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은 방음이라도 되는지, 전지는 소리를 듣지못한 채 계속해서 샤워를 이어갔다. 곧이어 진몽요의 방카드를 빼앗은 경호원들에 의해 문이 열리고, 문이 열리며 마주한 목정침의 눈은 설원과도 같았다. 잘못한 일은 없었으나 그의 눈빛에 겁먹은 온연은 뒷걸음질 칠수밖에 없었다. 막 경호원의 견제에서 벗어난 진몽요가 온연의 앞에 서 그를 막아섰다.“목정침, 나도 당신처럼 급하니까 할 말 있으면 좋게 말하고 끝내요. 그 전에, 이 상황에 대해서는 전지가 나오면 차근차근 들어보는 걸로 하죠? 연이는 이런 행동할 사람이 아니고, 전지 또한 그럴 사람 아니에요!”“…… 무슨 일이야?”전지가 마침내 바깥의 상황이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문 밖으로 나왔고, 방 안에 갑자기 늘어난 사람들에 당황한듯 말을 했다. 목정침의 눈빛은 더욱 차갑게 식었고, 진몽요는 퉁명스레 대꾸했다.“나한테 묻는 거야? 누구한테 묻는 건데 지금?”전지는 급히 설명한다.“내가, 일이 있어서… 온연을 찾았어. 호텔에 막 도착해 저녁을 먹다가 옷에 음식을 쏟아버려서, 그래서 샤워를……”“적당히 하지? 핑계가 지나치네.”전지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목정침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 더 이상 설명하기도 입이 아픈 듯 전지는 진몽요를 쳐다보며 말했다.“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너를 속이고 있다고?”진몽요는 그를 한번, 온연을 한번 쳐다보고서는 몇 초간을 망설였다. 이내 무슨 말을 하려 입을 여는 순간, 전지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됐어, 그만하자. 네 뜻대로 생각해.”목정침은 온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무언가 손짓을 하더니 그대로 돌아 나갔다. 곧이어 두명의 경호원이 온연에게 다가와 그녀를 밖으로 이끌었다. 굳이 그녀를 거칠게 끌어내지 않았다. 마치 목정침은 원래도 이렇게나 온연을 믿지 않아왔다는 듯, 그녀가 원래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여자인 것 마냥. 돌아가는 길, 목정침의 얼굴은 무섭도록 어두웠다. 온연은 눈을 내리깔고는 침묵 한 채였다. 굳이 이를 해
온연은 아무 말없이 타올만 움켜쥐었다. 눈을 감고 그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차라리 안보기라도 한다면 조금이나마 덜 무서울 것 같았다. 목정침의 시선은 이내 온연의 어깨 위 흉터로 향했다. 그 때문에 생긴 상처였지만 그는 오히려 비웃음을 흘렸다.“정말 역겹다, 너.”목정침은 그대로 떠났다. 그녀에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는 이전의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는 달랐다. 방문이 거칠게 차였다. 온연은 영혼 없는 꼭두각시 마냥 침대 가장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온연은 밤새 눈을 붙이지 못했다. 더 이상 만취한 목정침을 데려가라는 전화도 없을 것이며, 술에 취한 목정침이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고양이처럼 그녀를 간지럽히는 일도 없을 것이다.아침 8시, 유씨 아주머니가 방문을 두드리고는 들어섰다.“연아, 안자고 있지? 일어나서 뭐라도 먹지 그래? 도련님이랑… 무슨 일 있는 거야?“안 먹어도 돼요. 괜찮아요.”온연은 이불을 꼭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유씨 아주머니는 한숨을 폭 내쉬었으나,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때, 온연의 핸드폰이 울려 대기 시작했다. 굳이 받기 싫었으나 시끄러운 벨소리에 짜증이 난 온연은 힘없이 핸드폰을 들어올리고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곧이어 진몽요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연아, 괜찮아? 나랑 전지는 얘기 잘 끝냈어. 애초에 너희들 의심하지도 않았고… 목정침이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건 아닌지 걱정돼서.”“아니야, 난 괜찮아.”온연이 머뭇대다 대답했다. 어딘가 안좋은듯한 목소리에 진몽요는 걱정스러운 투로 되물었다.“목이 쉰 것 같은데? 감기 걸린 거 아니야?”온연은 코로 호흡을 들이쉬었다. 이미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상태였다.“그런 것 같네, 괜찮아. 나 먼저 끊을게.” 어젯밤 찬물을 맞은 탓에 온몸이 나른하고 정신이 몽롱했다. 전화를 끊고 흐릿한 정신으로 잠이 들었다. 다시 온연이 눈을 뜨자, 그 곳은 병원이었다. 병원의 소독 냄새는 여전했다. 소독 냄새는 이상한 중
온연은 그 일에 대하여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찌 그녀를 믿겠는가? 처음부터 그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유씨 아주머니는 마음이 쓰였으나 별 다른 수가 없었기에 아쉬울 뿐 이였다. 밤이 깊었음에도 유씨 아주머니는 병원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온연은 집에 가서 쉴 것을 강요하며 그녀를 돌려보냈다. 오래 있어봤자 하루 있을 것이고 고작 감기일 뿐이라 혼자서도 문제없었다.낮에 잠을 오래 잔 탓인지 온연은 쉽게 잠들지 못하였다. 병상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병실 밖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당신 거기서 뭐하는거야?!”놀란 온연이 눈을 번쩍 떴다. 병실의 작은 창으로 사람의 얼굴이 황급히 지나갔다. 도대체 누가, 왜 훔쳐본것이지? 온연은 이곳에 잠시도 더 있을 수 없었다. 짐을 모두 챙겨 환자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병원을 나왔다. 퇴원 수속도 진행하지 않았다.저택으로 돌아오니, 만물이 고요한 상태였다. 정원의 가로등과 대문의 등불만이 반짝였다. 목정침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온연은 그녀의 방으로 돌아와 이불로 몸을 감쌌다.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역시, 집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마력이 있는 듯하였다.그 시각 병원.긴 그림자가 온연이 머물던 병실 앞에 멈춰 섰다. 늘씬한 손으로 병실의 문을 열었으나 병상은 이미 비어 있는 상태였다. 남자는 간호사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23호 침대 환자, 어디로 간거야?!”남자의 얼굴이 다소 냉담해지자 놀란 간호사가 그제야 놀란 듯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남자는 냉한 어투로 소리쳤다.“당장 CCTV 확인해봐!”그 후 네 시간쯤 지났을까, 목정침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택에 들어섰다. 이미 시간은 아침 여섯시가 다되었고, 온연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유씨 아주머니와 그가 마주쳤다.“도련님? 이제 돌아오신거에요?”목정침은 옅은 ‘응.’ 소리를 내뱉은 후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침대 위 곤히 잠들어 있는 그림자를 마주하
온연은 손에 들린 숟가락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을 휘저었다. 아주머니의 제안에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목정침이 어젯밤 자신을 그토록 오래 찾은 것은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까? 그녀는 결코 자신이 그의 행동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그에게 무릎을 꿇으며 간청할지라도 그는 그저 혐오감을 내비치고 말 것이다.기사는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목정침은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는 않았으나 설 전 마지막 날을 맞아 초등학교에 기부를 하는 행보를 보였다. 온연은 새 기사들을 뒤적거리다 뜻밖의 최신 게시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몰래 찍힌 사진으로, 병실 밖 그 사람이 불법촬영을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진 속 온연은 침대에 누워 창백한 얼굴을 한 채였다. 기사의 내용 전체는 목정침의 가정폭력으로 그녀가 입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이전 그의 따뜻한 성품이 진실인지 구설수에 올랐다.온연은 반박하는 댓글을 써내려 갔으나 곧 그녀의 댓글은 네티즌들에 의해 뒤덮이고 말았다. 목정침의 사람됨은 남에게 감히 지탄받은 적이 없었는지 사람들의 반응은 반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그때 한 아이디가 온연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되려 악플러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댓글은 욕설이 섞여 있음에도 왜 인지 귀엽기까지 했다. 온연의 기억이 맞다면 이 아이디는 진몽요의 것이다. 기사가 터진 후에도 딱히 진몽요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말 해줄 필요도 없을 듯했다.다가오는 설을 맞아 입구를 꾸미던 때였다. 유씨 아주머니는 온연의 손에 들린 꾸밀 것을 받아 들었다.“연아. 내가 할게. 아직 다 낫지도 않았으니 가서 쉬어. 도련님께 전화도 한번 드려보고.”온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열 살 터울인 목정침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과 달리 그는 몇 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고, 온연은 마음을 다잡으
”그게 무서운 거라면 오지 않아도 돼.”“아니야~”목정침의 썰렁한 목소리와는 반대로 강연연이 앙탈을 부리며 대꾸했다.온연을 한 번 쳐다보고는 하려던 말을 멈춘 임집사는 목정침을 마중나섰다.“오셨습니까.”목정침은 ‘응.’ 한마디를 하고는 임집사에게 물었다.“집에 돈은 좀 보내드렸나?”“예, 보내 드릴 건 다 보내 드렸습니다.”목정침은 카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 주었다.“이건 임집사 몫이야. 이번해도 수고했어.”“당연히 해야 할 일 입니다.”목정침의 하인들은 모두 대범했고, 임집사는 이를 사양하지 않았다. 매년 이래왔다.음식들이 곧 상에 올랐고 목정침은 강연연을 데리고 식탁에 앉았다. 온연은 고개를 내리깔고 굳이 그들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으나 하필이면 그들은 온연의 맞은편에 자리하였다. 가까이 붙어 앉은 그들의 모습은 마치… 남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언니,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해외로 휴가를 가셨거든요. 혼자 심심하게 있기 싫어서 오빠랑 같이 왔어요, 괜찮죠?” 큼지막한 다이아가 박힌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강연연의 얼굴에는 도발적인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온연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내가 상관할 일 아니잖아.”강연연은 못마땅했다. 본인이 원하던 온연의 표정이 아니였다.“언니,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봐요……”안 좋은 일? 온연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문득 눈을 들어올려 강연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대범한 미소를 띄운 채였다.“아니, 나 기분 좋아. 이전에는 집에 사람도 없고 썰렁했는데, 오늘은 좀 다르네.”강연연의 얼굴이 곧 굳어졌다. 온연이 이렇게나 무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번 쏘아붙이려는 순간 목정침이 벌떡 일어나 싸늘하게 말했다.“입맛이 없네. 난 서재로 가있을게.”강연연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고, 목정침이 자리를 뜨자 그녀의 태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온연, 너 잘 참아내네? 그게 아니면 오빠한테 그냥 관심이 없는건가? 넌
강연연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목정침의 이런 모습은 그녀에게 낯설었다. 그녀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온연은 목정침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목정침 또한 이해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면서, 그들의 재결합은 또 원하지 않는 다니. 그저 체면을 지키기 위함일까?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영원히 그의 애인으로서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꿈에서까지 목부인의 자리를 꿈꿔왔는데, 온연은 이 자리를 쉽게 얻은 것도 모자라 아까워할 줄도 몰랐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강연연의 마음이 뒤틀리는 듯하였다.강연연은 목정침이 집안에서 바쁜 틈을 타 그의 방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온연의 실크 잠옷까지 걸쳐입었다. 마치 이 집의 여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임집사를 찾았다.“당장 객실 준비 해줘야지?”임집사는 가만히 서서 온연을 바라보았다. 온연은 소파에 앉아 잡지를 넘기며 말했다.“가보세요.”임집사는 온연의 말이 끝나자 하인을 불러 방을 마련하게 했고, 강연연이 그런 임집사를 노려보며 입을 뗐다.“딱 개 수준이네. 눈치 볼 줄만 알지, 눈치 챌 줄은 모르잖아? 앞으로 누가 이곳의 안주인이 될지 몰라?”온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강연연, 말 좀 바르게 못해?”강연연이 퉁명스레 대꾸한다.“왜? 네가 나한테 뭐 어쩔 수 있는데? 정침 오빠가 왜 나를 그믐밤에 데려왔는지 아직도 못 깨달았어? 지금 마련한 객실, 널 위해 마련한거야.”온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잡고 있던 잡지 한부분이 구겨 들어갔다.“그래, 네가 여기서 목정침이랑 밤을 보내도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 근데, 여기 안주인이 되기 전에 똑똑히 알아 둬. 목정침은 떠벌려대는 성격 싫어해. 특히, 위세부리는 사람은 더.”“너보다 내가 오빠를 더 잘 알아! 네가 오빠랑 오래 지냈다고 해서 오빠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넌 죄인의 딸이야. 네 아버지가 오빠의 부모님을 죽였어, 오빠가 널 곁에 둔 건 널 벌주기 위해서야!” 제
온연은 위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정침의 방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임집사는 그런 그녀가 반응할 새도 없이 방문을 열어 젖혔다. 반사적으로 눈을 피하려고 하였다. 만약 여기서 무언가 선정적인 장면을 마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도련님, 사모님께서 몸이 안 좋으십니다. 쉬셔야하니 바깥분께서는 객실로 이동해 주셔야 할 듯합니다.”임집사의 말투는 위엄을 나타내는 듯하였다. 목정침은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담담한 채 온연을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연연이 임집사에 쏘아붙였다.“누구더러 바깥사람이래?! 오빠 지금 담배 피우고 있잖아요? 몸이 안 좋으시면 객실에서 주무세요. 언니, 어떠세요?”온연은 대꾸없이 그저 목정침을 쳐다볼 뿐이었다. 임집사가 온연을 방 더 안쪽으로 향하도록 살짝 밀쳐내었고, 온연은 자신이 계속 이렇게 억울하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혼하기 전까지 넌 이 방에서 잘 자격이 없으니 네가 나가도록 해.”강연연은 입술을 삐죽이더니 목정침의 뒤로 가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애교를 부려댔다.“오빠~ 전 그래도 언니 위해서 한 말인데, 언니 얘기하는 것 좀 들어보세요.”목정침은 손에 쥔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는 얇은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객실로 가.”강연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들으셨죠? 오빠가 객실로 가라고 하시네요.”임집사는 본래 남의 일에 참견하기 싫어했으나 참을 수 없었는지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열 찰나였다. 목정침이 다시금 말했다.“너 말이야.”강연연이 한껏 굳어진 기색으로 어색한듯 애교를 부려왔다.“어떻게 그래요~ 혼자 자기 무섭단 말이에요. 같이 자요, 네?”목정침은 그런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일어서서 실소를 내뱉으며 말했다.“네가 세 살짜리 아이라도 되나?”그 말을 들은 강연연은 바람이 빠진 공이라도 되는 냥 심드렁히 자리를 떴고, 입구를 나서면서 온연과 일부러 부딪히기까지 했다. 그와 함께 임집사는
온연의 침묵은 목정침에게 긍정으로 여겨진 듯하다. 그의 눈 밑 노여움은 더욱 짙어졌고, 주먹을 쥐었다 풀더니 결국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얼마 있지 않아 차 한 대가 저택을 떠나는것을 확인하였고 온연은 침대를 등지고 차가운 바닥에 앉았다. 무릎을 끌어안고는 얼굴을 파묻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외로움이 조금이라도 덜 해질 것 같았다.유씨 아주머니는 3일이 지난 후 돌아오셨다.“연아, 어떻게 도련님은 설에 출장을 가셨다니? 너도 아무 말없고… 일은 조금 쉬엄쉬엄 했어도 돼잖아, 너 혼자 얼마나 썰렁했겠어……”대꾸 없이 그저 쇼파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갑자기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임립이 보낸 설 축하 메시지였다. 그저 웃는 이모티콘을 하나 보내고는 곧 사직서를 첨부하여 전송하였다. 핸드폰을 툭 내려놓고는 잡지로 시선을 돌렸다. 내일 해성에서 그림 전시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온연은 가고 싶었고, 이미 가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여행하고 싶었다. 유씨 아주머니께는 외출한다고만 말하였다. 그녀가 몇 일 만에 돌아올지도 모른 채 유씨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마음을 잘 추스리라 하고는 별 말이 없었다.온연은 옷이 많지 않았다. 트렁크 속 짐은 옷 두벌이 다였고, 이렇게 떠나면 거의 전재산을 챙겨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에 올라탄 후에는 핸드폰을 아예 꺼버렸다. 이렇게 마음대로 집을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좋아하는 것을 쫓고 싶었다. 하물며 목정침도 그녀를 찾지 않을 테니까……해성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은 상태였다. 온연은 호텔을 예약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전시회에 관한 잡지를 꺼내 기본적으로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었다.온연의 사직은 갑작스러웠으나,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인생은 짧다, 끝까지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날이 밝아왔고, 온연은 하루 종일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그림에 대한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