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말다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 너머로 이상한 잡음 외에 아무 말소리도 들리지 않자 서명철은 별생각 없이 전화를 끊었다.“아빠가 편찮으신 걸 알면서 일부러 화나게 만드는 의도는 뭐예요?”“됐어. 그 얘기는 그만하자. 어쨌든 내 큰형이니까 병원비 반 정도는 부담할게.”서수현은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서명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병원비를 받을 거란 일말의 기대조차 없었다. 그러니 너무나 의외였다.“삼촌, 그럼 계산서 보내줄 테니까 지금 바로 이체해 줘요.”“수현아, 잠깐만. 실은 물어볼 게 있어.”“돈 받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예요.”“그래. 알겠다.”“아참, 자의로 지불했다고 꼭 문자 남겨줘요.”서수현은 전화를 끊지 않고 곧바로 계정에서 결재 계산서를 찾아 서명철에게 보냈다.스피커폰으로 통화한 건 아니지만 대충 어떤 얘기를 주고받는지 눈치챘던 서석철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네 삼촌이 정말 병원비 반을 지불한대?”서수현도 목소리를 낮추며 답했다.“말은 그렇게 했는데 모르죠... 세상에나, 정말 보냈어요.”서명철은 서수현의 계좌로 병원비를 입금하며 방금 말한 대로 메모를 남겼다.눈이 마주친 서수현과 서석철은 믿기지 않은 현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걸 보니 정말 궁금한 게 있는 모양이다.돈을 받은 서수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먼저 말을 꺼냈다.“물어보고 싶다는 게 뭐예요? 제가 알고 있는 거라면 말씀드릴게요.”“혹시 혜민이랑 연락되니?”“왜요? 연락 안 받아요?”“없는 번호라고 뜨네. 카톡 계정까지 지웠어.”사과 영상과 부혀승의 고소 취하 기사를 본 서명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곧바로 서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들려오는 건 없는 번호라는 답이었고 불안한 마음으로 카톡을 보니 계정마저 지워졌다.부현승에게 감금되어 마지못해 사과 영상을 찍었을 거라는 가능성까지 생각했으나 이렇게 대담하게 말 한마
그 말을 듣고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온 서명철은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뛰어내렸다고? 부현승이 그런 말을 한 의도는 뭐야? 설마 뛰어내린 게 혜민이라는 거야?”“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냥 해본 소리일 수도 있고... 그런데 혜민이가 요즘 상황이 안 좋은 건 사실이잖아요. 이혼하고 소송까지 당했으니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인데...”“절대 그럴 리가 없어. 지금 혜민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이야? 아니, 부현승이 널 속이려고 일부러 지어낸 말일 수도 있어.”비록 강하게 부정했지만 서명철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정말 뛰어내린 건 아니겠지? 아니야, 말 잘 듣고 착한 애가 그럴 리가 없어. 그래도 만에 하나...’“그 사람이 절 속일 이유는 뭔데요?”“혜민이를 감금해서 사과 영상을 찍은 게 틀림없어. 우리 지금 다 속고 있는 거라니까? 혜민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게 부현승의 전략이야.”“아무 사이 아닌데 굳이 저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요? 설마 혜민이가 부현승 씨가 바람피운 증거를 갖고 있어요?”“없을 거야.”서혜민은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실질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계속 이렇게 버틴다면 감옥 가는 건 시간문제나 다름없다.“부현승 씨가 고소를 했으니 혜민의 입장에서는 협의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에요. 삼촌은 왜 계속 부현승 씨가 혜민이를 협박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협의 안 하면 감옥 가는 신세인데 그런 걸 원할 리가 없잖아요.”서명철은 식은땀이 맺혔다.“그게...”“삼촌, 설마 혜민이가 감옥에 갈 위험을 무릅쓰고 부현승 씨가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어요? 도대체 왜요?”“그게... 너도 알다시피 혜민이가 효녀잖니. 아마 부현승한테 돈을 더 받으려고 그랬던 것 같아. 감옥에 가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거지...”서수현은 그의 뻔뻔함에 치가 떨렸다.“혜민이가 협의하려고 직접 회사로 찾아갔대요. 회사에서 사인한 거라 CCTV에 모든 과정이 담겨있을 텐데 앞뒤가 잘 안 맞네요. 삼촌, 정말
서명철은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뻔뻔스럽게 굴었다.“너 지금 뭐라고 했니? 나 때문에 죽었다는 거야? 내가 나 좋자고 이러니? 다 가족을 위해서 하는 거지.”“혜민이 시집갈 때 예물을 2억 정도 받았다면서요? 그 돈 전부 삼촌이랑 아주머니가 가졌으면서 아직도 부족하세요? 삼촌, 2억이 어떤 금액인지 아세요? 우리 아빠 신장 이식 몇 번을 할 수 있는 큰돈이라고요.”“영민이 결혼할 때 집 사줘야지...”“영민이 이제 몇 살인데 벌써 그런 걱정을 하세요? 그리고 크면 알아서 돈 벌어요. 아들 고생시키는 건 싫고 혜민이가 감옥 가는 건 상관없다 이거예요? 옆에서 보는 저도 숨 막히는데 혜민이는 얼마나 힘들었지 상상도 안 되네요. 확신은 못 하지만 뛰어내린 게 혜민이가 맞을 거예요.”서수현의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서명철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럼... 이제 어떡하지?”“일단 제가 경찰서에 가서 신고할게요. 시체라도 건지면 장례 치러야죠. 어휴, 우리 불쌍한 혜민이 젊은 나이에 이렇게 가네요...”“그래. 부탁 좀 할게.”전화를 끊은 후 서석철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혜민이 살아있을 수도 있잖아. 왜 죽었다고 확신하는 거야?”“죽었거나 다른 도시로 떠났거나 어차피 둘 중 하나인데 삼촌 성격 잘 아시잖아요. 탐욕에 찌든 사람인데 절대 이대로 포기하지 않을 걸요? 혜민이가 죽어야만 지옥 같은 굴레에서 벗어날 거예요. 아빠, 혜민이 장례치를 때 옆에서 삼촌 호되게 혼내줘요.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렇게 연기해야 더 현실성이 있거든요.”“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돼. 시체는 어떻게 구하려고?”“부현승 씨한테 부탁할 거예요. 정 안되면 유골 만들어서 화장했다고 얘기해야죠.”서수현은 부현승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도움을 청했고 그녀의 부탁을 들은 부현승은 곧바로 동의했다.다음 날 아침 부현승은 시체 하나를 구했다고 연락왔고 그렇게 두 사람은 장례식장에서 약속을 잡았다.서석철은 이미 퇴원했다. 서수현은 그에게 대충 설명하고선 부랴부랴 장례식장으
“농담이에요.”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운 게 아니라 자신을 해쳤던 사람과 단둘이 있는 게 얼마나 지옥 같을지 예상이 가서 부현승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이틀 뒤에 변호사 시켜서 합의서 보내드릴게요.”“네. 고마워요.”룸 안은 정적이 찾아왔고 서수현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음식을 먹었다.이제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이상 부현승과 마주 보며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이때 부현승이 핸드폰을 힐끗 보고선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몸을 일으켰다.“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계산은 했으니까 천천히 드시고 가세요.”“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서수현은 고개를 들어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부탁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알겠어요.”문을 열던 부현승은 멈칫했다.“아참, 준서는 지금까지 딱 한 번 만나본 적 있죠? 언제 보러 갈 거예요?”서수현은 곰곰이 생각했다.“일단 예선 끝나고 나서요.”“그럼 그때 연락해 줘요.”“알겠어요.”부현승은 문을 열고 나갔다.발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서수현 혼자 남은 방안은 쥐 죽듯 한 정적만 가득했다.그녀는 팔을 쭉 뻗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불편해하는 걸 알고 먼저 자리를 피해준 부현승이 내심 고맙기도 했다.서수현은 여유롭게 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부현승이 그날 밤 그 사람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 서수현은 그가 매우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잘생긴 외모, 뛰어난 집안 배경, 출중한 능력 모든 게 완벽했다. 매일 성실히 출근하고 주변의 비서까지 전부 남자였기에 다른 부잣집 도련님에 비해 스캔들 한번 터진 적조차 없었다. 심지어 서혜민의 출신을 알고서도 전혀 꺼리지 않고 결혼식을 올렸으니 다른 남자들과는 많이 달랐다.만약 그날 밤의 일이 없었다면, 만약 임신하지 않았다면, 만약 평범한 대학생으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면 진심으로 그를 좋아하게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모든 건 허상일 뿐, 아이를 낳기로 마음먹은 순간 부현승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절대
서명철은 그제야 서혜민이 투신자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미련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기도 하지만 거듭되는 자기암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남 탓을 하게 된다.‘내가 남 좋으라고 이러는 게 아니잖아. 다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인데 왜 마음을 몰라주는 거지? 영민이가 나중에 성공하면 모두한테 좋은 거잖아. 하여튼 약해빠졌다니까. 감옥을 가게 된 것도 아닌데 말 몇 마디 했다고 죽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이렇게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이런 불효자가 있나. 고생해서 키워줬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쳐? 죽으면 죽었지 뭐. 서혜민이라는 딸은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거야.’서명철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택배 가지러 갔다.손에 쥐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얼마나 좋은 걸 보냈을려나. 이걸 안 보내고 죽었으면 어쩔뻔했어.’집으로 돌아간 서명철은 헐레벌떡 택배를 열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건 상자를 꽉 채운 돌멩이뿐이었다.“이게 뭐야?!”서혜민의 어머니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재빨리 돌멩이를 꺼내고선 안에 귀중품이 없는지 확인했다.“설마... 택배 기사가 바꿔치기한 건 아니겠죠? 얼마 전 뉴스에 택배기사들이 물건을 훔친다고...”그들은 서혜민이 일부러 돌멩이를 넣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지금 당장 따지러 가요.”“가는 김에 장례에 필요한 물건들 좀 사야겠어. 사람들 망신 사기전에 얼른 혜민이가 죽었다고 친척들한테 연락 돌려.”택배기사는 절대 바꿔치기한 거 아니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자 어쩔 수 없이 택배를 보낸 우체국에 연락하게 되었고 곧바로 통화가 연결되었다.“돌멩이를 보낸 게 맞아요. 안 그래도 너무 이상했어요. 택배비는 무게로 계산하는 건데 돌멩이를 보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가씨가 그 돌에 남다른 뜻이 담겨있다면서 꼭 보내야 한다고 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영상 하나 보내줄게요.”
“현승 오빠는 도대체 어떻게 알아챈 거지? 너무 궁금하네.”부승민이 대답하려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보니 육광태였다.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온하랑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곧이어 핸드폰 너머로 육광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온시 근처에 있는 항구에서 부선월의 흔적을 발견했대. 아직 잡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러니까 너도 강남에서 조심해.”부승민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사뭇 진지하게 답했다.“알겠어.”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부승민의 모습에 온하랑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무슨 일 있어?”부승민은 찌푸리던 미간을 풀고선 온하랑을 향해 웃었다.“회사 일이야. 걱정 안 해도 돼.”그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사실 현승이보다 먼저 알아챈 사람은 수현 씨야. 준수 태어난지 얼마 안되고 연회가 있었잖아. 우리 그 전날에 병원에서 마주쳤던 게 기억나?”“기억하지. 그 당일에도 우리랑 같은 차 탔잖아.”온하랑은 곰곰이 생각했다.“상식적으로 혜민 씨가 수현 씨의 아이를 훔쳤다면 죄책감 때문이라도 절대 요청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수현 씨는 내가 말한 걸 듣고 의심하기 시작했던 거네.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직접 연회에 가야 하니까 혜민 씨가 거절하지 못하게 일부러 우리랑 동행한 거고. 그럼 날 이용했다는 거네?”“맞아.”부승민은 웃으며 답했다.“우리 하랑이 생각보다 똑똑한데?”“칭찬 같은데 왜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온하랑마저도 부준서가 모유가 아닌 분유를 마신걸 이상하게 생각했으니 서수현은 더 말할 것도 없다.“단번에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현승 오빠를 떠올린 거 보면 수현 씨도 엄청 똑똑한 것 같아.”부승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꼭 그런 건 아니야. 수현 씨는 현승이 밑에서 인턴 수습을 하고 있었어. 처음에는 아마 현승이가 그날 밤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이건 부승민의 추측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수현이 부준서의 정체를 노출했을 리가 없거니와 부현승을 피하지도 않았
차에 오른 부승민은 급히 시동을 거는 게 아닌 관련 부서에 신고하여 수상한 인물이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라고 당부했다. 부선월을 찾는 인원을 늘인 후 경호원 몇 명을 더 동원하여 인근 지역에 분포시켰다.육광태가 부선월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고 했으니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적이 어둠에 숨어있는이상 어떤 패를 내놓을지 모르기에 모든 상황을 고려해 미리 준비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온하랑으로 부선월을 유인해 낼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잘못된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 섣불리 리스크가 큰 이 방법을 택하지 못했다.부승민이 본가에 도착했을 때 양정숙과 부시아는 아직 식사하고 있었다.“익숙한 차 소리가 나길래 아빠가 왔을 거라고 확신했어요.”부시아는 식탁에 앉아 짧은 다리를 흔들며 싱글벙글 웃었다.“우리 시아 데리러 왔지.”곧이어 부승민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건넸다.“할머니, 저 왔어요. 삼촌도 계셨네요?”부광훈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할머니한테 얘기할 일이 있어서 왔어. 밥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먹고가.”“전 이미 먹었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기다릴게요.”부승민은 소파에 앉았다.“승민아, 삼촌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이따가 시간 좀 내줘.”부승민은 부광훈을 힐끗 보고선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부시아는 손가락을 내려놓고 휴지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배불러요. 잘 먹었습니다.”의자에서 홀짝 뛰어내린 부시아를 보며 부광훈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시아 짐 좀 챙겨줘요.”도우미 아주머니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눈치껏 부시아와 함께 방으로 향했다.부승민은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식탁으로 가서 부시아가 앉았던 의자를 끌어당겨 자연스레 앉았다.“삼촌, 하실 말씀이 뭐예요?”부광훈과 양정숙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네 고모...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니?”부승민은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저도 잘 몰라요.”“너도 몰라?”“오늘 막 밀입국
“현승 오빠는 도대체 어떻게 알아챈 거지? 너무 궁금하네.”부승민이 대답하려던 찰나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보니 육광태였다.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온하랑 앞에서 전화를 받았다.곧이어 핸드폰 너머로 육광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온시 근처에 있는 항구에서 부선월의 흔적을 발견했대. 아직 잡은 건 아니지만 누군가 뒤에서 도와주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러니까 너도 강남에서 조심해.”부승민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사뭇 진지하게 답했다.“알겠어.”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부승민의 모습에 온하랑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무슨 일 있어?”부승민은 찌푸리던 미간을 풀고선 온하랑을 향해 웃었다.“회사 일이야. 걱정 안 해도 돼.”그는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사실 현승이보다 먼저 알아챈 사람은 수현 씨야. 준수 태어난지 얼마 안되고 연회가 있었잖아. 우리 그 전날에 병원에서 마주쳤던 게 기억나?”“기억하지. 그 당일에도 우리랑 같은 차 탔잖아.”온하랑은 곰곰이 생각했다.“상식적으로 혜민 씨가 수현 씨의 아이를 훔쳤다면 죄책감 때문이라도 절대 요청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수현 씨는 내가 말한 걸 듣고 의심하기 시작했던 거네.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직접 연회에 가야 하니까 혜민 씨가 거절하지 못하게 일부러 우리랑 동행한 거고. 그럼 날 이용했다는 거네?”“맞아.”부승민은 웃으며 답했다.“우리 하랑이 생각보다 똑똑한데?”“칭찬 같은데 왜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온하랑마저도 부준서가 모유가 아닌 분유를 마신걸 이상하게 생각했으니 서수현은 더 말할 것도 없다.“단번에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현승 오빠를 떠올린 거 보면 수현 씨도 엄청 똑똑한 것 같아.”부승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꼭 그런 건 아니야. 수현 씨는 현승이 밑에서 인턴 수습을 하고 있었어. 처음에는 아마 현승이가 그날 밤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이건 부승민의 추측이다. 그렇지 않으면 서수현이 부준서의 정체를 노출했을 리가 없거니와 부현승을 피하지도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