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오른 부승민은 급히 시동을 거는 게 아닌 관련 부서에 신고하여 수상한 인물이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라고 당부했다. 부선월을 찾는 인원을 늘인 후 경호원 몇 명을 더 동원하여 인근 지역에 분포시켰다.육광태가 부선월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고 했으니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적이 어둠에 숨어있는이상 어떤 패를 내놓을지 모르기에 모든 상황을 고려해 미리 준비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온하랑으로 부선월을 유인해 낼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잘못된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 섣불리 리스크가 큰 이 방법을 택하지 못했다.부승민이 본가에 도착했을 때 양정숙과 부시아는 아직 식사하고 있었다.“익숙한 차 소리가 나길래 아빠가 왔을 거라고 확신했어요.”부시아는 식탁에 앉아 짧은 다리를 흔들며 싱글벙글 웃었다.“우리 시아 데리러 왔지.”곧이어 부승민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건넸다.“할머니, 저 왔어요. 삼촌도 계셨네요?”부광훈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할머니한테 얘기할 일이 있어서 왔어. 밥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먹고가.”“전 이미 먹었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기다릴게요.”부승민은 소파에 앉았다.“승민아, 삼촌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이따가 시간 좀 내줘.”부승민은 부광훈을 힐끗 보고선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부시아는 손가락을 내려놓고 휴지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배불러요. 잘 먹었습니다.”의자에서 홀짝 뛰어내린 부시아를 보며 부광훈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시아 짐 좀 챙겨줘요.”도우미 아주머니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눈치껏 부시아와 함께 방으로 향했다.부승민은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식탁으로 가서 부시아가 앉았던 의자를 끌어당겨 자연스레 앉았다.“삼촌, 하실 말씀이 뭐예요?”부광훈과 양정숙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네 고모...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니?”부승민은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저도 잘 몰라요.”“너도 몰라?”“오늘 막 밀입국
“현승 오빠는 도대체 어떻게 알아챈 거지? 너무 궁금하네.”부승민이 대답하려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보니 육광태였다.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온하랑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곧이어 핸드폰 너머로 육광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온시 근처에 있는 항구에서 부선월의 흔적을 발견했대. 아직 잡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러니까 너도 강남에서 조심해.”부승민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사뭇 진지하게 답했다.“알겠어.”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부승민의 모습에 온하랑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무슨 일 있어?”부승민은 찌푸리던 미간을 풀고선 온하랑을 향해 웃었다.“회사 일이야. 걱정 안 해도 돼.”그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사실 현승이보다 먼저 알아챈 사람은 수현 씨야. 준수 태어난지 얼마 안되고 연회가 있었잖아. 우리 그 전날에 병원에서 마주쳤던 게 기억나?”“기억하지. 그 당일에도 우리랑 같은 차 탔잖아.”온하랑은 곰곰이 생각했다.“상식적으로 혜민 씨가 수현 씨의 아이를 훔쳤다면 죄책감 때문이라도 절대 요청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수현 씨는 내가 말한 걸 듣고 의심하기 시작했던 거네.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직접 연회에 가야 하니까 혜민 씨가 거절하지 못하게 일부러 우리랑 동행한 거고. 그럼 날 이용했다는 거네?”“맞아.”부승민은 웃으며 답했다.“우리 하랑이 생각보다 똑똑한데?”“칭찬 같은데 왜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온하랑마저도 부준서가 모유가 아닌 분유를 마신걸 이상하게 생각했으니 서수현은 더 말할 것도 없다.“단번에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현승 오빠를 떠올린 거 보면 수현 씨도 엄청 똑똑한 것 같아.”부승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꼭 그런 건 아니야. 수현 씨는 현승이 밑에서 인턴 수습을 하고 있었어. 처음에는 아마 현승이가 그날 밤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이건 부승민의 추측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수현이 부준서의 정체를 노출했을 리가 없거니와 부현승을 피하지도 않았
차에 오른 부승민은 급히 시동을 거는 게 아닌 관련 부서에 신고하여 수상한 인물이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라고 당부했다. 부선월을 찾는 인원을 늘인 후 경호원 몇 명을 더 동원하여 인근 지역에 분포시켰다.육광태가 부선월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고 했으니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적이 어둠에 숨어있는이상 어떤 패를 내놓을지 모르기에 모든 상황을 고려해 미리 준비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온하랑으로 부선월을 유인해 낼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잘못된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 섣불리 리스크가 큰 이 방법을 택하지 못했다.부승민이 본가에 도착했을 때 양정숙과 부시아는 아직 식사하고 있었다.“익숙한 차 소리가 나길래 아빠가 왔을 거라고 확신했어요.”부시아는 식탁에 앉아 짧은 다리를 흔들며 싱글벙글 웃었다.“우리 시아 데리러 왔지.”곧이어 부승민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건넸다.“할머니, 저 왔어요. 삼촌도 계셨네요?”부광훈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할머니한테 얘기할 일이 있어서 왔어. 밥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먹고가.”“전 이미 먹었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기다릴게요.”부승민은 소파에 앉았다.“승민아, 삼촌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이따가 시간 좀 내줘.”부승민은 부광훈을 힐끗 보고선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부시아는 손가락을 내려놓고 휴지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배불러요. 잘 먹었습니다.”의자에서 홀짝 뛰어내린 부시아를 보며 부광훈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시아 짐 좀 챙겨줘요.”도우미 아주머니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눈치껏 부시아와 함께 방으로 향했다.부승민은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식탁으로 가서 부시아가 앉았던 의자를 끌어당겨 자연스레 앉았다.“삼촌, 하실 말씀이 뭐예요?”부광훈과 양정숙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네 고모...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니?”부승민은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저도 잘 몰라요.”“너도 몰라?”“오늘 막 밀입국
부승민과 부시아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온하랑은 청진기를 낀 채 청진판을 불룩한 배에 올려놓고 태아의 심장 박동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부시아는 가방을 벗어 소파 구석에 내려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봤다.“숙모, 뭐 듣고 있어요?”온하랑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아기 심장 소리 듣고 있었어.”“그게 들려요? 저도 들을래요.”온하랑은 청진기 이어팁을 빼고 부시아의 귀에 얹었다.“자, 해봐.”부시아는 온하랑의 손에서 납작한 청진판을 받아 온하랑의 배에 얹은 후 천천히 움직이며 귀를 기울였다.1분 뒤, 온하랑이 물었다.“어때?”부시아는 두 눈을 반짝이며 청진기를 떼어냈다.“너무 신기해요. 이걸 쓰면 뭔가...”부시아는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곰곰이 생각했다.“뭔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요. 다른 소리는 아예 안 들리는데 여기 납작하고 동근 곳에서 나오는 소리는 엄청 선명하게 들려요.”“맞아. 그게 청진기의 기능이야.”부시아는 청진기를 다시 착용하더니 자신에 가슴에 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그러고선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봤다.“숙모, 송이 심장 소리를 들어봐도 돼요?”“응. 당연하지.”“오예!”송이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아기 고양이에서 어느새 4kg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뚱땡이가 되었다. 중성화 수술을 한 이후로 점점 더 살이 찌었는데 통통한 그 모습은 귀엽기 그지없다.캣타워 캡슐 안에 몸을 숨긴 송이는 기분이 별로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고 꼬리도 축 처져있었다.부시아는 청진기를 들고 다가가 발끝을 세우더니 고양이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선 진지한 얼굴로 심장 박동을 듣기 시작했다.송이는 힐끔 쳐다보고는 꼼짝도 하지 않고 코를 골았다.그렇게 거실에서 한참을 놀다가 안문희에 의해 위층으로 끌려가 잠자리에 들었다.일찍 씻고 누운 온하랑은 머리맡에 기댄 채 가벼운 음악을 틀었다.9시 반쯤 일을 마친 부승민이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손에는 청진기가 들려있었다.
곧이어 부승민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이러니까 잘 들리네. 규칙적인 거 보니 아주 건강하군.”그렇게 1분 동안 듣다가 청진기를 떼어냈다.온하랑은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렸고 막 잠이 들려던 찰나 차가운 청진판이 또다시 느껴졌다.온하랑은 심장이 마구 뛰었다.“우리 하랑이 심장 소리 듣고 싶네.”부승민은 말하면서 청진판을 점점 더 위로 올렸다.움직임은 매우 부드러웠는데 차가운 느낌이 깃털처럼 몸 곳곳을 어루만지자 예민함이 극에 달한 온하랑은 호흡이 가빠져 긴장한 채로 눈을 질끈 감았다.청진판은 그녀의 가슴에서 정확히 멈췄다.“하랑아, 너 지금 심장이 엄청 빠르게 뛰어.”부승민은 온하랑에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혼자말하는 것 같았다.“숨소리가 왜 이렇게 거칠어? 어디 아픈 거 아니야?”부승민은 청진판을 이리저리 움직였고 그의 가볍고도 부드러운 손길은 마치 간지럼을 태우는듯 온몸이 나른해졌다.심지어 잘 들리지 않는지 꾹꾹 눌렀다.그렇게 몇 분 후, 드디어 청진기를 벗었다.온하랑은 그가 이번에는 어떤 행동을 할지 예상이 가지 않아 조마조마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무거운 물건이 올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정말 청진기를 거뒀다는 생각에 온하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이때 또다시 차가운 뭔가가 가슴에 닿았고 안 그래도 잔뜩 예민해진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그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온하랑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어쩌면 긴장하면서도 내심 기대하는 것 같다.테이블 위에 청진기가 놓이는 털컥 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고 이내 뭔가를 삼키는듯한 소리도 들렸다.부승민이 물을 마시고 있는 게 분명한데 다 알고 있음에도 방심하지 못했다.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예상대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청진판이 아닌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과 차가운 뭔가가 느껴졌다.입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자 차가운 그 느낌도 같이 옮겨졌는데 몸 곳곳에 촉촉한 흔적이 남으니
온하랑이 힐끗 쳐다보자 부승민은 말을 이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이 집에 시연 씨의 지분도 있지? 두 사람이 같이 사는 게 나쁜 건 없지만... 아이가 생기면 산후 도우미로 불러야 하고 나랑 시아도 자주 올 텐데 시연 씨가 불편해하지 않을까?”온하랑은 고민하는 부승민의 모습이 웃긴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그게 걱정됐어?”“응.”부승민은 사뭇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시연 씨가 지금 당장 들어와서 사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민폐가 되면 안 되잖아.”그 말을 들은 온하랑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육아용품도 점점 늘어날 테고 나중에 방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제멋대로 인테리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고민이 많았다.김시연에게서 다시 이 집을 사 올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은 연도진과 함께 그린 빌리지에 살고 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아직 단단하지 않으니 언제가 싸우게 될 상황을 고려해 개인공간을 남겨주고 싶었다.“네 생각은 어떤데?”“더원파크힐로 들어가는 건 어때? 아니면 위층으로 옮기던지.”“첫번째는 싫어. 두번째도... 싫어.”온하랑은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시원하게 모든 제안을 거절해 버린 온하랑을 보며 부승민이 허무함이 밀려왔다.“그럼 다른 생각이 있는 거야?”“한 채 살 거야. 괜찮은 게 있는지 한번 알아봐 줘. 이 건물이면 제일 좋은 데 없으면 다른 곳도 괜찮고.”“알겠어. 내놓는 사람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볼게.”...부승민이 무슨 방법을 썼는지 이틀도 안 되어 집을 내놓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10층에 살고 있는 청년인데 지금은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고 앞으로 그곳에 정착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에 집 정리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귀국했다고 한다.중개사를 통해 온하랑과 부승민은 내일 집 보러 가기로 집주인과 약속을 잡았다.저녁을 먹고 산책을 다녀온 온하랑은 가벼운 음악을 틀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으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한껏 만끽했다.그런데
최근 휴가를 내고 귀국한 집주인은 당장이라도 집을 내놓기 위해 정상 시세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제시했다.모든 일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자 온하랑의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갔고 끝내 부승민을 한쪽으로 끌어당겨 나지막하게 물었다.“솔직히 말해봐. 나 때문에 섭외한 연기자지?”온하랑은 부승민이 몰래 그녀의 은행카드를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재단 설립을 위해 400억을 기부하고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없는 상태에서 스튜디오까지 차렸으니 총제적 난국이다. 그런 상황에 집주인 정말 딱 들어맞는 가격을 제시했으니 의심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고 솔직히 조금만 더 높게 불렀다면 되레 김시연에게 돈을 빌려야 할 입장이었다.부승민은 웃으며 답했다.“가서 직접 물어봐. 나랑 아는 사이인지.”온하랑은 그를 힐끗 째려보고선 쿨하게 집주인과 계약한 후 돈을 송금했다.집주인은 시원시원한 그들의 성격을 보고선 먼저 식사를 제안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부동산으로 향해 양도 절차를 밟았다.부동산 증명서와 집 키를 가지고 나온 온하랑과 부승민은 다시 10층으로 돌아가 집 전체를 꼼꼼히 훑어봤다.“이런 인테리어는 어때? 마음에 안 들면 싹 다 갈아엎어야지.”부승민이 물었다.“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건 너무 번거로워. 거슬리는 곳만 살짝 손보면 될 것 같아.”온하랑은 방문 앞에 서서 여기저기 살폈다.“여기가 햇볕이 잘 들어오니까 아기방으로 꾸미면 되겠다. 서재는 그냥 저렇게 쓸래.”말을 하며 걸음을 옮기던 온하랑은 곧바로 안방으로 향했다.“안방은 일단 이 침대를 바꾸고 저기에 화장대 하나 추가해야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네.”“아기방은 어떤 인테리어로 하고 싶어? 아기가 태어나고 바로 들어와 살 수 있게 지금 바로 공사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거든?”“인테리어 컨셉 한번 찾아볼게.”온하랑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태블릿을 들고 이것저것 검색하며 래퍼런스 자료를 찾았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몇 시간 동안 손에서 태블릿을 내려놓지 않았다.저녁에는 서재로 들어오더니
“아기 침대는 여기에 두고 아기가 더 크면 좀 더 큰 침대로 바꿔. 여기에는 카펫을 깔고 울타리를 만들어 안에서 마음껏 놀게 해줘... 그리고 이것들은 분위기 내는데 필요한 가벼운 실내장식 소품들…” 온하랑은 열심히 본인의 도안을 소개했다.부승민은 스케치북을 집어 들고 몇 번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하랑이가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네.”“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부승민은 두어 번 목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설계 나쁘지 않아. 아이는 최근 몇 년간은 아직 어리니까 우리 미감으로 꾸밀 수밖에 없어. 아이가 좀 더 커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때 가서 바꿔도 되니까.”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일단은 이렇게 하고 내일 내가 다시 한번 봐볼 테니까 그때 또 고칠 게 있는지 봐 줘.”“응.”온하랑은 스케치북을 덮어 책장에 다시 끼워 넣었다. “그럼 하던 거 마저 해. 난 먼저 쉬러 갈게.”“그래.”침실로 돌아온 온하랑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잔잔한 음악 한 곡을 선곡하고는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씻고 나온 온하랑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의 심장박동을 느끼고 싶었다.테이블로 다가가 서랍을 열고 안에 놓인 청진기를 본 순간, 그날 밤의 기억이 자기도 모르게 떠올랐다. 그 순간 온하랑은 귀가 달아올랐고 안색은 노랗게 변했으며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청진기를 잡으려고 뻗은 손가락은 허공에 머문 채, 그 청진기를 차마 마주할 엄두가 안 나기까지 했다.온하랑은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저으며 생생하다 못해 색까지 입혀진 머릿속의 화면을 떨쳐버리고는 청진기를 집어 들었다.온하랑은 적응이 되자 뱃속 아이의 심장박동을 듣는 것이 사뭇 신비롭게 느껴졌다. 자신의 핏줄을 가진 아이의 심장박동이란 사실이, 그 생명이 바로 자신의 배 속에 있다는 사실이, 곧 있으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생명이라는 사실이 온하랑을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든 것이었다.한참 동안 아이의 심방박동을 느낀 온하랑은 청진기를 빼고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