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연은 한참 동안 머리를 굴리며 핑계를 생각했다.“그게... 방에 있는 이불도 잊지 말고 빨아달라고요. 시간 날 때마다 와서 잘 거예요.”“그걸 말이라고 하니?”“신혼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 모르죠? 그러지 말고 같이 별장에 들어가서 사실래요?”“그런 건 나중에 확인해도 늦지 않아. 그리고 신혼인데 둘만의 시간을 보내야지.”“뭐 어때요. 별장에 방이 엄청 많아요.”“아무튼 지금은 아니야. 너도 이제는 결혼했으니까 제멋대로 굴면 안 돼. 뭔가를 결정할 때는 도진이의 입장도 고려해 봐. 도진이는 분명히 너와 단둘이 살고 싶어 할 거야.”김시연은 죄책감에 시선을 돌렸다.그렇게 한참 동안 자질구레한 일을 캐물으며 시간을 끌다가 김연자가 귀찮은 듯 밖으로 내쫓자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방으로 돌아온 김시연은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내리더니 고개를 빼꼼 들이밀었다.안쪽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서재 문이 열려 있었다. 연도진은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팔을 올린 채 웃으며 물었다.“뭐 하는 거야? 누가 보면 도둑인 줄 알겠어.”김시연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남은 옷마저 정리했다.오후 4시쯤 두 사람은 별장으로 돌아왔다.이것저것 정리하던 김시연은 친구 허윤진이 보내온 카톡을 받았는데 친구들이랑 클럽에서 만나자는 내용이 담겨있었다.허윤진이 바로 토끼와 당근세트를 선물해 준 신부 들러리중 한 명이었고 아버지 친구의 딸이라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다.저택에서 겪었던 일이 떠오른 김시연은 연도진이 또 함부로 할까 봐 걱정되어 별장에 머물고 싶지 않았고 말 한마디만 남기고선 클럽으로 향했다.클럽에 도착한 김시연은 허윤진의 집중 공격을 당했다.“시연이 왔네? 결혼 생활은 어때? 관계에는 문제없지? 아참, 내가 준 선물은 써봤어?”허윤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밝고 활기찬 허윤진은 평소 일에만 몰두하여 남자 친구를 사귈 틈이 없었다. 외로움을 느낄 때는 주로 파트너를 찾아서 해결했고 달마다 사람을 바꿔가며 만났기에 그쪽으로는 경험이 아주
허윤진도 입을 열었다.“에이, 말도 안 돼. 도진 씨 엄청 신사적인 사람으로 보이던데?”“밖에서는 다 그렇지. 시연이가 술에 취해 누워있는데 그걸 참을만한 남편이 어디 있냐.”친구 한 명이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손목에 찬 시계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난 두 사람이 오늘 관계를 가진다에 시계를 건다.”유명 브랜드거나 한정판 시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1억의 가치는 있었다.“난 오늘 밤 안한다에 가방을 걸게.”허윤진은 오늘 들고온 아기자기한 핸드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난 잔다에 한 표.”또 누군가는 목걸이와 시계를 함께 걸었다.“난 안 잔다에 한 표.”그렇게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기에 참여하게 되었다.그 시각 술 취한 척 소파에 누워있던 김시연은 모든 대화를 듣게 되었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처음부터 작정하고 술이 먹이는 친구들의 모습에 차라리 취한척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껏 연기를 했던 것인데, 친구라는 인간들은 시답잖은 일로 내기를 하고 있으니 참 어이가 없었다.허윤진은 김시연이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수다 떨며 술을 마쳤다.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연도진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네. 들어오세요.”“그럼 실례하겠습니다.”연도진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허윤진은 피곤함에 찌든 연도진의 얼굴을 보고선 웃음이 나왔다.“죄송해요. 오랜만에 시연이를 만났더니 다들 기분이 좋은지 술을 많이 마셨어요.”“괜찮아요.”연도진은 소파에 누워있는 김시연에게 다가가더니 단숨에 그녀를 번쩍 안았다.“그럼 시연이랑 먼저 가보겠습니다.”“조심히 가세요.”그가 룸에 나서기 전에 두 사람이 오늘 밤 관계를 가진다에 한 표를 걸었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아참, 시연이가 실수로 옷에 술을 쏟았어요. 많이 끈적일 텐데 이제 꼭 갈아입혀 주세요.”“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연도진이 답했다.‘이것들이 다음에 걸리기만 해봐...’김시연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친구들은
“밖에서는 다 그렇지. 시연이가 술에 취해 누워있는데 그걸 참을만한 남편이 어디 있냐.”“아참, 시연이가 실수로 옷에 술을 쏟았어요. 많이 끈적일 텐데 이제 꼭 갈아입혀 주세요.”김시연은 순간 연도진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다.정말로 그가 신사적인 남자인지 아니면 보통 남자와 다를 바가 없는지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지만 호기심이 이미 이성을 지배해버렸다.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연도진은 어느새 그린 빌리지 지하 주차장에 차를 멈췄고 뒷좌석으로 다가와 그녀를 번쩍 안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김시연은 안방 침대 위에 눕혀졌고 곧이어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간거야? 윤진이의 말이 맞았네.’김시연은 실눈을 뜨고 재빨리 방안을 훑어보았다.‘정말 갔어?’서운함과 안도감의 동시에 밀려온 김시연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바로 그때 옷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김시연은 귀를 쫑긋 세웠다.‘뭐지? 설마 옷 찾는 거야? 갈아입혀 주려는 건 아니겠지?’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발소리가 다가오자 재빨리 눈을 감았다.날씨가 쌀쌀해진 10월 중순. 김시연은 롱스커트와 코트를 입고 나갔고 아래에는 스타킹과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연도진은 잠옷을 옆에 내려놓더니 침대 끝에 앉아 그녀의 신발을 벗겼다.그 후 침대에 다리 한쪽을 걸치고선 김시연의 코트를 벗겨주었고 곧이어 스커트의 단추를 풀었다.김시연은 심란한 마음에 온몸이 경직되었고 불길한 예감이 밀려와 연도진의 행동에 호기심을 가진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아니야... 분명히 나한테 옷 입혀줄 거야.’‘연도진, 얼른 입혀주지 않고 뭐 하는 거야!’김시연은 발가벗겨진 듯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연도진의 시선이 느껴졌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부 벗겨진 게 맞았다.지금 눈을 뜬다면 더욱 난처한 상황이기에 김시연은 계속 잠든 척 하기로 마음먹었다.연도진이 옷을 입혀주는 걸 기다리는수밖에...그런데 그때 쇄골에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며
곧이어 연도진은 구멍 난 스타킹과 속옷을 벗겼다.김시연은 쿵쾅거리는 가슴과 함께 눈을 꼭 감은 채 조용히 연도진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그리고 그녀는 욕실로 향하는 연도진의 발소리를 들었고 바로 물소리도 들려왔다.‘생각보다 깨끗하네.’2분 후 물소리가 멎고 연도진이 욕실에서 나왔다.다시 숨을 죽인 김시연은 조마조마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문득 차가운 촉감이 하체에서 느껴졌고 예상못한 상황에 몸을 부들부들 떨던 김시연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뻔했다.뒤늦게 그녀는 연도진이 수건으로 자신을 닦아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다 닦고 나니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이 들렸다.‘드디어 옷을 벗는 건가?’기대와 달리 연도진은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힌 후 잠옷을 집어 들고 앞뒷면을 확인하고선 입혀주었다.그뿐만 아니라 조심스럽게 이불까지 덮어줬다.‘뭐야? 이게 끝이야? 뭘 기대했던 거지?’허무함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느껴지자 김시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발가벗고 있는데도 그냥 간다고? 내 몸매가 그렇게 별로인가? 기분이 너무 불쾌하네. 설마 지금 날 갖고 노는 거야?’김시연은 화를 삭히지 못하고 씩씩거렸다.그 사이 욕실로 갔던 연도진은 클렌징 티슈를 들고나오더니 김시연의 화장을 지워줬다.그 시각 김시연은 이불 밑으로 침대 시트를 꽉 쥔 채 애써 분노를 삼켰다.화장을 지운 후 연도진은 그녀의 얼굴에 에센스를 발라주고선 조용히 안방을 나갔고 순간 방안은 조용해지며 정적이 흘렀다.그제야 실눈을 뜬 김시연은 연도진이 완전히 나간 걸 확인하고선 착잡한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몸을 뒤척이며 자세를 바꾸던 중 갑자기 방문이 다시 열렸다.김시연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고 눈을 감은 채 자는척했다.‘왜 또 들어온 거야.’발소리와 함께 침대 옆으로 다가온 그는 쿵 하며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뭔가를 올려놓고 다시 나갔다.눈을 뜨고 보니 옆에는 텀블러가 놓여있었다.‘센스는 있네.’김시연도 마침 목이 말랐다.다음 날 아침 일찍
김웅은 연도진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며칠 뒤 회식 자리에서 네츠인 식품공장 담당자는 대표의 지시를 받았고 앞으로 계속 협력해도 문제없을 거라는 말을 전했다.그 소식을 듣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던 김웅은 곧바로 연도진과 김시연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식사 전 김연자와 김시연은 방에서 수다를 떨다가 또 여행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그럼 콘서트 일은 이제 다 끝난 거지? 너희는 언제 여행 갈 거야?”김시연은 곧바로 답했다.“도진이가 요즘에 많이 바빠요. 그래서 내년 봄쯤에 가기로 결정했어요.”“괜찮네.”거짓말이 들통날까 봐 걱정되었던 김시연은 기회를 엿봐서 연도진에게 말했다.“엄마가 물어보면 요즘 바쁘다고 답해. 내가 엄마한테 내년 봄쯤에 여행 갈 거라고 했으니까 너도 그렇게 말하고.”연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역시나 예상대로 식사 자리에서 김연자는 연도진의 일에 대해 물었다.“새로운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어서 시간이 아예 없네요. 나중에 여유가 될 때 가야죠.”김시연은 연도진을 힐끗 쳐다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연도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현지 답사하러 다움시로 출장 갈 거예요.”며칠 전에는 김시연이 콘서트 때문에 시간이 없었고 이제는 연도진이 또 출장을 간다고 하니 김연자는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게 답답했다.김연자는 기분이 언짢은 듯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시연이랑 같이 가는 건 별로야?”“안 그래도 얘기했는데 싫다고 하더라고요.”김시연은 테이블 밑으로 그의 다리를 세게 꼬집었다.‘언제 나한테 얘기했어!’김연자는 곧바로 김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요즘 스케줄도 없잖아. 왜 싫다고 했어?”신혼부부라면 같이 붙어있고 싶기 마련이다.“저... 며칠 뒤에 제의시로 출장 가요.”김시연은 머리를 쥐어짜 내 그럴듯한 변명을 얘기했다.“다움에서 바로 가도 되잖아?”“메이크업 박스랑 옷도 챙겨야 해서 번거로워요.”“어시스턴트랑 같이 가면 되겠네.”
온하랑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그래? 생긴 게 비슷할 수도 있지.”부시아의 외삼촌 측 이엘리아의 오빠는 분명히 혼혈이다. 연도진은 코가 높고 눈망울이 깊어 외국인과 비슷한 느낌이었기에 두 사람의 눈매가 닮아있으니 부시아가 오해할 만도 하다.부시아는 외삼촌도 어차피 한국에 계시니 시간을 내어 다 같이 밥이라도 먹고 싶었다. 그러나 외삼촌이 온하랑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고개를 저었다.“뭐가 비슷한데?”통화 중이던 부승민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물었다.부시아는 그가 외삼촌을 만난 적 있고 김시연의 결혼식에 직접 갔으니 분명히 알 거라고 생각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아빠, 외삼촌이랑 시연 이모 남편분이 엄청 닮은 것 같지 않아요?”부승민은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닮은 것 같다니? 그냥 연도진이잖아.’그는 온하랑과 부시아를 번갈아 봤다. 답을 기다리는 듯 나란히 앉아 눈을 반짝이는 두 사람의 표정이 너무 닮아있어 부승민은 부시아가 그들의 딸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아빠?”정신을 차린 부승민은 의자를 끌어당기며 온하랑의 옆에 앉았다.“많이 비슷해.”말하면서 그는 온하랑과 부시아의 표정을 관찰했다.혼자만의 착각인 줄 알았는데 부승민의 답을 듣자 확신이 생겼다.“전 같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온하랑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에 차분한 표정이었다.두 사람은 김시연의 남편인 연도진이 이엘리아의 오빠인 카이사르와 동일 인물임을 모르고 있었다.온하랑은 ‘카이사르’를 만난 적이 없고 부시아는 ‘연도진’을 만난 적이 없다.그렇게 오해는 더 큰 오해를 불러봤다.‘설마 의도적으로 숨긴 건 아니겠지?’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긴 부승민은 연도진이 일부러 숨겼을 거라고 확신했다.김시연의 성격상 이엘리아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싫어했을 텐데 그녀의 오빠와 결혼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순간 첫 만남에 연도진의 혼혈 여부를 의심했을 때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하던 김시연의 모습이 떠올랐
정체가 폭로되는 건 시간문제이기에 이 거래가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부승민은 연도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시아가 먼저 이 일을 알게 된다 한들 도진 씨에게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도진 씨는 리스크를 최소화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잖아요. 전 이 타이밍에 공교롭게 출장 가는 게 우연이 아닌 것 같거든요. 시연 씨가 도진 씨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예상하죠?”김시연의 성격상 단번에 계약을 파기하여 ‘이혼’을 할 것이고 본인을 속였다는 이유로 평생 원망하고 증오하며 다시는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부승민의 예상대로 이번 출장은 연도진이 계획한 일이다. 시간을 최대한 끌어 김시연이 충격을 덜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그런데 이 계획을 부승민이 알아차릴 줄 몰랐다. 듣기 좋은 말로 거래지 실제로는 협박이나 다름없다.연도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역시 대표님은 대단하시네요. 좋아요. 그 제안 받아들이죠.”“약속한 대로 꼭 해주셨으면 좋겠네요.”“대표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출장 간 일주일 사이에 그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최악의 상황은 부시아가 우연히 김시연 남편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외삼촌의 한국 이름과 똑같은 게 너무 신기하여 온하랑에게 털어놓는 순간 김시연까지 바로 알게 된다.“당연하죠. 그럼 잘해봅시다.”“좋아요.”...다음 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다움시에 도착한 연도진과 김시연은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했다.김시연은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고 연도진은 협력사 프로젝트 리더의 초대를 받아 함께 식사를 했다.점심을 먹은 후 김시연은 소파에 누워 이것저것 여행 가이드를 찾아봤다.이왕 온 김에 제대로 놀고 싶었던 김시연은 어젯밤 밤새 계획을 짰고 오늘은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자연 명소 관광지를 둘러볼 생각이었다.예정대로라면 오늘 연도진도 스케줄이 없어서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런데 협력사의 담당자가 계속 서두르는 바람에 갑자기 약속이 생겼고 호텔에서
“궁금해하지 말고 얼른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 안 나갈 거야?”김시연은 연도진의 등을 밀쳤고 어쩔 수 없이 침실로 들어간 그는 투덜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나한테 준 선물인데 그걸 못 보게 하는 게 말이 되냐?”김시연은 선물 상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쓰레기인 척 실수로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티가 났다.외출이 더 급급했던 김시연은 돌아와서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혹시라도 연도진이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을까 싶어 재빨리 선물 상자를 방에 숨겼고 기회를 엿봐서 저녁에 버리려고 했다.연도진이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실에서 나왔을 땐 테이블에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고 김시연은 소파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연도진도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선 별다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가자.”“응.”김시연은 핸드폰을 끄고 몸을 일으켰다.이미 쌀쌀해진 강남과 달리 겨울의 휴양지라고 불리는 다움시는 여전히 봄처럼 따뜻했다.두 사람은 계획대로 일단 자연 명소로 향했다. 도심에 위치한 곳인데도 작은 뜰과 건물이 매우 고풍스러웠고 옛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한옥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실제 그곳에 사는 사람도 있어서 길가 곳곳에 조용히 관광하라는 팻말로 놓여있었다.연휴가 지나서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고 다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었다.심지어 그들은 이곳에서 웨딩촬영하는 커플도 만났다.김시연은 핸드폰으로 수십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중에는 자연 풍경과 셀카도 있었는데 연도진이 찍어준 사진들도 꽤 있었다.촬영 스폿에 도착하자 연도진은 길가는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연도진의 손에서 반지를 포착한 아주머니는 너스레웃음을 지으며 칭찬을 퍼부었다.“너무 잘 어울리는 커플이네요. 자, 웃어볼까요?”곧바로 미소를 짓는 연도진과 달리 김시연은 본능적으로 잘못된 말을 바로잡고 싶었다.“저희는 그런 사이가...”말하다가 문득 연도진과 ‘결혼’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가짜여서 그런지 아직 익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