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랑의 심장은 두 번 크게 뛰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작은 빨간 방울토마토를 만지작거리며 무심한 듯 물었다.“뭐가 그렇게 좋아?”그러자 부승민은 손을 닦으며 온하랑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부드럽고 그 속에는 별빛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그냥... 그저 기뻐.”그는 이전에 받은 두 개의 이메일로 인해 느꼈던 모든 답답함이 사라진 것 같았다.“아, 그래.”대충 대답한 뒤, 온하랑은 그가 김시연과 자신이 한 통화를 엿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씻은 방울토마토를 들고 부엌을 나서려고 했다.그러나 부승민은 온하랑의 앞을 가로막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온하랑은 그를 피해 옆으로 한 걸음 옮기려 했지만 부승민도 따라 움직였다.“뭐 하는 거야?”온하랑은 미간을 찌푸렸다.부승민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에서 과일 접시를 받아들고 조리대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하랑아, 난 정말 행복해.”그의 목소리는 이미 하늘 끝까지 올라간 듯 들떠 있었다.“기쁘면 기쁜 거지 왜 자꾸 나한테 말하는 건데?”온하랑은 약간 짜증이 난 듯 말했다.“알았어. 하랑아, 너 진작부터 나를 좋아했구나.”“자만하지 마.”“자만하는 게 아니라 네가 직접 말했잖아.”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부승민의 눈가에는 약간의 붉은 기운이 맴돌았다.온하랑이‘만약 부승민이 죽으면’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부승민은 나머지 모든 말을 들었다.그리고 이제야 온하랑이 그를 좋아했음을 깨달았다.하지만 부승민은 그녀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다.그 당시 그의 관심은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었고 온하랑이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뜨거운 사랑을 잃어버렸고 그녀가 가장 그를 사랑했을 때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이를 깨달았을 때, 온하랑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하지만 부승민은 다행히도 그녀를 다시 붙잡았다.이제 그는 그녀에게 조금씩 더 다가갈 것이다.“난 아무 말도
“나도 너한테 감사할 게 있긴 해. 네가 내 삶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난 아마 오랫동안 퇴폐해 있으면서 학업과 대학 입시에 영향이 미쳤을 거거든. 제의대에 합격할 수도 없었을 거야.”부승민은 잠시 침묵한 후 조용히 물었다.“제의대 경영학과에 지원한 게 나 때문이었어?”온하랑이 부승민을 좋아한 시점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이었음을 깨닫고 그는 놀랐다.하지만 지금 보니 그녀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니 어쩌면 더 이른 부씨 일가에 들어와서부터 자신을 좋아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당시 온하랑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져버렸고 그저 몇 가지 흐릿한 장면들만이 떠올랐다. 그들은 본가에서 처음 만났고 부승민은 오빠로서 그녀의 성적에 대해 한 번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 이후로는 그저 형식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온하랑은 항상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으며 부승민에게 어떤 특별한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갈 즈음, 그는 할아버지에게서 온하랑이 제의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부승민의 직계 후배가 된 것이다.할아버지는 온하랑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부승민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했고 부승민은 시간을 내어 그녀를 가르쳐주라 당부했다. 두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하지만 온하랑은 한 번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고 부승민도 그녀를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그저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온하랑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셈이야.”부승민은 그녀의 대답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그럼 BX 그룹에 들어간 것도 나 때문이야?”온하랑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그리고 할아버지의 기대도 있었어.”부승민은 조용히 웃었다.“너 정말 잘 숨겼구나. 난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온하랑, 그래서 감독들이 널 캐스팅하려고 했구나.”이 말에 온하랑은 고개를 들어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우린 원래 관계가 별로 좋
부시아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온하랑은 부승민의 어깨를 밀며 그를 서둘러 밀어냈다.“시아가 들어오려고 해.”부승민은 아쉬운 듯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손으로는 여전히 온하랑의 허리를 살짝 어루만지고 있었다.“오늘 밤 나 여기서 자고 싶어.”온하랑은 그 말을 듣고 눈을 흘기며 그의 손을 떼어내고 과일 접시를 들어 부시아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부시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다 씻었어. 이제 먹어.”부시아는 온하랑의 빨갛게 물든 입술을 보고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고마워요, 숙모.”온하랑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어린애가... 너무 똑똑해도 문제네.’부승민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부시아 옆에 앉으며 말했다.“시아야,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갈까?”그러자 부시아는 눈을 반짝이며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숙모랑 같이 잘래요!”“너 이제 유치원에서도 제일 큰 언니, 누나잖아. 혼자 자는 게 좋지 않겠어? 송이랑 같이 자는 건 어때?”부승민은 부시아에게 살짝 윙크하며 말했다.그러자 부시아는 온하랑을 한 번, 부승민을 한 번 번갈아 보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모든 것을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곧 헤어질 텐데 내가 양보할게요.”=온하랑은 그 말에 할 말을 잃었다.부시아는 부승민을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아빠가 떠나면 숙모는 제 거예요!”부승민은 딸의 만족스러운듯한 표정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아빠, 왜 그래요?”부시아는 부승민이 갑자기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작은 손을 흔들며 물었다. 아이의 동그란 얼굴에는 궁금증이 가득했다.“아니야. 그냥 생각이 좀 나서.”부승민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온하랑은 아직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있어 서재로 가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부승민은 부시아에게 거실에서 놀게 한 후, 온하랑을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그는 서재를 둘러보며 말했다.“아이도 크고 있
온하랑이 욕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부승민이 문 앞에서 물었다.“샤워하려고?”“응.”곧 온하랑이 화장실로 들어서며 문을 닫으려는데 부승민이 그녀를 따라 들어왔다.“뭐 하는 거야?”그녀는 배를 살짝 감싸며 놀란 눈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지금 자신은 그와 함께 샤워할 수 없는 상태였다.부승민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미끄러질까 봐 걱정돼서 같이 씻으려고. 걱정 마. 너 임신 중이니까 아무 짓도 안 할게...”온하랑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부승민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다가가 문을 닫으며 덧붙였다.“둘이 함께 씻으면 물도 절약되고... 안심해도 돼. 아무 일도 안 할 테니까.”온하랑은 할 말을 잃었지만 결국 그가 하는 대로 두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동의에 조용히 웃으며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렷다.뒤이어 단단한 근육과 선명한 복근이 드러났고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V라인이 허리 아래로 이어졌다.그 부분은 허리띠에 가려져 있었지만 온하랑은 무심코 그 허리띠를 알아보았다. 결혼 생활 중에 자신이 사준 것이었다.시선을 돌리며 생각을 정리하려 했지만 고개를 들자 온하랑은 부승민이 자신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온하랑은 힐끗 흘겨보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임신 5개월째, 그녀의 몸도 많이 변했고 배뿐만 아니라 가슴도 무거워졌다. 그러나 부승민은 그것을 매우 좋아하는 듯 보였다.샤워가 끝난 후, 온하랑은 피로감에 푹 잠긴 채 부승민에게 안겨 침대로 옮겨졌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입술은 살짝 벌어져 깊은숨을 쉬고 있었다.부승민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녀를 놀라게 했지만 이번에는 적절히 자제해 온하랑을 만족시켰다.부승민은 욕실을 간단히 정리한 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자연스럽게 온하랑을 끌어안았다.“하랑아?”“응?”졸린듯한 목소리로 온하랑이 대답했다.“아니야. 그냥 자.”“...”온하랑은 속으로 ‘이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중얼거리며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하지만
연도진의 시선을 마주하자 이엘리아는 속이 불안해지고 머리가 아찔해졌다.마치 연도진이 그녀의 모든 계략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그가 알아챘다 한들, 부모님이 자기편에 서 있기만 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얼굴이 창백해지며 곧 이엘리아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오빠...”서희수는 그런 이엘리아를 보고 급히 딸의 어깨를 다독이며 연도진을 향해 화를 냈다. “네 동생이 아직 아프잖아. 좀 더 상냥하게 대해 줄 수 없어?”연도진은 이엘리아를 한 번 쳐다본 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지금 여기서 편안하게 치료를 받고 있고 강남시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상냥하게 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서희수가 더 말하기 전에 이엘리아는 구치소라는 단어에 격한 감정을 느껴 일부러 다리 위를 세게 꼬집으며 눈물을 쏟아냈다.그러고는 서희수의 품으로 몸을 숙이며 말했다.“엄마, 오빠가 또 저를 작은 방에 가두려고 할까요? 제발 저 가두지 말라고 말 좀 잘 해주세요. 저 오빠 말 들을게요...”그러자 서희수는 그녀를 부드럽게 위로하며 말했다.“걱정 마, 엄마가 있으니까. 네 오빠랑 얘기하고 올게. 이엘리아,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이엘리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서희수는 연도진을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 “카이사르, 나랑 얘기 좀 하자.”그렇게 연도진은 잠시 이엘리아를 쳐다본 후, 따라나서며 방을 나왔다.“카이사르, 강남시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네 여동생이 저렇게 된 거야?!”서희수는 계단 옆에서 분노에 차서 물었지만 연도진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이었다.“엄마, 먼저 진정하세요. 건강이 걱정돼요.”“네 동생이 저렇게 되어 있는데 나더러 어떻게 진정하라는 거야?”연도진은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 후, 한 걸음 물러나 벽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서희수는 여전히 화난 얼굴로 물었다.“너, 이엘리아에게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말했었지?”연도진
연도진의 말을 들으며 서희수는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이 상황이 장씨 가문에 알려지면 이엘리아는 분명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될 것이며 최소한 몇 개월 길게는 반년 이상을 구치소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연도진은 계속해서 말했다.“엄마도 아시다시피 이 상황이 장씨 가문에 알려졌다면 이엘리아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요. 시연이가 왜 온하랑을 말렸겠어요? 바로 저를 생각해서, 제가 곤란해지지 않도록 하려고 했던 거예요. 시연이가 중재하지 않았더라면 이엘리아는 훨씬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았을 거예요.”“시연이가 저의 여자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난 시연이를 위해 정의를 실현해줄 수 없고 오히려 시연이가 저를 이해하고 배려해줘야 했어요. 엄마, 제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아세요?”“엄마, 이엘리아와 함께 시연이에게 감사해야 해요. 시연이의 너그러움 덕분에 이엘리아는 이렇게 가벼운 처벌로 끝날 수 있었어요.”연도진은 서희수가 이엘리아 때문에 김시연을 미워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또한, 온하랑과 이엘리아의 관계는 이미 충분히 나빴고 더 이상 나빠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서희수는 연도진의 말에 얼굴이 더 붉어졌다.‘혹시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을까? 이엘리아의 고통만 생각하고 카이사르의 감정을 무시한 건 아닐까?’연도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이엘리아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엄마, 아버지, 그리고 저 모두 책임이 있어요.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이엘리아를 잘 챙기지 못했고 아버지는 일에 바빠 동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죠. 그 결과 이엘리아는 오만하고 다른 사람을 얕보며 자랐어요. 처음에는 작은 일이라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지만 결국 법을 어기고 큰 문제를 일으켰죠. 그때마다 피해자에게 돈으로 해결하려 했고 이엘리아는 점점 더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어요. 이번에는 운 좋게 넘어갔지만 다음에 이엘리아가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린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엄마, 저도 이엘리아가 제 동
서희수는 도우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이엘리아를 급히 안아 들고 말했다.“이엘리아, 제발 이런 짓 하지 마. 네가 이러면 엄마 못 살아!”서희수는 연도진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엘리아의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엘리아를 꼭 껴안으며 부드럽게 달래듯 말했다.“엄마가 있잖아. 네 오빠가 널 가두지 않게 막았어.”이엘리아는 서희수의 품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오빠가 절 가두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서희수는 재빨리 대답했다.“걱정하지 마라. 내가 네 오빠 혼내고 쫓아냈어!”이엘리아를 달래고 난 후, 서희수는 서둘러 심리 치료사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다.처음에 심리 치료사는 오기를 꺼렸지만 서희수가 제시한 보수가 너무 많아 결국 병실을 방문하기로 했다.치료사는 윌슨 가문의 친구로 가장하여 병실에 들어갔다.이엘리아는 이 낯선 사람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무기력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그러고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심리 치료사의 질문에는 형식적으로 몇 마디 대답만 할 뿐이었다.30분 후, 서희수는 심리 치료사를 병실 밖으로 안내하며 다급하게 물었다.“어떻습니까?”심리 치료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엘리아가 협조하지 않아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가능하면 이엘리아가 시간을 내어 저와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그는 잠시 망설였다.사실 치료사는 간단한 대화 후, 이엘리아의 상태가 진짜 정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일부러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두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한 환자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서희수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서희수는 치료사의 말을 듣고 다시 한숨을 쉬며 결심했다.“알겠습니다. 퇴원하면 바로 데리고 가겠습니다.”...부승민은 비행기에서 내린 후, 이메일에 적힌 주소로 곧장 향했다.그는 거대한 고딕 양식의 건물인 헨리 호텔 앞에 도착해 화려한 간판을 올려다보며 말했다.“너는 여기서
두 남자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왼쪽에 있던 남자가 사진 세 장을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려놓더니 부승민의 앞에 내밀었다.부승민은 어두운 표정으로 사진을 집어 들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그중 두 장은 이미 이메일에서 본 적이 있는 사진이었지만 세 번째 사진은 처음 보는 것 같은 사진이었다.사진 속 온하랑은 병상 위에 누워 잠들어 있었고 옆에는 아기 포대기가 있었다.부승민은 쿵쿵 뛰는 심장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고개를 들어맞은 편에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더 있습니까? 사진 속 아기는 지금 어디 있는 겁니까?”남자가 대답했다.“사진은 많고도 많죠. 아기가 어디 있는지는 찰스 님의 성의에 달려있겠죠.”“원하는 게 뭡니까?”“죄송하지만 찰스 님, 저에게는 결정권이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저희 주인님께서 협상하러 찾아오실 겁니다.”“알겠습니다.”부승민이 다시 고개를 숙여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마실 건 뭐 드릴까요?”“뭐든 괜찮습니다.”문을 열어줬던 남자가 차 두 잔을 우려 각각 부승민과 비서의 앞에 놓아주었다.“천천히 드시고 계세요.”호텔 밖의 육광태는 은밀한 장소에 숨어 호텔 입구를 예의주시하며 수시로 시간을 확인했다.“형씨, 불 좀 있어요? 라이터 좀 빌립시다.”그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육광태는 고개를 돌려 그 남자를 흘겨보며 아무렇게나 대답했다.“없어요.”“알았어요.”휴대폰을 확인하던 육광태는 문득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조금 전 그 사람은 분명 백인이었는데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정말 라이터가 필요했다면 길거리에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빌려도 될 텐데 왜 하필 육광태에게까지 찾아왔던 걸까?육광태는 곧장 몸을 돌렸다. 조금 전의 그 백인이 웃으며 무거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퍽”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육광태는 순간적으로 시야가 캄캄해지더니 곧이어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큰일 났다!두 사람은 지금 속은 거다!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