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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작가: 레몬맛 고양이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2-06-30 12:30:04
2분 뒤, 목정침의 차가 다시 출발하자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차가 멈췄을 때 그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도련님…지금 눈이 계속 오는데, 진짜 아가씨 안 태우고 가실거예요? 조금 더 기다려볼까요? 아님 제가 부를까요?" 운전기사인 진락은 조금 걱정되었다.

"오지랖." 백미러에 비치는 가냘픈 그녀의 모습을 보자 목정침은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그는 이미 2분이나 기다렸고, 그녀에게 기회를 주었다.

진몽요는 젖은 모습으로 학교에 도착한 온연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눈 오는 날에 자전거 타고 학교 온 거야? 미쳤어? 아침 아직 따뜻해. 따뜻할 때 빨리 먹어!"

온연은 진몽요가 건네주는 두유와 만두를 받으며 살포시 웃었다. 말라 갈라진 입술에 새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진몽요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너네 엄마 아빠는 너 신경 안 쓰셔? 밥 먹는것도 나몰라라 옷 입는것도 나몰라라, 너 그림 배우라고 학교 보내놓고도 소식 한 번 없지. 너 주워온 자식이야?"

"나.. 우리 엄마 내가 어릴 때 재혼하셨어. 우리 아빠는 10년 전에 돌아가셨고.. 부모님이랑 상관없어…" 온연은 말이 끝나자 축축한 외투를 벗고는 따뜻한 두유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태연함이 오히려 사람의 가슴을 후벼팠다.

진몽요는 안쓰럽게 그녀의 젖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해주더니 오늘 드디어 입 열었네. 너같이 예쁜 여자애를 너네 엄마는 가슴 아파서 어떻게 두고 가셨다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그럼 너 지금 누구랑 지내?"

누구랑 지내냐고?

온연은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목정침을 뭐라 소개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

"오빠." 그녀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진몽요는 조금 의혹스러웠다."오빠? 친오빠? 아무리 친척이라고 해도 널 이렇게 비참하게 살게 하진 않겠지? 너 이번에 선생님이 사라고 한 물감은 샀어?"

온연은 고개를 내저었다."당분간은 못 사, 다른 방법 생각해 봐야지."

3년 전의 그녀는 맹하긴 했지만 무지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머릿속에 3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의 차가운 말투가 그녀의 입에서 번뜩였다. "언젠가 네가 나한테 비는 날이 올 거야."

나중에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출국을 해버렸고 그녀는 그 후로 한 번도 뭔가를 부탁한 적이 없다. 심지어 목가네에서 밥 한 끼 먹은 적이 없었다. 오직 알바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었다.

그의 요구를 더 이상 맞춰줄 수 없었고 그의 환심을 살 수도 없었다. 또 그의 환심을 살 필요도 없었다.

옛 생각에 눈살을 찌푸리며 괴로워하는 온연의 모습에 진몽요는 마음이 아팠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그 순간 온화한 남자의 목소리에 말이 끊겨버렸다.

"몽요, 네 귀요미 오늘 왜 이래? 왜 이렇게 기운이 빠져 있어?"

이 말을 한 사람은 심개다. 그는 온연이 이 학교에서 만난 두 번째 사람이다.

제도에는 상류층이 많지 않은데, 진몽요랑 심개는 모두 그 안에 속해있다. 유독 온연만이 부자라는 단어와 상관이 없다.

"물감만 아니었으면…"

"몽요!"

온연은 소리 내어 진몽요의 말을 끊고는 몽요를 쳐다보며 은근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심개만큼은 자신의 궁핍함을 몰랐으면 했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심개는 손을 내밀어 온연의 이마를 만져보았다." 너 열나."

불평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의 손은 자발적으로 자신이 쓰던 목도리를 풀어 온연에게 둘러주었다. "만약에 너 쓰러지면 우리 몽요가 또 온종일 잔소리한다고."

온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심장이 아까보다 훨씬 많이 뛰는 것 같았다. 그의 웃음은 구름을 가르는 햇살처럼 따뜻하고 태연했다. 옅은 잔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었고, 눈동자에는 은하수를 숨겨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가 본 사람들 중에서 두 번째로 잘생겼다. 제일 잘생긴 사람은 목정침이다.

10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목정침도 그녀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화실 밖의 복도에서 목정침이 온연과 온연옆의 심개를 죽일 듯 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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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4장

    한 쪽에 있던 교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쌓여있었다. "목대표님, 말씀하신 분이 혹시… 심개인가요? 심가네 셋째 도련님입니다. 아마 들어 본 적 있으실 겁니다. 지금 현재 대학교 3학년이고요. 평소에 셋이서 자주 모여 다닙니다.""다시는 그가 남대에, 아니 제도에 안 나타났으면 좋겠네요." 말이 끝나자 목정침은 무표정으로 돌아섰다.몇 걸음 뒤 그는 문득 멈추어 섰다."그리고 온연이 남대에서 쓰게 되는 모든 비용은 제가 지원하죠. 익명으로요."교장은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네네네, 조심히 가세요."…수업이 끝난 뒤 온연은 지친 몸을 자전거에 지탱하며 교문밖에 서있었다. 그녀는 심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도리를 아직 그에게 돌려주지 못했다."연아, 너 지금 심개 기다려? 걔 점심에 집에 갔어, 집에 일이 있다고." 진몽요가 다가오더니 가방에서 작은 봉지 하나를 꺼냈다. "자, 이거 걔가 너 갖다주래. 감기약이랑 해열제도 같이있어. 까먹지 말고 꼭 먹어."온연은 약을 쳐다보기만 할 뿐 손 내밀어 받지는 않았다. "괜찮아, 목도리 좀 대신 전해줘. 나 먼저 갈게." 목정침이 돌아왔으니 그녀는 이제 매일 제시간에 돌아가야 한다.진몽요는 봉지를 온연의 품속으로 집어넣었다."빼긴 뭘 빼? 너 걔 좋아하는 거 다 알거든? 너 엄청 티 나."창백한 온연의 볼이 발그레 해졌다. "이상한 소리 그만해! 나 갈게."그녀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자전거를 밀며 떠났다. 몇 걸음 가지 않았는데 목정침의 차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그녀와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진몽요가 막 폭언을 퍼부으려는데 온연이 몽요의 입을 급히 막았다. "괜찮아 괜찮아, 너 먼저 가!"그녀는 유리창 너머 뒷좌석에 앉아있는 목정침의 어두운 얼굴을 보았다.목정침은 인내심이 별로 없었다. 경적소리가 나자 그녀는 황급히 자전거를 근처에 세우고는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앉았다.진몽요는 순간 멍해졌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차는 이미 멀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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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5장

    갑자기 그의 두 손이 그녀의 몸을 감싸며 그녀를 다시 잡아당겼다. 금방 샤워를 한 건지 그의 몸이 촉촉했다. 몸에서 나는 바디워시의 향기도 느낄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의 가슴팍에 올린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녀의 허리를 감싸던 손이 확 풀렸다. "꺼져."왠지 모르게 그의 목소리가 조금 허스키 해졌고 그녀는 또 무엇이 그의 기분을 망친 건지 모른 채 도망치듯이 떠났다. 다시 창고방으로 돌아간 온연은 조금 후회가 됐다. 심개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을 깜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 일어난 일 때문인지 다시 찾아갈 용기는 없었다.다음날 아침 유씨 아주머니는 물 한 잔을 들고 창고방으로 들어왔다."자, 연아, 감기약 좀 먹어."온연은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감기가 걸렸다는 사실을 모를 뿐더러 목정침의 허락 없이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약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녀의 의문을 안 건지 아주머니는 웃으며 그녀의 침대 옆에 앉았다."도련님 오늘 출장 가셨어. 한 달 정도 걸리신 다는데. 이건 도련님이 가기 전에 말해 놓으셨어. 먹어."온연은 속으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지만 목정침이 집에 없을 거라는 말에 숨을 돌렸다.약을 먹은 후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 대충 정리하고는 학교로 갔다. 온연이 이제 화실로 들어서려는데 교장이 친히 그녀에게 모자라던 미술용품을 건네주었다. "온연 학생, 더 필요한 게 없나 한번 봐봐요."온연은 조금 의아했다. "아…안 모자라요, 근데 이게…?""안 모자라면 됐어요." 교장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교장이 떠난 후 그녀는 교장이 건네준 물건들을 보면 고민에 빠졌다. 목정침이 준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신경 쓸 겨를도 없으니까."연아, 소문으로는 누가 익명으로 너를 후원했다는데, 학교 일처리가 이렇게 빠른지 생각도 못 했어. 네 물감이 내 것보다 더 좋은데!" 진몽요는 오자마자 교장이 건네준 물건들을 뒤적거렸다.온연은 아무 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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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6장

    그 순간 온연은 진몽요의 몸에서 심개의 그림자를 느꼈다. 서로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진몽요는 그의 말투와 표정을 똑같이 따라 했다.그녀의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입만 뻐끔거렸다.진몽요는 웃으며 손을 휘적였다. "됐어. 나 이제 임무 끝. 남은 건 네가 직접 심개한테 알려줘! 조심해서 가고 내일 봐."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차를 타고는 떠났다. 온연은 그 자리에 한참 서있었다. 머릿속에는 진몽요가 방금 한 말이 가득 차있었다…온연이 다시 목가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온연은 조심스럽게 선물을 열어보았다. 진몽요가 선물한 것은 목걸이였고 심개가 선물한 것은 팔찌였다. 심개가 준 선물상자에는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계속 함께 하고 싶어.'온연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선물들을 침대 밑의 박스 안에 숨겨놓았다. 목정침이 이런 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감히 꺼낼 엄두도 못 냈다. 갑자기 등 뒤에서 유씨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이 왔니? 내가 내려가서 미역국이라도 끓여줄게."온연은 황급히 일어서며 대답했다. "아주머니 괜찮아요. 이미 먹고 왔어요. 일찍 쉬세요."아주머니는 차가운 손을 비비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연아, 도련님이 네 생일이라고 출장 중에 급히 돌아오셨어. 선물도 사 오셨는데. 네가 집에 없는걸 보고는 기분이 많이 안 좋으신가 봐. 왜 이제야 들어왔니? 도련님 저녁도 아직 안 드셨어…"온연은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목정침은 그녀가 여가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진몽요의 약속을 허락한 것이었는데.아주머니의 말이 그녀를 더 무섭게 했다. 목정침이 어떻게 그녀의 생일을 챙겨줄 수 있단 말인가? 선물은 더 말할 것도 없고!그녀가 무서워하는 걸 보자 아주머니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무서워하지 마. 도련님이 너 잡아먹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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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7장

    겁에 질린 온연은 눈을 부릅 떴다. 온연은 그제서야 그가 이미 취해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의 몸에서 나는 술기운은 결코 조금 전 한 모금의 술로는 절대 나올 수가 없는 정도의 술기운이었다.목정침이 강압적으로 온연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의 키스는 그녀의 숨을 조금씩 집어삼켰다. 그의 키스는 강렬했다. 그녀가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을 때서야 그는 마침내 물러났다."음식 다 식겠어요!"그녀가 급히 소리쳤다.목정침이 취했을 때의 모습은 제정신일 때와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그는 술을 마셨을 때면 자신의 본성을 조금씩 드러낸다. 하지만 제 정신일 때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따뜻해진다.온연은 그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죽을 듯이 무서웠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고 머릿속에는 진몽요가 전해준 심개의 말만이 되뇌어지고 있었다.'나 너 좋아해. 귀국할 때까지 기다려 줘. 나 꼭 기다려 줘야 해.'목정침은 그녀를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침대로 밀어 넘어뜨렸다."남은 두 시간을 밥 먹는 데에만 낭비하면 너무 아깝잖아?"불빛을 등진 그의 표정은 읽기가 어려웠다. 수많은 여자들이 군침 흘렸던 그의 얼굴을 그녀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의 분노가 어렴풋이 느껴졌다.갑자기 그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러지 마.."그녀가 애원했다.목정침은 자신의 손을 그녀의 얼굴로 옮기더니 그녀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너의 눈은 나를 유혹하고 있는걸, 왜 날 그렇게 쳐다봐?" 그의 목소리는 치명적으로 유혹적이었고 조금 허스키했다."목정침..나…나 생리 해…"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그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그녀는 숨을 죽였다. 계단을 오르기 전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가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이 거짓말이 탄로날 가능성은 없었다.하지만 슬프게도 목정침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오히려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찌릿하고 따금한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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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8장

    온연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을 뻗어 자신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목정침이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이 키스마크도 그가 남긴 거겠지.어제 일을 떠올리자 온연의 얼굴이 또 빨개지기 시작했다. "연아, 도련님이 너 진짜 좋아한다고 하면 그냥 도련님이랑 잘해봐.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걱정할 필요 없지. 도련님이 못생긴 것도 아니고, 그래도 10년 동안 쌓인 감정이 있는데." 유씨 아주머니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그녀는 더 이상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유씨 아주머니의 말을 끊고는 집을 나섰다. "지각하겠어요, 아주머니 저 먼저 갈게요."말을 끝내고는 도망치듯이 뛰쳐나갔다.목정침이랑 잘해보라고?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은 것 같은데.학교에 도착하자 진몽요는 온연에게 달려들어 목도리를 뒤적거렸다. "자기, 역시 보는 눈이 좀 달라, 목도리에서 복고의 느낌이 살살 풍기는데? 역시 우리 연이가 제일 예뻐, 아마 거적때기를 걸쳐도 이쁠 거야. 넌 특히 눈이 이뻐. 요 사람 홀리는 눈이."눈, 어제 목정침도 자신의 눈에 대해서 뭐라 한 것 같은데. 갑자기 불편한 기분이 확 올라왔다. "장난치지 마."그 순간 어디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진몽요랑 온연은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봤다."내건 아니야, 내 벨소리랑 다른데?" 진몽요는 어깨를 으쓱였다.자세히 들어보니 벨소리가 그녀의 가방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온연은 가방을 벗어 확인해 봤다. 가방 구석진 곳에 모 브랜드의 신상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약간 놀란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수신 전화에 목정침 세 글자가 찍혀있었다.언제 가방 안에 넣은 거지? 번호까지 저장해놓고…온연은 불편한 듯 어색한 표정으로 진몽요를 쳐다보았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목정침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지만 온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돈 보냈어. 식욕 떨어지니까 다음에는 그 구질구질한 차림 하고 있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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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9장

    온연이 끝마친 과제물을 본 교수님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 "목정침 그린 거니? 평소에 과묵해서 다를 줄 알았는데 너도 다른 여자애들이랑 취향이 같구나. 너랑 똑같은 사람 그린 애가 몇 명 더 있는데 그중에서 네가 제일 잘 그렸어. 사진 보고 그렸니? 무슨 사진인지 좀 보자."교수님은 이제 곧 서른을 바라보지만 아직도 미혼이었다. 성격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학생들이랑 목정침에 대해 토론할 만큼 그에 대해 집착하고 있었다."사진은 없어요…." 온연은 고개를 저었다.교수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사진이 없다고? 사진 없이 이렇게 잘 그렸단 말이야? 상상해서 그렸다고? 실제로 만나 본 적 있는 거야? 이러면 재미없지. 빨리 꺼내봐. 그린 거 보니까…집에서 앉아있는 사진 같은데? 이런 사진은 인터넷에서도 본 적이 없어, 너 이 사진 어디서 났어?"이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진몽요가 나섰다. "뭐 하시는 거예요? 사진 없다잖아요. 얘 원래 그림 잘 그리는데, 교수씩이나 돼서 그것도 모르셨어요?"진몽요처럼 배경이 좋은 학생들을 교수는 꺼려 했다. "그래그래 알았어. 네 귀요미라 이거지? 사진 달라고 안 할게 됐지?"수업이 끝나고 진몽요가 온연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린 거야? 너 목정침 본 적 있어? 난 딱 한 번 본 적 있는데, 파티에서. 너는 다른 사람들이랑 다를 줄 알았는데, 너도 국민남신에 대해 환상이 있었구나. 헤헤…"온연은 늘 그랬듯 침묵했다. 그녀는 목정침에게 환상이라곤 가진 적이 없다. 같은 지붕 아래 사는데 무슨 환상이 생길 수가 있겠는가? 그녀가 그를 그려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이미 그녀의 가슴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마 영원히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연아, 이번 축제 때 목정침도 온대. 하긴 기부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못 올 것도 없지." 그녀의 침묵에도 진몽요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잘댔다. 진몽요는 온연의 침묵이 익숙했다.축제, 학교에서 매 학기 방학하기 전에 진행하는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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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0장

    온연은 갑자기 좌불안석이 되었다. 출장 간다고 하지 않았나? 왜 또 돌아온 거야? 그녀는 조금 겁이 났다. 진몽요랑 스케이트장에 안 가길 잘했다. 자전거의 체인이 재수 없게 빠졌을 뿐…그녀는 욕실로 걸음을 향했다. 샤워할 때 그녀의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오늘 밤 그는 틀림없이 그녀를 찾을 것이다. 욕실을 나와 거실을 지나는데 소파에 앉아있는 그림자가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그는 옅은 회색의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양복을 입었을 때 보다 조금은 더 여유롭고 덜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냉랭했지만. "이리와."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옆에 반듯이 섰다. "돌아왔구나.""… 추워?" 왜 이렇게 늦게 집에 들어온 건지 추궁하려던 그의 말이 그녀 손의 상처에 쏙 들어가 버렸다.그녀는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했다. "조금요…근데 괜찮아요." 그녀는 그를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따뜻한 티를 태연하게 그녀에게 건넸다. "다음부터 일찍 들어와."그녀는 그가 건넨 티를 받지 않았다. 왜 늦게 들어온 건지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화도 내지 않았다.그의 냉랭한 눈빛을 본 그녀는 황급히 티를 받아 꿀꺽 마셔 버렸다. 티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지만 너무 급하게 마셔서 그런지 혀끝이 조금 아려왔다.그녀는 티가 담긴 컵이 그의 컵이라는 것을 다 마시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저…. 씻어서 드릴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컵을 손에 쥐고 주방으로 돌진했다.목정침은 조금 심각해졌다. 그의 얇은 입술이 언짢은 듯 불쾌한 표정을 지어냈다.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온연은 컵을 꼼꼼히 씻고 또 씻었다. 유씨 아주머니가 수도꼭지를 닫으며 온연을 나무랐다."연아, 너 뭐해? 그러다 컵 닳겠다!"아주머니의 말에 정신을 차린 온연은 조심스럽게 컵을 쥐었다. "아니요…. 갖다 드리고 올게요.""그래그래, 얼른 가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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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1장

    순간 그녀의 몸이 얼어버렸다. "저 창고방에서 자는 것도 상관없어요!"그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냉랭하기만 했던 그의 눈길에 미묘한 감정이 일렁거렸다. "위층에서 자라 그랬지, 내방에서 자라 그랬어? 유씨 아주머니한테 옆방 치워 놓으라고 이미 말해놨어."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한 그의 말에 온연은 조금 부끄러워졌다.부엌에 밥을 다 차려 놓은 보모가 그들을 불렀다. "도련님, 아가씨, 식사하세요."목정침이 보던 잡지를 덮고는 몸을 일으켰다. "밥 먹어."그가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이게 얼마 만에 같이 먹는 밥인지도 그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푹 떨구고 가까이 있는 반찬을 집으며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긴장한 그녀와 달리 목정침은 여유로웠다.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부엌이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한쪽에 서있던 임집사가 한숨을 쉬더니 온연에게 반찬 몇 가지를 놓아주었다. "채소 말고 고기도 좀 드세요, 한창 잘 드셔야 하는 나이인데.""감사합니다."온연이 조용히 대답했다.갑자기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배가 조금씩 아파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임집사가 주는데로 집어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식사가 끝나니 유씨 아주머니가 이미 방을 다 치워 놓은 상태였다. "연아, 내가 옮긴다고 옮겼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방에 한번 가봐. 아줌마가 빠트린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온연은 찔린 듯 거실에 앉아있던 목정침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목정침이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온연이 조용히 창고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침대 밑 박스에 숨겨 놓았던 선물을 챙기고는 살금살금 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방문을 열려는데 옆방의 문이 열리더니 목정침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그런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귀신이라도 본 듯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잽싸게 손에 쥐고 있던 선물을 몸 뒤로 숨겼다."뭐야? 갖고 와."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명령했다.그녀는 몇초간 머뭇거리다 이내 손을 내밀었다.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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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챕터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360장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359장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358장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357장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356장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355장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354장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353장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 원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제1352장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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