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전화를 끊은 한지훈의 주위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긴 다리를 번쩍 들어 지프차에 탄 한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부터 난 북양 총사령관 자리를 포기한다. 앞으로 난 군과 그 어떤 관련도 없는 민간인이야. 그리고 신룡전 애들한테 전해. 최대한 빨리 S시로 이동한다. 그리고 용오, 용육, 용칠, 용팔. 너희들은 산장에 남는다.”“사령관님, 정말 전역하실 겁니까?”용일이 다급하게 물었다. 북양왕, 현 시대의 가장 뛰어난 명장, 용국의 상징이자 8대 용장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 이대로 모든 걸 버린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앞섰다.“그래. 이미 결정한 일이니 더 이상 토달지 마. 타워 팰리스로 출발한다.”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한 한지훈이 거세게 엑셀을 밟았다.‘우연아, 조금만 참아. 내가 곧 갈게. 이제부터 넌 내가 지킬 거야.’이에 용일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이 용일, 죽을 때까지 사령관님을 따르기로 맹세한 몸, 저도 파용군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신룡전 소속으로서 사령관님을 모시겠습니다!”“용이 역시 죽을 때까지 사령관님을 따르기로 맹세한 몸, 저도 파용군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신룡전 소속으로서 사령관님을 모시겠습니다!”뒤이어 용일부터 용팔까지 모든 8대 용장이 파용군의 직책을 내려놓고 오로지 신룡전의 8대 용장으로서 한지훈을 보좌하기로 선포한다.신룡전, 비록 파용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민간 비밀 조직일 뿐, 공식적으로 군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곳, 국가가 아닌 오직 한지훈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 모인 곳이기도 했다.힘들 결정일 텐데 기꺼이 그의 뜻에 따라준 8대 용장을 바라보던 한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용국의 가장 신비로운 곳, 용각.경계가 삼엄한 내각 대청의 원탁에 네 명의 중년 남자가 앉아있다.전화기를 내려놓은 신한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휴, 어쩜 나이를 먹어도 변하는 게 없니. 여전히 고집불통이군.”“왜요. 저쪽에서 먼저 끊은 겁니까?”작은 키에 통통한 몸매, 금테
눈물 범벅이던 강우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저 강인한 인상의 남자가... 정말 환각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맞는 건지 의심스럽기마저 했다.가장 절망스러운 순간, 5년 동안 수없이 그리워했던 그가 드디어 나타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 사실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마음과 달리 몸은 이미 이 상황을 인지한 듯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드디어... 드디어 왔네요. 드디어...”한지훈은 품에 안긴 가냘픈 그녀의 등을 내려다 보았다.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확연히 마른 몸이 그 동안의 고생을 말해 주는 듯했다.강우연의 눈물과 핏방울을 닦아주던 한지훈의 눈동자는 그녀의 총상을 발견하고 다시 차갑게 식어버렸다.심장과 단 몇 센치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정말 하마터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살의가 치솟았다.“으악, 으흑흑...”한편, 김태우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양예나의 등을 다시 꾹 밟았다.비록 등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양예나는 감동의 미소와 함께 한지훈과 강우연을 바라보았다.방금 전 몇 미터나 되는 곳에서 훌쩍 뛰어내려 강우연을 구하던 그 모습, 마치 영화속 멋진 남자주인공, 동화속 왕자님처럼 비현실적이었다.그와 동시에 양예나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설마... 저 남자가 고운이 아빠?’“우연아, 드디어... 드디어 만났구나. 축하해. 이제 저 사람이랑 행복하게 살아. 다시는 이런 데 오지 말고... 영원히 행복하게...”속삭이듯 이 말을 내뱉은 양예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스르륵 눈을 감았다.“탕!”김태우의 총구에서 발사된 총알이 양예나의 두 다리를 관통했다.“꺄아악!”양예나의 비참한 비명소리가 건물을 가득 채웠다.하지만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김태우는 저 멀리 서로를 안고 있는 한지훈과 강우연을 바라보며 악을 썼다.“당장 잡아! 저 자식들 당장 내 앞으로 끌고 오라고!”저벅저벅.발걸음 소리가 건물을 가득 채우고 김
도검과 곤봉을 든 수백 명의 장정들이 그들을 향해 뛰어왔다. 그들의 기세에 강우연은 그 자리에서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데도 강우연은 어깨가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내며 연약한 몸으로 한지훈의 앞을 막아서 그를 보호하려 했다. 그녀는 손에 중절모를 들고 파이프를 피는 중년 남자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제 잘못이에요. 이 사람은 풀어주세요! 제가 다 책임질게요... 제발요..."다리 힘이 풀려 스르륵 쓰러지는 그녀의 어깨를 따뜻한 손이 감싸주었다.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화가 난 얼굴을 한 한지훈을 보면서 말했다."뭐 하는 짓이에요! 김씨 가문의 김정학 어르신이에요. 어르신의 수하만 몇천 명이에요, s 시의 탑4 재력가중의 한 명이세요. 당신이 상대할 사람은 아니니 먼저 고은이를 데리고 이 자리를 떠나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한지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다정한 눈빛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정리해 주면서 말했다. "자기는 내 사람이야, 내 여자가 누구 앞에 무릎 꿇고 비는 걸 볼 수 없어.""아! 삼촌... 삼촌... 살려줘요! 제발요..."피투성이가 된 김태우가 김정학을 향해 울부짖었다. 김정학은 그런 김태우를 쓸쓸한 눈빛으로 보았다. 너무나 비참한 모습을 한 조카를 보고 있자니 분노가 몸에 치솟았다."감히! 내 조카를 건드려? 죽는 게 두렵지 않나 보군?"한지훈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강우연을 자기 쪽으로 끌어안으면서 말했다."당신이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이놈!"김정학의 분노한 소리에 뒤에 있던 수백 명의 수하들이 도검과 곤봉을 꽉 쥐어 올렸다. 김정학의 한마디면 한지훈과 강우연을 흔적도 없이 썰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앞에서 두 눈 똑바로 이런 말을 하는 녀석은 처음이군. 너에게 두가지 선택지를 주겠다. 하나는 무릎 꿇고 빌게 된다면 사지를 못 쓰게 만드는 거로 끝내겠어. 다른 하나는 너와 이 여자 둘 다 죽는 거야."김정학의 말을 들은
김정학 옆에 있던 부하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르신, 따라가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그냥 보내실 셈입니까?”부하의 말에 김정학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귀싸대기를 갈겼다. 어찌나 세게 후려쳤는지 부하가 땅에서 뒹굴 정도였다. “이런 쓸모없는 머저리 같은 것들! 썩 꺼져버려!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야!”김정학은 분노로 끓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텅 빈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땅에 널브러져 있는 부하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S시에서 감히 김씨 가문을 대적할 상대가 있다니……김정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빨리! 형님한테 가야겠어. 앞장서!”김정학은 이 일을 한시라도 빨리 김씨 가문의 주인인 김정필한테 알려 그가 나서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김태우는 감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인데…… 한지훈이 그리도 막강한 실력을 갖춘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다니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낭월 산장.강우연은 지프차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했고 온통 피투성이인 몸을 하고 비틀거리며 침실로 돌진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편히 잠든 고운이를 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고운이가 울음소리를 들을세라 입을 가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침대 앞으로 걸어가 조심스레 쪼그리고 앉아 고운이의 조그마한 얼굴을 쓰다듬으며 울먹였다.“고운아, 엄마 왔어. 고운아, 엄마야……”옆에 있던 세 명의 의사는 갑자기 들이닥친 피투성이 강우연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분이 사령관님 부인이신가? 이렇게 다친 몸으로 지금까지 견디다니, 이게 바로 엄마의 힘인가?’강우연은 급기야 침대 앞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진 뒤에도 여전히 고운이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정신 차리세요! 얼른 방으로 모셔!”세 명의 의사는 강우연을 옆 방에 눕히고 동시에 그녀의 상처를 치료했다. 강우연의 총상을 발견하고 세 명의 의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
“당신 뭐야! 이거 안 놔! 아프잖아!”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던 강희연이지만 고개를 돌려 한지훈과 눈을 마주친 순간, 벼락에라도 맞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뭐야, 이 남자... 이 눈빛... 정말 사람이 맞긴 해?’한지훈의 온몸에서 풍기는 무거운 살기가 그녀를 삼켜버릴 듯해 숨이 턱 막혔다.겁에 질린 강희연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순간, 한지훈은 거칠게 그녀의 손을 놓아버렸고 그 충격에 강희연은 비틀거리다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강우연 역시 그대로 한지훈의 품에 쓰러지고 말았다.강우연을 꼭 끌어안은 한지훈이 다급하게 물었다.“우연아, 정신 좀 차려봐. 우연아!”한지훈의 품에 안긴 강우연은 쇼크가 온 건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상처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든 이마와 어깨, 그리고 벌써 감염이 시작된 건지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이마...한지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젠장...”마음속 걱정과 다급함은 곧바로 방금 전 강우연에게 물을 끼얹고 모욕의 말을 던지던 강희연에게로 향했다. 한지훈이 바로 일어서 그녀를 응징하려던 그때, 강우연의 희고 가는 손가락이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그리고 숨소리처럼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안 돼요. 그만... 이제 그만해요. 나 이만 돌아가고 싶어요. 우리 고운이 얼굴도 얼른 보고 싶고요. 그러니까 우리 이제 집에 가요, 네?”강우연의 진심어린 말에 한지훈도 분노를 억눌렀다.“그래, 우리 집에 가자.”동시에 강우연을 번쩍 안아든 한지훈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고...그제야 정신을 차린 강희연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거기서!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네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그런 곳인 줄 알아! 당장 잡아! 잡으라고!”강희연의 외침에 집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하지만 한지훈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순간 거구의 장정들 역시 그 자리에 얼어붙는 수밖에 없었다.지금 그의 앞을 막아선 남자가 끔찍
이와 동시에 신룡전 소속 삼천 호용 고수들은 각자 전세기를 타고 용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S시!그리고 그의 움직임은 바로 용국 항공관리국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예정에도 없는 전세기가 갑자기 몇 천대가 늘어났으니 비상 상황은 아닐지 의심할만도 했다.관리국 국장은 바로 공군 작전보고실에 이 상황을 보고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막지 말고 전부 통과시켜라 였다. 아니, 민용 항공편을 취소해서라도 전세기들의 길을 막지 말라는 내용뿐이었다.신룡전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건 결코 항공 관리국만이 아니었다. 수 년간, 각자 움직이며 작전을 이어가던 그들이 이렇게 한 곳에 모인다는 건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징조, 용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비밀 조직들이 전부 은밀하게 신룡전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리고 그들의 첩보원들이 전한 소식은 전부 동일했다.신룡전 호용 고수들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S시!용국의 작은 도시에 불과한 S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다들 의아할 따름이었다.다시 낭월 산장.지하실을 나선 한지훈이 거실로 돌아오고 용일이 빠르게 다가와 상황을 보고했다.“신룡전 삼천 호용 고수들 전부 용국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차례대로 S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그래.”짧게 대답한 한지훈이 창문 앞에 서 묘한 표정으로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4대 용존님도 S시에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사령관님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요.”4대 용존, 한지훈을 제외하고 용일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기에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흥분이 느껴졌다.삼천 호용고수에 4대 용존까지 모였으니 금조그룹이 아니라 S시, 아니. 동원구의 모든 재벌가 그룹들이 함께 힘을 쓴다 해도 결코 막을 수 없는 초강력 팀이 결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알겠어. 호용 고수들은 S시 외각에서 주둔하라고 해. 평범한 시민들한테 피해주지 않도록 조심하고. 행적이 드러나지 않게 은밀하게 움직이라고 전하고.
곧 큰 사건을 앞드고 있어서일까? S시 전체에 기이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그리고 잠시 후, 송호문의 사무실.그의 앞에는 김정학의 세 숙부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묘한 분위기의 정적 끝에 세 사람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송 청장, 며칠 뒤에 우리 가문에서 아주 성대한 행사를 열 예정이네. 장소는 여기 지도에 그려진 범위, 참여 인원은 약 2000명쯤 될 것 같아. 송 청장 애들이 괜히 이 근처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행여나 우리 가문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들린다 해도 행사가 끝나고 나서 다시 얘기했으면 좋겠네. 괜히 안 좋은 일에 휘말릴까 봐 걱정돼서 그래. 우리 송 청장,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나?”너무나 무례하고 건방진 요구에 송호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김해준 이사장님! 이곳은 S시 경찰청입니다. 이사장님 집 안방이 아니라고요. 이사장님 말씀이 정말 통하실 것 같습니까? 경찰청 청장을 이렇게 협박하고도 정말 무사할 거라 생각해요? 그쪽 집안과 관련된 그 추잡한 일들 제가 정말 탈탈 털어볼까요?”송호문의 가슴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재벌가 사람들에겐 대통령마저도 청와대를 잠깐 스쳐가는 손님일 뿐이라지만 공권력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렇게 대놓고 협박할 수가 있나 싶어 화가 나고 기가 막혔다.하지만 그의 분노에도 세 사람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하하, 송 청장, 그래. 자네가 우리 가문이 하는 일에 대해 불만이 많다는 거 우리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 조카가 동원구 군단장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그리고 자네가 주장하는 우리 가문의 범죄들, 아직 혐의에 불과하지.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잡은 거 없을 텐데... 우리도 어디까지나 좋은 마음에서 자네를 만나러 온 거란 걸 알아줬음 좋겠네. 우리 송 청장 다칠까 봐 진심으로 걱정되는 마음에서 말이야.”말을 마친 김해준 일행은 바로 사무실을 나섰다.혼자 남겨진 송호문은 한참을 씩씩대다 결국 찻잔을 바닥에 내팽개쳤다.“미쳤어!
문앞을 막은 직원들이 바로 허리를 숙인 채 뒤로 물러서고 그 사이로 지팡이를 든 노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백발이 무성하고 거동도 편치 않은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죽지 않은 날카로운 시선이 남자가 한때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었는지 그대로 말해 주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바로 고개를 숙였을 그 눈빛도 전장에서 진정한 죽음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 피부로 느꼈던 한지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기에 태연하게 그를 맞이했다.한편, 혐오 가득한 시선으로 강우연을 훑어보던 강준상이야말로 한지훈을 마주한 순간 움찔하고만다.‘저 청년... 어떻게 저런 눈을 가지고 있지? 마지 사신 같아. 아니, 맹수 같은가... 어찌 보면 세상 풍파 다 겪은 노인 같은 눈이기도 하군.’강준상, 50년째 강운그룹 회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존재, 강운그룹을 삼류 중소기업에서 지금의 대기업으로 키운 장본인이기도 했다.“할아버지, 제 말이 맞죠. 강우연이 글쎄 남자랑 같이 집에 돌아왔다니까요. 게다가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 할아버지더러 직접 마중까지 나오라고 하는 건지...”강준상을 부축해 함께 나온 강희연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강희연, 강우연의 사촌언니인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동생을 싫어하게 된 걸까?이 모든 감정의 시작은 바로 질투였다.딸이라곤 강우연, 강희연 둘 밖에 없는 집안이었지만 강희연이 아무리 노력해도 할아버지 강준상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손녀는 바로 강우연이었다. 먹고 입는 것에서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건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도 강준상은 항상 강우연을 대동했으니까.5년 전, 결혼도 하지 않은 강우연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집안에서 쫓겨난 뒤에야 강희연은 그 자리를 대신해 강준상의 곁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그래서 강희연은 강우연이 증오스러웠고 다시 나타난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불안했다.이제 겨우 익숙해진 이 모든 것들을 전부 빼앗아가는 건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한편, 강준상은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역외 강자들은 원래도 호의를 베풀리 없었지만, 설령 장자진의 말대로 서천술이 정말 공심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한지훈은 절대 자신의 정혈을 넘겨줄 리 없었다. 그는 여전히 한 씨 집안 전체가 도살당한 그 모습이 지금까지도 눈에 선했다. 그렇기에 한지훈은 언제나 자신이 충분히 강해야만 주변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원히 자신의 운명을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었다. “그래? 좋아, 서천술이 정말 나랑 끝장을 보고 싶다면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하지만 적어도 넌 그릇이 안돼!” 이내 더 이상 상대하기도 귀찮았던 한지훈은 몸을 돌려 소파에 앉았다. 그 말을 들은 신 씨 어르신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뚫어져라 한지훈을 주시하였다. 방금 그가 장자진을 때린 건 단지 도발이라 한다면, 지금은 서천술을 향해 직접적인 선전포고를 한 것과 같았다. “또 하고 싶은 말 있어?”한지훈은 차갑게 신 씨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 씨 어르신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은 없어요.”장자진을 반쯤 죽일 정도록 때렸는데, 이 상황에 그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뱉으려고 준비했던 그 말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럼 당장 꺼지지 못해!”한지훈은 차갑게 한마디 던졌다. 이내 신 씨 어르신은 급히 앞으로 나가 장자진을 일으키고는 허리 굽히며 말했다. “네, 저희 바로 물러가겠습니다!”그는 장자진을 부축하고는 조용히 한 씨 공관을 나섰다. 두 사람이 떠난 후에야 한지훈은 사람을 보내 다시 도청 전인을 불렀다. 곧이어 도청 전인은 한지훈에게 다가와 공손히 물었다. “주상, 저한테 분부하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한지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지난번 역외 강자들이 돌아온 시점은 언제였지?”도청 전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대답했다. “음... 약 100여 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번에 저희 용국은 역외에서 돌아온 강자들의 음모에 의해, 8개 나라의 협공
한지훈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장자진은 다시 한번 한지훈을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한지훈! 네가 감히 내 스승님의 공심을 의심해?”“그리고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우리는 너랑 협상하러 온 게 아니야. 너는 마땅히 용국의 북양 왕으로서 용국을 위해 공헌해야 하는 거야. 설령 자신을 희생해서라도!”“그게 바로 너의 직책이지. 만약 방금 네가 한 그 말이 소문이 나기라도 한다면, 너는 용국 수억 명의 백성들로부터 버림받게 될 거야!”장자진은 말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눈앞이 순간 깜깜 해나더니 이내 탁 하는 소리를 듣게 됐다. 그는 한지훈의 따귀에 머리가 기울어진 채 몸이 날아가게 된 것이었다. “털썩!”장자진은 바닥에 넘어졌고, 그의 왼쪽 얼굴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찍혀 있었다. “자신을 희생하라고? 아니면 용국 백성들로부터 버림받을 거라고? 대체 누가 너한테 이딴 걸 가르친 거야?”“그럼 네 사부님은 그렇게 공심이 많으시다면서 왜 너를 희생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대? 설령 오늘 일을 퍼뜨린다 하더라도 용국 백성들이 네 뜻대로 움직일 것 같아?”“팍!”장자진이 일어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또 한 번 따귀를 후려쳤다. 두 번째 따귀는 첫 따귀보다도 소리가 더욱 우렁찼고, 심지어 입구에 서 있는 천검종 제자조차도 똑똑히 들었다. 장자진은 제대로 화가 났다. 필경 그는 역외 강자의 제자이기도 하고 게다가 그는 역외에서도 약간의 지위가 있었기 때문이다.한지훈 같이 의지할 데 없는 작은 인물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명산 배후를 가진 인물들이라 할지라도 그의 앞에서는 공손해야 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감히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따귀를 때릴 수가 있는 건지? “한지훈! 네가 감히 나를 때려...”“팍!”한지훈은 다시 손을 들어 후려쳤다. “그래, 내가 널 때렸다. 왜?”한지훈은 차갑게 웃으며 장자진을 흘겨보았다. “한지훈, 너 정말 용국에는 널 상대할 사람이 없다
“한지훈!”그 말을 들은 장자진의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설령 넌 준천신계 실력이긴 하지만, 역외 강자들의 대결은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 알기나 해? 다들 최소 2성 현급 천신계 강자들인데, 고작 네 실력으로 어떻게 2성 현급 천신계 강자를 이길 수가 있겠어?”“지금 네가 용국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네 정혈을 내놓고 용국 역외 강자들이 이번 대결에서 상대를 이기도록 돕는 거야!”“이건 용국을 위해, 그리고 용국의 백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야!그리고 이건 나의 사부님 혼자만의 뜻이 아니라, 모든 용국 역외 강자들의 뜻이자 무종의 뜻이기도 해!”장자진은 시큰둥한 얼굴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그 사람들은 대체 뭔 근거로 날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건데?”그러나 한지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한지훈!”그러자 장자진은 단단히 화가 났다. “네가 굳이 유럽 천신계 강자들을 피투성이로 만들지만 않았더라면, 용국은 이렇게까지 큰 화가 일어나긴 했을까?” “네가 알렉산더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유럽은 우리 용국과 손을 잡지 않았을까? 그리고 네가 화산 11로 중 8명이나 죽인 사실도, 역외에서는 이미 다 소문을 들었어! 그러니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야말로 네가 죄를 씻고 공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야. 네가 정혈을 내놓기만 한다면, 이전에 네가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 역외 강자들은 더 이상 탓하지 않을 수도 있어!”장자진은 여전히 단호하게 한지훈을 향해 소리쳤다. 그가 보기에는, 서천술이 한지훈에게 건넨 조건은 이미 충분히 합리한 조건이었다. 그런데 정작 한지훈은 조건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감히 서천술을 안중에 두지도 않고 있다니. “한 선생님, 사실 장 선생께서 말씀하신 건 단지 한 방면일 뿐입니다. 저 역시 한 선생님이 용국의 북양 왕으로서 용국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민이 존경하는 북양 왕으로서도, 이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가 아닐까요?”신 씨 어
천검종의 두 제자가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굳이 나서서 막지는 않았다. 다만 동정 어린 표정으로 장자진과 진 씨 어르신이 함께 한씨 공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하… 저런 태도로 한지훈 선생님을 만나러 가다니, 죽으러 가는 거나 다름없지 않나?”“흥, 조금만 기다려 봐. 재미난 구경거리가 펼쳐질 테니까!”두 제자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한지훈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아는 그들이었고, 만약 장자진이 앞서 그렇게 거만하게 굴지 않았다면 한지훈이 굳이 그들을 문 앞에서 반 시간 동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장자진과 진 씨 어르신이 막 안으로 들어서자, 한지훈은 유유히 차를 음미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를 본 장자진의 얼굴이 즉시 일그러졌고, 진 씨 어르신이 재빨리 장자진의 어깨를 눌렀다. 제발 화를 참으라는 신호였다.어디까지나 한지훈도 천신급의 고수였고, 반면 장자진은 고작 사성 천급 천왕계에 불과했다. 설령 그 둘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한지훈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장자진은 내심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한지훈을 차갑게 노려보았고, 마침내 깊이 숨을 들이쉬고 분노를 가라앉혔다. 진 씨 어르신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췄다.“한지훈 선생님, 저는 천산파 진만곡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분은 역외 서천술 선배님의 제자 천산 장씨 가문의 장자진이라 합니다!”진 씨 어르신은 말하는 동안 거의 허리를 굽힌 채 공손한 태도를 유지했고, 한지훈 앞에서 그는 감히 거만을 떨 수 없었다.“무슨 일이지?”한지훈은 눈을 들지도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장자진은 한지훈이 자신과 진 씨 어르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에, 결국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북양왕 따위가 뭐라고?!무종 전체를 둘러보아도 감히 그를 이렇게 대하는 자는 없었다!진 씨 어르신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장자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오늘 너를 찾아온 것은, 내 스승님 서천술의 말을
고천덕과 낙장생이 동의한다고 해도, 문주의 허락 없이 이를 진행할 수는 없었다!이 살신을 천산으로 초대하는 것은 마치 늑대를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만약 협상이 결렬되기라도 하면 천산이 온전할 수 있을까?!“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겠군. 그럼 지금 바로 한지훈을 만나러 가도록 하지. 내 스승께서도 답을 기다리고 계시니!”말을 마치자, 장자진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진 씨 어르신이 따라 나가려 하자, 낙장생이 손짓으로 그를 불러 세우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가 어째서 천산에 있는 것이지?”“낙 원장님, 그 사실을 모르셨습니까? 세 시간 전, 장 선배님께서 막 오륙에서 돌아오셨습니다. 제가 그 소식을 듣고 즉시 그를 천산으로 초대했지요!”진 씨 어르신은 오륙과의 연락책이었으므로, 어떤 정보도 그의 귀를 피할 수 없었다.더군다나, 장자진 같은 신분이 천산 장씨 가문에 돌아와 놓고도 천산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이는 오히려 천산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다.진 씨 어르신의 말을 들은 낙장생은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 보아, 오륙의 강자들이 돌아올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그는 진 씨 어르신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가보게. 하지만 한지훈과 가급적 충돌은 피하도록 해라. 내가 보기에, 오륙의 강자들은 열흘 내로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그전까지는 우리 천산이 굳이 한지훈과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오히려 오륙의 강자들을 이용해 그를 제거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진 씨 어르신이 즉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네, 잘 이해했습니다!”그리고는 급히 몸을 돌려 장자진을 따라 나갔다.몇 시간 후, 진 씨 어르신과 장자진은 한지훈이 머물고 있는 한씨 공관 앞에 도착했다.진 씨 어르신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장자진이 한 발 앞으로 나서더니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천검종 제자들에게 명령했다.“한지훈에게 당장 나와서 나를 맞이하라고 전하라! 오륙의 서천술 대인의 적계 제자 장자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진 씨 어르신이 한 젊은 남성과 함께 걸어 들어왔다.고천덕과 낙장생은 순간 멍해졌다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들이 맞이하는 대상은 당연히 진 씨 어르신이 아니었다.천산에서조차 진 씨 어르신이 이토록 큰 예우를 받을 만한 위상은 아니었다.분명, 그들이 예를 갖춰 맞이하는 것은 바로 그 젊은 남성이었다!“고 씨, 낙 씨, 자네들이 다 여기 있었구먼!”젊은 남성이 입을 떼자 그의 나이와 신분이 단번에 드러났고, 고천덕과 낙장생은 황급히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선배님,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비록 그들은 천산의 원장이지만, 눈앞의 젊은 남성을 대할 때는 감히 거만할 수 없었다.이 젊은 남성의 이름은 바로 천산 장씨 가문의 장자진이었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신분은 바로 서천술의 직계 수제자였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무종 각 문파에서 마음껏 행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륙의 오대 명산조차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어떻게, 자네들도 한지훈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냐?”장자진이 뒷짐을 진 채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습니다. 한지훈은 젊은 세대 중에서도 천신계에 도달한 강자입니다. 그의 정혈은 반드시 서 선배님께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이번 대결은 오륙의 향후 수십 년 국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합니다!”“그래서 저희가 진 씨 어르신께 부탁드려, 한지훈을 천산으로 데리고 와서 자신의 정혈을 바치도록 할 것입니다!”낙장생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장자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흠, 내 스승께서도 같은 뜻이시다. 만약 그자가 이번 대결을 위해 조금이라도 희생할 수 있다면 우리 스승님께서는 그를 놓아주실 생각이시지!”“이전에 그가 저지른 행위들 또한 한 번쯤은 눈감아 주실 수 있을 것이다.”이 말을 듣자, 낙장생과 고천덕은 순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서천술이 천산의 일을 대신해 나설 리는 없었다.게다가 서검원이 멸문한 것도 불과 하루 이틀 전의 일이었고, 이
한지훈이 이 길을 걸어오면서 이토록 순조로울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깨달음 덕분이었다!한지훈이 눈을 감는 순간, 아득한 구천에서 쏟아지는 별빛이 그의 몸을 감싸며 무수한 기류가 그의 육체로 몰려들었다!강렬하기 이를 데 없는 힘이 한지훈의 몸속에서 점차 응축되기 시작했다!그 힘이 점점 강해질수록, 그가 호흡을 내쉴 때마다 주위 공간이 미세하게 요동쳤다!그러던 순간, 황금빛 장막이 한지훈을 완전히 감싸더니 무수한 공간 속을 끊임없이 넘나들기 시작했다!공간과 시간, 마치 모든 것이 어떤 신비한 힘과 단단히 결속된 듯했다!영역이다!한지훈의 뇌리에, 천생서문에 기록된 한 구절이 떠올랐다.진정으로 인간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영역이다! 이 영역은 단순한 검역도, 검기도 아니었다!오직 일정한 공간, 나아가 시공안에서 만물의 주인이 되는 것!즉, 그 영역 안에서는 모든 것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천상의 변화도, 기운의 흐름도, 심지어 만물의 생사마저도 오직 영역의 주인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 순간, 한지훈은 어떤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거대한 황금빛 장막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더니, 다시 구천으로부터 한지훈의 몸속으로 낙하했다!다음 순간, 그의 몸에서 아홉 마리 황금빛 창룡이 솟아올라 하늘을 휘감고 맴돌았다!천지를 뒤흔드는 용의 포효가 메아리쳤고, 용월과 용운이 경악 어린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아악!”그 신비한 힘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지훈이 포효했다!하늘 위, 아홉 마리 창룡이 일제히 소용돌이치며 치솟았고 광대한 기세가 폭풍처럼 하늘을 휩쓸었다!순식간에, 한지훈 일행의 머리 위 하늘이 붕괴되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만약 이곳이 깊은 산속이 아니었다면, 강중의 백성들은 이 이변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터였다!“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가라앉다니?!”용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발아래 대지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그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자신이 허공에 떠 있음을 깨달았다.그 발밑에
한지훈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최근 무적천이 지나치게 조용했고, 심지어 무신종마저도 산문을 굳게 닫아걸고 문파의 모든 제자들이 산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이는 분명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한지훈은 줄곧 무신종의 일거수일투족을 은밀히 감시하고 있었으나, 그동안 입수한 정보라곤 무신종이 이미 봉산했다는 것밖에 없었다. “국왕 폐하,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결코 무적천을 가볍게 보지 않겠습니다!”그렇게 말한 후, 한지훈은 국왕 및 진우와 오랜 시간 논의를 거친 뒤 작별을 고했다.비행기에 오르자마자, 그는 즉시 용운과 용월에게 연락을 취했고, 모든 천왕계 이상의 신룡전 사람들을 본부로 소집하라는 명령이었다.메시지를 받은 용운과 용월은 즉시 논의를 거쳐, 신룡전 소속의 모든 천왕계 강자들을 소환했다.현재 신룡전에는 천왕계 강자가 수십 명에 달했다.다만 그들의 경지는 아직 낮아, 대다수가 일성 준천왕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며 이성 현급 천왕계 이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그러나 예전에 비하면, 전체적인 전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날 밤, 한지훈은 신룡전 본부로 복귀한 후 모든 이들과 함께 즉시 폐관 수련에 돌입했다.신룡전의 구성원들이 빠르게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한지훈은 자신이 최근에 깨달은 공간 비진의 구체적인 활용법을 모두 전수했다.또한 몇 가지 세부 사항에 대해서도 매우 자세히 설명했다. 그날 밤, 신룡전 본부는 갑자기 황금빛 광채로 물들었고, 수십 개의 금빛 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한지훈과 용운, 용월 세 사람은 한적한 장소를 골라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들 앞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작은 연못이 있었고, 달빛이 반사되어 수면 위에 은은한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한지훈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마치 자신의 온몸의 관절과 혈도가 알 수 없는 기운을 흡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의 의식이 흐르자, 주변의 풀과 나무들조차도 생기가 넘치는 듯했다.사실, 천신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더할 나위 없이 맑은 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주자양의 손바닥이 궁녀의 얼굴에 맞자, 그 궁녀는 5미터나 날아가며 대전의 기둥에 부딪혔다.“너 같은 것이 감히 나에게 지시를 내리다니?! 내가 오늘 온 이유는 단지 국왕 폐하에게 한마디 전하려는 것이다. 18리 밖의 진가복이 바로 서 선배님께서 선택하신 장소다!”“국왕 폐하께서는 빨리 사람을 보내어, 경기장과 관람석을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 선배님과 다른 강자들이 돌아왔을 때, 저는 물론 국왕 폐하께서도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될 것입니다!”말을 마친 주자양은 국왕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주자양이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가자, 문 앞의 군사들이 그를 막으려 했으나 국왕이 손을 살짝 휘둘러 모두 물러가라며 지시했다.주자양은 돌아서서 국왕을 한 번 쳐다본 뒤, 냉소적인 소리를 내며 대전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이 장면을 본 진우는 격분하며 주자양을 쥐어뜯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지훈은 뒤에서 나와 주자양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마음 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국왕 폐하, 방금 그를 그냥 보내서는 안 되었습니다!”진우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주자양은 단지 현급 천왕계 강자에 불과했는데, 한지훈이 나서지 않아도 진우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처치할 수 있었다.그러자 국왕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주자양 하나 죽인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유자양이나 이자양도 있을 터인데 우리가 그들을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리고 이는 오대 명산과 무종 전체의 태도를 반영한 것인데, 내가 그를 죽여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국왕은 말을 마친 후 몇 명의 군사에게 의식이 없는 궁녀를 밖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그들의 의도는 모든 이가 알고 있습니다. 오대 명산과 역외 강자들이 이미 의견을 일치시킨 것 같으니, 그렇다면 제 의견은 이러합니다. 국왕 폐하께서는 최근 몇 주 동안 잠시 인내하시고, 기회를 기다리셔야 합니다.”“백성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