다.“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겨우 고비를 넘긴 유혜지는 종업원에게 방을 준비하라고 했다.“잠깐!”장경화의 얼굴에 내키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청아야, 이대로 넘어가선 안 되지. 지금 우리 신분 잊었어? 용국에서도 최고로 귀한 신분이야. 어딜 가
안하무인인 장경화를 보고 있자니 유진우는 가소롭기만 했다. 언행과 행실, 그리고 옷차림으로 판단할 때 장경화가 귀인을 만나서 온 가족이 부유해진 게 틀림없었다. 돈이 생긴 건 물론이고 권력과 지위도 함께 생겼다.예전에 아무것도 없을 때도 기고만장한 사람이었는데 이젠 돈도 있고 권력까지 얻었으니 그야말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하여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야! 내 말 못 들었어? 얼른 가격 부르라고. 나 바쁜 사람이야, 여기서 너랑 낭비할 시간 없어.”장경화는 두 손가락 사이에 골든 카드를 끼고 재벌 사모님 행세를 했다.“내가 가격을 부르면 줄 능력이 안 될 텐데요?”유진우가 고개를 내저었다.“줄 능력이 안 된다고?”그의 말에 장경화가 피식 웃더니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했다.“유진우, 사람을 업신여겨도 정도껏 해야지. 우리 신분이 지금 어떤지 알아? 이 안에 얼마 있는지 모르지? 잘 봐, 이거 골든 카드야. 넌 상상도 못 할 금액이라고.”“맞아! 아직도 예전인 줄 알아? 지금 우리 신분과 지위는 넌 평생 노력해도 안 돼. 죽을 때까지 밑바닥에서 우릴 우러러봐야 해.”단소홍이 고개를 쳐들고 오만하게 말했다. 그들의 눈에 유진우는 한낱 보잘것없는 인간이었고 그나마 조선미 덕에 유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지금 문 어르신이 그들을 도와주고 있으니 조선미도 아예 안중에 두지 않았다. 작은 재벌 딸과 문 어르신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양측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됐어. 쓸데없는 얘기 그만해. 내 인내심에도 한계 있어.”장경화가 다그치기 시작했다.“그렇게 돈이 많다면 나도 사양하지 않겠어요. 룸 바꾸고 싶다면 이 정도 주세요.”유진우가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2백만 원?”장경화는 하찮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이렇게 배짱이 없어서야, 이러니까 여자한테나 빌붙어 살지.”“유진우, 너 방금 부자 될 기회를 놓쳤어.”단소홍은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했다.“자, 2백만 원. 갖고 당장 꺼져!”장
“이... 이 파렴치한 놈아!”장경화는 너무도 화가 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원래는 허세 좀 부리려 했지만 유진우 때문에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괘씸한 것 같으니라고!’“가격은 이미 불렀고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돈을 주든지, 썩 꺼지든지 선택해요.”유진우는 상대의 체면 따위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사람 너무 업신여기지 마!”장경화가 노발대발했다. 지위가 높아진 후로 이런 망신을 당한 적이 없었다.“무슨 일이에요?”그때 양복 차림에 마른 몸매의 한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경비원들이 알아서 길을 터주었다. 그 남자가 바로 천향루의 사장 나승엽이었다.“오빠, 왜 인제야 왔어?”나승엽을 보자마자 유혜지의 안색이 밝아지더니 쪼르르 달려갔다. 나승엽은 그녀의 남자 친구이자 든든한 백이었다. 돈과 권력은 물론이고 인맥까지 넓은 그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다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얼굴 왜 그래? 누가 때렸어?”유혜지의 퉁퉁 부은 얼굴을 보며 나승엽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오빠, 난 오빠 요구대로 청아 씨가 쓸 천자호를 준비했는데 이 진상들이 글쎄 기어코 그 룸을 쓰겠다지, 뭐야. 안 된다고 하니까 주먹까지 쓰더라고. 내 얼굴 봐봐, 이 진상들이 이렇게 만들었어!”유혜지는 훌쩍거리면서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했다.그녀의 말에 나승엽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천향루를 오픈한 이래 지금까지 이곳에서 소란을 피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어떤 놈이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청아 씨, 사모님, 다친 데 없으시죠?”나승엽은 바로 화를 내지 않고 이청아 일행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나 사장, 마침 잘 왔어. 여기 어떤 놈이 우리 룸을 빼앗으려 해서 지금 기분이 몹시 안 좋아. 어떡하면 될까?”장경화는 팔짱을 낀 채 씩씩거렸다.“사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 제 불찰이에요. 앞으로 저희 가게에서 하시는 식사는 전부 무료로 해드릴게요.”그 소리에 적지 않
나승엽은 거칠게 몰아붙였고 상대의 체면 따위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좋게 좋게 해결하려 했던 유진우는 나승엽의 말에 표정이 확 차가워졌다.‘어쩐지 직원들도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더라니 다 사장한테서 배운 거구나.’“이봐, 못 들었어? 꺼지라잖아!”유혜지가 뒤에서 건방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천향루 위세가 아주 대단하네. 감히 손님을 내쫓아? 가게 문 닫고 싶어서 안달 난 모양이구나.”유진우의 말투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가게 문 닫는 게 아니라 당신들 안 받겠다는 거야.”나승엽이 당당하게 말했다.“천향루는 내 구역이야. 이곳에서는 내 말이 곧 법이라고. 지금 당신들 엄청 거슬리니까 1분 내로 싹 다 꺼져. 안 그러면 가만 안 둬!”그의 말에 사람들도 맞장구를 치면서 유진우 일행을 내쫓았다.“유진우, 어떻게 할 거야? 사장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끝까지 버텨? 창피하지도 않아?”장경화는 팔짱을 낀 채 대놓고 비웃었다. 말싸움도 안 되고 따져서 이기지 못할 바에는 그냥 억지로 밀어붙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흥! 아무리 내쫓아도 안 나가다니, 정말 낯짝도 두껍다니까요.”단소홍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그러게 말이야. 자기 신분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우리한테 덤벼? 정말 제 주제도 모르는 놈이야.”장홍매의 얼굴에 깔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에게는 지금 문 어르신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기에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억지 부리기 시작하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나승엽을 쳐다보는 유진우의 눈빛이 매우 싸늘했다.“그러겠다면?”나승엽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말했다.“사모님의 심기를 건드린 건 내 체면을 봐주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야. 그러니 당연히 내쫓아야지.”그가 손을 흔들자 가만히 지켜보던 경비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호시탐탐 노렸다. 심지어 어떤 경비원은 삼단봉까지 꺼냈는데 당장이라도 덤빌 기세였다.“유진우, 눈치껏 행동해. 지금의 넌 우리랑 아예 레벨이 달라.”장경화가 턱을 치켜들고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권력이 뭔지,
지하 세계에 발을 담근 사람이라면 아마 다 알 것이다. 지금 서울의 지하 세계는 강린파가 주름 잡고 있었고 그 어떤 세력도 강린파에 덤비지 못했다. 하여 강린파 제자들이 쳐들어온 걸 본 순간 경비원들이 바로 겁을 먹은 것이었다.“유진우 저 자식 꽤 힘이 있었구나.”장홍매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흥, 그래봤자 어디 내세울 수도 없는 깡패잖아요.”단소홍이 하찮다는 듯 말했다.“맞아, 다 보잘것없는 건달들이라서 뭐 어쩌지 못해. 심지어 우리가 나서지 않고 나 사장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걸?”장경화가 기고만장하게 말했다.예전이었더라면 그녀도 살짝 겁을 먹었겠지만 지금은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이깟 깡패들과 문 어르신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레벨이었다.“보스, 무슨 일이에요?”그때 장 어르신이 한 무리 사람들을 이끌고 2층으로 뛰어왔다.“천향루에서 손님을 함부로 대해서 내 심기를 건드렸거든요. 이곳 문을 닫고 앞으로 영영 못 열게 해요.”유진우가 덤덤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장 어르신이 손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얘들아, 여기 싹 다 엎어버리고 손님을 전부 내보내. 혹시라도 막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쥐어 패버려!”“네!”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강린파 제자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멈춰! 다들 멈춰!”그 광경에 나승엽도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이 쓰레기 같은 것들아, 천향루 뒤에 누가 있는지 알기나 알고 나대?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X발.”장 어르신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승엽에게 따귀를 후려갈기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우리 보스를 건드린 이상 그 누가 와도 널 구하지 못해!”“감히... 날 때렸어?”나승엽은 따끔거리는 볼을 움켜쥐고 발끈했다.“얘들아, 이 쓰레기들을 싹 다 내쫓아버려!”하지만 천향루의 경비원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강린파는 그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귀먹었어? 내쫓아버리라고!”
“유장혁?”그 소리에 주변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한때 유씨 가문의 천재는 이름을 널리 떨쳤었다. 그런데 10년 전 자금성의 난이 터진 후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런 그의 이름을 갑자기 들으니 놀랄 만도 했다.“도련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세자 전하의 생사도 불투명한 데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런 분한테 서경왕의 자리를 맡긴다는 건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 아닌가요?”조군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두 손까지 펼쳐 보였다.“그러게요, 도련님. 제발 현실을 잘 알고 말씀하세요. 세자 전하께 기댈 바엔 차라리 대장군님께 기대는 게 더 낫죠.”고원도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유천우가 자기 자신을 얘기할 줄 알았는데 실종된 지 10년이나 된 사람을 얘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이보다 더 터무니없는 얘기는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도 꼭 돌아올 겁니다. 그때 가서 형이 왕위를 이어받아도 문제없죠.”유천우가 싸늘하게 말했다.“도련님, 제가 하는 말이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세자 전하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서경왕의 자리를 계속 비워둘 작정인가요?”조군영이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형님 죽지 않았고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조 장군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유천우가 말했다.“살아있다면 지금 어디 계시는 거죠? 왜 나타나지 않는 겁니까?”조군영은 일부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형님한테 소식을 전했으니 꼭 올 겁니다.”유천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설마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아니죠?”조군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위왕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퍼지면 서경 전체가 크게 흔들릴 거예요. 기다릴 시간이 많지 않다고요. 지금 당장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도 나서서 유천우를 설득했다.“형한테 자리를 물려주는 건 아버지의 유언이에요. 지금 명령을 거역하겠단 겁니까?”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친 삼베옷을 입고 상복 모자를 쓴 젊은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남자는 위엄이 넘쳤고 온몸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전장을 누빈 조군영과 고원마저도 그를 보자마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표정이 진지해졌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유만수의 작은 아들 유천우였다.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유천우는 온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여 예전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도 많이 저질렀었고 서경의 사고뭉치라 불리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2년 동안 유천우는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더는 빈둥빈둥 놀지 않고 군에 들어가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처음에 사람들은 유천우가 군대에서 3일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산 도련님이 군대의 혹독한 훈련을 버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그런데 뜻밖에도 유천우는 군대에서 자리를 잡았고 공까지 세웠다.짧은 2년 사이에 병사에서 흑용군의 부장으로 성장했다. 든든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였다.사람들은 그제야 유천우가 응석받이로 자란 도련님이 아니라 군사 천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천우야, 드디어 온 거야?”아들을 보자마자 이의진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가라앉았던 슬픔이 다시 저도 모르게 밀려왔다.“어머니, 소식 다 들었어요.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유천우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군영과 고원에게 시선을 옮겼다.“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몰아붙이는 겁니까?”“그게...”조군영은 고원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도련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대국을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현재 서경왕부에 리더가 없어서 누군가 나서서 이끌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많은 문제가 생길 거예요.”“맞아요, 도련님. 대국을 생각하셔야죠.”고원은 충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대국?”유천우는 코웃음을 치고는 더는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
“서경 대원수의 직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내부 투표를 거칠 뿐만 아니라 폐하께 보고하여 최종적으로는 폐하의 결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의진의 눈빛이 경계로 가득했다.유태범이 왔을 때 그녀는 처음에는 형제 간의 정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군영과 고원의 몇 마디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깨달았다.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유태범은 흑용군에서 유만수 다음가는 위망을 가지고 있었다.표기대장군으로서 그는 많은 심복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반의 병권도 장악하고 있었다.왕이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유태범이 분명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유태범이 지금 이미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왕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권력을 탈취하려 하다니, 그녀는 그의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심지어 유만수의 죽음이 이 자들과 호룡각 잔당들이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만약 유태범이 병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할 것이다.“마마, 급할 때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찌 폐하의 결정을 기다릴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빨리 국면을 안정시켜야 합니다.” 조군영이 계속해서 말했다.“맞습니다!”고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장수가 밖에 있으면 군령도 받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는 상황을 전혀 모르니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우리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소인배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폐하에게 보고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내부 투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모두가 승복할 수 있어요.” 이의진이 다시 말했다.“투표라니요? 이게 투표할 일입니까? 전 서경을 둘러봐도 대장군님보다 원수 자리에 더 적합한 분이 누가 있습니까?” 조군영이 말했다.“그렇습니다, 왕비마마! 공적으로 보나, 위망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고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땅에 무릎을 꿇고 세 번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비록 똑같이 연기였지만 조군영보다는 훨씬 진실되어 보였다.“표기대장군 도착하셨습니다!”이때 문밖에서 우렁찬 외침이 울렸다.곧이어 금빛 갑옷을 입고 기상이 비범한 중년 남자가 급하게 걸어 들어왔다.이 사람이 바로 일품 표기대장군 유태범이었다!유태범은 표기대장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만수의 사촌 동생이기도 했다.유태범은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하고 천부적 재능이 있어 모든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만약 유만수가 없었다면 분명 유씨 가문의 가장 빛나는 천재였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만수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영웅 앞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대장군께 인사드립니다!”유태범을 보자 조군영과 고원은 즉시 가식적인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그들 둘은 모두 유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진정한 측근 장수들이었다.마치 유만수와 석태혁의 관계처럼 영광도 함께 하고 손실도 함께했다.“형님!”유태범은 두 심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영당에 들어서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무릎을 꿇었다.그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떨리며 얼굴에는 비통함과 분노의 빛이 어려 있었다.“어찌 이럴 수가? 우리 형님이 어찌 돌아가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가 한 짓입니까?!”유태범이 붉은 눈으로 연달아 분노의 외침을 터뜨렸다.“호룡각의 잔당들입니다. 그들이 자객을 부내에 잠입시켜 어젯밤 어르신을 암살했습니다.” 이의진의 얼굴이 흐리멍덩했다.“호룡각?”유태범이 이를 갈며 분노에 차 있다가 즉시 고함쳤다. “누구 없느냐! 즉시 군대를 집결시켜 전 성을 수색하라. 반드시 범인을 체포해야 한다!”“잠깐만요!”이의진이 갑자기 나서서 제지했다.“태범 씨, 매우 비통한 것을 알지만 지금은 아직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습니다.”“형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무
이 말이 나오자 조군영과 고원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두 사람이 오늘 온 것은 본래 기세를 과시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이의진이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입을 열자마자 반역이라는 죄명을 들이대다니.이런 죄가 뒤집어씌워진다면 그들은 아마 왕부의 대문을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마마, 농담 마십시오. 반역은 사형감입니다. 저희가 아무리 대범하다 해도 그런 일은 감히 못 하지요!” 고원이 연달아 해명했다.“맞습니다. 저희는 왕께 항상 충성을 다해왔는데 어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조군영도 따라서 부인했다.비록 두 사람 모두 그런 야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명백히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반역할 생각이 없다면 어째서 갑옷을 입고 부내에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규칙도 모르십니까?” 이의진이 조금도 봐주지 않고 꾸짖었다.그저 이품 장군일 뿐인데 군권이 조금 있다고 감히 왕부 안에서 눈깔을 찌푸리고 있다니.유만수가 살아있을 때 이 둘은 감히 이러지 못했다.“아이고! 제 정신 좀 보세요, 왕부의 규칙을 잊었네요. 마마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군영이 헛웃음을 지었다.이어서 갑옷을 벗고 차고 있던 칼을 내려 왕부의 경비에게 건넸다.“저희가 급히 오느라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었으니 개의치마시지요.” 고원이 웃으며 말했고 즉시 갑옷과 칼을 벗었다.이 광경을 보고 이의진의 안색이 비로소 조금 누그러졌지만 어조는 여전히 차가웠다.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왕께서 자객의 습격을 받아 위험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저희 둘이 특별히 문안드리러 왔습니다.”고원이 가식적으로 말했다.“소식통이 꽤나 빠르군요.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의진이 차갑게 말했다.“늦었다니요? 무슨 뜻입니까?” 두 사람이 의아한 척했다.이의진은 설명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몸을 돌려 영당으로 향했다.왕부 밖은 비록 동정이 없었지만 왕부 안에는 이미 흰 만장이 가득
“알겠습니다. 제가 경비병 신분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들어가시기 전에 먼저 변장을 하셔야 합니다.” 손도운이 결국 타협했다.비록 위험이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정오 무렵, 서경 왕부 안.비록 유만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봉쇄되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관리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어떤 이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조문을 왔고 또 어떤 이들은 다른 목적을 품고 있었다.“보국대장군 도착!”“운미대장군 도착!”왕부 문 앞에서 두 번의 외침이 들렸다.곧이어 갑옷을 입은 체격이 우람한 중년 남자 둘이 각각 친병들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왔다.이 친병들은 모두 허리에 장도를 차고 있었고 보기에도 험상궂었다.온 이들은 바로 이품 관직인 보국대장군 조군영과 운미대장군 고원이었다.“두 분, 왕부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반드시 갑옷과 무기를 해제하셔야 합니다.”한 왕부 친위가 조군영과 고원을 막아서며 동시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흥! 난 밖에 나올 때 갑옷을 벗지 않아. 꺼져!” 조군영이 노하여 꾸짖었다.“조 장군, 이건 왕부의 규칙입니다. 따라주시기 바랍니다.”왕부 친위가 말했다.“규칙? 나한테 감히 규칙을 운운한 건가?”조군영이 왕부 친위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규칙을 들먹이며 나를 압박하느냐? 죽고 싶나?”“조 장군, 소인도 명령을 받들어 행하는 것뿐입니다.” 왕부 친위는 동요하지 않았다.“헛소리 작작 하고 비켜. 그렇지 않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조군영이 갑자기 칼을 뽑아 왕부 친위의 목에 겨누었고 그의 모습은 매우 포악하고 극도로 횡포했다.“제 머리를 베신다 해도 규칙은 지켜야 합니다.” 왕부 친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이 개자식! 관짝을 보기 전에는 정신을 못 차리겠구나!”조군영은 마침내 화를 내며 칼을 거세게 들어 왕부 친위의 팔을 향해 내리쳤다.“멈추세요!”이때 한 소리의 여성의 호통이 울렸다.삼베 흰옷을 입은 이의진이 석태혁 일행을 데
이 순간 유진우의 눈이 피를 뿜을 듯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살기가 솟구쳤다.비록 예전에 아버지와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그동안 품었던 그 작은 분노마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단지 호룡각의 일을 완전히 해결한 후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에 효도를 제대로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둘이 만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암살당해 돌아가셨다. 이 충격은 그에게 너무나도 큰 것이었다.“창공!” 유진우가 갑자기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손을 뻗어 창공보검을 불러들이고는 밖으로 달려 나가려 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와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호룡각의 잔당들을 모조리 섬멸해야만 했다!“전하! 제발 진정하십시오!” 유진우가 이성을 잃을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손도운이 급히 그를 막아서며 침착하게 조언했다. “호룡각은 준비를 하고 온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이렇게 무모하게 뛰쳐나가신다면 복수는커녕 오히려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리실 수 있습니다!”“비키세요!” 유진우의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창공검의 칼날을 손도운의 목에 바로 겨누었다. 예리한 기운이 피부를 스치며 상처를 내자 피가 천천히 배어 나왔다.“전하! 저를 죽이시더라도 전 전하를 막아야만 합니다. 제가 어찌 전하께서 죽으러 가시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전하께 더 이상의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손도운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유진우 앞을 가로막은 채 죽음도 불사하는 자세를 취했다.유진우는 이를 악물었고 그의 손에 든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몇 초간의 대치 끝에 그는 깊은 숨을 내쉬고 마침내 검을 내렸다.손도운의 말이 맞았다. 그는 지금 냉정해져야만 했다. 유만수가 죽었으니 왕부가 분명 큰 혼란에 빠졌을 것이고 이때
다른 처녀들도 모두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진심 어린 간청을 했다.이 광경을 본 유진우는 넋이 나갔다.노란 옷 처녀의 말은 그의 귀를 때리는 듯했다.지옥 같은 일을 겪고도 이 아이들이 자신이 아닌 천하의 모든 약자들을 생각하다니... 상상도 못 했다.이런 원대한 뜻과 깨달음은 그조차도 이루지 못할 것이었다.이청성이 말했듯, 이들은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빛을 향하는 처녀들이었다.귀하고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누가 여자가 남자만 못하다 했는가?진정한 대의 앞에서 이 여자들이야말로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었다.이런 의로운 용사들이 있는데 어찌 서경이 부흥하지 않을까? 어찌 천하가 평안하지 않을까?“오빠, 결정해요. 받아주지 않으면 저 애들은 살아갈 희망조차 잃을 거예요.” 이청성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어요?” 유진우가 엄숙하게 물었다.“절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모든 소녀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좋아요! 허락하죠!”유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부터 특별 훈련을 시작할 거예요. 견뎌낼 수 있다면 여러분들의 원대한 뜻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하지만 견디지 못한다면 편한 곳에서 평안히 살도록 해요.”“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노란 옷의 소녀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나머지 소녀들도 따라 외쳤다.유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청성을 바라보았다. “당분간 네가 돌봐. 내일 저애들의 거처를 정하도록 해.”“알겠어요.”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으며 소녀들을 데리고 떠났다.일행이 막 나가자 손도운이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그의 표정이 매우 당황스러워 보였고 큰일이라도 난 듯했다.“전하! 큰일 났습니다!”유진우를 보자마자 손도운은 ‘쿵’하고 무릎을 꿇고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왕부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왕께서 자객의 암살로 돌아가셨습니다!”“뭐라고요?”이 말을 듣자 유진우는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잠시 후 정신을 차린 유
“오빠, 급한 건 알지만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아가씨들은 지금 오빠만 믿고 있고 목숨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어요. 받아들이면 좋은 점이 많을 거예요. 예를 들어, 오빠가 외로울 때...”“농담하지 말고 요점이나 말해요!” 유진우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솔직히 말할게요.”이청성이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장혁 씨, 사실 이 처녀들은 보기 드문 인재예요. 제가 이미 선별했는데 모두 영리하고 의지가 강해요. 조금만 가르치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거예요.”“무슨 뜻이에요?” 유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밀사의 중요성은 잘 아실 거예요. 특히 여자 밀사는 어떤 면에서 타고난 장점이 있죠. 이 처녀들을 밀사로 키우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청성이 말했다.“말은 쉽지, 밀사 하나 키우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전 지금 제 몸 하나도 챙기기 힘든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요?” 유진우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그는 이 처녀들이 평온하게 살기를 바랐지, 이용당하거나 장기말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밀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충성심인데 그들은 이미 그걸 가지고 있어요. 장혁 씨가 그들을 구해줬고 장혁 씨의 빛이 그들의 어두운 세상을 비춰줬죠. 저애들은 장혁 씨를 신처럼 여기고 있어요.”“시간과 노력은 걱정하지 마요. 장혁 씨가 직접 가르칠 필요 없이 좋은 스승만 찾아주면 돼요. 장혁 씨 곁의 손도운이라면 아주 적합할 것 같은데요.” 이청성이 살짝 미소 지었다.“그건 청성 씨 생각이고 저 애들한테는 물어봤어요?” 유진우가 물었다.“당연히 물어봤죠. 모두 하겠대요. 필요하다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요.” 이청성이 말했다.“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럴 필요까지야...” 유진우가 눈썹을 찌푸렸다.“장혁 씨, 어둠 속에 있어도 빛을 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요?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세요.” 이청성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제발 저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