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요?”나의 목소리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맞아요. 근데 산모님이 너무 말랐어요. 평소에 잘 안 챙겨 먹어요? 이제부터 잘 챙겨 먹으면서 건강관리 잘해야 해요. 아이 한 명도 힘든데 지금 두 명이니까 영양공급도 더 잘 해줘야 해요. 남편분은요? 같이 왔죠? 조금 있다가 주의 사항 함께 듣고 가세요.”의사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나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기뻐하고 있었는데 남편 얘기가 나오자 바로 마음이 복잡해졌다.아마도 나는 싱글맘의 운명이었나 보다. 매번 배인호를 떠날 때마다 임신한 것을 발견했다.“이혼했어요. 근데 괜찮아요. 혼자서도 아이들 잘 키울 수 있어요.”나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상황을 말했다. 다른 의료진들이 또 남편에 대해 묻지 말아주길 바랐다. 어떤 일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나의 대답에 의사는 조금 동정하며 한숨을 쉬었다.“그래요? 아쉽네요.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갖고 싶어도 안 생기는데 산모님은 2명이 한꺼번에 생겼어요. 만약 이혼하지 않았다면 전남편분이 분명 좋아하셨을 거예요.”나는 배인호이 기쁜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의 인생이 있었고 나도 나의 인생이 있었다.한순간 하늘이 공평해진 것 같았다. 배인호에게 아이가 한 명 생기니 나에게는 아이가 두 명이나 생겼다. 생각해 보니 내가 손해 본 것이 없었다.검사실에서 나오는데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미간을 찌푸리시고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마도 나의 난임 때문에 걱정하고 계신 듯했다.“지영아, 어떻게 됐어? 검사에 결과는?”엄마는 급하게 다가오시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으셨다.“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아. 급한 것 없다. 지금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꼭 고칠 수 있을 거야.”아빠는 나를 위로하시며 검사 결과는 신경도 쓰지 않으셨다.나는 두 분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정신을 차렸다. 좋아서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가 없었다.“아빠, 엄마. 두 분... 할머니 할아버지 되셨어요.”부모님은
“이 선생님이 이렇게 놀러 와주니 좋네. 서울을 떠나 이후로 그쪽과는 거의 인연이 끊겼었어. 이렇게 친구가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아빠가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우리 가문에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많은 분들이 의도적으로 우리와 거리를 두었다. 게다가 아빠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셨고 우리 회사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되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좁아졌다.하지만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이 그저 작은 것에 행복해하며 즐길 수 있는 조용하고 여유로운 현재의 일상이 더 좋았다. 나는 아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미소를 지었다.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을 때 마침 엄마가 돌아오셨다. 엄마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삼계탕을 테이블에 올려놓으시며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셨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이우범 앞에서 폭풍 같은 식사를 시작했다. 예전에 말랐을 때는 입맛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배가 고프다는 느낌을 잘 못 느꼈었다. 하지만 두 녀석을 임신한 이후로 배가 불러오면서 마도 점점 더 많이 먹게 되었다. 덕분에 살이 쪄서 꽤 글래머처럼 보였다.우리 부모님은 내가 먹는 것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이우범은 조금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천천히 먹어요. 사레들리면 위험해요.”나는 맛있는 닭고기를 입 안에 넣은 채 이우범을 째려봤다. 그가 신경 쓸 일인가?내 눈빛이 너무 안 좋았는지 엄마가 다급하게 이우범에게 설명했다.“이 선생님, 여자는 원래 임신하면 호르몬 변화 때문에 예민해져. 지영이도 요즘 성질을 많이 부리네...”내가 한 번 이우범을 째려본 것을 엄마는 마치 내가 뺨이라도 때린 것처럼 사과했다.“정상적인 현상이에요.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건강에 더 안 좋아요.”이우범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들의 뭐라고 하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식사했다.삼계탕을 다 먹은 뒤 나는 일어나서 계속 쉬기 위해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어쨌든 나는 이우범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
“우범 씨, 사실 우범 씨가 이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인호 씨가 나를 찾지 않은 이상, 그리고 내가 아이를 가진 걸 알지 않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나는 이우범의 제안을 거절했다.아이를 가진 사실을 배인호가 알까 봐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일 때문에 다시 이우범과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이우범이 되물었다.“인호가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이 얼마나 센지 알잖아요.”그건 확실히 알고 있다. 찾고 싶은 사람이나 증거가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아내는 게 배인호다. 하지만 지금 민설아가 옆에 있으니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일단 이 일은 이렇게 해요. 우범 씨는 엄마와 약속한 부분만 해내면 돼요. 내 일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말이에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범 씨를 탓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나는 이우범의 뜻대로 따를 생각이 없었다. 이 제안은 나 자신도 이상하게 느껴졌고 이우범에게도 좋지 않았다.전에 이우범과 커플로 지내려 했지만 결과는 뻔했고 결국 좋게 끝나지 못했다. 그걸 지금 다시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그래요. 이건 그냥 제안일 뿐 억지로 받아들이라는 건 아니에요. 만약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최근에는 계속 이쪽에 있을 거예요.”이우범은 나의 거절로 딱히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그저 부드럽게 내게 말할 뿐이었다.나는 그가 필요한 날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그때가 되면 나는 또 배인호와 이우범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것이고 그러면 아이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게 된다.이우범이 떠난 후 나는 아예 잠에서 깼다. 블랙 리스트에 넣어둔 전화번호를 가끔 훑어봤다. 전에 차단했던 배인호의 전화번호도 같이 들어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졌다.그리고 나는 메일함을 열었다. 안에 그 전화번호로 온 메시지를 발견했다.「어디야?」「만나서 얘기 좀 해.」나는 메시지를 한동안 확인하지 않았다. 연락이 온 것도 정아와 애들이었고 거의 카톡으로 연락하다 보니 배인
이우범은 내가 그와 같이 나가서 산책하겠다고 해서 아주 기쁜 듯 보였다.엄마는 집을 보는 안목이 꽤 좋은 편이다. 이 일대는 전부 오션뷰였고 주변에 관광지도 있어서 가끔 여행객들이 와서 놀고 가곤 했다.점심이 갓 지난 때라 햇볕이 따듯했다. 서울의 겨울과 비기면 아주 따듯했다. 일부러 이곳으로 와서 겨울을 나는 사람도 있었다.바닷가에는 많은 사람이 모래를 놀고 있었다. 애들이 달아 다니면서 듣기 좋게 깔깔 웃었고 그 장면이 매우 벅적벅적했다.나는 긴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편안한 심정으로 눈앞의 풍경을 바라봤다.“저쪽에 간식거리 파네요. 가서 하나 사 올게요.”간식을 파는 노점상을 발견하자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 오려고 했다.하지만 이우범이 나를 말렸다.“기다려요. 내가 가서 사 올게요. 줄을 길게 서서 좀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요.”맞는 말이긴 했다. 배가 많이 불러와 오래 서 있으면 좀 불편했고 그러다 부딪히기라도 하면 일이 더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나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이우범이 줄을 서서 간식을 사는 사이 나는 많이 커진 배를 이끌고 공용 화장실로 향했다. 임신하니 화장실에 자주 가야 했고 다리를 굽히는 것도 힘들어서 비데를 사용해야 했다.하지만 이 공용 화장실엔 비대가 없었고 나는 아쉬운 대로 그냥 있는 걸 쓰려고 했다.어렵게 급한 일을 해결하고 나가려는데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빈아, 나가서 대디 찾아. 여기 여자 화장실이라 남자애는 들어오면 안 돼.”“마미, 엄마는 저 사람이 대디라고 하는데 저 사람은 왜 나더러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해요?”빈이는 유창한 영어로 되물었다. 말투는 의문에 가득 차 있었다.나는 멈칫했다. 여기로 이사 와서까지 민설아 모자를 마주친다는 게 이상했다.순간 나는 문을 열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안에서 잠깐 기다렸다. 아니면 민설아가 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될 텐데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절대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요새 정원 막는 것도 끝나가고 앞으로 적게 나가면 돼.”아빠가 우리에게 당부했다.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손이 자기도 모르게 배로 향했다. 누가 내 아이를 빼앗아 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자꾸만 불안해졌다.“그래요. 그냥 놀러 온 걸 수도 있으니 며칠 집에서 조용히 지낼게요.”내가 대답했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다들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떤 악연은 진작에 끝났어야 했지만 은연중에 자꾸만 엮이고 있다.배인호와 민설아가 온 걸 안 다음부터 우리 집 대문은 3일간 굳게 닫혀 있었고 이우범도 거의 오지 않았다.“지영아, 오늘 산부인과 검사 가는 날인데, 필요한 물건은 다 준비했어?”엄마가 아침부터 나에게 물었다.나가기 싫었지만 검사는 제때 해야 했다. 의사 선생님은 쌍둥이가 조산이 쉬운 것도 있지만 출산 조건도 매우 까다롭다고 했다. 임신 후 매주 검사하러 가야 했고 좋기는 한주에 두 번씩 가는 걸 추천했다.나와 아이의 건강과 안전이 걸린 일이라 오늘 반드시 집을 나서야 했다.아빠는 이미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나는 이미 많이 부른 배를 이끌고 차에 탔고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하자 나는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검사는 공복에 해야 했기에 나는 아빠더러 먼저 밖에 나가서 먹을 것 좀 사 오라고 했고 엄마는 비용을 정산하고 검사 서류를 받으러 갔다.검사를 마치고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아이가 산소가 조금 부족한 거 같은데 가서 산소 흡입 좀 하시죠. 만약 집에 설비가 있으면 집에서 산소 흡입하면 되는데 설비가 없으면 매일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심각한 문제인가요?”나는 깜짝 놀랐다.“아직은 괜찮아요. 그냥 미세하게 산소가 부족해요. 근데 태동은 꼭 세어야 해요. 빈도와 차수가 어떤지도 알고 계셔야 하고요. 태아의 활동이 이상하면 바로 병원에 오셔야 합니다. 이해하셨죠?”의사가 자세히 당부했다. “근데 왜 혼자 오셨어요? 같이 온 사람 없어요? 배가 이렇게 나왔는데 혹시 어디 부딪거나 하면 어떡해요?”엄마 아빠와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멈칫했다. 나는 엄마가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 엄마는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나와 이우범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눈앞의 이 화기애애한 장면은 엄마가 보고 싶어 하던 그런 장면이다.하지만 어떤 일은 억지로 끼워서 맞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같이 걸을 수 없는 사람을 억지로 붙여놓는다 해도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나와 배인호도 마찬가지였다.이우범과 나의 시선이 부딪쳤지만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늘 해산물로만 준비할 건데, 먹을 거지?”이우범이 화제를 돌려 나에게 물었다.“먹을래요. 식자재 있어요? 나가서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나도 맞장구를 쳤다. 저번에 임신했을 때는 비린내를 전혀 맡을 수 없었다. 특히 해산물은 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뭐든 다 먹었고 다 좋아했다.내가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보고 이우범이 웃으며 말했다.“내 쪽에 있어요. 가서 가져올게요.”이렇게 말하며 그는 해산물을 가지러 갔다. 엄마는 끝내 참지 못하고 놀라운 말을 꺼냈다.“지영아, 우범이 정말 너한테 잘해주는 것 같아. 우범이와 사귀어보는 건 어때? 그럼 배인호와의 악연도 끊을 수 있잖아.”이 말은 이우범이 전에 꺼냈던 제안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는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엄마를 보며 말했다.“엄마, 미쳤어요? 우범 씨가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면 그래서는 안 돼요. 자기 애도 아닌데 아빠가 된다는 건 우범 씨에게도 밑지는 장사에요.”“하...”엄마도 자기가 한 말이 적합하지 않다는 걸 느낀 것 같았다. 나무랄 데 없는 남자가 뭐가 모자라서 다른 사람의 애를 책임질까?이우범의 속마음은 사실 조금 무서운 면이 없잖아 있었다. 도시아를 대하는 태도는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그와 사귀었다가 뒤에 무슨 모순이라도 생기면 나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생각은 사실 정리가 잘 되진 않았지만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긴 했다.“지영이 자꾸 다그치지 마. 앞으로 그냥 아이 낳아서 잘 키
나는 바로 배인호와 빈이가 생각났다.민설아가 이미 이쪽 병원에서 출근하고 있다면 그들도 이쪽에 머물면서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만약 진짜 그들이라면 민설아도 조금 있다 건너올 것이다.하지만 여기는 산부인과 병실이다. 빈이가 머리를 다쳤다 해도 여기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마음이 불안했지만 최대한 긴장하지 않게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 나는 지금 배 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했다.“지영아, 내가 아까 누구를 봤는지 알아?”엄마가 돌아왔다. 하지만 조금은 불안한 표정이었다.“누구요?”사실 난 엄마가 누구를 봤는지 대개 알 것 같았지만 바로 말하진 않았다.엄마가 깊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진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배인호 아직 여기를 떠나지 않았나 봐. 그리고 그 애도 다쳐서 병원 1층에서 애를 안고 있는 걸 봤어. 근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를 보지는 못한 거 같았어. 정말 다행이지.”엄마는 천만다행이라는 말투로 말했다.“그 아이가 많이 다치진 않았으면 좋겠네요.”내가 한마디 했다.한편으로 나는 아이는 억울하다고 생각하기에 무슨 생기는 걸 바라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 빈이가 별로 다치지 않아서 빨리 병원을 떠나 나와 마주칠 확률을 줄이고 싶었다.엄마도 아직 나쁜 마음을 먹지는 않았기에 당연히 빈이가 괜찮기를 바랐다. 모녀 둘이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다가 엄마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아, 맞다. 아까 우범이가 너 보러 오겠다고 하는 걸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 만약 배인호와 마주쳐도 시끄러워지니까.”“엄마, 민설아 이미 내가 임신한 거 알고 있어요. 내가 여기 입원해 있는 것도 알고요.”나는 아까 전화를 받은 일을 엄마에게 알려주었다.“뭐? 그 여자가 알았다고?”엄마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엄마가 지금 제일 걱정하는 건 내 배 속의 아이였다. 근데 이 일을 민설아가 알았다는 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네, 그리고 애 아빠가 누군지 되게 신경 쓰는 거 같아요. 아직 알려주지는
“그래요, 민설아 씨도 그 사람이 이 일을 모르게 할 거죠? 아니면 번거로우니까.”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민 선생님도 바쁠 텐데 더 붙잡아 두지는 않을게요.”민설아는 내가 그녀를 내쫓는다는 걸 알고 아무 말 없이 병실에서 나갔다.그녀는 총명한 사람이다. 내가 배인호와 그렇게 오래 얽혀 있었으니, 그녀도 눈치는 있다. 내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가 이우범인 걸 알았으니, 배인호에게 나에 대한 얘기를 하지않을 확률이 컸다.민설아가 원하는 건 배씨 집안에 시집가서 배인호와 영원히 함께하면서 전에 남겼던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다. 지금 그 자리가 비었고 둘 사이에 아이도 있으니,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멍청하지 않고서야 이때 자기에게 불리한 일을 만들 리가 없다.민설아가 가고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간단하게 검사를 해줬다. 검사하는데 갑자기 아래쪽에 뜨거운 무언가가 왈칵 흘러나오는 느낌이 들었다.의사 선생님 얘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나는 멍해서 물었다.“선생님, 혹시 쌍둥이 만삭이면 요실금 오나요?”“그럴 수 있죠? 왜요?”의사가 물었다.“조금인가요? 저 이불에 실수한 거 같은데.”나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은 저번에 실수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이우범은 병실 앞에 서 있었다. 검사할 때 병실에 다른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도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었다.의사는 황급히 내 이불을 걷었다. 내 몸 아래에 흥건한 물을 보더니 다급히 말했다.“양수가 터졌어요!”‘이렇게 양수가 터졌다고?’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며칠 더 빨랐다.의사 선생님이 알려준 적 있었다. 아이가 배 속에 며칠 더 있으면 발육에 더 좋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배 속의 말썽꾸러기들은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나오려고 했다.“그, 그럼 어떡해요?”나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진통이 느껴지나요?”의사가 물었다.“그냥 배가 아픈 느낌이 있나요?”“그냥 조금 아파요. 아주 조금.”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