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지금은 고기 맛이 영 별로네.”김시연은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점점 더 위험해지는 연도진의 눈은 애초에 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김시연은 느끼는 바가 많았다. “음... 고등학생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성장은 했어. 근데 동시에 퇴보했어.”김시연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연도진에게서 떨어지려고 할 때 억센 손아귀가 그녀를 잡아 침대로 눕혔다.김시연은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한바탕 야단법석을 떨고 난 후 제정신이 들었을 때 김시연은 천장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도 정신없이 돌아가는 나머지 괴로울 정도였다.“도진아, 너... 이러지 마, 잠깐만... 멈춰 제발!”연도진은 잔뜩 가라앉은 얼굴로 아래턱에 힘을 잔뜩 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던 땀방울은 어느새 흥건히 이마를 적셨고 땀 줄기가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네가 원하던 게 이런 거 아니었어?” 연도진은 낮게 읊조렸다.“아니야... 내가 잘못했어...”그 순간, 김시연은 자신이 바다에 내던져진 작은 조각배 같다고 생각했다. 바다의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고 이따금 매서운 파도가 덮쳐오기도 했다. 항행할수록 파도는 더 심해졌고 결국 김시연의 온몸을 적셔 물기가 뚝뚝 떨어지게 했다. 끝끝내 거센 바다의 폭풍을 견뎌내지 못한 김시연은 울먹이며 연도진의 팔뚝을 잡았다. “도진아, 멈춰... 나 못 참겠어... 나 진짜 못 참겠어.”배가 항행을 너무 빨리한 것이다.연도진의 목울대가 또 한 번 세차게 요동친다. 잔뜩 찌푸렸던 미간을 풀고 배의 항행속도를 늦추며 물었다. “지금 고기가 맛이 영 별로야?”“맛있어, 맛있고말고!” 김시연은 놓칠세라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내가 퇴보를 했어?”“아니야! 어떻게 그러지? 퇴보는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엄청나게 진보했는걸!”“엄청나게? 그게 어떤 정도지?”김시연은 정말 한마디 톡 쏘아붙이고 싶었다. 딱 네 그릇만큼.하지만 아
김시연은 잠옷을 꺼내 아무렇게나 몸에 걸치고는 이불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누가 알기나 했을까, 땅에 발이 닿자마자 다리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 다시 침대로 털썩 넘어질 줄은.김시연은 연신 속으로 연도진을 개자식이라고 욕하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벽을 짚고 일어나 새 옷을 가지고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조심조심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이번에 하도 폭식을 한 탓에 제대로 질려버린 김시연은 생각했다. 앞으로 꽤 긴 시간 동안은 ‘고기’ 생각은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욕실까지 두 걸음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연도진의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방 중앙에 서 있는 김시연을 보고는 작게 웃었다. “깼어? 내 예상보다 더 일찍 깼네, 마침 너 먹이려고 점심 포장해왔는데.”그 미소속에는 쉽게 알아챌 수는 없지만 잘 보이려는 속셈이 분명히 녹아있었다.김시연은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너 아침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 왜 아직도 안 갔어?”연도진이 대답했다. “일정 조절했어.”“아 그래? 난 또 네가 나 먹고 버린 줄 알았지.”“내가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인 줄 알아?”연도진은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2인분의 포장 용기를 꺼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볶음밥으로 포장해왔는데, 배고프지?”말이 끝나기 바쁘게 김시연은 자신의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들었다.김시연은 자신의 위를 어루만지고는 계속해서 욕실로 향했다. “일단 거기 둬. 나 아직 못 씻었어.”연도진은 그런 김시연의 모습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뱉고 말았다. “너 지금 이대로라면 걷는 거 너무 느려.”“연도진…”김시연이 걸음이 늦은 게 누구 탓이던가?김시연이 아무리 제지를 해도 연도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김시연을 안아다 욕실까지 데려다주었다. “됐어, 이제 씻어.”“...”김시연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목이며 쇄골이며 어깨며 할 것 없이 군데군데 늘어난 키스 마크들이었다.
“승민아, 내 컴퓨터 아직도 다 수리 못 했대?”온하랑의 컴퓨터가 고장 난 걸 알게 된 비서가 온하랑의 카카오톡으로 파일을 보내왔다. 하지만 휴대폰으로 검토하려니 여러모로 불편했다. 그래서 배를 매만지며 서재로 와서 물었고 그 모습을 본 부승민이 부축하면서 말했다.“글쎄, 연 비서한테 전화해서 물어볼 테니 먼저 내 컴퓨터로 해.”“내가 너 일하는 데 방해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괜찮아, 편하게 써.”부승민은 온하랑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힌 뒤, 한 손을 등받이에 올려놓고 다른 한 손으로 마우스를 잡고 업무를 보던 페이지를 하나둘 꺼버렸다. “고마워.”마우스를 건네받은 온하랑이 카카오톡에 로그인하려고 하자 이미 로그인된 부승민의 아이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온하랑은 BX그룹의 일원으로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부승민을 지켜보았기에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부승민은 업무를 볼 때 주로 메일을 사용하거나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카카오톡보다는 연구개발 센터에서 만들어낸 BX그룹 직원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했다.컴퓨터로 카카오톡에 로그인할 리 없다는 예상과 달리, 부승민은 연 비서와 카카오톡을 통해 연락했다. 연 비서는 평소에 곧바로 부승민한테 전화를 걸어 보고했었다.이때 부승민이 차분하게 물었다.“왜 그래?”온하랑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카카오톡 메시지를 훔쳐볼까 봐 겁나지도 않아? 이렇게 순순히 컴퓨터를 내어줄 리 없는데...”“보고 싶으면 봐도 돼.”부승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난 당당하니까 두렵지 않아. 정말 너한테 무언가를 숨기고 싶었다면 카카오톡에 증거를 남기지 않았겠지.”“그건 그래.”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부승민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지난번에 추서윤과 연관된 일에서도 부승민은 어쩔 수 없었다고 했지만 온하랑은 여태껏 부승민이 말한 사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지금도 그 일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다.온하랑은 복잡한 생각을 뒤로 하고 부승민의 아이디를 로그아웃했고
[부승민: 조사해 보고 찾아내서 누가 지시한 건지 알아내.][연민우: 알겠어요.]씻고 나온 온하랑은 배에 튼살이 생기지 않도록 에센스 오일을 잘 발라주었다. 얼굴에 남아있던 흉터는 긴 시간 동안 세럼을 발라준 덕에 말끔히 사라졌다. 이때 카카오톡 문자 알림음이 울렸지만 온하랑은 신경 쓰지 않고 배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매만졌다.알림음이 또다시 울리자 온하랑은 손을 닦고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서우현이었고 온하랑은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추서윤이 죽은 뒤에 연락하고 나서 지금까지 무소식이었다. 추서윤은 죽기 전날,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사실이 있었고 자신도 이용당했다고 온하랑한테 말했었다. 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만나려 했지만 그다음 날 추서윤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추서윤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단서는 끊어졌고 추서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 구치소에 있던 추서윤을 죽인 범인 배후에는 큰 세력이 뒷받침했을 것이고 상상하지 못할 이익을 두고 싸움이 벌어진 것이 확실했다.온하랑은 상대가 눈치채서 자신을 해하려 들까 봐 이 일에 대해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서우현을 고용해서 추서윤에 관한 일을 조용히 알아보라고 했고 시간은 몇 년이 걸려도 괜찮다고 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온하랑은 서우현이 단서를 찾아서 연락한 줄 알고 재빨리 대화창을 클릭했다. 하지만 서우현이 보낸 사진 두 장이 어딘가 이상했다.‘내 사진인 것 같은데, 왜 이걸 보낸 거지?’온하랑이 미간을 찌푸린 채 사진을 클릭하자 임신부처럼 보이는 온하랑이 거리에서 걷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 배경은 강남시가 아니었고 지금보다 더 앳된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대학생 때 찍힌 사진 같았다. 그래서 온하랑은 누군가 사진을 합성한 줄 알았다. 두 번째 사진으로 넘기자 첫 번째 사진보다 배가 더 불렀고 만삭인 것 같았다. 간호사가 지나가는 복도에서 찍은 이 사진은 병원에서 찍은 것이 분명했다. 온하랑은 서우현의 의도가 궁금해서 물음표를 전송했
‘이게 뭐지?’경악도 잠깐일 뿐 온하랑은 사진 속에 숨겨진 포토샵의 흔적을 찾기 위해 뚫어져라 핸드폰을 쳐다봤다.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베테랑 포토그래퍼의 작품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로 모든 게 자연스러웠고 살짝 젖어있는 듯한 아기의 머리카락마저도 생동감이 넘쳤다.어쩌면 딥페이크로 얼굴 바꿔치기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별안간 온하랑의 머릿속에 스쳤다.그녀는 재빨리 핸드폰으로 앱 하나를 다운받았다.이 앱은 파일의 내부 세부 사항을 검사하고 이미지의 원본 출처를 분석하여 진위 여부를 테스트하는 용도로 사용된다.온하랑은 사진을 저장하여 앱에 불러넣었다.그러나 곧이어 눈앞에 펼쳐진 결과에 할 말을 잃었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사진 두 장도 넣어보았으나 결과는 다를 바가 없었다.믿기지 않는 현실에 머릿속이 텅 비었고 표정마저 잔뜩 굳어졌다.세 장의 사진은 모두 원본이며 그 어떤 포토샵의 흔적도 없었다.앱에 떠오른 정보로 봤을 때 세 장 모두 5년 전의 사진이었다. 날짜는 달랐지만 모두 온하랑이 필라시에 있었을 때와 일치했다.특히나 마지막 사진은 촬영일이 6월 28일인데, 아마 출산일이었을 것이다.온하랑은 기억을 더듬어 본인이 8월 말에 귀국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당시 그녀는 조부모님께 여름 캠프에 참가한다고 얘기했는데 실은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었다.그 기억만큼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수술을 마쳤을 때 온하랑은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였고 낯선 나라, 낯선 병원에서 눈을 떴다.그녀의 기억은 필라시로 떠나기 전 그곳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 꿀팁을 찾았던 그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나중에 의사를 통해 필라시인 걸 알게 되었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일시적인 충격에 기억을 잃었다고 한다.온하랑은 자신에게 기억상실증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핸드폰에는 펜베티아 대학교에서 찍은 사진과 발급받은 인증서 사진이 남아있었다. 학점 표까지
그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인 부승민이 아니다.“같이 가자. 마음이 안 놓여서 그래.”부선월이 어딘가에 숨어서 지켜볼 수 있는 상황에 그녀를 위험을 빠뜨릴 수는 없었다.부승민의 고집을 꺾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온하랑도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사진 속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누군가의 악의 섞인 장난일 수도 있기에 헛된 생각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자신의 몸과 뱃속의 아이에 집중해야 할 시기인 만큼 좋은 기분으로 새 생명을 맞이하는 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그러나 아무리 자기암시를 해도 여전히 헛된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그렇게 온하랑은 잠을 설쳤다.다음날 부승민은 양현수에게 연락했다. 운전대를 잡은 양현수의 곁에는 여자 경호원이 앉아 있었고 그들의 뒤를 지키는 차에도 경호원이 가득 배치되었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온하랑은 비로소 차에 올랐다.이 상황이 웃긴지 온하랑은 미소를 머금고 부승민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난리야. 누가 보면 황금알을 임신한 줄 알겠어.”“말이 너무 심하네. 걱정돼서 이러는 거잖아.”이번 정기검진에는 체중, 혈압, 혈액검사를 제외하고 초음파도 포함되어 있었다.초음파실 입구에는 경호원이 지키고 있었다.부승민이 초음파실에 발을 딛은 순간 온하랑이 재빨리 몸을 돌려 손을 가로저었다.“그만. 넌 밖에서 기다려.”부승민은 어리둥절했다.“왜? 난 들어가도 되잖아.”그동안 검사를 받을 때마다 부승민은 줄곧 온하랑의 곁을 지켰고 가끔 의사가 초음파 화면을 가리키며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다.“내가 싫다고 하면 그냥 안 되는 거야.”온하랑은 그를 힐끗 째려보고선 일부러 진지하게 얘기했다.“의사 선생님한테 개인적으로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아무리 진지하게 말한다 한들 부승민의 눈에는 그저 귀여워 보였다. 애교 섞인 목소리에 똘망똘망 반짝이는 두 눈이 더해지자 비밀보다는 생리적인 문제로 의사한테 뭔가를 여쭤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온하랑을 클래식 캐슬까지 바래다준 부승민은 그녀에게 푹 쉬라고 당부하고 회사로 향했다.대표 사무실. 연민우가 노크하고선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메일 발신자와 이 사건을 퍼뜨린 당사자를 잡았습니다.”부승민은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차분하게 물었다.“자백했어?”“네. 미끼를 던지니까 바로 물었습니다.”“뭐래?”“진술에 따르면 어느 날 낯선 라인 계정으로 친구 추가 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변 보호는 확실하게 해줄 테니 시키는 대로만 하면 문제없다고 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 것 같습니다. 실명 인증을 받은 계정이라 저희가 따로 조사해 봤는데 소유주는 서천우, 올해 일곱 살입니다...”“서천우...”부승민은 익숙한 이름에 흠칫하고선 여러 번 되뇌였다.그 반응에 연민우는 쭈뼛거리며 말을 이었다.“서정훈 의원님의 둘째 손자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서 의원님의 아들인 서상원입니다...”자기가 대단한 사람인양 허세를 부리는 건 어린아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다.하지만 그 아이가 서천우라면 이 일의 배후에 이엘리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부승민은 몇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의원님 비서한테 언제 시간 되는지 물어봐. 직접 의원님 찾아뵐 생각이니까 사전에 선물 준비하고.”“알겠습니다.”...집에 돌아온 온하랑은 소파에 앉아 핸드폰 속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봤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서우현과의 대화창을 열어봤지만 아직 그 어떤 답장도 받지 못했다.참다못한 온하랑은 그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얼마 후 통화가 연결되었고 핸드폰 너머로 서우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하랑 씨?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던 참이었어요.”이를 들은 온하랑은 다짜고짜 물었다.“저한테요? 무슨일로요?”“몇 달 전에 알아봐달라고 부탁하신 일 있잖아요. 단서를 찾았어요.”온하랑은 긴장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설마 추서윤...”“맞아요. 제가 섣불리 움직이면 꼬리가 잡힐 수도 있어서 일부러 부하한테 시켰어요. 추서윤
사실 이 내용만 들어보면 별 의미가 없다.식당 사장의 말을 토대로 추측하면 온강호가 사고를 당한 시간과 대략 일치한다. 당시 추서윤은 부승민과 만나고 있었으니 마스크를 쓴 남자가 추서윤의 남자 친구일 리가 없다.두 사람이 몰래 인적 드문 골목에서 만났으니 의심을 살 만도 하다.온하랑을 계속하여 물었다.“또 있어요? 그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고 있대요?”서우현은 한숨을 내쉬었다.“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어요. 180cm의 키에 다부진 몸매를 가졌는데 나이는 20대로 보였대요.”180cm의 키에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진 남자는 길거리에 널리고 널렸다.“어쨌든 이제 단서도 보이기 시작하니 계속 알아봐 줘요.”실마리를 따라 조사하다 보면 반드시 더 많은 목격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그 남자가 골목에서 증발하지 않은 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진실은 드러나게 된다.“알겠어요.”서우현은 곧바로 답했다.“아참, 무슨 일로 저한테 연락하려고 했어요?”온하랑은 그제야 자신이 연락하려던 목적이 생각났다.“어제 보낸 사진은 뭐예요? 누구한테서 얻은 거예요?”서우현은 당황해하며 물었다.“사진이요? 제가 사진을 보냈어요?”“어젯밤에 보냈잖아요.”“어젯밤이요?”서우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어제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 오늘 아침에 경찰서에서 핸드폰 찾으러 오라고 연락왔는데... 설마 그사이에 누군가 사진을 보냈다는 거예요? 그럼 잃어버린 게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훔쳤다는 거네요?”온하랑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럴지도 모르겠네요.”“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사진인지 물어봐도 될까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 일단 누가 핸드폰 훔쳤는지부터 조사해 봐요.”“네, 지금 바로 경찰서로 가서 알아봐야겠어요.”전화를 끊은 온하랑은 한숨이 나왔다.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고 두통이 밀려와 어지러웠다.무거운 배를 잡고 간신히 일어선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으나 좀처럼 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