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랑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어이없다는 듯한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어쩐지 추서윤이 너무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더라니, 그 배후에는 부승민이 있었다.온하랑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인데, 추서윤과 헤어진 이유도 단순히 할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을까.온하랑은 조롱 섞인 눈빛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추서윤을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매번 부정하고 되려 입을 열 때마다 온하랑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다. 정말 우스워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사람 갖고 노니까 재미있었나?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바로 마음 약해져서 추서윤이랑 다시 잘 되어보려고 하는 건가?부승민의 곁에 있는 추서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살구색의 드레스를 입은 추서윤은 우아하고도 대범한 자태로 부승민의 팔짱을 낀 채 은은한 미소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추서윤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해도 온하랑은 그녀에게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초반엔 추서윤이 자신을 공격하는 이유가 그저 부승민과의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현 애인 치우기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추서윤이 일부러 할아버지의화를 돋우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들었을 때에야 그녀가 얼마나 사악하고 위험한 사람인지 제대로 깨달았다.추서윤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온하랑이 아버지를 위해 하려는 복수를 막을 것이다. 단순히 온하랑의 복수를 막기 위해 자신을 납치했던 납치범의 도주까지 도와주며 도망갈 시간까지 확보해주었다. 온하랑의 상식을 완전히 깨버리는 행동이었다.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지금, 온하랑은 경찰서에서 증언을 해주겠다던 추서윤의 말도 절대 믿을 수 없었다.추서윤은 애초부터 증언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 일을 핑계로 한 달 동안 온하랑을 제대로 괴롭히고 놀려먹을 생각이었겠지.이렇게 된 이상, 온하랑도 더는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복
김시연은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며 부승민을 곁눈질로 슬쩍 바라보고는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하랑 씨, 왜 안 가요? 부지런 때문에 남아있을 건 아니죠?”“그럴 리가요?”온하랑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정말 다른 일이 있어서 그래요.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알겠어요.”김시연은 기꺼이 믿어주기로 했다.김시연은 고개를 들어 온하랑의 표정을 살피더니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물었다.“하랑 씨… 질문이 있는데요…”“뭔데요? 얘기해봐요.”“하랑 씨 예전에는… 부지런 엄청 좋아하지 않았어요?”김시연은 온하랑과 부승민이 결혼을 앞둔 그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위태로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을 주고받는 걸로 미루어보았을 때 온하랑은 진심으로 부승민을 좋아했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적어도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만큼은 온하랑이 부승민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어쩌면 그 감정이 생각보다 깊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고서야 금방 이혼했을 때 온하랑이 그토록 넋 나간 사람처럼 살았을까. 아마도 또 다른 고통은 바로 아이 때문이었으리라…잠시 멈칫하며 대답을 망설인 온하랑이 입술을 한번 깨물더니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김시연은 “역시나” 같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엄청 오랫동안 좋아하지 않았어요?”적어도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났을 때부터 온하랑은 누군가를 눈에 띄게 좋아하고 있었다. 어쩌면 김시연이 온하랑을 알기 훨씬 전부터 온하랑은 부승민을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네.”온하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으로 포크의 손잡이를 만지작대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이었다.“말하자니까 좀 웃기긴 하는데요. 제가 부씨 가문에 입양되던 그해부터 좋아했어요.”김시연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정도로 오랜 시간일 줄은 몰랐다. 대충 계산해보면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그럼 지금도 좋아해요?”온하랑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로비에서 한바탕 소란이 들려왔다.두 경찰이 보안
추서윤은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이송되었고 온하랑도 그제야 자리를 떴다.로비에서는 사람들이 수군대며 서로 이런저런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따금 부승민을 슬쩍 바라보기도 했다.이 대표의 중재로 파티 현장은 다시 원래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부승민은 주위 사람들에게 “실례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곧장 자리를 떴다.증거를 제공해주고 구술로 정황설명까지 끝내고 취조실에서 나와보니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다 되어있었다. 온하랑은 로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김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가요.”김시연이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으며 물었다.“이제 다 끝났어요?”“네, 끝났어요. 나중에 또 조사할 일 생기면 그때 가서 소환할 거래요.”점심에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아버린 김시연은 잔뜩 화 난 표정으로 말했다.“추서윤 그년 생각보다 더 나쁜 년이었네요.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돼요, 알겠죠? 그 누가 와서 선처를 구하든 절대 용서 해주면 안 돼요. 감옥에서 썩을 대로 썩어야 한다고요, 저런 년은.”김시연이 온하랑에게 또박또박 지시하듯 말했다.온하랑이 가볍게 웃어 보이며 답했다.“마음 안 약해져요, 시연 씨도 알잖아요”추서윤이 지금 당장 온하랑에게 납치 사건에 대해 증언하겠다고 불러도 온하랑은 절대 추서윤을 용서해줄 마음이 없었다.경찰서에서 나오자 찬바람이 훅 끼쳤다.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온하랑의 차는 길거리에 주차되어 있었다.그 뒤로 검은 차 한 대가 어둠 속에서 눈 부신 헤드라이트를 킨 채 멈추어 서 있었다.온하랑은 그 차를 슬쩍 바라보더니 조롱 섞인 눈빛으로 눈썹을 찌푸렸다.그 차는 다름 아닌 부승민의 차였다.그도 두 사람을 따라 함께 경찰서까지 찾아온 것이다.이렇게나 다급하게 추서윤 대신해서 인맥 찾으러 와준 건가?온하랑은 시선을 거둔 채 곧장 자신의 차로 걸음을 옮겨 조수석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운전석에 올라탄 김시연이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그곳을 벗어났다.여전히 마음속에 추서
엘리베이터가 10층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왔다.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도 고요한 주차장이었던 탓에 그 발소리는 더욱 선명하게만 느껴졌다.김시연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채 휴대폰으로 타자를 하며 아버지의 소개팅 관련 질문에 폭풍 답변을 하고 있었다.온하랑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개를 아래로 풀 숙였다.왜인지 모르게 온하랑은 좋지 않은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 그 발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부승민의 발소리처럼 느껴졌다.하지만 그래봤자 부승민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하랑아.”등 뒤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온하랑이 고개를 돌려 인상을 팍 쓴 채 부승민을 바라보았다.“네가 왜 여기 있어?”부승민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온하랑에게 다가갔다.“여기 집이 다 괜찮길래, 하나 샀어.”부승민이 구입한 집은 바로 온하랑이 사는 곳의 바로 윗집이었다.“…”“띵—”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다.온하랑이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부승민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말을 건넸다.“일단 가지 말고, 할 얘기 있으니까 좀 들어줄래?”“이거 놔!”온하랑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너랑 할 얘기 없어.”“몇 분이면 돼. 몇 분만 나랑 얘기 좀 하자.”온하랑이 귀찮은 듯 눈을 뒤집으며 김시연을 바라보았다.김시연이 뭔가를 눈치 챈 듯 온하라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선처 같은 거 절대 해주면 안 돼요.”말을 마친 김시연이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승강이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온하랑이 덤덤한 눈빛으로 부승민을 흘겨보며 말했다.“하고 싶은 말이 뭐야, 말해봐.”부승민이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온하랑이 먼저 말을 꺼냈다.“만약 나한테 탄원서라도 써달라고 찾아온 거면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아니, 난 탄원서 써달라고 할 생각 없어.”부승민이 진지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점심에는… 아무 일 없었다니까 그나마 다행이네
상처받은 듯한 부승민의 눈빛을 마주한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으며 쥐고 있던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온하랑은 그저 사실만을 얘기한 것뿐인데?부승민이 왜 상처받은 눈빛을 하는 거지?“그래! 부승민, 네가 이렇게 하는 건 너랑 추서윤 사이에도 절대 좋은 행동이 아니야. 그리고 나 온하랑도 같이 무시하는 행동이나 다름없고. 넌 네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내가 너한테 껌뻑 속아 넘어갈 것 같니? 꿈 깨! 네가 나한테서 얻고 싶은 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쯤에서 그만둬!”온하랑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부승민의 이마 핏줄이 곤두섰다. 두 눈은 올곧게 온하랑만을 응시하고 있었다.“내가 너한테서 뭘 얻고 싶어 한다고..? 네가 얘기해봐, 내가 얻고 싶은 게 대체 뭘까?”“나도 물어보고 싶었어. 그건 너만 알겠지.”온하랑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부승민은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만 나왔다. 그는 혀로 어금니를 쓱 훑으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큰 보폭으로 온하랑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부승민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온하랑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발뒤꿈치가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벽에 부딪혔다.“너… 너 뭐 하려는 거야?”온하랑은 팔로 벽을 짚고 고개를 서서히 낮추었다. 뜨거운 부승민의 입김이 온하랑의 볼과 귀를 달구었다. 간지러운 느낌이 온하랑이 저절로 몸을 움츠렸다.“나 봐봐.”부승민이 깊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온하랑이 고개를 들어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윽한 부승민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은하수의 블랙홀과 같은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부승민의 눈동자에서는 그 어떤 비밀이나 속마음도 알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온하랑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 저도 모르게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재촉하듯 말했다.“부승민, 추서윤 씨 지금 경찰서에 잡혀있는데, 안 가볼 거야?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 시간 낭비인
온하랑은 덤덤한 표정으로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나한테 증명해 보이겠다는 말이야?”“맞아.”“난 필요 없어. 네가 계속 숨기는 거나 얘기하든지. 그렇게만 해준다면 진위 여부는 내가 판단해.”온하랑의 말에 부승민이 멈칫했다.온하랑은 이미 여러 번 부승민의 도움을 필요 없다며 거절해왔다. 부승민의 도움을 받기도 싫었고 만약 부승민이 온하랑 때문에 추서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한다면…하지만 이번 일을 해명한다면 온하랑은 추서윤을 풀어준 이유까지 꼬치꼬치 캐물을 것이다.온하랑이 임신 시절 찍혔던 사진을 보았다는 말만은 절대 할 수가 없었다.부승민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을 보던 온하랑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못 하겠다면 그래, 이쯤에서 관둬. 네가 뭘 증명하든 난 관심 없어. 나한테서 좀 떨어져 줄래? 그거야말로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제일 좋은 일이니까.”그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더니 한 주민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는 엘리베이터 옆에 있던 두 사람을 슬쩍 보더니 최대한 거리를 두며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을 발견하자 온하랑은 부승민의 큰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엘리베이터 안에 올라타 버튼을 눌렀다.문이 닫힌 엘리베이터는 빨리 위로 올라갔다.온하랑이 집으로 돌아오자 김시연이 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부지런이 무슨 곤란한 부탁 같은 건 안 했죠?”온하랑이 대충 현관문을 닫으며 대답했다.“없었어요.”온하랑도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추서윤을 위해 탄원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방심하지 마세요. 또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김시연이 경고했다.“네.”…추서윤이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사실은 재빨리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구체적인 체포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네티즌들의 추측이 난무했다.추서윤과 광고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던 광고주들도 사석에서 추서윤의 소식을 전해 듣고 계약서에 적혀있던 이름을 조용히 지웠
부현승은 여자친구를 데리고 부모님을 찾아뵌 적은 없지만 서혜민과 함께 데이트를 나갔는지 아닌지를 둘째 숙모는 잘 꿰고 있었다.세상 그 어느 엄마가 아들이 마음 맞은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을 마다할까?사실 초반에 둘째 숙모도 서헤민의 정체를 알았을 때는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다.가정환경도 평범했고 부모님 역시 사업가가 아닌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밑으로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돈 나갈 일이 많은 여동생 두 명과 남동생 한 명이 있었다. 게다가 나이가 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몸 여기저기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서혜민의 큰아버지는 병원에 입원까지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총체적으로 서혜민의 집안은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서헤민 본인도 중학교를 자퇴하고 백화점 의류 매장에서 판매 직원으로 일하는 신세였다.부현승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하층민이나 다름없었다.다행히도 둘째 숙모가 집안 환경을 크게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연구에만 심취해 있던 아들이 어렵게 연애를 한다고 하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혜민의 조건을 바로 수락해버렸다. 분명 서헤민에게 아들이 좋아할 만한 특징이 분명히 있으리라는 신념만 갖고 말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자기 아들이 이런 조건의 서혜민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미래 며느리에 대해 궁금한 게 아주 많던 둘째 숙모는 바로 며칠 전, 친하게 지내던 부잣집 사모님 한 명과 함께 쇼핑하며 서헤민이 근무하고 있는 매장을 방문했다.그때 가게에는 다른 손님들도 있었다.한 쌍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여학생이 옷을 입어보고 있었다. 겉모습부터 평범했던 두 여학생에게 서혜민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둘이 무엇을 하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수시로 가게 입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둘째 수고 일행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곧바로 고등학생 손님 두 명을 제쳐두고 환한 미소로 둘째 숙모 일행을 맞이했다.그 순간, 둘째 숙모의 표정이 슬슬 굳어가기 시작했다.하지만 서혜민은 그런 둘째 숙모의 표정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누가 봐도 큰
온하랑이 부정하며 말했다.“형님,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그저 시아를 좋아할 뿐이에요.”“그런 거였군요…”온하랑은 소청하의 표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진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형님, 왜 그러세요?”소청하는 온하랑의 질문에 손에 들고 있던 간식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낮게 중얼거렸다.“어제 그이가 또 그 여자랑 통화하는 걸 들었어요…”소청하의 말에 온하랑이 화를 내며 대답했다.“아주버님도 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이혼 생각을 품고 있던 소청하도 아이가 생기자마자 바로 이혼이라는 생각 자체를 접어버렸는데 부민재는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온하랑이 함께 화를 내주는 모습을 보자 소청하는 덩달아 슬퍼졌는지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온하랑의 손을 잡고 말했다.“하랑 씨, 저도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온하랑이 본 소청하의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전보다 살도 많이 빠졌고 얼굴도 훨씬 초췌해 보였다.홑몸도 아닌데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정”이라는 단어가 참 묘한 것 같다. 형태도 없이 다가와 사람을 죽이고 흉터 하나 없이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정”이라는 이유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져도 쉬이 놓을 수가 없다.만약 부민재와 소청하가 단순히 집안끼리 맺어진 사실혼 사이였다면 소청하가 이 정도로 심하게 아파하지는 않을 것이다.“형님, 형님은 이 아이, 낳고 싶으세요?”소청하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저도 모르겠어요…”사실 소청하는 어떻게든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어제저녁 부민재의 통화를 엿들어버린 순간, 소청하도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사람들 말 틀린 것 하나 없었다. 이미 바람을 한 번 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분명 두 번째, 세 번째가 존재한다고. 부민재가 계속해서 외간여자와 연락을 이어나가는데 소청하가 계속해서 이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깔끔하게 이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