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꾸지 마! 허지영. 이렇게 평생을 나와 결혼한 걸 후회하면서 살아.”배인호는 이성을 되찾았고 나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했다.“각자 놀고 싶어? 그러자 그럼.”충격적이었다. 그와 결혼한 걸 후회하게 하려고 내가 바람을 피워도 감수하겠다는 건가? 억지로 한 결혼이 그에게 이렇게 큰 트라우마로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이토록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에게 되갚아줘야 그의 마음이 풀리는 거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데 배인호는 손을 뻗어 나의 허리를 잡아 끌었다. 나의 몸을 그에게 바짝 붙였다. 그는 입술을 핥으며 어두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내가 이차성징 도와줄까?”“싫어.”나는 배인호를 막았다.배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처럼 똑똑한 사람이 요즘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는 나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게 했다.“허지영 쌍둥이 동생이야? 응?”그를 10년이나 좋아한 여자가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지?나는 쓴웃음을 지었다.“맞춰봐요.”“허지영. 우리 결혼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끝나는 순간 얼마나 많은 분쟁이 일어나는지 알아? 난 너랑 사랑놀이할 시간 없으니깐 그렇게 외로우면 밖에서 놀아.”그는 내 물음을 가볍게 흘렸다. 그러고는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콘돔 끼는 거 잊지 말고. 나는 잡종은 인정 못 해.”나는 한번 죽었다 깨어난 사람인지라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평정심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배인호의 뺨을 아프게 때렸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나의 손도 얼얼했다.배인호의 뺨에 나의 손가락 자국이 빨갛게 올라왔다. 이 상황에서도 그의 옆모습은 날카로운 턱선을 자랑하는 완벽한 얼굴이었다. 따귀를 맞아도 잘생긴 남자였다.그는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눈빛이 음침하고 무서웠고 당장이라도 나의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나는 손이 부들부들 덜려왔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너무 세게 때린 나머지 손에 난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흐르고
“이 기사님, 가사 서비스 회사에 연락해서 이모님 몇 분 구해주세요. 음식 솜씨가 엄청 좋은 사람으로, 영양사 자격증까지 있으면 더 좋고요.”나는 영양제가 든 쇼핑백과 나란히 뒷좌석에 탔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 기사님에게 부탁했다.“알겠습니다. 사모님.”이 기사가 대답했다.배인호와 결혼하고 양가 부모님들은 가사도우미 몇 분을 고용해 청소, 정원수리, 요리 등을 시키라고 하셨지만 그때 나는 콩깍지가 단단히 씌워져 있을 때라 거절했다. 배인호와 나의 신혼집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게 거슬렸다. 신혼인데 거실에서부터 주방까지 구애받지 않고 애정행각을 하려면 방해받을 것 같았다. 결국 보다시피 나는 과부처럼 지내고 있다. 환생하고 나서 다시는 그런 헛된 꿈을 꾸고 싶지 않았다.집에 도착한 나는 프라다 핸드백을 들고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뒤에서는 이 기사님이 영양제가 든 쇼핑백을 들고 따라왔다. 문을 열자, 배인호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옷소매를 정리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이었다.“이 기사님, 그만 가보세요.”나는 핸드백을 내려놓고 이 기사님에게 말했다.이 기사님은 영양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배인호에게 허리 굽혀 깍듯이 인사하고는 서둘러 떠났다.“한 시간 뒤에 파티 있어. 네 부모님들도 참석하실 거야. 너도 준비하고 같이 가.”배인호는 내가 무엇을 사 왔는지 관심도 없었고 그저 묵묵히 나에게 통보했다. 그는 종래로 이런 장소에 나를 데리고 간 적이 없었다. 오늘처럼 부모님들이 참석해야 나는 쓸모가 있었다.환생하고 나서는 부모님을 뵌 적이 없었다. 불효라는 걸 알지만, 전생의 일들 때문에 뵐 면목이 없었다.“음... 그래요.”나는 이층으로 올라갔다.지난 보름 동안 나는 끊임없이 새 옷들을 쇼핑했다. 전에 입던 단조롭고 우중충한 옷들 말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샀다.빨간색 미니드레스를 골랐다. 오프숄더에 앞은 브이넥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살짝 파이긴 했지만 얇은 레이스로 감싸고 있었다. 아래는 머메이드 디자인으로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는
이청하는 그제야 나를 알아보았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눈빛에서 강한 적대감이 느껴졌지만 먼저 나를 건드리진 못했다.엄마와 같이 자리에 앉았고 투정을 부렸다.“사실 나 별로 오고 싶지 않았는데 인호 씨가 같이 오자고 해서 왔어요. 근데 너무 심심해요.”“이건 일이야. 얘는 심심하긴 뭐가 심심해.”엄마는 나의 작은 손을 잡고 야단쳤지만, 말투에서 애정이 느껴졌다.나는 곁눈질로 이청하를 한번 쳐다보고는 엄마와 일상적인 수다를 이어갔다.“심심한데 어떡해요. 맞다 엄마, 나 이 기사님한테 가사 서비스 전문 업체에 연락해서 가사도우미분 좀 구해달라고 했어요. 갑자기 살 좀 찌우고 싶어요. 인호 씨도 나 너무 말랐다고 해서 밥 잘 챙겨 먹고 꿀잠도 자야겠어요.”이청하는 입술을 깨물며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았다.“처음부터 구했어야지. 둘이 살기에 좀 큰 집이니. 너 혼자서 어떻게 다 한다고.”엄마는 나의 말에 찬성했다.“나는 그저 남편이랑 둘만의 공간을 즐기고 싶었죠. 이젠 충분해요.”나는 일부러 야릇한 말들을 했다. 이청하쯤이면 배인호 인생에서 가볍게 만나고 버리는 정도였다. 서란처럼 중요한 캐릭터도 아닌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이청하는 화가 난 듯 일어나서 파티장을 나갔다.진소진도 민망한지 따라 나갔다.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나는 배인호와 같이 돌아가고 싶지 않아 친정에서 며칠 부모님과 함께 있겠다고 했다.“그럼 나 먼저 갈게.”배인호는 내가 그를 쪽팔리게만 하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든 상관하지 않았다.아빠는 파티가 끝났는데도 아직 친구들과 얘기 중이셨다. 엄마는 나에게 차 키를 주며 아빠를 데리고 갈테니 먼저 주차장에 가서 기다리고 했다.나는 차 키를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아빠 차를 찾았다. 차에 타려는데 배인호와 이청하가 다투는 모습이 보였다.이청하는 억울한 듯 배인호의 옷소매를 잡고 애원했다.“나한테 그렇게 잘해줬으면서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어요? 난 못 믿어요!”“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귀찮게 하지 말고
“아이고, 너 대체 무슨 일이야? 인호가 서운하게 했어? 내일 내가 인호 찾아가서 우리 딸 괴롭히지 말라고 따끔하게 혼내야겠네......”엄마가 깜짝 놀라시면서 달려와 나를 안아 주셨다.“엄마, 인... 인호 씨가 그런 거 아니에요. 엄마가 잘해주니깐 내가 너무 감동 받아서...”나는 엄마의 허리를 끌어안고 울먹이며 말했다.배인호가 괴롭힌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은 나의 미련한 희망 때문이었다. 그는 잔인한 악당이었고 나는 어리석게 그를 사랑하는 여자였다.엄마는 나의 등을 살살 쓰다듬어 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나뿐인 딸인 나를 엄마는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배인호 때문이라는 걸 엄마가 모를 수 있을까?나는 울보가 아니다. 억울한 일만 없으면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삼계탕 먹을 거야?”“먹을래요. 너무 먹고 싶었어요...”나는 눈물을 닦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엄마의 팔짱을 끼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빠는 이미 주무시는 것 같았다. 식탁에서 엄마와 둘이 앉아 오붓하게 얘기하며 맛있게 삼계탕을 먹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반 마리를 해치웠다. 요 몇 년 사이 너무 적게 먹었는데 갑자기 많이 먹으니 체해서 토할뻔했다. 엄마는 나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왜 그렇게 많이 먹어. 그러다 불편해서 잠 안 올 수도 있어.”“너무 배고파서요.”나는 바보처럼 웃었다. 이렇게 맛있게 먹은 적이 정아 그리고 다른 애들과 함께한 졸업 파티에서였다. 졸업한 뒤 배인호와 결혼했고 그 뒤로는 원망만 가득한 여자의 삶을 살았다.“배고파도 천천히 먹어. 적당히 먹는 게 제일 좋아.”엄마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그녀의 팔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엄마, 오늘 나랑 같이 자요. 건강 상식도 가르쳐주고!”엄마가 그러자고 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다음날 일어나니 전례 없이 개운했다. 잘 먹고 잘 잘잤고 집에서 아침밥까지 먹고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기선우는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다리는 뼈까지 다친 건 아니지만 피부 손상이 심해 꿰매고 붕대가
“애초에 보상해야 할 범위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선우 다리에 흉도 질텐데 이만큼 받아야지. 얘기 나눠. 나는 일 있어서 그만 일어날게.”나는 말을 마치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이 아무 걱정 없이 달콤한 시간을 보낼 날도 고작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보름 뒤면 배인호의 강렬한 등장으로 서란은 그의 사냥감이 될 것이고 기선우는 서란과 행복하게 웃으며 대화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배인호가 정말 짐승 같았다.병원을 떠나며 나는 이 기사님에게 청담동에 위치한 배인호와 나의 별장으로 가달라고 했다. 얼마 전에 지은 한약을 거기에 두고 왔다. 한약을 가지고 친정에서 달여 먹으면서 거기에 엄마의 음식솜씨까지 더해지면 금방 살이 오를 것이다.한약은 거실에 그대로 있었다. 어젯밤 배인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이청하와 어떻게 끝냈는지 알 수 없었다.“어제 왜 차에서 안 내렸어?”한약을 가지고 떠나려는데 계단에서 내려오는 배인호와 마주쳤다. 그는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그가 왜 집에 있는 거지? 평소라면 3개월에 한 번 들어오는데.배인호는 올 블랙의 홈웨어를 입고 있었고 매우 심플해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과 몸매가 더해지니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전에도 당신의 스캔들에 나는 관여하지 않았어요. 이번에도 다를 거 없고요.”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걔네들이 하나 같이 캐스팅이 무산되고 안 좋은 스캔들이 터진 건 다 우연이겠네?”그는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그는 내가 한 일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막지 않은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여자들은 그저 잠시 데리고 놀뿐 진심이 아니었다. 서란을 만난 후로 내가 그녀를 만나 대화라도 해보려고 하면 배인호는 성난 사자처럼 나를 찢어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나는 부인하지 않았다.“매번 당신이 그녀들한테 적지 않은 돈과 캐스팅 기회를 주는데 그것도 우리 부부의 공동 재산이에요. 내가 내 방식대로 돌려받겠다는데 뭐가 문제죠?”배인호가
깜짝 놀랐다. 도대체 정아는 이런 남자들을 어디서 찾은 걸까?술기운이 올라온 나는 일부러 발끝을 들어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그럼 내가 얼마나 외로움을 잘 참아내는지 봐야겠네.”나는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이런 유형의 남자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속으로 엉큼한 생각을 하는 남자는 더 별로였다.정아는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걸어오자 재빨리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나 더는 못 마시겠어. 집에 가서 잘래.”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너무 많이 취하면 돌아가서 엄마한테 한 소리 들을 것이다.“나도 돌아갈래. 휴... 래일 또 출근이야.”세희도 일어나며 투정을 부렸다.정아는 입을 삐죽거렸다.“이제 몇 신데. 너네 다가면 나 혼자서 무슨 재미야. 가자 가자!”그녀는 가서 계산을 마치고 훈남들에게 인사하고 우리 셋은 떠났다.우리는 각자 기사님들을 불러 헤어졌다. 정아는 도둑처럼 웃으며 말했다.“지영아, 너 이렇게 나와서 훈남들이랑 술 마시면 너희 집 배인호가 질투 안 해?”“그 사람 얘기 꺼내지도 마. 부정 타.”나는 차에 타서 정아에게 손을 흔들었다.나는 이 기사님에게 친정으로 가달라고 부탁하고 눈을 감았다.집 앞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그 바람에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깼다.“기사님, 무슨 일이에요?”“사모님, 아무래도 배 사장님 차인 것 같습니다.”이 기사님이 가리키는 쪽에 부가티가 보였다. 배인호가 왜 우리 집 가는 길에 있지? 나는 태양혈을 누르며 말했다.“됐어요. 이 기사님 너무 늦었는데 제 차 운전해서 퇴근하세요.”“알겠습니다.”이 기사의 운전 실력은 훌륭했다. 좁은 골목에서 부드럽게 차를 돌려 떠났다.여기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집이었다. 나는 부가티를 지나쳐 집으로 가려고 했다.배인호가 차에서 내려 내 앞을 막아섰다. 그는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는지 눈에서 불꽃이 튀어나왔다.“설명해. 이게 무슨 짓이야?”배인호가 인스타를 내게 보여 주
말을 마치고 나는 술기운에 그대로 잠들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잠을 자는 게 주사였다. 나는 배인호가 차에 그냥 나를 두고 내릴 줄 알았는데 이튿날 깨어보니 내 방 침대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이 두 번째로 잠든 나를 안아서 방으로 옮겨 준 것이다. 나는 머리가 아팠다. 겨우 일어나서 샤워하고 옷을 바꿔 입으니 좀 살 것 같았지만, 배가 고팠다.나는 배인호가 집에 없을 줄 알고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실크 잠옷만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먹을 것을 준비하려 했다.아래층으로 절반쯤 내려왔을 때 소파에 두세 명이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배인호도 있었다. 손에 포카 카드를 들고 나를 보더니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헉,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노성민은 옆에 있는 남자의 고개를 손으로 누르며 같이 고개를 숙였다.나는 급하게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으며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배인호가 요즘 뭘 잘 못 먹은 건가? 왜 매일 집에 들어오는 거지?’나는 옷을 바꿔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세 사람은 카드 게임을 그만두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배인호에겐 몇 안 되는 친한 친구들이 있었다. 나도 다 아는 사이었지만 친하진 않았다. 노성민, 이우범, 박준. 모두가 알아주는 재벌 집 자제들이었다. 하지만 이우범은 조금 달랐다. 그는 가업을 이어받지 않고 의사를 선택했다.이들은 모두 배인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나를 배인호의 와이프로 생각하지 않았다. 전생에서 이우범을 제외한 그의 친구들은 그가 서란을 꼬시는 걸 도와주었다. 세 사람은 내가 내려와 주방으로 향하는 것을 보면서도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계란국을 끓였다.“가자.”배인호는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했다.노성민과 박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인호와 함께 떠났다. 밖에서 들리는 차 엔진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밥을 먹었다.아침을 먹고 나는 간단하게 화장하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오늘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갔던 김에
이 게임이 점점 더 재밌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한약을 후후 불어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셨다가 1초도 되지 않아 그대로 뿜었다. 언제 돌아왔는지 배인호가 문 앞에서 내가 한약을 뿜는 걸 보고 있었다. 그는 더럽다는 듯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못 마시겠으면 마시지 마!”“무슨 상관이에요.”나는 입을 닦으며 이상해서 배인호에게 물었다.“왜 또 왔어요?”배인호는 넥타이를 풀었다. 그 단순한 동작에서도 멋짐이 묻어 나왔다.“내 집에 내가 오는 데 문제 있어?”배인호는 나의 맞은편에 앉아 무표정으로 말했다.“그러네요.”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약을 계속 마셨다. 하지만 너무 썼다. 나는 아메리카노에도 시럽을 넣어 먹지 않았는데 이건 적응 할 수 없이 썼다. 한약을 넘기기도 전에 또 뿜었다. 이번에는 거리 조절을 잘 못해 더 멀리 뿜었고 배인호의 얼굴과 셔츠에도 튀었다. 배인호의 얼굴은 바로 굳었고 차갑게 나를 노려보았다.나는 너무 써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배인호의 속눈썹에서 떨어지는 한약을 보며 나는 티슈로 그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 이건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매너였다.배인호는 그런 나의 손을 쳐냈다. 그의 짜증스러운 눈빛에 나는 멈칫했다. 익숙한 씁쓸함이 느껴졌다.“미안해요. 약이 너무 써서.”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손에 있던 티슈를 버렸다.배인호는 대답도 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윤 집사님이 다가와 깔끔하게 주변을 정리했다. 그녀는 부지런하고 세심하게 일 했다.“식사 준비해 주세요.”나는 정리를 끝낸 윤 집사님을 기다렸다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가서 바삐 움직였다.나는 코를 막고 남은 한약을 마저 마셨다. 밥만 잘 먹는 거로는 살을 찌 울 수 없었다. 일단 몸이 먼저 건강해야 살이 찔 수 있을 것이다.나는 약을 마시고 위층의 연습실로 가서 오래 움직이지 않아 먼지가 쌓인 첼로를 꺼냈다. 그리고 혼자 첼로를 켰다. 낮고 우아한 첼로를 켜는 소리가 연습실을 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