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에 있던 교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쌓여있었다. "목대표님, 말씀하신 분이 혹시… 심개인가요? 심가네 셋째 도련님입니다. 아마 들어 본 적 있으실 겁니다. 지금 현재 대학교 3학년이고요. 평소에 셋이서 자주 모여 다닙니다.""다시는 그가 남대에, 아니 제도에 안 나타났으면 좋겠네요." 말이 끝나자 목정침은 무표정으로 돌아섰다.몇 걸음 뒤 그는 문득 멈추어 섰다."그리고 온연이 남대에서 쓰게 되는 모든 비용은 제가 지원하죠. 익명으로요."교장은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네네네, 조심히 가세요."…수업이 끝난 뒤 온연은 지친 몸을 자전거에 지탱하며 교문밖에 서있었다. 그녀는 심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도리를 아직 그에게 돌려주지 못했다."연아, 너 지금 심개 기다려? 걔 점심에 집에 갔어, 집에 일이 있다고." 진몽요가 다가오더니 가방에서 작은 봉지 하나를 꺼냈다. "자, 이거 걔가 너 갖다주래. 감기약이랑 해열제도 같이있어. 까먹지 말고 꼭 먹어."온연은 약을 쳐다보기만 할 뿐 손 내밀어 받지는 않았다. "괜찮아, 목도리 좀 대신 전해줘. 나 먼저 갈게." 목정침이 돌아왔으니 그녀는 이제 매일 제시간에 돌아가야 한다.진몽요는 봉지를 온연의 품속으로 집어넣었다."빼긴 뭘 빼? 너 걔 좋아하는 거 다 알거든? 너 엄청 티 나."창백한 온연의 볼이 발그레 해졌다. "이상한 소리 그만해! 나 갈게."그녀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자전거를 밀며 떠났다. 몇 걸음 가지 않았는데 목정침의 차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그녀와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진몽요가 막 폭언을 퍼부으려는데 온연이 몽요의 입을 급히 막았다. "괜찮아 괜찮아, 너 먼저 가!"그녀는 유리창 너머 뒷좌석에 앉아있는 목정침의 어두운 얼굴을 보았다.목정침은 인내심이 별로 없었다. 경적소리가 나자 그녀는 황급히 자전거를 근처에 세우고는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앉았다.진몽요는 순간 멍해졌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차는 이미 멀어져 가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두 손이 그녀의 몸을 감싸며 그녀를 다시 잡아당겼다. 금방 샤워를 한 건지 그의 몸이 촉촉했다. 몸에서 나는 바디워시의 향기도 느낄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의 가슴팍에 올린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녀의 허리를 감싸던 손이 확 풀렸다. "꺼져."왠지 모르게 그의 목소리가 조금 허스키 해졌고 그녀는 또 무엇이 그의 기분을 망친 건지 모른 채 도망치듯이 떠났다. 다시 창고방으로 돌아간 온연은 조금 후회가 됐다. 심개에 대해 물어본다는 것을 깜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 일어난 일 때문인지 다시 찾아갈 용기는 없었다.다음날 아침 유씨 아주머니는 물 한 잔을 들고 창고방으로 들어왔다."자, 연아, 감기약 좀 먹어."온연은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감기가 걸렸다는 사실을 모를 뿐더러 목정침의 허락 없이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약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녀의 의문을 안 건지 아주머니는 웃으며 그녀의 침대 옆에 앉았다."도련님 오늘 출장 가셨어. 한 달 정도 걸리신 다는데. 이건 도련님이 가기 전에 말해 놓으셨어. 먹어."온연은 속으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지만 목정침이 집에 없을 거라는 말에 숨을 돌렸다.약을 먹은 후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 대충 정리하고는 학교로 갔다. 온연이 이제 화실로 들어서려는데 교장이 친히 그녀에게 모자라던 미술용품을 건네주었다. "온연 학생, 더 필요한 게 없나 한번 봐봐요."온연은 조금 의아했다. "아…안 모자라요, 근데 이게…?""안 모자라면 됐어요." 교장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교장이 떠난 후 그녀는 교장이 건네준 물건들을 보면 고민에 빠졌다. 목정침이 준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신경 쓸 겨를도 없으니까."연아, 소문으로는 누가 익명으로 너를 후원했다는데, 학교 일처리가 이렇게 빠른지 생각도 못 했어. 네 물감이 내 것보다 더 좋은데!" 진몽요는 오자마자 교장이 건네준 물건들을 뒤적거렸다.온연은 아무 말 없이
그 순간 온연은 진몽요의 몸에서 심개의 그림자를 느꼈다. 서로 잘 알고 있어서 그런지 진몽요는 그의 말투와 표정을 똑같이 따라 했다.그녀의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입만 뻐끔거렸다.진몽요는 웃으며 손을 휘적였다. "됐어. 나 이제 임무 끝. 남은 건 네가 직접 심개한테 알려줘! 조심해서 가고 내일 봐."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차를 타고는 떠났다. 온연은 그 자리에 한참 서있었다. 머릿속에는 진몽요가 방금 한 말이 가득 차있었다…온연이 다시 목가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온연은 조심스럽게 선물을 열어보았다. 진몽요가 선물한 것은 목걸이였고 심개가 선물한 것은 팔찌였다. 심개가 준 선물상자에는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계속 함께 하고 싶어.'온연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선물들을 침대 밑의 박스 안에 숨겨놓았다. 목정침이 이런 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감히 꺼낼 엄두도 못 냈다. 갑자기 등 뒤에서 유씨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이 왔니? 내가 내려가서 미역국이라도 끓여줄게."온연은 황급히 일어서며 대답했다. "아주머니 괜찮아요. 이미 먹고 왔어요. 일찍 쉬세요."아주머니는 차가운 손을 비비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연아, 도련님이 네 생일이라고 출장 중에 급히 돌아오셨어. 선물도 사 오셨는데. 네가 집에 없는걸 보고는 기분이 많이 안 좋으신가 봐. 왜 이제야 들어왔니? 도련님 저녁도 아직 안 드셨어…"온연은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목정침은 그녀가 여가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진몽요의 약속을 허락한 것이었는데.아주머니의 말이 그녀를 더 무섭게 했다. 목정침이 어떻게 그녀의 생일을 챙겨줄 수 있단 말인가? 선물은 더 말할 것도 없고!그녀가 무서워하는 걸 보자 아주머니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무서워하지 마. 도련님이 너 잡아먹니?
겁에 질린 온연은 눈을 부릅 떴다. 온연은 그제서야 그가 이미 취해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의 몸에서 나는 술기운은 결코 조금 전 한 모금의 술로는 절대 나올 수가 없는 정도의 술기운이었다.목정침이 강압적으로 온연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의 키스는 그녀의 숨을 조금씩 집어삼켰다. 그의 키스는 강렬했다. 그녀가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을 때서야 그는 마침내 물러났다."음식 다 식겠어요!"그녀가 급히 소리쳤다.목정침이 취했을 때의 모습은 제정신일 때와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그는 술을 마셨을 때면 자신의 본성을 조금씩 드러낸다. 하지만 제 정신일 때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따뜻해진다.온연은 그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죽을 듯이 무서웠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고 머릿속에는 진몽요가 전해준 심개의 말만이 되뇌어지고 있었다.'나 너 좋아해. 귀국할 때까지 기다려 줘. 나 꼭 기다려 줘야 해.'목정침은 그녀를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침대로 밀어 넘어뜨렸다."남은 두 시간을 밥 먹는 데에만 낭비하면 너무 아깝잖아?"불빛을 등진 그의 표정은 읽기가 어려웠다. 수많은 여자들이 군침 흘렸던 그의 얼굴을 그녀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의 분노가 어렴풋이 느껴졌다.갑자기 그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러지 마.."그녀가 애원했다.목정침은 자신의 손을 그녀의 얼굴로 옮기더니 그녀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너의 눈은 나를 유혹하고 있는걸, 왜 날 그렇게 쳐다봐?" 그의 목소리는 치명적으로 유혹적이었고 조금 허스키했다."목정침..나…나 생리 해…"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그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그녀는 숨을 죽였다. 계단을 오르기 전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가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이 거짓말이 탄로날 가능성은 없었다.하지만 슬프게도 목정침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오히려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찌릿하고 따금한 느낌이
온연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을 뻗어 자신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목정침이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이 키스마크도 그가 남긴 거겠지.어제 일을 떠올리자 온연의 얼굴이 또 빨개지기 시작했다. "연아, 도련님이 너 진짜 좋아한다고 하면 그냥 도련님이랑 잘해봐.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걱정할 필요 없지. 도련님이 못생긴 것도 아니고, 그래도 10년 동안 쌓인 감정이 있는데." 유씨 아주머니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그녀는 더 이상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유씨 아주머니의 말을 끊고는 집을 나섰다. "지각하겠어요, 아주머니 저 먼저 갈게요."말을 끝내고는 도망치듯이 뛰쳐나갔다.목정침이랑 잘해보라고?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은 것 같은데.학교에 도착하자 진몽요는 온연에게 달려들어 목도리를 뒤적거렸다. "자기, 역시 보는 눈이 좀 달라, 목도리에서 복고의 느낌이 살살 풍기는데? 역시 우리 연이가 제일 예뻐, 아마 거적때기를 걸쳐도 이쁠 거야. 넌 특히 눈이 이뻐. 요 사람 홀리는 눈이."눈, 어제 목정침도 자신의 눈에 대해서 뭐라 한 것 같은데. 갑자기 불편한 기분이 확 올라왔다. "장난치지 마."그 순간 어디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진몽요랑 온연은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봤다."내건 아니야, 내 벨소리랑 다른데?" 진몽요는 어깨를 으쓱였다.자세히 들어보니 벨소리가 그녀의 가방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온연은 가방을 벗어 확인해 봤다. 가방 구석진 곳에 모 브랜드의 신상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약간 놀란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수신 전화에 목정침 세 글자가 찍혀있었다.언제 가방 안에 넣은 거지? 번호까지 저장해놓고…온연은 불편한 듯 어색한 표정으로 진몽요를 쳐다보았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목정침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지만 온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돈 보냈어. 식욕 떨어지니까 다음에는 그 구질구질한 차림 하고 있지 마."
온연이 끝마친 과제물을 본 교수님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 "목정침 그린 거니? 평소에 과묵해서 다를 줄 알았는데 너도 다른 여자애들이랑 취향이 같구나. 너랑 똑같은 사람 그린 애가 몇 명 더 있는데 그중에서 네가 제일 잘 그렸어. 사진 보고 그렸니? 무슨 사진인지 좀 보자."교수님은 이제 곧 서른을 바라보지만 아직도 미혼이었다. 성격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학생들이랑 목정침에 대해 토론할 만큼 그에 대해 집착하고 있었다."사진은 없어요…." 온연은 고개를 저었다.교수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사진이 없다고? 사진 없이 이렇게 잘 그렸단 말이야? 상상해서 그렸다고? 실제로 만나 본 적 있는 거야? 이러면 재미없지. 빨리 꺼내봐. 그린 거 보니까…집에서 앉아있는 사진 같은데? 이런 사진은 인터넷에서도 본 적이 없어, 너 이 사진 어디서 났어?"이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진몽요가 나섰다. "뭐 하시는 거예요? 사진 없다잖아요. 얘 원래 그림 잘 그리는데, 교수씩이나 돼서 그것도 모르셨어요?"진몽요처럼 배경이 좋은 학생들을 교수는 꺼려 했다. "그래그래 알았어. 네 귀요미라 이거지? 사진 달라고 안 할게 됐지?"수업이 끝나고 진몽요가 온연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린 거야? 너 목정침 본 적 있어? 난 딱 한 번 본 적 있는데, 파티에서. 너는 다른 사람들이랑 다를 줄 알았는데, 너도 국민남신에 대해 환상이 있었구나. 헤헤…"온연은 늘 그랬듯 침묵했다. 그녀는 목정침에게 환상이라곤 가진 적이 없다. 같은 지붕 아래 사는데 무슨 환상이 생길 수가 있겠는가? 그녀가 그를 그려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이미 그녀의 가슴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마 영원히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연아, 이번 축제 때 목정침도 온대. 하긴 기부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못 올 것도 없지." 그녀의 침묵에도 진몽요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잘댔다. 진몽요는 온연의 침묵이 익숙했다.축제, 학교에서 매 학기 방학하기 전에 진행하는 행사
온연은 갑자기 좌불안석이 되었다. 출장 간다고 하지 않았나? 왜 또 돌아온 거야? 그녀는 조금 겁이 났다. 진몽요랑 스케이트장에 안 가길 잘했다. 자전거의 체인이 재수 없게 빠졌을 뿐…그녀는 욕실로 걸음을 향했다. 샤워할 때 그녀의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오늘 밤 그는 틀림없이 그녀를 찾을 것이다. 욕실을 나와 거실을 지나는데 소파에 앉아있는 그림자가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그는 옅은 회색의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양복을 입었을 때 보다 조금은 더 여유롭고 덜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여전히 냉랭했지만. "이리와."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걸어갔다. 그리고 그의 옆에 반듯이 섰다. "돌아왔구나.""… 추워?" 왜 이렇게 늦게 집에 들어온 건지 추궁하려던 그의 말이 그녀 손의 상처에 쏙 들어가 버렸다.그녀는 우물쭈물 거리며 대답했다. "조금요…근데 괜찮아요." 그녀는 그를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따뜻한 티를 태연하게 그녀에게 건넸다. "다음부터 일찍 들어와."그녀는 그가 건넨 티를 받지 않았다. 왜 늦게 들어온 건지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화도 내지 않았다.그의 냉랭한 눈빛을 본 그녀는 황급히 티를 받아 꿀꺽 마셔 버렸다. 티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지만 너무 급하게 마셔서 그런지 혀끝이 조금 아려왔다.그녀는 티가 담긴 컵이 그의 컵이라는 것을 다 마시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저…. 씻어서 드릴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컵을 손에 쥐고 주방으로 돌진했다.목정침은 조금 심각해졌다. 그의 얇은 입술이 언짢은 듯 불쾌한 표정을 지어냈다.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온연은 컵을 꼼꼼히 씻고 또 씻었다. 유씨 아주머니가 수도꼭지를 닫으며 온연을 나무랐다."연아, 너 뭐해? 그러다 컵 닳겠다!"아주머니의 말에 정신을 차린 온연은 조심스럽게 컵을 쥐었다. "아니요…. 갖다 드리고 올게요.""그래그래, 얼른 가봐. "
순간 그녀의 몸이 얼어버렸다. "저 창고방에서 자는 것도 상관없어요!"그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냉랭하기만 했던 그의 눈길에 미묘한 감정이 일렁거렸다. "위층에서 자라 그랬지, 내방에서 자라 그랬어? 유씨 아주머니한테 옆방 치워 놓으라고 이미 말해놨어."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한 그의 말에 온연은 조금 부끄러워졌다.부엌에 밥을 다 차려 놓은 보모가 그들을 불렀다. "도련님, 아가씨, 식사하세요."목정침이 보던 잡지를 덮고는 몸을 일으켰다. "밥 먹어."그가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이게 얼마 만에 같이 먹는 밥인지도 그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푹 떨구고 가까이 있는 반찬을 집으며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긴장한 그녀와 달리 목정침은 여유로웠다.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부엌이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한쪽에 서있던 임집사가 한숨을 쉬더니 온연에게 반찬 몇 가지를 놓아주었다. "채소 말고 고기도 좀 드세요, 한창 잘 드셔야 하는 나이인데.""감사합니다."온연이 조용히 대답했다.갑자기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배가 조금씩 아파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임집사가 주는데로 집어먹어서 그런 것 같았다.식사가 끝나니 유씨 아주머니가 이미 방을 다 치워 놓은 상태였다. "연아, 내가 옮긴다고 옮겼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방에 한번 가봐. 아줌마가 빠트린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온연은 찔린 듯 거실에 앉아있던 목정침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목정침이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온연이 조용히 창고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침대 밑 박스에 숨겨 놓았던 선물을 챙기고는 살금살금 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방문을 열려는데 옆방의 문이 열리더니 목정침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그런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귀신이라도 본 듯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잽싸게 손에 쥐고 있던 선물을 몸 뒤로 숨겼다."뭐야? 갖고 와."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명령했다.그녀는 몇초간 머뭇거리다 이내 손을 내밀었다.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