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진이 핸드폰을 빼앗아 김시연한테 전달할 때 김시연은 하나도 받고 싶지 않았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서 김시연은 어쩔 수 없이 건네받고는 화면을 닦았다.“고마워.”“괜찮아. 별것도 아닌데 뭘.”연도진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금테 안경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김시연이 차갑게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여기가 경치가 좋다길래 와서 산책 좀 하다가 우연히 널 보게 됐어.”김시연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연도진은 사람들이 붙잡은 도적을 보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 전화를 끊고 그는 김시연한테 말했다.“경찰 금방 온대.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온하랑은 큰 발걸음으로 걸어왔다.“시연 씨, 괜찮아요?”김시연이 얘기했다.“괜찮아요. 다들 먼저 가서 볼일 봐요. 경찰이 오면 진술하고 나서 찾으러 갈게요.”“연도진은 왜 여기 있는 거예요?”온하랑은 옆에 있는 연도진을 힐끔 쳐다봤다. 김시연은 눈을 흘기고는 옆의 부승민을 힐끔 쳐다봤다.“여기 와서 산책했대요. 누가 알겠어요?”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부승민은 평온한 표정으로 연도진을 힐긋 쳐다봤다. 두 시선이 마주친 순간, 연도진은 시선을 거두고 김시연한테로 시선을 옮겼다. 부승민도 시선을 돌려 품에 안긴 부시아한테 다코야키를 찍어 입에 넣어줬다. 온하랑은 김시연에게 말했다.“괜찮아요. 원래 시간이 부족한데 얼른 탐사해요.”“그럼 일이 끝나면 전화해요.”“네.”온하랑은 부승민한테 말했다.“가자.”두 사람이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연도진은 힐끔 부승민의 옆모습을 살폈다. 문득 낯에 익은 것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미묘한 익숙함은 최동철과 닮아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봤던지 떠올릴 수 없었다. 아마 부승민이 해외로 출장 갔을 때 우연히 마주쳤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연도진은 두 사람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물었다.“저 사람이 BX 그룹 새 회장 부승민 씨야?”“그래.”“두 사람 이혼한
김시연은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그래, 못 할 것도 없지.”전화가 연결됐고 수화기 너머에서 온하랑의 목소리가 전해져왔다.“시연 씨, 일 끝났어요? 우리 지금...”“하랑 씨, 지금 연도진이랑 밥 먹으러 가려고요. 지금 못 갈 것 같아요. 다 먹은 뒤에 얘기하죠.”온하랑은 잠시 멈칫하다 말했다.“당연한 거죠. 그래도 몸조심해요, 뭔 일 있으면 연락해요.”“안심해요.”전화를 끊은 뒤 온하랑은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카메라를 집어 들고는 몇 미터밖에 서있는 부승민과 부시아를 향해 말했다.“조금 더 붙어... 오케이. 그 상태로 웃자... 좋아!”부승민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부시아가 하도 같이 찍자길래 어쩔 수 없이 같이 찍었다. 부승민이 걸어와 온하랑 카메라의 사진을 보면서 물었다.“아까는 김시연 씨 전화야?”“응. 잠시 못 온대.”온하랑은 진지하게 카메라의 사진들을 살피며 대답했다.“전 남자 친구 혼혈이야?”온하랑은 잠시 이해가 안 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눈이랑 얼굴 골격이.”“글쎄 시연 씨가 그런 말 한 적은 없는데.”온하랑이 대답했다. 그녀는 부승민이 제멋대로 추측한 거로 생각했다. 연도진의 오관이 뚜렷하긴 해도 한 번 봐서 혼혈이란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연도진은 사전에 맛집을 알아보고 현지 특색을 잘 반영한 샤브샤브집을 골랐다. 두 사람이 마주 앉고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져와서 말했다.“두 분 뭐 드실 건가요?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와서 저희 가게에서 커플 세트 요리를 런칭했답니다. 가성비가 짱인데 드셔보실래요?”“됐어요.”“그거로 주세요.”김시연과 연도진은 동시에 대답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고 김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됐어. 그냥 주문하면 돼. 내가 돈을 못 낼 형편도 아니고.”연도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놀리듯 말했다.“김씨 집안 아가씨가 통도 크시네요!”말을 마치고 그는 메뉴판을 넘겨받아 하나하나 메뉴를 읊기
온하랑이 말한 것과 같이 김시연은 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연도진이 핸드폰을 빼앗아 김시연한테 전달할 때 김시연은 하나도 받고 싶지 않았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서 김시연은 어쩔 수 없이 건네받고는 화면을 닦았다.“고마워.”“괜찮아. 별것도 아닌데 뭘.”연도진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고 금테 안경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김시연이 차갑게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여기가 경치가 좋다길래 와서 산책 좀 하다가 우연히 널 보게 됐어.”김시연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연도진은 사람들이 붙잡은 도적을 보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했다. 전화를 끊고 그는 김시연한테 말했다.“경찰 금방 온대.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온하랑은 큰 발걸음으로 걸어왔다.“시연 씨, 괜찮아요?”김시연이 얘기했다.“괜찮아요. 다들 먼저 가서 볼일 봐요. 경찰이 오면 진술하고 나서 찾으러 갈게요.”“연도진은 왜 여기 있는 거예요?”온하랑은 옆에 있는 연도진을 힐끔 쳐다봤다. 김시연은 눈을 흘기고는 옆의 부승민을 힐끔 쳐다봤다.“여기 와서 산책했대요. 누가 알겠어요?”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부승민은 평온한 표정으로 연도진을 힐긋 쳐다봤다. 두 시선이 마주친 순간, 연도진은 시선을 거두고 김시연한테로 시선을 옮겼다. 부승민도 시선을 돌려 품에 안긴 부시아한테 다코야키를 찍어 입에 넣어줬다. 온하랑은 김시연에게 말했다.“괜찮아요. 원래 시간이 부족한데 얼른 탐사해요.”“그럼 일이 끝나면 전화해요.”“네.”온하랑은 부승민한테 말했다.“가자.”두 사람이 곁을 스쳐 지나갈 때 연도진은 힐끔 부승민의 옆모습을 살폈다. 문득 낯에 익은 것이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미묘한 익숙함은 최동철과 닮아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봤던지 떠올릴 수 없었다. 아마 부승민이 해외로 출장 갔을 때 우연히 마주쳤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연도진은 두 사람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물었다.“저 사람
말하며 연도진은 한 방향을 가리켰다. 김시연이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두 남자가 그곳에 서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김시연은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그래, 못 할 것도 없지.”전화가 연결됐고 수화기 너머에서 온하랑의 목소리가 전해져왔다.“시연 씨, 일 끝났어요? 우리 지금...”“하랑 씨, 지금 연도진이랑 밥 먹으러 가려고요. 지금 못 갈 것 같아요. 다 먹은 뒤에 얘기하죠.”온하랑은 잠시 멈칫하다 말했다.“당연한 거죠. 그래도 몸조심해요, 뭔 일 있으면 연락해요.”“안심해요.”전화를 끊은 뒤 온하랑은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카메라를 집어 들고는 몇 미터밖에 서있는 부승민과 부시아를 향해 말했다.“조금 더 붙어... 오케이. 그 상태로 웃자... 좋아!”부승민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부시아가 하도 같이 찍자길래 어쩔 수 없이 같이 찍었다. 부승민이 걸어와 온하랑 카메라의 사진을 보면서 물었다.“아까는 김시연 씨 전화야?”“응. 잠시 못 온대.”온하랑은 진지하게 카메라의 사진들을 살피며 대답했다.“전 남자 친구 혼혈이야?”온하랑은 잠시 이해가 안 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눈이랑 얼굴 골격이.”“글쎄 시연 씨가 그런 말 한 적은 없는데.”온하랑이 대답했다. 그녀는 부승민이 제멋대로 추측한 거로 생각했다. 연도진의 오관이 뚜렷하긴 해도 한 번 봐서 혼혈이란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연도진은 사전에 맛집을 알아보고 현지 특색을 잘 반영한 샤브샤브집을 골랐다. 두 사람이 마주 앉고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져와서 말했다.“두 분 뭐 드실 건가요?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와서 저희 가게에서 커플 세트 요리를 런칭했답니다. 가성비가 짱인데 드셔보실래요?”“됐어요.”“그거로 주세요.”김시연과 연도진은 동시에 대답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고 김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됐어. 그냥 주문하면 돼. 내가 돈을 못 낼 형편도 아니고.”연도진이 입꼬리를
김시연의 표정이 평온하고 질투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연도진은 입술을 다물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이엘리아는 혜안을 갖고 있다고 늘 사람들한테서 칭찬받아.”“흥, 그래봤자지.”“...”웨이터가 하나둘 음식을 올렸는데 그중에는 비싼 고량주도 한 병 있었다. 김시연은 술을 따 자기한테 한 잔 붓고는 연도진한테 한 잔 부었다. 연도진은 마시지 않았고 김시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잔을 비워버렸다. 김시연이 계속 자신의 잔에 들이붓는 걸 보고 연도진은 주의를 주었다.“너무 많이 마시지 마.”“너랑 뭔 상관인데?”김시연은 예의 차리지 않고 맞받아치고는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웠다. 마셔버리려는데 연도진이 웃을락 말락 한 표정으로 놀리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너 혹시 내가 여자 친구가 있어서 질투하는 건 아니지?”김시연은 멈칫하고는 웃긴 말을 듣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내가? 내가 왜 질투를 해? 웃겨 진짜. 꿈 깨!”“그럼 왜 갑자기 술을 그렇게 많이 먹는 건데?”“안 좋은 일이 떠올라서, 안 돼?”“내가 보기엔 너 질투하는 거야.”“아니라니까!”“맞는데 뭘.”김시연의 입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그녀는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말했다.“안 먹어. 안 먹는다고. 됐지?”“아휴, 난 또 네가 나 못 잊은 줄 알았지.”“하!”...시간이 쫓기던 터라 온하랑 일행은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밖에서 간단하게 배를 채운 뒤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했다. 온 하루 고되게 걸었던 터라 온하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곤했고 발바닥은 시큰시큰 아파졌다. 중간에 부승민이 업긴 했어도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호텔에 돌아온 뒤 온하랑은 침대에 널브러져 하나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김시연은 식사를 마치고 바로 호텔로 돌아왔고 휴식을 조금 취한 뒤 시내에 나가서 쇼핑을 즐기다 이내 돌아왔다. 녹초가 된 온하랑과 주현을 보면서 그녀는 주동적으로 배달 음식 4인분을 시켰다. 배달 음식이 도착할 때쯤, 온하랑은 기력을 조금 되찾았고 김시연에게 물었다.“점심에 연도
안에서 위엄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들어와.”최동철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아버지, 찾으셨어요?”최동철의 아버지, 최국환의 나이는 예순을 넘었다. 원래는 신체가 건강한 편이었지만, 얼마 전에 갑자기 큰 병에 걸리며 기력이 몹시 쇠해졌다. 그러나 근엄한 외모와 살짝 주름이 잡힌 미간, 또렷한 눈동자를 비롯한 온몸 곳곳에서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고위층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최국환의 용모는 최동철과 매우 닮아 있었다. 젊었을 때 그도 조각 미남이었다는 걸 한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내가 듣기로 너 최근에 쭉 강남에 있었다며?”최국환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네.”“너 강남에 가서 대체 뭐하고 돌아다닌 거야?”멈칫하던 최동철이 눈을 들자 아버지의 시선과 마주쳤다.“아시잖아요. 아니면 왜 저를 불렀어요?”최국환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바로 명령했다.“프로젝트를 따냈으면 경영에나 신경 쓸 것이지. 당장 경주로 돌아와. 앞으로 부씨 일가를 겨냥하는 일은 그만 둬.”최동철이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전 부씨 일가를 겨냥한 적이 없어요. 그저 엄격하게 회사 미래 발전 계획에 따라 비즈니스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에요. 아마 그 계획이 부씨 일가의 계획과 충돌이 있어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최국환이 냉소를 흘렸다.“미래 발전 계획? 너 지금 내가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는 거야? 이제 감히 이 아비까지 기만하려고 드는 게야?”“아닌데요.”최동철은 곧바로 부인했다.“그럼 얌전히 경주에 있어. 내가 너한테 최씨 일가를 맡긴 건 네가 사업을 더 발전시켜 한층 위로 끌어올리게 하길 바라서지, 네 알량한 복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여 최씨 가문을 아무 때나 위험에 빠트리게 하라는 게 아니야!” 최동철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제가 최씨 가문을 위험에 빠트린다고요? 최씨 가문이 걱정돼서 이러시는 건지 아니면 그 모자가 마음 아파 이러시는 건지 아버지께서 제일 잘 알고 계시겠죠!”최국환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입술을 달싹였다.“물
한편, 온하랑은 내일 추서윤의 회사로 가서 보고해야 하기에 부시아를 부승민한테 맡기려고 생각했다.야외 촬영이 끝나면 부선월은 분명 부시아를 로스앤에 데려가려고 할 거지만, 부승민이 부시아를 국내에 남겨두려고 할지 아니면 한발 물러서서 내버려둘지 알 수가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 부승민에게 문자를 보낸 후 온하랑은 주현에게 말했다.“주현 씨, 앞에서 세워줘요. 나랑 시아는 여기서 내릴게요.”“기다릴까요?”“아니요. 부승민에게 할 말이 있어요.”주현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차를 세웠다. 온하랑과 부시아가 차에서 내리고 주현이 떠나자마자 부승민의 차가 그들 앞에 멈춰 섰다. 온하랑은 뒷문을 열고 부시아와 함께 뒷좌석에 올라탔다. 부승민은 커다란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손목에는 값비싼 메탈 시계를 차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빼낸 부승민은 백미러를 통해 온하랑을 보며 물었다.“저녁 뭐 먹을래?”“난 아무거나 상관없어.”“시아는 뭐 먹고 싶어?”부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오리 로스구이 먹고 싶어요.”“좋아, 그럼 오리 로스구이 먹으러 가자.”먹보 부시아는 입 주위에 기름을 가득 바르며 야무지게 먹었다. 온하랑은 기회를 틈타서 부시아에게 물었다.“시아야, 오늘 삼촌이랑 돌아갈래?”부시아는 머뭇거리더니 부승민과 온하랑을 번갈아 보며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왜요?”“고모가 며칠 동안 할 일이 있어서 시아를 돌봐 줄 시간이 없어.”부시아가 묻기도 전에 부승민이 먼저 물었다.“무슨 일이야?”온하랑은 그를 무시하고 계속 부시아를 달랬다.“아주 중요한 일이야. 고모가 일이 끝나면 다시 시아랑 놀아 줄게. 돼?”부시아는 어른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숙모 일 빨리 끝내고 시아 데리러 와야 해요. 시아가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그래, 빨리 끝내고 시아 데리러 갈게.”어린아이를 달래고 난 후, 온하랑은 부승민의 호기심 어린 표정을 흘끗 보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차분한 얼굴로 밥을 먹었다.아랫입
그녀는 그렇게 그가 미덥지 못해 선을 그으려고 하는 건가?화가 치미는 동시에 마음이 욱신거렸다. 온강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도대체 무슨 심정이었을까?온하랑은 매우 진지한 사람이며 매사에 진중하고 열정적이다. 그녀는 절대 한눈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기억 속의 사람을 계속 되새긴다.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온강호가 죽은 지 10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보복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온강호와 같은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버텨왔다.전화를 끊은 부승민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나서야 룸으로 돌아갔다. 온하랑과 부시아는 한창 게가 왜 옆으로 걷는지 열렬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부승민은 그녀의 하얗고 예쁜 옆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아직 저녁 식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부시아는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부승민은 꼬마를 안아 뒷좌석에 앉히고 시동을 걸었다. 어느덧 저녁 9시가 되어 차창 밖 가로등이 어렴풋이 밝아졌다. 때때로 자동차가 지나가며 울리는 경적이 들려왔다.차 안은 매우 조용하여 숨소리만 들릴 정도였다. 부승민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한동안 무슨 할 일이 있는데?”온하랑은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야외 촬영이 끝나면 고모가 시아를 데려갈 거라고 하시던데,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동의할 거야?”“아니, 시아를 데려가지 못해.”“고모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텐데.”“내가 알아서 할 게.”부승민은 백미러로 온하랑을 보며 말했다.“너 아직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어.”“내 사적인 일이야. 굳이 오빠한테 보고할 의무가 없잖아.”온하랑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럼 질문을 바꿀게. 그날 음식점에서 추서윤이 널 계단 아래로 밀어트리고 때렸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부승민은 낭천에서 운전
온하랑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동철 오빠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어쩌면 친자확인 결과가 나온 후 말해야 했다.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인 최동철은 손을 뻗어 온하랑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고 단호하게 말했다.“하랑아, 그 마음을 이해해. 엄마로서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 친자 확인은 가장 직접적인 증거이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어. 너는 잘못한 거 없어.”최동철의 눈을 바라본 온하랑은 그에게서 단서를 찾으려고 했지만 맑고 담담한 눈빛은 하나도 거리낌이 없었다.온하랑은 머리를 끄덕였다.“고마워요. 동철 오빠.”“하랑아, 모든 사실을 알려준 남자가 잡혔다고 했는데 지금 어디에 있어? 도대체 누구의 지시로 하랑이 너와 메이슨의 관계를 이간질 했는지 묻고 싶어.”“...그는...지금 경주에 없어요.”“경주에 없다고? 설마...승민이 손에 있는 건 아니지?”“...네.”말을 들은 최동철은 눈살을 찌푸렸다.“승민이가 그 남자를 잡은 거야? 그 말은 승민이가 그를 심문했고, 승민이가 심문 결과를 너에게 알려준 것이야?”“...네.”최동철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하랑아, 너희들의 일에 간섭하면 안 되지만 메이슨을 위하여 한마디만 말할게. 세상의 모든 남자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아이가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야.”온하랑은 침묵했다.그녀가 해외에서 출산한 사실을 알고 있는 부승민이 줄곧 비밀리에 그 아이를 찾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만약 그가 찾게 된다면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할 것인지 아니면 그 아이를 숨겨 놓고 영원히 그녀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할 것인지 의문스러웠다.최동철은 웃으면서 말을 계속했다.“내가 소심한 것일 수도 있어. 승민이도 그 사람에게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어.”온하랑이 말하려던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모니터 속에는 부승민의 얼굴이 보였다.온하랑이 문을 열려고 일어서자 최동철은 태연하게 차를 마셨다.부승민은 온하랑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헤어스타일이 바뀐 최동철을 위아래로 훑어본 온하랑은 그는 다소 야위고 피곤해 보일 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최동철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괜찮아. 작은 상처일 뿐이야, 별일 아니야.”“다행이에요. 마침 잘 오셨어요. 앉아서 함께 식사하시면서 얘기 나누죠.”온하랑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최동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식탁에 앉자 아줌마는 그릇과 젓가락을 추가하고 요리하러 갔다.흥분한 메이슨은 최동철의 옆에 앉아 계속 질문을 했다최동철은 인내심 있게 대답하며 가끔 메이슨과 장난도 했다.이 모습을 본 온하랑은 마음이 복잡했다.최동철의 모습을 자세히 본 온하랑은 그가 메이슨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식사 후 메이슨은 아줌마에 이끌려 낮잠을 자러 가고 거실에는 온하랑과 최동철만 남았다.아줌마가 차를 들고 오자 그들은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온하랑은 그제야 최동철에게 물었다.“동철 오빠, 경찰이 오빠가 실종됐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 이예요? 요즘 어디로 가셨던 거예요?”“누군가가 나를 해치려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했어. 다쳐서 잠시 숨을 수밖에 없었어.”최동철은 간단히 몇 마디를 건네고 화제를 돌렸다.“며칠 동안 메이슨을 돌봐주느라 고생했어.”“아니에요. 당연한걸요.”온하랑은 미소를 지었다.최동철은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다정하게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지환이가 말하는데 급히 나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던데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심호흡을 한 온 하랑은 최동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의 표정에서 한 가닥의 단서를 포착하려고 했다.“동철 오빠,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을 계속하라고 했다.“메이슨...진짜 우리 아이예요?”온하랑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하게 잘 들렸다.온하랑의 말에 최동철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다.잠시 침묵을 이어가던 최동철은 온하랑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당연하지, 하랑아
온하랑은 머리가 복잡했다.‘메이슨이 나의 아이가 아니라면 그럼 그 아이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메이슨에게 감정이 없었던 그녀는 엄마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그를 보러 왔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메이슨에게 정들기 시작했을 무렵 누군가가 메이슨이 그녀의 친자가 아니라며 진짜 아이는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온하랑의 마음은 지쳐있었다.한순간 그녀는 지금처럼 메이슨을 자기 친자식처럼 키우며 모두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가 낳은 아이가 지금 어딘가에서 힘겹게 고군분투하며 구하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있었다.만약 그 아이를 찾지 못한다면 그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전화를 걸어온 부승민은 부드럽게 말했다.“다 봤어?”온하랑은 몇 초간 침묵을 이어갔다.“응, 봤어...동철 씨한테 잘 물어볼게.”“동철이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그러나 혈연관계는 옳으면 옳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야. 유전자 검사를 다시 의뢰할 거야.”“그래, 내가 내일 갈게. 나와 함께 동철이를 만나러 가자.”부승민이 말했다.만약 계략이 탄로 나 화가 치밀어 오르면 최동철은 온하랑을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부승민은 철저하게 최동철을 방어하며 그에게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았다.“그럴 일 없을 거야.”“불안해서 안 돼.”“...”부승민은 화제를 바꾸었다.“병원에 다녀왔는데 간호사가 원녕이의 검사 수치가 서서히 정상 수치로 돌아오고 있다고 했어. 보름 정도 지나면 퇴원할 가능성이 있대.”부승민에게서 원녕의 소식을 전해 들은 온하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됐어. 수고했어, 승민아.”통화를 마치고 온하랑이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메이슨은 이미 여러 개의 곰 모형 쿠키를 만들어 놓았다.그 남자는 최동철이 유전자 검사서를 위조했다고 했다.하지만 온하랑은 메이슨의 신분을 의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최동철은 친자확인서를 그녀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온하랑은 메이슨이 그녀에게 경계심이 없기에 모낭이
반죽을 열심히 다루는 메이슨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온하랑의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부승민의 말에 그녀는 마치 큰 바위에 가슴을 짓눌린 듯 숨이 막혔다.‘메이슨이 친자가 아니라면 최동철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최동철은 어떻게 먼저 메이슨을 찾아서 그의 존재를 알렸을까? 그러면 진짜 아이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그녀는 메이슨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하도록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엄마, 이것 보세요. 곰돌이 같아요?”메이슨은 갓 눌러놓은 곰돌이 쿠키 틀을 들어 올리며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온하랑은 웃으면서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곰돌이와 똑같아. 참 잘했어, 메이슨.”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메이슨은 머리를 숙여 계속 쿠키를 만들었다.그러나 온하랑은 더 이상 집중할 수가 없었다.부승민이 그녀 몰래 핸드폰 설정을 변경했을 당시 그 남자는 서우현의 핸드폰을 훔쳐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알렸다.비록 그가 말한 것이 모두 진실이었으나 그의 등장은 여전히 수상했다.‘예를 들어 그는 누구일까? 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왜 이제야 모든 진실을 알려주는 것일까?’심호흡을 한 그녀는 잠시 마음속의 의심을 가라앉혔다.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온하랑은 그 남자가 메이슨이 겪었던 일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불쌍하고 죄가 없는 어린 메이슨은 복잡한 어른들의 세계에 휘말리지 말아야 했다.정신을 차린 온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괜찮아, 아빠가 돌아오시면 네가 만든 쿠키를 보고 기뻐하실 거야.”그녀는 멈칫했다.“메이슨, 먼저 천천히 쿠키를 만들고 있어. 엄마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위층에 다녀올게.”“네.”메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태연하게 위층으로 올라와 방문을 닫자 온하랑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이메일을 열고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부승민이 보낸 동영상을 클릭했다.영상 속 심문실에는 마른 얼굴에 몇 군데가 찢어지고 피로 얼룩진 옷을 입고 있는 젊은 남자가 의자
온하랑은 쪼그리고 앉아 메이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메이슨은 경주에 집이 있기에 낯선 강남시에 가고 싶지 않은 거잖아? 마찬가지로 엄마에게도 이곳은 낯선 곳이야, 엄마의 집은 강남시에 있어.”슬퍼하는 메이슨을 온하랑은 계속 달래주었다.“앞으로 엄마가 메이슨 보러 자주 올게. 메이슨도 엄마가 보고 싶으면 강남시에 찾아와도 돼.”그녀가 조산을 앞두고 있을 당시 부승민이 보낸 사람들이 한발 늦은 탓에 먼저 메이슨을 데려간 최동철이 각종 절차를 밟아 양육권을 가졌고 그 사이 메이슨도 이미 이곳에 적응해 버렸다.최동철은 온갖 정성을 쏟아서 메이슨을 돌봤으며 마음이 예민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는생활환경을 자주 바꿀 수 없으므로 여기에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메이슨은 의기소침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온하랑은 그의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이모가 만들었던 쿠키를 기억해? 엄마가 메이슨이 도움이 필요한데 함께 만들 수 있을까? 아빠가 돌아오시면 메이슨의 솜씨가 어떤지 맛보라고 하자.”기분이 언짢았던 메이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쿠키를 만들기 시작하자 곰돌이 모양의 틀로 반죽을 찍던 그는 천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쿠키를 만들던 중 온하랑은 부승민의 전화를 받았다.그가 물었다.“출발했어?”“아니, 깜빡했어. 아까 최 회장님 다녀가셨는데 동철 오빠의 소식이 있다고 하셨어.이틀 더 머물다 그가 돌아오면 돌아갈게.”부승민은 몇 초간 침묵을 이어갔다.그가 기분이 언짢다고만 생각한 온하랑은 웃으면서 말했다.“며칠인데 못 기다리겠어?”“아니.”부승민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우현 씨 핸드폰을 훔쳤던 사람을 기억하고 있어?”“응, 기억해.”바로 서우현이 그 남자를 찾았고 그의 입에서 메이슨의 신분을 알게 되었다.온하랑은 식탁에서 쿠키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메이슨을 바라보았다.“그가 왜?”“줄곧 그가 나타난 것이 좀 이상하다고 의심하고 있었던 터라 사적으로 사람을 시켜 그를 찾으라고 했는데 며칠 전 그를 찾아서 잡고 심문하니 진
최국환의 말을 들은 온하랑은 멈칫했다.“최 회장님,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메이슨은 상황이 특별하기에 반드시 진심으로 그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이 옆에서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동철 씨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던 최 회장님은 정성껏 메이슨을 보살필 수 있을까?’게다가 최씨 가문에는 임가희가 있기 때문에 온하랑은 그녀가 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최동림의 후계자 계승을 위하여 걸림돌인 그를 해칠 수 있다고 예측했다.메이슨은 최동림보다 두세 살 어렸다.“동철이가 현재 실종되었기에 나의 손자인 메이슨을 내가 반드시 잘 돌볼 거야. 이미 결정된 일이야. 하랑이 너랑 상의하려고 온 거 아니야.”최국환의 목소리는 무거웠다.온하랑이 엄마라는 점을 고려해 그가 직접 온 것이었다. 아니면 경호원더러 메이슨을 데려오라고 했을 것이다.온하랑은 최국환이 끝까지 막으면 그와 메이슨은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최 회장님께서 메이슨을 위하여 저의 몇 가지 조건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말해봐.”“첫째, 제가 떠난 후 메이슨을 최씨 가문에 데려가서 아줌마와 미아 선생님이 계속 돌보게 해주세요. 최 회장님께서는 매일 시간을 내셔서 메이슨의 학습 상황을 물어봐 주세요.”온하랑이 없는 상황에서 최국환은 메이슨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언젠가 임가희는 메이슨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기에 최국환의 옆에 둔다면 그녀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다.메이슨이 계속 별장에 머물면 아줌마와 미아 선생님은 권력과 힘이 없기에 마음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그를 노릴 기회를 줄 수 있다.온하랑의 말을 들은 최국환은 머리를 끄덕였다.그는 메이슨을 옆에 두고 잘 가르칠 생각이었다. 만약 좋은 후계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고 반대로 그가 자질이 평범해도 최국환은 그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잠시 후 최국환의 핸드폰이 울렸다.“잠깐만. 먼저 통화 좀 할게.”“네, 최 회장님. 편안한 대로 하세요.”통화 중
설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네.”설윤의 쓸쓸한 모습을 본 최동철은 그녀에게 물었다.“함께 갈래요?”설윤은 돈을 좋아하기에 그도 그녀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있었다.그러나 설윤은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저 여기 더 있고 싶어요.”최동철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나중에는?”“나중에? 그때 다시 얘기해요.”설윤은 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저 혼자예요. 저만 신경 쓰면 돼요.”최동철은 평온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최동철이 떠난 후 자신을 구해준 설윤에게 보답의 의미로 많은 금액의 돈을 송금해 주었다....회사에 처리할 일이 많았던 부승민은 첨단 연구소에서 스카우트한 사람들과 함께 강남시로 돌아갔다.경주에 며칠 더 머무른 온하랑은 여전히 최동철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최동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오랫동안 경주에 머물렀던 온하랑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가려고 했다.만약 최동철이 돌아온다면 온하랑은 메이슨을 다시 데려오면 되고 그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녀가 메이슨의 유일한 보호자이다.아줌마에게 메이슨의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던 중 별장에 불청객이 찾아왔다.거실에서 아줌마가 짐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던 메이슨은 최국환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로 온하랑의 뒤로 숨어버렸다.“최 회장님, 어떻게 오셨어요?”최국환을 본 온하랑도 깜짝 놀랐다.“하랑아, 미리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최국환은 온하랑 뒤에 숨은 메이슨과 땅에 놓인 캐리어를 보고 물었다.“메이슨을 데리고 강남시로 돌아간다고?”그는 오래전부터 메이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네, 맞아요. 동철 오빠가 돌아오기 전에 제가 메이슨을 강남시로 데려가 돌보려고 해요.”온하랑이 대답했다.“승민이는 동의한 거야?”온하랑은 머리를 끄덕였다.“혹시 어떤 일로 찾아오셨어요?”그녀는 눈길로 아줌마에게 먼저 메이슨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설윤 씨, 일어났어요?”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린 설윤은 최동철과 눈이 마주쳤다.최동철은 웃으면서 말했다.“일어났으면 와서 아침을 먹어요.”최동철은 이미 건조된 설윤의 옷을 가져왔다.“네.”설윤은 베갯머리에 두었던 핸드폰을 보고 열 시가 넘었음을 확인했다.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이불로 가슴을 가리고 이불 밑에서 속옷을 찾아 천천히 입었다.최동철은 쓰레기통을 옆으로 걷어차고 설윤에게 칫솔 컵과 치약을 묻힌 칫솔을 건네주고는 그녀가 이를 닦은 후 따뜻한 수건도 건네주었다.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누구도 어젯밤 일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아침을 먹은 후 발목 찜질을 한 설윤은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려고 했다. 집 앞까지 다음날 배송될 수가 있기에 아주 편리했다.옷을 몇 벌 고른 설윤은 소파에 앉아 있던 최동철을 보며 물었다.“최 대표님, 제가 쿠팡에서 옷을 구매하면 내일 도착하는데, 혹시 대표님도 필요하신가요?”조건이 우월한 최동철과 같은 귀공자는 사람을 시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기에 온라인으로 쇼핑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의 말을 들은 최동철은 머리를 끄덕였다.“갈아입을 옷 두 벌만 골라주세요, 부탁드려요.”구체적인 요구는 없었다.“네, 알았어요.”머리를 끄덕인 설윤은 남성 의상을 검색하며 물었다.“사이즈는 얼마 입어요?”“신장은 185, 몸무게는 75킬로로예요.”“네.”설윤은 최동철이 말한 사이즈에 따라 내의 한 벌과 니트 및 팬티 두 벌을 고르고는 그에게 말해주었다.최동철은 설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말을 마친 후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오후쯤 부하의 전화를 받은 최동철은 통화 중 계획 하나를 언급했으나 설윤은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과 관련이 없기에 신경 쓰지도 않았다.저녁이 되자 설윤은 샤워 후 침대에 누웠다.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그녀는 최동철이 그의
방안은 어두웠고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가끔 바깥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만 들렸다.설윤이 네 번째로 몸을 뒤척일 때 옆에서 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요?”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그녀의 고막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동철 씨도 잠이 안 와요?”“네.”최동철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내는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집안의 난방이 너무 커서인지 설윤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다치지 않은 발목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는데 조심하지 않고 최동철이 밖에 놓은 팔과 부딪혔다.피부가 닿는 순간 설윤은 재빨리 팔을 비켰으나 뜻밖에도 최동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의 손은 매우 컸다. 뜨거운 온도가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그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얼굴에 퍼지며 설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설윤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려고 힘을 썼지만 실패했다.“뭐 하는 거예요?”“보통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데, 한 번 시도해 보겠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설윤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 같았다.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그녀의 대답은 마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처럼 들렸다. 최동철은 그녀의 팔을 풀어주었는데 그녀가 손을 거둘 때 신속히 이불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공격적인 기운을 풍기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또 겁이 났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손끝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린 채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 놓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 그럼...”“조심할게요.”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서로의 눈 밑에는 빛을 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