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위엄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들어와.”최동철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아버지, 찾으셨어요?”최동철의 아버지, 최국환의 나이는 예순을 넘었다. 원래는 신체가 건강한 편이었지만, 얼마 전에 갑자기 큰 병에 걸리며 기력이 몹시 쇠해졌다. 그러나 근엄한 외모와 살짝 주름이 잡힌 미간, 또렷한 눈동자를 비롯한 온몸 곳곳에서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고위층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최국환의 용모는 최동철과 매우 닮아 있었다. 젊었을 때 그도 조각 미남이었다는 걸 한눈에 보아낼 수 있었다.“내가 듣기로 너 최근에 쭉 강남에 있었다며?”최국환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네.”“너 강남에 가서 대체 뭐하고 돌아다닌 거야?”멈칫하던 최동철이 눈을 들자 아버지의 시선과 마주쳤다.“아시잖아요. 아니면 왜 저를 불렀어요?”최국환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바로 명령했다.“프로젝트를 따냈으면 경영에나 신경 쓸 것이지. 당장 경주로 돌아와. 앞으로 부씨 일가를 겨냥하는 일은 그만 둬.”최동철이 웃으며 말했다.“아버지, 전 부씨 일가를 겨냥한 적이 없어요. 그저 엄격하게 회사 미래 발전 계획에 따라 비즈니스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에요. 아마 그 계획이 부씨 일가의 계획과 충돌이 있어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최국환이 냉소를 흘렸다.“미래 발전 계획? 너 지금 내가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는 거야? 이제 감히 이 아비까지 기만하려고 드는 게야?”“아닌데요.”최동철은 곧바로 부인했다.“그럼 얌전히 경주에 있어. 내가 너한테 최씨 일가를 맡긴 건 네가 사업을 더 발전시켜 한층 위로 끌어올리게 하길 바라서지, 네 알량한 복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여 최씨 가문을 아무 때나 위험에 빠트리게 하라는 게 아니야!” 최동철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제가 최씨 가문을 위험에 빠트린다고요? 최씨 가문이 걱정돼서 이러시는 건지 아니면 그 모자가 마음 아파 이러시는 건지 아버지께서 제일 잘 알고 계시겠죠!”최국환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입술을 달싹였다.“물
한편, 온하랑은 내일 추서윤의 회사로 가서 보고해야 하기에 부시아를 부승민한테 맡기려고 생각했다.야외 촬영이 끝나면 부선월은 분명 부시아를 로스앤에 데려가려고 할 거지만, 부승민이 부시아를 국내에 남겨두려고 할지 아니면 한발 물러서서 내버려둘지 알 수가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 부승민에게 문자를 보낸 후 온하랑은 주현에게 말했다.“주현 씨, 앞에서 세워줘요. 나랑 시아는 여기서 내릴게요.”“기다릴까요?”“아니요. 부승민에게 할 말이 있어요.”주현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 차를 세웠다. 온하랑과 부시아가 차에서 내리고 주현이 떠나자마자 부승민의 차가 그들 앞에 멈춰 섰다. 온하랑은 뒷문을 열고 부시아와 함께 뒷좌석에 올라탔다. 부승민은 커다란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손목에는 값비싼 메탈 시계를 차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빼낸 부승민은 백미러를 통해 온하랑을 보며 물었다.“저녁 뭐 먹을래?”“난 아무거나 상관없어.”“시아는 뭐 먹고 싶어?”부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오리 로스구이 먹고 싶어요.”“좋아, 그럼 오리 로스구이 먹으러 가자.”먹보 부시아는 입 주위에 기름을 가득 바르며 야무지게 먹었다. 온하랑은 기회를 틈타서 부시아에게 물었다.“시아야, 오늘 삼촌이랑 돌아갈래?”부시아는 머뭇거리더니 부승민과 온하랑을 번갈아 보며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왜요?”“고모가 며칠 동안 할 일이 있어서 시아를 돌봐 줄 시간이 없어.”부시아가 묻기도 전에 부승민이 먼저 물었다.“무슨 일이야?”온하랑은 그를 무시하고 계속 부시아를 달랬다.“아주 중요한 일이야. 고모가 일이 끝나면 다시 시아랑 놀아 줄게. 돼?”부시아는 어른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숙모 일 빨리 끝내고 시아 데리러 와야 해요. 시아가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그래, 빨리 끝내고 시아 데리러 갈게.”어린아이를 달래고 난 후, 온하랑은 부승민의 호기심 어린 표정을 흘끗 보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차분한 얼굴로 밥을 먹었다.아랫입
그녀는 그렇게 그가 미덥지 못해 선을 그으려고 하는 건가?화가 치미는 동시에 마음이 욱신거렸다. 온강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도대체 무슨 심정이었을까?온하랑은 매우 진지한 사람이며 매사에 진중하고 열정적이다. 그녀는 절대 한눈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기억 속의 사람을 계속 되새긴다.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온강호가 죽은 지 10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보복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온강호와 같은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버텨왔다.전화를 끊은 부승민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나서야 룸으로 돌아갔다. 온하랑과 부시아는 한창 게가 왜 옆으로 걷는지 열렬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부승민은 그녀의 하얗고 예쁜 옆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아직 저녁 식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부시아는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부승민은 꼬마를 안아 뒷좌석에 앉히고 시동을 걸었다. 어느덧 저녁 9시가 되어 차창 밖 가로등이 어렴풋이 밝아졌다. 때때로 자동차가 지나가며 울리는 경적이 들려왔다.차 안은 매우 조용하여 숨소리만 들릴 정도였다. 부승민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한동안 무슨 할 일이 있는데?”온하랑은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야외 촬영이 끝나면 고모가 시아를 데려갈 거라고 하시던데,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동의할 거야?”“아니, 시아를 데려가지 못해.”“고모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텐데.”“내가 알아서 할 게.”부승민은 백미러로 온하랑을 보며 말했다.“너 아직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어.”“내 사적인 일이야. 굳이 오빠한테 보고할 의무가 없잖아.”온하랑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그럼 질문을 바꿀게. 그날 음식점에서 추서윤이 널 계단 아래로 밀어트리고 때렸는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부승민은 낭천에서 운전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부승민은 백미러에 비친 온하랑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이를 악물고 물었다.“나랑 상관없다고?”그는 이미 그녀에게 진실을 말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녀는 보복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에게 숨기려고 했다.그가 그렇게도 미덥지 못하고 의지할 가치가 없단 말인가?그녀는 자기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단 말인가?눈을 들어 분노를 억제하는 부승민의 눈빛을 마주한 온하랑은 그의 의도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내 일이야. 애초에 오빠와 상관없잖아. 게다가 내가 납치 사건을 조사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 또 내 뒤를 캐고 다니는 거야? 낭천까지 날 따라온 일도 아직 따지지 않았어!”온하랑이 단호한 얼굴로 대꾸하자 부승민은 화가 치밀어 올라 운전대를 꽉 움켜쥐었더니 손등의 핏줄이 튀어나왔다.“내가 네 뒷조사를 한 건 네가 위협을 받아서고, 널 따라 낭천에 간 건 네가 전날 밤 다쳐서 걱정돼서 그랬어. 지금도 그저 널 도와주고 싶어서일 뿐이야!”온하랑은 피식 웃었다.“오빠의 관심과 도움은 목적성이 뚜렷하잖아. 내 보답을 바라겠지. 난 오빠가 원하는 보답을 해줄 수 없어. 그러니까 오빠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온하랑을 가만히 바라보던 부승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넌 날 그렇게밖에 생각 안 하는 거야?”그녀는 그가 도와주려고 하는 이유가 은혜를 핑계 삼아 강제적으로 그녀와 같이 있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보복을 당하더라도, 온강호처럼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는 같이 살기 싫다는 말인 건가?온하랑이 되물었다.“그럼 아니야?”눈빛이 어두워진 부승민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온몸에서 침울하고 차가운 기운을 뿜어냈다. 차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어 기압이 급격히 떨어졌다. 온하랑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등을 기댄 채 지루하다는 듯이 창밖을 내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하랑은 문을 열어 차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고개를 돌려 백미러에 비친 부승민의 눈빛을 보았지만,
젊은 여자가 알려준 장소로 찾아가는 길에 온하랑은 겸사겸사 정보를 찾아보았다. 추서윤은 현재 판타지 사극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부승민의 도움 없이는 추서윤은 자원이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 위치가 예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격하되었다. 이 드라마에서 그녀는 단역으로 출연시간도 매우 짧았지만, 더운밥 찬밥 가릴 형편이 못 됐다.촬영장에 도착한 온하랑은 추서윤에게 문자를 보냈다. 몇 분 뒤 목에 명찰을 건 스태프가 나와서 그녀를 안으로 데려갔다. 추서윤은 촬영 복장을 하고 겉에는 패딩을 걸치고 있었다. 한 손에 대본을 들고 감독과 얘기하며 때때로 밖을 살펴보고 있었다. 온하랑이 들어오자 추서윤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더니 온하랑에게 손짓했다.“송 감독님, 소개할게요. 이분은 제 매니저겸 대역입니다. 제가 못 찍는 다음 장면은 이분이 대신 찍을 거예요.”미소를 지으며 송재열에게 인사를 건넨 온하랑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추서윤을 쳐다보았다. 언제는 그녀더러 매니저를 하라며 왜 또 대역 배우를 하라고 하는 걸까?추서윤은 씩 미소를 지으며 온하랑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송재열이 말할 때 온하랑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그가 다른 사람과 얘기하는 틈을 타 추서윤에게 속삭였다.“나더러 매니저 하라며 왜 또 대역 배우를 하라는 거야? 난 연기 못해!”추거윤은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올렸다.“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 아니면 언제든 가도 돼.”아랫입술을 깨문 온하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를 억누르며 추서윤을 노려보았다.추서윤은 온하랑이 참을 줄 알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추서윤은 손에 들린 대본을 온하랑에게 건넸다.“들고 있어.”이곳에 오기 전에 온하랑은 연예인 매니저의 업무에 대해 알아보았다. 대부분의 태도가 겸손한 연예인은 매니저에게 대본을 들고 있으라고 시키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 까칠한 연예인들도 적지 않았다.추서윤은 일부러 온하랑을 괴롭힐 게 뻔했기에 대본을 들게 하는 일 따위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그녀는 대본을 펼
추서윤이 촬영할 때 온하랑은 현장 스태프를 찾아 스케줄표를 받았다. 오늘 추서윤은 두 장면을 촬영해야 했는데 첫 번째는 지금 찍고 있는 장면이었고, 두 번째 장면은 오후에 촬영이 있었다.첫 번째 장면을 촬영하는데 대략 한 시간 정도 들었고, 감독이 드디어 컷을 외쳤다. 추서윤이 입을 열기 전에 온하랑은 얼른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어깨에 패딩을 걸쳐주었다. 추서윤은 눈썹을 치켜들며 온하랑을 바라보고는 밖으로 걸어갔다.“내 분홍색 물병 세트장에 있을 거야. 가서 따뜻한 물 받아서 차에 갖다줘.” “그래.”세트장에 가서 물병을 찾은 온하랑은 추서윤이 뚜껑을 열다가 뜨거운 물방울이 몸에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입구에서 2센티미터 아래까지 물을 받았다.물병을 받아 든 추서윤은 뚜껑을 열며 온하랑을 흘끗 쳐다보더니 말했다.“난 차에서 쉴 테니 넌 밖에서 지키고 있다가 일이 있으면 불러.”말을 마친 추서윤은 문을 닫았다. 온하랑이 시간을 보니 한 시간 뒤면 점심이었다. 그녀는 밴에 기대서서 휴대폰을 놀다가 다리가 저릴 때면 쪼그리고 앉았다.점심이 되자 온하랑은 가서 도시락 두 개를 받아왔다. 결벽증이 있는 추서윤은 자기 수저를 사용하여 밥을 먹은 후 온하랑에게 수저를 던져주며 가서 깨끗이 씻어 오라고 했다.추서윤의 지적을 피하고자 온하랑은 여러 번 씻어서 추서윤이 꼬투리를 잡을 빌미를 주지 않았다.잠시 휴식을 취한 후 추서윤은 차에서 내려 세트장으로 돌아와 메이크업 아티스트한테 메이크업을 수정받고 스타일리스트한테 헤어 스타일과 의상을 정리 받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했다.그리고 촬영 현장에서는 소품팀과 조명팀이 디버깅하고 있었다. 온하랑은 옆에 서서 기다렸다. 이때 스타일리스트가 근처 옷걸이에서 추서윤이 입고 있던 것과 똑같은 드레스를 꺼냈다.그녀는 바로 온하랑에게 걸어가서 의아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옷을 건넸다.“하랑 씨, 들어가서 옷 갈아입으세요.”온하랑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와 옷을 번갈아 보았다.“제가요? 이 옷으로 갈아입으라고요?
온하랑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다음 장면 혹시...?”스타일리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바로 구미호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정기를 빼낸 후 죽이는 장면이에요.”“...”그 순간 온하랑은 마음이 미치도록 복잡해졌다. 지금 거절하기에는 너무 늦은 걸까?스타일리스트는 그녀를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방통위가 엄격해져서 조금만 심해도 방송이 금지당해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만 가요. 얼른 머리도 정리해야죠.”온하랑은 제자리에 서서 패딩을 입고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나갔다. 추서윤의 시선이 잠시 온하랑의 몸에 머물렀다. 그녀는 다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부러워하는 눈을 바라보더니 속으로 비꼬았다.온하랑은 애까지 낳았는데 어떻게 크지 않을 수 있겠어?!스타일리스트는 온하랑에게 추서윤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해주었다. 분장실에서 나오니 찬바람이 불어왔다. 윗몸은 패딩으로 감싸고 있어 그나마 괜찮았지만, 종아리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온하랑은 추서윤의 뒤를 따라 감독을 찾아갔다. 송재열은 두 사람을 힐끗 보더니 온하랑에게 물었다.“대본은 봤어요?”“아니요.”송재열 감독은 온하랑에게 대본을 건네며 말했다.“줄거리는 아주 간단해요. 대화 부분은 다 서윤 씨가 연기하니까, 당신은 클로즈업 부분만 찍으면 돼요.”온하랑은 대본을 읽었다. 이 부분의 내용은 정말 간단했다. 상처를 입은 구미호가 도관의 어린 도사를 유혹하여 정기를 빼내는 장면이었다.여기서의 유혹은 언어와 신체적인 유혹이 포함되어 있었고, 몸매를 드러내는 장면도 포함되어 있었다.당연히 온하랑은 신체적인 부분을 담당해야 했다. 상대역은 한 도사였고, 구미호의 사악함을 드러내기 위해 등장한다.그 도사역을 맡은 배우는 보조출연자였으며 외모가 꽤 괜찮은 청년이었는데 이미 메이크업을 받고 설명을 들으러 왔다. 송재열은 표정부터 몸짓, 카메라 위치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설명을 마친 후 추서윤은 어린 도사와 두 번 합을 맞춰보고 송재열의 지시하에 정식
온하랑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추서윤은 마음이 몹시 통쾌했다. 그녀는 자기 몸을 희생하여 늙은 남자의 비위를 맞춰야만 연예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데, 왜 온하랑은 아무것도 안 하고 부승민의 보호 아래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부승민은 온하랑이 해외에서 아이를 낳은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그렇게 관대하다면 추서윤은 그가 대체 어디까지 관대할 수 있는지 지켜볼 참이었다.온하랑은 그녀의 말만 따르면 그녀가 나서서 범인을 지목할 거라는 멍청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몇 장면의 클로즈업을 촬영한 후 감독은 컷을 외쳤다. 온하랑은 돌아서서 재빨리 패딩을 입었다. 추서윤이 말했다.“너 이제 가도 돼. 내일 일찍 우리 집에 와서 스케줄 반 시간 전에 날 깨우고 아침 준비해.”온하랑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추서윤을 바라보았다.“이제 내가 필요 없어?”“그래.”온하랑은 탈의실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가발을 벗었다. 정리를 마친 후 그녀는 촬영장을 떠났다....부승민은 하루 동안 바삐 돌아쳤다. 두 눈이 시큰거리고 어깨가 무겁고 온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드디어 잠깐 시간을 내서 휴식할 수 있었다.그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두 눈을 감고 손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휴식을 취했다. 갑자기 휴대폰에서 문자 알림 소리가 울렸다.그는 천천히 휴대폰을 들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흠칫 놀란 부승민은 액정에 나타난 화면을 응시하며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이를 악물었다.화면 속에는 노출한 의상을 입고 있는 온하랑이 한 도사 복을 입은 남자에게 친밀한 자세로 안겨 있었다.부승민은 눈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았다. 흉악한 눈빛으로 화면 속의 남자를 보며 산채로 그의 가죽을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문자가 잇달아 들어왔다. 상대방은 그에게 알려줬다. 이건 드라마 촬영 현장이고 온하랑은 지금 추서윤의 매니저 겸 대역을 도맡았다고 했다.부승민은 온하랑이 왜 추서윤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지 이내 짐작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