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했지? 저 하윤범이라는 사람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야. 이진 씨를 자기 옆자리에 안배하다니.”“두 분은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웨이터는 이건과 시우를 다른 자리로 안내했는데 마침 이진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위치였다.정말 더할 나위 없이 불편한 자리였다.이건은 눈썹을 찌푸린 채 멀지 않은 자리에 앉은 하윤범을 지켜보았는데 그는 일관적으로 상냥한 모습으로 조용히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시우는 이건이 자리에 앉자 그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이건은 자리에 앉을 때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는데 그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낯선 사람들이라 그는 아예 입을 열지 않았다.“김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요즘은 또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나요?”갑자기 누군가가 흥미진진하게 물었다.“사실 제가 얼마 전에 100억짜리 프로젝트를 투자했는데 요즘 조금 성과를 보고 있어요.”김 대표라는 중년 남자는 배가 불룩하게 나왔는데 그의 웃는 얼굴은 매우 자랑하는 것 같았다.“역시 대단하시네요! 저도 최근에 화장품 회사를 인수하게 되었는데 지금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그 제품이에요!”또 서 대표라는 남자가 허풍을 떨기 시작했는데 그 테이블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하지만 이건은 예외였다. 그는 눈을 반쯤 감고는 가끔 시우와 이야기를 했다.한편 시우는 시큰둥한 표정을 한 채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도대체 자랑할 게 뭐가 있다고 저러는 거야?”이건은 눈을 뜨고는 차갑게 말했다.“너도 평소에 자랑하기 좋아하잖아?”그러자 시우가 반박했다.“난 저렇게 자랑하진 않아.”한편 테이블에 앉은 다른 사람들은 계속 자랑을 했다.“참, 얼마 전에 김 대표님이 좋은 프로젝트에 투자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프로젝트로 엄청 많이 벌지 않으셨어요?”이때 누군가가 아부하며 물었다.“다들 잘 모르시나 본데 김 대표는 남몰래 큰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이번 해변 프로젝트도 분명 김 대표가 차지할 거예요.”서 대표는 내키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비꼬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주목되었다.“이게 무슨 일이야?”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어 어떻게 된 일인지 보려고 했다.시우가 원했던 것이 바로 이 효과다. 그는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들의 가식적인 모습은 정말 그를 구역질 나게 만들었다.결국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자 그들은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이건은 시우의 생각을 알고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깨진 유리 조각을 내려다보더니 곧 고개를 들어 옆에 있던 웨이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곧 웨이터가 다가와서 예의 바르게 물었다.“무엇을 도와드릴 까요?”“새로운 술잔을 하나 가져다주세요.”이건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엄청 예의가 넘쳤다. 웨이터는 그의 태도가 잠시 놀라더니 곧 컵을 가져와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건은 눈을 들지도 않은 채 손을 뻗어 술잔을 시우 앞에 놓았다.“요즘 젊은이들은 잔도 제대로 들지 못하면서 큰 사업을 하려고 들다니?”김 대표는 콧방귀를 뀌며 은근히 두 사람을 비꼬았다.“잠시 주의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사업을 하는 게 컵을 드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나요?”이건이 물었는데 말투는 매우 차가웠다.시우는 김 대표를 쳐다보았는데 옆의 이건의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저 김 대표라는 사람, 더 지껄였다간 분명 큰일이 일어나겠어.’“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지금 내 말에 대꾸하는 거야? 내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 넌 아마 소꿉놀이나 하고 있었을 거야!”김 대표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이진은 원래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소란이 일어나자 고개를 돌려 그 테이블을 보았다.이때 마침 이건의 눈빛도 이진을 향해 있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눈을 마주 본 채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이진의 착각인지 그녀는 방금 이건의 매서운 눈빛이 자신을 보는 순간 조금 부드러워지더니 애정이 조금 드러난 것 같았다.이진은 입을
사람들의 의논하는 소리를 듣자 김 대표와 서 대표는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 둘뿐만 아니라 옆에서 맞장구를 쳐주던 사람들도 모두 놀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들과 같은 계급의 사람들은 이건을 만날 기회가 아예 없었기에 그를 몰라보는 것도 정상이었다.‘이런 곳에서 윤 대표를 만나는 것도 모자라 그를 화나게 만들다니.’이런 생각에 모두 자신의 앞날이 걱정되어 무척 가슴을 졸였다.김 대표는 잠시 걱정을 하더니 곧 두 사람이 사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는 여전히 악렬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내가 보기에는 저 두 놈은 분명 그 두 분을 사칭하고 들어온 걸 거야. 민 대표님과 윤 대표님이 이 자리에 앉을 리가 없잖아. 다들 괜히 속지 마세요!”시우는 김 대표가 아직도 꾀를 부리는 것을 보자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변명을 늘여 갈수록 결과는 더욱 심각해질 겁니다.”이건이 갑자기 입을 열었는데 그의 말은 마치 경고하는 것 같았다.김 대표는 그의 차가운 얼굴을 보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체면을 위해서도 여전히 굴복하지 않으려 했다.쌍방이 계속 이대로 대치되자 하윤범은 마침내 일이 이렇게 발전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태연자약하게 시우와 이건의 곁으로 갔다.이건은 하윤범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김 대표는 하윤범이 걸어오는 것을 보자 마치 도와줄 사람이라도 찾은 듯이 기뻐했다.“하윤범 씨, 당신의 파티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다행히 저희가 발견하게 되었어요. 하마터면 파티의 분위기가 이 두 사람에 의해 흐트러질 뻔했어요.”김 대표는 얼른 두 사람을 모함하기 시작했다.하윤범이 김 대표를 보던 표정은 혐오스러워 보였는데 곧 원래대로 회복되었다.그는 김 대표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더니 곧 몸을 돌려 허리를 굽히고는 이건에게 말을 걸었다.“윤 대표님, 정말 죄송합
하윤범이 웃으며 말했다.“아직 프로젝트가 누구 손에 놓일지는 모르는 일이니 두 분께서 논쟁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식사를 다 하셨다면 이만 돌아가서 쉬시죠.”이진은 그제야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희와 유연서가 아직 로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식사를 그만둔 채 몸을 돌려 식당을 떠났다.이건은 이진이 떠나는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저쪽으로 가면 됩니다.”하윤범은 자신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이건을 초대하려고 했다.그러나 이건은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바로 시우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하윤범은 그의 행동에 제자리에서 난감하게 손을 놓았다. 그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로비 밖의 휴식 구역에서 유연서는 시혁이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가능한 한 빨리 이진의 해변 프로젝트 인수를 막으셔야 할 겁니다. 만약 제 일을 지체하기라도 한다면 당신이 감당하지 못할 후과를 책임지게 될 거예요!”이 위협적인 메시지를 보자 유연서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는데 마음속에는 질투심이 들끓었다.그녀는 이진이 식당 입구에서 나오는 것을 보자 마음속으로 자신이 할 말을 연습한 후 천천히 이진을 향해 걸어갔다.이진은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얼굴이 창백한 유연서를 보았는데 곧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왜 그래요? 어디 아프세요?”유연서는 방금 파우더로 자신의 입술에 가루를 발랐기에 매우 허약해 보였다.“이진 씨, 방금 파티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속이 너무 안 좋아요. 저 먼저 돌아가서 좀 쉬어도 될까요?”이진은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네, 그럼 웨이터를 불러 방으로 모시도록 하세요. 몸조심하세요.”유연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내디뎌 밖으로 걸어갔다.로비를 나서자 유연서는 목적을 달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눈앞의 화원을 보더니 계획대로 그곳을 지나갈 준비를 했다.꽤나 넓은 곳에 이르자 유연서는 술에 취해 몸을 겨누지 못하는 척을 하면서 바로 비틀거리며 화원에
이진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말을 하지 않고는 정희와 함께 유연서를 방에 데려다주었다.이진이 술에 취한 유연서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몸을 돌리자 정희가 뭔가를 말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할 말 있어?”정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방금 화원에서 웨이터들이 한 말 너도 들었지?” 이진은 방금 그 대화들을 떠올리더니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반디 호텔의 장부에 결손이 생겨 곧 파산하게 된다는 건 이 중에 분명 뭔가 비밀이 있을 거다.“맞아, 하지만 떠도는 말들은 굳이 듣지 않는 게 좋을 거야.”사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미 해변 프로젝트의 진실성을 추측하고 있다.정희는 그제야 깨달은 듯이 이진에게 말했다.“난 애초부터 이 호텔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 방금 그 직원들도 알고 있는 일을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거야.”정희의 다소 화가 나고 놀란 표정을 보자 이진은 고개를 돌려 깊이 잠든 유연서를 보았다. 그리고 곧 정희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갔다.“넌 어떻게 생각해? 너야말로 이 프로젝트를 인수하려고 했잖아. 만약 그 직원들의 말대로라면 큰 손실을 보게 될 거잖아.”이진은 잠시 웃더니 말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한편 유연서는 두 사람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는 눈을 떴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방금까지 취해 보이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사라졌다.“역시 속임수에 빠져든 거야.”방금 이진과 정희가 반디 호텔의 적자에 대해 토론한 것을 생각하자 유연서는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창밖의 캄캄한 하늘을 보면서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홀로 중얼거렸다.“일이 재밌게 흘러가겠네.”“말해봐, 이제 어떡할 거야?”정희는 이진보다 더 조급해하며 물었다.“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이진의 침착한 모습을 보자 정희는 초조해 죽을 것만 같아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 두 웨이터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반디 호텔의 계좌에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
이진은 상황을 보더니 얼른 앞으로 나아갔다.“아가씨, 괜찮으세요?”이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가까이 다가가자 여자의 몸에 있는 상처들이 뚜렷하게 보였는데 그 상처들은 절대로 여자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생긴 것이다.“아파, 아파!”여자는 뭔가를 피하는 듯 불안해하며 소리쳤다.“어디가 아프세요? 어디 부딪힌 거 아니에요?”정희도 몸을 웅크리고 걱정하며 물었다.이진이 손을 내밀어 여자를 부축하려던 찰나 그 여자는 옹알옹알 헛소리를 한 뒤 이진과 정희를 밀어내고 허겁지겁 도망쳤다.이진은 눈빛이 굳어지더니 중심을 잡고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정희를 붙잡았다.“저 여자 왜 저러는 거지?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도 말 안 하고.”정희는 팔을 주물럭거리며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은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이진은 오히려 더욱 깊은 눈빛으로 그 여자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그러자 정희가 고개를 돌리며 이진에게 말했다.“이 호텔에 이상한 곳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방금 계좌 결손인 데다가 지금은 또 미친 여자를 만나다니.’이진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눈썹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저 여자 확실히 수상해.”정희는 의문을 품은 채 이진을 보았다.“여자의 모습은 거지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았을 때 그녀가 입고 있었던 치마의 가치는 2000만 원이 넘어.”이진은 담담하게 말하면서 점점 이 호텔이 남모를 비밀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2000만 원?”정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2000만 원의 옷을 입을 만한 사람이 이런 모습일 리는 없어.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할만한 사정이 있을 거야.’“그럼 어떻게 해야 돼? 저 여자 혹시 협박이라도 받은 건 아니겠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야?”정희는 어찌할 줄 몰랐는데 한편으론 그 여자가 걱정되었다.여자의 몸에 난 성차는 보기만 해도 아찔했기에 틀림없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먼저 따라가
정희는 화가 나다 못해 말을 이어가지 못했는데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말했다.“어서 도와주러 가자. 안 그러면 맞아 죽을지도 몰라! 방금 봤던 그 상처들은 분명 이곳에서 생긴 걸 거야! 우리라도 도와줘야 돼!”그녀는 생각할수록 조급했는데 안에 있는 여자가 나쁜 사람에게 제압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되어 얼른 일어서서 뛰쳐들어가려고 했다.이진은 정희가 충동적으로 행동하려는 것을 보고 얼른 그녀의 팔을 붙잡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해선 안 돼.”“저 여자가 쓰러질 정도로 맞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어?”“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돼.”이진은 정희를 나무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리고 조용한 오두막을 한 번 보고는 다시 정희의 눈을 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우리가 지금 충동적으로 나서면 저 여자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 게다가 네가 달려든다고 해도 그들을 이길 거라는 확신도 없잖아, 저 안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여자를 구할 수 있겠어?”정희는 이진의 말을 듣자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걱정되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돼? 이대로 계속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이진은 빠르게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좀 있다가 다시 와보는 건 어때? 지금이 밤이긴 하지만 아직 사람들이 너무 많아, 새벽에 사람이 없을 때 다시 온다면 안전할 거야.”정희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먼저 이곳을 떠나야겠어.”두 사람은 말을 마치고는 조용히 오두막을 떠나 호텔 로비 입구에 왔다.이때 정희가 물었다.“호텔 로비에 갈 거야?”이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녀는 오두막과 그 여자의 비밀이 더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반디 호텔의 뒤 화원에 어떻게 그런 오두막이 생긴 걸까.’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꽤 재밌다고 느꼈다.“분명 뭔가 비밀이 있을 거야.”“그럼 먼저 호텔 방으로 돌아가자.”이진은 로비 안의 떠들썩한 장면을 보자 다소 피
이진은 얼른 벽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 작은 오두막에 이렇게 많은 기구가 들어있다는 건 분명 이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발생했다는 거다.온몸에 상처투성이고 2000만 원짜리 치마를 입고 있었던 여자를 떠올리자 이진은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자는? 왜 안 보이는 거지?”정희는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혹시 가해자한테 끌려간 거 아니야?’이런 생각에 정희는 또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진은 정희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누구 있어요?”아무도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진은 멀지 않은 곳의 침대가 조금 흔들리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피해자들이 나쁜 사람을 피하기 위해 가장 많이 숨는 곳은 침대다.이진은 심지어 여자가 침대 밑에서 끊임없이 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천천히 앞으로 나가자 아니나 다를까 여자가 제대로 숨기지 못한 치마는 그녀가 화원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이진은 내색하지 않은 채 정희를 향해 사람이 침대 밑에 있다는 눈짓을 보냈다.정희도 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는데 두 사람은 함께 몸을 살짝 숙였다.그리고 손을 뻗어 침대 밑에 있는 여자를 잡은 뒤 밖으로 끌어냈다.여자는 심하게 발버둥 치기 시작했는데 여자는 몇 번이나 정희의 손에서 벗어났다.“얼른 끌어내!”이진은 여자의 팔을 꼭 잡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끌어내려고 했다.정희가 온 힘을 다하자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여자를 침대 밑에서 끌어냈다.여자는 끌려 나오자마자 횡설수설하다가 결국은 울음을 터뜨렸다.“아니, 싫어, 오지 마!”여자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손발을 휘저었는데 심지어 눈앞의 이진과 정희를 다치게 만들 뻔했다.정희 역시 어쩔 줄 몰랐는데 우선 이 여자를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가 문제였다.이진은 차분하게 쪼그리고 앉아 여자 옆에서 그녀의 등을 가볍게 다독였다.“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요. 저희는 당신을 구하러 온 거예요.”이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자를 위로했다.여자는 여전히 무서워 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