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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송호문의 분노에 조명한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병원에서 신고를 받고 밤새 CCTV까지 뒤져가며 용의자들 위치를 파악했다.

사망자가 워낙 많은 큰 사건이다 보니 이번 일만 깔끔하게 해결하면 특진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칭찬은커녕 불호령이라니.

‘게다가 왜... 오히려 저 남자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눈치지?’

“청장님, 저희 용의자 체포하러 온 겁니다. 전체 철수라뇨. 그게 지금 말이됩니까? 저 자식들 7명이나 죽인 흉악범들입니다!”

송호문의 말에 반박하며 조명한은 한지훈 일행을 힐끗 바라보았다.

‘방금 전, 내가 느꼈던 건 분명히 살기였어. 청장님이 중간에 끼어들지 않으셨다면 정말 총격전이 벌어졌을지도 몰라!’

“조명한, 너 미쳤어? 네가 뭔데 나대! 너만 경찰이야? 너만 경찰이냐고! 좋게 말할 때 당장 철수해, 알겠어?”

송호문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시장님 특별 지시란 말이다, 이 자식아! 너나, 나나 자리 보전하고 싶으면 제발 내가 시키는대로 하라고!’

비록 송호문 본인도 한지훈의 진짜 정체는 물론, S시까지 온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소지성 시장을 그렇게까지 벌벌 떨게 만들 사람이라면 결코 그가 상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보군요. 정의감에 심취한 경찰이 일으킨 해프닝 정도로 생각해 주십시오.”

송호문은 최대한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 애를 썼지만 한지훈의 차가운 얼굴에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다리마저 후들후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강제 진압이 진행되기 전에 달려왔으니 망정이지 단 몇 초라도 늦었더라면 조명한을 비롯한 경찰특공대 팀 전체가 전멸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며 두려움은 점점 더 몸집을 키워나갔다.

이때 한지훈 대신 용일이 앞으로 한발 나서며 비아냥거렸다.

“하, 일개 경찰특공대가 이런 짓을 벌여요? 정말 미치신 겁니까?”

분명 존댓말이지만 단어 하나하나 사이에 박혀있는 날카로운 가시가 송호문의 목구멍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때, 워낙 다혈질인 조명한 역시 앞으로 다가가며 소리쳤다.

“야, 너 미쳤어? 어디 청장님한테 그딴 식으로...! 두고 봐. 내가 오늘 너희들 무조건 처넣는다.”

“닥쳐! 닥치라고!”

‘이 자식이, 정말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러나.’

마음이 다급해진 송호문이 용일 일행들에게 연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직 이 친구가 뭘 잘 몰라서요. 청장으로서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때 한동안 가만히 있던 한지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쪽이 S시 경찰청 청장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송호문은 거의 이마가 땅에 닿을 듯 굽신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조명한은 물론이고 오늘 작전에 출동한 경찰들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찰청 청장,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S시 경찰의 우두머리, 경찰청에서 왕으로서 군림할 수 있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청장님이 이제 겨우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에게 허리나 굽신대고 있다니.

‘저 사람 도대체 누구지? 뭐 대통령 아들이라도 되는 건가?’

바로 그때, 빠르게 질주하던 군용 지프차가 별장 앞에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한민학이 저 멀리서부터 소리를 지르며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송 청장, 자네가 여길 왜 와! 어서 돌아가!”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던 송호문의 등이 두려움으로 움찔했다.

“군단장님이 여기까진 어떻게...”

한민학 군단장은 그 옛날 송호문이 이등병이었을 때 이미 중대장이었던 존재, 진작 전역했고 이젠 경찰청 청장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다시 만나면 여전히 두렵기만 한 존재이기도 했다.

“알... 알겠습니다.”

‘군단장까지 나섰다는 건... 우리 경찰이 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겠군...’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송호문이 살짝 뒤로 물러섰다.

등장과 동시에 송호문을 꾸짖은 한민학이 한지훈을 향해 경례를 올렸다.

“교룡군 7군단 군단장 한민학, 북양 사단장님을 뵙습니다!”

쿠궁!

그리고 다음 순간, 송호문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북양 사단장이라고?

저 남자가 혼자 힘으로 8국 연합군을 물리친, 용국의 레전드이자 최연소 사단장까지 진급한 그 한지훈이라고?

‘세상에,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야...’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조명한의 손이 덜덜 떨렸다.

몰래 소지성 시장에게 문자를 보낸 송호문 역시 여전히 가슴이 쿵쾅거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령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용일의 차가운 목소리에 한민학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지금 급하게 볼일이 있어서 그런데...”

한참을 침묵하던 한지훈이 다시 입을 열고, 결코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묘한 힘 때문일까?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은 동시에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지훈과 그 부하들이 별장을 떠난 뒤에야 한민학은 이미 땀으로 범벅진 얼굴을 슥 훔쳐냈다.

“군단장님,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두렵긴 했지만 소지성 시장에게 이 상황을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에 두려움을 억누르며 애써 물었다.

“이제 경찰 청장씩이나 된다는 자식이 자기 부하 하나 간수 못해서 이 사단을 내? 내가 제때에 도착했으니 망정이지 진짜 다들 큰일날 뻔한 거 알아?”

한민학이 매서운 눈으로 송호문을 노려보았다.

“아니, 겁만 주지 마시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씀 좀 해주세요.”

“어제 일지로에서 심각한 교통사고가 일어났었어. 그건 알고 있지?”

한민학의 질문에 송호문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S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만 수십 건, 경찰 청장인 그가 그런 사고까지 일일이 알고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이때 조명한이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

“아, 제 동기가 그 사건 담당이라 얘기는 들었는데 그 사건, 그냥 단순 사고라던데요. 피해자가 어린 아이라 안타깝긴 했지만 별 특별한 점은 없는 사고였습니다.”

“사고?”

한민학이 픽 웃었다.

“딱 한번만 말해 줄 거니까 다들 정확히 들어. 그건 사고가 아니라 잘 짜여진 청부 살인이었어. 누군가 그 아이를 죽이려고 일부러 낸 사고였다고. 그리고 그 여자애가 누군지 알아? 아까 봤던 한지훈 사령관님 친딸이라고! 이제 알겠지. 너희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쿠궁!

‘헉, 큰일났다.’

한민학의 말에 모두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송호문이 고개를 돌렸다.

“애들 모아서 당장 그 교통사고 진범부터 찾아내, 어서!”

“네, 청장님!”

송호문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더라도 어떻게든 이 실수를 만회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한민학은 그에게 그런 기회 조차 주지 않았다.

“됐어. 이 일에 경찰이 낄 틈이 있을 것 같아? 살고 싶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눈 감고 귀 막아. 그냥 윗선에서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한민학 역시 자리를 떠버렸다.

한편, 한지훈이 별장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용일이 휴대폰을 건네왔다.

“사령관님, 용각 원로 중 한 명이랍니다.”

“그래?”

미간을 찌푸린 한지훈이 휴대폰을 건네받고 수화기 저편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신한국. 자네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고 있나? 파용군이 지금 진령을 넘으려 한다면서? 상군께서 그걸 아시고 얼마나 노여워하셨는지 알긴 하나? 용각에서 직접 나서서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 말 하나는 명심해! 괜한 충동 때문에 정말 크게 다치는 수가 있어. S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네. 그 일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자네는 그냥 거기 가만히 있어!”

하지만 한지훈 역시 강경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르신, 우리 고운이가... 절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을 텐데 바로 절 알아봤다고요. 제 자식을 처음 만난 자리는 응급실이었고 처음 만난 제 딸은 피투성이었어요. 그때 제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나 가십니까? 아버지란 사람이 딸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모르면 몰랐지 이미 알게 된 이상, 고운이도 우연이도 제가 지킬 겁니다. 제 신분이 걸리시는 거라면... 군복 벗겠습니다. 저 혼자서라도 이 복수 계속 해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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