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추서윤이 호텔 방 밖에 대기하게 시켰던 그 사람이었다.발신인을 확인한 추서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로 전화를 받아 질문을 던졌다.“왜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수화기 너머에서는 한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대답이 들려왔다.“방금 구급차가 와서 조감독님을 싣고 갔습니다.”추서윤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띄워졌다.설마 음주 후 성관계로도 정신을 잃을 수가 있나?흥, 40대 늙다리가 운동도 안 하고 살만 뒤룩뒤룩 쪄있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매번 최민식과 함께 관계를 할 때마다 추서윤은 능지처참을 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껴왔다.온하랑도 자신과 같은 일을 겪었다 생각하니 추서윤의 마음은 후련하기 그지없었다.“제가 방금 가까이 가서 봤는데요, 조감독님 옷매무새는 단정했는데 머리에 상처가 심하게 나 있었습니다…”추서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뭐라고요? 확실해요? 잘못 본 건 아니고요?”“네, 정말입니다.”“…”추서윤은 지금 심정을 무어라 형용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추서윤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심장이 빠르게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수화기 너머로 질문을 던졌다.“방 안에는 들어가 봤어요? 카메라…” “방금 혼란스러울 때 들어가 봤는데요. 메모리 카드는 이미 누군가가 가져간 것 같습니다.”추서윤은 마음속에 무거운 돌덩이가 쿵 내려앉는 듯했다.그녀는 조용히 전화를 끊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자동차 핸들을 힘껏 내리쳤다.쓸모없는 것들!정말 하나 같이 쓸모라고는 없는 것들!최민식 이 돼지 새끼가!아니, 돼지보다 못한 놈!입 앞까지 고기를 가져다줘도 못 먹어!추서윤은 극에 달한 분노에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말았다.메모리 카드는 분명 온하랑이 가져갔을 것이다.추서윤이 기억하기로는 자신이 카메라를 작동시킨 후로도 최민식과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만약 온하랑이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따로 공개라도 해버린다면 그 결과는 감히
남자와의 통화가 끝나자 추서윤은 또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어떻게 됐어? 그쪽 애들은 국경 근처는 갔대? 장국호가 온하랑한테 넘어가면 우리는…”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답했다.“갔어. 지금 장국호의 행방은 아무도 몰라.”추서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원망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온하랑이 10년 전 사건 조사하기 시작할 때부터 진작…”온하랑도 같이 처리해버렸어야 했다.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침묵을 지킨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추서윤이 비웃으며 말했다.너희 부씨 집안도 온하랑 거둬줄 땐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못 해봤지?”부민재가 말했다.“내가 할아버지한테 온하랑 입양하자고 얘기한 거야.”사실 할아버지는 그저 온하랑이 계속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후원만 해줄 생각이었다.온하랑을 부씨 가문으로 입양해 양딸로 키우자는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은 바로 부민재였다.할아버지는 평소에도 항상 온강호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인지 온강호의 죽음이 알려졌을 때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진심으로 애도했다. 갓 사회에 진출해 일을 시작한 큰 손자를 온강호의 장례식에까지 참석시킬 정도였다.그때까지만 해도 부민재는 그저 할아버지의 친구가 세상을 뜬 줄로만 알고 할아버지와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다.장례식장에 도착해 크게 걸려있는 흑백의 영정사진을 확인한 후에야 부민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평범한 영정사진이었지만 부민재는 사진 속의 남자가 살벌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듯한 괴이한 느낌을 받았다.할아버지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진심으로 애도 하는 표정을 보는 부민재의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다.부민재는 그곳에서 온하랑을 처음 마주쳤다. 16-17살 정도밖에 안 된 어리고 어렸던 온하랑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온강호가 온하랑의 유일한 가족이었다는 ㅅ사실을 접한 후에는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연민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할아버지에게 먼저 온하랑의 입양을 제안했다.할아버지도 부민재의 의
“알겠어요, 같이 가요.”저녁 일곱 시 반, 온하랑은 김시연과 함께 파티 장소로 도착했다.말로는 파티라고 하지만 간단한 연회에 가까웠다. 화려한 양복을 갖춰 입은 성공 인사들이 두세 명씩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온하랑과 김시연 두 사람은 디저트만 조금 챙겨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온하랑이 물었다.“그 소개팅 상대라는 사람은 왔어요?”김시연은 휴대폰을 보며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고는 대답했다.“아직이요.”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청년이 다가와 두 사람에게 간단한 대화를 시도했지만 냉담하기 그지없는 반응에 이내 흥미를 잃고 자리를 떴다.조금 지나자 김시연은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로 답장을 보내는 듯하더니 이내 온하랑에게 말했다.“왔대요, 두세 마디 정도만 얘기하다가 금방 올게요.”“네.”김시연이 몸을 일으켜 테라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온하랑은 계속해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그 순간, 청장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이 납치 사건은 다른 사건들에 비해 정말 이상한 사건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납치범은 체포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온하랑의 아버지까지 연관되어버린 사건이었다.민성주는 그저 납치 사건과 온강호 사망 사건을 이어주는 인물일 뿐, 온하랑이 정말 잡고 싶었던 범인은 바로 왕대운이었다.괜히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둘 다 놓칠 것을 우려해 경찰은 민성주를 굳이 서까지 불러내지는 않았다. 그저 감시반을 붙여 민성주와 왕대운의 집 주위에서 잠복근무하며 두 사람을 계속 감시하기만 했다. 또 다른 인력을 동원해 민성주 생부가 살던 집을 집중적으로 수색하고 동시에 왕대운과 민성주의 관계를 조사하도록 했다.추서윤이 나서서 민성주의 죄를 입증해야만 조사라는 명목으로 왕대운을 체포할 수 있었다.하지만 청장이 전화로 전해준 소식은 다름 아닌 민성주가 도주했다는 사실이었다.정확하게 말하면 실종되었다.민성주의 집 주위에서 잠복근무하던 경찰들은 오전까지만 해도 민성주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오후가 다 지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자 어딘
온하랑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어이없다는 듯한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어쩐지 추서윤이 너무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더라니, 그 배후에는 부승민이 있었다.온하랑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인데, 추서윤과 헤어진 이유도 단순히 할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을까.온하랑은 조롱 섞인 눈빛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추서윤을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매번 부정하고 되려 입을 열 때마다 온하랑에게 사랑 고백을 하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다. 정말 우스워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사람 갖고 노니까 재미있었나?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바로 마음 약해져서 추서윤이랑 다시 잘 되어보려고 하는 건가?부승민의 곁에 있는 추서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몸에 딱 달라붙는 살구색의 드레스를 입은 추서윤은 우아하고도 대범한 자태로 부승민의 팔짱을 낀 채 은은한 미소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추서윤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해도 온하랑은 그녀에게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초반엔 추서윤이 자신을 공격하는 이유가 그저 부승민과의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현 애인 치우기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추서윤이 일부러 할아버지의화를 돋우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들었을 때에야 그녀가 얼마나 사악하고 위험한 사람인지 제대로 깨달았다.추서윤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온하랑이 아버지를 위해 하려는 복수를 막을 것이다. 단순히 온하랑의 복수를 막기 위해 자신을 납치했던 납치범의 도주까지 도와주며 도망갈 시간까지 확보해주었다. 온하랑의 상식을 완전히 깨버리는 행동이었다.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지금, 온하랑은 경찰서에서 증언을 해주겠다던 추서윤의 말도 절대 믿을 수 없었다.추서윤은 애초부터 증언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 일을 핑계로 한 달 동안 온하랑을 제대로 괴롭히고 놀려먹을 생각이었겠지.이렇게 된 이상, 온하랑도 더는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복
김시연은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며 부승민을 곁눈질로 슬쩍 바라보고는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하랑 씨, 왜 안 가요? 부지런 때문에 남아있을 건 아니죠?”“그럴 리가요?”온하랑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정말 다른 일이 있어서 그래요.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알겠어요.”김시연은 기꺼이 믿어주기로 했다.김시연은 고개를 들어 온하랑의 표정을 살피더니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물었다.“하랑 씨… 질문이 있는데요…”“뭔데요? 얘기해봐요.”“하랑 씨 예전에는… 부지런 엄청 좋아하지 않았어요?”김시연은 온하랑과 부승민이 결혼을 앞둔 그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위태로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을 주고받는 걸로 미루어보았을 때 온하랑은 진심으로 부승민을 좋아했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적어도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만큼은 온하랑이 부승민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어쩌면 그 감정이 생각보다 깊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고서야 금방 이혼했을 때 온하랑이 그토록 넋 나간 사람처럼 살았을까. 아마도 또 다른 고통은 바로 아이 때문이었으리라…잠시 멈칫하며 대답을 망설인 온하랑이 입술을 한번 깨물더니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김시연은 “역시나” 같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엄청 오랫동안 좋아하지 않았어요?”적어도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났을 때부터 온하랑은 누군가를 눈에 띄게 좋아하고 있었다. 어쩌면 김시연이 온하랑을 알기 훨씬 전부터 온하랑은 부승민을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네.”온하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으로 포크의 손잡이를 만지작대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이었다.“말하자니까 좀 웃기긴 하는데요. 제가 부씨 가문에 입양되던 그해부터 좋아했어요.”김시연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정도로 오랜 시간일 줄은 몰랐다. 대충 계산해보면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그럼 지금도 좋아해요?”온하랑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로비에서 한바탕 소란이 들려왔다.두 경찰이 보안
추서윤은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이송되었고 온하랑도 그제야 자리를 떴다.로비에서는 사람들이 수군대며 서로 이런저런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따금 부승민을 슬쩍 바라보기도 했다.이 대표의 중재로 파티 현장은 다시 원래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부승민은 주위 사람들에게 “실례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곧장 자리를 떴다.증거를 제공해주고 구술로 정황설명까지 끝내고 취조실에서 나와보니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다 되어있었다. 온하랑은 로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김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가요.”김시연이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으며 물었다.“이제 다 끝났어요?”“네, 끝났어요. 나중에 또 조사할 일 생기면 그때 가서 소환할 거래요.”점심에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아버린 김시연은 잔뜩 화 난 표정으로 말했다.“추서윤 그년 생각보다 더 나쁜 년이었네요.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돼요, 알겠죠? 그 누가 와서 선처를 구하든 절대 용서 해주면 안 돼요. 감옥에서 썩을 대로 썩어야 한다고요, 저런 년은.”김시연이 온하랑에게 또박또박 지시하듯 말했다.온하랑이 가볍게 웃어 보이며 답했다.“마음 안 약해져요, 시연 씨도 알잖아요”추서윤이 지금 당장 온하랑에게 납치 사건에 대해 증언하겠다고 불러도 온하랑은 절대 추서윤을 용서해줄 마음이 없었다.경찰서에서 나오자 찬바람이 훅 끼쳤다.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온하랑의 차는 길거리에 주차되어 있었다.그 뒤로 검은 차 한 대가 어둠 속에서 눈 부신 헤드라이트를 킨 채 멈추어 서 있었다.온하랑은 그 차를 슬쩍 바라보더니 조롱 섞인 눈빛으로 눈썹을 찌푸렸다.그 차는 다름 아닌 부승민의 차였다.그도 두 사람을 따라 함께 경찰서까지 찾아온 것이다.이렇게나 다급하게 추서윤 대신해서 인맥 찾으러 와준 건가?온하랑은 시선을 거둔 채 곧장 자신의 차로 걸음을 옮겨 조수석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운전석에 올라탄 김시연이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그곳을 벗어났다.여전히 마음속에 추서
엘리베이터가 10층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왔다.그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도 고요한 주차장이었던 탓에 그 발소리는 더욱 선명하게만 느껴졌다.김시연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채 휴대폰으로 타자를 하며 아버지의 소개팅 관련 질문에 폭풍 답변을 하고 있었다.온하랑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개를 아래로 풀 숙였다.왜인지 모르게 온하랑은 좋지 않은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 그 발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부승민의 발소리처럼 느껴졌다.하지만 그래봤자 부승민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하랑아.”등 뒤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온하랑이 고개를 돌려 인상을 팍 쓴 채 부승민을 바라보았다.“네가 왜 여기 있어?”부승민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온하랑에게 다가갔다.“여기 집이 다 괜찮길래, 하나 샀어.”부승민이 구입한 집은 바로 온하랑이 사는 곳의 바로 윗집이었다.“…”“띵—”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다.온하랑이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부승민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말을 건넸다.“일단 가지 말고, 할 얘기 있으니까 좀 들어줄래?”“이거 놔!”온하랑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너랑 할 얘기 없어.”“몇 분이면 돼. 몇 분만 나랑 얘기 좀 하자.”온하랑이 귀찮은 듯 눈을 뒤집으며 김시연을 바라보았다.김시연이 뭔가를 눈치 챈 듯 온하라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선처 같은 거 절대 해주면 안 돼요.”말을 마친 김시연이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승강이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온하랑이 덤덤한 눈빛으로 부승민을 흘겨보며 말했다.“하고 싶은 말이 뭐야, 말해봐.”부승민이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온하랑이 먼저 말을 꺼냈다.“만약 나한테 탄원서라도 써달라고 찾아온 거면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아니, 난 탄원서 써달라고 할 생각 없어.”부승민이 진지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점심에는… 아무 일 없었다니까 그나마 다행이네
상처받은 듯한 부승민의 눈빛을 마주한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으며 쥐고 있던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온하랑은 그저 사실만을 얘기한 것뿐인데?부승민이 왜 상처받은 눈빛을 하는 거지?“그래! 부승민, 네가 이렇게 하는 건 너랑 추서윤 사이에도 절대 좋은 행동이 아니야. 그리고 나 온하랑도 같이 무시하는 행동이나 다름없고. 넌 네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내가 너한테 껌뻑 속아 넘어갈 것 같니? 꿈 깨! 네가 나한테서 얻고 싶은 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쯤에서 그만둬!”온하랑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부승민의 이마 핏줄이 곤두섰다. 두 눈은 올곧게 온하랑만을 응시하고 있었다.“내가 너한테서 뭘 얻고 싶어 한다고..? 네가 얘기해봐, 내가 얻고 싶은 게 대체 뭘까?”“나도 물어보고 싶었어. 그건 너만 알겠지.”온하랑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부승민은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만 나왔다. 그는 혀로 어금니를 쓱 훑으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큰 보폭으로 온하랑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부승민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온하랑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발뒤꿈치가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벽에 부딪혔다.“너… 너 뭐 하려는 거야?”온하랑은 팔로 벽을 짚고 고개를 서서히 낮추었다. 뜨거운 부승민의 입김이 온하랑의 볼과 귀를 달구었다. 간지러운 느낌이 온하랑이 저절로 몸을 움츠렸다.“나 봐봐.”부승민이 깊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온하랑이 고개를 들어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윽한 부승민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은하수의 블랙홀과 같은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부승민의 눈동자에서는 그 어떤 비밀이나 속마음도 알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온하랑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듯 저도 모르게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재촉하듯 말했다.“부승민, 추서윤 씨 지금 경찰서에 잡혀있는데, 안 가볼 거야?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 시간 낭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