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동의하지 않았어요.”나는 나 자신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민예솔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고, 남은 기간도 별로 대화가 없었다. 업무적인 대화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거의 나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다행히 그녀는 공과 사는 분명했고, 업무적으로는 아주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계약도 성공적으로 체결된 후, 우리는 싱가포르로 돌아갔다.허성재는 나와 민예솔을 칭찬하며 아주 기뻐했다. 그 뒤로도 민예솔과 계속하여 동료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그러나 뚜렷한 충돌이 있기 전까지 나는 주동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지영씨, 마케팅팀에 이 문서 좀 전달해 줘요. 요즘 회사에서 온라인 마케팅 준비하고 있거든요. 출장 가서 체결한 채널도 이거랑 관련된 거니까 마케팅팀과 콘택트 좀 해줘요. 국내랑 해외 모두 동시에 진행되어야 해요.”허성재는 나에게 문서를 건네줬다.나는 머리를 끄덕이고는 문서를 전달하러 마케팅 부서에 갔다.마케팅 부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정교한 메이크업을 한 예쁜 어린 여자 몇 명을 보았다. 마케팅팀 동료에게 물어보니, 이 여자애들은 마케팅 부서에서 모집한 온라인 비제이라고 하였다.회사는 주로 색조 화장품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자체 브랜드뿐만 아니라 자체 판매 채널도 있다. 싱가포르에 이미 거의 100개의 전문 매장이 있고, 허성재는 온라인에서도 잘 발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이 또한 지사의 주요 목표이기도 하다.나는 서류를 마케팅팀 매니저에게 건네주고 떠나려던 찰나 뜻밖에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서란은 샤넬풍 트위드 재킷을 입었고, 기존에 까맣던 긴 생머리는 큰 물결펌을 해 여성스러움을 더했다. 얼굴에 메이크업은 다른 여자애들보다 훨씬 옅었지만 그래도 피부가 희고 이목구비가 수려해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냈다.그녀도 날 보고 놀란 듯했다.“지영 언니.”서란은 다가오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여기서 뭐 해?”나는 이 정도면 진짜 나를 뒷조사라도 하느라 접근하는
나는 정아의 이런 작전에 매우 난감했다. 박정환은 내가 누구랑 어떤 내용으로 문자 하고 있는지 아는 듯했고, 내 마음을 이해해 주면서 말했다.“지영아, 너무 난감해할 필요 없어. 나 여기 친구들 많아, 아니면 호텔에 묵어도 되고. 정아 말 듣지 마.”박정환이 이렇게 말하니 나는 오히려 더욱더 어찌할 줄 몰랐다.“아니야 오빠, 며칠뿐인데 뭐! 우리 집에 방도 2개라서 괜찮아요.”나는 쿨하게 답했다.“그럼… 신세 좀 질게. 아마 3일 이내에 살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박정환은 반짝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고작 3일뿐인데 뭐, 정아의 오빠면 내 오빠이기도 하지.이튿날 아침 일어나보니, 주방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풍겼다. 주방에 가보니 박정환이 앞치마를 두르고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일어났어? 얼른 아침 먹고 출근해.”박정환은 나를 보더니 앞치마를 벗었고, 계란국수 두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그 위에는 표고버섯과 고기 부스러기가 토핑되어 있었다. 나는 평소 출근하는 길에 아침을 사서 먹곤 했는데, 오늘은 박정환이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 덕분에 집에서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감사합니다!”나는 젓가락으로 빠르게 국수 한 그릇을 다 먹어버렸다.아침을 먹고 난 뒤, 나는 빠르게 회사로 향했다.오늘도 또 서란이를 문 앞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전동 스쿠터에서 내렸고,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그녀를 지나갔다.점심 휴식 시간이 다 되어 우리 부서 문 앞에 갑자기 서란이 나타났고 몇몇 남자 동료들은 그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지영 언니!”서란은 밝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고, 손에는 예쁜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나와 민예솔의 자리는 가까이 붙어 있었으며, 그녀는 소리를 듣고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더니 순간 멍해졌다.“설아?”서란은 민예솔이 누군지 몰랐고, 오직 나를 향해 걸어왔다.나는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뭔 일이야?”“언니, 인호 씨한테서 요즘 언니 위장이 안 좋다는 소리를 들어서요. 그래서 제가 직접 만든
나는 배인호의 손을 뿌리치며 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당신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은 당신의 애인이나 신경 써요. 이렇게 날 따라오면 서란이 울 수도 있어요."배인호는 서란의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돌아가지는 않았다.이를 본 박정환은 나를 뒤로 끌어당기며 차갑게 경고했다. “배인호 씨 분명히 하세요. 당신과 지영 씨는 이혼했고 당신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예요. 당신이 지영 씨에게 질문할 자격이 있습니까? 지영 씨가 누구와 함께 있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내가 상관하겠다는데 당신이 나한테 뭘 어쩔 건데?" 배인호의 말에는 이미 도발적인 기미가 담겨 있었다.설날에 두 사람이 다투는 장면이 떠올랐다. 결국 상처를 입은 건 나였다. 다시는 그런 억울한 일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인호 씨, 정환 오빠의 말이 맞아요. 우리는 더 이상 서로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더 이상 당신과 엮이고 싶지 않아요. 그냥 이렇게 끝내요.”나는 말을 마치고 박정환을 끌어당겼다. 박정환의 차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의 차에서 점심을 먹은 후 나는 만족스럽게 배를 문질렀다.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박정환에게 감사했고 그는 적어도 내 체면을 살려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전처인 나로서는 정말 당황스러웠다.“하하, 괜찮아서 다행이야.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데.”박정환은 다 먹은 도시락을 받아 들고 다정하게 말했다.“일하러 가기 전에 잠시 차에서 쉬어.”조수석을 최대한 눕혀놓고 알람 시계를 맞춘 뒤 누워서 쉬었다.“저도 차에서 쉬고 싶네요.”“그래. 좀 쉬어.”박정환이 대답했다.임신한 덕분에 잠이 너무 빨리 왔다. 앞으로 잘 먹고 잘 자는 튼튼한 아들을 낳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30 분 후 알람 시계가 울려 멍하니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보니 박정환도 옆에서 자고 있었다.나는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내려 문을 닫았다.빨간색 BMW가 옆을 지나쳤다. 나는 서란이 그것을 받아들였는지 궁금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배인호가 저 여자를 매우
배인호와 내가 대치 상태에 빠졌을 때 계단 위에 한사람이 나타났는데 박정환이었다. 박정환은 나와 배인호를 보고 재빨리 달려와 배인호의 얼굴을 때렸다.“개자식!” 박정환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바닥에 널브러진 과일들과 헝클어진 내 머리를 보면 누구라도 불미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배인호는 뜻밖에 반격하지 않았고 땅에 쓰러진 후 피가 나는 입술 끝을 만졌다가 다시 일어났다.그는 심지어 박정환을 쳐다보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너 대신 때린 거로 생각하고 난 반격하지 않을 거야.”나는 쓴웃음을 지었다.“그럴 필요 없어요.”“예전에 네가 나한테 사랑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점점 더 깊어져 간다는 말 이제 조금 알 것 같아.”배인호의 짧은 머리도 조금 헝클어져 있었고 한쪽 눈을 덮고 있어 어떤 감정인지 보이지 않았다.“당신 무슨 개소리야?”박정환도 화를 내며 욕했다.“그런 헛소리 같은 말은 아껴뒀다가 어린 애인한테나 해, 알겠어? 남자로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배인호는 박정환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넌 왜 여기에 있어?”“너 이 사람 집에서 사는 거야?”배인호는 조금 더 위험한 눈빛으로 다시 나를 가리켰다. 박정환이 말했다.“그래, 왜? 네가...”나는 박정환이 나를 대신해 배인호를 기를 채우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같은 남자이니 소유욕이 있다는 것을 모를까?하지만 나는 박정환을 말렸다.“며칠간 머물 예정이에요. 할 말 없으면 그만 가요. 국내 회사도 바빠서 시간도 없을 텐데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그러고는 박정환을 데리고 곧바로 3층으로 올라가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지영아, 저 사람을 놓지 못한 거야?”박정환은 약간 실망한 눈으로 자리에 앉았다.“이건 놓고 안 놓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 사람과 나는 이미 이혼했어요. 이런 갈등이 다시 일어날 필요도 없고요. 그 사람이건 오빠건 다치면 다 내 책임이에요.” 나는 아픈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배인호가 점점 더 화를 내면 상황은
허생재와 얘기를 나누고 나는 민예솔이 진행하던 업무 일부를 맡기로 했다. 사실 많지도 않았고 나도 업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다만 임신했으니 너무 힘들면 안 될 것 같아 전부 맡지는 않았다.업무가 많아지고 나도 바빠졌다. 눈 깜빡할 사이에 2일이 지나갔다. 박정환은 나에게 지낼 곳을 구했다고 말했다.“너만 괜찮으면 내가 집세 내고 계속 여기 있을게. 너 임신 했는데 혼자 괜찮겠어? 보살펴 줄 사람도 없고.”떠나기 전에 박정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빠, 걱정하지 마요. 나 괜찮아요. 그리고 구한 집이 여기 근처 아니에요? 무슨 일 있으면 나도 뻔뻔하게 오빠한테 연락할게요.”나는 마음속으로 감동했다. 동시에 박정환이 나를 단념하기를 바랐다. 나는 이미 임신까지 했고 그도 아빠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박정환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더는 나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간단하게 챙긴 짐을 가지고 떠났다.한 명이라도 더 살던 집이 활기찼다고 해야 하나, 박정환이 떠난 후 갑자기 텅 빈 방을 혼자 마주하니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내가 박정환에게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임신한 후 호르몬 변화로 인해 쉽게 감정적으로 변했다, 행복이나 슬픔이 전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다.마음을 정리한 후,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부터 출근하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며 내 삶을 살아가야겠다.다행스럽게도 배인호는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고 그가 한국으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서란과 함께 있는지는 모르겠다.주말이 다가오자, 프로모션 부서에서는 여러 가지 종목이 나열된 설문조사지를 보내왔고 프로모션부서 각자 가장 참여하고 싶은 종목에 이름을 적어야 했다.결국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주말에 워크숍을 떠나는 것이었다. 회사의 단합대회 같은 느낌이었다. 내 생각엔 아마도 우리 부서 부장님이 민예솔도 참여하도록 초대할 것 같았다. 그녀는 프로모션부서의 첫 팀원 중 한 명이고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민예솔의 뒤로 서란이 따라왔다.“지영 언니.”
“사람 이용하기만 하고 지워버리는 건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요?”이우범은 이렇게 말했지만, 그의 말투에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듣기에 그가 정말 나를 매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그래요. 나 양심 없어요.”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처음에는 나도 심리적 균형을 찾기 위해 기선우를 이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더 이상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죄를 지었으니 먼저 차단한 거예요. 그래도 아직 양심이 남아 있나 봐요.”“그러네요, 아직 양심은 남아 있네요.”이우범은 나의 말을 듣고 웃기까지 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그럼, 기선우가 나를 다시 만나러 오면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기선우가 나의 소식을 듣기 위해 병원까지 가서 이우범을 찾은 것일까? 나는 기선우가 그렇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마음속 죄책감이 두 배로 커졌다.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그냥 배인호와 이혼하고 해외로 일하러 갔다고 전해 주세요. 2년 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요. 앞으로 기선우가 직장과 관련해 도움이 필요하면 당신을 찾으라고 하세요!”이우범은 깜짝 놀랐고 몇 초 후에 다시 물었다.“직장에 관련된 도움을 받는데 왜 나를 찾아와요? 의대생이에요?”“아니요, 하지만 우범 씨도 기선우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아요? 이 박사님, 의사로서 친절한 마음을 좀 가져 보세요.”나의 가스라이팅 같은 말에 그는 침묵했다. 그는 의사로서 자기가 다른 사람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나는 재빨리 덧붙였다.“걱정하지 마세요. 동생 한 명만 나 대신 챙겨준다고 생각해요. 우범 씨가 도와주면 그 신세 나도 잊지 않을게요.”나도 빈말로 허세를 부리진 않을 것이다.“어떻게 갚을 건데요?”이우범이 마침내 다시 말했다.“서란을 내가 대신 꼬셔 줄까요?”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하고 그것도 부적절하다고 느껴졌다.“에이 그것도 안 되
세희와 민정이도 참지 못했다.세희:「지영아 너 정말 이혼 잘한 거야. 배인호 정말 너무하다. 네가 민설아의 존재를 알고 결혼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너한테 복수하겠다는 거야?」민정:「맞아, 너무 감정적이잖아. 너도 피해자야!」정아:「그리고 민예솔도 미친 거 아니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 내가 거기 있었으면 그 여자 머리채를 잡았을 거야!」나는 분노에 찬 문자들을 보며 마음이 더 불편했다. 애초에 배인호는 내게 민설아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그저 할아버님의 제안을 거절하라고만 했었다.할아버님의 병세가 악화하며 더는 미룰 수가 없었고, 나도 거절하지 않았기에 이 결혼이 결국 성사된 것이다.단톡방에서 정아와 애들이 열띠게 내 편을 들어 주고 있었다. 배인호에게 가서 따지겠다는 것을 내가 겨우 말렸다. 따지면 따질수록 계속 얽히게 되고 차릴 모르는 척하는 것이 더 나았다.내가 지금 제일 걱정하는 문제는 도대체 배인호가 싱가포르에서 얼마 동안 있냐는 것이다.나는 그가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배도 점점 불러올 것이고 쉽게 들킬 것 같았다.“퇴근하고 만나서 얘기 좀 해요.”다음날 출근했을 때 나는 민예솔의 문자를 받았다.“시간 없어요.”나는 답장을 했다.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퇴근 시간에 민예솔이 회사 문 앞에서 나의 차를 막을 줄은 몰랐다.나는 차를 세우고 내릴 수밖에 없었다.“나도 다른 뜻은 없어요. 그저 그쪽이 더는 서란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해요. 평소에 자주 부딪히지도 않는데 그렇게 미워할 필요 없잖아요.”민예솔은 정의로운 척 얘기했다.“그쪽은 무슨 신분으로 서란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나는 담담하게 물었다.“내 친동생처럼 생각해요. 그거면 충분하죠.”민예솔의 대답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너무 웃겼다.“그쪽 동생하고 닮았다는 이유로 배인호가 마음속으로 제일 사랑하는 게 그쪽 동생 같아요? 그래서 동생을 대신해서 서란이 배인호의 옆
병원에 도착한 후, 나는 산부인과 검사실로 들어갔고 배인호는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의사 선생님은 유산기가 있어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서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나는 정신도 없었고 기분도 안 좋았다. “밖에 있는 분이 남편분이 신가요? 상황을 알려 드릴까요? 환자분을 간호해 줄 분도 계셔야 합니다.”“아니요. 그냥 친구예요. 필요하면 제가 얘기할게요. 감사합니다.”나는 힘이 하나도 없어서 겨우 대답했다.병동으로 옮겨진 후 배인호는 내 침대로 와서 물었다.“무슨 일이냐? 방금 의사에게 물어봤는데 의사가 말을 안 해 줬어.”의사에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요청했더니 당연히 배인호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환자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이다.배인호의 얼굴에 나타난 걱정은 가짜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방금 서란을 제쳐두고 나를 먼저 병원에 데려온 것 또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나는 그에게 사실을 말하고 선택할 기회를 줘야 할지 고민했다.아이를 지킬 수 있다면 적어도 앞으로 배인호가 아이를 보러 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인호 씨, 나...”내가 말하려던 순간, 배인호의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몇 마디로 전화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민예솔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심각할 수 있지?”“내가 바로 갈게.”“그래, 알겠어.”방금 흔들렸던 내 마음이 금세 확고해졌다. 배인호는 단지 양심의 가책으로 나를 먼저 병원에 데려온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릴 수 있지?다행스럽게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배 속의 자식을 이용해 왕의 마음을 잡으려 한다.’라는 악명을 얻었을 것이다.배인호는 전화를 끊은 후 머뭇거리며 나를 바라보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나는 웃으며 말했다.“어서 가봐요. 나를 병원에 데려다준 것만으로 충분해요.”“뼈가 부러졌는데 심각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