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랑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빠르게 타자를 하던 그녀의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멈추고 이윽고 온하랑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연철’이 동철 오빠 사촌 동생이야?"온하랑은 우선 믿지 않기로 택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최동철은 절대 가족을 이용해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었다.게다가 온하랑이 최동철에게 자신이 모은 증거들을 보여주었을 때 보였던 최동철의 반응은 전혀 그 일을 알고 있던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그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돈 많은 사람은 다 그래요.” “제가 방금 찾아봤는데 본명이 최동철이더라고요. ‘연철’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쩌면 정말 최동철의 사촌 동생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설마 사촌 동생이 최동철을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안경 남이 웃으며 추측을 하였다. 젊은 사진작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닐걸요?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사촌 동생이 어떻게 사촌 오빠를 좋아할 수 있겠어요?” “어휴,” 아저씨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친사촌 사이면 몰라도 이 둘은 친사촌이 아니에요. 이 사촌 동생이라는 사람, 최동철 새엄마의 조카더라고요.” 온하랑은 듣자마자 최동철 새엄마의 고집불통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이 아저씨의 말에 신뢰가 생겼다.아마도 새엄마의 조카라면 사촌오빠에 대해 다른 마음을 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최동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 그 ‘연철’이라는 사람의 본명은 뭔지 아세요?” 안경 남이 물었다. “임연지요.” 젊은 사진작가와 안경 남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온하랑이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온하랑에게 향하더니 갑자기 대화 주제를 이번 대회에 관한 주제로 바꿨다.온하랑은 한참이나 기침을 하다가 가슴께를 문지른 후에야 멈추었다.온하랑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자신의 오른쪽으로 한 자리 옮겼다.아저씨를 포함한 세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복사 붙여넣기라도 한 듯한 똑같은 표정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온하랑은 괴롭힘을 가장 심하게 당하던 때를 기억한다. 괴롭힘이 가장 심하던 그 며칠 동안 그녀는 꿈속에서 집으로 돌아온 엄마를 만났다. 돌아온 엄마는 온하랑을 품에 꼭 끌어안고 다시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 말했다. 학교에서도 친구가 생겼고 더는 그녀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디.하지만 꿈에서 깨어난 후, 그녀에게는 남은 것은 차가운 이불과 깜깜한 밤뿐이었다. 그녀는 몸을 움츠리고 밀려오는 무기력감에 숨죽여 울었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꿈들을 많이 꿔왔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꿈을 꾼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0년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예전부터 온하랑은 종종 생각해왔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재혼했을까? 왜 그렇게 무자비하게 온하랑을 버렸을까? 왜 단 한 번도 온하랑을 보러 오지 않았을까? 그 주변에 이미 다른 아이가 있어서 자신을 버린 게 아닐까? 때로는 자신을 버린 “그녀”를 원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녀”에게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온하랑은 더 이상 어머니의 존재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분노도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녀”를 아예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아버지가 죽은 후 몇 년 동안, 온하랑은 이미 여러 해 동안 험난한 여정을 걸어왔다.세상은 넓으니 온하랑은 우연히 두 사람이 다시 만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은 운명의 장난을 너무 좋아했다.알고 보니 온하랑이 항상 그리워하던 “그녀”는 최씨 가문 옛 주인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녀”는 뉴스를 보았을까? 온하랑이 부씨 가문으로 입양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그녀"가 부하를 통해 온하랑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던 그 날, 온하랑이 바로 자신이 버렸던 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을까?온하랑은 병원에서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를 띠었다.“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부시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익숙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시아야, 씻으러 가야지.”부시아가 고개를 들더니 불만스럽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저 지금 숙모랑 얘기 중이잖아요!”“씻고 나서 마저 얘기하든지.”큰 손이 화면 안으로 들어오더니 아이의 작은 머리를 어루만졌다.“시아야, 얼른 씻으러 가. 다 씻고 나와서 다시 통화하자.”온하랑이 말했다.“숙모, 저 기다려 주셔야 해요.”부시아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움직였다.그 순간, 갑자기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이윽고 부승민의 화려한 얼굴이 화면에 띄워졌다. 뚜렷한 이목구비가 주는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그는 온하랑의 뒤로 보이는 도로를 보더니 물었다.“시상식 벌써 끝났어?”“참석 안 했어.”“왜?”“일이 좀 생겨, 다른 사람한테 대리 수상 부탁했어.”“무슨 일인데?”부승민이 물었다.“별로 큰일은 아니야.”온하랑이 부승민의 질문에 대답을 피했다.부승민은 화면에 비친 온하랑의 표정을 보더니 말했다.“표정 보면 별일이 아닌 게 아닌데.”부승민은 한눈에 온하랑의 기분이 나쁘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온하랑은 부승민이 이렇게나 예리할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 눈을 크게 뜬 온하랑은 잠시 아랫입술을 씹더니 입을 열었다.“걱정할 거 없어. 곧 괜찮아 질 거니까.”“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네가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 나랑 시아는 항상 네 편이야.”부승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 너머의 온하랑을 바라보며 말했다.둘은 분명 아무 사이도 아닌 게 맞았지만 부승민의 눈빛을 보는 순간 온하랑의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안정을 되찾아가는 것 같았다. 부승민의 목소리에 무슨 마법이라도 있는 듯 잔뜩 구려진 온하랑의 마음을 쫙쫙 펴주었다.하지만 온하랑은 차마 부승민의 앞에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온하랑이 말했다.“시아가 내 편이니까 넌 필요 없어.”그래도 아직 장난칠 기력이 남아있는 온하랑을 보니 부승민은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그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던 임연지를 알아본 직원은 반갑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게다가 룸을 예약한 사람과도 어느 정도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던 터라 직원은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임연지에게 사실대로 얘기해주었다.“오재원 씨께서 이틀 전부터 비워두라고 하셨던 방입니다. 최동철 씨도 이미 와계시고요.”임연지의 낯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사촌오빠였다고?“다른 사람 더 있어요?”“아마…. 진희성 씨, 전상윤 씨, 그리고 현인호 씨 다 와계실 거예요.”임연지의 얼굴색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방금 직원이 얘기해준 그 이름들은 모두 최동철과 사이가 좋다고 알려진 재벌 집 자제들이었다. 태생적으로 머리가 좋아 사업에 성공한 사람, 빵빵한 집안만 믿고 먹고 마시며 놀기만 하는 사람들 다 섞여 있었지만 모두 보통 인물들은 아니었다.만약 그 사람들과 온하랑을 이어주는 중간 다리 역할이 없었다면 온하랑이 저 방으로 들어가 그들과 겸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그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준 사람이 바로 최동철일 것이다.사촌 오빠가 온하랑에게 자기 친구들을 소개해줬다고?대체 왜?설마 온하랑을 좋아하는 건가? 그래서 아예 사귀려고?온하랑은 이미 한 번 결혼했다가 이혼한 헌신짝인데 그런 주제에 최동철한테 가당키나 할까?임연지는 분노에 가득 차 주먹을 꽉 쥐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에 얼굴이 열이 뻗친 나머지 온하랑은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음속에 맺혀있던 응어리를 풀 만한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온하랑도 주제 모르고 참 잘 까분다. 사촌 오빠가 오라 했다고 진짜 오네?지금 본인이 어떤 꼴인지 주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다.7층으로 돌아온 임연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방금 온하랑이 들어갔던 그 708번 방으로 향했다.임연지는 꼭 온하랑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말리라 다짐했다.절반 정도 다다르자 임연지가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었다.안돼. 만약 이런 식으로 군다면 사촌 오빠가 자신을 싫어할 것이 분명했다.눈동자를 도르륵 굴린
“온하랑?”“응, 그 여자.”오재원은 임연지가 의아해하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왜?”“온하랑이 누군지 몰라?”임연지는 눈썹을 치켜세웠다.“몰라. 내가 알아야 되는 사람이야?”“온하랑은 원래 강남 부씨 일가의 양녀였어. 그런데 부승민의 침대에 기어올라 부씨 일가 어른들의 뒤통수를 쳤죠. 부승민은 원래 그 여자를 엄청 싫어했거든. 그래서 전여자친구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그 여자랑 이혼했어.”임연지는 한숨을 내쉬곤 이어서 말했다.“전에 내가 고모 따라 강남을 갔었거든. 고모가 그러는데 온하랑이 우리 오빠한테 질척거린다고 하더라고. 동철 오빠가 장소 답사하러 갈 때면 무조건 따라붙는대. 동철 오빠 결혼은 고무부가 정해줄 거라는 거 너도 알잖아. 그래서 고모는 그 여자를 설득하려고 만났는데 그 여자가 고모한테 무례한 말을 막 하면서 엄청 예의없이 굴었대. 그 여자 탓에 동림이 천식도 발작을 일으키고.”“그게 전부 사실이야?”오재원은 온하랑을 몰랐지만 부승민에 관해선 잘 알았다.“당연하지. 내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임연지는 눈썹을 치켜세웠다.“부승민 전 애인이 연예인이었어. 그것 때문에 온하랑도 전에 기사에 난 적이 있으니까 내 말 밎지 못하겠으면 알아서 찾아봐.”그녀가 이렇게 말하니 오재원은 더욱 믿을 수박에 없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렸다.“동철이는 모른대? 왜 그런 여자랑 그렇게 가깝게 지내는 거야?”“나도 몰라. 그 여자 꿍꿍이가 많은 사악한 여자거든. 부승민도 걸려들었는데 우리 오빠라고 뭐 별수 있겠어? 난 지금은 오빠가 제발 그 여자한테 진심이지 않길 바라...”“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동철이한테도 그 여자 진상을 똑똑히 알려줄 거니까.”오재원은 장담하였다.설령 임연지를 위해서가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그런 사악한 여자의 술수에 넘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었다.“우리 오빠한테는 내가 이런 얘기했다는 거 말하지 말아줘. 알면 분명 나한테 화 낼 거야.”“걱정하지 마.”오재원이 답했다.
그가 몇 마디 추궁했을 뿐인데 최동철은 결국 참지 못하고 온하랑을 위해 나서주었다.오재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온하랑은 역시나 고수라고 말이다. 만약 계속 이렇게 두 사람을 내버려 둔다면 그녀의 목적이 달성하리라 생각했다.“난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것도 안 돼?”오재원은 웃으면서 변명했다. 행여나 최동철이 화를 내기라도 하면 더는 물어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천천히 그녀의 진상을 알려주려 했다.“우리 카드 게임 엄청 오래 안 한 것 같지 않아? 오랜만에 좀 하고 싶은데 같이 할까?”진희성은 테이블 위에 있던 카드를 가리켰다.룸에는 이상한 분위기가 흘렀기에 그들도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진희성은 온하랑에게 물었다.“하랑 씨, 혹시 할 줄 알아요? 같이 할래요?”혼자 어색하게 있을 것이 걱정되어 한 말이니 온하랑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옮겨 카드가 있는 테이블로 앉았다.“몇 번 해보긴 했는데 잘하는 건 아니라서 그래도 이기고 싶네요.”“에이, 괜찮아요. 이런 건 어차피 다 운빨이고 초짜일수록 운이 더 좋아요.”진희성은 최동철을 보았다.“동철아, 너는 할...”말을 마치기도 전에 오재원이 온하랑의 맞은 편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마침 나도 심심하던 차였는데. 나도 같이 놀아줄게.”결국 최동철은 진희성의 맞은편에 앉았고 다른 사람들은 옆에서 구경했다.진희성의 말대로 온하랑의 운은 아주 좋았다. 첫 두 판에서 전부 그녀가 이겼다.세 번째 판에서는 진희성이 이겼다.오재원은 운이 좋지 않은지 계속 지고 있다가 겨우 한판 이겼다.온하랑과 남은 두 사람은 칩은 오재원에게 주었다.오재원은 최동철과 진희성이 준 칩을 전부 자신의 자리 서랍에 넣어두었다. 온하랑이 준 칩은 다시 그녀의 앞으로 밀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하랑 씨, 이 칩은 다시 돌려드릴게요. 칩 대신 진실 게임하는 거로 퉁 치죠. 온하랑 씨가 졌으니 제 질문에 대답만 하면 돼요. 대체 왜 부승민과 결혼했던 거예요?”온
최동철은 카드 게임 테이블을 엎어버렸다. 칩이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게 들려왔다.그리곤 고개를 들어 오재원을 보면서 싸늘하게 말했다.“묻잖아! 부승민한테서 직접 들을 거야?”오재원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 그럴 필요는...”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온하랑의 입으로 대답을 유도하긴 글렀다고 말이다.온하랑은 교활해도 너무 교활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최동철을 조종해 자신을 상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아직 연락하지도 않았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궁금하다고 하지 않았나?”최동철의 목소리는 어투 더 싸늘해졌다.“그냥 잠깐 궁금했을 뿐이야.”오재원은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다.“에이, 앉아 앉아, 게임 계속하자.”“먼저 하고 있으세요. 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온하랑은 룸에 있는 사람들을 한 번씩 둘러보곤 담담하게 일어났다.그녀가 룸에서 사라지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너무도 무거워진 분위기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최동철의 안색이 확 어두워지고 칠흑 같은 두 눈으로 오재원을 보면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오재원, 대가리 길다가 전봇대에 부딪쳤냐?!”오재원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하면서 변명했다.“동철아, 난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저 온하랑이라는 여자는 사악하고 교활한 여자라고. 부승민을 유혹해서 결혼한 거야. 그런 여자 때문에 네 이미지만 망가질까 봐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거라고.”이때 전상윤이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동철아, 사실 재원이 말도 일리가 있어. 네가 온하랑 씨를 그저 학생으로 대하는 거라면 괜찮은데, 다른 마음이 있는 거라면... 재혼은 그렇다 쳐도 부씨 일가의 양녀잖아. 그 집안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사모님도 딱히 집안에 관심을 주지 않으셨대. 부승민도 그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니 편들어 주지는 않을 거야. 결국 그 여자는 아무런 이용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맞아. 동철아, 우린 네가 정말로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현인호도 맞장구를
온하랑과 최동철은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 오재원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앉던 자리에도 전상윤이 앉아 있었다.진희성의 주도하에 네 사람은 다시 웃고 떠들며 즐겁게 카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몇 판 후 온하랑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핸드폰 화면에 부승민의 이름 세 글자가 떴다.온하랑은 현인호에게 대신 게임을 해 달라고 부탁하곤 복도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몇 초 지났을까, 온하랑이 먼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부승민?”“응.”낮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가 그대로 그녀의 귀로 흘러들어왔다.“무슨 일이야?”온하랑은 그런 부승민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냥. 방금 술 좀 마셨더니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부승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왜 또 술을 마신 건데? 속은 괜찮은 거야?”“알아서 적당히 마셨어.”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지금 호텔이야? 아니면 아직도 밖이야?”온하랑은 뜸을 들였다.“밖이야.”부승민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온하랑이 다시 말을 이었다.“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어. 곧 호텔로 돌아갈 거야.”부승민이 최동철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최동철과 함께 있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면 분명 화를 낼 것으로 생각하고 숨겼다.“...”부승민은 침묵하다가 결국 웃어버렸다. 온하랑이 너무도 태연하게 거짓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물었다.“저녁으로 뭐 먹고 있었는데?”온하랑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생선구이.”“어느 가게야? 내 기억에 광주길 그쪽에 하음이라고 거기 생선구이가 맛있던데.”“...”다행히 온하랑은 예전에 경주로 와서 생선구이 먹어본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생선구이를 파는 가게를 알고 있었다.“연꽃 피는 못이라는 식당에서 먹고 있어.”“들어본 적 있지만 거기서 먹어본 적은 없어. 거기 메뉴판 좀 찍어서 보내줘. 다음에 경주로 갈 때 들러서 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