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 온하랑은 민성주가 사용한 불합격 자재의 검사 보고서를 받았다. 하나는 개인 검사 기관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련 부서에서 재검사한 것인데 두 보고서의 표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최종 결론은 모두 자재에 실제로 문제가 있다는 거였다. 온하랑은 절대적인 악의를 품고 추측했다. 민성주는 분명 재료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했고, 심지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민지훈이 검사받는 것을 태연하게 내버려뒀다.전에 서우현이 준 정보에 따르면 민성주는 직업상의 이유로 온 가족이 해외로 이주했다고 했다. 금방 해외로 간 몇 년간의 생활 수준은 아주 넉넉했다. 그의 월급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민씨 집안은 원래 부잣집도 아니었고, 예금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민씨 집안의 생활 수준은 귀국하기 전까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원래 국내에 있을 때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었다.민 씨 가족은 국내에 집까지 사놓고 직업 때문에 해외로 이주했다. 그러면 이치상으로 급여가 매우 높았을 테니 생활이 점점 좋아져야 하지만 오히려 점점 나빠졌다. 온하랑은 민성주가 해외에 높은 임금의 직업 같은 건 없고 오로지 배후 세력이 건넨 부당한 돈으로 생활했을 거로 추측했다. 그리고 이제 그 돈을 다 써버리니 삶의 질도 떨어졌을 것이다.귀국 후 민성주는 다시 인테리어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인맥과 재력은 부족하고 하루 빨리 돈을 벌고 싶어 불합격 자재를 사용하여 업주들의 재료비 일부를 횡령했을 것이다.하지만 온하랑의 목적은 민지훈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민지훈이 그녀를 더 신뢰하도록 하는 것이지, 지금 당장 민성주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었다.민성주는 계속 모르는 척하게 내버려두고 우선 불합격 자재를 제공하는 업체부터 처리해야 한다. 내버려두면 사람들에게 해만 입힐 뿐이다. 온하랑은 두 장의 보고서를 민지훈에게 보냈다.[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그런데 재료가 불합격이네요. 아저씨는 아마 재료 공급업체에 속았을 거예요
김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섀도 팔레트와 브러시를 넣었다.“그래, 그럼 여기는 네가 맡아.”“어휴, 빨리 가봐요. 주혁 씨는 3번 분장실에 있어요.”“응.”김시연은 자신의 화장함을 정리하고 3번 분장실로 향했다. 3번 분장실은 공용 분장실보다 조건이 훨씬 좋은 곳으로 두 배우가 함께 쓰고 있는데 한 명은 조수가 말한 이주혁이었고, 다른 한 명도 요즘 대세였다.분장실 문이 열려 있었다. 김시연은 노크를 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와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이주혁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이주혁의 매니저가 커피 한 잔을 건넸다.“시연 씨, 잘 부탁드려요. Cindy 언니가 갑자기 복통이 나서 병원에 갔어요.”“일단 테이블에 올려 둬요. 리허설은 언제 하나요?”김시연은 화장함을 거울 앞 화장대에 올려놓았다.“아직 한 시간 남았어요. 저기 시연 씨가 말한 사인이에요.”이주혁은 테이블 위의 엽서 몇 장을 가리켰다.“잊지 말고 가져가요.”“네, 고마워요.”김시연은 화장함을 열고 자주 쓰는 브러쉬 몇 세트를 꺼내면서 웃으며 말했다.“그날 정말 고마웠어요. 다행히 주혁 씨 룸으로 잘못 들어가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큰 망신을 당했을 거예요.”“괜찮아요.”이주혁은 빙그레 웃었다.“스킨케어는 하셨나요?”“이미 했어요.”김시연은 이주혁의 피부결과 피부톤을 전체적으로 살펴본 뒤 화장함에서 프라이머를 골라 이주혁의 얼굴을 만졌다.“주혁 씨, 피부 정말 좋은데요. 메이크업을 안 해도 되겠어요.”김시연과 이주혁이 함께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주혁의 매니저가 얼른 대꾸했다.“그렇죠, 시연 씨? 주혁 씨와 일했던 메이크업 아티스들은 모두 그런 말 했어요.”옆에 있던 요즘 대세 연예인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거칠고 큰 모공과 거무스름한 피부를 보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프라이머를 바른 후 김시연은 이주혁에게 옅은 베이스 화장을 하고 눈썹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속으로 눈썹 모양을 정했다. 몸을 약간 숙인 채 한 손에는 이주혁의 원래 눈썹과
연도진의 시선이 김시연에게 머무르며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김시연은 시선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연도진을 에돌아 계속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옆을 지나갈 때 연도진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그녀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시연아.”또 이주혁이었다. 그녀가 이주혁과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연도진의 마음은 마치 바닷물이라도 쏟아부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괴로웠다. 더 이상 그녀의 곁에는 그가 설 자리가 없었다.김시연은 발걸음을 멈추고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끝나고 나서 해. 지금은 일이 많아서 바빠.”연도진은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고서야 손을 놓았다.“먼저 가서 일 봐.”하지만 시상식이 정식으로 시작하고 연도진이 다시 무대 뒤로 갔을 때 김시연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옆에 있던 남자가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던 이주혁을 가리켰다.“저 사람이야?”안색이 어두워진 연도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이주혁을 살펴보던 남자는 턱을 문지르며 평가했다.“뭔가 너랑 좀 닮았네.”그 사람이 말하는 건 외모가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였다. 사람한테 주는 느낌과 희고 깨끗하며 세련된 모습이 어딘가 조선 시대의 선비를 닮은 것 같았다.연도진은 무대 위에 이주혁을 유심히 쳐다보며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한편 민성주는 피해자 입장으로 민지훈과 방지혁 변호사와 함께 중재 회의에 나타났다. 온하랑은 민성주와 마주칠까 봐 가지 않고, 민지훈에게 자신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했다.온하랑은 부시아를 데리고 어린이 놀이터로 가서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다. 이때 민지훈에게서 협상 실패라는 문자가 왔다.공급업체는 민 씨 가족이 제안한 배상 조건에 동의하지 않았다. 다음 단계는 두 번째 중재를 하거나 소송을 제기하여 판사의 결정을 기다리는 거였다.방지혁 변호사는 민성주가 제시한 배상 조건이 모든 재료비 환불과 원금액의 10배를 배상하는 것이고 거기에 임금 손실, 명예 훼손, 정
이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몇 년 안에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민지훈의 대답은 온하랑의 예상 밖이었다. 혹시 그녀가 믿지 못할까 봐 민지훈은 녹음 파일까지 보냈다. 대화 뒷부분만 녹음 되었는데 정말 그런 뜻이었다.민지훈이 민성주를 제지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민지훈은 애초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온하랑은 녹음 파일을 다시 자세히 듣고 나서 바로 공급업체의 책임자와 지시자를 구분할 수 있었다.온하랑은 이 지시자의 목소리가 왠지 익숙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같았지만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이상하군요. 저 남자의 정체를 조사하고 싶은 거죠?][집주인이 저 남자와 관계가 있는 것 같거든요. 사실 이 모든 것이 저 남자가 우리를 노리고 벌인 일 같아서요. 우리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죠. 저들에게 몇 년 뒤까지 가만히 끌려다닐 수는 없잖아요. 저 두 사람의 약점을 찾을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어요.]설마 민성주는 정말 재료에 문제가 있는 줄 모르고 그저 저들의 표적이 된 것일까?[사설탐정은 나도 잘 몰라요. 잠시만요. 친구한테 물어 보고 있으면 알려 줄게요.][네. 고마워요, 누나.]온하랑은 서우현의 대화창을 열어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서우현더러 아무것도 모르는 척 민지훈을 도와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서우현은 잠시 답장이 없었다. 온하랑은 부시아가 신나게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았다. 얼굴이며, 손이며, 옷이며 물감이 알록달록 묻어 있었다. 그녀는 옆에 앉아 서우현의 답장을 기다리며 스토리를 보고 있었다.인스타에는 새로운 스토리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그녀는 ‘좋아요’를 누를 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야 할 것은 댓글을 달았다. 이때 육광태가 올린 동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표지는 새끼 고양이 사진이었다.육광태같은 상남자가 고양이를 키운다고?그녀가 동영상을 열어보자 귀에 들어온 건 육광태의 목소리였다.“야옹아, 이리 와”온하랑은 흠칫 놀라며 얼굴에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이 문자를 본 육광태는 등이 오싹해지며 손이 떨려와서 하마터면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트릴 뻔했다. 이마에 실핏줄마저 툭툭 튀었다.[하랑 씨,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저를 해지지 마세요!]부승민 같은 질투심 많은 남자가 본다면 분명 또 그와 복싱 훈련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지난번 노르빈 레스토랑에서 온하랑이 그의 성격이 좋다는 말을 옆방에서 들은 부승민은 귀국 후 몇 번이나 그를 찾아 복싱 훈련을 했다. 듣기 좋아 훈련이지 부승민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당하는 거나 다름없었다.육광태는 도저히 미룰 수 없어 결국 부승민과 두 번 훈련했는데 부승민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고 하드 펀치만 날렸다. 아직도 육광태의 몸에는 시퍼런 타박상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또다시 복싱 훈련을 한다면 그는 절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그래요! 아니면 계속 저를 바보 취급할 거잖아요!]육광태는 온하랑이 상황을 알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요. ]온하랑은 즉시 녹음 파일을 보냈다.[아직도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여기 이렇게 떡하니 증거가 있는데?]녹음 파일을 들은 육광태는 한참이나 답장이 없었다. 온하랑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죽은 척 하지 말고 뭐라고 말해 보세요! 공급업체에 민 씨 가족과 정상적으로 합의하라고 해요!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제가 먼저 이 돈을 민 씨 가족에게 줄 거예요.]육광태에게서 드디어 답장이 왔다.[왜 그렇게까지 해요?][그럼 부승민은 왜 이러는 데요? 정말 지긋지긋해!][...]휴대폰 화면을 꺼버린 온하랑은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마음속에서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마치 계속 내리는 비로 인해 구석에서 피어난 곰팡이가 하얀 벽을 전부 뒤덮는 것 같았다.그녀는 정말 후회했다. 부승민을 좋아한 것을 후회하고, 잘못된 길을 택해서 자신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을 후회했다.며칠 전까지도 그녀는 민성주가 고의로 불량 재료를 사용했을 거라고 악의적으로 추측했지만, 결국 민성주는
휴대폰 너머에서 기나긴 침묵이 흐르고 한참 후에야 무기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넌 나를 그 정도로밖에 생각 안 해?”부승민은 그녀의 전화를 보고 행복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건만 들려온 건 온통 날카로운 질책뿐이었다. 마음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그럼 아니야?”온하랑은 싸늘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물었다.“하.”부승민은 차가운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 목소리에는 서늘함이 묻어났다.“민지훈 아버지는 재료가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걸 알면서 구매했어. 신고당하는 게 정상이 아니야? 그게 어떻게 내 탓이야?”지금 부승민은 온하랑에게 신용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온하랑은 부승민의 말을 그저 헛소리로 받아들였다. 민성주가 불합격이라는 걸 알면서 일부러 구매했다고 해도 그녀의 목적은 단지 민지훈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민성주가 납치범이라는 증거와 그가 아버지를 해친 증거를 찾은 뒤에 법률의 심판을 받게 하면 그만이었다. 온하랑은 싸늘하게 웃었다.“이제 보니 이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네? 그래서 사람을 찾아 그들과 손잡으라고 한 거야? 그리고 신고했어? 그렇지?”그녀는 민지훈이 그녀를 미워하는 게 그렇게 두려운 걸까?“콜록... 콜록...”부승민은 심하게 기침을 하다가 한참 후에야 진정하고 자조적인 웃음을 토했다.“네가 민지훈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좋아한다고 옳고 그름도 따지지 않고 이렇게 맹목적으로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건 아니지 않아? 민성주가 신고당한 건 그 사람 잘못이지 나랑 상관없어!”온하랑은 허, 탄식을 내뱉었다.“거짓말하지 마! 육광태도 오빠가 시킨 거잖아? 그가 아무 이유도 없이 왜 민 씨 가족을 노리는 건데?”“육광태는 육광태고, 나는 나야. 그가 뭘 했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 육광태가 왜 민 씨 가족을 겨냥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화장실에 가는 것까지 너한테 보고해야 해?”“하, 부승민 이제 네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없어. 아직도 뻔뻔하게 거짓말하며 억지를 부려? 지금 네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지
온하랑은 멈칫했다.“그건 물어서 뭐 해요?”육광태는 한숨을 내쉬었다.“승민이는 며칠 전부터 위출혈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원래 상태도 좋지 않은데 어제부터 갑자기 단식을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간병인 말로는 어제 전화를 받고 이렇게 됐대요.”부승민이 위출혈로 입원했다고?얼떨떨해서 듣고 있던 온하랑은 문득 이틀 전 안문희의 손자 병문안을 갔을 때 병원에서 부승민의 뒷모습을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는 잘못 본 줄로만 알았었다.온하랑이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본 육광태가 말했다.“지금 저와 함께 병원에 가서 좀 설득해 봐요!”정신을 차린 온하랑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안 갈래요. 어린애도 아니고 자기 몸으로 장난쳐봤자 고통받는 사람은 본인이에요. 우리는 이미 이혼했는데 앞으로 이럴 때마다 제가 보러 가야 하면 제 삶은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두 사람이 이혼하기 전부터 그녀는 부승민이 일 년 내내 밖에서 접대하여 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때는 그녀가 항상 지켜보며 부승민이 제때 식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마련했기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이제 이혼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병원에 입원할 줄은 몰랐다. 육광태는 미간을 찌푸렸다.“하랑 씨! 지금 민 씨 가족 일로 화난 거 알아요. 장담하는데 그건 제가 혼자 벌인 일이에요. 부승민은 정말 모른단 말이에요!”온하랑은 담담하게 말했다.“안 믿어요. 보나마나 두 사람이 짜고 저를 속이는 거겠죠!”“하늘에 맹세컨대 제 말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천벌을 받을 거예요!”육광태는 오른손을 들고 엄숙한 표정으로 맹세했다. 육광태의 사뭇 진지한 표정을 본 온하랑은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육광태는 얼른 한마디를 보탰다.“아직도 못 믿겠어요? 하랑 씨, 제가 병원에 갔을 때 승민이가 뭐라고 말했는지 알아요? 만약 죽음만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어요! 오늘 아침에도 피를 토했어요. 의사는 승민이의
온하랑은 뒤에서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 숨이 가빠와 가슴이 심하게 부풀었다가 줄어들며 뺨이 열기로 붉어졌다.한 VIP 병실 문 앞에서 멈춰선 육광태는 문을 가리켰다.“여기예요. 들어가 봐요.”온하랑은 문에 달린 창문으로 병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침대 머리맡에 수액을 걸려있었고 부승민은 병상에 누워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것이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육광태의 품에 안겨 몸부림치던 부시아가 칭얼거렸다.“삼촌, 저도 들어가고 싶어요.”육광태는 부시아를 껴안으며 말했다.“잠시만, 먼저 삼촌이랑 숙모가 얘기하게 하자.”“알았어요.”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발소리에 부승민은 눈을 감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설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잖아.”이제 보니 안 자고 있었구나. 온하랑은 침대 옆으로 와서 누워있는 부승민의 모습을 똑똑히 보고는 갑자기 마음을 졸이며 숨을 죽였다.며칠 사이에 그는 다시 살이 많이 빠지고 눈두덩이가 움푹 패었으며 얼굴에는 살이 거의 없었다. 턱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고, 얼굴빛은 창백하게 병색을 띠고 있었다.밖으로 드러난 깡마른 양손 손등은 혈색 없이 하얗고, 시퍼런 핏줄이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될 수 있지?오랫동안 알고 지낸 부승민은 항상 기운이 넘쳤다. 온하랑은 이렇게 연약한 부승민의 모습은 처음 봤다. 마치 얇은 종잇장처럼 살짝만 만지면 찢어질 것 같았다.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부승민은 다시 말했다.“아직도 안나가?”“나야.”온하랑이 나지막하게 말했다.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부승민은 흠칫하며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지만 결국 눈을 뜨지 않았다. 목울대가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목구멍 깊숙이 씁쓸함을 삼켰다. 손가락으로 슬며시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뭐 하러 왔어?”온하랑은 두 걸음 가까이 다가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보았다.“미안해. 어제는 내가 오해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