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마침 가게가 바쁠 시간이라 온연도 진몽요를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주방에서 뭐하게? 너 디저트 만드는 법도 모르잖아. 가서 안야 도와줘.” 진몽요는 정신이 딴데 팔려 있었다. “내가 조수할게. 안야는 별로 안 바빠서.” 온연은 그제서야 그녀를 쳐다봤다. “뭔 일 있어?” “나… 갑자기 헤어지고 싶어.” 이 말에 온연은 적잖이 놀랐다. “뭐? 왜? 경소경이 뭐 잘못했어? 아니면 여자 못 끊었어?” 진몽요는 눈시울을 붉혔다. “아니, 잘해줘. 너무 잘해줘. 그래서 나랑 더 안 어울리는 것 같아. 나한테 왜 잘해주는 거야? 난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깨끗하지도 않은데. 그 사람이 나한테 조금이라도 나쁘거나 자상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텐데. 왜 나를 애기 다루듯이 잘 해주는 걸까? 나 같은 사람은 머리도 안 좋고, 능력도 없고, 나중에 결혼해도 그냥 들러리라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잖아. 연아, 난 지금 깨달았다.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랑 강제로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령 우리집이 파산되지 않았어도 난 그 사람이랑 어울리지 않았을 거야. 난 먹고 마시고 노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 사람은 바람둥이인 거 말고 부족한 게 없어. 심지어 그 단점도 나를 위해서 고쳤지. 어떻게 해야 공평해질 수 있을까? 만약 내 일을 어머님이 알게 된다면 난 경가네 대문도 못 들어갈 거야. 세상에 비밀은 없잖아. 내가 숨길 수 있다고 해도 나는 평생 거짓말쟁이로 살고 싶지 않아.” 온연은 너무 속상했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자신을 탓하며 그 일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경소경이 괜찮다고 해도 이 모든 게 다 괜찮아지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오래 고민하더니 말했다. “몽요야… 너무 충동적으로 생각하지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그때 일은 너 때문에 발생한 게 아니었잖아. 넌 피해자야, 그리고 원래는 내가 당했어야 했잖아… 경소경네 엄마도 그렇게 무식한 사람은 아니잖아. 분명 다 이해해 주실 거야. 그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
저녁에 진몽요와 경소경은 함께 밥을 먹고, 야시장을 구경했다. 이건 진몽요가 제안했다. 사고싶은 물건은 없었지만 단지 경소경이랑 함께 걷고 싶었다… 야외는 너무 더워 그들은 구경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쇼핑몰은 시원했고 사람도 많았다. 시계 가게를 지나치면서 경소경의 눈에 여자 시계 하나가 들어왔다. 가격도 보지 않고 들어가 직원에게 꺼내달라고 했다. “이 시계 예쁘죠? 어때요?” 진몽요는 그 시계를 보면서 그가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했다. 예뻤지만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됐어요.” 경소경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요, 싫음 말아요.” 그는 그녀가 그의 돈을 쓰고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녀가 뒤돌았을 때, 그는 작게 직원에게 포장해달라고 요청했고 재빨리 결제한 후에 박스를 숨긴 채 그녀를 뒤따라 갔다. 만약 선물로 주는거라면, 그녀가 화내지 않겠지? 10시가 다되자, 몰 안에 사람이 점차 줄었다. 거의 마감시간이었는데, 진몽요는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경소경은 저녁 내내 구경하느라 힘이 다 빠졌다. “호텔로 돌아가죠? 늦었는데.” 진몽요는 어리둥절하며 “늦었어요? 그래요…” 그녀가 대답하자 경소경은 안도했다. 드디어 구경을 멈출 수 있었다. 그녀에 어깨에 팔을 감싸며 “내일 여기서 하루종일 놀아줄게요. 정침이한테 말해서 하루 시간 비웠어요.” 진몽요는 영혼 없이 대답한 후, 어떻게 말을 시작할지 고민했다. 호텔에 돌아온 후, 방에 들어서는 순간에 그녀는 용기를 냈다. “경소경씨, 우리 그만 만나요.” 경소경은 문을 닫다가 멈춰버렸다. “뭐라고 했어요?” “헤어지자고요.” 그녀는 그를 등지며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내가 말했죠,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경소경은 그녀의 낌새를 눈치 챘는지 말할 때기운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그래서… 나 지금 함부로 말 하는 거 아니예요. 진심이에요. 오늘 새벽 1시 비행기 끊었어요, 조금 이따가 공항 가봐야해요.” 진몽요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
온연은 그녀와 함께 마셔주었다. “나도 알아. 네가 한 결정이니까 더 마음이 안 좋겠지. 어쩌면 한 평생 아플수도 있어… 젊을 땐 서로 좋아하고, 사귀기만 하면 무서울 게 없는데, 좀 더 성숙해지면 멀리 볼 수밖에 없어. 어쨌든 몽요야, 내가 미안해. 그런 일이 너한테 없었더라면, 너랑 경소경도 이렇진 않았겠지.” 말은 이렇게 해도 진몽요는 한번도 온연 탓을 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네 탓을 해? 강연연이랑 전지 탓을 해야지. 그건 내 문제였어. 만약 내가 전지를 몰랐더라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겠지. 경소경이랑 사귀게 됐을 때, 처음엔 모든 게 완벽하고 미래가 기대되더라. 근데 좋은 게 다 지나가고 나서야 문제점을 발견했어. 만약 내 머리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미리 해결책을 생각했을텐데. 그때 죽어도 안된다고 거절했으면 지금처럼 마음 복잡할 일도 없었겠지. 한번도 무언가를 얻은 후에 그걸 또 잃은 적이 없었어. 두 가지가 다 느낌이 달라. 후자는 고통스럽고, 전자는 유감스럽지.” 강연연과 전지가 언급되자 온연의 마음속엔 작은 파도가 쳤다. 전지는 잠수를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강연연의 행방만 명확했다. 강연연 같은 사람에게 감옥에서 1년은 너무 가벼운 형벌이었다. 비록 목정침의 호의를 받아드리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제도로 돌아갈거야, 여기에 남을거야?” 진몽요는 막막한 듯 고개를 절레며 “나도 모르겠어.” 온연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기운 좀 차리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경소경도 지금 괜찮지 않을 거야. 그런 바람둥이 같은 사람은 상처받으면 어떨지 궁금하네…” 경소경이 생각날수록 그녀는 더 크게 울었다. 평소 경소경의 늘 우아한 기운을 풍기며 성격도 좋았다. 하지만 이별통보를 받았을 때 그는 완전히 태도가 바뀌어 분노를 했다. 이것만 생각하면 그녀의 마음이 좋지 않았고, 괴로워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호텔, 목정침이 경소경의 방에 왔을 때 눈 앞
새벽, 경소경은 담배를 피며 진몽요의 전화번호를 보고 또 봤지만 결국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이 시간, 그녀는 이미 제도로 돌아갔겠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잠에 들지 못 했다. 그것도 여자 때문에. 그가 담배를 버리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이 새벽에 전화 올 사람이 없어 귀찮은 듯 화면을 봤는데 발신자가 진몽요인 걸 보자 그는 굳어버렸다. 몇 초 후에 다시 정신을 차린 뒤,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담배를 너무 많이 펴서 목소리가 살짝 쉬었다. “여보세요…? 집 도착했어요?” 전화너머 진몽요의 만취한 목소리가 들렸다. “경소경씨… 어디에요? 만나고 싶어요…” 그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술 마셨어요? 제도로 돌아간 거 아니에요? 어디에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는지 진몽요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헤어지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알아요? 하지만 헤어지지 않아도 우리는 미래가 없잖아요… 우리는 거리가 너무 멀어요… 게다가 당신은 금사빠라서 나는 평생 당신을 붙잡아 둘 자신이 없어요. 나중에 날 미워해서 버릴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난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어요. 그냥 옆에 있는 들러리 같은 존재일 뿐, 당신이랑 어울리지 않아요…” 옆에서 온연의 목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그만해, 너 너무 많이 마셨어. 얼른 자…” 그녀는 제도로 돌아가지 않았다! 온연에 집에 있어! 경소경은 방키를 챙겨서 재빨리 나갔다. 그녀가 만나고 싶다고 하니 언제든지 그녀를 찾으러 가야했다. 목정침의 방문을 두드릴 때 경소경은 시간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목정침은 비몽사몽 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고, 똥 씹은 표정이 경소경을 보자 조금 풀렸다. “미쳤어?” 경소경은 목정침의 바으로 쳐 들어가 차키를 챙겼다. “차 좀 빌릴게!” 목정침이 무슨 일인지도 묻기 전에 그는 떠났다. 안 그래도 잠을 못 자 그는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파트 단지에 거의 도착하자, 경소경은 진몽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후에 전화를 받았는데,
차에 탄 후, 온연이 말했다. “호텔로 가서 방 하나 따로해줘요. 핸드폰은 챙겼는데 신분증을 안 챙겨서…” 목정침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선 바로 호텔로 향했다. 호텔 리셉션을 지나치자 온연은 발걸음을 멈췄고 그가 말했다. “신분증 없으면 그냥 내 방가서 자. 난 소파에서 잘 게.” 온연은 당연히 신분증 없이 체크인을 못 하는 걸 알았다. 하지만 목정침이 차에서 분명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게 방법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방법이 이런건지 누가 알았을까? 이미 왔으니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거의 새벽4시가 다 되었고, 그녀는 너무 피곤했다. 내일가게에 출근도 해야했다. 목정침은 이 호텔에 VIP룸을 자주 이용했다. 거실에 럭셔리한 소파가 있었고 안방과 거실은 분리되어 있었다. 비록 문은 없었지만 공간이 붙어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만족했다. 침대에 흐트러진 흔적을 보자, 온연은 목정침이 급하게 일어나서 자신을 찾으러 왔다고 생각했다. 막상 그의 침대에서 자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소파에서 잘게요. 어차피 하룻밤이니 대충 자면 돼요. 너무 늦었으니까 먼저 잘게요.” 그녀가 소파로 걸어가자 목정침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 “내가 말했지. 네가 침대에서 자라고. 아니면 같이 자든지. 네가 골라.” 그녀는 그의 팔을 뿌리치고 안방으로 걸어갔다. 눕자마자 갑자기 그의 향기가 그녀를 감쌌다. 이 상태로 그녀는 절대 잠에 들 수 없었다. 같이 자는거랑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분명 악몽이라도 꿀 것 같았다! 목정침은 이미 소파에서 잠이 들어 그녀는 다시 자리를 바꾸자고 말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누워있자 그제서야 잠이 솔솔 왔다. 아파트 안, 경소경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진몽요는 몇 번이나 토를 하고 나서야 멈췄고, 절대 자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정상적인 교류를 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으나 그는 궁금했다. “진몽요씨, 나 좀 봐 봐요.” 진몽요는 소파에 반쯤 누워 실실 웃었다. 대담하게 그와 눈을 마주치며 농담까
목정침은 소파에게 노트북을 하며 몇 초 후에 대답했다. “네가 너무 깊게 잠 들었길래, 코도 골던데. 어떻게 깨워?” 코를 골았다고?! 온연은 살짝 민망했다. 그녀는 자신이 코고는지 전혀 몰랐는데, 그가 그걸 밤새 들었다니… “허허… 어제 저녁은 고마웠어요. 방해되니까 먼저 가 볼게요.” 그녀는 어제 저녁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서 이곳에 온거였다. 만약 지금 그에게 냉정하게 굴면, 배은망덕하니 나름 고마운 말투로 말했다. “밥 먹고 가, 배달시켰어. 곧 도착한데.” 목정침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됐어요. 집에 가서 만들어 먹으면 돼요.” 온연은 일부러 거절했다. “소경이한테 아직 전화 안 왔어.” 목정침은 노트북을 닫고 그녀를 봤다. 온연은 고민했다. 경소경이 전화가 안 왔다는 건 아직 거기 있다는 뜻인데, 지금 돌아가는 건 적절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해요… 실례 좀 할게요.” 그녀의 말투에 뭔가 낯선 사람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 목정침은 짜증이 나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배달음식이 도착했다. 온연은 공짜로 음식을 먹는게 그래서 직접 포장을 뜯고 수저를 놨다. 음식은 딱 보니까 경소경네 레스토랑에서 온 거였다. 냄새가 좋아서 식욕을 더 돋우었다. 목정침은 아무 생각 없이 그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 “너 말랐어.” 그의 말투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온연은 음식을 집던 젓가락을 거두고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 했다. 예전에는 이 사람이 자신이 말랐는지 안 말랐는지 신경 썼었다? 그녀가 10년 넘게 기대하던 자상함을 막상 쉽게 얻으니 느끼면 안되는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 아파트 안. 진몽요는 음식냄새의 맛있는 냄새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온연이 밥을 했다고 생각해서 머리가 헝크러진 채로 주방으로 나왔다. “연아, 뭐 맛있는 거 했어?...” 말을 하다 말고 그녀는 벙쪘다. 주방에는 온연이 아니라 경소경이 있었다! 그녀는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경소경은 고개
진몽요는 잘못한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크게 크게 밥을 먹었다. 어제 저녁에 술도 많이 마시고 토도 많이 했으니 자고 일어난 후엔 당연히 배가 고팠다. 밥은 다 먹은 뒤에야 온연이 생각났다. “연이는요? 어제 저녁에 계속 여기에 있었어요? 그럼 연이는 어디 갔어요?” 경소경은 이상하게 웃었다. “내가 정침이한테 데려가라고 했어요. 아마 호텔에 있을 거예요.” 진몽요는 생각지도 못 했다. “연이가 갔어요?” 경소경은 어깨를 들썩이며 “갔겠죠. 어제 당신 때문에 새벽 3시까지 고생해서 힘들고 피곤할 거예요. 호텔 가서 자는 게 낫죠, 모기도 안 물리고. 지금쯤 두 사람 다 일어났겠죠. 주변에 워터파크 봐둔 곳 있는데 거기 갈래요? 이 주변에 마침 바다도 없어서 워터파크 가기엔 딱 좋을 거 같은데. 규모도 크고 시설도 괜찮아 보였어요.” 먹고 마시고 노는 일은 쉽게 진몽요를 유혹할 수 있었다. 방금 헤어지고 또 재결합했으니 나가서 기분전환 하는 것도 괜찮았다. “그래요, 그럼 내가 연이한테 전화해 볼 게요. 목정침 차 있지 않아요? 그 차 타고 가면 딱이네요. 당연이 그 두 사람도 같이 가면 좋고요.” 온연이 전화를 받았을 때 이미 밥을 다 먹은 상태였다. 진몽요가 목정침까지 데리고 워터파크에 가자고 하자 그녀는 목정침을 흘낏 봤다. “워터파크 갈래요?” 목정침은 그런 곳에 가본적이 없어 당연히 인상을 찌푸렸다. “너 가고싶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늘 가게도 안 열고, 바람도 쐴 겸요. 밖에 날씨도 더운데.” 그는 차키를 챙겼다. “그럼 내가 데려다 줄게.” 그는 워터파크에 관심이 없어 기사만 하겠다는 뜻이었다. 진몽요와 경소경을 태우고 다 같이 교외로 향했다. 규모가 꽤 커서 교외 쪽에 위치해 있었다. 진몽요는 신난 모습으로 가방에서 수영복을 꺼냈다. “연아 내가 네 수영복도 챙겼어. 봐봐. 내가 비슷한 거 두개 샀는데 너 하나 나 하나 입자. 네가 입으면 분명 이쁠거야!” 수영복은 검은색에
목정침은 아무 말없이 해변쪽으로 따라갔다. 온연도 옅은 숨을 내쉬며 그의 뒤를 따랐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목정침을 봤는데, 뒷모습만 봐도 그의 몸매가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균형적인 체형, 탄탄함, 하얀 피부, 숨길 수 없는 긴 다리… 매혹적이었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건지 목정침은 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빨리 걸어.”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알겠어요…” 오늘의 태양이 뜨거워서 사람이 다 탈것만 같았다. 해변가 파라솔로 걸어가 진몽요는 선크림을 경소경에게 건넸고 선베드에 엎드렸다. “좀 발라줘요, 골고루. 타면 안 예쁘니까.” 경소경은 자연스럽게 임무에 충실해서 꼼꼼하게 발랐다. 진몽요는 온연이 서서 움직이지 않자 재촉했다. “목정침한테 발라 달라고 해. 다 바르고 나서 물 속에 들어가야지. 너 타면 겨울 지날 때까지도 피부색 안 돌아오고 탈각 돼. 생각만 해도 끔찍해!” 온연은 두피가 움찔하며 이미 진몽요를 패고 싶은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목정침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못하는 말이 없었다. 일부러 그런거겠지?! 그녀가 주춤 거리자 목정침이 무표정으로 선크림을 들었다. “누워.” 상대방이 괜찮다고 하니 그녀도 억지부릴 이유가 없었다. 선크림 한번 발라주는데 뭐 별거 있나…? 그녀는 고맙다고 말한 뒤 옆에 있던 선베드에 엎드렸다. “들만 발라주면 돼요, 앞은 내가 할게요.” 목정침은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창백한 피부에 머물렀고, 그의 기억이 맞다면 그녀의 몸에는 점도 거의 없었고 몽고반점 같은것도 없었다. 그저 예전에 그를 대신해서 맞은 칼 흉터만 남아 있었다… 이렇게 좋은 피부가 타버리면 정말 아까운 일이었다. 그는 경소경보다 더 세심하게 발랐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 때문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졌고 호흡도 살짝 가빠졋다. 빠르게 다 발라준 뒤, 그는 선크림을 내려놓고 먼저 수심이 깊은 물 쪽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으로
예군작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일어나 옷깃을 정리한 뒤, 바로 클럽에서 나왔다. 온 몸에 술냄새를 풍기며 예가네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저택은 너무 불안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는 취했고, 술기운이 너무 올라와서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며 국청곡의 이름을 불렀다. 국청곡은 자고 있다가 놀라서 깼고, 아이가 혹시라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잠옷 원피스를 입고 일어나서 나와봤다.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그녀는 마음속 분노가 삭으라 들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저녁에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 아이가 깰까 봐 걱정도 안돼요? 가요, 방에 가서 쉬게 내가 부축 해줄게요. 술 많이 마셨는데 속은 괜찮아요?” 그녀가 팔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녀를 품에 안았고,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힘으로 안았다. 그녀는 살짝 발꿈치를 들었고, 그를 밀어내야 할지 계속 안고 있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분명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다를 수 있지? 그녀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당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갑작스럽게 나를 떠날 거예요?” 그녀는 살짝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아니요. 당신 취했어요, 그만해요. 너무 늦었어요.”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턱을 잡은 뒤 강제로 그를 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한테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럼 날 떠날 생각 해본 적 있어요?” 그녀는 술 취한 남자를 상대하기 피곤해서 솔직하게 답했다. “있어요, 됐죠? 난 당신이 완전 체념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떠날 거예요.” 그는 침묵했다. 갑작스러운 고요함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국청곡은 단호하게 대답한 걸 후회했다. “당신 술 먹고 주정부리면 나 계속 무시할 거예요.” 그는 무섭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는 강제로 그녀를 안아서 안방으
목정침은 여유롭게 그를 보았다. “어디서 날 봤는데? 목가네는 절대 아닐 테고. 네 당시 그 신분으로는 목가네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잖아.” 예군작은 그가 총구를 겨누는 것 같은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여자들을 다 쫒아 낸 뒤 두 사람만 남았을 때 말했다. “맞아, 목가네는 아니야. 우리 엄마랑 내가 살던 아파트 밑이였지.” 아파트 밑? 목정침은 자세히 회상을 했다. 전에 한번 그가 아버지를 따라서 회사에서 회의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파트에 들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랜 친구를 금방 만나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는 의구심을 갖지 않고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대충 10 여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은데 아마 그때였던 거 같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아버지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거였는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약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어쩌면 그 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일을 알게 만든 걸까? 왜 그가 그런 곳에 가게 한 걸까? 아버지는 그를 완전히 바보취급 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며 예군작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생각났겠지. 그때 나도 밑에서 놀고 있었어. 아버지가 위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나도 예전처럼 신나게 따라올라 가려다가 형을 봤어. 그 순간 내 두 다리는 굳어버리고 말았지. 형한테 호기심도 생기고 질투도 나면서, 처음으로 내가 사생아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 형은 외제차 안에 타고 있고, 제일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랑 빛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당당하게 아빠랑 나가 보지도 못 했어. 단 한 번도… 나랑 우리 엄마가 아파도, 아버지는 사람을 보내셔서 우리를 병원에 보내주셨지. 난 언제부터 아빠를 싫어했을까…? 거의 기억도 안 나. 근데 갑자기 싫어한 게 된 건 아니고,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감정이 쌓였어. 난 우리 엄마도 싫
국청곡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이 같이 자주길 원했었나? 예전에는 그녀가 방에서 자는 않는 것은 물론, 집에서 자지 않더라도 그는 절대로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를 피하고 있었다. 그녀는 요즘 자꾸 그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출산을 하고 상처부위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그는 절대 남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회사로 가는 길, 예군작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지만, 아택의 얼굴엔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예군작은 아택이 꼴보기 싫었다. “연애라도 시작했어? 아침부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아택은 정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냥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요. 도련님은 왜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예군작은 국청곡을 떠올리자 화가 났다. “물어보지 마, 말하기 싫어.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클럽 가서 스트레스 좀 풀자.” 아택은 황급히 말했다. “저는 못 갈 것 같습니다, 도련님 혼자 다녀오세요. 안야씨가 저녁은 집에 와서 먹으라고 해서요.” 예군작은 그의 말에서 눈치를 챘다. “오,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는 거야? 이제 놀러도 안 가게? 남자가 그렇게 성실해서 어따 쓰게?” 아택은 사실대로 말했다. “단지 노는 게 지겨워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자기자신을 잃기 마련이니 안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군작은 아택을 강요하지 않았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목정침이었다. 목정침과 그런 곳에 가면 재밌지 않을까? ...... 저녁. 목정침은 접대가 있다고 말한 뒤 집에 돌아와서 밥을 먹지 않았다. 온연도 그를 매우 믿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만약 그가 예군작에게 끌려가서 논 걸 알게 되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테다. 목정침은 장소에 도착한 후에서야 예군작이 음란하게 놀려는 걸 알았다. 룸 안에는 야릇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여자들은 다리를 훤히 내놓고 여러가지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며, 예군
아택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예가네에서 어르신 밑에서 목숨을 받쳐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나중엔 예군작 밑에서 일을 하면서, 클럽도 다니고 여자를 만나봤지만, 진짜 연애를 하려니 그는 하지 못 했다. 그는 꼭 찌질한 사내자식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가 대꾸를 안 하자 안야는 살짝 실망했다. “대체 이유가 뭐예요? 난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요, 우리 정상적인 부부처럼 살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가 지금 부부처럼 살고 있는 게 맞아요?” 아택은 그녀와 처음 자게 되었을 때가 떠올랐고, 그때는 예군작 때문에 임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으로 했었다.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가면 되잖아요…” 안야는 그가 매우 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꼭 그녀가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수치스러워서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이 싫으면 나도 강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당신도 예군작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니까 밖에서 많이 해봤을 거 아니에요. 원래 돈 많은 남자들은 다 그렇잖아요, 나 이해해요.” 아택은 머리가 아파왔다.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도련님은 다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치셨는데 밖에 나가서 놀 시간이 어딨었겠어요? 이미 성실해지신지 오래 되셨고, 나도 매일 그 분만 따라다니니 혼자서는 더욱 그럴 일이 없어요. 나도… 싫은 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좀 필요해서 그래요.”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안야는 빠르게 주방을 정리했다. “당신한데 준비할 시간을 주면 언제까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일단 들어와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택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갔다. 안야는 갑자기 그를 안았고, 먼저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느껴지자, 아택은 숨이 멎었지만 이내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쌌다. …… 예군작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고, 국청곡이 안방이 아닌 아이방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 방은 잠겨 있어서
아택은 침을 삼켰다. “아…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예군작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외투를 챙겼다. “나 혼자 운전해서 퇴근할게, 너도 들어가.” 예군작은 대답을 한 뒤, 그를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고, 두 사람은 회사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각자의 길을 갔다. 예군작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을 하면서, 아택은 여전히 그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어르신보다 더 파악하기 힘들었고, 사람의 마음은 깊기 때문에 한 사람을 파악하지 못 한다는 건 절대적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아택이 집에 돌아왔을 때 안야는 아직 자고 있지 않았고, 그들 대신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낸 뒤, 또 능숙하게 주방에 들어가 그에게 줄 요리를 했다. 그녀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택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누군가 불을 켜 놓고,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는 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소매를 걷어 올린 뒤 주방에 들어가 그녀가 요리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애기가 말 잘 들었어요?” 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들었어요, 사실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는데, 아주머니는 안 써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매달 소비를 좀 아낄 수 있잖아요. 당신 돈 버는 것도 힘든데, 우리끼리 아껴서 살면 좋잖아요. 당신은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요, 하루종일 일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런 건 내가 하면 돼요.” 아택은 그녀에 의해 강제로 옆으로 쫓겨나서 완전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런 돈은 아낄 필요없어요. 집안 일도 하고 애도 보는데 당신도 힘들겠죠. 내 일은 엄청 힘든 편은 아니에요. 평소에 대부분은 거의 한가해서요.” 안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웃었다. “안 힘들면 다행이에요. 사실 내가 봤을 때 예군작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적어도 당신한테는 잘해주니까요.” 아택은 평소에 뒤에서 예군작의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 점은
진몽요는 억울해했다. “그러게 누가 나한테 장난치래요? 나도 순간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서 손부터 나간 거고요…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민망했어요, 당신 부모님이 다 봤잖아요.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고, 진짜 창피한 건 나라고요! 어머님 아버님이 봤을 때 내가 엄청 예의 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내가 방금 식당 입구 봤었는데, 우리 몇 명 밖에 없었어요~” 경소경도 진짜로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단순한 걸 알았기에, 생각이 짧은 건 정상이었다. “알겠어요, 그만 해명해요. 해명하는 건 감추려는 거고, 감추려는 건 사실이라는 거잖아요.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참… 됐어요, 어차피 당신이 맨날 집에서 안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당신이 이런 사람인 거 이미 알고 있으시고,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거예요. 이번 생에 그 인식은 달라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진몽요는 호기심에 물었다. “부모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요?” 경소경은 입꼬리를 올린 뒤 못된 웃음을 지었다. “생각이 간단하고 사지가 발달된 사람이요.” 이 간단한 한 마디는 당연히 매를 벌었다. 백수완 별장으로 돌아온 후, 진몽요는 시간이 어느정도 됐으니 강령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됐어요? 말 좀 해줘봐요.” 전화 너머 강령은 너무 웃어서 주름이 졌다. “난 괜찮은 거 같아. 그 분이 나한테 선물도 준비해 주셨더라고, 근데 사람이 많아서 민망해서 바로 못 주셨데, 그래서 차에서 주셨어. 그 분이 그리신 그림이었어, 그럴듯하게 도장도 찍혀 있더라고. 그 분은 짝을 찾아서 안정적으로 삶을 살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들 알다시피 그분은 불만이 없고, 내가 마음에 든다길래,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도 괜찮다고 했지. 그 분 얼굴이 너무 빨개지셔서 어둠속에서도 빨개지신 게 보이더라. 난 그저 그 분이랑 공통된 관심사가 없
강령은 얼굴이 빨개졌다. “네, 좋네요… 제 딸도 샤브샤브를 좋아해서요, 나중에 같이 갈게요.” 진몽요는 이 좋은 소식을 듣고,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미 신나게 웃었을 테다. 허영준이 샤브샤브 가게를 갖고 있는 줄은 몰랐고, 이 가게는 정말 그녀의 입맛을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그녀가 앞으로 샤브샤브를 배 터질 때까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인가? 허영준은 경성욱처럼 말이 많지 않아서, 식탁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밥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온 뒤, 허영준은 강령을 보며 물었다. “혼자 사시죠?” 이 말은 첫 맞선 자리에서 묻기엔 조금 이상했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 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진몽요는 허영준의 바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아 강령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혼자 살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자주 보러가요, 어차피 멀지도 않으니까요.” 허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다들 가는 방향이 다르시니, 제가 가는 길이 같아서 데려다 드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다들 왔다 갔다 하실 필요 없잖아요.” 그랬다. 허영준은 그저 말이 별로 없었지만 마음씨는 세심해서 이미 가는 길이 같은지 아닌지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몽요는 웃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저씨.” 강령과 허영준이 차를 타고 멀어지자 하람은 진몽요에게 물었다. “네가 봤을 땐 어떤 거 같아?” 진몽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경소경이 끼어들었다. “이게 이 사람 맞선도 아닌데, 이 질문을 왜 이 사람한테 하세요? 이 사람 생각은 중요하지 않죠, 어머님 마음에 드셔야 하는 거잖아요.” 하람은 그를 노려봤다. “그럼 네가 봤을 땐 어떤 것 같은데? 너희 생각도 중요하지, 아니면 왜 다같이 밥을 먹었겠어? 그럴거면 그냥 두 사람 따로 만나서 얘기 나누게 했지…” 경소경은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사람은 괜찮은 거 같아요, 성실하고, 근데 말은 잘 못 하시네요.” 진몽요는 경소경의 피드백이 너무 일반적이라고
진몽요는 이런 일을 참고 있을 수 없어서, 경가네 공관에서 나오자마자 강령에서 살짝 얘기를 흘렸다. 강령의 태도는 사람을 본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는 느낌이었고, 이미 한번의 실패를 통해서 조금 더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를 봐야 했다. 순식간에 주말이 다가왔고, 진몽요는 원래 온연이랑 놀러 나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 온연은 진몽요가 엄마에게 맞선을 주선하려는 걸 알고 의아해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그런 것 같았다. 나이가 젊든 많든, 다들 짝이 있어야 했다. 사람은 원래부터 무리지어 사는 동물이니 그 누구도 혼자 외롭게 살고싶어 하지 않았다. 백수완 레스토랑에 예약한 룸에 경소경은 요리를 배치한 뒤, 모든 게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이제 봄바람만 불어오면 됐다. 그 ‘봄바람’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강령은 잘 관리한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사돈, 그 분 만나 뵌 적 있으시죠? 좀 웃기실 것 같지만, 저 조금 긴장되네요. 이런 일까지 다들 출동해주시니 조금 죄송해서요.” 하람은 웃었다. “만난 적 있어요, 저희 집 사람보다 더 바르게 생겼으니 걱정 마세요. 마음이나 겉모습이나 다 이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경성욱은 옆에서 감히 반박하진 못 했다. 그의 동문이 어디가 더 낫단 말인가? 그가 그렇게 후졌나? 사람들이 거의 30분정도 기다린 뒤, ‘봄바람’이 도착했다. 얼굴엔 비록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여전히 젊었을 때의 풍채가 보였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경성욱의 동문은 여러 방면에서 못난 게 없었다. 젊은 사람을 사이에 있어도 경소경처럼 인기가 많았고, 이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잘생긴 아저씨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나올 때 근처에서 차가 막혀서, 마음은 급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서요. 제가 사죄의 의미로 이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경성욱이 말수가 적은 걸 알고 분위기를 살리는 일은 다 하람이 했다. “괜찮아요 허씨, 저희가 남도 아닌데요 뭘.” 말을 하면서 그녀는 강령의
경소경은 경성욱이 아이를 안고 싶어하는 걸 알고 바로 아이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세요.” 경성욱은 기쁘게 아이를 받은 한번 살펴보았다. 사실 기저귀는 갈은지 얼마 안돼서 깨끗했다. 경소경이 한가한 걸 보자 진몽요는 그를 째려봤고 경소경은 눈물없이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를 안기 싫은 게 아니라 기회가 없었던 거였다. 식사 시간.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분유를 먹고 있었고, 유모차는 하람 옆에 있어서 하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를 놀아주었다. 진몽요는 하람은 완전 존경했다. 처음에 그녀는 하람이 아이에 대한 열정이 한 순간일 줄 알았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귀찮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고, 늘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하람에게 아이를 맡겨서 그녀도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하람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요즘 내가 애 보느라 사돈이랑 쇼핑할 시간도 없었고, 연락할 새도 없었는데, 넌 사돈이 혼자 계시는데 걱정 안되니?” 진몽요는 걱정이 없는 편이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대답했다.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집에 대문 보안도 최고로 설치해 두었으니 괜찮아요. 제가 엄마 집에 가기도 해요, 시간만 있으면 가거든요.” 하람은 헛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사돈한테 새 짝 찾아드릴 생각은 없어? 너도 이제 시집왔고, 사돈도 계속 혼자 계시면 심심하시잖아, 나중에 나이 들었을 때 짝이 있으면 좋잖아. 지금은 비록 젊으셔서 마음대로 노실 수 있어도 혼자면 있으면 외롭기 마련이니까…” 중매하는 일은 하람도 처음이라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진몽요가 신경쓸까 봐 더 걱정했다. 진몽요는 그제서야 하람의 뜻을 이해하고 문득 깨달아서 말했다. “아아아… 그 일은 저도 생각 했었어요. 엄마도 예전에 스스로 노력해보셨는데, 적절한 사람을 못 찾았어요, 다 이상하고 못 미더운 사람들이었거든요. 저도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제가 생각을 많이 못 해드린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