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하지 말고 얼른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 안 나갈 거야?”김시연은 연도진의 등을 밀쳤고 어쩔 수 없이 침실로 들어간 그는 투덜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나한테 준 선물인데 그걸 못 보게 하는 게 말이 되냐?”김시연은 선물 상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쓰레기인 척 실수로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티가 났다.외출이 더 급급했던 김시연은 돌아와서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혹시라도 연도진이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을까 싶어 재빨리 선물 상자를 방에 숨겼고 기회를 엿봐서 저녁에 버리려고 했다.연도진이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실에서 나왔을 땐 테이블에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고 김시연은 소파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연도진도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선 별다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가자.”“응.”김시연은 핸드폰을 끄고 몸을 일으켰다.이미 쌀쌀해진 강남과 달리 겨울의 휴양지라고 불리는 다움시는 여전히 봄처럼 따뜻했다.두 사람은 계획대로 일단 자연 명소로 향했다. 도심에 위치한 곳인데도 작은 뜰과 건물이 매우 고풍스러웠고 옛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한옥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실제 그곳에 사는 사람도 있어서 길가 곳곳에 조용히 관광하라는 팻말로 놓여있었다.연휴가 지나서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고 다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었다.심지어 그들은 이곳에서 웨딩촬영하는 커플도 만났다.김시연은 핸드폰으로 수십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중에는 자연 풍경과 셀카도 있었는데 연도진이 찍어준 사진들도 꽤 있었다.촬영 스폿에 도착하자 연도진은 길가는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연도진의 손에서 반지를 포착한 아주머니는 너스레웃음을 지으며 칭찬을 퍼부었다.“너무 잘 어울리는 커플이네요. 자, 웃어볼까요?”곧바로 미소를 짓는 연도진과 달리 김시연은 본능적으로 잘못된 말을 바로잡고 싶었다.“저희는 그런 사이가...”말하다가 문득 연도진과 ‘결혼’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가짜여서 그런지 아직 익숙하
김시연은 부시아의 귀여운 얼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넌 시아가 얼마나 귀엽고 똑똑한 아이인지 모를 거야. 그런데 부승민 씨와 다른 여자의 아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휴... 한숨만 나오네. 하랑이가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이 가서 나도 너무 고통스러워. 다른 여자면 모를까 하필 이엘리아잖아...”연도진은 표정이 일그러진 채로 고개를 숙였다.“내가 봐온 하랑 씨는 생각보다 강인한 사람이야. 힘들면 너한테 털어놨을 거야.”“네가 만약에 시아만한 딸이 있다고 하면 난 평생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말을 이어가던 김시연은 갑자기 진지한 눈빛으로 연도진을 바라봤다.“해외에서 7년을 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연도진은 헛웃음이 나왔다.“갑자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딸이 있다고 한들 그건 너랑 낳은 아이일 거야.”갑작스러운 멘트에 귀가 빨개진 김시연은 재빨리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그건 모르지...”“내가 숨겨둔 자식이 없다면 날 용서해 줄 거야?”“그럼 얘기해 봐. 7년 전에 왜 갑자기 떠났는지.”김시연은 걸음을 멈추고 그의 눈을 바라봤다.예전부터 너무 궁금했으나 차마 물어볼 용기가 없었고 연도진도 그 일에 대해 언급하기 싫은 듯 늘 얼렁뚱땅 넘기려고만 했다.김시연은 연도진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7년이 지났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에 그럴수록 아무 말 없이 떠난 연도진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고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연도진은 피하는 게 아닌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얘기하기 싫은 거면 됐어.”김시연은 소주병에 남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개의치 않다는 듯 앞으로 걸어갔다.“기억하겠지만 우리 아빠가 많이 아팠어. 투석으로 연명해야 할 만큼 상황이 점점 나빠졌는데 한창 수능 준비하고 있는 나한테 영향 주고 싶지 않은지 의사 선생님이랑 같이 숨겼어.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외국인이 날 찾아왔고 그 사람을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 아빠를 치료해 줄 최고의 의료진을 구해준다고 했
과일소주는 도수가 낮았기에 그걸 마시고 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하지만 김시연은 조금 취한 듯 머리가 어지러웠고 저도 모르게 연도진에게 몸을 기대게 되었다.뜨거운 키스와 함께 그녀의 손은 저도 모르게 연도진의 가슴으로 향했고 그 역시 싫지 않은 듯 가만히 있었다.다만 쓰고 있는 안경이 너무 거슬렸다.잘생기고 예쁜 남녀가 길가에서 입을 맞추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힐끔힐끔 그들을 쳐다봤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연도진은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나올 때와 별다를 바 없이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그러나 김시연은 알고 있다. 소리 소문 없이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형언할 수 없는 기류가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설렘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김시연이 연도진을 바라보자 연도진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몸 둘 바를 몰랐던 김시연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덤덤한 척하며 머리를 쓸어내렸다.호텔로 돌아온 후, 연도진은 방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 듯 김시연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김시연은 갑자기 긴장된 듯 입술을 깨물었다.‘설마 오늘...’애써 태연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간 김시연은 포트 쪽으로 방향을 털었다.“앉아 있어. 따뜻한 물 끓여줄게.”“잠깐만.”연도진은 김시연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는 어느새 연도진의 손에 이끌려 벽에 기댔고 그는 몸을 숙이더니 또다시 입을 맞췄다.김시연도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그의 뜨거운 손은 어느 순간 그녀의 허리에 닿았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 치마를 파고들었다.깜짝 놀란 김시연은 재빨리 그의 손을 잡으며 말렸다.“나... 먼저 씻을게...”김시연은 말을 마치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욕실로 직행했다.당황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연도진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후 거실로 걸어간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정교한 선물 상자를 보게 되었다.상자를 열어보고 내용물을 확인한 그는 다
방안은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다.어느새 힘이 풀린 채 침대에 축 늘어진 김시연은 발그레 달아오른 볼과 함께 유혹적인 눈빛으로 연도진을 바라봤고 그에게 몸을 맡기는 듯 그 어떤 저항도 없었다.긴장한 마음으로 그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연도진은 애를 태웠다.갑자기 밖으로 나가더니 불과 1분 만에 다시 돌아왔다.콘돔을 챙긴 줄 알고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김시연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런데 문득 이상한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뭐지. 촉감이 별로인데?’눈을 뜬 김시연은 그제야 연도진의 손에 들린 그것을 발견하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연도진. 너 지금... 아...”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도진은 스위치를 켰다.김시연은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너... 설마 거기에 문제 있는 건 아니지?”뒤늦게야 그녀는 연도진이 여전히 멀쩡하게 잠옷을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이미 안경을 벗은 연도진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문제 있는지 없는지는 곧 알게 될 거야.”김시연이 뭔가 더 말하려 했으나 연도진은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쉿. 얘기하지 말고 느껴봐.”뭐가 됐든 즐기는 사람은 김시연이기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눈을 감은 그녀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을 즐겼으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이 당근은 패턴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그때 화장실 간 연도진이 젖은 수건을 들고나왔다.지난번 술에 취했던 그 상황과 매우 흡사한 광경에 김시연은 그가 뭘 하려는지 예상한 듯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뭐야? 설마 끝이야?’‘내 몸매가 별로인가? 이렇게 끝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아니, 이럴 거면 왜 건드리고 난리야.’김시연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연도진. 연기할 필요 없으니까 나랑 하는 게 싫은 거면 그냥 솔직하게 얘기해.”연도진은 그녀의 몸을 닦아주며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끝까지 연기하네?”연도진은
다음 날, 연도진은 곧바로 바쁜 업무에 돌입했다.김시연은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여행했고 유명한 레스토랑을 방문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렸다.저녁이 되면 연도진의 ‘서비스’를 받으며 당근의 기능을 극대화했다.5일째 되던 날 연도진은 일을 마쳤고 본격적으로 김시연과 함께 나들이를 시작했다.그렇게 이틀 후인 금요일에 두 사람은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김시연은 곧바로 온하랑과 약속을 잡았고 이번 주 일요일에 부시아와 함께 그린 빌리지에 초대했다.하원 후 거실에서 숙제하고 있던 부시아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김시연이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별장이 몹시 궁금했다. 더원파트힐과 비슷하다는 건 알고 있으나 호기심은 줄어들 줄 몰랐고 외삼촌과 많이 닮은 김시연의 남편도 보고 싶었다.갑자기 울린 핸드폰 소리에 고개를 든 부시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안문희의 핸드폰을 보게 되었다. 아마도 쓰레기 버리러 나가면서 깜빡한 것 같다.부시아는 함부로 만지는 게 아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다. 벨소리가 끊기면서 잠금화면이 커졌고 위에는 부재중 전화 알림이 표시되었다.보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안문희의 핸드폰 잠금화면에는 장난기 가득한 남자애가 있었다.아마도 손자인듯싶다.‘어른들은 소중한 사람의 사진을 잠금화면이나 배경 화면으로 설정하는 건가?’순간 부시아의 머릿속에는 외삼촌의 잠금화면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찍은 그 사진 속 여학생이 김시연과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설마 시연 이모의 남편이 외삼촌은 아니겠지? 아니야, 삼촌은 중학교 때 필라시에 있었다고 하셨어. 그리고 정말 삼촌이 맞다면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그리고 아빠가 저번에 그냥 닮은 사람이라고 했잖아. 같은 사람이었으면 나한테 얘기했겠지.’부시아는 괜한 오해를 한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외삼촌이 좋아하는 사람은 시연 이모랑 닮았고, 시연 이모가 결혼한 사람은 외삼촌이랑 닮았네? 너무 공교롭잖아.’일요일
부승민이 입을 열려던 참에 부시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봤다.“아빠도 나빠요. 어떻게 숙모랑 시연 이모를 속일 수 있죠?”“그래서 지금 시아한테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잖아.”부승민은 웃으며 답했다.“그럼 제가 숙모랑 시연 이모한테 얘기할까요?”한참을 생각하던 부시아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괜히 제가 얘기해서 두 사람이 이혼하면 어떡해요?”“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아빠,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죠?”부시아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외삼촌을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부드럽고 상냥한 모습에서 좋은 사람일 거란 확신이 있었다.이상한 이엘리아와 달리 부시아는 김시연을 무척이나 좋아했다.‘시연 이모랑 찍은 중학교 때 사진을 지금까지 배경 화면으로 했다는 건 이모를 엄청 좋아하고 있다는 뜻인데... 잘못은 이엘리아 아줌마가 했잖아. 그런데 왜 외삼촌이 벌을 받는 거지?’부시아는 김시연도 이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진실을 알게 될 텐데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해쳤던 사람의 오빠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난 이제 어떡해야 하지?’부승민은 입꼬리를 올리며 놀렸다.“아빠를 나쁘다고 하던 게 누구였지?”부시아는 눈치를 살피더니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부승민은 이 일에 부시아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졌다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릴 게 분명하니까.이걸 감당해야 할 사람은 부시아가 아닌 어른들이다.“시아는 착한 어린이니까 아무한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거지?”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빠는 외삼촌이랑 시연 이모 사이에 시한폭탄이 놓여있다고 생각해. 그 폭탄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야. 하지만 시연 이모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면 더 괴롭지 않을까?”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연 이모가 스스로 모든 걸 알게 도와주는 거야.”“어떻게요?”부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일단은...”
부시아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연도진은 아무것도 모른척하는 부시아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별다른 티를 내지 않았다.고개를 숙여 부시아를 바라보자 아이는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온하랑과 부시아를 데리고 별장 투어를 마친 김시연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루하니 영화를 보는 게 어떠냐며 제안했다.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자 김시연은 도우미에게 과일과 간식거리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그렇게 네 사람은 소파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영화를 봤다.김시연은 계속 연도진만 바라보는 부시아가 귀여운 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시아야, 왜 계속 이모부만 쳐다봐?”부시아는 입안에 있던 용과를 꿀꺽 삼키고선 입을 열었다.“이모부가 우리 외삼촌이랑 엄청 닮았어요.”연도진은 흠칫 놀랐으나 애써 무덤덤하게 부시아를 바라봤다.부시아의 외삼촌은 이엘리아의 오빠이자 그녀를 데리고 번지점프 하러 갔던 그 남자다.“그래?”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지 김시연은 대뜸 연도진을 째려봤다.“우리 삼촌은 혼혈인데 엄청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요.”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성격이 좋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최대한 아이의 모든 말에 호응했다.‘번지점프 하러 데려간 그 인간이 성격이 좋을 리가 없지.’연도진이 예전에 했던 말처럼 어린아이와 친구들 앞에서 얼굴이 바뀌는 사람이 종종 있기 마련이다.영화가 시작되고 다들 줄거리에 대해 논의하던 중 부시아는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이 삼촌이랑 매우 닮았다며 또다시 언급했다.차분한 표정과 달리 김시연은 온하랑이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챘으면 하는 눈치였다.‘애를 잘못 키운 거 아니야? 시아가 그쪽 집안사람을 자주 만나면 안 된다고 했잖아. 봐봐, 애가 정신을 못 차리네.’부시아의 의도가 뭔지 알아챈 연도진은 전화를 받는다는 핑계로 자리를 비우더니 떠나기 전 부시아에게 눈빛을 보냈다.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부시아가 나오지 않자 자기 뜻을 이해하지 못한 줄 알고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짧은
부시아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그러니까 제 말은, 아저씨가 제 외삼촌이라고요!”아이의 말에 김시연과 온하랑의 시선이 모두 부시아에게 향했다.온하랑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시아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두 사람을 바라보던 부시아의 목소리가 어딘가 약해졌다.“아저씨가 외삼촌이고 외삼촌이 아저씨라고요.”김시연이 대꾸했다.“그게 말이 돼? 내가 분명 너희 외삼촌 목소리를 들어봤는데...”“그건 진짜 저희 외삼촌 목소리가 아니에요. 연도진이 진짜 제 외삼촌이라고요... 결혼식 날부터 의심스러웠는데 확신은 못 했어요. 그래서 직접 와서 보고 싶었던 거예요.”부시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시연 아줌마, 아저씨 여권 본 적 있어요? 여권 본명 보면 카이사르 윌슨이라고 돼 있을 거예요.”연도진은 강남으로 올 때 국적을 바꿔버렸다. 그렇게 지금 그에게는 M 국의 여권과 Z 국의 임시 거주증만 갖고 있었다.아이의 말에 온하랑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김시연을 바라보았다.연도진의 영어 이름이 카이사르인 것쯤은 온하랑도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연도진이 자신처럼 그저 해외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 그 뒤에 윌슨이라는 성까지 함께 붙어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김시연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그저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그녀도 연도진에게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신혼집 계약을 할 때도 김시연의 주민등록증을 사용했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하지만 김시연은 연도진의 여권도 본 적이 없었다.이것저것 떠올려보던 김시연은 점점 부시아의 말에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연도진은 이미 모든 것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예를 들어 김시연의 앞에서 이엘리아의 친오빠를 칭찬한다든가 하던 것도 사실은 본인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이엘리아가 김시연을 납치했다가 경찰서에 잡혀들어갔을 때도 연도진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었다.“연도진, 내가 이런 수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