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145화

작가: 고운
서수현은 아버지를 대신해 입원 수속 절차를 마치고 점심 식사까지 따로 챙겨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석철이 눈을 떴다.

“아버지, 정신이 좀 드세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

서석철은 눈을 깜빡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옆 병상의 대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제야 서석철은 쓰러지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 서서히 기억나기 시작했다.

초소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서석철은 서명철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는 갑자기 걸려온 서명철의 전화에 잠시 의문을 품었다. 전화를 받고 보니 서명철은 서수현이 염치없이 매형을 유혹했다는 둥, 서석철이 동생이 잘 나가는 꼴을 못 봐 딸을 부추겨 서혜민의 가정을 파탄 내려 했다는 둥, 온갖 험한 말들을 쏟아냈다.

서석철은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그 탓에 서명철과 언쟁을 벌이게 됐다.

하지만 서명철의 말은 점점 거칠어지며 그 정도가 이미 선을 넘었다. 말이 느리고 말발이 서툰 서석철은 동생을 이기지 못하고 분출해내지 못한 화만 잔뜩 쌓이게 됐다. 그러던 중, 서석철은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정신이 아득해지며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조금 어지럽구나.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서석철이 천천히 입을 떼더니 물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고혈압으로 쓰러지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순간적으로 화를 내셔서 그런 거라고 하던데, 아버지 앞으로는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최대한 신경 쓰려 하지 마시고요.”

서석철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도 알잖니, 네 둘째 삼촌이 말을 얼마나 험하게 하는지. 근데, 너랑 네 매형이랑…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다 거짓말이에요. 혜민이가 지어낸 말이라고요.”

서수현은 애써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이 일은 이사님께서 정리 하실 테니까, 아버지는 더 신경 쓰지 마시고 몸조리나 잘하세요.”

부준서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몸 상태가 좋아졌을 때, 기회를 봐가며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1146화

    “또 피해자 조작하려고 드네. 수유 기간에 이혼 소송 진행하는 거든, 외도이든 간에 문제는 부현승한테 있는 게 맞잖아. 왜 굳이 쉴드를 쳐주려고 하지?”…논란의 주제가 부현승의 외도에서 수유 기간의 이혼 문제로 옮겨지며 谢沐는 여론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하지만 부현승은 이에 대해 더 이상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서혜민은 부현승이 대응을 시작하자 어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부현승이 외도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하면 서혜민은 부준서가 서수현과 부현승을 대상으로 진행한 친자확인 결과지를 공개할 생각이었다.하지만 부현승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고소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당황한 서혜민이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했다.“… 설마 저 감옥까지 가는 건 아니겠죠?”서혜민이 걱정스레 물었다.대충 상황파악을 마친 변호사가 대답했다.“명예훼손죄 자체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라서 최대 형량이라고 해봤자 징역 3년입니다. 혜민 씨의 경우, 피해가 커서 1~2년 정도는 나올 것 같네요. 부현승 씨 외도 증거라도 있으신가요? 합법적으로 얻으신 증거가 있다면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없어요.”“없으시다면 재판 전까지는 최대한 증거를 확보해야 할 겁니다. 예를 들어, 부현승 씨가 외도 중인 현장을 어디에서 잡았는지, CCTV 영상을 찾아보거나, 은행 계좌 내역, 회사 동료들의 증언 같은 것들 말이죠.”“그것도… 다 없습니다.”“없다면 찾아봐야죠. 아직 재판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까요!”“그러니까 제 말은… 다 찾아봤는데 없었다고요!”그 말에 변호사가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서혜민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그럼 대체 어떻게 부현승 씨의 외도를 확신하셨던 거죠?”“아이가, 그 두 사람의 아이거든요.”변호사가 그 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부현승 씨가 정자를 기증한 적이 있었나요? 혜민 씨 사촌분과 시험관 수술을 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됩니다. 아이의 혈연만으로는 외도를 입증하기 힘들 겁니다.”“정자 기증은 한 적이 없어요. 그냥 자연스러운

  • 위태로운 제안   제1147화

    변호사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말했다.“아무 증거도 없고, 시간도 이렇게 많이 지나서 사건을 접수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해 보입니다.”“언니가 직접 경찰에 신고해도 어려운 건가요?”변호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증거가 없어서 어려울 겁니다.”변호사 사무실을 나오는 서혜민의 정신은 어딘가 혼미해져 있었다.두 시간의 상담을 통해 서혜민이 얻은 정보는 하나뿐이었다. 현재 상황이 자신에게 굉장히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고, 뒤집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네티즌들이 그녀를 대신해 억울해하는 중인 ‘수유 기간 이혼’ 문제도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게다가 부현승은 대중적인 인물도 아니었던 탓에 이 이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묻힐 것이다.지금 서혜민에게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 남아있었다. 바로 부현승과 화해하는 것이었다. 서혜민이 언론에 공개적으로 자신이 했던 발언을 정정하고 부현승도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다.하지만 서혜민은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어렸을 때부터 서수현은 모든 면에서 서혜민보다 뛰어났고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항상 서수현만 주목받아왔었다. 서혜민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서수현의 들러리로만 살아왔다.서혜민이 부현승과 사귀면서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비로소 그녀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한 번은 서혜민이 자신이 살던 시골 마을로 돌아갔을 때, 1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자신의 엄마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나 학교 가기 싫어! 중졸이면 어때? 서혜민도 중졸이잖아. 지금 얼마나 잘 됐는지 한 번 봐! 부잣집 남편 만나서 명품만 걸치고 동생들까지 다 먹여 살리고 있잖아. 근데 대학교까지 간 서수현은? 지금 서혜민 밑에서 일하고 있잖아! 난 나중에 서혜민 남편보다 더 잘난 남편 만날 거야!”그 말을 들은 서혜민은 내심 기뻤다.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서수현의 들러리가 아니었다. 자신 역시 다른 사람들이 흔히 부러워하는 “친구 집 딸”이었다.부현승의 존재가 너무 빛나는 탓에 한순간에 서수현의 희미하기 그지없는 빛을 가려버렸다.

  • 위태로운 제안   제1148화

    2초 정도 침묵을 유지하던 부현승이 입을 열었다.“딱히 그럴 생각은 없는데.”그 말에 서혜민의 마음이 순간적으로 조여왔다. 부현승이 정말 소송 철회를 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당신이 원 하는 게 뭐든, 할 수 있는 건 다 할게.”“서혜민, 당신이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 사촌 언니인 서수현이지. 그날 밤, 서수현이 위험에 처했을 때 당신은 그저 구경만 하고 있었잖아. 게다가 서수현을 속여 아이까지 빼앗아 갔지. 그리고 지금은 또 언론에다가 일부러 서수현을 헐뜯기까지 하면서 직접적인 피해까지 주고 있잖아. 서수현이 당신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런 짓들을 하는 거야?”서혜민은 그 말에 애써 변명하려 입을 열었다.“나... 나는 그냥 너무 무서웠어. 내가 당신을 이길 수 없을까 봐. 나도 나름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를 했던 건데, 그런 것도 다 비난받아야 한다는 거야?”“경찰에 신고해도 됐었고, 사람들을 부를 수도 있었어. 그 건물에는 분명 손님들로 가득했고 보안요원도 있었지. 방법은 많고도 많았어.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뭐가 진실인지는 당신이 더 잘 알겠지. 게다가 날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날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잖아.”그때부터 부현승은 깊게 생각하지만 않았을 뿐, 이미 서혜민이라는 사람을 다 꿰뚫어 보았다.“대체 원하는 게 뭐야?”서혜민은 점점 더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서수현과 비교당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내가 어떻게 하면 소송을 취하해줄 수 있는 건데?”“실망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난 처음부터 당신이랑 협상할 생각이 없었어. 소송 취하해줄 생각은 더더욱 없고.”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듯한 서혜민의 모습에 부현승은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에 서혜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꺼져버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부현승에게 처음부터 협상할 생각이 없었다고?정말 서혜민을 감옥으로 보낼 생각인 건가?둘이 몇 달이라는 시간을 함께 살았는

  • 위태로운 제안   제1149화

    서혜민의 호흡이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부현승의 매서운 시선을 가까스로 피하며 말했다.“… 다른 조건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부현승이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안돼.”서혜민이 입을 열려던 순간, 부현승이 먼저 말을 꺼냈다.“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해. 더 이상 은밀하게 여론을 조작하려 들지는 마.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명예훼손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 안미진 의사, 기억하지?”그 말에 서혜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렸다.안미진은 서혜민에게서 돈을 받고 서수현의 아이를 서혜민의 아이로 둔갑시켜준 산부인과 의사였다.만약 서수현이 이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서혜민은 유괴 혐의로 형사 기소될 가능성이 컸다. 이는 명예훼손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3일 줄게. 생각 잘 해봐.”부현승은 서혜민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차 시동을 걸어 빠른 속도로 지하 주차장을 벗어났다.서혜민은 점점 멀어지는 자동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동안 텅 빈 두 눈으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뒤에서 짧은 경적이 들리자 서혜민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자리를 내어주었다.그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왜지?왜 항상 서수현은 그녀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걸까?왜 모두가 서수현의 편에 서는 거냐는 말이다!서혜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공개 사과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있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혜민에게 쏟아졌던 모든 칭찬과 부러움들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화살로 변해 그녀를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녀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사람들은 바로 그녀의 부모일 것이다.펜트하우스에서 살다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인가, 아니면 감옥에 들어 것인가?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서혜민은 망설임 없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서혜민은 몸을 천천히 돌려 굳어버린 무릎을 움직이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 순간, 전화벨이 갑자기 

  • 위태로운 제안   제1150화

    “그러니까 네 말은, 부현승이 한 푼도 안 줄 거라는 말이냐? 그럼 절대 사과하면 안 된다! 혜민아, 네가 아직 어려서 뭘 잘 모르고 쉽게 속아 넘어가는 모양인데, 무슨 소송이니, 명예훼손이니 그런 거 다 헛소리야. 부현승도 그냥 겁만 주는 거지. 절대 속으면 안 된다.”서혜민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럼, 제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당연히 계속 떠들어야지! 최대한 일을 더 크게 벌여야 해. 부현승이 돈을 안 주겠다고 하면 일을 더 크게 만들어. 부현승이 더 상대하기도 귀찮게 만들면 돼. 그때가 되면 너한테 돈을 줄 거다.”“얼마나 원하시는데요?”“적어도 10억은 받아야지…”그 액수를 들은 서혜민이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10억?욕심은 하나는 정말 대단하네!이게 서혜민의 부모였다. 서혜민이 일을 더 크게 만들수록 그녀의 형량만 무거워진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돈만 바라보았다.지난 몇 달 동안 부현승이 서혜민에게 줬던 돈 대부분도 다 가져가 놓고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부현승이 서혜민에게 넘긴 집까지 넘겨받길 원하고 있었다.서혜민이 부현승을 핑계로 대야만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겨우 체념하고 행동을 관뒀다.몇 걸음 가기도 전에 서석철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전화를 받은 서석철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이 계집애가, 전화는 왜 갑자기 끊어? 내 말 안 끝났잖아! 네 명의로 된 집이 하나 더 있는 것 아니었냐? 그거 빨리 나한테 넘겨라. 다시 부현승한테 넘어가기 전에.”서혜민이 단호하게 말했다.“늦었어요, 집도 이미 뺏겼거든요…”그 말에 서석철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시 가져갔다고? 이 쓸모없는 자식이! 집 한 채도 제대로 못 지키고 뭘 한 거야! 그 집 나한테 넘기라고 했을 때 안 넘기더니, 이젠 다 날려 먹었구나. 듣기론 그 집 몇십억은 한다던데, 그거 네가 다 어떻게 갚을 거냐?!”서혜민은 힘없이 휴대폰을 멀

  • 위태로운 제안   제1151화

    서수현은 생각에 잠긴 듯 행동마저 느려졌다.사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그 일은 결국 직면하게 될 것이다.한참 동안 고민하던 서수현은 끝내 답장을 보냈다.[나중에요. 지금은 관심 갖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혹여나 부현승을 미행하고 있던 기자에게 사진이라도 찍히면 일은 더 커지게 된다.부현승은 칼답했다.[알겠어요.]서혜민은 다음 날 아침 부현승에게 연락했다.두 사람은 협의를 위해 BX 그룹의 법무팀에서 만나기로 했다.금액은 크지 않았고, 변호사는 이미 작성한 서류들을 서혜민에게 보여주며 그녀가 해야 할 의무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 주었다.때마침 서혜민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서명철이다.변호사는 화면에 뜬 ‘아빠’라는 단어를 언뜻 보고선 서혜민에게 말했다.“받으셔도 괜찮아요. 기다릴게요.”“아니요. 계속하시죠.”서혜민은 핸드폰을 무음 모드로 돌린 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알겠습니다.”협의서에 적힌 대부분의 조항들은 서혜민이 예상 범위 내에 있었다. 앞으로 그날 밤의 일에 대해 누구에게도 언급해서는 안 되며 어떤 형태로든 부현승과 서수현의 사생활을 공개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또한 부준서의 양육권에 관한 내용도 있었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서혜민에게 선택을 맡기는 조항들도 보였다.영원히 강남을 떠난다면 집은 서혜민의 소유가 되고, 강남에 남는 순간 집은 압류된다.그렇다. 어젯밤 서혜민이 서명철에게 집이 압류되었다고 말한 건 거짓말이었다.서혜민은 부현승이 모든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할까봐 두려웠다. 만에 하나 서명철이 집을 빼앗아 간다면 서혜민이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난것이나 다름없기에 이게 최선의 선택이다.그러나 뜻밖에도 부현승은 재산 관련 얘기는 언급하지 않았고 협의서에도 그저 집에 관한 조항들뿐이었다.서혜민은 고개를 들어 반대편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부현승을 바라봤다.“집 말고 다른 돈은...”“너한테 없잖아.”부현승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차분하게 말했다.“집만 네 명의로 있어.” 서혜민은 수치심

  • 위태로운 제안   제1152화

    부현승은 이미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답을 들은 서혜민은 협의서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고 그녀의 사과를 끝으로 모든 게 마무리되었다.BX 그룹의 법무팀을 나온 서혜민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드디어 끝났네...’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있었는데 모두 서명철에게서 온 것이었다.서혜은 재빨리 전화를 걸어 일시적으로 그를 안정시켰다.“어떻게 된 거야. 왜 하루 종일 전화를 안 받아? 뭐했어?”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서명철의 호통이 들려왔다.“흥분하지 말고 진정해요. 소란 피우라면서요? 그래서 부현승 회사로 찾아왔어요.”그제야 서명철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그래? 어떻게 됐어?”“회사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했어요. 지금까지 취조실에 갇혀있어서 전화를 못 받은 거예요.”서혜민의 답에 서명철은 한숨을 내쉬었다.“바보야? 경찰이 오란다고 따라가는 사람이 어딨어. 그때는 옷을 확 벗어야지. 그럼 아무도 너한테 접근하지 못할걸?”어이가 없었던 서혜민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전화는 왜 하신 거예요?”“별일은 아니고. 네 엄마가 귀중품 보냈는지 물어보라고 해서 연락했어. 택배는 보냈지? 그 뭐냐... 송장번호 어떻게 돼?”“아직이요. 지금 바로 가서 보낼게요. 귀중품이라 택배 보내는 게 쉽지 않거든요. 영상 같은 것도 찍어야 해서 시간이 좀 걸려요.”“그래. 알겠다. 서둘러.”“네.”서혜민이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핸드폰 너머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혜민아, 엄마 아빠가 널 너무 다그친다고 탓하는 건 아니지? 우리도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부현승이 경찰에 신고하는 걸 보면 모르겠어? 걔는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빼앗으려고 한다니까? 그러니까 걱정 말고 우리한테 보내. 어차피 결국에는 다 너한테 돌려줄 거야.”서혜민은 아무런 감정 기복 없이 무덤덤하게 답했다.“그럼요. 당연히 알죠. 가족인데 다 저를 위해서 그러시는 거잖아요.”“그래. 이제야 철이 들었구나.”전화를 끊은 서혜민은 평온한

  • 위태로운 제안   제1153화

    영상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동창이 서수현에게 영상을 보냈다.[이거 봤어? 네 동생 맞지? 참... 기가 막히네.][뭔데?][일단 봐봐.]서수현은 의아해하며 영상을 확인했다.영상에는 서혜민의 독백이 담겨있었다.“저희는 나이 차이가 없어서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하지만 처한 환경이 매우 달랐고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이에는 이 모든 게 분노와 질투로 변했습니다. 아버지는 줄곧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자는 어차피 시집갈 운명이니 공부를 하는건 시간 낭비라고... 글을 읽지 못해도 시집을 갈 수 있는데 큰돈 쓰며 딸자식 공부시는 게 무슨 소용인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을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현혹되었고 여자는 공부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박히면서 이걸 핑계 삼아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어쩌면 일종의 도피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부러웠어요. 이런 부러움이 나중에는 질투로 변하더군요. 친절을 베풀면 내 처지가 너무 불쌍해서 잘해주는 건가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멀리할 때는 무시하는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 열등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말 한마디 한마디에 서혜민의 진심이 담겨있음을 보여준다.영상을 끝까지 본 서수현은 기분이 착잡했다.서혜민과 멀어지기 시작한 건 대학 입사가 끝난 후였다.3개월의 방학이 생긴 서수현은 제일 먼저 서혜민에게 연락하여 같이 밥 먹자고 제안했다.서혜민은 시험 잘 봤냐고 물어보며 말을 덧붙였다.“연락 온 거보고 깜짝 놀랐다니까? 난 네가 대학 붙어서 이제 나 같은 사람이랑은 연락 안 하는 줄 알았어.”“내가 그럴 사람이야? 여기 근처로 지원할 생각이니까 나중에 놀러 와.”“됐어. 넌 이제 대학생인데 우리 같은 사람이랑 어울리면 안 되지.”농담인 듯 아닌 듯한 그 말에 서수현은 마음이 심란했다. 서혜민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고의로 한 말인지 아니면 무심코 내뱉은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느껴진 서혜민의 예민함에 저도 모르게 연락 횟수를 줄

최신 챕터

  • 위태로운 제안   제1307화

    방안은 어두웠고 쥐죽은 듯 조용했으며 가끔 바깥 거리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만 들렸다.설윤이 네 번째로 몸을 뒤척일 때 옆에서 최동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요?”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깊은 밤의 정적을 뚫고 그녀의 고막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동철 씨도 잠이 안 와요?”“네.”최동철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실내는 다시 조용해졌고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집안의 난방이 너무 커서인지 설윤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다치지 않은 발목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는데 조심하지 않고 최동철이 밖에 놓은 팔과 부딪혔다.피부가 닿는 순간 설윤은 재빨리 팔을 비켰으나 뜻밖에도 최동철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떠나지 못하게 했다.그의 손은 매우 컸다. 뜨거운 온도가 그녀의 몸에 닿는 순간 그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얼굴에 퍼지며 설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설윤은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에서 손목을 빼려고 힘을 썼지만 실패했다.“뭐 하는 거예요?”“보통 운동 후에 몸이 피곤해서 잠이 잘 오는데, 한 번 시도해 보겠어요?”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설윤은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묻는 것 같았다.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그 목소리는 깃털처럼 가벼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그녀의 대답은 마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처럼 들렸다. 최동철은 그녀의 팔을 풀어주었는데 그녀가 손을 거둘 때 신속히 이불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공격적인 기운을 풍기며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또 겁이 났다.그녀는 숨을 죽이고 손끝을 그의 가슴에 떨어뜨린 채 천천히 위로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 놓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데 그럼...”“조심할게요.”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서로의 눈 밑에는 빛을 볼 수

  • 위태로운 제안   제1306화

    설윤이 차례로 밖에 씌워져 있는 랩과 붕대를 제거하니 몇 바늘 꿰맨 상처가 드러났다.그녀는 알코올로 주변을 부드럽게 닦은 후 다시 연고를 꺼내 면봉으로 고르게 발랐다.최동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드러난 옆모습은 매끄러운 얼굴 라인을 자랑했다. 아마 스무 살 어린 나이어서인지 볼에는 젖살이 있어 통통했고 피부는 희고 섬세해서 모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거즈를 몇 바퀴 두른 후 설윤은 나비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다 됐어요.”“고마워요.”“별말씀을요.”설윤은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난 샤워하러 가고 싶어요. 욕실에 걸상 하나 놔줄 수 있어요?”최동철은 몸을 일으켜 동그란 걸상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다시 나오면서 그는 다치지 않은 팔을 내밀려 말했다.“부축해 줄게요.”설윤은 느릿느릿 침대로 옮겨 한 손을 그의 팔에 얹고는 다치지 않은 발을 먼저 땅에 대고는 절뚝거리며 화장실로 갔다.그녀를 안쪽 욕실로 데려다준 후 최동철은 샴푸 등을 욕실 벽에 있는 선반 위에 놓아주고는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아 주었다.설윤은 느릿느릿 옷을 벗었다. 속옷은 팬티는 이거 하나밖에 없었다. 빨면 곧 마를 수 있겠지만 마르기 전에는 그저...이틀 전에는 혼자 살아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곁에 남자가 한 명 많아졌다.그러나 씻지 않으면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두 장 더 사는 건데...’고민 끝에 설윤은 속옷을 빨았다. 다 빤 후 드라이어로 말리면 10분 정도면 다 마를 수 있었다.이때 설윤은 문득 최동철이 나왔을 때 머리를 말리지 않은 것이 떠올랐는데 보아하니 드라이어로 팬티를 말린 것 같았다.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설윤은 팬티를 씻고 말린 후 간단히 머리도 말렸다. 그런후 속옷과 팬티를 입고 목욕 수건을 둘렀는데 다행히도 이 수건은 충분히 길어서 가슴부터 무릎까지 감쌀 수 있었다.이때 밖에서 문소리가 들렸다.“다 씻었어요?”“...네.”“그럼 제가 들어갈까요?”

  • 위태로운 제안   제1305화

    그녀의 최근 행동을 보면 물질, 환경, 품질 등에 큰 요구가 없는 것 같다."물론이죠."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도련님은 일반인에게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설윤은 회억에 잠겨 말했다.“제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이웃들이 그러는데 엄마 병은 고칠 수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찍 퇴원했기 때문에 병세를 끌어서 돌아갔다고 했어요.”엄마가 돌아간 후 집주인은 장례를 치러주고는 그녀를 보육원에 보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최동철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미안해요.”그는 그녀의 신원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문서에는 간단히 ‘6살 때 생모 병으로 사망’으로만 적혀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괜찮아요. 다 지나갔어요.”설윤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동철 씨는 돈이 싫으세요?”최동철은 그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최국환과 임가희와 암투를 벌였을까?“돈은 나에게 있어 숫자일 뿐이죠. 어쩌면 우리가 다투는 것은 돈이 아니라 권력이에요.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권력이죠.”최동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설윤은 아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최동철을 끌어들인 후 그는 주위를 살펴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처음으로 이렇게 허름한 곳에 왔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참았을 뿐이다.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겨울 날씨여서 그런지 금세 어두워졌다.저녁을 먹은 후 설윤은 또 얼음찜질하고 연고를 한 번 더 발랐다.발목 부기가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 최동철이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며칠 동안 피해 살다가 드디어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 이르자 그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어깨에 부상이 났다고 설윤이 일깨워주었지만 최동철은 신경 쓰지 않고 랩으로 상처를 감싼 후 씻으러 갔다.설윤은 저도 모르게 어젯밤에 본 화면이 떠올랐다.넓은 어깨와 가슴,

  • 위태로운 제안   제1304화

    최동철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그런데, 젊은이. 아내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 정말 잘 어울리네.”둘 다 잘생기고 아름다웠으니까.“저희는... 대학 동기입니다.”“그래? 몰라보겠어. 아내는 참 어려 보이는데 벌써 스물여섯이라니.”최동철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 동안이라 자주 오해를 받습니다.”스물여섯은 설윤의 가짜 나이였다.집주인은 작은 양념병을 들고 나와 최동철에게 건넸고 우유 두 병도 함께 내주었다.돌아온 후, 최동철은 집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설윤에게 전했다.설윤은 웃으며 말했다. “동철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서로 잘 맞춰주니 완벽하네요.”최동철은 가볍게 웃으며 가스레인지의 밸브를 열었다.점심은 밥에 감자 볶음과 돼지고기였다.최동철의 요리 실력은 훌륭했다. 삼겹살을 바삭하게 볶아내 느끼함 없이 밥과 잘 어울렸다.다행히도 다친 쪽은 왼팔이라 오른손으로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으나 속도는 다소 느렸다.식사 후, 설윤은 다시 한 번 발목에 냉찜질을 했다.냉찜질을 끝낸 후 최동철이 약을 가져오자 설윤이 말했다. “제가 할게요.”“그래요.” 최동철은 순순히 응했다. 한 손으로는 불편했으니까.바쁜 대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외출할 수 없는 민박집 안, 두 사람은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설윤은 침대에 기대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고 최동철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설윤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옆모습은 뚜렷한 이마선과 오똑한 콧대가 더해져 눈매가 깊어 보였고 날카로운 턱선이 또렷했다.정말 잘생겼다.그의 이목구비는 최국환과 약간 닮았다.하지만 나잇살이 들어 퉁퉁해진 최국환과는 달리 최동철은 참으로 젊었다. 눈빛 속에도 서른 살 남자의 단단함으로 가득했고 이는 세상 물정에 밝고 노련한 최국환과 완전 달랐다.잠시 머뭇거리던 설윤이 말했다. “동철 씨, 피곤하면 여기서 주무세요.”그의 키는 너무 커서 작은 소파에선 편히 쉴 수 없었다.설윤은 발목 부상

  • 위태로운 제안   제1303화

    최동철은 약품이 담긴 봉지를 찾아 안에서 멍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꺼냈다. 고개를 돌리니, 설윤이 느릿느릿 신발을 벗고 있었다.그는 연고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그녀 앞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해줄게요.”신발과 양말을 벗자 뽀얗고 작은 발이 드러났다. 다섯 개의 발가락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고 동글동글 귀여웠다. 발톱은 깔끔한 곡선을 이루며 정리되어 있었으며 발등의 뼈선은 유려하게 흐르며 섬세한 곡선을 그렸다.발목 근처에는 큼직한 멍과 부기가 올라와 있었다.최동철은 그녀의 발바닥을 받쳐 들고 부은 부위를 살짝 눌러보았다.“앗...” 설윤이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을 찡그렸다.“아파요, 누르지 마세요.”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상태가 꽤 심각해 보이는데 내가 침대까지 옮겨줄 테니까 당분간은 움직이지 마요.”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그녀를 안으려 했다.“안 돼요!” 설윤은 급히 손으로 그를 막았다. “동철 씨도 팔 다쳤잖아요.”최동철은 몸을 숙여 다친 왼팔은 내리고 오른팔로 그녀의 다리 밑을 감싸 안았다. “두 손으로 내 목을 잡아요. 이쪽 팔은 힘을 쓰지 않을 거니까 안심해요.”한 손으로 안으려고?설윤은 그의 목에 양팔을 감고 조심스럽게 몸을 맡겼다.그는 오른팔로 그녀의 허벅지를 받치고 두 걸음 만에 침대 곁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잠시만 기다려요. 집주인한테 얼음팩 좀 받아올게요.”“네.”최동철은 약 10분 뒤 얼음주머니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하나는 냉장고에 넣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발목에 살며시 대주었다.얼음의 차가운 감촉에 설윤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손으로 얼음주머니를 누르며 말했다.“너무 차가워요.”“20분은 찜질해야 해요. 하루에 세 번에서 네 번 정도로요.”설윤은 그에게 붕대를 가져와 얼음주머니와 발목을 단단히 감도록 했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 둘 다 밖에 나가지 말죠. 배달 앱으로 장을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동철 씨,

  • 위태로운 제안   제1302화

    의사는 최동철을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젊은이, 앞으로는 아내 말 잘 들어요.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여보, 들었지? 의사 선생님도 그러시잖아!”최동철은 잠시 입을 말없이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어.”봉합이 끝난 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었다.병원을 나서며 설윤은 최동철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누가 데리러 와요?”최동철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짧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설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설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요.”그녀는 두 걸음 앞서 걸으며 말했다.“이 작은 도시는 꽤 조용하네요. 며칠 더 머물 생각인데, 동철 씨도 안 간다니까 같이 지낼까요? 서로 보호도 되고.”최동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호텔은 눈에 띄니까 단기 임대 민박을 찾는 게 더 안전하고 편리할 거예요.”“좋아요.”“근데 검색해 보니까 민박은 대부분 더블침대 방이더라고요. 괜찮으세요?”“설윤 씨가 괜찮다면 전 상관없어요.”“그럼 예약할게요.”최동철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온라인으로 예약할 거예요?”대부분의 예약 앱은 신분증 정보를 입력해야 해서, 한 번 사용하면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설윤은 그의 걱정을 알아채고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이 폰은 제 이름으로 등록된 게 아니에요. 추적 못 할 거예요.”최동철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준비가 철저하네요. 그런데 어떻게 임가희한테 이렇게 몰렸어요?”“임가희가 이렇게 빨리 제 존재를 눈치챌 줄 몰랐거든요. 그랬다면 좀 더 철저히 준비했을 텐데요.”최동철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먼 곳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그녀의 정보를 넘긴 장본인이 아니라는 듯이.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두 사람은 예약한 민박으로 향했다.민박은 단일 방 구조로, 면적은 47㎡. 방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오픈형 주방이 있고 가스레인지

  • 위태로운 제안   제1301화

    이튿날 아침, 최동철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패딩 점퍼에 청바지, 스니커즈, 그리고 새로 정리한 헤어스타일까지 더해지니 몇 년은 젊어 보였다. 게다가 넉넉한 핏의 패딩은 그의 체형을 자연스럽게 감춰주었다.“자, 마스크도 잊지 말고 쓰세요.”“네.” 최동철은 대답하며 책상 위의 마스크를 집어 썼다.지금 이 모습이라면 자세히 보지 않는 한 그를 알아보긴 어려울 터였다.최동철은 설윤이 입고 있는 패딩 점퍼를 힐끗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설윤은 웃으며 설명했다. “작은 가게라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어요. 그리고 커플룩이 신분을 숨기기에 더 좋아요.”“그렇군요.”“제가 먼저 내려가서 체크아웃하고 주변 상황을 살펴볼게요. 연락드리면 그때 내려오세요. 미리 택시도 불러놓을게요.”“알겠습니다.”“그럼 다녀오겠습니다.”“네.”설윤은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나갔는데 가방 안에는 두 사람이 입었던 옷이 담겨 있었다. 이곳에 그냥 두면 흔적이 남을 수 있어 길 가다 버릴 생각이었다.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설윤은 무사히 로비에 도착해 체크아웃을 마쳤다. 거리로 나서며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면서도 그녀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폈다.길 건너편 왼쪽, 작은 만두 가게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가게 앞에는 접이식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었고 그중 한 테이블에는 건장한 남자가 앉아 가끔씩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그 자리는 아침을 먹으며 호텔을 감시하기에 딱 좋은 위치였다.설윤은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는데 감시자는 그 남자 한 사람뿐인 듯했다.아마도 어젯밤 이들이 호텔 방마다 수색했지만 최동철의 흔적을 찾지 못해 속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한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주변을 수색하러 간 모양이었다.2분쯤 지나 설윤이 부른 택시가 호텔 앞에 도착했다.설윤은 최동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차 문을 열며 짐을 싣다가 말했다. “기사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 남편이 금방 내려올 거예요.”“네, 알겠습니다.”설윤은 다시 로비로 들어갔다.1분쯤

  • 위태로운 제안   제1300화

    최동철이 말했다.“그럼 내일 병원에 다녀와야겠어요.”“제가 도와드릴게요.”약을 다 바른 뒤, 설윤은 그에게 거즈를 감아주며 말했다. “됐어요, 이제 좀 쉬세요. 전 잠깐 나갔다 올게요.”“어디 가려고요?” 최동철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임가희 쪽 사람들이랑 마주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요.”“필요한 물건을 좀 사야 하거든요. 걱정 마세요.” 설윤은 가볍게 비웃으며 말했다. “그 인간들 손아귀에서 도망쳐 나온 제가 다시 잡힐 것 같아요?”최동철은 그녀가 방금 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을 힐끗 보며 물었다. “왜 아버지한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 거예요?”“이미 기회를 놓쳤어요. 제가 뭐라 해도 믿지 않을걸요?”“그럼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아요?”“당연히 괜찮지 않죠.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어요. 기회만 생기면 반드시 다시 돌아갈 거예요.”“성공하길 바라요.” 최동철이 씩 웃으며 말했다. “돈은 있어요? 부족하면 제 카드를 써요.”설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럼 조금만 써도 돼요?”돈이야 많을 수록 좋은 법이니까.최동철은 벽에 걸린 외투를 가리켰다. “지갑은 저기 외투 주머니에 있으니까 직접 꺼내요. 현금은 많지 않지만 블랙카드는 비밀번호가 필요 없어요. 사람이 적은 ATM에서 현금을 인출할 수 있을 거예요.”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니 고급 가죽의 촉감이 손에 닿았다.“얼마든지 뽑아도 괜찮아요?” 그녀가 돌아보며 물었다.“물론이죠.”“최 대표님, 참 후하시네요.”“제 목숨은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까요.”설윤은 밖으로 나갔다.최동철은 항생제를 먹고 씻은 뒤 침대에 누워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곤했던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깨어났다.시계를 보니 벌써 열한 시였다.설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최동철이 일어나 그녀를 찾으러 갈까 고민하던 찰나, 설윤이 돌아왔다. 그녀는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늦었네요. 위험한 일은 없었어요?”“없었어요.” 설윤은 고개를 저으며

  • 위태로운 제안   제1299화

    최동철은 그 말을 듣고 샤워기를 틀었다.설윤은 간식이 담긴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그 위에 놓인 칼을 가렸고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걸어가 문을 여니 예상대로 복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그는 방 안을 힐끗거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키우는 햄스터가 실수로 도망쳤는데, 혹시 보셨나요?”설윤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방금 밖에 나갔다 와서요. 잘 모르겠네요. 남편한테 물어봐 드릴게요.”그녀는 욕실 쪽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혹시 햄스터가 들어오는 거 봤어?”샤워기에서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설윤은 욕실 문을 살짝 열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여보, 작은 햄스터가 들어온 거 못 봤어?”몇 초간 침묵이 흐른 후, 그녀는 머리를 빼고 남자에게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못 봤대요. 다른 곳도 한번 찾아보세요.”“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남자는 의심 없이 돌아섰다.최동철처럼 몸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숨겨줄 이는 남자일 수밖에 없었다.설윤은 차분히 문을 닫고 귀를 문에 붙여 조심스럽게 소리를 들었다. 남자가 정말로 떠났음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욕실 문을 열며 말했다. “갔으니 나와요.”그리고 테이블로 가서 비닐봉지 안에서 약들을 꺼냈다. “자요, 여기 이 약들이 충분한지 확인해봐요.”최동철은 뒤에서 걸어나와 약의 종류와 양을 살펴봤다. “고마워요.”“별말씀을요.” 설윤은 생수를 주전자에 붓고 버튼을 눌렀다. “제가 약 발라줄까요?”“그럼 부탁할게요. 고마워요.”최동철은 잠시 망설였으나 곧 수락하고 천천히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그가 왼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자 설윤이 다가가 도와주었다. 그녀는 그의 겉옷을 벗기고 벽걸이에 걸었다.안에는 짙은 회색 니트가 있었고 상처 부위는 터져 피로 얼룩져 있었다. 니트를 벗으려면 팔을 들어야 했기에 설윤은 그의 어깨 상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잘라낼까요? 이 옷은 이미 알아본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