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의 그 전화는 정신 병동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부선월이 부승민을 만나야겠다며 계속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내용의 전화였다.온하랑이 김밥 네 조각을 집어 먹었고 남은 네 조각은 부승민이 먹었다.이 모든 게 하룻밤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밤… 온하랑이 매일 밤 화장실을 갈 때마다 부승민은 늘 온하랑을 화장실까지 부축해 주었다가 다시 침대로 데려다주었다.매일 밤 두세 번씩 말이다.온하랑은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부승민이 밤에 제대로 쉬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녀는 언제든 잠을 충분히 자고 일어날 수 있었지만 부승민은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해야 했다.하지만 그런 온하랑의 걱정에도 부승민은 아무 문제 없다며 오히려 그녀를 안심시켰다.“정말 괜찮아?”온하랑이 물었다.“어젯밤에도 나가서 전화 받는 소리 들은 것 같은데.”물론 그 시각, 온하랑은 이미 잠에 빠져있던 때라 말소리만 그저 희미하게 들었을 뿐이었다.“응, 괜찮아.”부승민이 고집을 부리자 온하랑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잠자리에 들기 전, 부승민은 또 간호사에게서 걸려온 국제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의 간호사는 아주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찰스 씨, 사모님께서 또 소란을 피우고 계십니다. 찰스 씨가 전화를 받지 않으시면 죽어버리겠다고 난리를 치시네요. 아내 분 일도 언론에 폭로해서 이미지 추락시키고 찰스 씨한테는 어머니를 죽게 한 죄명까지 씌우겠다면서 협박 중이세요.”부승민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로 저한테 전화하지 마시죠…”“큰일 났어요, 찰스 씨! 사모님께서 정말로 손목을 그으셨어요! 피가 너무 많이 납니다, 빨리 아무나 좀… 찰스 씨, 그냥 전화 한 번만 받아보시는 게 어떨까요?”부승민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의 간호사가 당황하기 시작했다.방문을 닫고 나온 부승민은 노래방으로 들어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손목을 그었으면
“어떻게 된 겁니까?”부승민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아직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지금 저희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CCTV 확인하러 가셨어요. 오늘 아침에 병실로 와보니까 사라졌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다른 곳도 찾아봤는데 안 보여요, 진짜 증발이라도 해버린 것처럼 사라졌어요!”“찾아내세요, 무조건 찾아내야 합니다!”“알겠습니다, 저희도 지금 노력하고 있어요…”수화기 너머로 복잡한 대화 소리가 오가더니 곧이어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시 또렷하게 들려왔다.“찰스 씨, 경비님이 그러시는데… 병원 주변 CCTV가 고장 났다고 하시네요…”“…”전화를 끊은 부승민은 곧장 필라시에 있는 지사의 담당자에게 연락해 최대한 빨리 부선월을 찾아줄 것을 지시했다. 시간을 더 지체해봤자 상황만 악화될 것이 뻔했다.부선월은 분명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벗어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완벽하게 병원을 탈출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부선월은 이미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주로 활동하던 지역은 로스앤이었던 탓에 필라에는 아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그녀를 정신 병동에서 아무도 모르게 도망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만만하게 볼 존재는 아닐 것이다. 도대체 누구일까?다시 말해, 이미 자유를 얻은 부선월이 이성을 잃고 미쳐버린다면 온하랑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그렇다면 지금 온하랑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이엘리아?부승민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이엘리아였다. 그는 곧바로 사람을 보내 이엘리아의 근황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모든 상황을 정리한 부승민은 조용히 침실로 돌아왔다. 온하랑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부승민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천천히 자리에 누워보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이번에는 자신이 너무 방심한 것 같았다. 부선월을 감시할 인원을 더 많이 배치했어야 했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온하랑은 이제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출한다고 해도 활동 장소는 기껏해야 아파트 단지, 병원, 작업실
임연지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형사 처분을 받는 일은 없었을 텐데!“아직 안 늦었어. 네 인생은 아직 4분의 1밖에 안 지났으니까. 앞으로 많은 게 좋은 날들이야!”임가희가 말했다.임연지는 그 말에 이를 악물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마음속에서는 그녀를 삼킬 듯한 거대한 증오심이 피어올랐다.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었다.매일 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자신에게 계속해서 물었다.“내 인생은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걸까?”앞이 보이지 않았다.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연지야, 나도 네가 온하랑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알아. 하지만 지금은 형기를 무사히 잘 넘기는 게 제일 중요해. 절대 쓸데없이 허튼짓하려고 들면 안 된다.”임가희가 임연지를 달래며 말했다.“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서는 절대 안 돼. 이 시간이 지나 결국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야!”“알겠어요.”임연지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그 순간, 임연지의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가 번뜩였다.“맞다, 고모. 온하랑도 임신 7개월 차 아니에요? 아이가 태어나도 살아가는 데는 문제 없는 시기잖아요?”그녀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린 임가희가 말했다.“가능하긴 하지만 너무 위험해. 만에 하나 들키기라도 한다면…”“고모가 방금 가르쳐 주셨잖아요. 권력을 빌려서 권력을 대항하라고. 부선월을 조금만 더 빨리 돌아오게 해주세요. 가능한 제 출산 예정일에 맞춰서요.”…아침이 밝았다. 온하랑은 아침을 먹으며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부승민을 바라보며 무심코 물었다.“짐은 다 챙겼어?”“짐 챙길 필요 없어. 안 갈 거니까.”부승민이 차분하게 말했다.온하랑은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예 파기된 거야?”“응.”“그래, 알겠어.”부승민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휴지로 입을 닦았다.
온하랑 역시 기사를 통해 부현승과 서혜민의 “이혼” 소식을 알게 되었다.서혜민은 매체 인터뷰를 통해 남편인 부현승이 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자신의 사촌과 바람이 났다고 폭로했다.서혜민의 눈물 어린 고발은 많은 네티즌의 동정과 격려를 받았다. 이후, 네티즌 중 누군가가 부현승이 바로 부승민의 사촌 동생이며 부씨 가문의 셋째 아들이라는 사실까지 폭로했다.기사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인기 검색어 순위에까지 올랐다.온하랑 역시 이 사건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 갑자기 누군가가 판을 제대로 뒤엎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한순간에 모든 기사가 인터넷에서 사라졌고 인기검색어 올라갔던 검색어도 금방 내려갔다.아마 BX 그룹의 홍보부가 사건 처리를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이런 기사는 절대 BX 그룹에 좋은 영향을 주는 기사가 아니었으니까.하지만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 한구석에서 호기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부현승이 서혜민의 사촌과 바람이 났다고?그게 사실일까?온하랑이 하는 부현승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서혜민의 눈물 어린 폭로를 보면 그녀의 말이 딱히 거짓말 같지도 않았다.온하랑이 정보를 더 알아보기 위해 검색창을 누르려던 순간, 도우미가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아 갔다.오전 휴대폰 사용 시간이 끝나버린 것이다.…부현승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던 그때, 서수현은 마침 컴퓨터 코드와 씨름하느라 애먹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팀의 두 친구도 대회 준비로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전화벨 소리를 들은 서수현은 몇 번 더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아쉬운 듯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부현승 이사님?잠시 망설인 서수현은 친구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결국 휴대폰을 집어 들고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이사님? 무슨 일이세요?”부현승이 학교를 떠난 이후, 두 사람은 더 이상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서수현도 부승민과 서혜민의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본격적으로 대회 준비에만 몰두했다.그런 지금, 부현승에게서 전화가
서수현은 고개를 돌려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포니테일을 한 어린 소녀가 휴대폰을 보며 맞은편에 앉은 친구에게 불평하고 있었다.소녀의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세상에 이상한 사람들 진짜 많잖아. 학벌이 인격이랑 같은 것도 아니고… 4학년 컴공과라고 하던데, 이거 신고하면 졸업 못 하게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아마 가능성 없을걸. 불법도 아니잖아, 그냥 역겨운 거지.”“…”서수현의 맞은편에는 그녀의 친구가 앉아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친구는 자신의 학과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셋이서 만든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냈다.“야, 우리 옆에 있는 애들 지금 우리 학과 얘기 하는 것 같은데? 너 혹시 들었어?”서수현이 답장을 보내기도 전에 친구가 메시지 하나를 더 보냈다.“학과 단톡에서 누가 이 얘기하고 있다는데? 나 구경 좀 하고 올게.”“…”한동안 마우스 위에 엄지를 올려놓고 계속 고민하며 망설이던 서수현도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단톡방을 클릭해 내용을 확인해보았다.단톡방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누군가가 인스타에서 본 게시물을 공유하며 시작되었다.“님들 이거 봤어요? 소프트웨어 공학과라고 하던데?”“저도 아침에 봤음요.”“지금은 인기검색어 내려갔던데요.”“설마 우리랑 같이 수업 듣는 그 서수현은 아니겠죠? 설마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솔직히 전에 봤을 때 살이 조금 찐 것 같긴 했어요. 근데 그냥 살찐 것 같지는 않고, 묘하게 임신한 사람 체형이었단 말이죠.”“맞아요, 저도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서수현의 친구는 단톡방을 확인한 순간, 흥미롭다는 듯 가십거리를 즐기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졌다.그녀는 서수현을 한 번 쳐다보더니 개인 톡방을 열어 물었다.“수현아, 너랑 그 이사님… 그거 설마 진짜야?”서수현이 그녀의 메시지에 답장했다.“당연히 아니지.”“그런데 왜 아무 해명도 안 해?”서수현은 힘없이 한숨을 푹 내
서수현의 머릿속에서 “윙”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몸이 휘청거렸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어지러움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수현아?”간신히 정신을 다잡은 서수현이 말했다.“알겠어요, 아저씨. 지금 당장 갈게요.”서수현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했다.응급 상황임을 알리는 응급실의 불이 켜져 있었고 창고 관리인은 복도에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아저씨.”급하게 달려온 서수현이 관리인을 발견하고 달려와 물었다. 병원 응급실까지 뛰어오느라 서수현의 얼굴은 이미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숨을 크게 들이쉰 그녀가 물었다.“저희 아버지 어떻게 된 거예요? 의사가 뭐래요?”“수현아.”관리인은 다급히 달려온 서수현을 발견하자 두어 걸음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아직도 안에서 응급 처치 중이야. 의사한테 물어봤는데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들어가더구나.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라. 의사들 반응 보아하니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아.”“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서수현의 말투는 평온했지만 혹시라도 아버지가 잘못될까 두려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아저씨, 아버지께서 어떻게 쓰러지신 건지 알고 계세요?”“나도 그때 자리에 없어서 잘은 모르겠구나. 다른 사람들 말로는 네 아버지가 누구랑 통화하면서 말다툼을 조금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자리에 쓰러졌다더구나.”장윤범은 바지 호주머니에서 벽돌 크기의 휴대폰을 꺼냈다.“여기, 네 아버지 휴대폰.”서수현은 휴대폰을 받아들어 손에 꼭 쥐었다.“정말 감사해요, 아저씨. 다른 일 있으시면 먼저 가보셔도 될 것 같아요. 여긴 제가 있을게요.”“너 혼자 괜찮겠니?”“네, 괜찮아요. 전에 아버지 입원하셨을 때도 제가 다 한 걸요.”“알겠다. 그럼 먼저 가볼게.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부부는 모든 사랑을 자신의 하나뿐인 딸에게 쏟아부었다.그 시절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 때문에 시골에서는 첫 아이가 여자아이일 경우, 부모 모두 30세가 넘어서야만 둘째를 가질 수 있었다.그렇게 서명철 부부는 30세가 되자마자 서혜민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둘째를 가졌다.하지만 애석하게도 둘째 역시 딸이었다. 그런데도 부부는 결국 셋째까지 낳으며 아들을 향한 강한 열망을 버리지 못 했다.서혜민은 집안의 장녀로서 학교가 끝나면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고 숙제할 시간도 줄여야 했다. 결국, 서혜민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일찌감치 사회로 나가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그녀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선생님도 그녀가 아주 똑똑한 아이라고 칭찬하며 열심히만 한다면 좋은 인재가 될 거라는 말을 해왔었다. 하지만 서명철 부부는 교사의 말을 무시하고는 서혜민의 중학교 자퇴를 강하게 밀어붙였다.중학교를 자퇴하는 그날, 서혜민은 한참이나 울었고 서수현도 그런 자신의 사촌 동생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그리고 아들을 대할 때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서명철 부부에게도 분통이 터졌다.서혜민이 일을 시작한 이후, 서수현도 관리규정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3년 동안 연락이 끊겼고 서수현이 수능시험을 마치고 나서야 간신히 다시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그때의 두 사람은 예전 같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서수현은 서혜민의 성격에 조금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서명철처럼 다른 사람의 이득을 조금이라도 보려고 아득바득 매달리는 성격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사람 자체에는 변함없이 여전히 착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하지만 그랬던 서혜민이 지금 이런 수준까지 되어 있을 줄 미처 상상도 못 했다!서혜민이 서수현을 찾아왔던 그 날, 서수현은 마침 전화를 받고 있었고 서혜민은 밖에서 그녀의 통화내용을 전부 엿듣게 되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연 비서가 서수현에게 온천 리조트로 가라고 지시하고 있었고, 그뿐만 아니
서수현은 아버지를 대신해 입원 수속 절차를 마치고 점심 식사까지 따로 챙겨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서석철이 눈을 떴다.“아버지, 정신이 좀 드세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서석철은 눈을 깜빡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옆 병상의 대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제야 서석철은 쓰러지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 서서히 기억나기 시작했다.초소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서석철은 서명철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그는 갑자기 걸려온 서명철의 전화에 잠시 의문을 품었다. 전화를 받고 보니 서명철은 서수현이 염치없이 매형을 유혹했다는 둥, 서석철이 동생이 잘 나가는 꼴을 못 봐 딸을 부추겨 서혜민의 가정을 파탄 내려 했다는 둥, 온갖 험한 말들을 쏟아냈다.서석철은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그 탓에 서명철과 언쟁을 벌이게 됐다.하지만 서명철의 말은 점점 거칠어지며 그 정도가 이미 선을 넘었다. 말이 느리고 말발이 서툰 서석철은 동생을 이기지 못하고 분출해내지 못한 화만 잔뜩 쌓이게 됐다. 그러던 중, 서석철은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정신이 아득해지며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머리가 조금 어지럽구나.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서석철이 천천히 입을 떼더니 물었다.“의사 선생님께서는 고혈압으로 쓰러지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순간적으로 화를 내셔서 그런 거라고 하던데, 아버지 앞으로는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최대한 신경 쓰려 하지 마시고요.”서석철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너도 알잖니, 네 둘째 삼촌이 말을 얼마나 험하게 하는지. 근데, 너랑 네 매형이랑…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다 거짓말이에요. 혜민이가 지어낸 말이라고요.”서수현은 애써 아버지를 안심시켰다.“이 일은 이사님께서 정리 하실 테니까, 아버지는 더 신경 쓰지 마시고 몸조리나 잘하세요.”부준서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몸 상태가 좋아졌을 때, 기회를 봐가며 말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