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던 경찰차 안에서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자 경찰들과 유연서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 받아도 될까요?”유연서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너무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경찰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평소에 아무리 잘난 척하던 사람이라도 이런 상황엔 모두 똑같네.’하지만 유연서가 벌인 일이 심각한 범죄행위는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전화를 받을 권리는 있었다.경찰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유연서는 즉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핸드폰 너머의 낯선 번호를 보자 유연서는 의심을 금치 못했다.“유연서 씨?”전화가 연결되자 핸드폰 너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분명 유연서가 모르는 목소리였다. “네.”유연서는 말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창가에 기대어 상대의 말소리가 경찰에게 들리기라도 할까 봐 손으로 핸드폰을 막았다.“만약 제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 유연서 씨는 경찰차를 타고 있겠네요. 그러니까 지금쯤 분명 궁지에 몰리셨겠네요.” 이 말을 들은 유연서는 이를 악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걱정 마세요, 아직은 괜찮으실 거예요. 아마 경찰서에 가서 간단한 조사를 하고 나면 풀리실 거예요.”“무슨 말을 하시려는 거죠?”유연서가 인내심을 잃은 채 묻자 그 남자는 가볍게 웃기 시작했다.“일단 조사에 협조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좀 이따 다시 연락드릴 게요.”유연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화가 끊기고 말았다. 유연서는 경찰 앞이라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잠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경찰서에 도착한 후 방금 그 남자가 말했던 것처럼 경찰들은 심문을 간단히 했을 뿐이다.이후 간단한 경고를 하고는 유연서를 돌려보냈다.경찰서에서 나온 유연서는 너무 긴장되어 쓰러질 것만 같았다. 손바닥은 물론 옷까지 모두 식은땀에 젖어 들고 말았다. 유연서가 택시를 타고 이곳을 떠나려던 찰나 방금 그 번호가 또다시 걸려 왔다.“당신 도대체 누구야!”누군지 알 수 없는 공포감은 그녀를 매우 불안
한시혁의 다소 광기가 넘치는 눈빛을 보자 이진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그녀도 이런 말들을 수도 없이 해왔는데 한시혁이 진작 알아들었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진 않았을 거다.아니나 다를까, 이진이 이 말을 꺼내자 한시혁의 표정은 잠시 굳어지더니 뒤이어 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이진아, 만약 사람 마음이 원하는 대로 바뀔 수 있다면 세상에 고통스러운 사랑은 없을 거야.”이진은 그의 말에 말문이 막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확실히 감정이라는 건 절대로 자신의 주관 의식에 의해 개변될 수 있는 건 아니다.잊으려고 할수록 기억은 더 깊어지고, 멀어지려고 할수록 감정은 수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이때 사무실 안의 두 사람은 무척 조용해졌다.한시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돌려 사무실을 떠났다. 이진은 고개를 돌릴 때 그의 눈빛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그리고 이 일이 완전히 가라앉기도 전에 GN 그룹에는 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보스…….”케빈이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 이진은 눈을 절로 비볐다.“나는 네가 GN 그룹에 있다는 게 아직도 적응되지 않네. 자기도 모르게 자꾸 여기가 AMC인 줄 알게 되네.”케빈은 이 말에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보스는 자신이 명령을 내렸으면서 오히려 적응하지 못하다니.’확실히 심도 있는 일에 대한 임만만의 숙련도는 여전히 케빈보다 약간 뒤떨어졌다.아직 임만만에게 구체적인 업무를 가르쳐 주는 단계지만 이진은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무슨 일이야?”케빈의 안색이 안 좋아 보이자 이진도 더 이상 장난치지 않았다. 이진은 처리하던 서류를 내려놓고는 눈앞의 케빈을 쳐다보았다.그러자 케빈은 급하게 계약서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보스, GN 그룹의 주식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기존 주식들은 모두 그대로지만 개별 주식에 변동이 생겼어요.”일부 중소기업의 개별 주식은 기본적으로 가장 높은 지배자, 즉 대표의 손에 놓여있었다.큰 숫자가 아니기에 신경 쓸 사람도 많지 않았다.그
“그게 무슨 말이죠?”아마도 유연서는 이진이 주주총회에서 이렇게 날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가뜩이나 불안하던 유연서는 자리에 앉은 채 안절부절못하였다.이진은 그녀의 반응을 예상한 듯이 참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웃었다.“주주총회에 참가하신다면 적어도 저한테 연락을 하셨어야죠. 안 그러면 당신이 소란을 피우러 온 거라고 생각하고 경호원들이 당신을 쫓아내기라도 하면 어떡해요.”“당신…….”유연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은 케빈을 향해 손을 흔들어 회의를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주주총회에 참석한 이사들은 눈앞의 상황을 모두 안중에 두고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GN 그룹의 공장은 현재 몇 군데 방치된 채 착공하지 않은 곳이 있는데 이제 진행할 때가 되었어요.”이전에 이진이 백정아의 사과를 받아주었기에 프로젝트의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진의 이 말이 끝나자마자 유연서가 입을 열었다.“전 동의할 수 없어요.” 유연서가 이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이진을 몰아붙이려고 한 행동이라는 걸 이진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유연서의 행동은 이진의 생각을 마침 검증한 셈이다.이진이 어떤 제의를 하든 유연서는 반대를 했는데 심지어 반대의 이유조차 제기하지 못했다.확실히 어느 그룹이든 주주의 결의는 프로젝트 자체에 관여할 수 있었고 딱히 이유가 필요하진 않았다.그러나 회의가 길어질수록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유연서가 앞장서서 반대를 제기하자 이진을 싫어하던 이사들도 따라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유연서 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이런 것들은 구체적으로 고려한 후 결정을 내리도록 합시다. 안 그러면 분명 우리 모두에게 피해를 줄 거예요.”이진은 이 말을 꺼낸 이사들을 차갑게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그녀는 주주총회가 이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그리고 그녀는 유
유연서는 기분이 상했는지 몸을 안정시키고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이건 당신이 자초한 일이에요. 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이기태 씨를 다시 GN 그룹의 대표 자리에 앉힐 거예요.”유연서는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도망치듯이 가버렸다.“보스, 괜찮으세요? 제가 저 사람을 조사해 볼까요?”한쪽에 서 있던 케빈은 한참을 참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진은 물론 케빈의 안색도 엄청나게 어두워졌다.그가 이진의 곁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누군가가 감히 이진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이진은 몸을 돌려 케빈을 보더니 가볍게 웃었다.“그럴 필요 없어, 저 여자는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꼬리를 드러낼 거야.”두 사람이 말을 하며 사무실로 돌아갈 때 윤이건이 대표 사무실의 입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이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윤이건을 쳐다보며 물었다.“윤이건 씨가 이곳엔 왜 계신 거죠?”“같이 밥이라도 먹으려고 온 거야.”윤이건이 말을 하며 케빈을 힐끗 보자 케빈은 얼른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갑자기 나타난 윤이건을 보자 이진은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이진은 사무실에 들어가 외투를 들고 윤이건을 따라 회사를 떠났다.두 사람은 근처에 새로 개업한 가게에 들어가 마주 앉았다.“왜 그래?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윤이건은 주문을 한 후 가볍게 입을 열었는데,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진은 몹시 놀라고 말았다.“내가 너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쯤은 쉽게 보아낼 수 있어.”이진은 윤이건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곧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유연서 씨가 GN 그룹의 주주대리인이 되었는데 믿기시나요?”“그 주주가 누구인데?”이진은 고개만 저을 뿐 한숨을 내쉬며 오늘 주주총회에서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이야기하는 과정에 그녀는 줄곧 윤이건의 표정을 살펴보았다.이진이 대놓고 자기를 쳐다보자 윤이건은 가만있기만 했는데 마음속으로는 그의 부인이 너무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이진의 말이 끝나자 주문한
“누구세요?”이진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핸드폰을 쥐던 손에 더 힘을 주었다.그녀는 이런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거나 다른 사람 손바닥에 놓인 듯한 느낌을 정말 싫어했다.“방금 말했잖아요. 당신에게 해야 될 말이 있으니 내일 아침 9시에 역 맞은편의 커피숍에서 기다릴게요.”“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면 전…….”이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반대쪽에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러자 이진은 화가 치밀어 올라 차갑게 웃으며 이를 악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이진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진 것을 보자 윤이건은 다소 걱정되어 그녀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이진은 윤이건을 힐끗 보더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자기가 어머니 댁 사람이라면서 저랑 할 얘기가 있어서 만나자고 했어요.” “그 사람이 한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어?”윤이건은 말을 하면서 이진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네, 왜냐하면 어머니 쪽에는 외삼촌 빼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어요. 게다가 방금 그 목소리는 분명 제가 모르는 목소리예요.”이진은 말을 하더니 핸드폰을 다시 들어 케빈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번호 하나 알아봐. 급한 거야.”말을 마치고는 방금 그 번호를 케빈에게 보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먼저 드세요.”이진도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테이블에 가득 찬 뜨거운 음식을 보자 이진은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윤이건은 이진이 갑자기 화제를 돌릴 줄은 예상하지 못해 잠시 멍하니 앉아있더니 곧 개의치 않은 표정을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자기가 만든 게 아니라면 아무 맛도 없기 때문에 먹든 안 먹든 상관없어.”“그럼 왜 절 데리고 밥 먹으러 온 거예요?”이진은 윤이건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물었다.하지만 윤이건은 그윽한 표정으로 장난기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난 아무거나 먹어도 되지만 자기는 안 돼.”윤이건의 말을 듣자 이진은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는데 손
이진은 윤이건의 이런 갑작스러운 행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진지하게 입을 연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농담을 한다면 일이 더 복잡해질 거다.결국 이진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살짝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윤이건은 이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곧 몸을 돌려 떠났다. 이튿날 아침, 이진이 별장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윤이건은 이미 회사로 출근했다. 평소대로라면 윤이건은 지금쯤 아침을 먹고 있을 것이다.오늘 이렇게 일찍 나간 것은 분명히 그녀를 혼자 보내고 싶진 않지만 다른 좋은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윤이건이 어제저녁을 먹을 때 삐진 표정을 떠올리자 이진은 자기도 모르게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윤이건은 첫인상과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네.’이진은 고개를 숙이고 시간을 보더니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별장을 나섰다.그녀는 외출한 후 검은 옷차림을 한 경호원 두 명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두 명은 윤이건이 안배한 경호원이었다.차를 몰고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마침 약속했던 9시였다.그녀의 뒤를 따르던 경호원들은 매우 은밀하게 숨었는데 윤이건이 말하지 않았다면 이진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이런 든든한 마음에 이진은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이 시간에 역 근처의 가게는 모두 손님으로 꽉 차 빈 테이블을 찾으려면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진은 바로 그녀를 만나려던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아마 이 사람의 카리스마가 주위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진은 망설임 없이 바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남자가 고개를 들자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자리는 저를 위해 남기신 거죠?”그 남자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더니 약간 미끄러진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리고는 입꼬리를 올렸다.“이진 씨는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예쁘시네요.”이진은 비록 생김새로 사람을 판단하진 않지만 줄곧 인연을 믿어왔었다. 게다가 이진은 첫인상을 매우 중시하는 편이였다.그리고 이진은 앞에 앉은 남자는 정말
이문권의 말을 듣자 이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는 자기가 벌인 짓을 모두 남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었다.‘아직 내가 유연서를 조사했다는 것을 모르나 보네. 그렇다면 계속 맞장구를 쳐줘야겠어.’이진은 이런 생각을 하더니 앉아있던 자세를 바꾸었는데 이문권은 이진이 드디어 자신의 말을 들을 의지가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이문권 씨의 말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그러자 이문권은 기쁜 표정을 짓더니 폴더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이게 증거예요?”이진은 사진을 받고 위에 찍힌 사람을 보더니 가슴이 뭉클해 났다.그 사진에는 이진의 어머니가 찍혀 있었는데 옆에는 이문권도 함께 서있었다.이문권의 현재 신분은 외국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사실 남양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이다.최근의 국내 시장이 해외보다 많이 활발해졌기에 국내로 돌아온 거다.사실 이문권은 신분에 대해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그는 확실히 이진의 외가 쪽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이진의 어머니와는 구면이 맞지만 그들 사이엔 다소 트러블이 있었다.이문권은 집착이 강한 성격이라 소유욕이 매우 강했다. 그와 이진의 어머니가 성인이 된 후 그는 이진의 어머니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감정이 점점 집착이 되어버렸다.결국 그의 소유욕은 이진의 어머니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이문권은 무심코 이진의 사진을 보더니 즉시 이진을 만나러 이곳에 오게 된 거다. 이진의 얼굴은 어머니와 똑 닮았지만 이진의 성격이 강한 편이었다.당시 이진의 어머니를 가지지 못했기에 이문권은 시선을 이진에게 돌렸다. 이진이 커피숍에 들어선 순간, 이문권은 어머니와 너무 닮은 이진을 보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만약 함께 찍은 사진이 증거라고 할 수 없다면, 이 서류를 한번 보세요.”이진은 그가 건넨 서류를 받아 대략 두 페이지를 넘겨보더니 마음속으로 가볍게 웃었다.‘이런 엉터리 서류로 나를 속이려 들다니.’고작 이런 서류들로 두 기업의 대표를 속이기는 힘들 것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진이 윤
이문권의 그럴듯한 연기를 보자 이진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혼자서 지어낸 이야기에 이렇게까지 몰입하다니…… 그래도 지금 멈추기엔 아까운 연기야.’이진은 이런 생각을 하더니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들고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나요? 얼른 저를 데리고 그곳으로 가 줘요!”그러자 이문권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이진은 이문권이 자신의 팔을 잡으려고 한다는 걸 느끼고는 얼른 몸을 피했다. 두 사람은 커피숍을 나선 뒤 차에 올랐는데 곧 한 찻집 문 앞에서 멈추었다.이문권은 앞에서 길을 안내하였고 이진은 두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초조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다. 한 룸의 입구에 도착하자 방문이 조금 열려 있었는데 딱 봐도 이진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한편 윤이건도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다.갑자기 유연서가 연락을 해 온 것도 모자라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분명 뭔가 의도가 있을 거다. 게다가 이진이 그 남양 사람을 만나러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윤이건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이때 이진은 문틈으로 룸 안을 쳐다보았는데 윤이건은 그녀를 등지고 있었고 유연서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윤이건이 앉은 자리에서는 이진이 온 것을 볼 수 없었지만 유연서의 자세와 행동을 보았을 때 틀림없이 이진이 온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윤이건은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무의식적으로 유연서를 밀어냈다.“이렇게 직접 확인하셨으니 제가 한 말이 진짜라는 걸 믿으실 수 있겠죠.” 귓가에 이문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혐오스러운 마음을 애써 참았다.“모두 이문권 씨 덕분이에요. 안 그러면 전 아직도 두 사람의 사이에 대해 몰랐을 거예요…….” 이진이 자신을 믿자 이문권은 더 이상 숨기지 않은 채 하려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단지 이런 나쁜 놈은 이진 씨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분명 당신 앞에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