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연은 그 일에 대하여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찌 그녀를 믿겠는가? 처음부터 그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유씨 아주머니는 마음이 쓰였으나 별 다른 수가 없었기에 아쉬울 뿐 이였다. 밤이 깊었음에도 유씨 아주머니는 병원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온연은 집에 가서 쉴 것을 강요하며 그녀를 돌려보냈다. 오래 있어봤자 하루 있을 것이고 고작 감기일 뿐이라 혼자서도 문제없었다.낮에 잠을 오래 잔 탓인지 온연은 쉽게 잠들지 못하였다. 병상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병실 밖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당신 거기서 뭐하는거야?!”놀란 온연이 눈을 번쩍 떴다. 병실의 작은 창으로 사람의 얼굴이 황급히 지나갔다. 도대체 누가, 왜 훔쳐본것이지? 온연은 이곳에 잠시도 더 있을 수 없었다. 짐을 모두 챙겨 환자복을 갈아입지도 않은 채 병원을 나왔다. 퇴원 수속도 진행하지 않았다.저택으로 돌아오니, 만물이 고요한 상태였다. 정원의 가로등과 대문의 등불만이 반짝였다. 목정침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온연은 그녀의 방으로 돌아와 이불로 몸을 감쌌다.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었다. 역시, 집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마력이 있는 듯하였다.그 시각 병원.긴 그림자가 온연이 머물던 병실 앞에 멈춰 섰다. 늘씬한 손으로 병실의 문을 열었으나 병상은 이미 비어 있는 상태였다. 남자는 간호사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23호 침대 환자, 어디로 간거야?!”남자의 얼굴이 다소 냉담해지자 놀란 간호사가 그제야 놀란 듯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남자는 냉한 어투로 소리쳤다.“당장 CCTV 확인해봐!”그 후 네 시간쯤 지났을까, 목정침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택에 들어섰다. 이미 시간은 아침 여섯시가 다되었고, 온연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유씨 아주머니와 그가 마주쳤다.“도련님? 이제 돌아오신거에요?”목정침은 옅은 ‘응.’ 소리를 내뱉은 후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침대 위 곤히 잠들어 있는 그림자를 마주하
온연은 손에 들린 숟가락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을 휘저었다. 아주머니의 제안에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목정침이 어젯밤 자신을 그토록 오래 찾은 것은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까? 그녀는 결코 자신이 그의 행동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그에게 무릎을 꿇으며 간청할지라도 그는 그저 혐오감을 내비치고 말 것이다.기사는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목정침은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는 않았으나 설 전 마지막 날을 맞아 초등학교에 기부를 하는 행보를 보였다. 온연은 새 기사들을 뒤적거리다 뜻밖의 최신 게시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몰래 찍힌 사진으로, 병실 밖 그 사람이 불법촬영을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진 속 온연은 침대에 누워 창백한 얼굴을 한 채였다. 기사의 내용 전체는 목정침의 가정폭력으로 그녀가 입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이전 그의 따뜻한 성품이 진실인지 구설수에 올랐다.온연은 반박하는 댓글을 써내려 갔으나 곧 그녀의 댓글은 네티즌들에 의해 뒤덮이고 말았다. 목정침의 사람됨은 남에게 감히 지탄받은 적이 없었는지 사람들의 반응은 반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그때 한 아이디가 온연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되려 악플러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댓글은 욕설이 섞여 있음에도 왜 인지 귀엽기까지 했다. 온연의 기억이 맞다면 이 아이디는 진몽요의 것이다. 기사가 터진 후에도 딱히 진몽요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말 해줄 필요도 없을 듯했다.다가오는 설을 맞아 입구를 꾸미던 때였다. 유씨 아주머니는 온연의 손에 들린 꾸밀 것을 받아 들었다.“연아. 내가 할게. 아직 다 낫지도 않았으니 가서 쉬어. 도련님께 전화도 한번 드려보고.”온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열 살 터울인 목정침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과 달리 그는 몇 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고, 온연은 마음을 다잡으
”그게 무서운 거라면 오지 않아도 돼.”“아니야~”목정침의 썰렁한 목소리와는 반대로 강연연이 앙탈을 부리며 대꾸했다.온연을 한 번 쳐다보고는 하려던 말을 멈춘 임집사는 목정침을 마중나섰다.“오셨습니까.”목정침은 ‘응.’ 한마디를 하고는 임집사에게 물었다.“집에 돈은 좀 보내드렸나?”“예, 보내 드릴 건 다 보내 드렸습니다.”목정침은 카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 주었다.“이건 임집사 몫이야. 이번해도 수고했어.”“당연히 해야 할 일 입니다.”목정침의 하인들은 모두 대범했고, 임집사는 이를 사양하지 않았다. 매년 이래왔다.음식들이 곧 상에 올랐고 목정침은 강연연을 데리고 식탁에 앉았다. 온연은 고개를 내리깔고 굳이 그들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으나 하필이면 그들은 온연의 맞은편에 자리하였다. 가까이 붙어 앉은 그들의 모습은 마치… 남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언니,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해외로 휴가를 가셨거든요. 혼자 심심하게 있기 싫어서 오빠랑 같이 왔어요, 괜찮죠?” 큼지막한 다이아가 박힌 반지를 만지작거리는 강연연의 얼굴에는 도발적인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온연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내가 상관할 일 아니잖아.”강연연은 못마땅했다. 본인이 원하던 온연의 표정이 아니였다.“언니,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봐요……”안 좋은 일? 온연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문득 눈을 들어올려 강연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대범한 미소를 띄운 채였다.“아니, 나 기분 좋아. 이전에는 집에 사람도 없고 썰렁했는데, 오늘은 좀 다르네.”강연연의 얼굴이 곧 굳어졌다. 온연이 이렇게나 무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듯 다시 한번 쏘아붙이려는 순간 목정침이 벌떡 일어나 싸늘하게 말했다.“입맛이 없네. 난 서재로 가있을게.”강연연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고, 목정침이 자리를 뜨자 그녀의 태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온연, 너 잘 참아내네? 그게 아니면 오빠한테 그냥 관심이 없는건가? 넌
강연연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목정침의 이런 모습은 그녀에게 낯설었다. 그녀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온연은 목정침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목정침 또한 이해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행동하면서, 그들의 재결합은 또 원하지 않는 다니. 그저 체면을 지키기 위함일까?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영원히 그의 애인으로서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꿈에서까지 목부인의 자리를 꿈꿔왔는데, 온연은 이 자리를 쉽게 얻은 것도 모자라 아까워할 줄도 몰랐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강연연의 마음이 뒤틀리는 듯하였다.강연연은 목정침이 집안에서 바쁜 틈을 타 그의 방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온연의 실크 잠옷까지 걸쳐입었다. 마치 이 집의 여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임집사를 찾았다.“당장 객실 준비 해줘야지?”임집사는 가만히 서서 온연을 바라보았다. 온연은 소파에 앉아 잡지를 넘기며 말했다.“가보세요.”임집사는 온연의 말이 끝나자 하인을 불러 방을 마련하게 했고, 강연연이 그런 임집사를 노려보며 입을 뗐다.“딱 개 수준이네. 눈치 볼 줄만 알지, 눈치 챌 줄은 모르잖아? 앞으로 누가 이곳의 안주인이 될지 몰라?”온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강연연, 말 좀 바르게 못해?”강연연이 퉁명스레 대꾸한다.“왜? 네가 나한테 뭐 어쩔 수 있는데? 정침 오빠가 왜 나를 그믐밤에 데려왔는지 아직도 못 깨달았어? 지금 마련한 객실, 널 위해 마련한거야.”온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잡고 있던 잡지 한부분이 구겨 들어갔다.“그래, 네가 여기서 목정침이랑 밤을 보내도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 근데, 여기 안주인이 되기 전에 똑똑히 알아 둬. 목정침은 떠벌려대는 성격 싫어해. 특히, 위세부리는 사람은 더.”“너보다 내가 오빠를 더 잘 알아! 네가 오빠랑 오래 지냈다고 해서 오빠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넌 죄인의 딸이야. 네 아버지가 오빠의 부모님을 죽였어, 오빠가 널 곁에 둔 건 널 벌주기 위해서야!” 제
온연은 위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정침의 방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고, 임집사는 그런 그녀가 반응할 새도 없이 방문을 열어 젖혔다. 반사적으로 눈을 피하려고 하였다. 만약 여기서 무언가 선정적인 장면을 마주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도련님, 사모님께서 몸이 안 좋으십니다. 쉬셔야하니 바깥분께서는 객실로 이동해 주셔야 할 듯합니다.”임집사의 말투는 위엄을 나타내는 듯하였다. 목정침은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담담한 채 온연을 힐끗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연연이 임집사에 쏘아붙였다.“누구더러 바깥사람이래?! 오빠 지금 담배 피우고 있잖아요? 몸이 안 좋으시면 객실에서 주무세요. 언니, 어떠세요?”온연은 대꾸없이 그저 목정침을 쳐다볼 뿐이었다. 임집사가 온연을 방 더 안쪽으로 향하도록 살짝 밀쳐내었고, 온연은 자신이 계속 이렇게 억울하게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혼하기 전까지 넌 이 방에서 잘 자격이 없으니 네가 나가도록 해.”강연연은 입술을 삐죽이더니 목정침의 뒤로 가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애교를 부려댔다.“오빠~ 전 그래도 언니 위해서 한 말인데, 언니 얘기하는 것 좀 들어보세요.”목정침은 손에 쥔 담배꽁초를 비벼 끄고는 얇은 입술을 가볍게 열었다.“객실로 가.”강연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들으셨죠? 오빠가 객실로 가라고 하시네요.”임집사는 본래 남의 일에 참견하기 싫어했으나 참을 수 없었는지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열 찰나였다. 목정침이 다시금 말했다.“너 말이야.”강연연이 한껏 굳어진 기색으로 어색한듯 애교를 부려왔다.“어떻게 그래요~ 혼자 자기 무섭단 말이에요. 같이 자요, 네?”목정침은 그런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일어서서 실소를 내뱉으며 말했다.“네가 세 살짜리 아이라도 되나?”그 말을 들은 강연연은 바람이 빠진 공이라도 되는 냥 심드렁히 자리를 떴고, 입구를 나서면서 온연과 일부러 부딪히기까지 했다. 그와 함께 임집사는
온연의 침묵은 목정침에게 긍정으로 여겨진 듯하다. 그의 눈 밑 노여움은 더욱 짙어졌고, 주먹을 쥐었다 풀더니 결국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얼마 있지 않아 차 한 대가 저택을 떠나는것을 확인하였고 온연은 침대를 등지고 차가운 바닥에 앉았다. 무릎을 끌어안고는 얼굴을 파묻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외로움이 조금이라도 덜 해질 것 같았다.유씨 아주머니는 3일이 지난 후 돌아오셨다.“연아, 어떻게 도련님은 설에 출장을 가셨다니? 너도 아무 말없고… 일은 조금 쉬엄쉬엄 했어도 돼잖아, 너 혼자 얼마나 썰렁했겠어……”대꾸 없이 그저 쇼파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갑자기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임립이 보낸 설 축하 메시지였다. 그저 웃는 이모티콘을 하나 보내고는 곧 사직서를 첨부하여 전송하였다. 핸드폰을 툭 내려놓고는 잡지로 시선을 돌렸다. 내일 해성에서 그림 전시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온연은 가고 싶었고, 이미 가겠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여행하고 싶었다. 유씨 아주머니께는 외출한다고만 말하였다. 그녀가 몇 일 만에 돌아올지도 모른 채 유씨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마음을 잘 추스리라 하고는 별 말이 없었다.온연은 옷이 많지 않았다. 트렁크 속 짐은 옷 두벌이 다였고, 이렇게 떠나면 거의 전재산을 챙겨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에 올라탄 후에는 핸드폰을 아예 꺼버렸다. 이렇게 마음대로 집을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좋아하는 것을 쫓고 싶었다. 하물며 목정침도 그녀를 찾지 않을 테니까……해성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은 상태였다. 온연은 호텔을 예약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전시회에 관한 잡지를 꺼내 기본적으로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었다.온연의 사직은 갑작스러웠으나,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인생은 짧다, 끝까지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날이 밝아왔고, 온연은 하루 종일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그림에 대한
그녀가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목정침이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입술을 막아왔고, 약간 쉰 듯한 목소리가 서로의 입술 사이로 번져갔다.“내 허락 없이 떠나지마,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라고.”온연은 그저 그림을 보러 온 것이라 해명하려 했으나 목정침의 상태가 신경 쓰였다. 그의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고, 상태는 매우 심각한 듯했다. 그의 의식은 점점 흐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입술은 온연이 질식하기 직전 에야 떨어졌다. 온연이 불안정한 호흡을 헐떡거리며 말했다.“이러지 마요… 아픈 것 같으니까 우리 병원부터 가봐요.”그는 온연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온연의 머릿속이 안개로 가득찼다. 그가 일어난 후 자신을 더럽게 여길까봐 두려웠다. 한차례 폭풍우가 몰아친 후, 목정침은 기절한 듯 잠이 들었다. 온연의 몸을 압박한 채였다. 숨이 막혀왔다. 몸이 무너지는 듯했다.힘이 조금 돌아오자 온연은 조심스레 그를 몸에서 밀어내며 잠자기 편한 자세로 고쳐주었다. 목정침의 열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온연은 아직 남은 감기약을 찾아 꺼내들었다. 그를 보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으나 곧 약을 물고는 그의 입으로 넘겨주었다. 물까지 같은 방식으로 그에게 넘겨주고는 온전히 삼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극도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방을 치우는데, 침대 시트 위 붉은 것이 온연의 눈에 들어찼다. 온연의 머리가 띵 하고 울리는 듯했다.그래, 3년 전 심개와의 그날 밤. 그녀는 다음날 잠에서 깬 후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오늘과 비교하니 확연히 달랐다. 그러니까…… 그 날 심개랑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지? 다만 어려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뿐……마음속이 어떤 느낌인지 표현할 수가 없었다.결벽증이 있는 그이기에, 온연은 침대 위 혈흔을 깨끗이 치운 뒤 그 자리가 바람에 다 마르고 나서야 누울 수 있었다. 이튿날 눈을 뜨자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목정침이 눈에 들어왔다. 재떨이는 이미 반이
온연은 고통을 참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섰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목정침은 이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그의 눈빛은 침울했고, 얼굴빛마저 차가워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돌아가는 비행기 안, 졸음이 몰려왔지만 온연은 잠들 수 없었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목정침과 부딪히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온연이 몰래 해성에 온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다 마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저택으로 돌아온 뒤 목정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욕실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 것이었다. 온연은 목소리를 낮춘 채 유씨 아주머니께 물었다.“목정침, 언제 돌아온 거에요?”아주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저택에 오신 적 없어, 오늘 돌아오셨는 걸.”온연은 머리가 아팠다. 임립에게 그렇게나 빨리 사직서를 제출하지 말았어야 했다. 틀림없이 임립이 몰래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전한 듯하다. 지금의 그녀와 목정침의 관계라면 그녀가 떠떠난 것을 알았더라도 목정침이 일을 놓으면서까지 그녀를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연은 문득 독감에 걸린 그가 떠올랐다. “아, 방에 시트도 갈고, 이불도 바싹 말려야해요. 당분간은 음식도 싱겁게 조리 해야겠어요.”“그래, 근데 연이 너 안색이 안 좋은데, 도련님이랑 또 무슨 일 있었어?”온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가운 손이 온연의 뺨을 쓸어내렸고 그녀는 곧 도망치듯 위층으로 올라갔다. 경험자인 유씨 아주머니는 그녀의 걸음걸이만 봐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유씨 아주머니의 얼굴에 웃음기가 서렸다.방으로 돌아오니 욕실에서는 부슬부슬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눈송이가 흩날리는 오후에 노곤함이 밀려왔다. 그림에 관련한 책을 몇 권 집어 아래층 쇼파로 향했다. 웅크려 앉아 몇 장 읽으니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눈을 뜨니 저녁 7시가 다 되어갔다. 그녀의 머리 위 불빛들이 어두웠고 한눈에 봐도 저택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