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와 이진의 팀워크는 엄청난 연습으로 만들어진 것이다.그녀들은 눈빛 하나, 심지어 차의 작은 움직임 하나로도 서로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다.이진과 정희는 레이싱의 전설이었다. 비록 그 여자의 기술도 나쁘진 않았지만 그저 일반 사람들보다 조금 출중한 정도였다.이때 이진과 정희의 차는 그저 한 사람가량의 거리만 사이 두고 있었는데 뒤에 있는 여자는 너무 당황스러워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핸들을 꽉 잡고 있던 손과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현재의 상황으론 중간에서 그녀들을 추월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하지만 양쪽에서 추월하다가 살짝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바로 경기장 밖으로 날아갈 것이다.“허, 내가 가만있을 것 같아?”여자는 콧방귀를 뀌더니 옆에 앉은 사람에게 눈짓을 했다.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곧 무전기를 꺼내 뒤에 있는 차량들에게 연락했다.이번 시합에 참여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그녀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모두 그녀가 시합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참여한 거였는데 물론 그들도 그녀를 도우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이번의 요구는 매우 간단했다. 다른 차들이 이진과 정희의 차를 들이박는 것이다.뒤에 있던 선수들은 연락을 받자 모두 음흉한 미소를 지었는데 이 일에 참여한다면 분명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생각에 그들은 두 번째 바퀴를 돌 때 엑셀을 밟아 앞선 두 차량을 향해 달렸다.“정말 무식해.”정희는 백미러를 힐끗 쳐다보더니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들을 보고는 콧방귀를 뀌었다.두 번째 바퀴가 막 시작되었을 때 그들은 정희의 차량을 둘러쌌다.이진은 이번 시합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데다가 따지고 보면 그저 정희와 함께 놀기 위해 참여한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이기는 것보다 정희를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윤이건은 손잡이를 잡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진은 매우 진지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그는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만약 지금 말을 한다면 분명 헛소리만 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이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두 손을 허공에 놓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곧 그의 등을 감쌌다.이런 위험한 레이싱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은 채 그녀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둘을 한 팀이라고 볼 수 있다. 윤이건은 그저 자신을 증명하려고 한 행동이 아니라 그녀를 믿었기 때문이다.이런 생각에 이진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고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다.“이진아!”귓가에 갑자기 조급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진은 황급히 윤이건의 품에서 빠져나왔다.정희와 민시우가 급히 다가오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온통 걱정스러운 모습이 가득했다.“어때? 다치진 않았어? 너 방금 너무 급하게 돌았어.”정희는 숨을 헐떡이며 이진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두 번 둘러봤다.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자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마주 보며 웃었다.너무 오랜만에 느낀 감정에 두 사람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흥분되었다.두 손을 운전대에 올린 순간 그녀들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윤이건과 민시우도 그녀들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결국 그들은 자신의 얻은 이익 외에도 그들이 좋아하는 여자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다.경기가 끝난 뒤 우승자에게 트로피를 수여하는 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에 따라 이진은 매우 담담하게 올라가 트로피를 받고 작은 소리로 감사를 표했다.그녀는 딱히 시크한 척을 하거나 개의치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런 상황에 너무 익숙했던 거다. 그녀는 그저 레이싱을 좋아할 뿐이지 트로피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었다.그리고 이진은 직접 심판을 찾아가 말을 건넸다.“안녕하세요. 방금 몇 사람이 연속적으로 저희를 추월하려고 규정을 위반하는 일이 있었는데 다시 한번 철저히 조사해 주시길 바랍니다.”“무슨 위반이요?”심판도 경기장의 사람이기에 당연히 이진의 편을 들진 않을 것이다. 그는 이진의 말을 듣고 멍청한
“나보다 네가 만든 판이 더 큰 거 아니야?”윤이건의 시선을 따라 보자 정희와 이진이 시시덕거리고 있었었다.민시우는 갑자기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시합 전에 그들은 이미 이긴 사람이 3개월간 그의 여자친구가 되기로 확정했다.비록 3개월에 불과하지만 아주 좋은 스타트이기도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일이 어떻게 발전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두 사람은 이런 생각에 모두 기분이 하늘을 찔렀다. 보통 윤이건이 내기에서 이겼을 때 민시우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두 레이서분들, 같이 밥 먹으러 가지 않을 래요? 윤 대표님께서 내기로 많은 돈을 이겼거든요.”‘이 자식.’윤이건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의 말에 동의했다.경기장에서 식당까지 가는 길에 민시우의 입꼬리는 조금도 내려오지 못했다.“이번 경기는 정말 내가 본 것들 중에서 가장 재밌었어. 정말 너무 기뻐.”정희는 이진과 뒷줄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민시우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민시우와 사귀기로 한 일을 잊었을 거다. 그녀는 흥분되거나 화나기보단 오히려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그러나 이미 사전에 약속한 것이고 그녀가 이겼으니 반드시 이 선물을 받아야 할 것이다.이 식당은 민시우가 선택한 것인데 공원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마침 밥 먹을 시간이라 가게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다행히 민시우는 미리 룸을 예약했었다.민시우와 정희가 먼저 들어서고 나서야 윤이건과 이진이 따라 들어갔다.이진은 문에 들어선 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홀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몸을 멈칫했다.그녀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구석에는 이기태 일가 세 식구가 앉아있었다.다만 이기태와 백윤정은 줄곧 테이블에 함께 앉은 한 중년 남자에게 술을 권하고 있었기에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왜 그래?”이진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한 윤이건은 마음을 졸이며 걱정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갑자기 배가 고팠거든요.”이진은 가볍게 웃으며 그들을 못
이기태와 백윤정이 이영을 데리고 이 식당에 온 것은 확실히 누군가를 접대하기 위해서다.결국 환청 프로젝트 때문이었는데 원래 파트너인 주 대표가 자신의 주식을 모두 빼냈기 때문이다. 주 대표는 자기 돈을 가지고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싶진 않았고 더군다나 이진의 미움을 사고 싶지도 않았다.이진의 세력과 배후에서 지지하는 세력들을 더 하면 감당해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이렇게 된 이상 이기태도 계속 기다리거나 홀로 이 프로젝트를 짊어질 순 없었다.자금 문제가 가장 컸는데 더 기다리다가 프로젝트가 시작되지 못한다면 금방 회수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만약 일이 그 지경으로 되어버린다면 이기태는 분명 미쳐버릴 것이다.이대로 있으면 반드시 큰일 날것이기에 며칠 동안 생각하던 이기태는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만약 그가 사업 파트너 대신 프로젝트에 투자할 사람을 찾는다면 더 많은 이득을 볼 것이다. 이기태는 이런 생각에 자연히 시선을 부동산 쪽 재벌에게 두었다.투자에 대해 입을 열었을 때 그 재벌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기에 이기태와 백윤정은 계속 신호를 보내며 눈웃음을 유지했다.다만 그 재벌은 술을 몇 잔 마시더니 조금 취했는지 계속 이영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술기운이 오를수록 그녀에게 손을 대기 시작한 데다가 딴 마음을 품기도 했다.까놓고 말하면 이영이 마음에 들어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어 하는 것이다.이영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홧김에 핑계를 대고 화장실에 갔다. 백윤정은 딸이 걱정되어 곧 따라 들어왔다.그녀들은 얘기를 다 나눈 뒤 화장실 안에서 나오면서 마침 이진과 마주쳤다.“이진?”이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깜박거리며 자기가 취한 것이 아닌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녀의 큰 목소리는 그녀의 현재 심정을 나타낸 셈이다.“정말 이진이네. 이씨 가문의 대단한 딸.”백윤정은 이영을 부축하며 입을 열었는데 온통 비꼬는 말투였다.‘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만나다니.’이진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민시우한테 왜 이 가
“그게 무슨 소리죠?”백윤정과 이영이 화장실에 갔을 때 이 사장은 또 몇 잔의 술을 마셨다.이 사장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고 정신도 혼미해졌다.백윤정의 말을 듣자 이 사장은 이씨 가문에서 이영을 자기한테 주려는 줄 알고 마음속으로 기뻐 어쩔 줄 몰랐다.이때 백윤정은 싱긋 웃더니 얼른 일어나 이 사장에게 술 한 잔을 따랐다.“사실 이 사장님께서 저희 가정과 혼인을 맺으려고 하신다면 딸이 한 명 더 있거든요.”이기태와 이영은 이 말을 듣자 모두 어리둥절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백윤정의 뜻을 알아차리더니 웃기 시작했다.“이 사장님, 저희 집 막내딸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철이 없고 사람을 돌볼 줄도 모르지만 큰딸은 달라요.”“이씨 가문에 딸이 둘이나 있었어요? 하지만 말로만은 못 믿겠는데 사람을 데려오셔야죠.”이 사장은 말을 하면서 백윤정이 따른 그 술을 마셨다. 사람을 보지 못했기에 큰딸이 작은 딸보다 예쁘지 않으면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이 점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마침 저희 큰딸도 이 가게에서 밥을 먹고 있거든요.”한쪽에 앉아 바쁘게 고개를 끄덕이던 이기태는 다시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이때 백윤정과 이영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래요, 이렇게 열정적으로 소개해 주신다면 제가 한번 가보죠!”이 사장은 눈을 번쩍 뜨며 얼른 일어섰지만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다행히 이기태가 얼른 붙잡았다.이때 가게 안은 여전히 사람으로 가득 차 시끌벅적했다.백윤정은 자리에 돌아오기 전에 이미 이진의 밥을 먹고 있는 룸을 찾아냈기에 얼른 번호를 따라 그 룸으로 찾아갔다.이때 이진의 룸엔 민시우와 정희 두 사람이 서로 말다툼하고 있었는데 매우 화기애애했다.갑자기 거센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그들은 어리둥절해 하던 말을 멈췄다.아마도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온 거라고 생각해 문과 가장 가까이 앉은 이진이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다만 그녀가 문을 열자마자 이씨네 세 식구
룸의 온도는 꽤 낮았는데 이진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방금 그 물은 얼음 물이라 아무리 술에 취한 사람이라도 바로 술이 깰 것이다.지금 이 상황은 방금 전 이기태와 백윤정이 그를 치켜세우는 상황과 완전히 하늘과 땅 차이였다.이 사장은 얼른 일어나 손등으로 눈을 힘껏 문질렀다. 그러고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막 화를 내려던 찰나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윤이건의 차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다.그는 눈을 깜박거리고는 환각이 아닌 것을 확신하고는 다리를 떨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이때 조금 남아 있던 술기운마저 순식간에 사라졌다.“윤, 윤 대표님…….”이 사장은 말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는데 얼굴에는 온통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했다.“윤 대표님께서 이곳엔……? 제가 방금 눈이 멀어 윤 대표님을 몰라뵀네요.”그는 말을 하며 윤이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는 이진을 바라보았다. 그가 생각한 것이 옳다면 이 여자는 분명 윤이건의 여자다.그는 미치지 않은 이상 윤이건과 여자를 빼앗을 용기가 없었을 거다. 이 사장이 공포에 가득 차 있을 때 윤이건은 여전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눈썹을 찡긋거렸을 뿐인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어색하고 두려운 감정이 뒤섞여 이 사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잠시 망설인 뒤 그는 몸을 돌려 이기태를 바라보며 화난 표정을 지었다.“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지금 저를 가지고 노시는 거예요? 이…….”이 사장은 이진을 가리켰지만 끝내 어떻게 부르거나 어떻게 이 상황에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사장님, 어떻게 이런 말을 하실 수가 있어요. 저희는 그런 적이 없…….”이 사장이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자 이기태는 울고 싶을 정도였다.“됐어요. 이번 합작은 없던 걸로 하죠! 다시는 절 찾지 마세요.”이 사장은 이 말을 하고는 윤이건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 그냥 가버렸다기보단 도망간 것이다.거의 성사된 계약이 날아가 버리자 이기태도
이진은 술에 취하진 않았지만 많은 술을 마신 탓에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정희와 민시우는 사귀는 사이기에 그녀도 안심할 수 있었다.그녀는 마찬가지로 윤이건의 부축에 따라 천천히 차에 올랐고 윤이건도 그녀와 함께 뒤에 앉았다.같은 술과 같은 사람.이번에 윤이건을 다소 실망시킨 것은 이진이 정말 취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지난번에 이진이 취했을 때 자신의 품에서 보인 모습을 윤이건은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번 이진이 술에 취한 다음날 머리가 심하게 아팠다는 것을 생각하자 윤이건은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진의 그런 모습이 좋긴 하지만 그녀가 아프기라도 한다면 그의 마음도 아프기 때문이다.다행히도 방금 화났던 기분은 곧 가라앉을 수 있었다.차에 앉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이진은 윤이건에게 인사를 하고는 2층의 방으로 돌아가 휴식했고 윤이건은 이 비서를 불렀다.“현지 부동산 사장들을 좀 찾아봐. 성은 이씨이고 최근에 이기태 쪽과 연락을 오갔던 사람이야.”“네.”방금 식당에 갔을 때 이 비서는 따라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윤이건이 이렇게 얘기하자 그도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이쪽의 부동산 재벌들은 적지 않은 데다가 성씨도 흔한 성씨라 이렇게만 찾는다면 좀 어려웠을 것인데 이기태와 가까이한 이씨 부동산 재벌이라면 훨씬 쉬웠다.몇 시간 후, 윤이건이 서재에서 회사 일을 처리하고 있을 때 이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대표님, 찾아냈어요.”예상했던 일이라 윤이건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는 손에 든 문건을 내려놓고 목을 살짝 비틀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안전을 확보하는 전제에 그 사람의 프로젝트 액수를 아래로 눌러. 되돌릴 기회는 남겨둬도 되는데 지금은 절대로 안 돼.”“네, 대표님. 알겠어요.”이 비서는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분명 식당에서 무슨 사고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바로 몸을 돌려 일을 처리하러 갔다.윤이건은 이진을 도와 그들
케빈이 자신을 향한 각종 칭찬을 듣자 이진은 별 감흥이 없었는데 오히려 방금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한 것 때문에 그를 힐끗거렸다.“연예계에 발을 들이려는 게 아니라 그저 한시혁을 도와주는 것뿐이야.”“맞아요! 이것도 하나의 기회이니 분명 대박 날 거예요.”이 말을 듣자 이진은 눈을 부릅뜨더니 더 이상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린 뒤 뒷자리로 이동해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보스, 뒤에서 뭐 하세요, 지금…….”“한 마디만 더 하면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너일 거야.”케빈은 어깨를 살짝 떨더니 곧 입을 다물고 시동을 걸었다.지정된 촬영 장소에 도착한 후 이진은 업무 증명서를 꺼내 자신이 온 목적을 밝혔다.경비원은 이진이 한시혁의 게스트로 왔다는 말을 듣자 호기심에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케빈이 잇달아 들어가려고 하자 경비원은 그를 막아 나섰다.“죄송합니다. 사원증이 없는 이상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전 이 대표님의 비서예요.”케빈은 눈살을 찌푸렸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이진과 많은 장소를 드나들었는데 이번이 처음으로 그가 가로막힌 거다.“저희 스태프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이진 씨께서는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이 경비가 케빈을 막아서는 것에 대해 이진이 좀 불편한 건 사실이다. 그녀의 스케줄이었다면 그들을 상대하지 않은 채 반드시 케빈을 데리고 들어갔을 것인데 이번 주인공이 한시혁이라 그녀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이런 생각에 이진은 몸을 돌려 케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는데 케빈도 그제야 입을 다물고는 차로 돌아갔다.이진이 촬영장으로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원희가 바삐 뛰어나왔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이진 씨, 시혁 오빠는 지금 촬영 절차를 맞추고 있는 중이니 제가 이진 씨를 케어하기로 했어요.”“수고 많으시네요.”이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곧이어 두 사람은 함께 방송국으로 들어갔다.분장실의 문을 열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이진을 향했는데 놀라는
결혼식 날짜는 8월 초로 정해졌으며,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한 차례씩 진행될 예정이다.웨딩드레스 가게에서 청혼한 이건의 이야기는 곧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널리 퍼지고 있었다.이건이 바라던 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진이 윤이건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더욱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친한 지인들 외에 회사 직원들만 초대했다.윤이건의 가족들은 보기 드물게 모두 현장에 참석했지만, 이진 쪽은 텅 비어 있었다.한편 이씨 가문은 여전히 다툼이 지속되고 있었다.“이것 봐! 내가 애초에 뭐라 그랬어? 이진 그년이 양심 없는 년이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 알겠지? 그년은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조차 아버지인 당신을 부르지 않았어. 이기태, 정말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백윤정은 노발대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에게는 예전의 자애로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앞으로 달려들어 이기태를 때리려고 들었다.이기태는 화가 난 마음에 백윤정을 밀어냈다.“좀 저리 꺼져!”‘그래봤자 이진이는 내 친 딸인데, 지금 일이 이 지경이 된 건 모두 백윤정 때문이잖아. 백윤정이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진이를 그렇게 대했겠어? 백윤정이 자꾸 끼어들어 모순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이진도 날 이렇게까지 미워하진 않았을 거야.’물론 이기태의 눈에는 그저 이익밖에 없다. 그가 후회하는 건 오직 이진을 통해 이건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뿐이다.지금의 이기태는 백윤정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매일 싸우기 바빴다.이기태는 결혼식이 끝날 때가 되자 뻔뻔스럽게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이기태 씨, 전에 제가 전화를 끊을 때 했던 말을 잊으신 거예요?”이기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의 차가운 목소리가 전화 너머 들려왔다. 그는 등골이 서늘해지더니 그제야 기억난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진, 너!”
보통 사람이라면 분명 시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을 것이다.하지만 이진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그의 말을 듣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사랑하는 남자는 윤이건 씨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시언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그리고 힘겹게 한 마디 물었다.“제가 몇 년 더 빨리 나타났다면.”“그래도 결과는 똑같아요.”이진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말을 마친 뒤, 이진은 더 이상 시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건을 향해 걸어갔다.애초에 이진은 시우가 이 연회를 통해 정희와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진은 마침내 시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이진은 이건의 가슴에 기대어 말했다.“이건 씨, 저 해외여행 가고 싶어요.”“해외여행?”이건은 원래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얼마 후 이진을 데리고 출국할 생각이었다.이진이 먼저 제기한 이상, 이건도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이진을 껴안고 말했다.“그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이를 위해 이건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모든 일들 미뤘다. 하지만 이건의 원래 계획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YS그룹에는 이건이 직접 처리해야 될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건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진을 데리고 해외로 여행을 간 것이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YS그룹의 고위층들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는 끝내고 가야지.하지만 이건의 대답은 그저 한마디뿐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결혼식을 마친 후, 이건은 분명 이진과의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할 것이다.그러기에 앞으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은 점점 적어질 게 뻔했다.옆에 있던 이진은 한쪽에 놓인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는 것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너무 충동적인 건 아니겠지? 이건 씨는 날
이진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내가 남학생을 꼬드겼다는 건 무슨 말이야?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 데다가, 시우 씨의 동생인 건 아예 모르던 일이야. 도대체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이진은 화를 내며 이건을 노려보았다.“제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그래요.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거든요.”“정말이야?”이건은 일부러 장난친 거다. 사실 메시지를 보고 불쾌한 기분이 조금 들었는데, 이진의 반응은 그를 매우 기쁘게 했다.이건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는 나밖에 없다는 거지?”‘그럼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네. 시우 이놈은 겁도 없네, 감히 내 아내더러 자기 사촌 동생을 위로해달라는 거야?’이건은 차갑게 웃으며 이진의 핸드폰을 가지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시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진 씨, 제가 보낸 메시지를 보셨나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연락을 드린 거예요. 이 녀석이 술에 취해 밤새 이진 씨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또 뭐 했는데?”이건은 그의 말을 끊은 뒤 질투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네 사촌 동생이 대단한 사랑꾼인가 봐.”‘윤이건?’전화 너머의 시우는 하마터면 심장이 터질 뻔했다.“이건아, 이진 씨 핸드폰이 왜 네 손에 있는 거야? 난.”“나랑 이진이가 부부인 걸 잊은 거야?”이건은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 아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내 아내를 좋아하는 사람마다 직접 가서 위로해 줘야 되는 거야? 내가 동의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이진이 정말 간다고 해도 네 동생이 괜찮아질 리는 없어.”마침 뭔가 생각난 이건은 잠시 망설이더니 협박하듯이 말했다.“술에서 깨면 네 동생한테 전해. 어제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이건은 다른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들러붙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윤이건? 윤이건이 어떻게?’시언은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와 시우는 사촌 형제이기에, 이건과 시우가 친한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소문에 의하면 이건은 이미 결혼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설마.’시언은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건과 이진이 어떤 사이든, 이진이 이건을 얼마나 의지하든, 그는 자신이 이진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시언은 몸 옆에 늘어진 손을 꽉 주먹 쥐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그는 앞으로 나아가, 이건의 앞길을 막고 환한 미소를 선보였다.“윤 대표님, 전 민시언입니다. 시우 형의 사촌 동생이에요. 시우 형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너무 영광입니다. 혹시 이진 씨랑은.”“이건 씨, 나 돌아가고 싶어요.”시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진은 취기를 못 이겨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이건의 차가운 표정은 순식간에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이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숙여 이진을 안았다. 그리고 시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진을 조수석에 태웠다. 세심하게 안전벨트를 맨 후 무심코 뒤쪽을 스쳐보자, 시언은 방금 자세를 유지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이건 씨, 얼른 돌아가요.”이진은 아직도 이건에게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이건은 시선을 돌려 이진의 희고 정교한 얼굴을 보자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결혼식 하나 제대로 치르지 못했는데, 반드시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을 선물해 줄게.’이건이 직접 이진을 데려간 것을 목격한 시언은, 정신을 잃은 듯이 축 처진 채로 시우의 아파트를 찾았다. “민시언?”시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언을 보자 조금 놀란 듯했다.“네가 이곳엔 왜 온 거야?”시언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형, 술 한잔하실 래요?”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기에 술 한잔하는 것쯤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하지만 시우는 정희와 함께 임신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최근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시언의 상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이진은 호텔에서 출발해 학교로 갔다.서현도 마찬가지로 이번 만남을 무척 중시하였다. 그녀는 이진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수업을 오후로 미뤘다.카페에 앉은 서현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이 대표님, 제가 오만해 보이긴 해도, 평범한 작가들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제가 쓴 시나리오를 대중들에게 알려, 널리 선보이는 게 제 꿈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저만의 요구가 있기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서현의 요구는 별로 지나치진 않았다. 그저 세훈이 제기했던 요구처럼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것들이다. 이 방면의 문제는 서현이 말하지 않아도 이진이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이진이 바로 동의하자 서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이진의 시원시원한 성격은 전에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서현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너무 지나친 행동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안 그러면 이진 씨처럼 훌륭하신 분을 놓치게 되었을 지도 몰라.’ 세부사항을 토론한 후, 이진은 세훈과 서현을 데리고 원작자를 찾아가 판권을 따냈다.그 후 배우의 캐스팅으로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였다.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는 물론, 배우들 사이의 호흡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몇 달 후, 영화는 이건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상영되었다.의 원작 팬이 워낙 많았고, 호기심으로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 모두 영화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개봉 첫날, 전국의 영화관 티켓은 모두 매진되었다.심지어 대부분 영화관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예정했던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상영하였다.개봉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는 수십 년간 1위를 차지했던 영화를 뛰어넘기도 했다.이 영화의 촬영 제작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그들은 마치 다크호스처럼 갑자기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나
이진은 말을 마친 후 정희를 데리고 성큼성큼 떠났다.“이진아, 넌 저분이 동의할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한참을 걸은 뒤 정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진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서현이 딱 봐도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재능이 있는 작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모욕을 당하면서 저 여자를 선택할 필요는 없잖아.’정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내가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꽤나 있는데, 그냥 이서현 말고 다른 작가 소개해 줄까?”“아직은 필요 없어.”이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아마 날 거절하지 않을 거야.”이진이 거절한 이상 정희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정희가 포기한 채 택시를 잡으려던 찰나, 앞에서 엄청난 비주얼을 가진 키 큰 남학생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예쁜 누나들,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두 사람을 향해 한 말이지만, 남학생은 줄곧 이진을 훔쳐보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희는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학생, 지금 대시하는 거예요?”생각이 들통난 남학생은 부인하기는커녕 겸연쩍은 듯 손을 들어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누나들은 저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두 사람 연락처를 모두 받아 가시려는 거예요? 생각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정희는 눈썹을 찡긋거리며 장난을 쳤다.그러자 남학생은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용기를 내어 이진에게 핸드폰을 건넸다.“누나, 전화번호 주시면 안 될까요? 절대로 귀찮게 굴진 않을 게요!”‘지금 충분히 귀찮은 것 같은데.’이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깔끔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안될 것 같네요.”난생처음 대시를 시도해 본 남학생은, 자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거절당할 줄은 몰랐다. 남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옆에 있던 정희는 차마 이대로 지나치기 힘들어, 가방에서 이진의 명함을 한 장 꺼내 남학생의 손에 쥐여 주었다.“연락처는
이진은 자신의 가장 진실된 생각을 전한 것은 물론, 판권을 반드시 따내려는 결심으로 원작자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결국 원작자는 그녀에게 한 번 만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진은 이번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전에 조사한 자료들을 들고 사람을 찾으러 대학으로 향했다.그녀 스스로 배역을 연구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이진은 전문적인 작가를 찾아야 했다. 현재 대학교 교수인 이서현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출발하기 전에 이진은 특별히 학교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서현의 수업시간표를 찾았다. 그리고 교장에게 부탁하여 수업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이진의 신분을 알게 된 교장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두 손 두 발 들어 환영했다.한편 이 일을 알게 된 정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애초에 이진이 연예계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경제 뉴스밖에 안 보던 이진이 정말 영화를 찍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진심이었던 거야? 왜 갑자기 영화를 찍으려는 거지?’정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진아, 네가 의 판권을 따내 영화로 제작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사실이야?”“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비행기 탑승 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이진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 지금.”“너 지금 공항이야?”눈치 빠른 정희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침 한가하던 정희는 이진을 따라 서현을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우리 이진이가 갑자기 영화를 찍다니,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어.’정희는 결정을 내린 듯이 말했다.“이진아, 좀만 기다려 금방 갈게!”정희는 줄곧 생각나는 대로 움직이는 성격이라, 이진은 핸드폰을 거두고 방금 정희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착륙했다.이진은 택시를 타고 바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사전에 알아보았던 수업시간표를 따라 강의실을 찾았다. 분명 수업이 시작되기까지 시간
이진은 별장을 나선 뒤 홀로 국장의 집으로 향했다.공교롭게도 여태껏 이진을 만나보고 싶어 하던 가정의도 국장의 집에 있었다.하지만 연이은 실패로 가정의도 이진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이진은 엄청 겸손한 데다가 이건의 아내다. 그녀가 어떤 신분이든 간에, 외부에 자신의 실력을 알릴 생각이 없다면, 가정의도 더 이상 묻진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자리에 앉은 후, 국장의 건강에 대해 자세히 토론하기 시작했다.옆에 있던 국장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때때로 몇 마디 맞장구를 치자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이진은 경계심을 내려놓고 많은 의견을 제기하였다. 국장은 모든 의견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모두 이진 씨 덕분이에요. 이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가 고질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고생했을 거예요. 어쩌면 어느 날 갑자기.”“국장님, 곧 괜찮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이진은 국장의 말을 얼른 끊은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게다가 할아버지의 친구분이시니, 제가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전엔 제가 생각이 짧은 데다가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줄곧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너무 탓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어요.”“탓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나한테 이렇게 큰 도움을 줬는데, 고마워하기도 모자랄 판에 탓할 리가 있겠어?’마을의 개발 프로젝트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이진도 마찬가지로 세훈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이 대표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워낙 조건이 후해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더라고요.”진심 어린 이야기를 마친 후, 세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저한테 특별한 요구가 하나 있는데, 이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어떤 요구죠?”이진은 호기심에 눈썹을 찡긋거렸다.세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께서 절 좋게 봐주시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가 방영되었을 때 괜한 추측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방
오 감독은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진에게 사과하기로 한 것이다.이진은 전에 말했던 대로 마음에 들었던 감독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마저 몇 개 없는 신인 감독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감독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처럼 유명한 감독을 마다하고 신인 감독과 합작한다는 거야? 내가 그동안 받은 상이 얼마인데! 이진 그년은 분명 사람 보는 눈이 삐뚤어진 거야! 신인 감독 주제에 얼마나 잘 찍을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오 감독은 불만이 가득했으나 자신의 앞날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진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모두 이진이 예상했던 대로다. 전화를 받은 순간, 이진은 만만에게 눈빛을 보내 모 플랫폼에서 생방송을 시작했다.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오 감독은, 애써 웃으며 이진의 용서를 구하는 척했다.“이진 씨, 전엔 제가 너무 무례한 행동을 보였던 것 같네요. 의 촬영을 양세훈한테 맡길 생각인 거죠? 제가 양 감독을 소개해 줄 테니, 실시간 검색어의 글들을 내려 주시면.”“글을 내려달라고요?”이진은 오 감독이 뜻밖의 비장 카드라도 쥐고 있는 줄 알았다. 그가 이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지금 말 같지 않은 조건으로 나와 협상하려는 거야?’이진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고는 비꼬듯이 입을 열었다.“오 감독님, 본인이 지금 어떤 처지인지 잊으신 거예요? 지금 저한테 조건을 제기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하셔야죠. 제가 양세훈 감독님을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제 방식대로 촬영에 참여하도록 설득시킬 것이니, 당신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당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넘어가지 그래?”오 감독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모욕을 당했기에, 이대로 참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위선적인 모습을 집어치우더니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내가 굽신거려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윤이건 덕분이라는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마 윤 대표한테 들러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