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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봄가을
송호문의 분노에 조명한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병원에서 신고를 받고 밤새 CCTV까지 뒤져가며 용의자들 위치를 파악했다.

사망자가 워낙 많은 큰 사건이다 보니 이번 일만 깔끔하게 해결하면 특진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칭찬은커녕 불호령이라니.

‘게다가 왜... 오히려 저 남자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눈치지?’

“청장님, 저희 용의자 체포하러 온 겁니다. 전체 철수라뇨. 그게 지금 말이됩니까? 저 자식들 7명이나 죽인 흉악범들입니다!”

송호문의 말에 반박하며 조명한은 한지훈 일행을 힐끗 바라보았다.

‘방금 전, 내가 느꼈던 건 분명히 살기였어. 청장님이 중간에 끼어들지 않으셨다면 정말 총격전이 벌어졌을지도 몰라!’

“조명한, 너 미쳤어? 네가 뭔데 나대! 너만 경찰이야? 너만 경찰이냐고! 좋게 말할 때 당장 철수해, 알겠어?”

송호문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시장님 특별 지시란 말이다, 이 자식아! 너나, 나나 자리 보전하고 싶으면 제발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고!’

비록 송호문 본인도 한지훈의 진짜 정체는 물론, S시까지 온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소지성 시장을 그렇게까지 벌벌 떨게 만들 사람이라면 결코 그가 상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보군요. 정의감에 심취한 경찰이 일으킨 해프닝 정도로 생각해 주십시오.”

송호문은 최대한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 애를 썼지만 한지훈의 차가운 얼굴에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다리마저 후들후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강제 진압이 진행되기 전에 달려왔으니 망정이지 단 몇 초라도 늦었더라면 조명한을 비롯한 경찰특공대 팀 전체가 전멸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며 두려움은 점점 더 몸집을 키워나갔다.

이때 한지훈 대신 용일이 앞으로 한발 나서며 비아냥거렸다.

“하, 일개 경찰특공대가 이런 짓을 벌여요? 정말 미치신 겁니까?”

분명 존댓말이지만 단어 하나하나 사이에 박혀있는 날카로운 가시가 송호문의 목구멍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때, 워낙 다혈질인 조명한 역시 앞으로 다가가며 소리쳤다.

“야, 너 미쳤어? 어디 청장님한테 그딴 식으로...! 두고 봐. 내가 오늘 너희들 무조건 처넣는다.”

“닥쳐! 닥치라고!”

‘이 자식이, 정말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러나.’

마음이 다급해진 송호문이 용일 일행들에게 연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직 이 친구가 뭘 잘 몰라서요. 청장으로서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때 한동안 가만히 있던 한지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쪽이 S시 경찰청 청장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송호문은 거의 이마가 땅에 닿을 듯 굽신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조명한은 물론이고 오늘 작전에 출동한 경찰들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찰청 청장,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S시 경찰의 우두머리, 경찰청에서 왕으로서 군림할 수 있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청장님이 이제 겨우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에게 허리나 굽신대고 있다니.

‘저 사람 도대체 누구지? 뭐 대통령 아들이라도 되는 건가?’

바로 그때, 빠르게 질주하던 군용 지프차가 별장 앞에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한민학이 저 멀리서부터 소리를 지르며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송 청장, 자네가 여길 왜 와! 어서 돌아가!”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던 송호문의 등이 두려움으로 움찔했다.

“군단장님이 여기까진 어떻게...”

한민학 군단장은 그 옛날 송호문이 이등병이었을 때 이미 중대장이었던 존재, 진작 전역했고 이젠 경찰청 청장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다시 만나면 여전히 두렵기만 한 존재이기도 했다.

“알... 알겠습니다.”

‘군단장까지 나섰다는 건... 우리 경찰이 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겠군...’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송호문이 살짝 뒤로 물러섰다.

등장과 동시에 송호문을 꾸짖은 한민학이 한지훈을 향해 경례를 올렸다.

“교룡군 7군단 군단장 한민학, 북양 사단장님을 뵙습니다!”

쿠궁!

그리고 다음 순간, 송호문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북양 사단장이라고?

저 남자가 혼자 힘으로 8국 연합군을 물리친, 용국의 레전드이자 최연소 사단장까지 진급한 그 한지훈이라고?

‘세상에,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야...’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조명한의 손이 덜덜 떨렸다.

몰래 소지성 시장에게 문자를 보낸 송호문 역시 여전히 가슴이 쿵쾅거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령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용일의 차가운 목소리에 한민학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지금 급하게 볼일이 있어서 그런데...”

한참을 침묵하던 한지훈이 다시 입을 열고, 결코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묘한 힘 때문일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은 동시에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지훈과 그 부하들이 별장을 떠난 뒤에야 한민학은 이미 땀으로 범벅진 얼굴을 슥 훔쳐냈다.

“군단장님,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두렵긴 했지만 소지성 시장에게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에 두려움을 억누르며 애써 물었다.

“이제 경찰 청장씩이나 된다는 자식이 자기 부하 하나 간수 못해서 이 사단을 내? 내가 제때에 도착했으니 망정이지 진짜 다들 큰일날 뻔한 거 알아?”

한민학이 매서운 눈으로 송호문을 노려보았다.

“아니, 겁만 주지 마시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씀 좀 해주세요.”

“어제 일지로에서 심각한 교통사고가 일어났었어. 그건 알고 있지?”

한민학의 질문에 송호문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S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만 수십 건, 경찰 청장인 그가 그런 사고까지 일일이 알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이때 조명한이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아, 제 동기가 그 사건 담당이라 얘기는 들었는데 그 사건, 그냥 단순 사고라던데요. 피해자가 어린 아이라 안타깝긴 했지만 별 특별한 점은 없는 사고였습니다.”

“사고?”

한민학이 픽 웃었다.

“딱 한번만 말해 줄 거니까 다들 정확히 들어. 그건 사고가 아니라 잘 짜여진 청부 살인이었어. 누군가 그 아이를 죽이려고 일부러 낸 사고였다고. 그리고 그 여자애가 누군지 알아? 아까 봤던 한지훈 사령관님 친딸이라고! 이제 알겠지. 너희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쿠궁!

‘헉, 큰일났다.’

한민학의 말에 모두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송호문이 고개를 돌렸다.

“애들 모아서 당장 그 교통사고 진범부터 찾아내, 어서!”

“네, 청장님!”

송호문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더라도 어떻게든 이 실수를 만회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한민학은 그에게 그런 기회 조차 주지 않았다.

“됐어. 이 일에 경찰이 낄 틈이 있을 것 같아? 살고 싶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눈 감고 귀 막아. 그냥 윗선에서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한민학 역시 자리를 떠버렸다.

한편, 한지훈이 별장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용일이 휴대폰을 건네왔다.

“사령관님, 용각 원로 중 한 명이랍니다.”

“그래?”

미간을 찌푸린 한지훈이 휴대폰을 건네받고 수화기 저편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신한국. 자네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고 있나? 파용군이 지금 진령을 넘으려 한다면서? 상군께서 그걸 아시고 얼마나 노여워하셨는지 알긴 하나? 용각에서 직접 나서서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 말 하나는 명심해! 괜한 충동 때문에 정말 크게 다치는 수가 있어. S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네. 그 일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자네는 그냥 거기 가만히 있어!”

하지만 한지훈 역시 강경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르신, 우리 고운이가... 절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을 텐데 바로 절 알아봤다고요. 제 자식을 처음 만난 자리는 응급실이었고 처음 만난 제 딸은 피투성이었어요. 그때 제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나 가십니까? 아버지란 사람이 딸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모르면 몰랐지 이미 알게 된 이상, 고운이도 우연이도 제가 지킬 겁니다. 제 신분이 걸리시는 거라면... 군복 벗겠습니다. 저 혼자서라도 이 복수 계속 해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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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큰 사건을 앞드고 있어서일까? S시 전체에 기이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그리고 잠시 후, 송호문의 사무실.그의 앞에는 김정학의 세 숙부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묘한 분위기의 정적 끝에 세 사람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송 청장, 며칠 뒤에 우리 가문에서 아주 성대한 행사를 열 예정이네. 장소는 여기 지도에 그려진 범위, 참여 인원은 약 2000명쯤 될 것 같아. 송 청장 애들이 괜히 이 근처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데... 행여나 우리 가문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들린다 해도 행사가 끝나고 나서 다시 얘기했으면 좋겠네. 괜히 안 좋은 일에 휘말릴까 봐 걱정돼서 그래. 우리 송 청장,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나?”너무나 무례하고 건방진 요구에 송호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김해준 이사장님! 이곳은 S시 경찰청입니다. 이사장님 집 안방이 아니라고요. 이사장님 말씀이 정말 통하실 것 같습니까? 경찰청 청장을 이렇게 협박하고도 정말 무사할 거라 생각해요? 그쪽 집안과 관련된 그 추잡한 일들 제가 정말 탈탈 털어볼까요?”송호문의 가슴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재벌가 사람들에겐 대통령마저도 청와대를 잠깐 스쳐가는 손님일 뿐이라지만 공권력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렇게 대놓고 협박할 수가 있나 싶어 화가 나고 기가 막혔다.하지만 그의 분노에도 세 사람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하하, 송 청장, 그래. 자네가 우리 가문이 하는 일에 대해 불만이 많다는 거 우리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 조카가 동원구 군단장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 그리고 자네가 주장하는 우리 가문의 범죄들, 아직 혐의에 불과하지. 제대로 된 증거 하나 잡은 거 없을 텐데... 우리도 어디까지나 좋은 마음에서 자네를 만나러 온 거란 걸 알아줬음 좋겠네. 우리 송 청장 다칠까 봐 진심으로 걱정되는 마음에서 말이야.”말을 마친 김해준 일행은 바로 사무실을 나섰다.혼자 남겨진 송호문은 한참을 씩씩대다 결국 찻잔을 바닥에 내팽개쳤다.“미쳤어!

  • 용왕사위   제13화

    문앞을 막은 직원들이 바로 허리를 숙인 채 뒤로 물러서고 그 사이로 지팡이를 든 노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백발이 무성하고 거동도 편치 않은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죽지 않은 날카로운 시선이 남자가 한때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었는지 그대로 말해 주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바로 고개를 숙였을 그 눈빛도 전장에서 진정한 죽음의 공포가 어떤 것인지 피부로 느꼈던 한지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기에 태연하게 그를 맞이했다.한편, 혐오 가득한 시선으로 강우연을 훑어보던 강준상이야말로 한지훈을 마주한 순간 움찔하고만다.‘저 청년... 어떻게 저런 눈을 가지고 있지? 마지 사신 같아. 아니, 맹수 같은가... 어찌 보면 세상 풍파 다 겪은 노인 같은 눈이기도 하군.’강준상, 50년째 강운그룹 회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존재, 강운그룹을 삼류 중소기업에서 지금의 대기업으로 키운 장본인이기도 했다.“할아버지, 제 말이 맞죠. 강우연이 글쎄 남자랑 같이 집에 돌아왔다니까요. 게다가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 할아버지더러 직접 마중까지 나오라고 하는 건지...”강준상을 부축해 함께 나온 강희연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강희연, 강우연의 사촌언니인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동생을 싫어하게 된 걸까?이 모든 감정의 시작은 바로 질투였다.딸이라곤 강우연, 강희연 둘 밖에 없는 집안이었지만 강희연이 아무리 노력해도 할아버지 강준상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손녀는 바로 강우연이었다. 먹고 입는 것에서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 건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도 강준상은 항상 강우연을 대동했으니까.5년 전, 결혼도 하지 않은 강우연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집안에서 쫓겨난 뒤에야 강희연은 그 자리를 대신해 강준상의 곁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그래서 강희연은 강우연이 증오스러웠고 다시 나타난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불안했다.이제 겨우 익숙해진 이 모든 것들을 전부 빼앗아가는 건 아닐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한편, 강준상은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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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왕사위   제2515화

    국왕은 기가 찬 이 광경에, 연신 고개를 저었다. 4대 가문을 대표하든, 한지훈과 적대하고 있는 세력이든 아무쪼록 용국은 통일된 하나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게다가 한지훈 유상에 관한 처리는 매우 중대한 일이기에 절대 허투루 할 수도 없다. 바로 이때 천자각 대전의 궁문이 열리더니 두 노인이 잇달아 대전으로 들어섰다. 바로 강만용과 신한국이었다. 두 사람이 나타나자 대전 안은 순간 고요해졌다. “폐하를 뵈옵소서!”“폐하를 뵈옵소서!” 두 각로는 연이어 국왕을 향해 경배하였다. “각로님들? 여기는 어쩐 일로...”강만용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폐하, 예 씨 어르신네 부부 두 분께서는 이미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북양 왕이 떠나기 전에 유언을 남기고 갔다고 합니다!”“뭐라고요? 한지훈이 어떤 말을 했는데요?”국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떠나기 전에 북양 왕이 폐하께 전하고픈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만약 이번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면 폐하께 미리 사죄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용국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 때문에 죄송하다고요. 그리고 폐하께서는 앞으로 몸 조심하시라고 당부까지 했습니다!”강만용은 말을 이어가던 도중, 결국 눈물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국왕 역시 눈물을 흘렸다. 이내 그는 대전 안의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 다들 말끝마다 한지훈 유상은 봉인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들 하는데!”“노서용 어르신, 제가 묻고 싶습니다. 그럼 어르신은 대체 어떻게 민부 주관으로 승진하게 된 겁니까?”국왕이 지목한 사람은 바로, 방금 소란을 일으킨 한 노신이었다. “저야 당연히 가부의 관작을 이어받아 평생 나라를 위해 힘쓴 거죠!”노인은 여전히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사실 노 씨 집안은 줄곧 산에서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힘들게 민부를 경영해 오면서, 여러 세대의 노력을 거쳐 민부의 주요 관직을 확고히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래요! 제 생각에는 다른 분들도 다들 이렇

  • 용왕사위   제2514화

    슬픔에 잠긴 강우연과는 달리, 4대 가문은 한지훈의 조난 소식을 듣고서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특히나 동방 소는 킥킥하는 소리를 내며 뉴스를 보면서 비웃기도 했다. “한지훈 이 놈, 결국 곤륜 뇌해에서 죽게 됐네. 하하!”“할아버님, 이 말은 즉 저희도 이젠 한 씨 집안을 향해...”그러자 동방 소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절대 한 씨 집안을 건드려서는 안 돼. 지금 이 순간, 한지훈은 금방 죽었지만 그의 명망은 아직 남아 있어. 이 시점에 누가 먼저 나서려 한다면, 기어코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야!”“국왕에게 미움을 살뿐만 아니라 수억 명의 용국 백성들로부터도 미움을 살 수 있어. 비록 우리 동방 가문이 세력이 방대하긴 하지만, 물은 그저 배를 띄울 수만 있을 뿐 절대 전복시킬 수는 없는 게 불변의 법칙이야!”“하지만 천자각에서 의사를 진행하게 될 때, 강우연과 한지훈의 유상을 봉관 하여 왕작에 넣으려 하는 건 절대 반대하라고 우리 가문 사람들한테 당부해!” 동쪽 소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지훈의 유상이 일단 왕작으로 봉인되게 되면, 적어도 신임 국왕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한 씨 집안의 기둥을 흔들 수 없게 된다. 하물며 신임 국왕은 정직하고 나이도 어려,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살기에도 끄떡없어 보였다. 수십 년 후 한 씨 집안의 어린 세대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겠는데, 그때가 되어 한지훈의 자녀가 과연 4대 가문의 우환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동쪽 소뿐만 아니라 다른 3대 가문도 동시에 자신의 부하들에게 같은 명령을 내렸다. 한편 그 시각 천자각에서는, “또 이의 있으신 분 계십니까?”궁인이 성지를 낭독하고 나서야, 국왕은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문무백관들은 소곤소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이건 분명히 국왕이 한 씨 집안 유상을 보호하려는 계획이었다. 왕작의 책봉이 있으면 누구도 감히 한지훈의 자녀들을 건드릴 수

  • 용왕사위   제2513화

    몇몇 종묘 장로들은 깜짝 놀란 나머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한지훈이 없다고 해서 용국이 망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절대 이 시점에 한지훈이 죽어서는 안 됐다. 열국은 이제 막 작전을 거두었고, 용국은 한창 좋은 기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 한지훈이 세상을 떠난 게 되면, 용국이 더 이상 전력이 없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셈이 된다. 즉 한지훈의 죽음은 북양이 다시 용국을 공격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해 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열국의 부대들이 다시 한번 무장하고 대기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시란치 가문도 재차 수많은 고수들을 파견하여 용국으로 돌격해 용국무종을 와해시키려 할 것이다. 동시에 용국 내부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 그야말로 국본에 치명적인 위협을 입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 생각에는 먼저 한지훈을 위해 장례를 치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국장으로 제릉에 묘를 안장하고, 용경 백성들을 제외한 용국의 각지 백성들은 모두 조문하게끔 허용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파룡군은 현재 신임 장군으로 유청을 북부 전구 총지휘자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이젠 파룡군뿐만 아니라 서효양도 통제하게 되면서 북방 방어 전구를 형성하게 됐습니다!”“다들 저의 의견에 동의하시는지요?”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국왕은 천천히 어슬렁거리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자리에 있던 장로들은 똑같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됐다. 그렇게 족히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무종 대장로가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말했다. “저는 이의가 없긴 하지만, 이번 일은 조회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무종 대장로의 뜻은 매우 명확했다. 한지훈이 전사한 후, 4대 가문은 필연적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게다가 무종 중에는 한지훈과 원한을 맺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이젠 한 마음으로 4대 가문과 손을 잡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4대 가문의 세력은 오히려 전보다 더욱 강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조회 결의를 통해, 4대 가문의 태도

  • 용왕사위   제2512화

    “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일단 국상을 치르게 되면 다른 열국이 모두 알게 됩니다.”진우는 급히 앞으로 나아가 막아 나섰다. 그러나 국왕은 고개를 젓고는 휴대폰을 가리키며 진우를 향해 말했다. “일이 지금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우리가 과연 놈들을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땅이 이렇게나 크게 흔들렸는데, 진작에 다른 열국들은 위성을 통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곤륜산을 확인했을 거야. 그리고 그 뇌해 속에 있는 사람이 바로 한지훈이라는 것도 알았겠지.” “만약 우리가 비밀리에 진행하여 숨기려 했다가 나중에 용국 백성들이 해외 매체를 통해 이 소식을 알게 된다면, 백성들은 우리의 행위에 대해 한심하게 생각할 거야!”“한지훈은 단지 북양 왕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 마음속의 신 같은 존재야. 더우기는 용국의 군혼과도 같은 존재지. 이런 사람이 지금 곤륜 뇌해에 묻히게 됐는데 우리가 비밀리로 진행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이건 내가 나라의 수령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야.” “그리고 일단 무종 장로, 종묘 장로 그리고 용각의 두 각로더러 날 찾으러 오라고 해!”국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지훈의 조난 소식이 국왕에게 안겨준 타격은, 강우연에게 안겨준 타격 못지않았다. 그동안 국왕과 한지훈 사이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갈등이 많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서로 잘 통한 사이였다. 열국을 상대하든 용국의 각 세력을 상대하든,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한지훈이 갑자기 운명하게 됐다는 것은, 곧 국왕이 자신의 팔다리를 잃어버린 셈과 다름없었다. 이미 계획한 많은 전략들은 다 무너지게 됐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할 상황이었다. 게다가 한지훈이 죽게 된 후, 열국이 용국에 가하게 될 압박까지 직면해야 했다. 이제 곧 국경에서 전보가 전해질 거라 예상도 들었다. 이러한 국면에, 국왕은 반드시 먼저 백성들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모든 사람들에게 한지훈처럼 그동안 용국을 위해 공헌

  • 용왕사위   제2511화

    이때, 우주 궤도에서 탐사를 하고 있던 위성 또한 곤륜허 쪽에서 갑자기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광막을 발견하였다. “한지훈!”강만용은 곤륜허의 방향 쪽으로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신한국은 털썩하고는 땅에 주저앉아 산꼭대기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은백색의 눈부신 빛은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았다. 한편 그 시각, 멀리 용경의 천자각에서 한창 결재를 하고 있던 국왕은 갑자기 손이 떨리기 시작 더니 이내 먹물 몇 방울이 종이에 떨어졌다. “설마 한지훈이?”국왕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종이와 펜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돌려 진우에게 물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거 아니야? 왜... 난 대체 왜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난거지?”이내 진우는 급히 휴대폰을 들어 흑병대의 몇몇 관리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우는 위성에서 찍은 동영상을 전해받게 됐다. 그 동영상은 바로 수백 배의 확대를 거쳐 찍은 곤륜허의 모습이었다. 직경이 수십메터에 달하는 용 모양의 거대한 필련이 만 메터의 고공에서 곤륜산 꼭대기에 서 있는 한 젊은 남자에게 떨어지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웃통을 벗고 있었던 그 젊은 남자는, 용 모양의 필련이 떨어지는 동시에 손에서 병기 하나를 던졌다. 저것은 오릉군 가시? 화면에서 익숙한 병기를 보아낸 진우는 저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건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어. 이 사람, 누가 봐도 한지훈이잖아! “폐하, 아마도 정말 큰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북양 왕이 곤륜허에서 조난당한 것 같습니다!”진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국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진우를 쳐다보았다. “대체 북양 왕이 어떻게 곤륜허에서 조난당하게 된 거야. 누구야! 대체 누가 그랬어!”이내 국왕은 진우의 휴대폰을 냅다 빼앗고는 그 동영상을 클릭하였다. 직접 영상을 확인한 국왕의 표정은 멍해졌다. 위성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한지훈 발밑의 산체까지 근 1

  • 용왕사위   제2510화

    정체 모를 필련이 떨어지게 되는 순간, 한지훈 체내의 자기장은 순식간에 봉쇄되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족쇄가 있는 듯이 한지훈은 제자리에 몸을 고정하게 됐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필련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찰칵!” 눈 깜짝할 사이에 필련은 완전히 떨어졌고, 한지훈은 순간 머리부터 발까지 심지어 몸속의 모든 세포가 비할 데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됐다. 그 느낌은 마치 수만 개의 화살이 심장을 뚫은 것 같았고, 또 수만 볼트의 고압 전류를 맞는 듯한 기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이 걸친 전투복은 사라지게 됐다. 심지어 그의 손에 있는 오릉군 가시조차 갑자기 알 수 없는 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갓 첫 번째 필련의 세례를 받은 후 불과 1초도 지나지 않아 수십 개의 필련이 다시 하늘에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하늘의 먹구름 덩어리 사이에서는 무수한 천둥 번개가 교차하면서 지면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지훈 발밑의 자갈조차도, 수많은 번개로 형성된 강력한 전류를 맞아 아예 투명하게 변해버렸다. 그렇게 한지훈이 거의 절망에 빠져있을 무렵, 알 수 없는 외부의 어떠한 힘이 한지훈의 체내 자기장을 다시 풀어냈다. 바로 그 순간, 한지훈은 급히 체내의 자기장을 동원하여 날아오는 수백 수천 개의 필련을 전력을 다해 막아냈다. 두 갈래의 강대한 위압이 한곳에 부딪히게 된 순간, 곤륜허 전체는 순식간에 태양보다도 백배, 천배나 더 밝은 빛을 발했다. 비록 한지훈의 온몸은 금강석처럼 단단하긴 했지만, 그 역시나 이렇게나 강대한 위압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는 피부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지훈 몸 곳곳의 상처 부위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지훈이 마지막 한 가닥의 힘을 동원하여 대항하고 있을 무렵, 그의 눈앞에 갑자기 붉은색과 검은색의 두 기류가 나타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두 갈래의 기류는 음양어의 형태로 바뀌어, 한지훈의 머리 위에서 맴

  • 용왕사위   제2509화

    “넌 잘 모를 수 있겠지만 이 음양양의진은 너를 죽지 않게끔 보호해 줄 수 있어. 만약 네가 나중에 백룡심을 융합하게 된다면, 절대 이 비밀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명심해!”“그리고 백룡심을 융합하게 되면, 너의 실력은 천신계 강자까지 돌파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마음대로 세속의 일에 손을 댈 수가 없지. 하지만 그 규칙을 어겼다가는 예상치 못한 번거로움을 초래하게 될 거야!”정봉교는 이내 단검 한 자루를 천천히 꺼냈다. “그런데... 두 분께서도 그동안 세속의 일에 자주 개입하면서...”한지훈은 예충기 역시 자신을 도와 세속의 일에 개입하여 사람을 참살한 건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정봉교와 예충기 두 사람은 일제히 단검을 자신들의 목구멍에 겨누었다. “두 분!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한지훈은 두 사람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설마 스스로 이곳에 무덤을 파려는 건 아니겠지? “한지훈,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그 놈들이 더 이상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 기 때문이야. 게다가 내가 그동안 죽인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많아. 하나같이 다 마땅히 죽어야 할 놈들이긴 했어. 하지만 너는 다르지!”“우리 이 두 늙은이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 만약 우리가 계속하여 살아있는다면, 혹시나 나중에 뇌해가 형성되기라도 한다면 그 위력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우리가 죽어야만 네가 살 기회가 있어!”예충기는 고개를 들어 먹구름으로 덮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검은 구름층 속에는 천둥과 번개가 교차하고 있었다. 비록 뇌해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자극하는 그 기세는 이미 형성되었다. “안됩니다! 어르신, 설령 내가 이곳에서 분골쇄신하더라도 두 분과 함께 무사히 나갈 것입니다! 어떻게 저 혼자 살기 위해서 두 분을 여기서 죽게 놔둘 수 있겠습니까!”이내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뽑아 들어 자신의 목구멍을 겨눴다. “만약 두 분께서 기어코 이런 태도를

  • 용왕사위   제2508화

    기나긴 오솔길을 따라 숲속으로 깊이 들어가긴 했지만 전방에는 짙은 안개만 있을 뿐 더 이상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예충기 부부는 한지훈과 함께 절벽을 돌아서고 나서야 한 낡은 비석 앞에 도착했다. 짙은 안개는 마치 이곳에서 경계가 나뉘는 것 같았다. 앞쪽에는 안개가 전혀 없지만 뒤에는 짙은 안개 바다가 여전히 있었다. “더 앞으로 나아가면 바로 곤륜허야.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곤륜이라고 할 수 있지. 과거 많은 고대 전설들이 바로 그곳에서 유래된 거야.”예충기는 눈앞의 수림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곤륜허와 곤륜이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두 곳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곤륜산에 관한 모든 전설은 사실 곤륜허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지훈은 눈앞의 광경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그곳은 온통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해 보였다. “어르신, 그나저나 곤륜허는 왜 이렇게 죽음의 기운이 짙은 겁니까?”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자 예충기는 앞으로 나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백룡심 때문이야. 백룡심은 원래 생사를 좌우할 수 있기에 죽음과 삶을 얼마든지 번갈아 왕복할 수 있지. 즉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죽음인 거야!”“그리하여 곤륜허 외부에 보이는 건 단지 죽음의 기운 뿐이야. 곤륜허 내부에 들어가야만 생기를 보아낼 수 있어. 진정한 제준의 유총에 들어서야 보아낼 수 있어.”예충기의 얘기를 들은 한지훈은 오히려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자고로 묘지라면 죽음의 기운이 모인 게 당연한 거겠지. 그런데 왜 제준의 유총에는 생기가 모여있는 걸까? 비록 내심 많은 의문이 들긴 했지만 한지훈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그저 예충기 부부 두 사람의 뒤를 따라 곤륜허의 가장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설수록 한지훈은 짙은 죽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공기 중에서는 시체 썩은 냄새까지 나기도 했다. “쾅! 우르릉!”한참을 걸어가던 와중, 하늘에서 갑자기 천

  • 용왕사위   제2507화

    조용하기 그지없던 밤이 지나가고 이튿날 새벽,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게 되었고 심지어 한지훈은 반경 1 미터 밖의 사물조차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예 씨 어르신, 이 산에는 왜 안개가 이렇게 뿌연 거예요?”한지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이것은 안개가 아니라 살기란다. 곤륜 뇌해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뇌해 부근에 다다르기만 하면 그 누구든지 죽게 되더라고!”“그 음산한 기운이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었기에 이렇게나 큰 안개를 드러낼 수 있었던 거야! 준비됐지?”예충기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출발할 준비됐습니다!”한지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예충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밖에 나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이내 예충기는 신한국과 강만용의 거처로 향했다. 방문을 열자, 두 노인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에 선 채 눈물을 머금고는 입구에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부부 두 사람, 오늘 떠나게 되면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 작은 정원은 모두 내가 너희들에게 남기는 유물이라고 생각하거라. 그리고, 여기에는 책도 뒀으니 틈만 나면 아이한테 읽어도 주고!”“다시 돌이켜보면, 우리 부부는 그래도 이 세상에도 헛되이 살지는 않은 것 같네!”예충기는 고서를 강만용의 손에 건네주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씨 어르신! 설마... 어르신이랑 사모님 혹시...”“하하, 생사는 원래 한 끗 차이일 뿐이야. 오래 살수록 더더욱 생사를 신경 쓰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수백 년을 살아왔어!”“옳든 그르든 오늘 어떻게든 한 판을 걸긴 해야 해. 만약 3일 후에 한지훈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우리 부부가 도박을 잘못 걸었다는 것을 설명하겠지. 결국 하느님한테 진 거라고 볼 수 있겠지!”“너희들 굳이 나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 용국이 유유한 역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과중에 죽은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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