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다. 도대체 정아는 이런 남자들을 어디서 찾은 걸까?술기운이 올라온 나는 일부러 발끝을 들어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그럼 내가 얼마나 외로움을 잘 참아내는지 봐야겠네.”나는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이런 유형의 남자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속으로 엉큼한 생각을 하는 남자는 더 별로였다.정아는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걸어오자 재빨리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나 더는 못 마시겠어. 집에 가서 잘래.”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너무 많이 취하면 돌아가서 엄마한테 한 소리 들을 것이다.“나도 돌아갈래. 휴... 래일 또 출근이야.”세희도 일어나며 투정을 부렸다.정아는 입을 삐죽거렸다.“이제 몇 신데. 너네 다가면 나 혼자서 무슨 재미야. 가자 가자!”그녀는 가서 계산을 마치고 훈남들에게 인사하고 우리 셋은 떠났다.우리는 각자 기사님들을 불러 헤어졌다. 정아는 도둑처럼 웃으며 말했다.“지영아, 너 이렇게 나와서 훈남들이랑 술 마시면 너희 집 배인호가 질투 안 해?”“그 사람 얘기 꺼내지도 마. 부정 타.”나는 차에 타서 정아에게 손을 흔들었다.나는 이 기사님에게 친정으로 가달라고 부탁하고 눈을 감았다.집 앞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그 바람에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깼다.“기사님, 무슨 일이에요?”“사모님, 아무래도 배 사장님 차인 것 같습니다.”이 기사님이 가리키는 쪽에 부가티가 보였다. 배인호가 왜 우리 집 가는 길에 있지? 나는 태양혈을 누르며 말했다.“됐어요. 이 기사님 너무 늦었는데 제 차 운전해서 퇴근하세요.”“알겠습니다.”이 기사의 운전 실력은 훌륭했다. 좁은 골목에서 부드럽게 차를 돌려 떠났다.여기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집이었다. 나는 부가티를 지나쳐 집으로 가려고 했다.배인호가 차에서 내려 내 앞을 막아섰다. 그는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는지 눈에서 불꽃이 튀어나왔다.“설명해. 이게 무슨 짓이야?”배인호가 인스타를 내게 보여 주
말을 마치고 나는 술기운에 그대로 잠들었다. 술을 많이 마시면 잠을 자는 게 주사였다. 나는 배인호가 차에 그냥 나를 두고 내릴 줄 알았는데 이튿날 깨어보니 내 방 침대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이 두 번째로 잠든 나를 안아서 방으로 옮겨 준 것이다. 나는 머리가 아팠다. 겨우 일어나서 샤워하고 옷을 바꿔 입으니 좀 살 것 같았지만, 배가 고팠다.나는 배인호가 집에 없을 줄 알고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실크 잠옷만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먹을 것을 준비하려 했다.아래층으로 절반쯤 내려왔을 때 소파에 두세 명이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배인호도 있었다. 손에 포카 카드를 들고 나를 보더니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헉,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노성민은 옆에 있는 남자의 고개를 손으로 누르며 같이 고개를 숙였다.나는 급하게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으며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배인호가 요즘 뭘 잘 못 먹은 건가? 왜 매일 집에 들어오는 거지?’나는 옷을 바꿔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세 사람은 카드 게임을 그만두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배인호에겐 몇 안 되는 친한 친구들이 있었다. 나도 다 아는 사이었지만 친하진 않았다. 노성민, 이우범, 박준. 모두가 알아주는 재벌 집 자제들이었다. 하지만 이우범은 조금 달랐다. 그는 가업을 이어받지 않고 의사를 선택했다.이들은 모두 배인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나를 배인호의 와이프로 생각하지 않았다. 전생에서 이우범을 제외한 그의 친구들은 그가 서란을 꼬시는 걸 도와주었다. 세 사람은 내가 내려와 주방으로 향하는 것을 보면서도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계란국을 끓였다.“가자.”배인호는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했다.노성민과 박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인호와 함께 떠났다. 밖에서 들리는 차 엔진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밥을 먹었다.아침을 먹고 나는 간단하게 화장하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오늘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갔던 김에
이 게임이 점점 더 재밌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한약을 후후 불어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셨다가 1초도 되지 않아 그대로 뿜었다. 언제 돌아왔는지 배인호가 문 앞에서 내가 한약을 뿜는 걸 보고 있었다. 그는 더럽다는 듯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못 마시겠으면 마시지 마!”“무슨 상관이에요.”나는 입을 닦으며 이상해서 배인호에게 물었다.“왜 또 왔어요?”배인호는 넥타이를 풀었다. 그 단순한 동작에서도 멋짐이 묻어 나왔다.“내 집에 내가 오는 데 문제 있어?”배인호는 나의 맞은편에 앉아 무표정으로 말했다.“그러네요.”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약을 계속 마셨다. 하지만 너무 썼다. 나는 아메리카노에도 시럽을 넣어 먹지 않았는데 이건 적응 할 수 없이 썼다. 한약을 넘기기도 전에 또 뿜었다. 이번에는 거리 조절을 잘 못해 더 멀리 뿜었고 배인호의 얼굴과 셔츠에도 튀었다. 배인호의 얼굴은 바로 굳었고 차갑게 나를 노려보았다.나는 너무 써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배인호의 속눈썹에서 떨어지는 한약을 보며 나는 티슈로 그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 이건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매너였다.배인호는 그런 나의 손을 쳐냈다. 그의 짜증스러운 눈빛에 나는 멈칫했다. 익숙한 씁쓸함이 느껴졌다.“미안해요. 약이 너무 써서.”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손에 있던 티슈를 버렸다.배인호는 대답도 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윤 집사님이 다가와 깔끔하게 주변을 정리했다. 그녀는 부지런하고 세심하게 일 했다.“식사 준비해 주세요.”나는 정리를 끝낸 윤 집사님을 기다렸다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가서 바삐 움직였다.나는 코를 막고 남은 한약을 마저 마셨다. 밥만 잘 먹는 거로는 살을 찌 울 수 없었다. 일단 몸이 먼저 건강해야 살이 찔 수 있을 것이다.나는 약을 마시고 위층의 연습실로 가서 오래 움직이지 않아 먼지가 쌓인 첼로를 꺼냈다. 그리고 혼자 첼로를 켰다. 낮고 우아한 첼로를 켜는 소리가 연습실을 가득
나는 깜짝 놀랐다.“왜?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해?”“정아하고 배인호가 싸우고 있어. 네가 빨리 와야 해. 주소 보내 줄 테니까, 빨리빨리!”민정이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무 옷이나 걸치고 집을 나섰다.내가 클럽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은 룸에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의 신분 때문에 금방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것이다.내가 온 것을 보고 민정이는 나를 잡아당겨 정아 옆에 앉혔다. 정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큰 눈으로 배인호를 째려 보고 있었다. 둘은 마치 철천지원수 같았다.배인호도 분노를 삼키지 못하고 맞은 편에 앉아 씩씩거리고 있었고 옆에 노성민은 겁을 잔뜩 먹고 나와 배인호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형수님, 죄송해요. 친구분이 오해한 것 같아요. 사실 그 여자들은 제가 데리고 온 거고 인호형이랑 아무 관계도 없어요.”노성민은 배인호 보다 4살 어렸다. 처음으로 나를 형수님이라고 부른 것 같다.“헛소리하지 마. 그 여자 가슴에 네 그 인호형이 얼굴을 아주 파묻고 있더만, 그래도 아무 사이 아니야?”정아는 노성민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노성민은 거의 울 것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암컷 사자를 맞닥트린 것 같았다. 아주 무서워 죽을 것 같지?배인호는 싸늘하게 정아를 훑어 보고는 나를 쳐다봤다. 나의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나는 그의 눈빛을 못 본 척 정아를 다독였다. “정아야, 괜찮아. 네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 한 거야. 분명 그 여자들은 성민 씨가 부른 걸 거야. 인호 씨 눈이 얼마나 높은데, 그런 가슴만 큰 여자들 안 좋아해.”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아의 남편이 그녀를 배신한 줄 알것이다.룸에는 정적만이 돌았다.“지영아, 너 진심이야?”정아는 민정이를 한번 보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물었다. 그녀도 내가 배인호와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이렇게 침착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정아도 오늘 밤은 참지 못하고 배인호를 욕했지만, 그를 수년간 사랑한 나의
모든 것이 통제 불능일 때 배인호가 갑자기 멈추고 나를 풀어줬다. 눈빛 속에 욕망이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갔다.나는 허무하게 그를 쳐다보았고 그는 차갑게 웃고 있었다.“이것 봐 다 숨기고 있으면서.”“뭐라고요?”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이러면서 이젠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배인호는 손을 뻗어 악랄하게 나의 입술 끝을 문질렀다.“그냥 친구들 앞에서 연기하는 거였어. 허지영, 너 지금 밀당하는거야?”그는 이런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나를 떠보려는 것이다. 나는 빠르게 이성을 되찾고 벗겨진 옷을 주어 입었고 침착해지려고 애를 썼다.“당신한테 내가요?”마음속에 비참하고 초라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했다.“배인호, 난 당신하고 밀당 같은 거 하고 싶은 생각 없어. 당신은 지금 잠깐 차가운 내가 적응이 안 되는 거야. 마치 충성스러운 강아지가 갑자기 당신한테 꼬리를 흔들지 않는 것처럼. 당신도 기분 나쁠 순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예요.”“네가 개야?”배인호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나의 비참함에 아무런 반응도 없는 것 같았다.“당신도 알고 있잖아.”나는 흐트러진 옷깃을 잡으며 고개를 떨구고 담담하게 말했다.배인호가 순수한 남자애도 아니고 내가 마음속으로 그를 좋아하는 걸 모를리가 없다. 이미 나는 여러 번 그에게 고백했다. 그는 한 번도 중요하게 생각한 적 없었다. 그를 좋아하는 여자는 많았고 그 여자들과 내가 유일하게 다른 점은 어쩌다 운 좋게 그와 결혼을 했다는 것뿐이다. 배인호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는지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샤워해.”말을 마치고 그는 욕실을 나갔다.나는 신속하게 욕실 문을 잠그고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나를 봤을 때 정말 뺨이라도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왜 거기서 그런 거지? 배인호의 이런 장난에 나는 또 흐트러졌다.나는 3분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다. 빨리 샤워를 마치고 침대로 가 잠에 들었다.배인
이우범은 함께 밥을 먹자는 말에 조금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는 만나도 인사도 안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그래도 친한 친구의 일이고 그도 배 씨 가문과 허 씨 가문의 관계가 깊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그래요. 저녁 식사로 하시죠. 저녁에 시간 있습니다.”“좋아요! 그럼, 제가 아는 카페에서 만나요. 거기 커피도 맛있고 조용해서 얘기 나누기 편할 거에요. 여기 카톡 추가하면 위치 보내 드릴게요.”나는 열정적으로 핸드폰을 건넸다.이우범은 핸드폰을 한번 보더니 볼펜과 펜을 내밀었다.“추가는 하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 써주세요.”무슨 사람이 이렇게 철벽이란 말인가? 나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 종이에 휘갈기듯 카페 주소를 적었다.“저녁 8시에 거기서 봐요.”나는 배시시 웃으며 볼펜을 내려놓고 기분 좋게 떠났다.저녁 8시, 이우범은 카페 ‘랑데부’로 가도 나는 없고 서란을 만나게 될 것이다. 둘의 만남이 기대되어 나는 하루 종일 너무 신났다. 이우범과 서란이 만나는 장면이 계속 상상되어 나는 가서 직접 두 눈으로 역사적인 장면을 확인해야겠다.같은 여자를 좋아하다니, 역시 배인호와 이우범은 친구였다. 하지만 이우범이 서란에게 첫눈에 반한 것인지 아니면 알아가면서 좋아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첫눈에 반한 것이 아니라면 오늘 저녁의 만남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나는 검은색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가발까지 썼다. 저녁 8시쯤 나는 혼자서 카페 ‘랑데부’ 로 갔다.나는 카페로 들어가지 않고 창문으로 엿보았다. 역시 이우범은 이미 도착해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저 자리는 내가 좋아하는 자리인데.그는 심플한 흰 티셔츠를 입고 앞머리는 자연스럽게 내리니 깔끔하고 도도해 몇 살은 더 어려 보였다.서란은? 나는 일하는 곳을 바라보며 그녀를 찾았다. 한참이나 찾았지만 서란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이상한 행동 탓에 이우범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고 일어나서 걸어왔다.
“어? 너 다시 시작하려고?”민정이는 놀라며 물었다. “나한테 어울리는 기회만 있다면 당연히 하지. 아니면 내가 뭘 하겠어?”나는 우리 가문의 기업에 들어가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볼까 고민했지만, 내가 원래 하던 일도 아니고 아직 엄마 아빠도 건강하셨기에 내가 나설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나의 꿈을 펼치고 싶었다.민정이는 다리를 ‘탁’ 치며 말했다.“나도 진즉에 말하고 싶었어. 왕년에 서울대 첼로 여신이 가정주부로 산다는 게 너무 아쉽잖아. 넌 걱정하지 마. 내가 우아한 음악회 있으면 적극 추천할게.”나는 손을 잡으며 말했다.“좋아.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오늘은 내가 살게. 많이 먹어.”술을 마시고 다들 헤어지고 각자의 집으로 갔다. 나는 이기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 달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영누나?”고개를 돌려보니 기선우였다.“선우야, 네가 여기에 왜 있어?”“근처에서 알바하고 금방 퇴근했어요. 누나 술 마셨어요?”기선우는 나의 몸에서 나는 술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나는 어지러워 이마를 짚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술기운이 올라와 머리가 더 아팠다.“선우야, 차 운전할 수 있니?”기선우는 대답했다.“네, 누나 불편하시면 제가 운전해 드릴게요.”역시 착했다. 나는 차 키를 기선우에게 전해주고 다시 이기사님에게 전화해서 오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었다.“누나... 이거 누나 차에요?”기선우는 앞에 검은색 파라메라 차량을 보고 눈이 반짝였다. 놀라움과 부러움이 묻어났다. 남자는 나이가 많든 어리든 차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나는 울리는 머리를 잡고 대답했다.“응. 내 거야. 네가 내비게이션으로 찾아서 청담동으로 가줄래?”“청담동이요?”기선우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아마 그곳의 집값이 비싸다는 걸 들어 본 모양이다. “뭐 하고 있어? 나 머리 아파 죽을 것 같아.”나는 계속 얼어 붙어있는 기선우의 옆으로 가서 연약하게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이런 건 술기운
어머님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온다.“인호야, 지영아, 자니?”배인호가 이혼서류를 이불 안으로 잽싸게 감추더니 문을 열었다.“엄마, 늦었는데 아직도 안 주무세요?”“이제 자려고. 그냥 너희 방에 아직 불이 켜져 있길래. 자는지 궁금해서.”어머님과 배인호가 문 앞에서 대화를 나눈다.“어머님!”나도 얼굴에 붙인 팩을 떼어내고는 문쪽으로 걸어가 배인호와 금술 좋은 부부인 척 쇼를 했다.“인호 씨랑 막 잠들려던 참이었어요.”그러면서 배인호의 팔을 끌어안았고 그의 어깨에 달콤하게 기대었다.배인호가 티 나지 않게 나를 흘끔 보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많이 늦긴 했네. 네 아버지 내일 모레 비지니스 심포지엄에 참석 하러 잠깐 서울에 오신 거야. 호텔에 묵을 생각 없어서 여기서 며칠 지내려고.”어머님이 웃으며 나한테 말했다.어머님은 평소 세종시에 지낸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다.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너무 좋아요. 저도 아버님 뵌 지 오래되는데, 요 며칠 오시면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가서 힐링 하는 거예요.”“그래그래, 좋지. 너희들도 얼른 쉬렴, 늦게 자면 안 좋아.”어머님이 몇 마디 더 당부하고는 몸을 돌린다.전생에 내가 크게 착각한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배인호는 집에서 뭐라 하든지 꽂히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 내가 최선을 다해 배인호가 나를 사랑하게 만든다면 배 씨 가문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었다.배인호는 서란을 위해 필사적으로 배씨 가문 사람들의 인정과 축복을 얻으려고 했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가족 간의 정이 그에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만약 나와 어머님과의 관계가 좋았다면, 혹은 내가 아이를 가졌다면, 전생에 게임에서 진 건 내가 아닐 수도 있다.문을 닫고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배인호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걱정되기 시작하는 문제가 있었다.“소파에서 잘래요 침대에서 잘래요? 아니면 제가 침대 인호 씨가 소파 할래요?”배인호가 아무렇게나 침대에 눕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