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와 목정침은 귀국하고 돌아오자마자 또 우리 제도의 예술 학원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기부했다며? 역시 돈이 많아서 그런지 통이 커!""듣자 하니 걔 우리 남대 졸업했다고 하던데, 기부하는 건 뭐 그리 이상할 건 없는데 제도에서 돈이 제일 많잖아. 근데 그것보다도 엄청 잘생겼잖아… 국민 남신인걸, 걔처럼 돈 많고 잘생긴 남자가 이렇게 서민적이니 세상에 둘도 없는 남자지~." 남대 예술대학 전체가 목정침의 소식에 휩싸여 있는 와중에 유독 온연만이 그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계단에 앉아서 식어서 딱딱해진 찐빵으로 허기를 채우고 찐빵과 똑같이 차가운 생수로 목을 축이며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음식물 삼키기가 조금 힘들었다.3년 만에 목정침이 돌아왔다."연아 너 왜 또 찐빵 먹어?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진몽요는 털털하게 온연 옆에 앉았다.온연은 고개를 흔들더니 남은 찐빵을 막 입으로 집어넣었다. 일어선 후 가방을 들어 어깨에 맨 그녀의 모습이 그녀의 몸을 더 가냘파 보이게 했다. "시간 없어, 나 이제 가야 해."진몽요는 한숨을 쉬었다. "너는 내가 진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내일 아침에는 찐빵 먹지 마, 내가 아침 싸다 줄게…"진몽요의 목소리는 온연의 움직이는 자전거에 따라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겨울의 찬바람에 실려 한 점도 남김없이 휩쓸려 사라졌다.'집'으로 도착한 후 온연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낡은 자전거를 구석에다 세워 놓은 후 뒷문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좁고 습한 창고방으로 돌아간 후 신속히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았다.금방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유씨 아주머니가 황급히 걸어 들어왔다. "연아, 오늘은 일 안 도와줘도 돼, 도련님이 찾으셔…휴…조심해. 또 기분 나쁘게 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말하지 말고 또 트집 잡을라."온연은 고개를 끄덕인 후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너무 많이 빨아 색이 바랜 외투에 자신의 손바닥을 닦아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지저분한 것을 좋아하
온연은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 이런 일은 이미 옛날에 수없이 당해봤으니까."도련님, 식사하실 시간이에요." 임집사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울려 퍼졌다. 온연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천상의 소리 같았다.목가를 위해 수십 년간 목숨을 바쳐 일했던 임집사는 목정침을 어릴 때부터 지켜봐왔다. 그런 그는 목정침 앞에서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목정침이 나른히 대답했다. "알겠어."온연이 문을 열고는 도망치듯이 그곳을 벗어났다.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의 말이 맴돌았다."보름만 있으면 너도 이제 열여덟이지?"이 말에 그녀의 마음은 오랫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18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식사 후 목정침은 집을 나섰고, 온연은 그제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녀는 창고방의 작은 침대에 누워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는 이 창고방에서 10년이나 살았다. 목가, 그것은 그녀에게 두 번째 의미의 '집'이었다.그날 밤 온연은 편히 자지 못했다. 그녀는 꿈속에서 한번 또 한 번 아버지께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들이 말한게 전부 사실이야?" 오직 비행기를 오르는 아버지의 미소와 뒤 모습만이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고 있었다.그때의 비행기 사고, 목가의 개인 비행기에는 17명이 타고 있었고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목정침의 부모님도.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기장의 조종실수로 인한 사고라고 미디어에서 언론 보도가 쏟아졌고 이륙전 기장의 음주로 인한 사고라는 루머도 나돌고 있었다.온연의 부친인 온지원은 목가네 개인 기장으로 그 사고로 인해 죽었을 뿐만 아니라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다.꿈의 끝자락에서 목정침은 그녀를 다시 목씨 저택으로 데리고 왔다. 아무도 그가 왜 죄인의 딸을 거둬키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8살이던 그녀는 목정침의 손을 잡고 목가네로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순진하게 그녀도 그와 같은 고아라 그가 선의를 베풀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대문이 닫히는 그 순간 그녀의 손은
2분 뒤, 목정침의 차가 다시 출발하자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차가 멈췄을 때 그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도련님…지금 눈이 계속 오는데, 진짜 아가씨 안 태우고 가실거예요? 조금 더 기다려볼까요? 아님 제가 부를까요?" 운전기사인 진락은 조금 걱정되었다."오지랖." 백미러에 비치는 가냘픈 그녀의 모습을 보자 목정침은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그는 이미 2분이나 기다렸고,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다.진몽요는 젖은 모습으로 학교에 도착한 온연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눈 오는 날에 자전거 타고 학교 온 거야? 미쳤어? 아침 아직 따뜻해. 따뜻할 때 빨리 먹어!"온연은 진몽요가 건네주는 두유와 만두를 받으며 살포시 웃었다. 말라 갈라진 입술에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진몽요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너네 엄마 아빠는 너 신경 안 쓰셔? 밥 먹는것도 나몰라라 옷 입는것도 나몰라라, 너 그림 배우라고 학교 보내놓고도 소식 한 번 없지. 너 주워온 자식이야?""나.. 우리 엄마 내가 어릴 때 재혼하셨어. 우리 아빠는 10년 전에 돌아가셨고.. 부모님이랑 상관없어…" 온연은 말이 끝나자 축축한 외투를 벗고는 따뜻한 두유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태연함이 오히려 사람의 가슴을 후벼팠다.진몽요는 안쓰럽게 그녀의 젖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해주더니 오늘 드디어 입 열었네. 너같이 예쁜 여자애를 너네 엄마는 가슴 아파서 어떻게 두고 가셨다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그럼 너 지금 누구랑 지내?" 누구랑 지내냐고?온연은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목정침을 뭐라 소개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오빠."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진몽요는 조금 의혹스러웠다."오빠? 친오빠? 아무리 친척이라고 해도 널 이렇게 비참하게 살게 하진 않겠지? 너 이번에 선생님이 사라고 한 물감은 샀어?"온연은 고개
한 쪽에 있던 교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쌓여있었다. "목대표님, 말씀하신 분이 혹시… 심개인가요? 심가네 셋째 도련님입니다. 아마 들어 본 적 있으실 겁니다. 지금 현재 대학교 3학년이고요. 평소에 셋이서 자주 모여 다닙니다.""다시는 그가 남대에, 아니 제도에 안 나타났으면 좋겠네요." 말이 끝나자 목정침은 무표정으로 돌아섰다.몇 걸음 뒤 그는 문득 멈추어 섰다."그리고 온연이 남대에서 쓰게 되는 모든 비용은 제가 지원하죠. 익명으로요."교장은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네네네, 조심히 가세요."…수업이 끝난 뒤 온연은 지친 몸을 자전거에 지탱하며 교문밖에 서있었다. 그녀는 심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도리를 아직 그에게 돌려주지 못했다."연아, 너 지금 심개 기다려? 걔 점심에 집에 갔어, 집에 일이 있다고." 진몽요가 다가오더니 가방에서 작은 봉지 하나를 꺼냈다. "자, 이거 걔가 너 갖다주래. 감기약이랑 해열제도 같이있어. 까먹지 말고 꼭 먹어."온연은 약을 쳐다보기만 할 뿐 손 내밀어 받지는 않았다. "괜찮아, 목도리 좀 대신 전해줘. 나 먼저 갈게." 목정침이 돌아왔으니 그녀는 이제 매일 제시간에 돌아가야 한다.진몽요는 봉지를 온연의 품속으로 집어넣었다."빼긴 뭘 빼? 너 걔 좋아하는 거 다 알거든? 너 엄청 티 나."창백한 온연의 볼이 발그레 해졌다. "이상한 소리 그만해! 나 갈게."그녀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자전거를 밀며 떠났다. 몇 걸음 가지 않았는데 목정침의 차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그녀와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진몽요가 막 폭언을 퍼부으려는데 온연이 몽요의 입을 급히 막았다. "괜찮아 괜찮아, 너 먼저 가!"그녀는 유리창 너머 뒷좌석에 앉아있는 목정침의 어두운 얼굴을 보았다.목정침은 인내심이 별로 없었다. 경적소리가 나자 그녀는 황급히 자전거를 근처에 세우고는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앉았다.진몽요는 순간 멍해졌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차는 이미 멀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