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부모님 명의로 된 집은 대부분 좋은 위치에 있는 부동산이었기에 빠르게 처분할 수 있었다.“지영아, 엄마하고 친구들한테 인사하러 가려고. 가서 작별 인사는 하고 와야지. 너도 같이 갈래?”떠나는 날짜가 가까워지자, 아빠는 엄마와 함께 외출하시며 내게 물었다.“아빠 난 안 갈래요.”나는 드라마를 보며 무심코 대답했다.“그래.”아빠는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엄마와 함께 나가셨다.기선혜도 오늘 부모님을 뵈러 가서 지금 난 혼자 도저와 함께 집에 있었다. 도저는 바닥에 엎드려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드라마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 화면을 무심하게 보고 있었다.“멍 멍 멍.”갑자기 도저가 일어나 문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신나게 짓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몸을 일으켜 문밖을 살폈다.초인종이 울리자 가서 보니 배인호였다.나와 배인호는 연락은 하고 있었지만 민설아가 나타난 그날부터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이 이렇게 식은 것이다. 이우범의 말이 결국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그런데 그가 오늘 왜 나를 찾아온 거지?나는 문을 열었다. 굳이 그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무슨 일이에요?”나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물었다.“전에 민설아한테서 치료받았어?”배인호의 표정은 진지했다. 미간을 마치 열리지 않는 자물쇠처럼 찌푸리고 있었다.민설아가 그에게 말했나? 의사로서의 윤리 의식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고작 이 짧은 시간 사이에 배인호에게 말했다.하지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내가 난임이라는 사실을 바로 배인호에게 알리지 않은 것일까? 그랬다면 나와 배인호 사이는 더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그녀에게 더 유리했을 것이다.나는 몸을 돌려 거실에 가서 앉았다. 도저는 열정적으로 배인호에게 달려가 안겼다. 배인호도 어쩔 수 없이 쓰다듬었고 도저는 그제야 만족했다.“민설아가 내가 치료받았다는 걸 말했으면 내가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도 알려줬겠네
배인호가 떠나고 난 뒤, 나는 그가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나와 민설아 사이에서 그는 오랜 세월 동안 함께했던 나를 더 아쉬워하지 않을까?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던 그의 마음이 민설아 때문에 쉽게 바뀌는 걸까?진실에 나는 실망했다. 이사하는 날 배인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문자도 없었다. 이삿짐센터에서 드나들며 빌라에 있는 모든 짐을 옮겼다. 부모님은 옆에서 살피고 계셨다. 나는 도저와 함께 정원의 벤치에 앉아 눈을 감은 채 휴식했다.“이 선생님?”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눈을 뜨자 정원 입구에 서 있는 이우범이 보였다. 흰색 티에 하늘색 바지를 입은 모습이 여전히 청량하고 심플한 스타일이었다.그가 왜 왔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짐들은 거의 다 옮겼기 때문에 엄마는 이우범에게 차 한 잔도 권할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하셨다. 아쉬운 대로 그에게 정원 벤치에 앉으라고 한 뒤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시다 이삿짐센터의 직원이 엄마를 불렀다. 나와 이우범 둘만 남았다.햇빛 아래에서 조금 더워 얼굴에 땀이 살짝 흘렀다. 이우범은 티슈를 내게 건넸다.“얼굴에 땀 닦아요.”나는 티슈를 건네받은 뒤 아무렇지도 않게 얼굴을 닦았다.“왜 왔어요?”“회사까지 넘기고 이사할 줄은 몰랐어요. 가족 모두 함께 여기를 떠나는 거예요?”이우범은 아무런 감정도 티 내지 않은 채 차분하게 내게 물었다.“네, 우리 가족 일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두니 감동이네요.”아마도 내가 떠날 준비가 되었기 때문인지, 엄마가 더 이상 이우범을 만나라고 강요하지 않겠다고 하셨기 때문인지 그에 대한 나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이렇게 큰일인데 당연히 신경 써야죠. 신경 쓸 시간이 없으면 모를 거예요.”이우범은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침묵했다. 맞다, 신경 쓸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것이다. 배인호는 요즘 민설아를 챙겨주느라 우리 집 일에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유일하게 나를 찾아온 것도 민설아에게서 내가 난임이라는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지금 짐 옮기고 있어. 조금 있다가 주소 보내줄게.”나는 창밖을 한 번 바라보았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아직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듯했다.“알겠어. 나 먼저 잘게. 주소 보내주는 거 잊지 마.”정아는 내게 굿나잇 인사를 했다.전화를 끊고 나는 나에 관한 기사를 검색했다. 역시 난임에 관한 기사가 떴다. 그리고 나와 배인호가 원래 재결합 하려고 했지만 그 문제 때문에 내가 차였다는 기사도 있었다. 마침 민설아가 돌아왔고 나는 비참하게 버림받았다는 내용이었다.이런 과장된 기사들을 보면 나는 그저 웃겼다. 하지만 또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지영아, 거의 끝났어. 방으로 가서 쉬렴.”엄마가 차창으로 다가와서 내게 말씀하셨다.“네, 금방 갈게요.”나는 대답하며 차에서 내리려다가 다시 멈췄다. 그리고 핸드폰에 있는 배인호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했다. 그리고 이우범도 차단했다.찰나 온 세상이 다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여기서 남은 인생을 평화롭게 살아갈 것이다.주택은 꽤 괜찮았다. 방들은 한옥 느낌이 났다. 나는 샤워를 한 뒤 자려고 주웠다. 이때 예상 밖으로 냥이에게서 전화가 왔다.냥이의 소식은 오랫동안 듣지 못했다. 마치 나와 배인호의 세상에 갑자기 나타나더니 또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았다.나는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았다. 그때는 배인호에게 기회를 주기로 계획했다. 우리가 재결합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배인호가 굳이 냥이를 만날 필요가 있었을까?발신자 번호를 바라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지영 언니, 배인호하고 다시 합치는 거 아니었어요?”냥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그리고 조금 놀란 것 같았다.“응, 합치지 않았어. 너는? 오랫동안 네 소식을 못 들은 것 같아.”내가 물었다.“아빠 건강이 좀 안 좋아 지셔서요. 뭐 다 나 때문이죠. 그동안 얌전히 아빠 옆에 있었어요. 그리고 선도 보고요. 짜증 나지만 어쩔 수 없죠.”냥이는 말을 마친 뒤
“쌍둥이요?”나의 목소리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맞아요. 근데 산모님이 너무 말랐어요. 평소에 잘 안 챙겨 먹어요? 이제부터 잘 챙겨 먹으면서 건강관리 잘해야 해요. 아이 한 명도 힘든데 지금 두 명이니까 영양공급도 더 잘 해줘야 해요. 남편분은요? 같이 왔죠? 조금 있다가 주의 사항 함께 듣고 가세요.”의사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나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기뻐하고 있었는데 남편 얘기가 나오자 바로 마음이 복잡해졌다.아마도 나는 싱글맘의 운명이었나 보다. 매번 배인호를 떠날 때마다 임신한 것을 발견했다.“이혼했어요. 근데 괜찮아요. 혼자서도 아이들 잘 키울 수 있어요.”나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상황을 말했다. 다른 의료진들이 또 남편에 대해 묻지 말아주길 바랐다. 어떤 일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나의 대답에 의사는 조금 동정하며 한숨을 쉬었다.“그래요? 아쉽네요.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갖고 싶어도 안 생기는데 산모님은 2명이 한꺼번에 생겼어요. 만약 이혼하지 않았다면 전남편분이 분명 좋아하셨을 거예요.”나는 배인호이 기쁜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도 그의 인생이 있었고 나도 나의 인생이 있었다.한순간 하늘이 공평해진 것 같았다. 배인호에게 아이가 한 명 생기니 나에게는 아이가 두 명이나 생겼다. 생각해 보니 내가 손해 본 것이 없었다.검사실에서 나오는데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미간을 찌푸리시고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마도 나의 난임 때문에 걱정하고 계신 듯했다.“지영아, 어떻게 됐어? 검사에 결과는?”엄마는 급하게 다가오시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으셨다.“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아. 급한 것 없다. 지금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꼭 고칠 수 있을 거야.”아빠는 나를 위로하시며 검사 결과는 신경도 쓰지 않으셨다.나는 두 분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정신을 차렸다. 좋아서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가 없었다.“아빠, 엄마. 두 분... 할머니 할아버지 되셨어요.”부모님은
“이 선생님이 이렇게 놀러 와주니 좋네. 서울을 떠나 이후로 그쪽과는 거의 인연이 끊겼었어. 이렇게 친구가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아빠가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우리 가문에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많은 분들이 의도적으로 우리와 거리를 두었다. 게다가 아빠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셨고 우리 회사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되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좁아졌다.하지만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이 그저 작은 것에 행복해하며 즐길 수 있는 조용하고 여유로운 현재의 일상이 더 좋았다. 나는 아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미소를 지었다.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을 때 마침 엄마가 돌아오셨다. 엄마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삼계탕을 테이블에 올려놓으시며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셨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이우범 앞에서 폭풍 같은 식사를 시작했다. 예전에 말랐을 때는 입맛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배가 고프다는 느낌을 잘 못 느꼈었다. 하지만 두 녀석을 임신한 이후로 배가 불러오면서 마도 점점 더 많이 먹게 되었다. 덕분에 살이 쪄서 꽤 글래머처럼 보였다.우리 부모님은 내가 먹는 것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이우범은 조금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천천히 먹어요. 사레들리면 위험해요.”나는 맛있는 닭고기를 입 안에 넣은 채 이우범을 째려봤다. 그가 신경 쓸 일인가?내 눈빛이 너무 안 좋았는지 엄마가 다급하게 이우범에게 설명했다.“이 선생님, 여자는 원래 임신하면 호르몬 변화 때문에 예민해져. 지영이도 요즘 성질을 많이 부리네...”내가 한 번 이우범을 째려본 것을 엄마는 마치 내가 뺨이라도 때린 것처럼 사과했다.“정상적인 현상이에요.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건강에 더 안 좋아요.”이우범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들의 뭐라고 하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식사했다.삼계탕을 다 먹은 뒤 나는 일어나서 계속 쉬기 위해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어쨌든 나는 이우범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
“우범 씨, 사실 우범 씨가 이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인호 씨가 나를 찾지 않은 이상, 그리고 내가 아이를 가진 걸 알지 않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나는 이우범의 제안을 거절했다.아이를 가진 사실을 배인호가 알까 봐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일 때문에 다시 이우범과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이우범이 되물었다.“인호가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이 얼마나 센지 알잖아요.”그건 확실히 알고 있다. 찾고 싶은 사람이나 증거가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아내는 게 배인호다. 하지만 지금 민설아가 옆에 있으니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일단 이 일은 이렇게 해요. 우범 씨는 엄마와 약속한 부분만 해내면 돼요. 내 일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말이에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범 씨를 탓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나는 이우범의 뜻대로 따를 생각이 없었다. 이 제안은 나 자신도 이상하게 느껴졌고 이우범에게도 좋지 않았다.전에 이우범과 커플로 지내려 했지만 결과는 뻔했고 결국 좋게 끝나지 못했다. 그걸 지금 다시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그래요. 이건 그냥 제안일 뿐 억지로 받아들이라는 건 아니에요. 만약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최근에는 계속 이쪽에 있을 거예요.”이우범은 나의 거절로 딱히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그저 부드럽게 내게 말할 뿐이었다.나는 그가 필요한 날이 오지 않기를 빌었다. 그때가 되면 나는 또 배인호와 이우범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것이고 그러면 아이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게 된다.이우범이 떠난 후 나는 아예 잠에서 깼다. 블랙 리스트에 넣어둔 전화번호를 가끔 훑어봤다. 전에 차단했던 배인호의 전화번호도 같이 들어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차갑게 느껴졌다.그리고 나는 메일함을 열었다. 안에 그 전화번호로 온 메시지를 발견했다.「어디야?」「만나서 얘기 좀 해.」나는 메시지를 한동안 확인하지 않았다. 연락이 온 것도 정아와 애들이었고 거의 카톡으로 연락하다 보니 배인
이우범은 내가 그와 같이 나가서 산책하겠다고 해서 아주 기쁜 듯 보였다.엄마는 집을 보는 안목이 꽤 좋은 편이다. 이 일대는 전부 오션뷰였고 주변에 관광지도 있어서 가끔 여행객들이 와서 놀고 가곤 했다.점심이 갓 지난 때라 햇볕이 따듯했다. 서울의 겨울과 비기면 아주 따듯했다. 일부러 이곳으로 와서 겨울을 나는 사람도 있었다.바닷가에는 많은 사람이 모래를 놀고 있었다. 애들이 달아 다니면서 듣기 좋게 깔깔 웃었고 그 장면이 매우 벅적벅적했다.나는 긴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편안한 심정으로 눈앞의 풍경을 바라봤다.“저쪽에 간식거리 파네요. 가서 하나 사 올게요.”간식을 파는 노점상을 발견하자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 오려고 했다.하지만 이우범이 나를 말렸다.“기다려요. 내가 가서 사 올게요. 줄을 길게 서서 좀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요.”맞는 말이긴 했다. 배가 많이 불러와 오래 서 있으면 좀 불편했고 그러다 부딪히기라도 하면 일이 더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나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이우범이 줄을 서서 간식을 사는 사이 나는 많이 커진 배를 이끌고 공용 화장실로 향했다. 임신하니 화장실에 자주 가야 했고 다리를 굽히는 것도 힘들어서 비데를 사용해야 했다.하지만 이 공용 화장실엔 비대가 없었고 나는 아쉬운 대로 그냥 있는 걸 쓰려고 했다.어렵게 급한 일을 해결하고 나가려는데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빈아, 나가서 대디 찾아. 여기 여자 화장실이라 남자애는 들어오면 안 돼.”“마미, 엄마는 저 사람이 대디라고 하는데 저 사람은 왜 나더러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해요?”빈이는 유창한 영어로 되물었다. 말투는 의문에 가득 차 있었다.나는 멈칫했다. 여기로 이사 와서까지 민설아 모자를 마주친다는 게 이상했다.순간 나는 문을 열고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안에서 잠깐 기다렸다. 아니면 민설아가 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될 텐데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절대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요새 정원 막는 것도 끝나가고 앞으로 적게 나가면 돼.”아빠가 우리에게 당부했다.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손이 자기도 모르게 배로 향했다. 누가 내 아이를 빼앗아 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자꾸만 불안해졌다.“그래요. 그냥 놀러 온 걸 수도 있으니 며칠 집에서 조용히 지낼게요.”내가 대답했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다들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떤 악연은 진작에 끝났어야 했지만 은연중에 자꾸만 엮이고 있다.배인호와 민설아가 온 걸 안 다음부터 우리 집 대문은 3일간 굳게 닫혀 있었고 이우범도 거의 오지 않았다.“지영아, 오늘 산부인과 검사 가는 날인데, 필요한 물건은 다 준비했어?”엄마가 아침부터 나에게 물었다.나가기 싫었지만 검사는 제때 해야 했다. 의사 선생님은 쌍둥이가 조산이 쉬운 것도 있지만 출산 조건도 매우 까다롭다고 했다. 임신 후 매주 검사하러 가야 했고 좋기는 한주에 두 번씩 가는 걸 추천했다.나와 아이의 건강과 안전이 걸린 일이라 오늘 반드시 집을 나서야 했다.아빠는 이미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나는 이미 많이 부른 배를 이끌고 차에 탔고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하자 나는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검사는 공복에 해야 했기에 나는 아빠더러 먼저 밖에 나가서 먹을 것 좀 사 오라고 했고 엄마는 비용을 정산하고 검사 서류를 받으러 갔다.검사를 마치고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아이가 산소가 조금 부족한 거 같은데 가서 산소 흡입 좀 하시죠. 만약 집에 설비가 있으면 집에서 산소 흡입하면 되는데 설비가 없으면 매일 병원으로 오셔야 합니다.”“심각한 문제인가요?”나는 깜짝 놀랐다.“아직은 괜찮아요. 그냥 미세하게 산소가 부족해요. 근데 태동은 꼭 세어야 해요. 빈도와 차수가 어떤지도 알고 계셔야 하고요. 태아의 활동이 이상하면 바로 병원에 오셔야 합니다. 이해하셨죠?”의사가 자세히 당부했다. “근데 왜 혼자 오셨어요? 같이 온 사람 없어요? 배가 이렇게 나왔는데 혹시 어디 부딪거나 하면 어떡해요?”엄마 아빠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